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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 시집 읽기 2018-11-27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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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박형준 저
문학과지성사 | 1999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소멸하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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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

 

 

 

  어둠을 겹쳐 입고 날이 빠르게 어두워진다

  가지 속에 웅크리고 있던 물방울이 흘러나와 더 자라지 않는,

  고목나무 살갗에 여기저기 추억의 옹이를 만들어내는 시간

  서로의 체온이 남아 있는 걸 확인하며

  잎들이 무섭게 살아 있었다

 

  천변의 소똥 냄새 맡으며 순한 눈빛이 떠도는 개가

  어슬렁어슬렁 낮아지는 저녁해에 나를 넣고

  키 큰 옥수수밭 쪽으로 사라져간다

  퇴근하는 한 떼의 방위병이 부르는 군가 소리에 맞춰

  피멍울진 기억들을 잎으로 내민 사람을 닮은 풀들

  낮게 어스름에 잠겨갈 때,

 

  손자를 업고 나온 천변의 노인이 달걀 껍질을 벗기어

  먹여주는 갈퀴 같은 손끝이 두꺼운 마음을 조금씩 희고

  부드러운 속살로 바꿔준다 저녁 공기에 익숙해질 때,

  사람과 친해진다는 것은 서로가 내뿜는 숨결로

  호흡을 나누는 일 나는 기다려본다

   

  이제 사물의 말꼬리가 자꾸만 흐려져간다

  이 세계는 잠깐 저음의 음계로 떠는 사물들로 가득 찬다

  저녁의 희디흰 손가락들이 연주하는 강물로

  미세한 추억을 나르는 모래들은 이 밤에 사구를 하나 만들 것이다

 

  지붕에 널어 말린 생선들이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전혀 다른 말을 하기 시작하고,

  용암(熔岩)처럼 흘러다니는 꿈들

  점점 깊어지는 하늘의 상처 속에서 터져나온다

  흉터로 굳은 자리, 새로운 별빛이 태어난다

 

  그러나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허름한 가슴의 세간살이를 꺼내어 이제 저문 강물에다 떠나보내련다

  순한 개가 나의 육신을 남겨놓고 눈 속에 넣고 간

  나를, 수천만 개의 반짝이는 눈동자에 담고 있는

  멀리 키 큰 옥수수밭이 서서히 눈꺼풀을 내릴 때

  - 박형준,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어둠을 겹쳐 입은 날이라는 이미지가 나오는 첫 구절부터 눈에 띈다. 어둠을 겹쳐 입었다니? 밤은 어둠을 겹쳐 입고 온다. 새벽은 그럼 겹쳐 입은 옷을 하나하나 벗으면서 오는 것일까? 어둠을 겹쳐 입고 오는 밤은 고목나무 살갗에 여기저기 추억의 옹이를 만들어내는 시간이다. 왜 하필 고목나무일까? 고목나무는 가지 속에 웅크리고 있던 물방울도 제 몸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말라죽은 나무가 아닌가? 죽음이란 생명 활동이 끊긴 상황을 가리킨다. “추억의 옹이라는 시구에 드러나는 대로, 고목나무는 지금까지 살아온 추억으로 죽음을 견딘다. 놀라운 건 그런 고목나무에도 여전히 잎들이 무섭게 살아 있었다라는 시적 인식이다. 고목에도 꽃이 핀다는 말이 있던가. 고목나무에 달린 잎들일수록 생에 대한 의지는 더욱 더 강하지 않을까? “서로의 체온이 남아 있는 걸 확인하는 순간 고목나무에 달린 잎들은 생을 향한 들끓는 열정을 표현한다.

 

시인은 어둠에 덮인 천변을 걷는다. 소똥 냄새가 난다. 순한 눈빛을 한 떠돌이 개에 이끌려 시인은 어슬렁어슬렁 낮아지는 저녁 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키 큰 옥수수밭이 있는 쪽으로 해가 진다. 해가 지는 자리로 떠돌이 개가 사라지고, 천변을 거니는 시인 또한 사라진다.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스러진다. 퇴근하는 방위병이 부르는 군가 소리도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피멍울진 기억들을 잎으로 내민 사람을 닮은 풀들도 어스름에 잠겨 시나브로 제 모습을 감춘다. 세상에 나온 모든 사물이 어둠 속으로 파묻히는 이 시간에 시인은 천변을 거닐며 소멸하는 대상들에게 무심한 듯 말을 건다. 손자를 업고 나온 노인이 보인다. 달걀 껍질을 벗기는 갈퀴 같은 손끝에 시인은 눈길을 모은다. 갈퀴처럼 거친 손으로 할아버지는 달걀 껍질을 벗긴다. 두꺼운 마음이 조금씩 희고 부드러운 속살로 변한다. 할아버지는 딱딱한 껍질 속에 숨은 부드러운 마음을 손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

 

천변을 거니는 시인은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에서 펼쳐지는 호흡을 상상한다. 서로가 내뿜는 숨결로 두 사람은 하나가 된다. 사람과 사람이 친해진다는 건 결국 한 공간에서 숨을 쉬는 일이라는 걸 시인은 새삼 느낀다. 사람과 사물이 친해지는 방식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둠 속에 묻힌 사물들이 내쉬는 숨을 따라 시인 또한 숨을 내쉰다. 사물의 말꼬리가 서서히 어둠에 묻힌다. “이 세계는 잠깐 저음의 음계로 떠는 사물들로 가득 찬다”. 낮은 음으로 어둠 속 사물들은 고개를 숙인다. 밤은 휴식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낮에 들떴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야 할 시간이 밤이다. “저음의 음계는 곧 아기에게 들려주는 자장가와 같은 소리가 아닌가. 강물 위로는 서녘으로 넘어가는 햇살이 은은하게 비춘다. 강물이 저녁의 희디흰 손가락들로 연주를 하면, 모래들은 그들대로 미세한 추억을 모아 이 밤에 모래언덕 하나를 만든다.

 

밤이 되면 낮 동안 침묵했던 사물들이 하나하나 입을 열기 시작한다. 지붕에 널어 말린 생선들이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전혀 다른 말을 하면, 어둠에 물든 하늘에서는 용암(熔岩)처럼 흘러다니는 꿈들이 터져 나온다. 환한 대낮에는 무의식 세계에 갇혀 있던 사물들이 어둠을 틈타 이 세상으로 흘러든다. “점점 깊어지는 하늘의 상처에 나타나는바, 시간이 흐를수록 하늘은 점점이 짙은 어둠으로 물들어간다. 어둠이 흉터로 굳은 자리에서 새로운 별빛이 태어난다”. 하늘의 상처에서 태어난 별빛은 어둠에 묻힌 사람들에게 가야 할 길을 알려준다. 밤하늘에 뜬 별을 보고 자기가 가야할 길을 엿본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어둠은 세상의 모든 사물들을 품안으로 끌어들이는 대신, 하늘에는 뭇 생명들이 가야 할 새로운 길을 그린다. 땅으로 가는 길은 어둠에 묻혔지만, 하늘로 가는 길은 어둠 속에서 어김없이 빛을 낸다. 어둠과 밝음이 교차하는 게 자연이라고 말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새로운 별빛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이 밤에 시인은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라고 선언한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소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소멸은 옹이가 진 추억과 다르지 않다. 나무에게 옹이는 생명의 흐름이 멈춘 곳이 아닌가. 옹이에서 한번 길을 멈춘 나무는 다른 길을 거슬러 올라가 생명을 잇는다. “흉터가 굳은 자리에서 새로운 별빛이 태어난다. 시인은 가슴에 쌓인 허름한 세간살이를 하나하나 꺼내 저문 강물에다 떠나보낸다. 거기에는 순한 개가 나의 육신을 남겨놓고 눈 속에 넣고 간/ 도 포함되어 있다. 떠나보낸 것들은 언제나 추억으로 남는다. 옹이가 진 추억들. 이런 추억이 아니라면 우리가 어떻게 소멸을 견딜 수 있을까? 멀리 보이는 키 큰 옥수수밭이 서서히 눈꺼풀을 내린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수천만 개의 반짝이는 눈동자는 더욱 선명해진다.

 

수천만 개의 상처를 품은 하늘을 바라보며 시인은 시간과 더불어 소멸하는 것들을 상상한다. 모든 것이 소멸되는 세상에서 소멸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무언가가 태어나는 게 자연이듯이, 무언가가 소멸하는 것 또한 자연이다. 소멸을 말한다는 건 그러므로 자연을 말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소멸을 소멸로 받아들이는 자연, 정확히 말하면 사라질 무언가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을 받아들이는 자연 말이다. 가슴에 새겨진 허름한 세간살이에 집착해봤자 마음만 아플 뿐이다. 보내야 할 것은 기꺼운 마음으로 보내야 한다. 그래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어둠에 물든 밤하늘에는 새로운 별이 뜨고, 어둠이 물러난 하늘에는 세상을 밝히는 해가 뜬다. 소멸을 인정하는 순간 새로운 생성이 일어난다고나 할까? 소멸을 이야기하는 일은 이리 보면 생성을 이야기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소멸과 생성은 둘이면서 하나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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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에 반대하는 이유 | 생각들 2018-11-26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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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에 반대한다

아르노 그륀 저/김현정 역
더숲 | 2018년 01월

 

 

 

 

아이는 복종을 요구하는 자와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혼란을 경험하며 성장에 어려움을 겪는다. 복종은 자기보다 힘이 더 강한 타인의 의지에 항상 굴복하는 것이다. 자신을 보살펴주는 사람에게 육체적·정신적으로 제압당하고 다른 누군가에게로 달아날 수 없게 됨으로써, 아이는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죽음에 대한 불안감이 아이에게 엄습하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에게서 손을 떼면 아이는 살아갈 수 없다. 다시 말해 아이가 지각하고 반응한 것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기울여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살아남지 못한다. 결국 아이는 부모의 기대를 받아들임으로써 부모와의 결속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이의 자발적인 인지력과 대처능력 속에 있을 정신적 존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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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시 두 편 | 시집 읽기 2018-11-2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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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박노해 저
느린걸음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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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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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길이 끝나고 새로운 길이

 

 

 

  길이 끝나면 거기

  새로운 길이 열린다

 

  한쪽 문이 닫히면 거기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겨울이 깊으면 거기

  새 봄이 걸어나온다

 

  내가 무너지면 거기

  더 큰 내가 일어선다

 

  최선의 끝이 참된 시작이다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

  - 박노해, 길이 끝나면

 

 

길은 언제나 바깥으로 이어져 있다. 바깥으로 이어진 길은 끝이 없다. 길은 길로 이어지고, 길은 또 길로 이어진다. 안으로 들어가면 바깥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오고, 바깥으로 나가면 다시 안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 길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안과 밖이 하나로 이어진 길. 우리는 지금 안과 밖이 이어진 길을 걷고 있다. 안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언제나 밖에 있고, 밖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언제나 안에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길은 그러므로 누군가가 이미 지나온 길이다. 누군가가 이미 지나온 길을 지금 우리가 새롭게 걷고 있다. 한쪽 문이 닫히면 거기에서 왜 다른 쪽 문이 열리겠는가? 한쪽 문과 다른 쪽 문은 다르면서 같은 문이다. 문이라는 건 열리면서 닫히는 사물이라는 얘기다. 열리면서 닫히는 문이 있어 우리는 다른 희망으로 가는 길과 마주하는 것이다.

 

겨울이 깊으면 거기/ 새 봄이 걸어나온다라고 시인은 쓰고 있다. 겨울은 봄을 품고 있다.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칠수록 겨울 속 봄은 웅크려서때를 기다린다. 웅크리지 않으면 봄은 때에 맞추어 올 수 없다. 웅크리는 때가 있기에 봄은 자기 몸을 활짝 펴는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안다. “새 봄이다. 새 봄은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준다. 겨우내 웅크렸던 몸을 풀어헤치고 저마다 제 힘을 마음껏 발산하는 생명들을 상상해 보라. 몸을 웅크린 채 한겨울을 보낸 생명들이다. 얼마나 갑갑했을까? 겨울이 깊어갈수록 생명들은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힘을 느꼈을 것이다. 당장 밖으로 뻗칠 수는 없지만, 때가 되면 어김없이 터져 나갈 수밖에 없는 생명의 힘. 바로 그 힘으로 생명들은 눈보라치는 겨울을 견뎠다. 겨울을 이기려면 겨울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자연 이치가 참 재미있지 않은가?

 

겨울의 끝이 봄은 아니다. 겨울 속에서 봄은 이미 오고 있다. 다만 겨울을 사는 사람들이 느끼지 못할 뿐이다. 겨울을 겨울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겨울이 지나야만 봄이 오는 거라고 이야기한다. 시인은 이 시에서 거기라는 시어를 네 번이나 쓰고 있다. 길이 끝나면 바로 거기에서 새로운 길이 열린다. 한쪽 문이 닫히면 바로 거기에서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거기는 길이 끝나는 곳이면서 새로운 길이 열리는 곳이고, 문이 닫히면서 다른 문이 열리는 곳이다. 겨울과 봄으로 따진다면, 겨울이 깊어지는 바로 거기에서 새 봄이 걸어 나온다. 새로운 길이 열리고, 새 봄이 오는 자리는 이쪽과 저쪽이 맞물리는 경계에서 펼쳐진다. 이 경계로 들어서지 않으면 새로운 길은 열리지 않고, 새 봄 또한 오지 않는다. 이쪽을 끌어안지 않으면 저쪽으로 나아갈 수 없는 원리가 경계라는 말 속에는 담겨 있다.

 

거기에 이르지 않으면 다음 길로 나아갈 수 없다. 깊은 겨울에 이르지 않고 어떻게 봄이 오는 길로 갈 수 있을까? 길이 끝나는 곳에 이르지 않고 어떻게 새로운 길로 들어설 수 있을까? “내가 무너지면 거기/ 더 큰 내가 일어선다는 시인의 진술 역시 바로 이 지점을 가리킨다. 무너지는 곳에서 우리는 더 큰 로 일어선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경계에 익숙해져야 한다. 경계는 이쪽과 저쪽을 잇는 지점이라고 했다. 이쪽이면서 저쪽인 경계에서 무너진 사람은 새로이 일어설 힘을 얻는다. 절망에 빠진 사람은 새로운 희망을 가슴에 품는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것일까? 경계까지 오는 순간을 그는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쪽을 품고 온 사람만이 경계를 지나 저쪽으로 갈 수 있다. 시간으로 따진다면, 저쪽은 경계까지 온 이쪽을 품고 있다. 저쪽이 이쪽이 되는 역설이 더 큰 를 낳는 원동력으로 작동한다.

 

시인은 최선의 끝이 참된 시작이라고 말한다. 끝은 언제나 시작과 맞물려 있다. 시작은 언제나 끝과 맞물려 있다고 말해도 상관없다. 이 세상을 관통하는 유일한 법칙은 변화이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사물은 없다. 모든 사물은 변하기 때문에 어디서나 만날 수 있고, 어디서나 헤어질 수 있다. 박노해 시인만 해도 노동자시인, 사회주의운동가에서 평화운동가로 변하지 않았는가?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라는 시구에 나타나는 대로, 그는 깊은 절망을 지나온 자리에서 새로운 희망이 시작되는 지점을 찾았다. 깊은 절망은 정직한 절망과 다르지 않다. 마음속 깊이 새겨진 절망과 마주하지 않는 한 새로운 희망으로 가는 길은 나타나지 않는다. 시인은 1980년대의 민주화 경험을 끌어안고 세계평화로 가는 길을 모색한다. 변화가 유일한 법칙인 세계에서 끝(시작)은 언제나 시작()과 이어져 있다. 지난 시대의 절망과 더불어 가는 길 위에서 그는 새 시대로 가는 희망을 보고 있는 셈이다.

 

    

2. 돌을 던지다, 꽃을 던지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돌을 던진다

  마을 골목까지 밀고 들어온

  방탄 지프의 총구 앞에서

 

  돌을 던진다

  침대 머리까지 뚫고 들어온 탱크 앞에서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돌을 던진다

 

  총격이 시작되면 후다닥 달아나다

  등을 맞고 쓰러진 친구를 끌어다 뉘여 놓고

  다시 달려나가 돌을 던진다

 

  책상 앞에서 연필을 쥐고 숙제를 하고

  몰래몰래 연애편지를 쓸 손으로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돈을 던진다

 

  쥘 것은 돌멩이밖에 없는 아이들이

  눈물 젖은 돌을 던진다

  피에 젖은 꿈을 던진다

 

  이 지상에 이보다 더 가벼운 돌멩이가 있을까

  이 지상에 이보다 더 무거운 돌멩이가 있을까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돌을 던진다

  달걀보다 작은 돌을 던진다

  간절한 한 송이 꽃을 던진다

  - 박노해, 꽃을 던진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방탄 지프의 총구 앞에서 돌을 던진다. 총알도 뚫지 못하는 지프에 돌을 던진들 무엇이 달라질까? 그래도 아이들은 마을 골목까지 밀고 들어온 지프에 돌을 던진다. 방탄 지프가 왜 마을 골목까지 들어와 아이들의 돌 세례를 받는 것일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벌어진 국경 분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거대국가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은 힘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을 정복했다. 삶터에서 내쫓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탱크가 침대 머리까지 뚫고 들어왔으니 돌이라도 던지며 저항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돌을 던지는 행위는 상대를 증오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자기들이 살던 땅을 빼앗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 수는 없다. 이스라엘은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건넜고, 그 자리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 와중에 아이들만 죽어나간다. 돌을 던지는 아이들은 시간이 흐르면 팔레스타인 전사가 될 것이다. 증오가 증오를 낳는 악순환으로 번진다고나 할까?

 

방탄 지프에 매달린 총구가 불을 뿜는다. 돌을 던지던 아이들은 후다닥 달아난다. 당연한 말이지만 돌보다는 총이 세다. 총을 구할 수 있으면 아이들도 지프를 향해 총을 쏠 것이다. 총을 구하기 힘든 아이들은 돌이라도 던진다. 돌이 방탄 지프를 뚫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돌을 던진다. 전쟁 놀이가 아니다. 아이들에게 돌을 던지는 행위는 빼앗긴 집을 찾기 위한 저항이다. 등을 총을 맞고 쓰러진 친구를 끌어다가 바닥에 뉘어놓고 아이들은 다시 달려 나가 돌을 던진다. 죽기 아니면 살기가 아닌가? 죽음이 아니면 해결이 날 수 없는 상황 속으로 아이들은 기꺼이 달려 들어간다. 이스라엘은 돌을 던지는 아이들을 테러범으로 규정한다. 테러범들에게 총을 쏘는 것이니 아이들에게 총을 쏘는 행위는 정당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총에 맞아 죽은 아이들만 볼 뿐, 그 장면을 가슴에 깊이 새기는 또 다른 아이들은 보지 못한다. 악순환은 그렇게 일어나는 것이다.

 

시인은 책상 앞에서 연필을 쥐고 숙제를 하고/ 몰래몰래 연애편지를 쓸 손을 상상한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연필을 쥐고 숙제를 해야 할 손으로 돌을 던진다. 목숨을 걸고 돌을 던진다. 옆에서 돌을 던지던 친구가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돌을 던진다. 연필을 쥐고 숙제를 하는 미래를 위해 그들은 지금 돌을 던진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을 이 아이들은 어째서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 아이들이 손에 쥘 것은 돌멩이밖에 없다. 마을 골목까지 밀고 들어온 방탄 지프가 미워 아이들은 눈물 젖은 돌을 던진다/ 피에 젖은 꿈을 던진다”. 돌 하나에 아이들의 눈물이, 아이들의 꿈이 스며들어 있다. 피로 물든 세상은 아이들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아이들이 돌을 던지면 총을 난사하며 되받아칠 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은 피바다로 변한다. 지옥이다. 아니, 지옥보다 더한 세상을 아이들은 돌을 던지며 살고 있다. ‘위대한나라를 건설한다는 명분으로 벌이는 이 만행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

 

아이들이 던지는 돌멩이는 지상에서 가장 가볍기도 하고, 가장 무겁기도 하다. 가장 가벼운 돌멩이를 아이들은 지프에 던진다. 차량에 흠집 하나 나지 않을 행동으로 아이들은 가공할 폭력과 맞선다. 아이들과 어른이 싸운다. 아이들은 돌을 들고 있고, 어른들은 총을 들고 있다. 명분 없는 싸움에 명분을 부여하기 위해 어른들은 아이들을 테러범으로 내몬다. “달걀보다 작은 돌을 이기기 위해 어른들은 방탄 지프에 연발로 나가는 총을 설치하고, 탱크까지 투입한다. 가벼운 돌을 들고 첨단 무기로 무장한 어른들과 무거운 싸움을 벌이는 아이들을 상상해 보라. 총에 맞은 아이가 죽은 자리에서 또 다른 아이가 태어난다. 폭력이 폭력을 부르듯, 저항은 저항을 부른다. 아이들에게 행해지는 폭력이 가혹해질수록 아이들은 더욱 더 강하게 저항을 한다. 한쪽이 궤멸되지 않는 한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시인은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던지는 돌을 달걀보다 작은 돌이라고 표현한다. 달걀보다 작은 돌은 달걀보다 가볍고, 약한 돌일 수도 있다. 상대를 자극하기조차 힘든 이 작은 돌을 아이들은 왜 그리 목숨을 걸고 던지는 것일까? “간절한 한 송이 꽃을 던진다라고 시인은 에둘러 말하고 있다. 돌은 돌이 아니라 꽃이다. 아이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어른들에게 꽃을 던진다. 산화공덕(散花功德)은 상대를 축복하는 행위이다. 아이들은 꽃을 던짐으로써 자기들에게 총을 쏘는 어른들은 온몸으로 맞아들인다. 한 송이 꽃에 아이들은 평화로운 세상을 향한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다. 돌과 꽃을 던지는 아이들 마음을 헤아리지 않으면, 아이들은 어느 순간 총을 들고 나타날지 모른다. 총을 들고 싶어 총을 드는 게 아니다. 어른들이 아이들 손에 꽃 대신 총을 쥐어준다. 꽃을 든 아이와 총을 든 아이. 지금 우리가 가는 길에 이 아이들의 인생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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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젠리, 『아이의 마음을 읽는 연습 - 학습 편』 | 인문사상 2018-11-24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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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이의 마음을 읽는 연습 학습 편

인젠리 저/김락준 역
다산에듀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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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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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눈으로 아이를 보는 사랑 이야기

   - 인젠리, 『아이의 마음을 읽는 연습 - 학습 편』

    

 

 

 

 

아이의 눈으로 아이를 보기 위해서는 학습이 필요하다. 물론 부모들도 아이 시절을 겪었다. 하지만 아이 시절을 겪었다고 아이 마음을 아는 것은 아니다. 어른들은 항상 자기들 생각으로 아이들을 보려고 한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스스로 선택하는 걸 두려워한다. 달리 말하면 부모들은 아이들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아이는 그저 아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아이에게는 부모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말을 어른들은 과연 어떻게 이해할까? 아이들은 당연히 부모의 사랑을 먹고 산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부모치고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부모라면 당연히 아이를 사랑한다. 상황이 이런데 왜 사람들은 부모들의 사랑을 강조하는 것일까? 부모들 가운데 사랑을 지나친 관심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지나친 관심과 사랑을 구분한다. 지나친 관심은 어른의 눈으로 아이를 보는 것이다. 아이의 눈으로 아이를 보는 게 사랑이다.

 

지은이는 무엇보다 아이에게 부모의 기준을 강요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긴장했을 때 손톱을 물어뜯는 아이가 있다. 부모 입장에서 보면 안 좋은 버릇이다. 부모는 어떡하든 아이 버릇을 고치려고 한다. 지은이는 이 부모에게 어떤 말을 들려줄까? 지은이는 아이가 손톱을 물어뜨는 행위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한다. 아이가 손톱을 물어뜯지 못하도록 윽박지르지 말라는 것이다. 엄마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할수록 아이의 버릇을 고칠 가능성은 낮아지고 도리어 심리적으로 새로운 문제라 생길 수(118) 있다고 지은이는 이야기한다. 아이의 지금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손톱을 물어뜯는 아이를 그냥 놔두라는 얘기가 아니다. 손톱을 물어뜯는 행위가 그 자체로 큰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으라는 것이다. 아이가 왜 손톱을 물어뜯는지는 헤아리지 않고 그 행위만 금지할 경우 아이는 더욱 큰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많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배변 훈련을 시켜요. 표면적인 이유는 아이를 위해서이지만 진짜 이유는 부모 자신을 위해서예요. 아이가 하루라도 일찍 유아 변기통을 사용하면 부모가 편하니까요. 그뿐인가요? 부모 어깨에 힘이 들어가요. “우리 집 아이 좀 봐요. 두 돌 조금 지났는데 벌써 기저귀를 뗐다고요!”

자연의 생리 규칙과 신체 발달 속도를 고려하지 않은 채 부모가 신체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아이에게 강제로 대소변 훈련을 시키면 아이는 심리적으로 거대한 압력을 받아요. 모든 아이는 본능적으로 부모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해요. 본인들도 대소변을 가리고 싶지만 너무 어려서 신체가 통제되지 않는 것을 어떡하겠어요. 뜻하지 않게 옷에 실례를 했을 때 불만에 찬 부모의 얼굴을 보면 아이는 가뜩이나 조그마한 마음이 더 조그마해져 자신에게 실망하고, 그래서 또다시 실례를 하는 악순환에 빠져요. (87~88)

 

아이 배변 훈련을 시키는 게 어렵다는 부모에게 지은이는 배변 훈련을 하지 마세요라고 이야기한다. 배변 훈련 자체를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때를 기다리라는 말이다.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나길 원한다. 아이가 천재라는 소리를 들은 부모치고 감동하지 않는 이가 어디에 있을까? 하지만 천재 소리를 들어도 아이는 아이일 뿐이다. 천재 아이에게 부모의 기준을 적용하는 순간 아이는 어느 순간 둔재가 되어버린다. 배변 훈련도 마찬가지다. 지은이는 자연의 생리 규칙과 신체 발달 속도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직 때가 되지 않은 아이에게 배변 훈련을 시키면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이치고 부모에게 잘 보이고 싶지 않은 아이가 어디에 있는가?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옷에 실례를 한 아이는 그래서 불만에 찬 부모 얼굴을 보고 더욱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른들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을 제대로 못한다. 하물며 아이는 어떨까? 어른을 기준으로 하면 천재아이라도 언제나 부족해 보이기 마련이다.

 

때가 되면 남자아이들은 누드 사진을 보고, 자위를 할 수 있다. 그것을 목격했다고 호들갑을 떠는 엄마들을 향해 지은이는 아이들이 외려 성에 관심이 없으면 비정상이라고 말한다. 엄마들은 아이가 공부에는 일찍 눈을 뜨고, 성에는 늦게 눈을 뜨길 바란다. 그럴 수가 있는가? 어른들이 생각하는 기준을 자꾸만 아이들에게 들이대다 보니 엄마와 아이 사이가 시간이 갈수록 멀어지기만 한다. 지은이는 어머님의 자아 성장에 힘쓰세요. 이것이 가장 합리적이에요.”(140)라고 힘주어 이야기한다. 아이를 향한 지나친 관심이 도리어 엄마의 자아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아이의 눈으로 아이를 보는 마음은 이리 보면 성숙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어른이라고 이런 마음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보다 못한 어른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기 생각을 아이에게 주입하는 부모일수록 자기 고집에 파묻히는 경우가 많다.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지은이는 아이를 현명하게 만들고 싶으면 부모 먼저 현명한 행동을 하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학습은 바로 부모 스스로 현명해지는 학습이다. 이 책의 5장에서 지은이는 용기 있는 부모가 당당한 아이를 만든다는 점을 강조한다. 부모가 무언가를 행동해야 한다면 아이가 보는 지금 행동해야 한다. 아이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부모가 일을 미루면, 아이 또한 나중에 그런 상황이 와도 용기를 내지 못한다. 선생님이 부당하게 체벌을 하는데,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그냥 넘기면 어떻게 될까? 지은이는 부모 스스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해야 아이를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는 그냥저냥 두루뭉술 넘어가기 바쁘면서 아이에게 용기 있는 삶을 살라고 하는 건 위선이다. 선생님에게 선물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 엄마에게 지은이는 부모가 먼저 사회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대답한다. 아이는 부모가 하는 행동을 보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한다. 아이만 학습을 하는 게 아니라 부모 또한 학습을 하며 성장한다는 걸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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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젠리, 『아이의 마음을 읽는 연습 - 관계 편』 | 인문사상 2018-11-23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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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이의 마음을 읽는 연습 관계 편

인젠리 저/김락준 역
다산에듀 | 2018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아이에게 어른들 생각을 강요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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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로 하여금 아이의 길을 걷게 하는 관계 맺기

- 인젠리, 『아이의 마음을 읽는 연습 - 관계 편』

 

 

 

인젠리는 이 책에서 아이의 마음을 읽으려면 아이 입장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 입장이 된다는 건 아이 의견을 무작정 들어주는 게 아니다.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하고, 그런 생각을 하는지 생각해 보라는 얘기다. 이를테면 규칙을 지키는 습관을 길러주고 싶다는 부모를 향해 지은이는 고의로 아이를 곤란하게 하지 마세요(35) 이야기한다. 만화를 보고 싶은 아이가 있다. 엄마가 안 된다고 해도 아이가 굳이 만화를 보려 하자, 엄마는 그럼 반만 보라고 이야기한다. 아이가 반쯤 만화를 보자 엄마는 규칙이라고 하면서 아이가 만화를 보지 못하도록 한다. 누가 만든 규칙일까? 엄마는 아이와 약속을 했다고 말하지만, 실제 아이가 엄마와 약속을 한 것일까? 아이는 만화를 보고 싶은 마음밖에는 없다. 아예 안 보는 것보다는 반이라도 봐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엄마 말을 따른 것이다.

 

겉만 보면 아이가 자신이 한 말을 안 지킨 것이 맞아요. 하지만 그 은 아이가 스스로 생각해서 한 말인가요? 만화를 아예 못 보는 것보다 절반이라도 보는 게 나으니까 엄마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뿐이에요. 아이가 절반만 보겠다고 말한 것은 본능이에요. 당장의 필요를 만족시키려면 어떡하든 엄마가 텔레비전을 켜게 만들어야 하니까요.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도 본능이에요. 아이는 자신의 의지력이 어느 정도이고 만화를 중간까지 봤을 때 진짜로 자신의 생각과 욕망을 통제할 수 있는지 고려하지 못해요. 어린아이는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서 말하고 행동하니까요. (37)

 

어린아이는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규칙을 세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맞는 말인 것 같다. 하지만 어른들은 이런 생각으로 아이들을 통제하려고 한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지은이 말마따나 만화를 중간까지만 보라는 것은 아이가 빠질 함정을 어른들 스스로 만들어놓은 것과 같다. 아이가 함정에 빠진 순간 엄마는 아이를 나무란다. 엄마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아이가 곧바로 반성을 하면 괜찮겠지만, 그런 경우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지은이는 너무 어려서부터 아이에게 규칙을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38)라고 말한다. 어릴 때 통제를 많이 당한 아이일수록 성장하면서 반항하는 데 에너지를 많이 쓴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도덕을 강조하는 집안일수록 도덕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이 나올 수 있다. 도덕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 외부에서 강요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장면 하나를 소개한다. 갓 돌이 지난 아이가 있는데, 자꾸만 변기 물에 손을 담그고 노는 모양이다. 더러운 변기 물에 손을 대고 노는 걸 보니 엄마 마음이 심란하다. 강제로 아이를 화장실에서 데리고 나오면 아이가 울까봐 엄마는 그냥 놀게 놔두기는 하지만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엄마에게 지은이는 어떤 말을 들려주었을까? 대답을 듣기 전에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할지 생각해 보라. 지은이는 말한다. 아이가 놀 수 있게 변기를 깨끗이 청소하세요.”(107)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지은이가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읽으려고 하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변기 물이 더럽다는 생각은 어른들의 생각일 뿐이다. 아이는 변기 물을 놀이 도구로만 본다는 얘기다. 아이에게 변기 물은 더럽다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아이는 이해를 하지 못한다. 엄마가 계속 얘기를 하면 아이는 더 이상 변기 물을 가까이 하지 않겠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놀이 도구 하나를 잃은 결과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부모들은 자꾸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통제하려고 한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한 후,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강요한다. 부모라면 당연히 이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은이는 부모들의 이런 생각이 아이들 성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이야기한다. 통제가 심할수록 아이들은 반항을 한다. 지은이가 아이들을 자유롭게 풀어주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자유롭게 성장한 아이들은 자기 자존감이 높다. 자유롭게 풀어주는 건 결국 아이들을 그냥 놔두라는 얘기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다. 아이들을 방임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어른의 생각으로 아이의 영역을 지나치게 판단한지 말라는 의미이다. 지은이는 아이의 놀이를 방해하지 마세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강제로 이해하고 아이를 지도하려고 하지 마세요.”(197)라고 거듭 강조한다. 아이의 마음을 읽으려면 아이를 지도하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그게 아이와 진정한 관계를 맺는 시작점이라고 지은이는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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