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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호 디카시 「늙은 호박」 | 디카시 읽기 2018-09-3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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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호 디카시 늙은 호박

 

    

 

 

 

   지난여름, 앰뷸런스에 실려 간 옆집 노인은 끝내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노인이 심은 호박도 넓게 넝쿨을 뻗지 못하고 시들었다

  다만, 멀리서 소식 없는 한 점 혈육 같은,

  담장에 매달린 호박 한 덩이만 애호박에서 늙은 호박으로

  - 송찬호, 늙은 호박

 

 

담벼락에 늙은 호박 하나가 걸려 있다. 주변 잎들이 바싹 마른 걸 보니 딸 때가 지난 호박이다. 누가 저곳에 씨를 심어 저 호박을 길러냈을까? 시인은 지난여름, 앰뷸런스에 실려 간 옆집 노인을 떠올리고 있다. 끝내 다시 돌아오지 못한 노인이 심은 호박도 넓게 넝쿨을 뻗지 못하고 시들었다”. 호박도 제 주인이 처한 상황을 아는 것일까? 넝쿨을 뻗지 못하고 시든 호박이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노인과 닮아 있다. 마른 가지 위에 덩그러니 올라서 있는 호박 하나에도 이렇게 서러운 사연이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옆집 노인은 늙은 호박이 애호박일 때 집을 떠났다. 홀로 사는 할머니에게 호박은 멀리서 소식 없는 한 점 혈육 같은존재였다. 그런 애호박을 놔두고 먼 길 떠난 할머니 마음은 어땠을까? 호박도 할머니의 이런 마음을 알았을 것이다. 담장에 매달려 안간힘을 쓰며 애호박은 늙은 호박으로 성장했다. 생명으로 태어났으니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씨앗을 준 할머니를 생각해서도 마지막 생을 피워야 하지 않겠는가? 꽃도 떨어지고 잎도 말라버린 시절을 늙은 호박 혼자서 견디고 있다. 먼 길 떠난 할머니를 뒤늦게나마 조문하는 것일까? 늙은 호박은 마치 상가에 걸린 조등(弔燈)처럼 보인다.

 

시인은 담장에 매달린 늙은 호박을 보며 지난여름에 떠난 노인을 생각한다. 노인이 떠난 자리를 늙은 호박이 지키고 있다. 애호박이 늙은 호박으로 변하는 시간이 무심하게 흘러간다. 예전 같으면 노인의 손길이 미쳤을 자리에는 늙은 호박 하나가 시든 가지와 잎을 거느리고 덩그러니 놓여 있다. 아무도 늙은 호박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멀리서 소식 없는 한 점 혈육을 그리워하다가 끝내 앰뷸런스에 실려 간 옆집 노인처럼 늙은 호박은 서서히 말라가고 있다. 옆집 노인도 저렇지 않았을까? 황량한 담장에 붙어 누군가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다 시나브로 말라가지 않았을까? 늙은 호박 하나가 시인을 울린다. 지금이라도 나 좀 봐달라고 시위하는 듯한 늙은 호박을 시인은 차마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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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숙원 그림책 『내 이름은 둘째』 | 그림책+동화 2018-09-29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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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내 이름은 둘째

서숙원 글/김민지 그림
별글 | 2018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서러운 둘째들이여, 용감하게 세상과 맞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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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용감한 둘째이야기

- 서숙원 그림책 『내 이름은 둘째』

 

 

 

  

서숙원이 글을 쓰고 김민지가 그림을 그린 『내 이름은 둘째』(별글, 2018)은 제목대로 집안에서 둘째로 태어난 아이를 그리고 있습니다. 둘째는 위로는 형이나 누나가 있고, 아래로는 동생이 있습니다. 둘째가 처음부터 둘째는 아니었겠지요. 이 그림책에 나오는 둘째 연두는 나이도 두 번째이고, 키도 두 번째, 몸무게도 두 번째입니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언니처럼 자라지 않고, 아무리 적게 먹어도 동생처럼 작아지지도 않지요. 당연한 거 아니냐고요? , 맞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그런데, 당연한 이 일로 해서 둘째 연두는 자기 삶이 도통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 그러니까 연두가 막내로 불릴 때, 연두가 뒤뚱뒤뚱 걸을라치면 가족들은 모두 손뼉을 쳤습니다. 걷다가 넘어지면 가족 중 하나가 바람처럼 달려와 일으켜주고는 했지요. 이불에 지도를 그려도 아빠는 연두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어주고, 엄마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환하게 웃으며 연두를 껴안았지요

  

   

그런데, 동생이 태어나자 연두는 찬밥 신세가 되었어요. 걷다가 조금만 휘청거려도 엄마가 연두 엉덩이를 철썩 때리네요. 어기적거리며 걸어서 그런다나요. 이불에 실수를 하면 연두 머리에는 불이 나기 일쑤지요. 동생 앞에서 부끄러운 줄 알라는 말을 들으면 아무리 착한 연두라도 화가 납니다. 거기다 동네 아줌마들은 엄마를 부를 때는 꼭 보라 엄마라고만 불러요. 보라는 언니 이름이지요. 간혹 연두 엄마로 부르는 아줌마를 보면 연두는 저도 모르게 환하게 웃습니다. 왜 첫째 이름을 붙여 엄마를 부르는 걸까요? 부르는 사람이야 그게 편할지 몰라도 듣는 아이는 참 서글픕니다. 용돈을 받을 때도 연두는 둘째라는 게 서럽습니다. 언니는 언니라고 용돈이 많고, 동생은 귀엽다며 연두와 용돈이 같아요. 도대체 둘째로 태어나 좋은 게 있기나 한지요? 불공평해도 연두는 어쩔 수 없어요. 어른들이 그리 하니 힘없는 연두는 그저 울상만 지을 뿐이지요.

 

 

 

제일 못마땅한 건 언니가 입은 헌옷을 연두가 물려받아 입어야 한다는 거예요. 언니는 옷을 줄 때면 늘 이거 내가 아끼는 건데 특별히 너 주는 거야.”라고 말합니다. 참 얄미운 언니지요. 그럴 때면 늘 역시 언니가 최고다. 연두는 좋겠네.”라고 말하는 엄마도 언니만큼이나 얄밉기는 마찬가지에요. 연두도 알 건 알거든요. 언니가 처음 옷을 입을 때는 눈부시게 하얀 블라우스가 자기가 입을 땐 누런 티셔츠가 되어 있다는 것을요. 언니는 늘 깨끗한 옷을 입고, 연두는 늘 헌옷만 입어요. 연두는 밖에서 주워온 자식인 걸까요? 헌옷만 주는 언니가 얄미워서 연두는 자기가 아끼던 옷을 동생에게 입혀 주었어요. 그랬더니 아빠 눈이 접시만큼 커져서는 당장 옷을 갈아입히라고 하네요. 연두 동생은 남자아이거든요. 연두는 좋은 일을 해도 혼이 나네요

  

   

생일이 되면 언니는 휴대폰을 받는데, 연두는 곰 인형을 받습니다. 크리스마스 때도 언니는 전자 사전을, 연두는 토끼 머리띠를 받았네요. 이 정도면 차별 아닌가요? 둘째로 살아가는 게 이리 서러운 것인 줄 연두는 정말 몰랐어요. 연두는 이제 모든 일이 귀찮아요. 어차피 사람들은 언니와 동생에게만 관심을 기울이니까요. 왜 다들 언니만 예뻐할까요? 왜 다들 동생만 귀여워할까요? 왜 다들 저만 미워하는 거죠?”라고 외치는 연두 마음이 느껴지나요? 둘째는 언제나 첫째에게 밀려요. 첫째는 늘 새것을 사용하고, 둘째는 늘 헌 것을 사용합니다. 하긴 부모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연두가 나이를 먹으면 부모 마음을 이해하겠지만, 지금 나이로야 어떻게 이 상황을 이해하겠어요. 언니에게 밀리고, 동생에게도 밀리는 연두 마음을 이 그림책을 읽는 우리라도 알아줘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던 어느 날, 연두에게 드디어 자기를 내보일 기회가 왔네요. 언니가 나무 아래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책 위로 송충이가 떨어진 거예요. 언니는 말할 것도 없고, 곁에 있던 엄마와 동생도 깜짝 놀라 소리를 지릅니다. 나무 아래 따로 누워 있던 연두가 비명 소리를 듣고는 그리로 성큼성큼 걸어가 신발로 찰싹! 송충이를 무찌릅니다. 참 용감한 연두이지요. 둘째로 태어나면 반항심이 많다고 하네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면 반항심이 많아지고, 그러다 보면 자연 연두처럼 용감한 아이가 되나 봅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냐고요? , 이제는 모두 저만 불러요.”라는 말에 연두가 처한 상황이 드러나네요. 일만 생기면 자기를 찾는 가족들이 귀찮기도 하지만, 그래도 연두는 기꺼이 가족들을 위해 움직입니다. 이러니 둘째라고 서러워할 건 없습니다. 둘째도 첫째처럼 듬직할 수 있다는 걸 연두가 입증했잖아요.

 

첫째라고 무조건 좋을 리는 없습니다. 첫째는 짊어져야 할 짐이 그만큼 많은 자리잖아요. 엄마가 심부름을 시킬 때 언니에게 왜 지갑을 맡기겠어요? 그만큼 책임을 부여하는 거지요. 장바구니를 들고 나서는 연두는 언니만 따라다니면 되니 한결 편하게 장을 볼 수 있는 겁니다. 언니가 입은 옷을 물려받아 입을 때마다 서럽기는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둘째들 중에는 마음이 넓은 아이들이 많습니다. 첫째가 마음을 넓을 것 같지요? 천만예요. 첫째들 중에는 욕심쟁이들이 많답니다. 막내들이야 뭐 익히 알려진 대로 이런저런 일을 저지르기 바쁘지요. 둘째인 연두는 언제가 돼야 둘째가 좋은 이유를 알게 될까요? 용감하게 송충이를 잡는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행동하는 연두가 보고 싶네요.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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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우, 「당신과 걸었던 길에」 | 디카시 읽기 2018-09-28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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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우 디카시 당신과 걸었던 길에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날아가지 않는

  붉은 나비

  흰 나비

  - 권정우, 당신과 걸었던 길에

 

 

붉은 꽃과 흰 꽃이 피어 있다. “당신과 걸었던 길에피어 있는 이 꽃들은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날아가지 않는다. 시인이 걸었던이라는 과거형을 쓰고 있다는 점에 주의해서 이 시를 읽어보자. 과거형은 당신과 걸었던 그 길을 지금은 나 홀로 걷고 있는 상황을 알려준다. 당신과 걸었던 그 길은 이제 추억하는 길이 되었다. 무엇을 추억하고 있는 것일까? 당신일까? 아니면 당신과 걷던 그 길에 있는 꽃들일까? 그도 아니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의 청춘일까?

 

당신과 걸었던 길에 피었던 그 꽃들은 지금도 붉은 나비/ 흰 나비가 되어 시인을 반기고 있다. 그때 핀 꽃이 지금 핀 꽃은 아니겠지만, 시인은 길가에 핀 그 꽃들을 보며 그때를 떠올린다.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저 꽃=나비들은 왜 날아가지 않을까? 시인은 제가 꽃을 피웠다가 진 자리에서 다시 꽃을 피우는 저 꽃들을 보며 어딘가로 날아간 당신을 그리워하고, 어딘가로 날아간 청춘=시간을 서러워한다. 붉은 물이 든 사진 이미지처럼 시인의 마음 또한 그 시절에 대한 기억으로 붉게 물들어 있다.

 

시간은 날아가도 기억은 날아가지 않는다. 기억 속에 있는 붉은 나비나 흰 나비는 어느 순간 불현듯 나타나 시인을 그들이 있는 세계로 이끌어간다. 붉은 나비와 흰 나비가 그림처럼 머물러 있는 이곳을 시인은 언젠가 당신과 함께 걸었다. 시인은 눈시울이 붉어졌을까?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며 하늘을 쳐다보았을까? 기억은 그런 것이다. 당신과 얽힌 기억이라면, 그 길을 걷는 일만으로도 시인은 가슴이 벅차다. 붉은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붉은 마음을 바칠 청춘은 시간과 더불어 사라졌다. 사진 이미지로 남은 붉은 나비와 흰 나비는 시인의 기억 속에 새겨진 이 변함없는 마음을 드러낸다. 시간이 흘러도 당신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기는커녕 때가 되면 붉은 나비, 흰 나비가 되어 시인 앞에 나타난다. 당신과 걸었던 길은 그렇게 하나의 신화가 되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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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호,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 사회사상 2018-09-28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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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오찬호 저
휴머니스트 | 2018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는 진실에 다가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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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고 싶은 진실과 마주하는 사람들

- 오찬호,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결혼과 육아는 하나로 묶여 있다. 결혼이 제도이듯 육아 또한 제도이다. 오찬호는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휴머니스트, 2018)에서 제도로서 결혼과 육아를 이야기하고 있다. 결혼과 육아에 굳이 제도라는 말을 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흔히 결혼을 개인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결혼은 결코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결혼 안 해?”라는 질문과 결혼을 왜 해?”라는 질문은 다른 듯하지만 결국은 같은 상황을 전제한다. 결혼이 제도라는 인식이다. 결혼은 개인과 개인을 넘어 집단과 집단이 묶이는 제도이다. 결혼을 하는 사람들은 보다 큰 집단으로 이어져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결혼이 개인 문제라면 시월드라는 말이 왜 나오겠는가? 시월드는 시가를 표현하는 말이다. 시부모가 있는 곳은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이 세계에서는 오로지 며느리만 소외된다. 며느리는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시월드가 강화되는 이유를 사회구조적으로 분석한다. 시월드라는 말이 나도는 사회적 배경에는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없는 세대의 비극이 자리하고 있다. 연애에서 자연스레 결혼으로 이어지는 낭만적인(?) 사랑은 더 이상 없다. 청년들은 결혼을 하면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잘 안다. 두 사람이 만나 파뿌리가 되도록 사는 삶은 이야기 속에나 있다. 결혼을 결심하는 순간부터 청년들은 수없이 많은 제도들과 싸워야 한다. 지금 청년들은 청첩장을 돌리는 친구들에게 결혼을 왜 하느냐고 묻는다. 결혼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니다. 결혼을 하면 짊어져야 할 의무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들이 별다른 생각 없이 받아들인 일을 청년 세대는 고분고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는 성공하지 않으면 실패자가 되어버린다. 평범한 사람들은 없다는 얘기다. 성공하면 찬양을 받고, 실패하면 비난을 받는다. 성공과 실패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비혼자들은 솔직하게 고백한다. ‘지금은스스로 결혼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지만 직전까지는 결혼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에 허우적거렸음을 인정했다. 자신이 사회적 거세를 당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물론 나쁜 사회로부터의 거세다. 이들에게 주체적인 행위 의지가 보란 듯이 풍기는 비혼이라는 단어는 겹겹이 쌓인 자신의 상처를 봉합하는 마법의 언어였다. 그만큼 비혼자들은 연애-결혼-출산에 대해 가장 현실적으로 고민한 사람이다. 이들이 드러낸 공포, 그러니까 그 부모와 다른 레일로 들어선 결정적인 계기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존재를 미약하게 만드는 경제적 사정이고 둘째, 면역이 없기에 버티기가 힘들다고 판단한 인간관계의 문제, 마지막은 지금껏 배운 것이 너무나도 무용함을 인정해야 하는 빌어먹을 성 불평등의 세상이다. 이를 감수할 각오가 있어야 기혼자가 된다. (28)

    

경제적 사정, 인간관계, 성 불평등은 사실 하나로 이어져 있다. 경제적 사정 때문에 청년 세대는 결혼을 해서도 부모에게 의존한다. 독립적인 인간관계가 될 수 없는 이유이다. 성 불평등은 가부장제 의식에 길들여진 남자와 거기서 벗어나려는 여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가리킨다. 지은이는 동갑내기 남자와 결혼한 여성을 사례로 제시한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출근 준비를 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밥 안 줘?”라고 이야기한다. 어머니가 해준 역할을 아내에게 요구한 것이다. 여자에게는 낯선 일이 남자에게는 아주 당연한 일이 된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길러졌기 때문이다. 남자가 해야 할 일, 여자가 해야 할 일을 구분하는 시어머니가 개입하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제시된 사례 속 여성은 결혼할 때 시가에서 경제적 도움을 받았다. 신혼부부로서 자주권을 잃는 순간이다. 주말이 되면 남편은 시부모를 찾아 시가로 간다. 시부모 눈 밖에 나면 좋지 않다는 의미이다. 받은 게 있으니 며느리 또한 시부모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경제 문제로 뒤얽힌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가부장제 사회다 보니 지은이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처한 문제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가부장제 사회는 여자를 모성이라는 틀에 가두려고 한다. 단언컨대 모성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악질적으로 남용되는 단어다.”(75)라는 말에 나타나는 대로, 지은이는 가부장제 사회가 모성을 어떤 식으로 이용하는지 철저히 분석한다. 모성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어머니의 마음이란 무엇일까? 희생이다. 가정에서 엄마가 희생을 하면 가족들이 편하다. 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희생하지 않는 여자를 여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모성이 강한 여성은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극복한다. 문제는 모성이지 상황이 아니다. 남자들에게 이 말을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어떤 상황도 부성만 강하면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을 남자들은 과연 인정할까? 모성과 부성은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무엇이 다른가? 여자는 희생하는 존재이고, 남자는 그 희생을 받는 존재라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신자유주의 사회는 모성 담론을 통해 여자들을 소비의 주체로 만든다. 아이를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엄마는 아이를 위한 물건이라면 빚을 내서라도 구입하려고 한다. 다른 아이보다 더 나은 아이로 기르기 위해 엄마들이 벌이는 눈물겨운 경쟁(?)을 자본은 모성 담론으로 정당화한다. 100만 원이 넘는 유모차를 아무렇지 않게 소비하는 엄마들은 뭇 엄마들의 부러움을 산다. 학원 정보를 꿰뚫고 있는 돼지 엄마들이 아이 교육에 목을 매는 엄마들의 부러움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이다. 아이에게 모유가 좋다고 하면 어떻게든 모유를 먹이려고 하는 엄마들의 심리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는 일도 경쟁이 된다. 엄마들은 다른 엄마들과의 경쟁에서 밀리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을 세상의 중심으로 생각하며 자란 세대는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무한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든 일을 경쟁처럼 수행한다. 엄마들이 하는 생각은 당연히 아이들에게도 전달된다. 아이들은 엄마를 따라 모든 일을 무한경쟁 논리로 바라보게 되는 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소비는 전체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하는 미덕임에는 분명하지만 문제는 소비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는 안타까움 아니겠는가. A는 백화점에, 대형 쇼핑몰에 가면서 느꼈던 박탈감을 극복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가지기에는 너무 비싼 것들이 점점 열심히 노력하고 살았으니 당연히 가져야 하는 것이 되어갔다. 이런 식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버티는 자신을 치유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치유는 일시적일 뿐이다. 이 과정이 누적될수록 더 상위의 물건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가질 수 없는 박탈감은 자신이 무능력하게 느껴지는 모욕감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돈 열심히 모아서전에 갖지 못했던 그 물건을 사는 것 자체가 삶이 되어갔다. 이를 위해 자신에게 만족을 즉각적으로 주지 않는 도서 구입이나 시민단체 기부 등의 소비는 철저하게 줄였다. 김기림 시인이 말했던가. “갖고 싶은 것이 무수하게 번식하고 또 그 자극이 쉴 새 없이 연달아 오니까 거기 따라서 사람들의 욕망 창고에는 빈 구석만 늘어갈 수밖에 없다.” (184~185)

    

무한경쟁 사회에는 언제나 승리자와 패배자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승리자는 당연히 돈이 많은 사람이다. 부모들이 왜 자식들을 공부라는 무한경쟁 속으로 집어넣겠는가? 공부를 잘 해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고, 좋은 대학에 가야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성공할 사람은 싹수부터 다르다는 생각으로 부모는 아이가 원하는 모든 걸 해주려고 한다. 어른이나 아이나 소비를 통해 자기만족감을 느낀다. 어른들은 돈을 벌어 전에 갖지 못한 물건을 가지려고 하고, 어른들 영향을 받은 아이들은 자신이 지닌 물건으로 친구들의 등급을 매긴다. 하지만 완전한 만족이란 없다. 누군가는 자기보다 더 좋은 물건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악순환이다. 김기림 시인의 말마따나 갖고 있는 게 많을수록 사람들의 욕망 창고에는 빈 구석만 늘어갈 수밖에 없다.” 돈을 더 벌수록, 그 돈으로 더 많은 소비를 할수록 마음은 허해지는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가 과연 누구일까? ‘무한경쟁은 언제나 무한욕망을 낳는다. 무한한 욕망은 한계를 정하지 않는다. 자기 기준에 맞추어 소비를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 기준에 맞추어 소비를 결정한다. 나를 움직이는 힘은 밖에 있는 것이다.

 

지은이는 생존수영에 빗대어 한국사회에 만연한 무한경쟁 논리를 비판한다. 생존수영은 배워두면 이롭다. 언제 어떤 상황에 처할지 모르지 않는가? 최근 생존수영 교육이 초등학생에게 의무화된 것도 이 때문이리라. 문제는 모두가생존수영을 하도록 하자는 취지가 누가 더잘하는지를 가려내는 식으로 변하면서 발생한다.”(225) 생존수영을 할 줄 알면 되는 것인데, 사람들은 누가 더생존수영을 잘하는지 자꾸만 평가하려고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평가 기준도 높아진다. 처음에는 물에서 오래 버티기 기록만을 측정한다. 아이들이 웬만한 수준에 이르면 평가 방식은 수영 기법으로, 잠수로, 다이빙으로 진화한다. ‘평가는 아이들을 비교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누구는 잘 하고, 누구는 못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좋은 평가를 받은 아이는 기분이 좋을 테고, 나쁜 평가를 받은 아이는 기분이 나쁠 테다. 수영 기법을 배우기 싫어도, 다이빙을 배우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배워야 하는 이유이다.

 

지은이는 학교와 학원에서 평가가 많아지고 사람들이 이에 적응할수록 자신의 계급적 한계를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은 많아질 수밖에 없다.”(232)라고 이야기한다. ‘계급적 한계가 아이의 미래 희망을 결정한다. 임대사업자나 건물주가 아이들이 희망하는 직업군(?)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들은 임대사업자나 건물주가 되어야 편안하게(?) 인생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모험을 하기보다 처음부터 안정된 생활을 하기 바란다는 말이다. 초등학교 때는 희망에 부풀어 공부하던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 풀이 죽고, 고등학생이 되면 아예 공부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수준이 올라갈수록 자기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른 길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공부에서 밀린 아이를 이 사회는 인정하지 않는다. ‘문제아가 된 아이들은 고등학교 졸업장이라도 얻기 위해 참고 학교를 다닐 수밖에 없다. 경쟁에서 밀리고, 관심에서 밀린 아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세상을 바라볼지 생각해 보라.

 

평가가 일상이 되는 사회는 개인의 취향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사회가 만든 기준이 개인이 추구하는 삶의 질을 결정한다. 지은이는 아빠 캠프에 참여한 경험을 사례로 든다. 이 캠프의 주된 내용은 아빠가 아이들과 요리를 하며 가족애를 느끼는 것이다. 엄마와 아이는 요리하는 아빠를 응원한다. 주최 측은 가족들의 단란한 모습을 끌어내기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으로 가족이 곧 행복이라는 메시지를 퍼뜨린다. 행복한 가족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 이면을 생각하지 못하는 게 문제이다. 이 캠프는 일상에서 엄마가 하던 일을 아빠가 하는 것으로 대체한다. 아빠와 엄마의 역할을 정확히 나누고 있는 것이다. 가족들은 행복을 연출하지만 가족 내 성 불평등은 전혀 해소되지 않는 모순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지은이는 이런 식의 문제제기를 사람들이 낯설어하고,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어떻게 사회학을 공부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혼과 육아는 개인 문제가 아니다. 사회 문제다. 사회가 제시하는 기준에 맞춰 살면 보이지 않는 진실을 지은이는 사회학이라는 시선을 경유하여 접근한다. 누구나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 있기 마련이다. 지은이는 어찌 보면 우리가 애써 외면하는 이 진실을 거침없이 주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행복을 강조하는 가족 캠프에서 지은이가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자신들과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할까?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쓸데없이 떠벌린다고 이야기할까? ‘대한민국 부모에게 던지는 불편한 메시지라는 말이 책 표지에 나와 있다. ‘불편한 메시지를 들으면 기분이 나쁘다. 그것이 진실일수록 더욱 그렇다. 익히 알면서도 눈 감고 있는 진실과 대면하고 싶은 사람은 그래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진실은 가린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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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 「그 나무」 | 생각들 2018-09-2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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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아코디언

김명인
문학과지성사 | 2002년 04월

 

 

 

 한 해의 꽃잎을 며칠 만에 활짝 피웠다 지운  

 벚꽃 가로 따라가다가  

 미처 제 꽃 한 송이도 펼쳐 들지 못하고 멈칫거리는  

 늦된 그 나무 발견했지요.  

 들킨 게 부끄러운지, 그 나무  

 시멘트 개울 한 구석으로 비틀린 뿌리 감춰놓고  

 앞줄 아름드리 그늘 속에 반쯤 숨어 있었지요. 

 봄은 그 나무에게만 더디고 더뎌서 

 꽃철 이미 지난 줄도 모르는지, 

 그래도 여느 꽃나무와 다름없이 

 가지 가득 매달고 있는 멍울 어딘가 안쓰러웠지요. 

 늦된 나무가 비로소 밝혀드는 꽃불 성화, 

 환하게 타오를 것이므로 나도 이미 길이 끝난 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한참이나 거기 멈춰 서 있었지요. 

 산에서 내려 두 달거리나 제자릴 찾지 못해 

 헤매고 다녔던 저 난만한 봄길 어디, 

 늦깎이 깨달음 함께 얻으려고 한나절 

 나도 병든 그 나무 곁에서 서성거렸지요. 

 이 봄 가기 전 저 나무도 푸릇한 잎새 매달까요? 

 무거운 청록으로 여름도 지치고 말면 

 불타는 소신공양 틈새 가난한 소지(燒紙), 

 저 나무도 가지가지마다 지펴 올릴 수 있을까요?

  - 김명인, 그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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