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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태 장편소설 『중력』 | 소설 읽기 2019-02-28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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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중력

권기태 저
다산책방 | 2019년 0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중력 속에서 펼쳐지는 사랑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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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과 중력 너머에서 흔들리는 삶.

- 권기태 장편소설 『중력』

 

 

 

중력(重力)은 우리를 땅 위에 발붙이게 하는 근원적인 힘이다. 중력이 없으면 우리는 땅에 발을 디딜 수 없다. 땅에 발을 딛지 않은 인간의 삶을 생각해 보라. 인간의 삶은 땅으로부터 나온다. 땅에 발을 딛고 살아야 비로소 인간의 삶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인간을 땅에 정착시키는 중력은 그러나 사회적 의미로 보면 인간의 자유를 땅에 얽매는 힘이라고도 볼 수 있다. 새는 하늘을 날 수 있지만 인간은 하늘을 날 수 없다. 새는 하늘을 날 수 있을 만큼만 중력을 받고 있지만(날개를 젓는 건 중력을 이겨내기 위함이리라),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시인들이 쓴 시를 보면 예나 지금이나 하늘을 나는 새를 통해 자유로운 마음을 표현하는 시가 많다. 하늘을 날 수 없는 인간은 하늘을 나는 새에서 자유를 느낀다. 비행기를 만든 인간은 이성의 힘으로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은 비행기라는 기구의 힘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온전히 제 몸을 하늘을 나는 새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권기태가 지은 『중력』(다산책방, 2019)은 우리네 인생에 미치는 중력의 힘을 문학적으로 풀어낸다. 우주인이 되어 지구 밖으로 나가는 꿈을 꾸는 인물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는 이 소설은 중력 밖에는 또 다른 중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한다. 생물학 전공자로 연구소에 근무하는 이진우가 우주인을 꿈꾸면서 생기는 일을 통해 작가는 중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네 삶을 이야기한다. 우주인 시험을 보기 전부터 이진우는 연구소 사람들과 갈등을 빚는다. 위계구조로 되어 있는 연구소는 질서(중력이라고 해도 좋다)를 인정하는 구성원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이진우는 자기보다 직책이 위인 상급자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연구소가 지닌 중력을 벗어나려면 중력에 갇힌 상급자들과 싸울 수밖에 없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우주인 시험을 치르면서 이진우는 확실히 상급자들의 눈 밖에 난다. 연구소는 강력한 중력으로 이진우를 누르려 하고, 이진우는 그 중력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한다. 우주인을 향한 꿈은 어찌 보면 중력 바깥을 향한 꿈을 에둘러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진우는 중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주인이 되려 하지만, 우주인이 되는 과정부터가 이미 중력 속에서 펼쳐지는 싸움이다. 무한 경쟁을 통해 우주로 갈 수 있는 우주인은 단 한 명뿐이다. 최종 후보자인 네 명 안에 들어가도 선택된 한 명이 되기 위해 이진우는 끊임없는 무한 경쟁을 받아들여야 한다. 경쟁심이 약할 때는 그나마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단 하나로 선택받기 위한 경쟁심은 심해진다. 처음부터 욕망이 없었다면 모를까, 우주인이 되고 싶은 것 또한 욕망이고 보면, 그것도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되는 영예를 향한 욕망이고 보면, 경쟁심이라는 중력에서 이진우가 벗어날 길은 없다. 연구소에 있어도 이진우는 중력 속에 있어야 하고, 최종 후보 4명으로 선발되어 러시아 가가린 우주 센터에 가도 이진우는 중력 속에 있어야 한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 중력은 우리를 따라다닌다. 우주선을 타고 우주 밖으로 나가면 일시적으로 무중력 상태에 빠질지 모르지만, 지구 안으로 돌아오자마자 우주인은 무겁게 어깨를 누르는 중력을 금방 실감한다.

 

뉘엿거리는 저물녘의 햇살이 잔디밭을 누렇게 물들이며 물러나고 있었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광선이 미약한 잔디의 연초록 잎사귀 하나하나를 테두리가 선명하게 비췄다.

이 한가하고 평화로운 풍경의 껍질 한 귀퉁이 속에서 살고 죽는 싸움이 이렇게 사납게 벌어지고 있다니. 공기에는 볕이 이렇게 풍부하고 고요한데도 끔찍한 살육이 꼬리를 물다니. 몸부림과 발버둥이 저리 처절하다니.

내가 알지 못했을 뿐 내 인생의 발걸음 하나마다 가까운 곳에서는 이런 개미들의 싸움이 있었다. 연구소에서건 여기서건. (236)

 

해 저물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이진우는 죽은 곤충을 놓고 싸움을 벌이는 개미들을 발견한다.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장소에서 개미들은 사투를 벌인다. 사투(死鬪)는 말 그대로 죽음을 걸고 싸우는 것이다. 이기면 사는 것이고, 지면 죽는 것이다. 개미들은 왜 이리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지 않고 싸우는 것일까? 사실 질문 자체가 옳지 않다. 개미들은 살아남기 위해 본능대로 산다. 사는 게 중요한 것이지, 해질녘 풍경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개미는 개미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인간의 눈이나 개미의 눈이나 중력을 벗어날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한국의 연구소에서 벌어지는 일이 우주인들이 모인 가가린 우주 센터에서도 벌어진다. 이진우는 우주인이 되면 무언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주인이 되어도 사회가 형성하는 중력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어느 곳에서는 지금도 먹이를 놓고 싸우는 생명들이 있다. 우리는 다만 우리가 보는 것만을 믿을 뿐이다.

 

우리는 최초의 우주인인 유리 가가린을 기억한다. 두 번째 우주인인 티토프를 우리는 기억하지 않는다. ‘최초라는 말에 새겨진 욕망에 집착할수록 우리가 보는 시야는 그만큼 좁아질 수밖에 없다. 우주인이 되려는 꿈을 품은 이진우는 우주인으로 가는 길을 걸으며 자신의 시야가 얼마나 좁은지 비로소 깨닫는다. 일상의 중력에 갇혀 허우적대는 사람들을 이진우는 못 마땅해하지만, 그것은 이진우라는 중력에 비친 모습일 뿐이다. 다른 사람이 보는 이진우는 어떨까? 자신의 관점은 드넓고, 남의 관점은 좁다는 생각 자체에 이미 중력의 허점이 새겨져 있다. 우리는 자기 시선으로 타인의 시선을 낮추어 본다. 모든 사람이 그럴 테니 우리가 보는 세상은 결국 수준이 낮은 세계가 될 수밖에 없다. 우주인이 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이러한 낮은 세계를 벗어나 모든 이들이 드넓은 관점으로 모든 이들을 보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력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자기 마음을 다시 세우는 과정으로 마무리된다.

 

산 자도 죽은 자도 없다. 이긴 자도 지고만 자도 없다. 우리는 살고, 또 저기로 가서도 살 거야. 그저 우리는 사랑할 뿐이고, 사랑해서 서로를 느낄 뿐이야. 잘 지내거라. 네가 원하면 나는 너를 언제든지 쓸어안아. 그리고 뺨을 비비고 얼굴에 입을 맞추지. 나는 너의 살결을 알아. 그 따스한 촉감을. 문득 문득 생각하다가 여기서 시간이 다하는 날에 우리는…… 나는 너를…… 너는 나를…… (446)

 

어려서 죽은 누이동생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이진우가 표현하는 것으로 이 소설은 끝난다. 결국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은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사랑이 무엇인지 정말로 모르는 것이다. 결국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으로 귀결되지 않는 이야기는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는 왜 남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남들에게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가? 사랑이란 서로 이야기를 듣고 들려주는 것이다(읽고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야기 속에서는 산 자도 없고 죽은 자도 없다. 이긴 자도 없고 진 자도 없다. 다만 서로의 몸으로 느꼈던 그 따스한 촉감이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는 새겨져 있다. 작가는 사랑이라는 중력으로 중력을 넘어서는 새로운 세계를 꿈꾼다. 우리는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는 사랑의 중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게 사랑의 역설이다.

 

소설가인 강석경은 이 소설은 스케일 자체로 경이롭다(뒷표지)라는 말로 이 소설이 지닌 가치를 평가한다. 이 소설은 재밌다. 그리고 이 소설은 아름답다. 왜 재밌고 왜 아름다운지는 사람들 저마다의 생각이 다를 것이다. 아름다운 이야기는 우리를 우리가 보지 못한 사랑의 세계로 인도한다. 사랑은 마음결을 따라 움직인다. ‘최초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이 마음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진우는 한국 최초의 우주인에서 탈락하는 상황에서도 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했을까? 사랑은 누군가의 얼굴에 반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돈이나 권력에 반하는 것도 아니다. 저 멀리 사라져버린 명예에 집착하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자기 마음속에서 울려나오는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사랑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연 사람이 어떻게 다른 이들을 무작정 비난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의 중력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로지 이 길 외에는 없다. 돌려 말하면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중력에 갇혀 허우적대며 사는 게 정상이다. 그렇다고 해도 중력 밖으로 가는 길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왜냐고? 그게 우리의 또 다른 운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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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바보들 | 오쇼 라즈니쉬 2019-02-25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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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버려라

손민규 역
태일출판사 | 2000년 01월

 

 

 

 

어느 날 임제가 말했다.

도를 닦는 벗들이여. 그대들은 옛 선사들이 말씀한 언구에 매달려, 그걸 진실한 길로 보면서 이들 선지식은 훌륭하다, 나는 범부의 마음이니 어찌 그 고명한 선사들의 뜻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하고 말한다.

이 눈먼 바보들아! 그대들은 평생 그런 견해를 간직한 채 살아가면서 스스로 두 눈을 가리고 있다. 위대한 선사들만이 감히 붓다와 조사를 비방한다. 옛 선인들은 어딜 가더라도 사람들이 믿어주질 않아 추방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만일 그들이 가는 곳마다 인정받았다면 그런 사람들이 무슨 훌륭한 점이 있겠는가? 그래서 사자가 한번 포효하면 여우의 머리통이 깨진다고 말하는 것이다.“ (91)

 

한 명의 붓다는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갖는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붓다가 될 수 있는 이 지구 전체를 무덤으로 만든다는 것은 가장 큰 죄악이다. 하지만 그 죄악은 기록되지도 않을 것이다. 기록할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화염 속에 사라질 것이다. 승자도 패자도 없을 것이다. 단 십 분 만에 세상이 뒤바뀔 것이다. 만일 러시아가 전쟁을 시작한다면, 단 십 분 만에 미국의 미사일이 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전쟁을 시작한다면 단 십 분 만에 러시아의 미사일이 미국을 향해 날아오고 있을 것이다.

단 십 분 만에…… 수백만 번의 전쟁을 합친 것보다 더 큰 화염 속에 모든 인간이 산 채로 타버릴 것이다. 인간 뿐만 아니라 동물, 나무 등 살아 있는 생명체 모두가 사라질 것이다.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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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성(佛性) | 오쇼 라즈니쉬 2019-02-23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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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빈 거울에 담긴 노래: 마조

오쇼 저/손민규 역
태일출판사 | 2012년 03월

 

 

 

 

  회양은 좌선을 하고 있는 마조에게 말한다.

  “대덕은 무엇을 얻으려고 좌선을 하는가?” 마조가 대답했다.

  “불성(佛性)을 얻으려 합니다.”

 

불성(buddhahood)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이해하라. 불성은 이미 그대의 본성이다. 만일 그것을 얻으려고 한다면 놓치고 말 것이다. 다만 모든 것을 방임하고 그대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뿐이다. 그러면 붓다가 깨달음의 광채를 뿌리며 이미 그곳에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얻는다는 말은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얻는다는 말은 그대가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여기에 실패의 가능성이 있다. 그대는 얻는 데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얻음()’은 항상 외부 세계, 객관 세계에 대한 것이다. (), 명성, 권력 등……. 그러나 불성은 얻는 것이 아니다. 기억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은 마치 어떤 것을 오랫동안 잊고 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기억하는 것과 같다. (21~22)

 

내가 가르치는 모든 것은 철학이 아니다. 사실, 가르침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그대가 까맣게 잊고 있던 것을 기억할 수 있을 때까지 긴장을 풀도록 도울 뿐이다.

그 기억은 그대의 불성(buddhahood)에 대해 인식하게 만들 것이다. 그 기억은 성취가 아니다. 왜냐하면 붓다는 이미 그대의 내면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얻는다는 말은 옳지 않다. 하지만 좀 더 자비심을 갖고 마조의 대답을 이해하라. 그는 붓다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는 단지 자신의 삶에 빠져 있는 그 무엇, 삶에 의미와 중요성을 부여하는 그 무엇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붓다라는 단어는 단지 마조가 의식의 각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할 뿐이다. 마조는 자기가 추구하는 것이 내면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조에게 있어서 얻는다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는 잘못된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열망은 옳다. 그는 올바른 길을 걷고 있다. 다만 잘못된 단어를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대는 그를 용서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구도자일 뿐, 아직 스승이 아니기 때문이다.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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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 구명(救命)의 비평 | 생각들 2019-02-23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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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과거에서 온다

김진영 저
포스트카드 | 2019년 01월

 

 

 

 

  파사주 작업은 벤야민의 근대론, 즉 근대에 대해서 새로운 이론을 구축하고자 했던 벤야민의 비평적 시선을 보여 줍니다. 벤야민 스스로가 그렇게 불렀고, 또 하버마스가 특히 강조했듯이, 벤야민의 비평적 시선은 구명의 시선(rettende Ansicht/Blick)’입니다. 벤야민의 근대론은 이 구명의 시선으로 자연사를 따라서 전쟁의 파국으로 몰락하는 당대의 근대성을 중단시키면서 그 몰락의 에너지를 통해 새로운 역사의 궤도를 개척하고자 하는 비평이론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구명의 비평을 간략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근대를 응시하는 벤야민의 시선은 사실상 매우 초조합니다. 독일 비애극 논문의 한 곳에서 자신의 비평을 염두에 두고 더는 미룰 수가 없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파국 직전에 놓인 당대의 역사적 상황을 응시하는 긴급함과 긴박함은 근대를 바라보는 벤야민의 상시적인 시간감각입니다. 상황은 비상사태이고 사안은 매우 긴급합니다. 역사는 가파른 비탈을 구르는 공처럼 점점 빠른 속도로 파국을 향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역사의 천사가 그 파국의 역사를 멈추고자 하지만 그 천사마저도 함께 쓸려 내려갈 만큼 파국의 가속도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근대의 어느 비평가가 지금 여기에서 그 천사를 돕지 않는다면, 천사는 지상으로 내려앉기도 전에 파국 속으로 역사와 더불어 침강하고 말 것입니다. 사태는 그토록 긴급하고 긴박합니다. 누군가 역사의 천사를 지금 당장 여기에서 구해 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긴급하고도 급박한 비평, 그 비평의 시간적 위기 감각을 표현하기 위해 구제(救濟) 대신 구명(救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려 합니다. 구제라는 단어에는 그 긴급성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연장성과 대응의 계획성이라는 지적 거리감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구명이라는 단어는, 마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급히 건져낼 때처럼, 우리에게 직접적 대응과 행동의 절박성을 당장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요? (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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