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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과 성(性) | 오쇼 라즈니쉬 2019-03-3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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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오쇼 저/손민규 역
태일출판사 | 2011년 09월

 

 

 

 

()에는 아무런 신념 체계도 없다. ()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선은 성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 탄트라(Tantra)는 성에 대해 특정한 태도를 갖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에 의해 저질러진 폐해를 시정하려는 것이다. 균형을 회복하도록 그대를 돕는 구제책으로 탄트라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대는 왼쪽으로 너무 기울어 있다. 그래서 탄트라는 그대가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이게끔 도움을 주는 방편으로 온다.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오른쪽으로 기울여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야만 균형을 유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줄타기 광대를 본 적이 있는가? 그는 균형을 잡기 위해 손에 긴 장대를 들고 있다. 만일 왼쪽으로 너무 치우친다고 생각되면 즉시 오른쪽으로 장대를 기울인다. 그 다음에는 오른쪽으로 너무 기울어진다고 느껴지면 다시 왼쪽으로 장대를 기울인다. 이것이 그가 균형을 유지하는 법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탄트라도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한 방편이다.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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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동백꽃」 | 소설 읽기 2019-03-29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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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동백꽃

김유정 저
문학과지성사 | 2005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사랑에도 계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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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정, 「동백꽃」

 

 

 

우리는 보통 김유정이 지은 「동백꽃」을 사랑 이야기로 읽는다. 주인공 와 점순이가 벌이는 풋풋한 사랑 이야기. 시대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읽을 수도 있다. 돌려 말하면 시대 상황을 고려할 경우 이 작품은 사랑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이 소설은 주인공의 수탉이 점순네 수탉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점순네 수탉(은 대강이가 크고 똑 오소리같이 실팍하게 생긴 놈)이 덩저리 작은 우리 수탉을 함부로 해내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해내는 것이 아니라 푸드득 하고 면두를 쪼고 물러섰다가 좀 사이를 두고 또 푸드득 하고 모가지를 쪼았다. 이렇게 멋을 부려 가며 여지없이 닦아 놓는다. 그러면 이 못생긴 것은 쪼일 적마다 주둥이로 땅을 받으며 그 비명이 킥, 킥 할 뿐이다. 물론 미처 아물지도 않은 면두를 또 쪼이어 붉은 선혈은 뚝뚝 떨어진다.”

 

점순네 수탉이 일방적으로 주인공네 수탉을 부리로 쫀다. 주인공은 지게막대기로 점순네 닭을 후려칠까 하다가 생각을 고쳐먹는다. 점순이 아버지는 마름이기 때문이다. 소작농에게 마름은 신과 같은 존재이다. 땅주인인 지주야 수확할 때 잠깐 보면 그만이지만, 땅을 관리하는 마름은 날마다 봐야 한다. 마름에게 잘못 보이면 소작마저 떼일 거라는 걸 주인공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점순이는 틈만 나면 닭싸움을 벌인다. 주인공을 골리기 위해서이다. 점순이는 주인공을 좋아한다. 주인공은 어떠냐고? 주인공도 점순이가 싫지는 않다. 다만 주변 상황 때문에 점순이를 부담스러워 할 뿐이다. 자기는 소작인의 아들이고, 점순이는 마름의 딸이다. 동네에 소문나면 결국 소작인의 아들인 자기한테 손해날 짓이라는 걸 모를 만큼 주인공은 어리석지 않다. 얼마 전에 있던 감자 사건에도 드러나듯, 주인공 집은 감자 하나도 제대로 못 먹을 정도로 가난하다. 가난한 집 아들이 행실까지 나쁘다고 소문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설혹 주는 감자를 안 받아 먹은 것이 실례라 하면, 주면 그냥 주었지 느 집엔 이거 없지는 다 뭐냐. 그러잖아도 저희는 마름이고 우리는 그 손에서 배재를 얻어 땅을 부치므로 일상 굽실거린다. 우리가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와 집이 없어서 곤란으로 지낼 제 집터를 빌리고 그 위에 집을 또 짓도록 마련해 준 것도 점순네의 호의였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농사 때 양식이 달리면 점순네한테 가서 부지런히 꾸어다 먹으면서 인품 그런 집은 다시 없으리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곤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열일곱씩이나 된 것들이 수군수군하고 붙어다니면 동리의 소문이 사납다고 주의를 시켜 준 것도 또 어머니였다. 왜냐하면 내가 점순이하고 일을 저질렀다가는 점순네가 노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땅도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었다.

 

점순이가 호의로 감자를 주었는데, 자존심이 상한 주인공이 그 호의를 거부해버린다. 자존심도 자존심이지만, 주인공은 사실 땅도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는 상황이 더 불안하다. 점순네 호의로 간신히 소작인 자리나마 얻었다. 이곳이 아니면 갈 곳이 없는 신세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점순이가 기를 복복 쓰며 자기를 말려 죽이려고 하니 주인공은 얼마나 답답할까. 점순이를 불러 자초지종을 이야기할 수도 없고, 때릴 수도 없다. 때리다니, 맞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점순이는 엄연히 마름의 딸이 아닌가. 점순이가 주인공을 괴롭히는 것도 기발하다. 점순이는 주인공을 기르는 닭을 못살게 군다. 가난한 집안에서 기르는 닭이다. 얼마나 소중한 마음으로 기르겠는가. 닭을 괴롭히면 주인공 또한 엄청 괴로워할 거라는 것을 점순이는 잘 안다. 자기 마음을 고백할 수도 없으니 점순이는 주인공을 향한 마음을 닭싸움을 통해 반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점순이는 틈틈이 제 집에 있는 험상궂은 수탉을 몰고 와 주인공 수탉과 쌈을 붙인다. 주인공 수탉이 나오지 않으면 모이를 주며 꾀어낸다. 자기네 수탉이 당할 때마다 주인공은 피가 마른다. 저러다 죽으면 어쩌란 말인가. 하루는 화가 난 주인공이 수탉에게 고추장을 먹였다. 고추장을 먹은 닭은 기운이 뻗친다는 사람들 말을 듣고서다. 수탉에게 고추장을 먹인 주인공은 점순네 수탉이 노는 밭에 제 닭을 내려놓았다. 여기저기 쪼이기만 하던 주인공 닭이 한 순간 힘을 쓰더니 펄쩍 뛰어올라 점순네 닭의 면두를 쪼았다. 점순이 얼굴에 한방을 먹인 듯 주인공은 신이 난다. 하지만 이런 상황도 잠시, 열이 받은 점순네 닭이 사정없이 주인공 수탉을 연방 쪼아댄다. 보다 못한 주인공이 제 닭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화가 난다. 고추장을 더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억지로 고추장을 먹였더니 닭은 몸을 축 늘어뜨린다. 다행히 다음 날 아침에 정신이 들었다.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닭을 몰래 데리고 나와 점순이는 오늘도 쌈을 붙인다. 노란 동백꽃이 소보록하니 깔린 틈에 끼어 앉은 점순이가 보인다. 닭싸움을 보며 점순이는 호드기를 불고 있다.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주인공이 달려가 보니 예상대로 제 닭은 빈사지경, 그러니까 거의 죽을 지경이다. 점순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고대로 앉아 호드기만 불고 있다. 순간 화가 뻗친 주인공은 대뜸 달려들어 점순네 수탉을 단매로 때려 엎었다. 닭은 그대로 죽어버렸다. 점순이가 매섭게 눈을 홉뜨고 달려드는 바람에 주인공은 뒤로 벌렁 나자빠진다.

 

이놈아! 너 왜 남의 닭을 때려죽이니?”

그럼 어때?”

하고 일어나다가,

뭐 이 자식아! 누 집 닭인데?”

하고 복장을 떼미는 바람에 다시 벌렁 자빠졌다. 그리고 나서 가만히 생각하니 분하기도 하고 무안도 스럽고 또 한편 일을 저질렀으니 인젠 땅이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고 해야 될는지 모른다.

 

주인공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저질렀다. 점순네 닭, 그러니까 마름네 닭을 죽인 것이다. 일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이제는 땅이 떨어지고 집도 내쫓길지 모른다. 이 마을에서 쫓겨나면 어디로 간단 말인가. 주인공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이다. 열일곱 나이에도 주인공은 얼김에 울음을 놓는다. 마을에서 쫓겨나 죽을 판에 자존심이 무슨 소용인가. 점순이가 은근한 표정으로 주인공에게 다가온다. 다음부터는 안 그럴 테냐는 점순이의 물음에 주인공은 명색도 모르고 그래, 라고 무턱대고 대답한다. 닭 죽은 건 염려 말라고 점순이가 다독인다. 주인공에게 살 길이 열린 것이다. 그리고는 뭣에 떠다 밀렸는지 두 사람은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린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라는 감각으로 작가는 이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닭이 죽은 걸 빌미 삼아 점순이는 제 뜻을 이룬 것이다.

 

산 아래서 점순이 어머니가 점순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들키면 끝장이다. 점순이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 꽃 밑을 살금살금 기어서 산 아래로 내려간 다음 나는 바위를 끼고 엉금엉금 기어서 산 위로 치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가? 소년 소녀의 순수한 사랑이 느껴지는가? 순수한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너무 절박하기만 하다. 주인공은 점순이의 사랑을 받아들인 게 아니라 점순이의 욕망을 받아들인 것일 뿐이다. 마름네 닭을 죽인 게 알려지면 주인공은 마을에서 쫓겨난다. 마을에서 쫓겨나면 어디로 가서 입에 풀칠을 한단 말인가. 거리를 떠돌다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이후에 이들은 어떤 관계를 유지했을까? 주인공이 소작인의 아들이고, 점순이가 마름의 딸이라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주인공은 여전히 점순이를 부담스러워 할 것이고, 점순이는 어떻게든 제 욕망을 채우기 위해 비슷한 일을 반복할 것이다. 순수한 사랑을 나누기에는 두 사람이 처한 정황이 이토록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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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붓다 | 오쇼 라즈니쉬 2019-03-27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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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오쇼 저/손민규 역
태일출판사 | 2011년 09월

 

 

 

 

붓다는 아무 이념이 없다. 그는 아무런 이념도 제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이념은 마음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에서 나온 이념은 그대를 마음 너머의 세계로 데려갈 수 없다. 어떠한 이념도 마음 너머의 세계로 가는 다리가 되지 못한다. 마음이 떨어져 나가기 위해서는 모든 이념을 버려야 한다.

 

붓다는 이상(理想)마저 믿지 않는다. 모든 이상은 인간의 내면에 갈등과 긴장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상은 분열을 조장하고 불안을 야기한다. 그대는 이러저러한 사람인데, 이상은 다른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한다. 그사이에서 그대는 양 갈래로 잡아 당겨지고 찢어진다. 이상은 불행을 창조한다. 이상은 정신분열증을 초래한다. 이상이 많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정신분열증적인 상태에 이를 것이다. 그들은 갈기갈기 분열될 것이다. 오직 비이념적인 의식만이 내면의 분열을 막을 수 있다. 만일 산산이 분열된 상태라면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침묵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평화와 고요를 알겠는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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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평단 모집]★오늘의 책★『누가 시를 읽는가』 | 이벤트 2019-03-2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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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 사사키,돈 셰어 공편
봄날의책 | 2019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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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도서는 예스24 '오늘의 책'에 선정된 주목 신간입니다예스블로거 분들의 많은 신청 부탁 드립니다앞으로도 리뷰어 클럽을 통해 오늘의 책에 선정된 좋은 신간들을 만나 보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시 애독자 50인의 시 읽기 경험담
    ― 나는 이 시, 이 시집, 이 시인을 좋아한다


    ‘누가 시를 읽는가’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사람들이 다투어 손을 들고는 저마다 시를 읽게 된 경위와 시를 읽는 의미, 시를 즐기는 비법 등을 털어놓았다. 그중 50개의 응답이 모여서 이 책이 되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고 유서 깊은 시 전문지 [시(Poetry)]에서, 지금 시대에 누가 시를 읽는지, 그들은 언제, 어떻게 시를 만났는지, 또 그 경험은 각자에게 무엇이었는지를 묻고 답한 이야기들을 모았다. 그 경험들은, 시는 교실에서 오거나, 우연히 지나치는 거리에서 오거나, 묻혀놨던 기억에서 오거나, 어제 막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도 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모든 순간들이 시로 뻗은 길로 모여들고, 이 책은 그 길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준다.

    이 책에 등장하는 50명의 시 애독자들의 면면은 무척이나 다양하다. 그들은 낯선 이름 못지않게나 낯선 직업을 가졌다. 특히 산파, 군 장성, 야구선수, 목사, 철공노동자, 정신과 의사, 만화가, 국회의원 등은 더더욱이나 그렇다. 50명의 저자들이 경험한 대부분의 시(및 시인)는 (우리가 윤동주, 김수영, 기형도, 김용택 시인의 시에 익숙하듯)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시들이다. 교과서에 실리거나 수없이 인용되곤 하는 시들. 그 시들을 자신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만났는지를 조곤조곤 들려준다. 시 애독자들은 시를 분석하거나 비평하지 않고, 각자에게 어떤 기억을 남겼는가에 집중하여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국 독자들의 시 읽기 경험을 모으고자 합니다!”

    주로 미국 독자들 50명의 경험담을 모은 이 책을 출발점으로 하여, 시를 사랑하는 데서는 세계의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한국에서, 시를 읽는 쓰고 마음에 품는 일이 좀 더 일상적으로 드러날 수 있었으면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다채로운 책의 한국어판을 준비해보고자 합니다. 시 전공자 누구, 문학평론가 누구, 또는 시인 누구에 머물지 않고, 각계각층의 시 애독자들 모두의 진솔한 경험담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공기처럼 존재하는 시 독자들의 투고를 받습니다. 자기만의 소박한 시 읽기 경험을 2019년 12월31일까지 springdaysbook@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 분량은 10-20매면 가장 좋습니다. 심사를 거친 글들을 모아 (단행본이든 비매품이든, 어떤 형태로든) 책으로 만들어, 투고하신 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이 글을 본 독자들 모두의 관심과 참여 기대합니다. 자세한 문의는 위의 이메일 주소로 부탁드립니다.

    추천평

    “나는 이들이 말하는 시에서 사람을,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을 읽었다.”

    펼쳐 읽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 서문의 한 부분 때문이다. 이렇게 적혀 있다. “다른 이들과 시 얘기를 하다 보면 곧잘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아, 학교 다닐 때는 좀 읽었지요. 끄적거리기도 하고요. 하지만 요즘에는 그럴 시간이 없네요.’ 그러고는, ‘시인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요즘 나오는 시들은 무슨 말인지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이어진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같은 이야기를 나도 가끔 듣고 있다. 한마디로 “도대체 시를 왜 읽는 거야?”일 것이다. 사실 나도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너는 대체 왜 시를 쓰느냐고.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말까지 들으면서.

    그건 말이지, 누군가 시를 읽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시를 읽는가. 도대체 그들은 누구인가. 시집서점을 운영하면서 나는 정말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시를 찾고 읽는 모습과 마주한다. 책을 고르고 묵독하다가 마침내 자신을 위한 시집을 한 손에 쥐어드는 모습은 보물을 찾고 찾아낸 모험가의 모습과 닮아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모험에 대한 기록이다. 의사, 경제학자, 철공노동자, 음악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오십 명의 시 독자가 적어놓은 ‘시에 끌리는 이유’를 읽으며 나는 사람을,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을 읽었다. 가수이자 작곡가인 니코 케이스는 말한다. 우리에겐 “시를 할 권리가 있다”고. 그렇다. 우리에겐 ‘시’를 ‘함’으로써 더 나은 지금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이를 위해 인간에 대해, 함께 살아가는 더 나은 모습에 대해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누가 시를 읽는가. 질문하는, 살아 있는 존재가 읽는다. 살아 있겠다고 선언하는 존재들이 읽는다. 만약 당신이 어떤 방식으로든 물어보고 답을 추구했다면, 그게 바로 시다! - 유희경 (시집서점을 운영하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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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복, 『윤봉길 평전』 | 인문사상 2019-03-2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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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윤봉길 평전

    이태복 저
    동녘 | 2019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강의한 사랑을 실천한 윤봉길의 길을 따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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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의 내일을 쏘아올린 조선의 횃불

    - 이태복, 『윤봉길 평전』

     

     

     

    지은이는 강의한 사랑의 독립전사로서 윤봉길의 삶을 그리고 있다. ‘강의(剛毅)’는 강하고 의연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1932년 중국 상하이 홍커우 공원 행사장에 폭탄을 투척하여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한 윤봉길의 거사를, 지은이는 안중근 이후로 조선의 독립정신을 드높인 역사적 사건으로 정리한다. 1932년이면 일제의 야욕이 조선과 중국을 넘어 동남아로 뻗어나가는 시점이다. 일본은 만주에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워 중국 땅을 집어 삼키려는 욕망을 본격적으로 드러낸다. 만주국 문제와 관련하여 리튼 조사단이 파견되기도 했지만, 이것만으로 세계 중심에 서려는 일본의 야욕을 무마시키기는 어려웠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사건을 봐야 할 리튼 조사단은 결과적으로 일본의 손을 들어주었다. 독립된 나라를 꿈꾸며 상하이로 간 윤봉길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암울하게 돌아가는 시대 상황이었다. 일본은 이렇게 승승장구하는데, 조선 독립을 목적으로 수립된 상하이 임시 정부는 파벌 싸움으로 거의 빈사지경에 이르렀다. 윤봉길의 거사는 무엇보다 이러한 시대 상황과 겹쳐 읽어야 그 의미가 명확해진다고 하겠다.

     

    윤봉길이 폭탄을 던진 행사장에는 일본군 수뇌부들이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 있었다. 그가 던진 물통 폭탄은 일본군 사령관 시라카와 대장 앞으로 굴러가 폭발했다. 시라카와는 치명상을 입고 긴급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목숨을 부지하지는 못했다. 일본군 고위직을 거친 시라카와는 당시 퇴역군인 출신으로 상하이 사변 이후의 일본군을 이끈 인물이었다. 일제는 윤봉길을 긴급 체포했고 군사재판을 통해 윤봉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거사 직후 일곱 달 만에 윤봉길은 가나자와 근교 미고우시 처형장에서 총살형을 당했다. 19321219740. 246개월의 삶이었다. 안창호 선생이 주창한 준비론 사상의 영향을 받아 미국 유학까지 꿈꾸었던 청년 윤봉길은 홍커우 공원에서 민족독립의 의기를 드높이고 장렬하게 죽었다. 지은이는 윤봉길의 이 거사가 김구의 명령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기존의 논의에 의문을 제기한다. 윤봉길은 김구의 명령을 이행한 행동대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윤봉길 의사의 살신성인의 투쟁 의지, 안창호 등 상하이 독립지사들의 노력, 김구 선생의 적극적인 안내가 어우러진 안중근 이후 최대의 성과를 거둔 의열투쟁(328)이라는 게 지은이가 이 평전에서 주장하는 요지이다.

     

    윤봉길은 독립운동에 매진하기 위해 집을 떠나기 전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이라는 글귀를 가족들에게 남겼다고 한다. ‘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을 지닌 이 말로 윤봉길은 독립운동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드러냈다. 독립이라는 뜻을 이루기 전에는 집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얘기는 독립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과 다르지 않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 어떻게 일제와 맞서 싸울 수 있을까? 윤봉길로 드러나는 민족의 의기를 억누르려고 일제는 윤봉길의 시신을 전사한 일본군의 유족들이 드나드는 입구에 있는 쓰레기장에 암장해버렸다. 윤봉길은 13년 동안 이곳에 묻혀 수많은 일본인들의 발길에 짓밟혔다. 19463월이 되어서야 윤봉길은 암장된 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일제가 얼마나 조선 독립군들의 의기를 꺾으려고 했는지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라

    그리고 너희는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맹자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거라.

     

    아버지 없이 살아갈 두 아들에게 윤봉길이 남긴 시다. 아버지로서 애틋한 정을 그는 민족 독립을 위해 싸우는 전사의 정으로 뒤바꿔 표현한다. 윤봉길은 아들들에게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라고 권고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빈 무덤 앞에 와서 한 잔 술을 부을 수 있다는 이 의기를 지은이는 강의(剛毅)한 사랑의 독립전사라는 말로 표현한다. 강의한 사랑은 나 혹은 가족을 넘어 민족과 세계를 향한 사랑으로 뻗어 나간다. 윤봉길이 일으킨 홍커우 거사의 의미를 단순히 조선민족의 독립 문제로만 한정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지은이는 윤봉길이 상하이를 방문한 당시의 대내외 상황을 치밀하게 서술하며 윤봉길의 거사에 담긴 의미를 파헤친다. 만주사변 이후 만주국 문제로 골치를 썩이던 중국 정부 입장에서도 윤봉길의 거사는 큰 의미가 있다. 상하이 지역을 관할하는 일본 수뇌부가 이 거사로 거의 궤멸되지 않았는가. 일제의 숨통을 끊지는 못했지만, 일제의 야욕을 잠시나마 지연시켜 그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중국 정부는 이 거사를 통해 얻은 셈이다.

     

    이 평전은 거사에 성공한 윤봉길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순간을 제시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다. 탄생과 죽음까지 이어지는 순행식 구성이 아니라, 죽음에서 탄생에 이르는 역순행식 구성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윤봉길의 어린 시절이 궁금한 사람은 뒷부분부터 먼저 봐야 한다. 상하이로 가기 전에 윤봉길이 고향에서 벌인 계몽운동 또한 뒷부분에 배치되어 있다. 지은이는 윤봉길의 강의한 사랑을 민중을 향한 그의 열렬한 사랑에서 찾는다. 농민들을 깨우치기 위해 그는 틈날 때마다 야학을 열었고, 더불어 사는 농촌 공동체를 위해 그는 월진회와 같은 단체를 만들었다. 자기 한몸을 살리기 위해 친일도 마다하지 않은 사람들이 일제 강점기에는 무수히 많았다. 윤봉길도 자신만 생각한다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그는 부끄럽게 사느니 민족을 위해 장렬하게 죽는 길을 선택했다. 일제에 협력한 친일파들이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한국사회를 보면 윤봉길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윤봉길이 걸어간 길을 읽는 일은 지금 우리 사회의 상황을 들여다보는 일과 다르지 않다. 친일파 청산을 자기 이익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이 한국사회에는 여전히 많다. 100년이 흘러도, 1000년이 흘러도 친일파 문제는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 일제 강점기를 산 모든 사람들이 친일파라는 물타기로 이 문제를 호도하면 안 된다. 윤봉길과 같은 독립 운동가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친일파 청산은 이 시대를 사는 후손들이 나라를 찾기 위해 제 몸을 기꺼이 바친 선조들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해방이 되자마자 이루어졌어야 할 친일파 청산이 해방된 지 75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미진한 채로 남아있는 것은 민족의 비극이다. 우리는 잊지 말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친일파 청산이다. 독립 운동가들과 관련된 책을 읽을수록 이런 마음이 더욱 더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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