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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와 그 소리에 관한 기이한 이야기

심혁주 저
궁리출판 | 2019년 04월

신청 기간 : 59 24:00

서평단 모집 인원 : 5

발표 :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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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의 세상, 눈과 혀가 대접받는 요즘 

소홀히 하기 쉬운 ‘귀와 소리’에 관한 작은 이야기들을 담아내다


매일 35억 명의 사람들이 디지털 기기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시대가 되었다. 디지털은 환하고 빠르며 효율성을 무기로 한다. 그 저항할 수 없는 황홀함을 맛보는 대신 우리는 무엇을 내주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빛, 물, 불, 전기, 배, 비행기, 인터넷, 우주선이 인간의 삶을 보다 편하고 빠르게 만들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지만 그것 때문에 인류는 거기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내주어야 했다는 것 또한 역사적 사실이다. 


독수리의 밥으로 사람의 시신을 공양한다는 티베트 조장(鳥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관련 저서들을 활발하게 펴낸 한림대 심혁주 교수가 이번에는 그간 티베트에서 보고 듣고 상상한 이야기들을 ‘소리’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길고 긴 실타래처럼 풀어놓았다.


1부 「소리는 고독하지 않다」에서는 디지털의 포로가 된 저자가 소리의 친구로 살고 있는 티베트 라마승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물질과 소유, 속도와 빛나는 것을 향해서만 박수를 치는 ‘혀’의 세상에서 그들이 소중히 하는 ‘귀’의 세상을 이야기했다. 


2부 「소리에 관한 기이한 이야기」는 오랫동안 가슴속에 품고 있었던 실화이자 상상의 내용을 써내려간 것이다. 글의 내용은 죽어가는 혹은 이미 죽은 사람과 그의 가족 그리고 그를 둘러싼 관계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글 속의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었던 소리와 냄새의 내면으로 들어가고자 한 것이다. 


‘곱사등이, 다와’는 해발 4천 미터 초원에서 만난 한 엄마가 알 수 없는 전염병으로 딸을 잃고 우는 모습을 기억했다가 풀어낸 이야기이고, ‘동물의 소리를 알아듣는 소년’은 저자가 산책길에 만난 뱀에게 혼잣말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티베트의 민간고사를 떠올리며 쓴 이야기이다. ‘할머니의 춤’은 라싸에서 초원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티베트 사람들이 즐겁게 웃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함께 춤을 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이다. ‘아빠의 울음’은 도시로 떠난 아빠를 그리워하다 병으로 죽어간 한 소녀의 이야기를 상상으로 재탄생시킨 이야기이다. 


‘귀를 위하여’는 매일 새벽 티베트의 라마승처럼 일을 나가시는 자신의 아버지의 귀를 보며 쓴 것이다. ‘새의 하루’는 사원에서 시신의 해부의식을 보려고 여러 날을 헤매다가 숲속에서 두 마리의 독수리와 마주한 기억을 떠올려 쓴 글이다. ‘너의 뼈가 필요해’는 대만 유학시절,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어떤 사람이 독수리를 어깨에 올려놓고 피리를 불며 웃고 있는 표지를 발견하고는 ‘뼈피리’를 인간들이 왜 만들려 하는지 의아해하면서 써내려간 이야기이다. ‘해부마스터’는 티베트에서 죽은 시신의 몸을 발라내는 해부사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이 글을 쓰는 동안 티베트의 초원과 야크를 그리워하며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선함, 평화로움, 사랑, 진실, 유머, 노래, 춤 등의 일상과 거기서 나오는 소리와 냄새를 내내 생각했다고 한다. 


티베트는 결핍된 공간이다. 산소가 부족하고 먹을 것이 없고 연료가 다양하지 않은 하늘 아래 고원. 그곳에 가면 결핍의 공간에서 결핍된 존재들이 어떻게 하루를 견디고 무엇을 믿고 어떤 관계를 맺고 사는지를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단, 눈으로 하는 관광이 아닌 소리와 냄새로 하는 감성의 여정이 되어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저자가 티베트에 관한 글을 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이 생생하게 느낀 경험을 위축되지 않고 표현할 때 묘한 기쁨이 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기쁨은 물질과 소유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기분이다. 나만이 가진 어떤 소리와 냄새를 배양할 수 있는지, 타인의 보이지 않는 내면의 소리와 냄새를 감촉(感觸)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소리가 자신들의 몸과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르고 있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눈과 혀가 중요하게 여겨지며, 보이지 않는 것보다 환히 보이는 것이 환영받고 혀를 만족시켜주는 것이 대접을 받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런 세상에서 귀는 소홀해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디지털이 제아무리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건 우리 인간의 몸이다. 스마트폰이 업데이트된다고 우리 몸 속의 오장육부(五臟六腑)가 같이 개선되지는 않는다. 수천 년 이래로 인간의 몸과 몸의 구조는 동일하다. 그러므로 몸을 소중히 하며 건강하게 사는 방법은 눈과 혀보다는 귀를 사용하여 자신과 타자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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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그림을 거닐다

이현주 저
엔트리 | 201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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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지혜와 여운을 남기는 그리스 신화와 그림 산책


오늘날 현대 문명의 기초가 된 서구 열강의 정치, 역사, 예술의 근원은 그리스 신화다. 열두 달의 명칭, 하늘의 별자리, 태양계의 행성, 다양한 학문 용어에 이르기까지, 그리스 신화는 서구 문명의 뿌리에 깊이 닿아 있다. 세계 어느 지역, 어느 나라에도 신화는 존재한다. 그런데 왜 유독 그리스 신화가 이토록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수많은 학자와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문화의 보고가 될 수 있었을까? 신으로서 자연을 지배하는 능력을 지녔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신과 영웅들, 인간보다 더 사랑과 욕망에 약한 그들의 이야기에 더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운명에 굴복하면서도 운명을 극복하려는 그들의 삶이 우리를 끊임없이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신화, 그림을 거닐다』는 이처럼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그리스 신화 속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명화들, 관련된 명언과 함께 담은 책이다. 1장에는 인간미 넘치는 신들의 탄생과 에피소드를, 2장에는 인간보다 더 열정을 다해 열망하고 괴로워하는 신들의 사랑을, 3장에는 결정적인 순간 큰 역할을 한 지혜가 번득이는 순간을, 4장에는 신과 영웅들이 정해진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극복하고자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더 쉽고 더 재미있게 그리스 신화를 전하며, 현대적이고 아름다운 명화와 의미심장한 명언을 통해 눈과 마음에 지혜와 여운까지 남기는 책이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신들과 영웅이 전하는 감동과 메시지

최고의 신 제우스는 천지와 신들, 인간을 지배하고 천둥과 번개까지 관할하지만, 천상천하 최고의 바람둥이다. 여신들인 정식 아내만 7명이고 수많은 인간 여성과의 사이에 수많은 영웅을 낳았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용기와 지혜, 능력과 인격을 모두 갖추었지만 자존심과 경쟁심이 너무나 높다.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아름답지만 지혜롭지 못하다. 심부름꾼 신 헤르메스는 수완이 좋고 날렵하지만 속임수에 능한 사기꾼이기도 했다. 도도하고 용감한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는 그러나 늘 사랑에는 실패한다. 그녀와 쌍둥이로 태어난 태양과 음악과 의술의 신 아폴론도 늘 사랑의 아픔을 겪곤 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영웅들과 인간군상들 또한 신들과 마찬가지로 운명의 장난에 숱한 고난을 겪는다. 자신에게 걸린 저주를 풀기 위해, 인간으로서는 해내기 어려운 12개의 과업을 이룬 헤라클레스는 의리 때문에 죽음의 신마저 협박한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저승까지 갔던 오르페우스는 마지막 한순간의 집착을 버리지 못해 죽음에 이르고 만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 인간의 의지는 정해진 운명마저 뒤흔들곤 하지만, 나약한 인간이 버리지 못하는 찰나의 감정과 집착은 다시 그들을 운명의 손아귀에 몰아넣는다. 그러나 끝을 짐작하면서도 나아가려 하는 인간의 아름다움, 모두에게 정해진 운명인 죽음 앞에서도 오늘 하루에 집착하며 살아내는 인간의 위대함을 신화는 다양한 은유와 서사를 통해 역설한다. 윌리앙 부그로, 귀도 레니, 루벤스 등 아름다운 화가의 그림에 대한 소개와 카뮈, 토마스 만, 니체 등의 명언이 함께하며 신화 속 이야기에 여운을 더한다. 


《신화, 그림을 거닐다》는 이렇듯 각자의 일상 속에서 그리스 신화로 산책을 떠나보는 시간을 선사하는 책이다. 신화와 예술은 우리 삶에 끊임없이 함께 변주되면서, 더 다양하고 풍부한 일상으로 이끄는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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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유 리카르, 『이타심』 | 사회사상 2019-04-29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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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타심

마티유 리카르 저/이희수 역
하루헌 | 2019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이타심이 살아 있는 마음이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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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심, 더불어 사는 사회를 향한 마음

- 마티유 리카르, 『이타심』

 

 

      

정치인들은 대중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자주 망언을 내뱉는다. 국민을 개돼지라고 지칭한 사례는 차라리 애교(?)라고 할 수 있다. 개돼지는 생명이라도 있으니까.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국민을 권력을 얻는 도구로 생각한다. 도구는 필요할 때만 쓰고 버리면 되는 것이다. 권력을 얻으면 정치인들은 그래서 국민을 버린다. 그들은 국민을 어떤 상황 속에서만 호명한다. 선거철이 되면 국민은 유권자가 되고, 나라에 아이엠에프(IMF)와 같은 재앙이 일어나면 국민은 금을 모아 나라를 구하는 애국자가 된다. 유권자라는 도구, 애국자라는 도구를 통해 정치인들은 권력을 얻고, 그것을 통해 자신들이 이루고 싶은 부()를 이룬다. 이들은 어떻게 국민을 도구로 다룰 수 있는 것일까? 자기중심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지은이의 말대로라면 정치인들에게는 무엇보다 이타심이 부족하다. 권력을 탐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타심을 바랄까? 사이코패스처럼 정치인은 권력을 위해서라면 국민이야 무엇이 되는 상관하지 않는다.

 

지은이는 이 책에 자신과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힘이라는 부제를 붙이고 있다. 뜻대로 풀이하면 이타심(利他心)은 남을 이롭게 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마음이 이타심에는 들어 있다. 그 어느 시대보다 부익부빈익빈이 심해진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지은이는 왜 이기심이 아니라 이타심을 내세우고 있을까? 신자유주의는 사람들에게 이기심을 가지라고 명령한다. 이기심(利己心)은 나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자기가 이로워야 다른 사람도 이롭다고 생각한다. 말 자체로는 그르지 않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에서 제창하는 이기심은 다른 사람을 도구로 생각할 때만 가능한 마음이다. 무한 경쟁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이기심은 남을 이기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미덕(?)과 같은 것이다. 밟고 넘어서야 할 사람의 이익을 고려하며 경쟁을 하는 사람은 없다. 신자유주의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경쟁 사회를 이상 사회로 본다. 강한 자가 권력을 쥐어야 약한 자들이 그나마 살 수 있는 사회가 도래한다는 것. 이런 사회에서 이타심은 참으로 쓸모없는 도구라고 하겠다.

 

지은이는 이기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사회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다음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개인적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이기심은 자기 자신을 너무 중요하게 여기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에 끊임없는 고통의 원천이 된다.”(129) 이기심이 왜 고통의 원천이 될까? 끊임없는 욕망 때문이다. 이기적인 욕망에 빠진 사람은 하나를 이루면 다른 하나를 원한다. 피라미드의 끝에 올라가면 피라미드 너머에 있는 하늘로 올라가려고 하는 격이다. 한평생 먹고 살 돈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왜 하루하루를 간신히 넘기는 서민들의 돈을 착복하겠는가? 욕망에 빠진 사람은 오로지 자기 욕망만 본다. 다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살피지 않는다는 얘기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들이 그렇고, 쾌락을 얻기 위해서라면 생명을 죽이는 것쯤 아무렇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그렇다. 지은이는 두 번째 이유로 이기심은 현실과 완전히 모순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우리는 현실을 홀로 살 수 없다. 이기심이 통하려면 다른 사람들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혼자만 사는 사회에서 아무리 돈이 많은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내가 세상의 중심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 세상은 다른 사람들 것이다.”(130)라는 지은이의 주장은 무엇보다 이러한 맥락과 연결될 것이다.

 

에 대한 개념이 점점 강해져서 자아라는 허상으로 굳어 버리면 내 것에 대한 생각도 덩달아 강해진다. 달라이 라마는 내 것에 대해 집착하는 감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어떤 가게 쇼윈도에 멋진 도자기 화병이 진열된 것을 바라보고 있는데 점원이 실수로 화병을 떨어뜨렸다. 그럼 아마 정말 예쁜 화병인데 아깝군!’ 하면서 가던 길을 계속 갈 것이다. 그런데 화병을 선물 받아 벽난로 위에 자랑스럽게 올려놓았는데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면 내가 아끼는 꽃병이 깨어졌다!’고 소리치면서 크게 상심할 것이다. 차이점이라고는 화병에 내 것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뿐이다. (424)

 

내 것에 집착한다. 무언가를 소유한 사람들은 항상 그 무언가에 의미를 붙인다. 인용문에 나온 대로, 우리는 같은 화병을 의미의 유무에 따라 다르게 생각한다. 연인에게 선물 받은 화병이 깨지면 세상이 무너진 듯 우는 사람도, 점원이 실수로 깨뜨린 화병을 보고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의미가 붙은 화병일수록 우리는 더욱 더 집착을 한다는 얘기겠다. 우리가 왜 이타심보다 이기심에 익숙하겠는가.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는 . 그 다음이 가족이다. 나와 가족과 관련된 일이라면 우리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나와 가족에는 내 것이라는 의미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돌려 말하면 나와 가족에게 배신을 당할 경우 우리는 죽음을 생각할 만큼 강한 충격을 받는다. 지은이가 이타심을 무아無我에서 시작되는 자애로운 힘(425)이라고 표현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자기중심으로 세상을 생각하는 사람은 이타심에 이를 수 없다. 타자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만이 무아를 통해 이타심에 이를 수 있다. 무아는 말 그대로 를 내려놓는 것이다.

 

를 내려놓는 게 가능하냐고 물을 수 있다. ‘를 내려놓는 일은 당연히 어렵다. 정체성이니 주체성이니 하는 말로 우리는 얼마나 에 집착하는가. 현대 자본주의를 대변하는 신자유주의는 어떻게든 를 지키라고 우리에게 명령한다. 이기적인 가 개인을 세우는 힘으로 작용한다. 요즘 사회에서 특히나 중시되는 자기 계발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라. 자기 계발은 성공을 위한 지름길을 (이기적인) 개인들에게 알려준다. 자기를 끊임없이 계발하라는 신자유주의의 엄숙한 명령을 따라 개인들은 자기를 계발하기에 바쁘다. 어린 시절부터 자기를 계발한 사람들은 성공에 갈망하는 성과주체의 길로 스스로 들어선다. 무한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무아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다. 자기를 계발하기도 벅찬데, 자기를 비우라고! 묘한 건 자기를 비우는 일을 자본이 명상이라는 말로 도구화하고 있는 대목이다. ‘명상은 이제 산업이 되었다. 자기 계발을 위한 도구로서 명상이 사용되고 있다고나 할까? ‘를 내려놓는 일이 도리어 를 강화시키는 이상한 상황에 우리는 직면하고 있는 셈이다.

 

를 내려놓는 일마저도 이기심을 채우는 도구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소진(burn out)시키며 일에 집착한다. 산업화된 명상을 하는 순간에도 사람들은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다. 명상을 하면 머리는 더욱 명쾌해지고, 마음은 더욱 명랑해진다. 명상을 통해 육체적, 정신적 활력을 얻은 사람들은 다시 무한 경쟁 사회로 뛰어들어 다른 이들을 압도하는 힘을 발휘한다. 딱 부러진 성과를 내야 조직에서 밀려나지 않는다. 경쟁자들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 오로지 앞으로만 달리다 보면 인간관계는 당연히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가족 외에는 주변에 아무도 남아나지 않는다. 가족이라도 남아 있으면 다행인데, 일에 빠져 사는 사람에 익숙해진 가족들은 마음을 닫은 채 그()를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로 대한다. 성과에 집착할수록 이들은 감정적 탈진, 냉소주의, 무능감에 빠져든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유독 힐링과 관련된 산업이 발달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신자유주의는 사람들의 고통을 자본으로 만드는 특이한 능력이 있다. 사람들이 고통을 받을수록 힐링 산업은 더욱 커진다.

 

이기적이라야 살아남을 수 있고 이기적이라야 남보다 더 잘 살 수 있다면서 남보다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인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이타주의자들이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상주의자들이고 늘 착취만 당하는 비이성적인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사람들은 코넬 대학교 교수 로버트 프랭크가 한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타주의자들은 이기주의자들보다 덜 이성적이지도 않고 더 이성적이지도 않다. 둘은 추구하는 목표가 서로 다를 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타주의자가 이기주의자보다 훨씬 더 현실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다. 이기주의자는 이해관계에 연연하느라 편향적인 판단을 할 수 있지만 이타주의자는 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상황을 약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서 가장 적절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이해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은 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비인간적인 것이다. (904~905)

 

신자유주의는 이기심을 찬양한다. 이기적인 사람만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예찬한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은 더 많이 갖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게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논리의 핵심이다. 이기심을 다스리는 정부를 그들은 그래서 거부한다. 모든 것을 자본의 관점으로 보면 이 세상 모든 것은 도구가 되어버린다고 했다. 도구에는 생명이 없다. 생명이 없으니 다 쓰면 언제든 버려도 상관없다. 갑과 을의 관계가 왜 사회적 문제가 되겠는가? 갑은 을을 도구로만 본다. 쓸모가 없어진 도구를 우리는 쓰레기통에 버린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도구는 쓰레기가 된다. 요컨대 갑에게 을은 언제든 쓰레기가 될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러니 제 마음대로 때리고, 막말을 하는 것이다. 도구로서 을은 갑이 때리면 맞아야 하고, 갑이 막말을 하면 그저 듣기만 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반응을 보이면 화가 난 갑은 을의 목숨 줄을 끊어버린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왜 계약이라는 말을 두려워하겠는가? 계약이 되지 않는 순간 그들은 목숨을 잃는다.

 

신자유주의는 이타주의자들을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상주의자이며 비이성적인 사람들이라고 비난한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바깥을 인정하지 않는다. 공산주의 사회가 몰락한 이후로 우리가 사는 세계는 자본주의 체제로 통일된 사회가 되었다. 공산주의 사회가 현존할 때 자본주의 사회는 복지에 신경을 썼다. 자본주의는 원래 사람들의 복지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무한 경쟁을 지향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본주의가 공산주의 이론과 맞물리며 복지 사회를 주창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공산주의가 몰락하면서 신자유주의에 근거한 자본주의는 이제 어떻게든 사회복지를 줄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공공재는 점점 줄어들고, 예전에는 공공재로 생산되었던 것들이 하나하나 자본의 이득을 위한 도구로 바뀌고 있다. 사람의 목숨도 자본을 확장하는 도구로 만들어버린 지 오래다. 값비싼 의료 기구를 들인 병원들은 더 이상 병원을 공공재로 생각하지 않는다. 병원은 기업이다. 기업이 된 병원이 무엇을 추구하겠는가? 이익이다. 곳곳에 뻗힌 자본의 손길은 이렇게 사람들을 이타심을 발휘할 수 없는 영역으로 몰아세우고 있는 셈이다.

 

지은이는 다른 사람의 이해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은 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비인간적인 것이라고 단언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내세우는 이성은 냉혹한 결단을 가리킨다. 그들은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계산기를 두드린다. 사이코패스보다 더 냉혹한 이 이성주의자(?)들은 도구적 이성으로 이 세상을 바라본다. 도구적 이성은 생명을 생명으로 보지 않는다. 이익이 되는 생명만이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 돈이 있으면 환영받는 소비자가 되지만, 돈이 없으면 소비자로서 자격을 박탈당한다. 신자유주의는 냉혹한 이성을 발휘하는지는 모르지만, 모든 생명이 잘 사는 사회를 결코 지향하지 않는다. 비인간적인 걸 알면서도 우리는 왜 이기적인 사회논리를 바꾸지 못하는 것일까? 먹고 살려면 그 논리를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가 만든 사회논리는 자본이 풍족한 사람들의 이익을 중시한다. 산업자본주의가 왜 금융자본주의로 진전되었겠는가? 금융자본주의는 자본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사회를 가리킨다. 금융자본주의는 숫자에 민감하다. 산업자본주의를 지탱하던 노동자는 금융자본주의에 이르면 숫자로 기록된다. 언제든 쫓아낼 수 있는 무의미한 숫자들.

 

부탄에서 국민 총행복GNH 논의에 참여했던 칠레 경제학자 만프레드 막스 니프는 인간의 9대 기본 욕구가 포함된 모델을 제시했는데 여기에는 일반적인 물질적 욕구 외에 보호, 자유, (사회)참여, 애정에 대한 필요까지 포함된다. 만프레드 막스 니프의 모델은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한다.

* 경제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이 경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 발전은 사물이 아니라 사람에 관련된 것이다.

* 성장은 발전과 같지 않다. 발전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 생태계의 도움 없이는 어떤 경제도 존립할 수 없다.

* 경제는 생물권의 하위 시스템이다. 생물권은 경제보다 규모가 훨씬 더 크지만 유한한 시스템이라 무한 성장이 불가능하다.

* 어떤 경우에도 경제나 금전적 이익이 생명 존중보다 우선시될 수 없다. (1018)

 

경제적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보다 부탄처럼 경제적 후진국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선진국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만족할 줄을 모른다. 이기심은 더 큰 이기심으로 이어진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자들을 보라. 그들은 돈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돈이 있는 사람은 경쟁을 하는 파트너이고, 돈이 없는 사람은 쓰고 버리는 도구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돈이 있는 사람들과 돈이 없는 사람들로 나눈다. 아니면 그들은 세상을 이익이 되는 생명들과 이익이 안 되는 생명들로 나눈다. 자본이 많은 사람들은 도구적 이성을 사용하는 데 능하다. 도구적 이성은 생명을 도구로 본다. 자본 증식을 위해서라면 생명을 죽이는 것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자본 증식이지 생명 보호가 아니다. 움직이지 않는 자본은 의미가 없다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다.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들은 그래서 자본 증식에 집착한다.

 

자본으로 만들어진 땅에는 생명이 남아나지 않는다. 생명은 상호관계를 전제한다. 자기만 아는 이기심으로 가득 찬 사회에는 상호관계를 전제로 하는 생명이 있을 수 없다. 지은이는 알프레드 막스 니프가 제시한 행복의 원칙을 바탕으로 이타심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근원임을 새삼 강조한다. 인용문에 나타나는 대로, 행복의 중심에는 생명 존중이 있다. 생명은 도구가 아니다. 생명이 도구가 되는 순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생명이 생명에게 늑대가 되는 전쟁 상태가 되어버린다. 지은이는 세상을 바꾸려면 자신부터 달라져야 한다(1037)라고 강조한다. 산업화된 명상으로 자신이 달라질 리는 없다. 산업화된 명상은 진정한 를 모른다. 그것은 가짜 를 만들어 사람들을 무한 경쟁 사회에 적응하도록 돕는다. 에고를 내려놓고 무아(無我)에 이른 존재는 과감하게 이타심을 실천한다. 지은이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타심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타심이 없는 사회는 생명을 생명으로 인정하는 공존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 1000쪽이 넘는 방대한 이야기로 지은이는 생명이 생명과 더불어 사는 이타적인 사회의 가능성을 세밀하게 짚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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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사람 공부

퇴계 이황 저/이광호 역
홍익출판사 | 201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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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모집 인원 : 5

발표 :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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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됨의 학문’ 완성에 평생을 바친 퇴계 이황

그에게서 배우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예의

-우리 시대의 언어로 다시 공부하는 삶의 의미, 사람의 도리 


조선시대 최고의 유학자이자 탁월한 교육자였던 퇴계 이황은 53세라는 늦은 나이에 마침내 자득의 경지에 도달하자 커다란 수원지에서 강물이 솟구치듯 수많은 저작을 쏟아냈다. 후학들에 의해 세상에 빛을 본 『퇴계집』에는 총 51권 31책의 방대한 양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 수록된 퇴계의 글은 하나같이 퇴계가 일정한 학문적 수준에 도달하고 난 뒤에 쓴 것이어서 학술적 일관성이 뛰어나고 학문을 하며 몸과 마음으로 체험한 내용이 많아 독자에게 친숙하다. 이 책은 그 중에서도 퇴계 실천 철학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을 가려 뽑아 재편집했다.


사물과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기초한 ‘자기완성의 학문’을 지향했던 퇴계는 평생을 사람됨의 의미와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궁구하는 일에 매달린 인문철학자였다. 생명은 왜 태어나서 무엇을 하라는 것일까? 삶에서 가장 즐거운 일은 무엇일까? 퇴계에게 물으면 답은 명백하다. 하늘이 나에게 내린 명을 완수함으로써 세상만물의 창조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퇴계는 말한다. 인간이 올바르게 살아가는 길인 ‘도(道)’가 무엇인지 알고 실천하는 ‘도학(道學)’을 통해 올바른 삶의 길을 실천하며 자기 삶의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 속으로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도의에 뜻을 둔 우리나라 학자들 가운데 세상의 환란을 당한 사람이 많다. 이는 땅이 좁아 사람들이 경박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스스로 힘쓰는 학문도 다하지 못함이 있어서 그렇다. 다하지 못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학문이 지극하지 못하면서 스스로 너무 높게 자처하고, 시대를 헤아리지 않고서 세상을 경영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 p.10


군자의 학문은 자기를 위할 뿐이다. 자기를 위한다는 것은 장식(張?, 1133~1180)이 말한 ‘인위적으로 위하는 것이 없이 그러한 것’이다. 예컨대 깊은 산 무성한 숲에 있는 난초는 종일토록 향기를 피우지만 자신이 향기를 발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난초의 이러한 삶이 군자가 자기를 위한다는 뜻과 똑같다. --- p.11 


퇴계는 몸에 병이 있고 노쇠하며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려 53회나 사직을 청했다. 국가에서는 사직을 허락해서 선비가 염치를 존중하고 의리를 실현하도록 해야 한다. 선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의리의 실현이다. 그렇다면 의리란 무엇인가? 일의 마땅함을 의미한다. 일의 마땅함이란 무엇인가? 어떤 상황에 처하여 자신의 내면에서 빛나는 천리에 합당한 행위를 말한다.

--- p.125


사람들이 퇴계를 흔히 ‘주자학의 집대성자’라고 말하지만, 퇴계와 주자는 인간적 성격은 물론 학문하는 자세에서 매우 다르다. 주자는 자기주장이 매우 강한 데 비해 퇴계는 겸허하고 온유하다. 주자의 학문이 광대하고 무궁한 데 비해 퇴계의 학문은 정밀하고 자세하고 요점을 매우 중시한다. --- p.141


성인은 자연처럼 되기를 희망하고, 현인은 성인처럼 되기를 희망하고, 선비는 현인처럼 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자연에 대한 퇴계의 사랑은 병에 가까울 정도였지만 그의 자연 사랑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었다. 지리학자 못지않게 산의 전체 모습과 구석구석의 아름다움까지 자세하게 묘사하고, 산에 대한 이전 사람들의 기록을 종합하여 평가하고, 자신의 새로운 이해를 추가하여 산수의 아름다움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 p.188


율곡은 23세 때 도산을 방문하여 시를 주고받았으며, 이후 편지를 통해 『대학』과 『중용』에 대한 많은 문목(問目)을 올리고 『성학십도』에 대한 토론도 했다. 율곡은 퇴계를 스승으로 존경했지만, 퇴계와 성격이 다르고 학문적 지향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퇴계 만년에 질문한 편지의 문목에 대해서는 칭찬보다 질책을 많이 받았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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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 「우는 돌」 | 시집 읽기 2019-04-2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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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장석남 저
창비 | 2017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돌이 우는 소리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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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바람을 데리고 개울가 돌밭을 걷다가 참한 돌멩이 하나를 주어다 머리맡에 맡겼더니 밤새 개울 소리를 내며 울더라고

  늙은 색골(色骨)처럼 울더라고

  주어 가슴에 올려놓으니

  골골 잠이 든다

  채식(菜食)처럼 동이 트고

  밤이 나가고

  나는 조그만 죄 하나를 녹인다

  - 장석남, 「우는 돌」

 

 

돌은 어떻게 울까? 돌이 우는 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시인은 바람을 데리고 개울가 돌밭을 걷는다. “바람을 데리고라는 시구가 눈에 띈다. 시인은 일상에 젖은 사람들이 생각을 멈춘 곳에서 비로소 상상을 시작한다. 시인은 언제나 일상 너머를 상상한다. 상상이란 말에는 일상으로는 갈무리할 수 없는 잉여가 듬뿍 들어 있다. 일상이 언어를 자꾸만 현실에 가두려고 한다면, ()는 끊임없이 현실 너머로 나아가는 존재를 보여준다. 바람을 데리고 개울가 돌밭을 걷는 사람이 어떻게 일상에 매일 수 있을까? 시를 읽을 때는 그러므로 시인이 현실을 넘어서는 바로 그 지점에 주목해야 한다. 일상(현실이라고 해도 좋다)에 묶이면 시인이 들여다보는 새로운 세계가 보이지 않는다. 시를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시를 일상의 의미로 가두려는 경우가 많다. 일상 언어를 넘어서는 자리로 가야 돌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어떻게 해야 일상 언어를 넘어설 수 있느냐고? 돌이 운다는 상상을 하면 된다.

 

시인이 우는 돌이라고 쓰면 독자는 돌이 우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무생물인 돌이 무슨 울음이야, 하고 생각하는 순간 시는 저 멀리로 도망쳐버린다. 시인이 바람을 데리고 개울가 돌밭을 걷는다고 하면, 그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면 된다. ‘바람을 맞으며바람을 데리고는 상황은 같을지 몰라도 언어 이미지는 아주 다르다. 바람을 데리고 산책하는 시인이라야 참한 돌멩이 하나가 밤새 개울 소리를 내며 우는 까닭을 알 수 있다. 개울 소리를 내며 우는 돌은 개울이 한없이 그리운 것이다. 돌은 개울이 그리워서 한없이 운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엄마와 떨어져 우는 아이를 상상해 보라. 엄마 품을 떠난 아이는 우는 일밖에 달리 할 게 없다. 울음은 가장 근원적인 정서이다. 엄마 뱃속을 나온 아기는 가장 먼저 울음을 운다. 갓 태어난 아기가 울지 않으면 엉덩이를 때려서라도 울린다. 그래야 아기는 살아 있는 생명체로 인정받는다.

 

개울가 돌밭에서 주워온 돌을 시인은 머리맡에 놓는다. 머리맡에서 우는 돌을 시인은 늙은 색골色骨처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밤이 되면 어김없이 개울 소리와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었을 돌이 지금 누군가의 머리맡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개울가 돌밭에서는 개울물 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불고, 곁에 있는 돌들이 서걱대는 소리가 들렸다. 개울가 돌밭에서 돌은 그냥 돌이 아니다. 그곳에서 돌은 개울 소리를 들으면 개울 소리가 되었고, 바람이 불어오면 바람이 되었다. 돌이면서 개울 소리면서 바람이었던 돌이 지금은 다만 돌이라는 이름만으로 불린 채 방안 구석에 방치되어 있으니 어찌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시인은 돌을 주워 가슴에 놓는다. 그제야 돌이 골골 잠이 든다”. 시인의 가슴 위에서 심장의 리듬이라도 느낀 것일까? 돌이 내보이는 고유 리듬을 시인은 가슴에서 일렁이는 리듬으로 감싸 안는다. 사물과 인간이 리듬으로 어울리는 이미지가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돌의 리듬은 시인의 몸속으로 파고든다. 시인의 몸에서 일렁이는 리듬이 돌의 리듬 속으로 파고든다고 말해도 상관없다. 시인은 왜 하필 개울가 돌밭에서 이 돌을 가져온 것일까? 사물과의 인연은 리듬을 타고 온다. 개울 소리를 내며 울던 돌은 시인의 가슴에서 일렁이는 리듬을 느끼자 울음을 그치고 잠에 빠져든다. 시인의 가슴에서 울리는 소리는 그러므로 개울 소리와 다르지 않다고 봐야 한다. 시인은 어떻게 가슴에 개울 소리를 품고 있는 것일까? 시인은 사물을 상상한다. 시인 앞에서 사물은 일상의 의미를 벗어던지고 제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정확히 말하면 시인은 사물을 가슴으로 느낀다. 가슴으로 전해오는 사물의 리듬을 온전히 자기 몸에서 피어나는 리듬으로 받아낸다. 이러기 위해서는 시인의 몸(리듬)은 사물을 향해 완전히 열려 있어야 한다. 사물은 시인을 향해 몸을 열고, 시인은 사물을 향해 몸을 연다. 몸과 몸이 만나면 새로운 리듬이 나올 수밖에 없다. 둘이면서 동시에 하나가 되는 리듬이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시인의 가슴에 우는 돌이 놓이는 순간 시인과 돌은 둘이면서 하나인 존재가 된다. 돌이 쉬이 잠에 빠져드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시인의 마음속에서 돌은 오랫동안 자기 마음을 흐르던 리듬을 느낀다. 동이 트면서 서서히 밤이 물러간다. 시인은 채식菜食처럼 동이 트고/ 밤이 나가고라는 시구로 어둠이 시나브로 물러가는 장면을 표현한다. 어둠은 새벽빛과 싸우지 않는다. 때가 되면 어둠은 새벽빛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시인은 나는 조그만 죄 하나를 녹인다라는 진술로 시를 맺는다. “죄 하나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참한 돌멩이 하나를 주워 온 욕심을 말하는 것일까? 시인은 우는 돌에서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생명을 느낀다. 시인의 가슴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리듬을 느끼고서야 돌은 울음을 그친다. 돌이 느끼는 이 마음, 이 리듬이 시심(詩心)이 아니라면 무엇을 시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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