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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평단 모집]『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 | 이벤트 2019-05-29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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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

홍창성 저
불광출판사 | 2018년 06월

신청 기간 : 64 24:00

서평단 모집 인원 : 5

발표 :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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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의 저자 홍창성 교수(미국 미네소타주립대 철학과 교수)는 지난 2015년부터 국내 불교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깨달음 논쟁’ 당시 누구보다 많은 분량의 글(8편)을 매체에 기고하며 논쟁의 중심에 섰고,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 그가 먼 미국 땅의 대학에서 진행한 ‘불교철학 강의’는 매우 특별하다. 기독교 전통이 강하기로 유명한 미국 바이블 벨트(Bible Belt) 북부의 미네소타주에서, 그것도 불교에 관한 그 어떤 것도 접해 본 적 없는 젊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난 십여 년 간 진행해 온 위의 불교철학 강의를 기반으로 학생들이 제기한 날카로운 질문과 그에 대한 첨예한 토론 및 논증을 정리하여 이 책을 완성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불교에 대해 문외한인 미국 현지의 학생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지금 시대의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개념과 방법으로 불교철학의 핵심들-이를 테면 ‘무아(無我)’, ‘윤회(輪廻)’, ‘연기(緣起)’ 등의 기본 교리부터 불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경지인 ‘깨달음’, ‘열반(涅槃)’에 이르기까지-에 대해 논한다. 더욱이 자신의 전공 분야인 서양철학의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불교철학의 정교하고, 지적이며, 논리적인 측면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 책은 그동안 불교를 공부해 오며 철학적 난제를 맞닥뜨린 이들에게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또한 불교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추었거나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은 독자는 물론 불교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도 우리의 삶과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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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여러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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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 소설 읽기 2019-05-2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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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무진기행

김승옥 저
민음사 | 2007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산업화 시대의 비극적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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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1964년의 한국사회는 어땠을까? 1960년대면 산업화가 시작할 즈음이다. 1960년에 4.19 혁명이 일어났고, 1년 후에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1960년대에 정치적, 경제적으로 한국사회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시기였다. 근대화의 시작을 알리는 이 시기를 김승옥은 세 인물의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묘사한다. 우리 세 사람이란 나와 도수 높은 안경을 쓴 안()이라는 대학원 학생과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요컨대 가난뱅이라는 것만은 분명하여 그의 정체를 꼭 알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도 나지 않는 서른 대여섯 살짜리 사내를 말한다.” 이라고도 불리는 주인공 이 먼저 만난다. 김은 스물다섯 살로 구청 병사계(兵事係)에 근무하고 있고, 부잣집 아들인 은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나이는 김과 같은 스물다섯 살이다. 김과 안은 이 날 처음 만났다. 이들은 아무런 목적 없이 밤거리를 떠돌며 남아도는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김과 이는 무의미와 의미 사이를 넘나들며 대화를 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의미 있는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간혹 의미 있는 질문을 던져도 대답은 언제나 의미를 벗어난다. 말 그대로 그들은 서로를 알기 위해 대화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죽이기 위해 묻고 대답할 뿐이다. 의미 없는 말장난을 하다가 갑자기 안이 밤거리에 나오면 뭔가 좀 풍부해지는 느낌이 들지 않으냐고 김에게 묻는다. 그는 그 느낌을 ()’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낮엔 그저 스쳐지나가던 모든 것이 밤이 되면 내 시선 앞에서 자기들의 벌거벗은 몸을 송두리째 드러내놓고 쩔쩔맨단 말입니다.”라는 말에 드러나는 대로, 안은 낮보다는 밤에 살아가는 희열을 느낀다. 생을 향한 진심이 드러난 이 대목에서 안은 의미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갑작스레 의미라는 말이 나오자 김은 당황한다. 의미를 생각하면 자기가 사는 지금 이 삶을 돌아봐야 한다. 자기와 마주해야 한다는 말이다.

 

생의 의미를 묻는 바로 이 순간에 한 사내가 두 사람 앞에 나타난다. 그는 두 사람 곁에서 술잔을 받아놓고 연탄불에 손을 쬐고 있다가, 두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가난뱅이 냄새가 나는 삼십대 사내였다. 술자리에서 만난 사람치고 사내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세 사람은 일단 중국 요리집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곳에서 사내는 오늘 낮에 아내가 죽었다고 고백한다. 아내가 죽었으면 장례식장에 있어야 하지 않는가? 사내의 아내는 급성 뇌막염으로 죽었단다. 장례식을 치를 돈이 없어 사내는 돈 사천 원에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다. 그러면서 사내는 시체를 팔고 받은 돈 사천 원을 오늘 밤에 다 써버리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돈이 다 없어질 때까지 자기와 있어 달라는 요구를 덧붙인다. 김과 안은 승낙한다. 어차피 할 일도 없지 않은가. 중국집을 나온 사내는 양품점에 들어가 두 사람에게 넥타이 하나씩을 사준다. 양품점 앞에 있는 귤장수에게 귤도 산다. 죽은 아내가 좋아했던 과일이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소방차 두 대가 세 사람 앞을 빠르게 지나간다. 사내가 택시를 잡는다. 소방차를 따라가기 위해서이다. 불이 난 곳은 페인트를 파는 상점이었다. 세 사람은 페인트 든 통을 하나씩 궁둥이 밑에 깔고 앉아 불구경을 한다. 안의 말마따나 화재는 그들과 전혀 상관이 없다. 그들이 운영하는 상점이 타고 있는 게 아니다. 갑자기 사내가 일어나더니 환한 불길을 손가락질하며 내 아냅니다.”라고 외친다. 사내는 바람에 휘날리는 불길에서 골치가 깨질 듯이 아파 머리를 막 흔드는 아내를 본다. 사내가 불길을 향해 무언가를 던진다. 돈이다. 가지고 있는 모든 돈과 돌을 손수건에 싸서 던졌단다. 돈을 다 썼으니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김과 안이 작별인사를 하며 돌아서자 사내가 두 사람을 붙든다. 몸을 벌벌 떨며 그는 혼자 있기가 무섭다고 이야기한다. 사내는 두 사람과 같이 있으려고 하지만, 두 사람은 그와 함께 있는 게 탐탁하지 않다.

 

사내는 아내를 잃었고, 그 시체를 병원에 팔고 돈을 받았다. 사내는 지금 타인들의 위로를 받고 싶다. 하지만 누가 진심으로 이 사내를 위로할까? 애초부터 두 사람은 사내가 가진 돈을 모두 쓸 때까지만 있기로 했다. 이 날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무슨 정이 있을까? 사내의 간절함이 두 사람의 마음에 닿은 것일까? 사내의 말을 따라 세 사람은 여관을 잡기로 한다. 여관을 잡기 전에 사내는 갈 곳이 있다고 말한다. 받아야 할 돈이 있다는 게 이유이다. 사내는 그 돈으로 여관비를 치르려고 한다. 이 가난뱅이 사내는 도대체 어디로 가서 돈을 받으려고 하는 것일까? 사내는 월부책 장수였다. 사내는 월부책 값을 받기 위해 늦은 밤, 한 집을 찾아간다. 돈을 줘야 할 사람은 대문 저편에 있다. 여자가 대문을 연다. 월부책 값 받으러 왔다고 외친 사내는 이내 흐느끼기까지 한다. 여자는 사내가 왜 이러는지 알 리 없다. 사내는 대문 밖에 사는 사람이고, 여자는 대문 안에 사는 사람이다.

 

찬바람이 세차게 부는 적막한 거리로 세 사람은 걸어 나온다. 여관에서 방을 잡는 문제로 잠깐 실랑이가 벌어진다. 안은 방을 세 개 잡아 각각 하나씩 사용하길 원하고, 김은 사내를 생각해 한방에 들자고 말한다. 사내는 혼자 있기기 싫다고 말한다. 안의 의견대로 그들은 방을 세 개 얻는다. 거리에서는 셋이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이제 그들은 벽으로 나뉘어진 방들로 제각각 흩어져야 한다. 김이 화투라도 치자고 말했지만, 안은 피곤하다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안이 제 방으로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김도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혼자 있기 싫은 사내가 무엇을 할 수 있으랴. 그 또한 자기에게 주어진 방으로 들어간다. 그날 밤 나는 꿈도 안 꾸고 잘 잤다.” 사내는 밤을 어찌 보냈을까? 다음날 아침 안이 김을 깨운다. 사내가 죽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다.

 

다음날 아침 일찍이 안이 나를 깨웠다.

그 양반,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안이 내 귀에 입을 대고 그렇게 속삭였다.

?”

나는 잠이 깨끗이 깨어버렸다.

방금 그 방에 들어가 보았는데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역시…….”

나는 말했다.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까?”

아직까진 아무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린 빨리 도망해버리는 게 시끄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살이지요?”

물론 그것이겠죠.”

나는 급하게 옷을 주워 입었다. 개미 한 마리가 방바닥을 내 발이 있는 쪽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그 개미가 내 발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는 얼른 자리를 옮겨 디디었다.

 

안은 역시라는 말을 두 번 사용하고 있다. 사내가 자살할 줄 뻔히 알면서 홀로 놔둔 것이다. 안은 혼자 놓아두면 죽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게 내가 생각해 본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을 혼자 놔두면 자살을 하지 않게 될까? 안은 사내에 대한 무관심을 에둘러 표현한다. 그는 자신이 어찌 하든 사내는 자살을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합리화다. 사내가 자살할 줄 몰랐다는 김 역시 안과 다르지 않다. 빨리 도망치자는 안을 따라 김은 급하게 옷을 주워 입는다. 그때 그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개미 한 마리를 발견한다. 김은 그 개미가 자신을 붙잡을 것만 같아 얼른 자리를 옮긴다. 김 역시 안처럼 사내의 죽음과 이어지길 원치 않는 것이다. 경찰관 앞에서 사내와 보낸 하룻밤을 얘기하는 걸 그는 시간 낭비로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거리로 나온 안이 김에게 두렵다는 말을 내뱉는다. 무엇이 두려운 건지 제대로 대답하지는 못한다. 그러면서 안은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습니까?”라고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스물다섯 젊은이가 할 말은 아니다. 안은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청춘의 나이에 늙어버린 게 두려운 것일까? 혹 안은 사내의 모습에서 자신이 가야 할 미래는 본 것은 아닐까. 물론 안은 사내와는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 가난이 몸에 밴 사내는 아내의 시체를 팔고는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자살했다. 안은 사내처럼 가난하지 않다. 부잣집 장남으로 태어나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는 지식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안은 자신이 이미 늙어버렸다고 생각한다. 늙은 사람은 청춘이 볼 수 없는 세상을 보는 눈을 지니고 있다. 안이 사내를 통해, 혹은 자신과 김을 통해 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사내는 자살했고, 김은 개미를 외면했으며, 안은 사내가 자살할 걸 알면서 사내를 혼자 두었다. 사내는 김과 안과 밤을 보내고 싶다고 호소했지만, 결국 여관방에서 홀로 죽었다. 사내가 언제 김과 안으로 변할지 모른다. 오늘은 사내가 죽었지만, 내일이나 모레는 김과 안이 사내처럼 죽을지도 모른다. 근대사회에 익숙한 사람들은 타인의 불행에 어떻게든 눈을 감으려 한다. 그들은 불행에 빠진 타인을 보며 외려 안심을 한다. 그리고는 다짐한다. 저 사람들이 간 길로 결코 들어서지 않을 거라고. 김승옥은 1964년 겨울, 서울에서 벌어진 한 사내의 자살을 서사의 기둥으로 삼아 겉으로는 한없이 화려해 보이는 근대화의 이면을 파헤친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욕망에 충실하다. 자기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그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모든 이들이 자기 욕망을 실현하는 길로 달려가면 이 사회는 어떻게 될까? 무한 경쟁이 펼쳐진다. 오로지 앞만 달리는 경주말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가. 청춘의 시간을 건너뛰고 늙어버린 안은 사내를 통해 바로 이 진실을 알아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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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신화, 그림을 거닐다』 | 인문사상 2019-05-27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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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신화, 그림을 거닐다

이현주 저
엔트리 | 2019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신화 속 이야기, 그림 속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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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속에서 새로운 운명을 여는 신화

- 이현주, 『신화, 그림을 거닐다』

   

 

 

신화(神話)는 신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사실은 인간이 살아온 삶을 담은 이야기이다. 인간이 신화를 통해 아름답고 숭고하고 비극적인 세계를 표현한다. 아름답고 숭고한 세계가 어떻게 비극과 이어지는 것일까? 아름다움과 숭고함은 언제나 순수함과 연결된다. 순수는 티 없이 맑은 마음을 나타낸다. 물론 신화에 나오는 영웅들이 모두 순수한 인물은 아니다. 신들의 왕인 제우스를 누가 순수성을 견지한 신이라고 말하겠는가? 그러면서도 우리는 제우스를 순수한 존재로 인식한다. 절대신인 제우스는 인간처럼 욕망덩어리이다. 제우스는 자기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자기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고 떼를 쓰는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이야기에 등장한다. 영웅들이 내보이는 순수함은 어찌 보면 타자를 어떻게든 소유하려는 욕망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신화를 읽을 때 도덕 법칙과 거리를 두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도덕원리로 신화를 보면 신화만큼 불결한 이야기는 없다.

 

사람들은 신화를 도덕원리로 읽지 않는다. 제우스는 아내 헤라 몰래 수많은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고 자식을 얻는다. 결혼의 여신이자 질투의 여신인 헤라는 제우스가 만나는 여자들을 힘으로 내리누르려고 한다. 여자들만 그런 게 아니다. 디오니소스나 헤라클레스의 경우처럼 헤라는 제우스와 다른 여신(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끔찍이도 괴롭혔다. 제우스와 헤라가 벌이는 수많은 기행(奇行)들을 읽으면서도 우리는 그들을 욕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의 깊은 내면에 숨은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로마 신화가 가부장제 사회의 논리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제우스를 정점으로 구성된 가부장제 구조는 이런저런 갈등이 오가는 상황에서 가부장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인정한다. 틈만 나면 바람을 피워 아내의 눈치를 보는 제우스가 번개를 쏘며 화를 내면 하늘에 사는 신과 땅에 사는 인간은 모두 조용해진다.

 

가부장의 관점으로 보면 신은 어른이고 인간은 아이이다. 남자는 정복하는 자이고 여자는 정복을 당하는 자이다. 여신 아테나는 제우스의 머리를 깨고 태어났지만, 이런 사례는 극히 드물다. 제우스는 아버지 크로노스를 죽이고 제왕에 올랐고, 크로노스는 아버지 우라노스를 죽이고 제왕에 올랐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상황이 반복되면 가부장제는 결코 성립될 수 없다. 제우스가 제왕이 된 이래로 올림포스 산은 제우스를 중심으로 한 가부장제 구조로 급격히 전환된다. 제우스 이전에는 가부장제라는 제도가 없었다면, 제우스 이후에는 가부장제라는 제도가 올림포스를 지배했다. 제우스는 우라노스나 크로노스처럼 힘으로 세계를 지배한 게 아니라, 제도로서 이 세계를 다시 만든 셈이다. 제우스를 비롯한 신들이 벌이는 온갖 사건들은 이리 보면 제도 속에서 사는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았다. 다만 스케일이 다를 뿐이다. 이를테면 제우스와 에우로페의 사랑 이야기는 유럽의 탄생이라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신화는 인간과 삶과 이어지지만, 그 너머를 향해 끊임없이 뻗어 나가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결국 욕망이라는 점을 새삼 느낀다. 사랑도 욕망이다. 사랑만큼 지독한 욕망이 어디에 있을까? 사랑은 쉽게 증오로 변한다.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의 이야기에 나타나는바, 연인을 의심한 결과로 사람들은 그토록 소중한 사랑을 잃는다. 신화의 비극에는 늘 운명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운명은 피하면 피할수록 영웅에 들러붙는 특성이 있다. 그 누구라도 신탁의 내용을 벗어날 수 없다. 오이디푸스는 사랑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기 위해 아버지(라고 생각한 사람) 곁을 떠났지만, 그 때문에 진짜 아버지를 죽이는 비극에 빠졌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두 손으로 두 눈을 찌른다. 장님이 된다고 운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운명은 영웅이 죽을 때까지 따라다닌다. 셰익스피어가 지은 ?햄릿? 또한 운명의 비극을 담고 있지 않은가.

 

신화는 영웅(인간)에게 운명을 부여하고, 그 속에서 수많은 사건들을 만들어낸다. 이타카의 영웅인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을 이기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사이렌이라는 요정들을 만나게 된다. 바다의 요정인 사이렌은 매혹적인 노래로 선원들을 죽음의 세계로 이끈다. 오디세우스는 살고 싶다. 하지만 사이렌의 소리는 듣고 싶다. 두 욕망 사이에서 그는 아테네의 후원을 받는 영웅답게 기발한 꾀를 낸다.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은 그는 자기 몸을 배 기둥에 묶었다. 사이렌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도 죽음의 세계로 끌려가지 않을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사이렌의 유혹을 무사히 넘긴 오디세우스는 결국 아내 페넬로페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무사히 복귀한다. 자신에게 부여된 운명을 지혜로 극복하는 인간의 모습이 오디세우스라는 영웅의 이야기로 나타난 것이라고나 할까. 운명과 지혜 사이에서 영웅은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운명을 여는 주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음악으로 지상에 사는 생명들의 심금을 울린 오르페우스는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구하기 위해 저승까지 가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그가 연주하는 음악에 감동을 받은 하데스는 에우리디케를 이승으로 되돌려 보내기로 결정한다. 저승의 신이 결정했으니 오르페우스는 사랑하는 아내를 데리고 이승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오르페우스는 소망을 이루었을까? 그럴 리가 없다. 오르페우스가 성공을 했다면 수많은 영웅들이 저승길로 달려가 연인을 구하려고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데스는 금기를 건다. 저승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까지는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것. 오르페우스는 이승과 저승이 갈라지는 장소에서 비치는 빛을 보고는 그만 뒤를 돌아본다. 하데스는 아마도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볼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운명을 벗어날 수 없으니까. 내가 신화를 즐거이 읽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신화는 인간을 극한까지 내몰고 모르는 척 얼굴을 반대쪽으로 돌리는 운명의 신을 거듭해서 보여준다. 인간의 비극이 신화의 이야기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것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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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혁주, 『소리와 그 소리에 관한 기이한 이야기』 | 인문사상 2019-05-25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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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리와 그 소리에 관한 기이한 이야기

심혁주 저
궁리출판 | 201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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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와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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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생명의 소리

- 심혁주, 『소리와 그 소리에 관한 기이한 이야기』

 

 

 

지은이는 살아 있다는 것의 본질을 소리냄새에서 찾고 있다. 감각기관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이다. 근대문명은 시각으로 이루어진 문명이다. 쉴 사이 없이 흘러가는 수많은 이미지들을 보라. 보이는 이미지에 현혹되어 자기의 본성을 잃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지은이가 살아 있음의 본질을 소리와 냄새에서 찾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밝은 세상에서 눈을 뜨고 있으면 희미한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한밤중이 되어 주변이 고요해져야 비로소 조금씩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어두운 방안에 잠을 자려고 눕는다. 잠깐 사이 주변은 조용해지고 시계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밝은 세상에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소리이다. 지은이는 살아 있음을 보이지 않는 세계와 연관 짓고 있다. 티베트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사자(死者)의 귀에 주문을 읊는다고 한다. 다음 세상으로 무사히 보내기 위한 주문이다. 죽은 사람은 청각으로 산 사람의 주문 소리를 느낀다고 한다. 시각보다 청각이 다음 세상과 이어진 감각이라는 얘기겠다.

 

지은이는 ?소리의 탄생?이라는 항목에서 Om’이라는 거룩한 소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은 우주를 울리는 소리이다. 입으로 옴 소리를 내보자. 온몸을 천천히 감도는 소리를 느낄 수 있다. 옴은 생명을 치는 소리가 아니라 생명을 보듬는 소리이다. ‘을 길게 발음하면 엄마와 비슷한 소리가 나온다. ‘오옴엄마와 연결되어 있다. 처음으로 말을 터뜨리는 아기의 입에서는 엄마라는 소리가 먼저 나온다. ‘엄마라는 소리는 가슴을 울리고 세상을 울리고 우주를 울린다. ‘이라는 거룩한 소리는 이 우주를 사는 모든 생명들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지은이 말마따나 최초의 세상에서 인간과 동물은 소리로 이야기를 했는지 모른다.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면서 인간과 동물은 분리되었고, 인간은 언어=이성의 힘으로 자연을 도구로 삼는 데 이르렀다. 강물이 흐르는 소리에 황제의 음성이, 투사의 음성이, 황소의 음성이, 밤새의 음성이, 산모의 음성이, 탄식하는 자의 음성이 들어 있다. 생명은 소리로 모든 생명이 여럿이면서 하나라는 걸 보여준다.

 

귀는 우리가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열려 있었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귀는 다른 어떤 감각기관보다도 일찍 완성된다. 이것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귀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의식은 귀가 듣는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말하자면 우리는 귀를 통해, 소리를 통해 최초로 우리의 존재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런 소리의 존재는 공기와 비슷해 보인다. 숨을 쉬면서도 공기를 의식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해서 소리는 자기 영역으로 들어오는 모든 존재를 감싼다. ??티베트 사자의 서??는 이 점을 알려주는 책이다. 육신은 죽지만 영혼은 죽지 않는다면 그래서 우리의 존재의 본질이 삶과 죽음을 거듭하며 영적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면, 인간 존재의 연속성을 담보하는 것은 바로 귀로 듣는 소리와 그것에 의한 의식의 각성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낮과 밤, 황혼의 사이에 일어나는 이야기로 말이다. (53~54)

 

문명인들은 화려한 이미지에 매혹되어 있다. 외모지상주의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외모는 눈으로 봤을 때 아름다운 모습을 가리킨다. 소비를 중시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외모는 자본을 증식하는 아주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어린아이, 젊은이, 늙은이 등 나이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외모를 꾸미는 데 바쁘다. 얼굴에 주름이 생기면 보톡스를 맞아 없애려고 한다. 매끄러운 피부를 얻기 위해 사람들은 엄청난 돈을 얼굴에 투자한다. 사회는 외모가 경쟁력이라면서 이러한 상황을 부추긴다. 지은이는 외모를 중시하는 세태와 관련하여,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이야기한다. 관세음(觀世音)은 세상의 소리를 보는 것을 말한다. 소리를 본다고? 화려한 이미지에 물든 문명인들은 소리를 보는 방법을 모른다. 소리를 보려면 자기 마음에 집중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자기 마음에 집중할 수 있을까? 화려한 이미지에 집착하는 자기를 내려놓아야 한다. ‘()’이라는 말은 정확히 이 맥락에 걸려 있다. 문명인들은 화려한 이미지를 관()하지 못한다. 보는 데만 집중하다 보니 이미지가 내보이는 소리에는 아주 무심하다. 남이 하는 말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사람들이 바로 스스로를 이성적이라고 자부하는 문명인들이다.

 

지은이는 귀로 듣는 소리를 공기에 비유한다. 공기가 없으면 우리는 살 수 없다. 숨이 막히는 상황을 경험해야 비로소 우리는 공기의 필요성을 알게 된다.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는 귀로 엄마가 내는 소리를 듣는다. 태아가 소리를 듣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는 귀를 통해 이 세상과 교류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귀는 홀대를 받다가 죽어서야 다시 산 사람들이 외우는 주문(呪文)을 듣는 귀로 돌아온다. 귀에 들려오는 주문을 듣지 못하면 죽은 자는 다음 세상으로 가는 길을 열 수 없다. 소리는 그러니까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신비한 감각이다. 그래서일까, 티베트 승려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소리를 내어 경전을 읽는다. 경전을 읽으며 소리를 내는 게 그들에게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련과정이다. 지은이는 티베트 활불인 숨마추제와 인터뷰를 하면서 소리의 매력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그에 대해 숨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독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귀가 항상 열려 있기 때문에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귀는 눈과 혀보다도 더욱 소중한 감각입니다. 눈과 혀가 욕망과 감각을 선호한다면 귀는 무엇이든 받아들이겠다는 개방성을 가지고 있습니다.”(89)

 

눈은 매혹적인 이미지만 좋아한다. 잘 생긴 얼굴과 예쁜 얼굴만 좋아하는 눈을 생각해 보라. 혀도 그렇다. 혀는 일반적으로 단맛을 좋아한다. 짠맛과 신맛과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쓴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눈과 혀는 자꾸만 이미지와 맛을 분별하려고 한다.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쁜 시비심(是非心)이 일어나면, 우리네 마음은 이런저런 갈등으로 들끓는다. 시비심은 스스로를 외부와 차단하는 마음이다. 시비를 가리는 사람은 자기를 중심에 세우고 주변에 있는 사물들을 판단한다. 애초부터 그()가 중심에 서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은 이성을 기반으로 자신을 자연보다 우월한 존재로 인식한다. 그 결과 인간은 자연을 자기가 만들고 싶은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 조금 더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산을 관통하는 도로를 내는 게 인간이다. 눈과 혀에 현혹된 인간은 멀쩡히 살아 있는 귀로 자연이 내는 비명 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지은이가 왜 소리에 주목하는지 이만하면 이해되지 않는가?

 

이 책 2부에 실린 소리에 관한 기이한 이야기에 나타나는 대로, 소리에는 생명의 아픔을 치유하는 묘한 능력이 들어 있다. 첫 번째 이야기에 나오는 곱사등이 다와’(?곱사등이, 다와?)는 소리를 내어 경전을 읽음으로써 아픈 몸을 치유하는 힘을 얻는다. 물론 곱사등이라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소리 수련을 통해 다와는 자기 몸과 대화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등이 굽어 걷는 것조차 힘들어하던 다와가 나무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기 위해 한밤중에 나무를 향해 뛰어가는 장면이 그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나무가 서 있던 곳에서 다와는 사원도 아니고 집도 아닌 곳을 발견한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천장에서 내려진 밧줄이 보인다. 줄에 귀를 갖다대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알 수 없는 소리. 다와는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한다. 줄 끝자락에서 똑똑 물이 떨어진다. 다와는 줄을 타고 내려오는 물을 쪽쪽 빨아 마신다. 몸이 아프지 않다. 온몸으로 평안한 느낌이 퍼지는 순간 문밖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다와야, 이제 세상에 나오렴.”(133) 자기를 내려놓고 온몸으로 소리와 하나가 되는 순간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티베트에서 죽은 시신의 몸을 발라내는 해부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해부마스터?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출가한 사람이 시체 해부를 한다는 점에서 다소 충격적이다. 칼과 도끼로 발라낸 인간의 뼈, , 피부 그리고 뭉텅거리는 신경과 근육 앞에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매일 그런 생명의 원형질을 마주하는 사람, 그것이 그의 업()이라면 너무 잔인하지 않을까.”(17)라는 지은이의 말을 들어보라. 시신의 몸을 발라내 독수리에게 주는 것을 천장(天葬)이라고 한다. 천장을 하는 이유는 시신의 몸에서 영혼을 꺼내 다른 새로운 몸속으로 옮기기 위해서이다. 이곳에서 독수리는 신조(神鳥). 누구도 독수리를 만질 수도, 쳐다볼 수도 없다. 숨이 멎는다고 죽은 게 아니라 신조의 뱃속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죽은 것인 셈이다. 티베트에서 내려온 풍습이니 우리 풍습에 맞춰 생각할 필요는 없다. 죽은 사람을 땅에 묻는 일과 천장 풍습이 무에 다를 것인가?

 

죽은 사람은 신조에게 몸을 바치고 영혼으로 남아 새로운 몸으로 들어갈 준비를 한다. 스스로 제 몸을 잘라 신조를 먹일 수 없으니 해부마스터가 필요한 것이다. 며칠 전만 해도 살아 있던 사람의 몸을 발라내는 일이니 의식이 이루어지는 곳은 온통 피로 물들어 있을 것이다. 해부마스터야 달리 말할 게 있겠는가? 그런 고통을 온몸으로 겪으며 해부마스터는 천장 의식을 거행한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만 아무나 할 수 없다. 시신을 단지 시신으로 보는 사람이 어떻게 시신을 해부할 수 있을까? 공기를 삼키듯 시신의 몸속으로 칼을 디밀면서 자신의 생살을 자르는 훈련을 하고 있다.”(18)라고 지은이는 쓰고 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곳에서 일을 하면서도 그의 몸에서는 아기 냄새가 난다. 자기를 내려놓은 사람만이 해부마스터를 할 수 있다는 얘기겠다.

 

우리가 기이하다고 생각하는 이런 이야기가 어쩌면 인간이 지닌 생명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건일는지도 모른다. 문명이 외면한 수많은 감각 속에 우리가 잃어버린 진실이 있다. 그 감각과 다시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을 중심에 세우는 논리를 고집한다면 우리는 결코 이런 감각과 만날 수 없다. 생명이라는 거대한 그물망으로 보면 인간은 아주 작은 생명체에 불과하다. 이성의 힘으로 인간은 생명의 중심에 스스로 올라섰지만, 그것은 다른 생명을 폭력으로 제압하는 오만으로 이루어진 결과였다. 지은이는 문명인이 잃은 소리로 생명으로서 인간을 다시 그리고 있다. 인간은 결코 홀로 살 수 없다. 자연이라는 거대한 그물망이 우선 있어야 하고, 그 속에서 여러 생명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게 인간의 운명이다. 이성의 힘을 넘어서는 이 운명을 거부하면 인간은 멸종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소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눈을 감으면 들리지 않는 소리가 들려오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결국 문제는 우리 인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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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 카니, 『팀 쿡』 | 사회사상 2019-05-23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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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팀 쿡 Tim Cook

린더 카니 저/안진환 역
다산북스 | 2019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차별 없는 사회를 향한 팀 쿡의 경영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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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쿡이 제창한 거대기업의 경영윤리

- 리더 카니, 『팀 쿡』

 

 

 

팀 쿡Tim Cook2011년 스티브 잡스Steve jobs에 이어 애플AppleCEO(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애플의 장래를 걱정했지만, 팀 쿡은 보란 듯이 애플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끌어올렸다. 사람들이 쿡에 열광한 것은 애플의 기업 가치를 높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무엇보다 기업을 훌륭한 가치관이 살아 있는 집단으로 만들려고 했다. 지은이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한 재무보고서에서 쿡이 지향했던 여섯 가지 핵심 가치를 발견한다. 모든 사람이 기술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표현하는 접근가능성, 모든 사람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교육, 환경에 대한 의무감을 나타내는 환경, 각기 다른 다양한 팀이 혁신을 이끈다는 포용성과 다양성, 프라이버시를 인간의 기본권으로 믿는 프라이버시와 안전, 공급자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 공급자 책임, 이 여섯 가지 원칙으로 쿡은 스티브 잡스가 운명을 달리 하면서 위기에 빠지리라 예상되었던 애플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키워냈다.

 

이 책은 팀 쿡이라는 세계적 기업인의 윤리의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냉혹한 논리를 따른다. 이익이 되는 것이라면 자본은 무슨 짓이든 한다. 자본은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움직임을 멈추는 순간 자본은 더 이상 자본이 아닌 게 된다. 자본은 어디로 움직이는 것일까? 자본은 스스로 증식하는 길을 열어젖힌다. 증식하지 못하는 자본은 자본이라고 할 수 없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윤리의식을 냉혹한 자본논리에 종속시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자본은 윤리를 따지지 않는다. 윤리를 따지는 순간 자본을 증식하는 길이 막힐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재벌들을 생각해 보라. 재벌을 경영하는 사람들치고 윤리적인 사람은 없다고 봐도 좋다. 그들은 윤리를 생각하기 이전에 기업이 살아날 자본의 길을 먼저 생각한다. 인간의 윤리로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돈의 논리로 세상을 본다. 돈의 논리를 따르려면 냉혹해야 한다. 냉혹한 선택을 하는 자만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셈이다.

 

최첨단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에서 최고의 기업을 경영하는 팀 쿡의 삶을 서술하면서 지은이는 남부 시골 소년의 세계관이 기업 경영에 적용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파헤친다. 쿡은 앨리배마주 볼드윈 카운티의 중심 소도시 로버츠데일Robertsdale 이스트실버힐 애비뉴East Silverhill Avenue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전형적인 미국 남부 소도시인 로버츠데일은, 쿡이 성장하던 시절 인구수가 2300명에 불과한 아주 작은 도시였다. 비옥한 농경지 덕분에 조용하고 여유로운 삶의 터전이었던 이 지역은 그러나 인종차별주의라는 불쾌한 저류가 흐르는 지역이기도 했다. 쿡은 1970년대 초 중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KKK(극우적 성향의 배인 비밀 결사) 단원들이 한 흑인 가족의 사유지에서 십자가 화형식을 거행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쿡은 그들을 향해 그만두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그들 중 한 명이 후드를 벗더니 자기는 로버츠데일에 있는 가톨릭교회의 부제라며 얼른 가던 길이나 가라고 소리쳤다. 인종차별은 특별한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자연스레 행하는 일이었던 셈이다.

 

수년 후 쿡은 또 한 번 인종차별주의를 의미심장하게 체험한다. 글짓기 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은 받은 그는 부상으로 워싱턴을 견학하는 기회를 얻었다. 견학 일정에는 당시 앨리배마주 주지사 조지 월리스George Wallace를 만나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완고한 분리주의자인 월리스는 1960년대 당시 공립학교의 인종 통합을 강력한 반대한 정치인이었다. 쿡은 그와 악수를 나누며 모종의 수치심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와 악수하는 것이 내 자신의 신념에 대한 배신행위처럼 느껴졌어요. 마치 내 영혼의 일부를 파헤치는 것과 같은, 잘못된 일이라는 느낌이 든 겁니다.”(57) 쿡은 어릴 때 온몸으로 얻은 이 윤리를 기업을 운영하는 데도 적용하고 있다. 애플은 실리콘밸리의 여타 기업보다 월등히 많은 비율의 소수집단 근로자를 채용하는 한편, 소수집단 학생들이 제대로 된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융합교육)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과거 흑인 전용으로 설립된 대학과 자선 단체, 재단 등에 많은 후원을 하고 있다. 흑인 인권을 주창했던 마틴 루서 킹Martin Luther king Jr.을 존경할 정도로 그는 차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소수집단을 지원하는 밑바탕에는 쿡이 게이라는, 차별 받는 타자에 속하는 상황도 개입되어 있다. 앨라배마주에서 유일하게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의원 퍼트리샤 토드는 만약 쿡이 어린 나이에 커밍아웃을 했다면, 분명 큰 어려움을 겪었을 거라고 말한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고 사는 삶이 좋았을 리는 없다. 자기 성을 자기가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분명 이 사회가 굳건한 차별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느꼈을 것이다. 쿡은 2015년 한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토크쇼 진행자인 스티븐 콜버트가 직접적으로 물어보기 전까지는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얘기하지 않았다. 그는 왜 커밍아웃을 한 것일까? 직접 그의 말을 들어보자. 만약 애플의 CEO가 게이라는 소식이 자신의 성 지향성과 관련해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또는 혼자라고 느끼는 누군가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나 위로가 될 수 있다면, 혹은 자신의 평등성을 주장하는 누군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이것은 내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희생하더라도 충분히 밝힐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64) 타자를 중심에 세운 배려의 윤리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쿡은 인종차별 문제와 동성애 문제를 바탕으로 기업을 경영하는 윤리의식에 접근했다. 쿡이 제시한 여섯 가지 원칙은 애플이라는 기업의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나타내는 가치라는 걸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애플이라는 기업 또한 중국 등지에서 노동자들이 노멀 헥산에 노출되어 병원에 입원하는 등 다양한 문제들을 일으켰다. 앞서 얘기한 대로 자본은 이익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노동자야 병들든 말든 냉혹한 자본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탐사보도 기자 출신인 마 준은 2011년 초 ?애플의 이면?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애플의 공급업체가 대중의 건강과 안전을 위태롭게 할 만큼 심각한 오염을 유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지은이는 잡스 사후 이런 문제에 대처하는 애플의 자세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그 중심에는 쿡이 있다. 쿡이 환경을 경영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면서 애플의 그린피스 등급은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제품 당 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양은 매년 감소했고, 세계 곳곳의 제조 시설과 사무실, 매장 등에서 석탄 대신 재생에너지에 의존하는 비율도 갈수록 높아졌다.

 

나는 애플의 CEO가 되기 오래전부터 근본적인 진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사람은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인정받을 때, 보다 기꺼이 헌신한다는 것이다.” 그는 직원을 고용할 때 성 지향성이나 성 정체성을 근거로 차별하는 행태를 금지하는 고용차별금지법Employment Nondiscrimination’의 지지를 상원에 촉구했다. “게이나 레즈비언이 직장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에 대해 법이 계속해서 침묵하는 한, 국민으로서 사실상 우리 모두가 그들의 차별에 동의하는 것이다.” 그는 이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글을 마무리했다. “의회는 고용차별금지법을 승인하여 그러한 편협에 일격을 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 법안은 201311월 말 찬성 64, 반대 32표라는 높은 지지로 상원을 통과했다. (329~330)

 

인종차별 문제와 동성애 문제는 사실 다양성문제와 연결된다. 쿡은 2015다양성은 애플의 미래다.’라고 밝혔다. “애플의 제품이 실로 대단한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 엔지니어와 컴퓨터공학자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예술가와 음악가도 있지요. 바로 그런 공학과 인문학의 교차가 마법과도 같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근원입니다.”(330) 한 기업을 지배하는 세계관이 그 사회를 지배할 수 있다. 한국사회가 왜 삼성공화국이라고 불리겠는가? 삼성이 윤리의식을 지키면 한국사회도 윤리의식을 지킨다. 반대로 삼성이 윤리를 어기면 한국사회도 윤리를 어긴다. 삼성이라는 재벌이 지금 우리에게 윤리적으로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다양성을 애플의 미래로 상정한 쿡의 이야기에는 소수집단을 보호하려는 윤리의식이 담겨 있다. 지은이는 쿡의 이러한 비전이 애플이라는 기업에 어떤 윤리를 부여하고 있는지 밝히고 있다. 정말 그런가를 따지기 이전에, 쿡이 지향한 경영 철학이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재벌들과 다르다는 점을 우리는 분명히 인식해야 하겠다.

 

우리가 이 책을 읽는 이유는 쿡의 기업윤리가 한 사회를 이루는 근원적인 윤리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쿡은 환경, 다양성, 정보의 개방 등과 같은 윤리의식을 기업의 미래로 상정하고 있다. 윤리의식은 타자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뻗어 나온다. 한 기업을 운영하는 인물이 사욕(私慾)에 치우친다면 그 기업이나 사회는 미래가치를 상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은이는 쿡이 애플을 비롯한 전체 기술 업계를 윤리적 개혁의 길로 이끌고 있다.”(398)고 주장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기후변화와 관련된 조치에서 한 발 두 발 물러서고 있는 상황에서도 애플은 환경보호에 중점을 두는 경영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애플이 사업을 운영하는 25개 국가에서는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지은이는 여전히 애플과 관련이 있는 많은 노동현장에서 노동력 착취와 근로자에 대한 학대가 자행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다만 쿡이 애플을 경영하면서 그런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이전과 분명히 달라졌다는 것을 지은이는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다.

 

쿡은 잘하면서 동시에 선을 행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격언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403)고 지은이는 이야기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어차피 자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자본을 부정하면 자본주의 사회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결국 자본을 증식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자본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점에 있다. 쿡은 이전 CEO인 스티브 잡스보다 기업의 가치관을 중시하고 있다. 그는 차별이 없는 사회, 다양성을 인정하는 기업을 모토로 소수집단을 배려하고, 환경을 보존하는 경영 전략을 펼치고 있다. 세계 최초로 1조 달러 기업이 된 애플의 수장이 내보인 기업윤리에서 지은이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세계를 엿본다. 냉혹한 자본에 따뜻함을 불어넣으려면 자본을 이용하는 사람이 변해야 한다. 우리가 기업윤리를 중시하는 팀 쿡의 경영 전략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기업을 위해 사회가 있는 게 아니다. 사회를 위해 기업이 있는 것이다. 아주 단순한 이 진실이 허물어질 때, 우리는 사는 자본주의 사회는 말 그대로 지옥보다 더한 지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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