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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수로왕과 허 황후 | 연인들 사랑을 묻다 2020-09-01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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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 사랑을 묻다

오홍진 저
피서산장 | 2020년 08월

 

 

국가는 왕이 지닌 힘만으로 운영될 수 없습니다. 왕이 강력한 힘으로 통치하면 백성들은 언제나 그 힘(폭력이라고 해도 됩니다)을 벗어나 살 궁리를 합니다. 억압을 좋아하는 백성은 없기 때문입니다. 강한 힘으로 탈해를 물리친 김 수로왕은 허 황후를 아내로 맞이하면서 힘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방식에서 비로소 벗어납니다. ()의 견제를 받지 않는 양()은 화려한 불꽃을 피우고는 이내 허공으로 흩어져 버립니다.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펼쳐진 인류의 역사가 전쟁으로 점철된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서로를 예()로 대하는 연인들은 결코 전쟁과 같은 비극적 상황으로 빠져들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엇보다 전쟁과 다릅니다. 전쟁은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망에서 뻗어 나오지만, 사랑은 자기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상대에게 주는 마음에서 뻗어 나옵니다. 사랑은 또한 집착과 다릅니다. 집착은 상대를 소유하려는 욕망입니다. 집착을 사랑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연인을 동등한 존재로서 인정하지 않습니다. 집착에 빠진 사람은 머릿속에 그린 이미지를 연인에게 투영합니다. 어떻게든 상대를 그 이미지에 맞추려고 합니다.

 

자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싸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중심에 있지 않으면 그들은 한없이 불안해합니다. 김 수로왕 신화는 권력이 느끼는 이런 불안을 탈해라는 외부에서 온 반역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김 수로왕은 바깥을 향한 불안감을 씻어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는 힘=폭력을 선택하지 않고 사랑을 선택합니다. 외부에서 온 허 황후를 맞아들임으로써 김 수로왕은 자기를 외부로 개방하는 겸손함을 내보였고, 그것이 결국은 한 나라를 공고히 하는 뿌리로 작용한 것입니다. (34~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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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 소설 읽기 2020-09-01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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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최윤 저
문학과지성사 | 2018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소녀는 왜 오빠를 찾아 길을 떠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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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오빠를 찾아 떠도는 소녀

 

한 소녀가 있다. 그녀는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는 공사장을 홀로 떠돌다가 낯선 남자의 뒤를 바싹 따라붙는다. 어떤 남자는 뒤에서 들리는 거친 숨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봤다가 소스라치듯 달아나고, 어떤 남자는 소녀의 더러운 모습을 보며 땅에 침을 뱉는다. 어떤 남자는 눈을 부라리며 때릴 듯이 소녀를 저 멀리로 내쫓는다. 그래도 소녀는 어딘가에서 본 듯한 얼굴이라고 느껴지면 서슴없이 낯선 남자를 따라간다. 도대체 이 소녀는 왜 이러는 것일까? 남자들이 무섭지도 않은 것일까? 사람들 눈에는 미친 여자로밖에 비치지 않는 이 소녀의 마음 깊은 곳에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숨어 있다. 소녀는 지금 그 상처와 맞닥뜨릴 수 없어 이렇게 사방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최윤이 지은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1980년에 일어난 광주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꽃자주빛깔의 우단치마를 입고 묘지를 배회하는 한 소녀를 통해 역사의 비극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개인의 삶을 이야기한다. 소녀는 지금 어디에도 없는 죽은 오빠를 찾아다니고 있다. 찾을 수 있어서 찾으려는 게 아니다. 죽은 오빠를 찾는 행위 자체가 소녀에게는 죽은 엄마를 향한 죄책감을 씻는 행위로 비쳐진다. 일반 사람들 눈으로 보면 정신이 나간 듯이 보이지만, 소녀가 벌이는 행동 하나하나에는 죽은 이들을 향한 애타는 마음이 스며들어 있다. 소녀의 마음 깊이 자리한 아픔에 공명하지 못하면, 어느 누구도 헤어나기 힘든 슬픔에 빠진 소녀와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는 셈이다.

 

소녀는 끔찍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길을 걷는 게 아니다. 그 기억은 이미 소녀의 몸속 깊이 새겨져 있다. 제 몸을 산산조각내지 않는 한 기억 또한 당연히 사라질 리가 없다. 길을 떠난 소녀는 그래서 몸을 돌보지 않는다. 돌보기는커녕 틈만 나면 자해를 한다. 길거리에서 만난 이런저런 남자들의 ()폭력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소녀는 제 몸을 파괴하려는 끔찍한 욕망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이를테면, 죽은 오빠를 닮은 남자가 소녀의 몸에 차가운 물을 붓자 소녀는 온몸을 떨며 시멘트 조각으로 제 몸을 문지르기 시작한다. 온통 보랏빛 멍으로 물든 몸 위로 붉은 선들이 그어진다. 자기 몸에 상처를 냄으로써 소녀는 악몽 같은 기억에서 벗어나는 길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몸에 상처를 낸다고 기억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소녀는 제 몸에 상처를 낸다. 어찌 보면 소녀는 이 방법으로 오빠와 엄마를 죽인 세상에 저항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학에 다니던 오빠가 이유도 모른 채 죽었고, 오빠가 죽은 원인을 밝히려던 엄마 또한 계엄군이 쏜 총탄에 맞아 길 한복판에서 죽었다. 가장 가까운 이들이 죽었지만 소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지금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저 죽은 오빠를 찾아 길을 떠나서는 정처 없는 발길을 옮길 뿐이다. 남자들이 몸을 탐해도 소녀는 저항하지 않는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섬뜩한 웃음소리만 허공으로 내뱉는다.

 

소녀는 엄마가 죽은 그 날의 기억을 검은 휘장 너머로 밀어내버렸다. 그 날을 떠올리면 검은 휘장이 먼저 소녀의 눈을 가린다. 암흑 세상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웅성대던 거리가 보이는데도 엄마가 죽는 장면을 떠올릴라치면 어김없이 검은 휘장이 드리워진다. 엄마도 소녀도 단 한 벌의 외출복을 입고 거리로 나섰다. 시내에 나가려면 버스를 탔을 텐데도 버스에 탄 기억마저도 나지 않는다. 소녀는 왜 그 날의 기억을 암흑으로 만들어버린 것일까? 검은 휘장 너머에는 소녀가 피하고 싶은 진실이 숨어 있다. 그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소녀는 이 땅에 발을 딛고 살 근거를 잃을지도 모른다.

 

어디를 가도 오빠가 묻힌 무덤을 소녀는 찾을 수 없다. 오빠의 죽음을 알린 사람들은 오빠가 묻힌 무덤이 있다고 말했지만, 어디 그곳에 갈 겨를이나 있었던가. 오빠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소녀는(물론 엄마도) 모른다. 다만 오빠가 죽었다는 통지서를 받았을 뿐이다. 학생운동을 한 오빠는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그것을 밝히기 위해 엄마는 사방으로 뛰어다녔지만, 그녀 또한 계엄군이 쏜 총을 맞고 생을 마감했다. 소녀는 두 사람의 죽음에 내포된 역사적 진실을 알지 못한다. 그 진실에 다가갈 (육체적/정신적) 힘도 없다. 그녀는 죽은 엄마를 이야기하기 위해 죽은 오빠를 찾는다. 소녀가 걷는 길 자체가 역사의 슬픔을 알리는 길이 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소녀는 죽은 오빠를 찾아 길을 떠남으로써 이 땅에서 벌어진 비극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멜랑콜리와 애도 사이

 

소녀는 엄마의 죽음에 매여 있다. 죽은 엄마를 검은 휘장으로 덮어버린 소녀는 엄마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 날 총에 맞은 엄마는 소녀의 손을 억세게 움켜쥐며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했다. 소녀는 오빠 얘기였을 거라고 짐작한다. 정말로 오빠 얘기였을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죽은 오빠를 찾아 떠난 소녀의 여정이 엄마가 하려는 마지막 말=유언과 연동되어 있다는 점에 있다. 정신이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소녀는 오빠를 찾는 일만은 잊지 않는다. 그녀는 죽은 오빠를 닮은 남자와 몇 달 동안 동거 생활을 했다. 남자의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소녀는 한동안 남자 곁을 떠나지 않았다.

 

창고를 개조한 누추하고 좁은 방에서 소녀는 말 그대로 없는 듯이 살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남자는 자물쇠로 방문을 채우지도, 소녀에게 술을 먹이거나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았다. 남자가 더러 찬거리를 사들고 귀가하면 소녀는 밥을 하고 찌개를 끓였다. 밥을 먹으면서 남자는 소녀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기도 했다. 청춘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이미 청춘을 잃은 얼굴이 망연한 표정으로 남자의 눈앞에 드리워졌다. 그런 소녀를 보며 남자는 저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소녀는 눈물을 흘리는 남자가 신기했는지 왁자하게 웃어댔다. 남자 또한 소녀를 따라 어깨를 들썩대며 웃어젖혔다.

 

잠에 빠져들면 소녀는 괴성을 지르지도 않고 이유 없이 웃어대지도 않았다. 꿈을 꾸는 듯 소녀는 몇 마디 말을 웅얼대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남자는 소녀의 말에 응답하며 다음 말을 기다리기도 했다. 다행히 소녀가 꾸는 꿈은 악몽이 아닌 모양이었다. 살짝 미소를 짓는 때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남자가 구두와 옷과 머리빗을 사다주어도 소녀는 그저 등골이 오싹한 웃음소리만 내뱉었다. 소녀는 대체 누구를 보고 저리 웃는 것일까? 남자는 한없이 궁금했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좀 더 시간이 흐르자 소녀는 시늉이긴 하지만 몸을 가꾸기 시작했다.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보며 깔깔깔 웃기도 했다.

 

이 즈음 남자는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금기처럼 전해지는 소문을 들었다. 한 도시에서 벌어진 악몽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남자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소녀를 떠올렸다. 소문 속에서 펼쳐진 그 끔찍한 사건이 소녀를 이리 만들었는지 남자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소녀가 그에 버금가는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소녀는 그러니까 그 사건과 연결된 누군가와 남자를 혼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뒤에 밝혀지지만 실제로 남자는 소녀가 찾아 나선 죽은 오빠와 닮았다. 소녀가 왜 갖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남자 곁에 붙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아침이 오면 신성한 제의를 치르듯 몸을 가꾸던 소녀는 언젠가부터 외출을 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볕이 좋은 시장 구석에 쭈그리고 앉은 소녀를 보고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시든 꽃을 꽂은 소녀는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지나가는 행인들을 보았다. 시장 사람들은 일주일 전부터 오후 늦은 시간이 되면 소녀가 저리 나타나 햇볕을 쬔다고 했다. 남자는 소녀가 어느 순간 갑작스레 사라질까 두려웠다. 소녀가 보는 세계를 지금 남자는 전혀 볼 수 없다. 소녀는 주변 상황에 어떤 반응도 내보이지 않았다. 스폰지처럼 빨아들이기만 했다. 소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이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남자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하루 일을 쉰 남자는 아침 제의를 끝내고 문을 나선 소녀의 뒤를 따라갔다. 연지를 발랐는지 입술 주변에 새빨갰다. 남자가 사다준 적이 없으므로 어디선가 주운 것을 입술에 발랐으리라. 자주색의 낡은 외출복을 입고 짝이 바뀐 에나멜 구두를 신은 채로 소녀는 몽유병자처럼 두 손으로 허공을 더듬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많이 걸어본 길인 듯, 소녀는 망설임 없이 방향을 잡았다. 강변의 공사장을 지나 소녀는 숲속으로 발길을 옮겼다. 나무 아래 사지를 펼치고 누웠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녀는 경사지를 날렵하게 기어올랐다. 숲을 빠져나온 소녀는 붉은 불 앞에 멈추어 몸 여기저기에 묻은 지푸라기를 털어냈다.

 

녹색 불이 들어오자 소녀는 길 건너편으로 걸어갔다. 길 건너편에는 (공동)묘지가 있다. 묘지 안에서도 소녀는 망설임이 없이 움직인다.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소녀가 멈추어 선다. 사방으로 묘비들이 뻗어 있다. 소녀는 묘석들 위에 드문드문 놓인 꽃다발을 모아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묘비에 내려 한 송이씩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몸을 좌우로 흔들며 입으로는 무언가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읊조리는 소리가 높아질수록 소녀의 몸은 더욱 더 거세게 흔들렸다. 소녀는 지금 온몸으로 죽은 영혼들과 소통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제 몸을 한 맺힌 영혼들에게 내어주고 있다. 무당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나 할까.

 

이름 모를 묘지 앞에서 의식을 마친 소녀가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평화로운 얼굴을 한 소녀가 서너 송이 시든 꽃을 머리에 꽂은 채로 남자 앞을 지나간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소녀는 시장에 다다라 햇볕 좋은 곳에 쭈그리고 앉는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소녀는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소녀는 이제 남자가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다. 남자는 소녀가 들어간 이 장소를 백색의 공간이라고 표현한다. 이곳에는 오로지 소녀만이 들어갈 수 있다. 남자가 그곳으로 들어가려면 스스로 소녀가 되어야 한다. 남자는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소녀는 소녀이고, 남자는 남자이다.

 

소녀는 이름 모를 묘지를 찾아 스스로 애도하는 길을 찾고 있다. 애도란 죽은 사람을 저승으로 보내는 의식을 의미한다. 애도를 하는 주체는 물론 산 사람이다. 산 자는 죽은 자를 저승으로 보내고 이승에서 살 도리를 마련한다. 애도는 그러니까 죽은 자를 저승으로 보내는 의식이면서도 동시에 산 자를 이승에서 살도록 하는 의식이라고 하겠다. 죽은 자에 집착하는 사람은 멜랑콜리로 애도를 대신한다. 멜랑콜리에 빠진 사람은 죽은 자를 저승으로 보내지 않고 제 곁에 머물게 한다. 죽은 자는 여전히 산 자의 의식 속에 살아 있다. 죽은 자와 더불어 삶을 누리는 격이라고나 할까.

 

엄마의 끔찍한 죽음을 잊기 위해 소녀는 죽은 오빠를 찾아 길을 떠났다. 여기저기를 떠돌며 소녀는 스스로 제 몸을 파괴한다.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도 없고, 오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도 없다.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소녀가 어떻게 죽은 자들을 애도할 수 있을까? 소녀는 그래서 두 사람의 죽음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지려고 한다. 한데, 그럴수록 그 날의 기억이 소녀의 뇌리를 휘젓는다. 그 날의 기억을 검은 휘장으로 덮어도 소용이 없다. 정신이 순간적으로 맑아지는 때가 오면 그 날의 기억은 어김없이 소녀의 온몸을 파고든다. 지독한 몸살처럼 온몸을 떨고 나면 잠시나마 평화로운 침묵이 찾아온다.

 

소녀는 어찌 보면 온몸을 가로지르는 이 고통을 해소하는 방법이 한 맺혀 죽은 영혼과 하나가 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깨우쳤는지 모른다. 해서 그녀는 스스로 (공동)묘지를 찾는다. 아무 관계가 없는 영혼들의 무덤가에 앉아 소녀는 기꺼이 제 몸을 그 영혼들에게 내어준다. 멜랑콜리에 빠져 깊은 절망의 늪에 빠져들던 소녀는 이렇게 죽은 이를 향한 애도의 길을 열어젖힌다. 소녀 앞에 이 무덤이 바로 죽은 오빠의 무덤일지도 모른다. 죽은 오빠의 무덤에서 소녀는 죽은 엄마의 영혼을 몸속 깊이 불러들인다. 일반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이 길로 소녀는 거침없이 나아간다. 그만큼 소녀의 가슴에 맺힌 한이 깊고도 깊은 것이다.

 

검은 휘장을 뜯어내면

 

깊고도 깊은 소녀의 한을 들여다보려면 우리는 그 날의 현장으로 가야 한다. 그 날 엄마와 소녀는 하나뿐인 나들이옷을 입고 거리로 나섰다. 오랜만에 소풍을 간 것이 아니었다. 엄마는 소녀를 데리고 가지 않으려 했지만, 엄마를 잃을까 두려워한 소녀가 억지로 따라붙었다. 엄마는 이른 아침부터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매만졌다. 연분홍빛 치마와 저고리로 치장을 한 엄마는 소녀에게 오늘은 학교에 가지 말라고 했다.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에 압도당한 소녀는 엄마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엄마는 한사코 소녀를 떼어놓으려고 했다. 그럴수록 소녀는 더욱 더 불안해졌다. 결국에는 엄마가 포기하고 말았다.

 

버스는 시내까지 들어가지 못했다. 모녀는 시 외곽 외딴길에서 내려 무작정 시내를 향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독한 냄새가 풍겨왔다. 냄새에 질린 소녀가 길거리에 쪼그리고 앉아 토악질을 할 때도 엄마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수십 개가 넘는 골목을 돌고 또 돌아 모녀는 수많은 사람들로 넘쳐나는 시내 거리에 드디어 이르렀다. 하늘에서는 헬리콥터가 굉음을 내며 떠다녔고, 땅에서는 사람들이 서로서로 어깨를 껴안고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소녀를 한 건물 안으로 밀어 넣고는 문을 닫았지만, 소녀가 가만있을 리 없었다. 엄마는 소녀를 건물 안으로 떠밀고, 소녀는 어떻게든 엄마 곁에 있으려는 실랑이가 계속되었다.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소녀와 함께 사람들이 모인 광장으로 들어섰다. 수많은 사람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가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는 드넓은 하늘로 퍼져 올라 광장을 들끓게 했다. 갑자기 아우성이 터지면서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악을 쓰면서, 신음하면서, 피를 토하면서, 엎어지고 그 위로 떨어지는 광란의 막대기들, 번쩍이는 금속의 날들, 잔혹한 웃음을 낭자하게 흘리면서 도망가는 학떼를 덮치는 얼굴들. 꺾이는 얼굴, 일그러진 얼굴, 얼굴들. 빛을 모두 잃은, 순식간에 비어버리는 얼굴들.”(280~281) 그 얼굴들 속에 총을 맞고 쓰러진 엄마가 있었다.

 

몸에 구멍이 난 엄마는 소녀 쪽으로 얼굴을 돌린 채 그대로 숨을 놓았다. 소녀는 그 순간을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주 천천히 흐르는 장면 속에서 엄마는 소녀에게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흰자위가 눈을 덮어버린 뒤였다. 그 상태로 엄마는 소녀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소녀는 엄마 손을 떼어내고 저 멀리로 달아나려고 팔을 휘둘렀다. 소녀는 엄마 손에서 쉬이 제 손을 빼어내지 못했다. 한 발로 엄마 팔을 누르고 간신히 손을 빼낸 소녀는 정신없이 이동하는 무리에 끼여 골목으로 달아났다. 눈을 감고 달음질치면서도 소녀는 엄마 손이 늘어나 자기를 다시 잡을 것만 같아 두렵고 또 두려웠다.

 

소녀는 지금도 엄마 손에서 느껴지던 그 촉감을 잊지 못하고 있다. 하긴 어떻게 잊을 수 있으랴. 이미 몸속 깊이 새겨진 그 촉감을 소녀는 결코 떨쳐낼 수 없다. “내 끔찍한 범죄의 자리”(283)라는 말에 나타나는 대로, 소녀는 엄마 손을 뿌리치고 도망친 이 상황을 범죄로 생각하고 있다. ‘너에게는 아무 죄가 없다는 말을 들려준다고 소녀가 엄마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날 리는 만무하다. 이 일을 겪은 후로 소녀는 이제 다시는 고향에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여긴다. 고향으로 갈 수 없는 소녀는 죽은 오빠를 찾아 나선다. 오빠를 두 번 죽이게 된다 해도 소녀는 엄마의 죽음에 대해 오빠에게 말하려고 한다.

 

오빠가 묻힌 무덤 앞에서 소녀는 죽은 엄마를 애도하려고 한다. 이름 모를 사람들이 묻힌 공동묘지에서 소녀는 이렇게 죽은 엄마를 애도하는 길을 열어젖힌다. 소녀의 끔찍한 기억을 가로막고 있는 검은 휘장이 걷히면 소녀의 흉악한 얼굴이 사람들 눈앞에 펼쳐진다. 어찌 보면 검은 휘장은 소녀 스스로 만들어낸 무의식인지도 모른다. 검은 휘장이 걷히는 순간 소녀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잃어버리게 된다. 무의식에 새겨진 끔찍한 기억들이 현실 속으로 밀려드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죽음보다도 더욱 더 끔찍한 이 기억과 마주함으로써 소녀는 비로소 죽음 너머로 나아가는 길을 발견하는 셈이다.

 

죽은 너머로 가는 그 길 위에서 소녀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세 가지 시선으로 소녀가 겪는 비극을 서술하고 있다. 우선 죽은 오빠를 닮은 남자의 시선이 있다. 소녀는 남자와 동거하면서 잠시나마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그녀가 공동묘지를 찾아 애도 의식을 치르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 이러한 마음 상태와 결부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주목할 시선은 소녀 자신의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소녀의 시선으로 엄마의 죽음을 세세하게 묘사한다. 엄마가 죽는 순간은 소녀의 뇌리에 이미지로 새겨져 있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소녀는 이 기억=이미지를 지울 수 없다.

 

세 번째 시선은 소녀의 비극을 역사적으로 아우르는 작가의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시선은 죽은 오빠의 동료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그들은 소녀가 만난 사람들을 수소문하며 소녀가 걸어간 길을 하나하나 밝혀나간다. 길 위에서 소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어떤 남자는 소녀를 겁탈했고, 어떤 여자는 소녀의 얼굴에 드리워진 고통을 온몸으로 끌어안으려 했다. 그네들을 겪으며 소녀는 죽은 오빠가 묻힌 무덤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오빠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알 리 없는 소녀는 이름 모를 이들이 묻힌 무덤 앞에서 애도 의식을 치렀다. 자기 몸을 죽은 영혼들에게 내어줌으로써 소녀는 마음속 깊이 자리한 한을 풀 수 있었던 것이다.

 

40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소녀는 그 어느 곳에서 죽은 오빠를 찾아 떠돌고 있는지도 모른다. 온몸에 새겨진 엄마의 감각을 잊기 위해 그녀는 삶도 아니고 죽음도 아닌 경계를 헤매고 있다. 누가 소녀를 이토록 깊은 슬픔에 빠뜨린 것일까? 오빠가 죽지 않았다면, 오빠가 죽은 이유를 파헤치기 위해 엄마가 거리로 나서지 않았다면, 소녀는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여느 소녀들과 같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 소녀를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이름 모를 무덤들 앞에서 한 맺힌 영혼들을 애도하는 소녀를 다시금 떠올려 보라.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네 딸이 마음에 맺힌 한을 우리에게 풀어달라고 요청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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