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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그 여자네 집 | 소설 읽기 2020-09-03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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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 여자네 집

박완서 저
문학동네 | 2006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역사의 뒤편에서 한없이 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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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완서, 「그 여자네 집」

 

       

그 여자, 곱단이

 

박완서가 지은 소설 「그 여자네 집」은 김용택 시인의 시 「그 여자네 집」을 읽는 데서 시작하고 있다. 작가는 이 시를 통해 지나간 시대의 비극으로 들어가는 길을 열고 있다.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운 집이라는 시구에 나타나는 대로, 작가는 그 시절의 비극 속에 담긴 또 다른 아픔을 소설 언어로 그려낸다. 비극으로 인식되는 그 시대에도 아름다운 사랑을 나눈 청춘들은 있었다. 청춘들의 사랑이 아름다울수록 비극성은 그만큼 더 강화된다. “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 그 여자/ 아버지와 그 여자 큰오빠가/ 지붕에 올라가/ 하루 종일 노랗게 지붕을 이는 집/ 노란 집에 대한 추억이 지금은 가슴 아픈 기억이 되어 마음 깊이 새겨져 있다.

 

김용택은 이 노란 집을 가만히,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가만 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이라고 표현한다. 지금은 사라진 이 집을 호명하며 시인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청춘을 노래한다. 못밥을 머리에 인 채 함박꽃처럼 환하게 웃던 그 여자를 시인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누구나 청춘 시절을 겪는다. 청춘의 낭만이란 그 시절을 보낸 사람의 마음속에 새겨진 아련한 이미지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 ?그 여자네 집?에 나오는 만득이와 곱단이라고 다를까? 역사적 비극이 미치지 않는 장소에서 그들은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역사의 비극을 말하기 전에 아름다운 사랑을 먼저 말해야 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 박완서는 서술자 의 시선으로 만득이와 곱단이가 나눈 애틋한 사랑을 전달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를 밑바탕에 깔고 이루어지는 두 사람의 사랑은, 역사의 비극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세밀히 보여주고 있다. 곱단이는 내리 사형제를 낳은 한 자작농 집안의 고명딸로 태어났다. 만득이는 곱단이네 집일이라면 발 벗고 나섰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만득이를 보며 처갓집 말뚝에도 절을 할 놈이라며 혀를 찼지만, 실제로는 두 사람의 고운 사랑을 기렸다. 만득이를 곱단이 신랑으로 인정한 것이다. ‘를 비롯한 또래 아이들에게 두 사람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곱단이는 시골 아이답지 않게 살갗이 희고, 맑은 눈에 속눈썹이 길었다. 나는 그녀의 속눈썹이 얼마나 길었는지 표현할 말을 몰랐었는데 김용택의 시 중에서 마침내 가장 알맞은 말을 찾아냈다. 함박눈이 내려앉아서 쉴 만큼 길었다. 함박눈은 녹아 이슬방울이 되고 촉촉이 젖은 눈썹이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 그늘을 드리우면, 목석의 애간장이라도 녹일 듯 애틋한 표정이 되곤 했다. 만득이는 총명하여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았고, 생긴 것 또한 관옥 같았다. 촌구석에서는 드문 인물들이었다. 만득이가 개천에서 난 용이라면 곱단이는 진흙탕에 핀 연꽃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이 장차 신랑 각시가 되면 얼마나 어여쁜 한 쌍이 될까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이구동성으로 두 사람의 천생연분을 점친 것이다.

 

함박눈이 내려앉을 만큼 속눈썹이 긴 곱단이와 관옥 같은 얼굴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았던 만득이는 비상한 시대 속에서 곱디고운 사랑을 키워나갔다. “곱단이와 만득이는 우리 마을의 화초요 꿈이었다.”라고 는 말한다. 1940년대의 보수적인 시골 마을에서 사랑의 꽃을 피운 두 사람을 사람들은 마치 자기 일인 양 느꺼워하며 바라보았다. 만득이가 뒤늦게 읍내 중학교로 입학하자, 곱단이는 아버지를 졸라 십 리 밖에 있는 소학교 분교에 입학했다. 읍내로 가려면 고개를 두 개 넘고 시냇물을 한 번 건너야 했다. 둘은 자연스레 등하굣길을 같이 했다. 만득이가 앞서 걷고 곱단이는 한참이나 뒤져서 걸었다. 시대 풍습이 그러했다.

 

비가 많이 오면 시냇물에 놓인 흙다리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비를 맞아 미끄러운 다리 앞에 서면 여자아이들은 늘 마음을 졸였다. 그런 날이면 만득이는 어떻게든 시간을 맞추어 곱단이를 흙다리 너머로 건너다 주었다. 곱단이가 무섭다 하면 만득이는 괜찮다 하며 살살 미끄러운 다리를 건넜다. 자연 둘은 얼싸안다시피 한 채로 흙다리를 건너야 했다. 그것을 본 아이들이 흙다리는 연애다리라는 소문을 냈고, 소문은 금방 어른들 귀에도 들어갔다. 구닥다리 노인들도 흐뭇한 마음으로 그 소문을 대했다. 어차피 혼인할 아이들이 아닌가. 암울한 시대 상황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청량제와 같은 것이었다.

 

중학교 상급반이 된 만득이는 문학에 눈을 떴는지 춘원 이광수의 소설을 늘 손에 들고 다녔다. 유명한 지식인들이 하나둘 친일로 전향하는 시절에 만득은 학생들과 문학과 세상 얘기를 하며 울분을 토해냈다. 식민지 시대를 사는 청년으로서 시국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것이기도 했지만, 그 이면에는 만학의 중학생으로서 지적 허영심을 충족하려는 마음 역시 없지 않았다. 만득이가 오오! 하늘보다 너른 나의 바다.”라는 임화의 시 구절을 읊으며 격정적으로 외칠 때마다 곱단이는 한없이 가슴이 떨렸다. 그녀는 만득이가 보낸 연애편지를 자랑하듯 어린 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별다를 게 없는 청춘의 사랑으로 그들은 그 시절을 보낸 셈이다.

    

1945년 그해에 벌어진 일

 

“1945년 봄에도 행촌리에 살구꽃 피고, 꽈리꽃, 오랑캐꽃, 자운영이 피었을까.”라는 물음으로 비극의 역사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젖힌다. 식민지 시대 시인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는 구절을 연상케 하는 이 물음을 통해 는 당대 청춘들에게 몰아닥친 역사의 슬픔을 드러낸다. 봄이 왔으니 살구꽃이 피지 않았을 리 없다. 꽈리꽃도 피었을 테고, 오랑캐꽃, 자운영도 피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는 자꾸만 꽃이 피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청춘들이 거센 눈보라에 휘말려 채 꽃도 피우지 못하고 스러졌기 때문이다. 개인의 삶 깊이 역사가 개입해 들어왔다고나 할까.

 

박완서의 「그 여자네 집」은 단순히 청춘남녀의 사랑을 다룬 소설이 아니다. 이 소설은 일제 식민지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비극을 중심에 배치하고 있다. 만득이와 곱단이, 두 청춘에게 벌어진 비극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징병이나 정신대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다. 1945년 그해에 만득이가 징병으로 끌려가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양쪽 집안 모두 만득이와 곱단이를 결혼시키려고 했다. 어차피 마을에서 소문난 사이가 아니던가. 한데, 만득이가 한사코 혼례를 치르지 않으려고 했다. 전쟁터에 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이유였다.

 

만득이는 새벽닭이 울 때까지 곱단이를 끌고 다니며 이런 제 뜻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사위스러워서 아무도 입에 올리진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만득이가 사지(死地)로 가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곱단이를 과부 안 만들려는 그의 깊은 마음을 내심 여간 대견히 여기는 게 아니었다.”는 진술에 드러나는 대로, 만득이는 곱단이 입장에 서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들여다보았다. 곱단이가 만득이의 이 마음을 몰랐을 리 없다. 그녀는 그런 것과 상관없이 만득이와 혼례를 올리고 싶었다. 평생을 과부가 되어 살지 모른다 해도 지금 당장은 만득이를 남편으로 맞이하고 싶었다.

 

만득이만이 아니라 곱단이의 두 오빠 역시 징용으로 끌려갔다. 부모를 모시는 큰오빠와 공장에 취직한 셋째오빠만 간신히 징용을 피했다. 사람만 끌고 간 게 아니다. 양식도 남김없이 휩쓸어 가버렸다. 1941년에 일어난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시기였다. 일제는 조선인들을 전쟁터로 내몰아 총알받이로 삼으려 했다. 이광수와 같은 유명 문인들은 청년학생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천황폐하를 위해 다 같이 죽자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시대가 미쳐갈수록 사람들 또한 미쳐갔다. 아니, 사람들이 미치니 시대 또한 미칠 수밖에 없었다.

 

동구 밖에서 감춰 놓은 곡식을 뒤지려고 나타난 면서기와 순사를 보고 정신대를 뽑으러 오는 줄 지레짐작을 한 부모가 딸애를 헛간 짚더미 속에 숨겼다고 했다. 공출 독려반들은 날카로운 창이 달린 장대로 곡식을 숨겨 두었음직한 곳이면 닥치는 대로 찔러보는 게 상례였다. 헛간에 짚가리로 창을 들이대는 것과 그 부모네들이 안 된다고 비명을 지른 것은 거의 동시였다. 창 끝에 처녀의 살점이 묻어 나왔다고도 하고, 꿰진 창자가 묻어 나왔다고도 하고, 처녀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도 하고, 피를 많이 흘리면서 달구지로 읍내 병원으로 실려 갔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고도 했다. 아무튼 그 소문의 파문은 온 면내의 딸 가진 집을 주야로 가위눌리게 했다.

 

만득이가 징병에 끌려간 후 이번에는 곱단이가 정신대 징집 대상에 오르는 상황이 벌어진다. 인용문에 드러나는 대로 상황이 심각했다. 면서기와 순사가 과년한 딸이 있는 집들을 돌아다니며 강제로 정신대에 집어넣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정신대를 피하기 위해 헛간 짚더미 속에 숨은 처녀가 공출 독려반원이 내지르는 창에 찔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는 끔찍한 소식까지 들려왔다. 군수공장에 다니는 오빠가 부랴부랴 곱단이의 남편감을 구해 왔다. 그녀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가 정한 남자(그것도 첫 부인에게 아들을 얻지 못해 재혼을 한 남자)와 혼인해서 신의주로 건너가게 됐다.

 

징병에 끌려간 만득이는 무사히 살아서 고향에 돌아왔다. 하지만 곱단이는 이미 고향을 떠난 뒤였다.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어난 역사적 사건으로 하여 두 사람은 사랑을 이루지 못한 셈이다. 몇 달 후 일제는 전쟁에서 항복 선언을 했고, 사람들은 꿈에 그리던 해방을 맞았다. 만득이와 곱단이가 사랑을 꽃피운 땅은 삼팔선 이남이 되어 이북의 신의주와는 완전히 길이 끊기고 말았다. 만득이가 제 고집을 꺾고 곱단이와 혼인을 한 뒤 징병에 끌려갔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같은 물음인지도 모른다. 개인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라고 말해도 좋겠다.

 

문제는 이 비극이 만득이와 곱단이 두 사람을 넘어 다른 이들에게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만득의 아내가 된 순애의 삶이 바로 그렇다. 징병에서 돌아온 만득이는 순애라는 고향 여자를 만나 혼인에 이른다. 그는 아마도 곱단이를 완전히 잊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곱단이를 그리워하며 허송세월을 할 수도 없다. 외아들인 만득이를 집안에서 가만히 놔두지도 않았으리라. 곱단이가 다른 남자와 혼인해 신의주로 떠났으니 만득이 역시 다른 여자를 만나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야 했다. 혼인날, 마을 풍습대로 만득이는 청년들에게 발바닥을 맞았다. 그는 발바닥을 맞으며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발바닥이 아파서 그리 울지는 않았을 것이다.

 

는 소문으로 만득이와 순애네 소식을 듣긴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 희미한 소식마저 끊어졌다. 그러다가 십 년 전에 고향 군민회에 갔다가 는 만득이와 순애 부부를 다시 만난다. 순애는 남편인 만득이가 곱단이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고 에게 하소연했다. “돈 잘 벌고 생전 외도라곤 모르고, 애들한테 잘 하고, 나한테도 죄지은 것 없이 죽는 시늉도 하라면 하는 남편이 어디 있냐고들 하지만, 아마 나처럼 지독한 시앗을 보고 사는 년도 없을 거유. 곱단이년이 내 남편한테 찰싹 붙어 있다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머리채를 잡을 수가 있나, 망신을 줄 수가 있나, 미칠 노릇이라우.”라는 말 속에 만득이와 곱단이를 바라보는 순애의 관점이 정확히 드러나 있다.

 

순애는 중국 여행을 가서 벌어진 이야기를 에게 들려준다. 단동에서 배를 타고 북한 땅 가까이 가는 압록강 유람선을 탄 적이 있는데, 그때 만득이가 북녘 땅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고 한다. 만득이는 분단의 슬픔때문이라고 했지만, 순이는 배 위에서 보이는 땅이 바로 신의주여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곱단이 남편을 따라 간 신의주 말이다. 만득이는 또한 미국으로 이민을 가자는 말도 했다고 한다. 순애는 미국 시민권을 얻어 북한을 마음대로 드나들려는 속셈일 거라고 넘겨짚는다. 순애는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곱단이와 연결시킨다. 3자인 순애가 두 사람의 비극 속에 파묻혀 헤어 나오지 못하는 꼴이다.

 

또한 순애의 말만 듣고 만득이의 처사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추억은 추억으로 묻었을 때 아름다운 것 아닌가. 20대 시절에 찍은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할 정도로 순애는 죽을 때까지 곱단이에 대한 경쟁의식을 놓지 못했다. 곱단이가 다른 데로 시집을 가지 않았다면 순애가 만득이와 맺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만득이와 곱단이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게 한 역사의 비극이 순애라는 한 여인의 삶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요컨대 역사적 비극은 그 역사를 공유하는 모든 이들에게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역사적 비극이 개인의 일상을 부정적으로 잠식하는 경우를 우리는 순애의 상황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남자, 만득이

 

순애가 고혈압으로 운명을 달리한 지 2~3년이 지난 후 는 정신대 할머니를 돕기 위한 모임에 참가했다가 뜻밖에 만득을 만난다. 순애 말만 믿고 그에게 여전히 꼬부장한 마음을 지니고 있던 는 곱단이가 그리도 그리워 정신대 모임에까지 나오게 됐느냐며 만득이를 몰아붙인다. 별다른 말도 없이 듣기만 하던 만득은 나를 찻집으로 이끌고 간다. 그곳에서 그는 곱단이에 대한 이야기는 아내 순애의 오해라면서, 정신대 모임에 참석하게 된 이유를 한편으로는 차분하게, 한편으로는 격정적으로 나에게 설명한다. 중요한 부분이니 만득의 목소리로 직접 들어보자.

 

오늘 여기 오게 된 것도, 글쎄요, 내가 한 짓도 내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아마 얼마 전 우연히 일본 잡지에서 정신대 문제를 애써 대수롭게 여기지 않으려는 일본 사람들의 생각을 읽고 분통이 터진 것과 관계가 있겠죠. 강제였다는 증거가 있느냐? 수적으로 한국에서 너무 부풀려 말한다. 뭐 이런 투였어요. 범죄 의식이 전혀 없더군요. 그걸 참을 수가 없었어요.

비록 곱단이의 얼굴은 생각나지 않지만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느낄 수가 있어요. 곱단이가 딴 데로 시집가면서 느꼈을, 분하고 억울하고 절망적인 심정을요. 나는 정신대 할머니처럼 직접 당한 사람들의 원한에다 그걸 면한 사람들의 한까지 보태고 싶었어요. 당한 사람이나 면한 사람이나 똑같이 그 제국주의적 폭력의 희생자였다고 생각해요. 면하긴 했지만 면하기 위해 어떻게들 했나요? 강도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 얼떨결에 십 층에서 뛰어내려 죽었다고 강도는 죄가 없고 자살이 되나요? 삼천 리 강산 방방곡곡에서 사랑의 기쁨, 그 향기로운 숨결을 모조리 질식시켜 버리니 그 천인공노할 범죄를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사람도 아니죠. 당한 자의 한에다가 면한 자의 분노까지 보태고 싶은 내 마음 알겠어요?

 

만득은 일본 잡지에 실린 일본인들의 의식을 문제 삼고 있다. 정신대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일본인들의 생각을 읽으며 그는 지금 우리가 정신대 문제를 이야기할 때 놓치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이야기한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범죄의식이 없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쟁 상황에서 벌어진 것이라는 이유로, 혹은 이미 국가 간의 보상이 이루어졌다는 이유로 일본인들은 정신대 문제로부터 자꾸만 자유로워지려고 한다. 정신대의 고통을 뼈저리게 경험한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일본 정부는 아직도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국가 간의 협상만으로 개인의 깊은 상처가 치유될 수는 없는데도 말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곱단이의 상황을 떠올려 보라. 만득이의 말마따나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를 놔둔 채 다른 사람의 재취로 들어가야 했다.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여인의 아픔을 누가 치유해 줄 수 있을까?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은 사람의 고통도 이럴진대, 강제로 끌려가 몸을 판 여인들의 마음이야 새삼 말할 것도 없다. 그 누구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전쟁 상황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냐고? 누구를 위해 이 전쟁은 일어난 것일까? 세력 확장에 혈안이 된 군국주의자들의 망상에 수많은 약자들이 죽어나간 게 아닌가.

 

만득은 그 시절 곱단이의 얼굴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만 그는 다른 사람에게 억지로 시집을 가야 하는 곱단이의 그 분하고 억울한 마음만은 진심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단언한다. 권력을 쥔 사람들은 약자의 입장에서 약자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약자의 아픔이 아니라 강자의 논리를 사회통념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압박하는 게 바로 권력이다. 역사의 비극이란 것도 그렇지 않은가. 이 말을 통해 사람들은 개인의 의지로는 되돌릴 수 없는 운명으로서 역사를 이야기한다. 역사 앞에서는 개인의 의지 따위는 아무 소용이 없다. 만득이가 그랬고, 곱단이가 그랬고, 순애가 그랬다.

 

당한 사람이나 면한 사람이나 똑같이 그 제국주의적 폭력의 희생자였다라는 만득의 말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만득은 강도를 피하기 위해 십 층 건물에서 뛰어내린 사람을 자살자로 내몰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이것이 자살이 되면 강도는 아무런 죄가 없는 게 된다. 애초부터 강도에게 쫓기지 않았다면 건물에서 뛰어내릴 일도 없지 않은가. 만득은 당한 자의 한에다가 면한 자의 분노까지 덧보태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일본 제국주의와 맞선다. 희생자의 관점이 배제되면 역사의 진실을 밝힐 수가 없다. 일본 극우의 논조를 그대로 받아들인 한국사회의 신친일파를 보라. 그들은 아직도 군국주의 일본의 관점으로 당대의 희생자들을 보고 있다.

 

작가는 만득의 입을 빌려 약자들이 연대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권력은 약자의 관점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약자의 관점을 인정하면 권력이 뿌리를 내린 자리가 허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강자들은 견고하게 자기들만의 성채를 구축하고 그 안으로 들어올 사람들을 철저하게 가려낸다. 강도짓을 하고도 오히려 피해자를 향해 막말을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도 일본 정부는 사과 한 마디 하지 않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있다. 국가 간에 맺은 협약을 어겼다며 한국 정부를 압박한다. 그 속에서 피해자들만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제국주의 세력인 후예들인 일본의 권력층은 왜 지나간 역사의 폭력을 사과하지 않는 것일까? 그들의 마음에는 아직도 폭력의 역사를 재현하려는 욕망이 불타고 있다. 군사력으로 세계의 중심에 서려는 헛된 욕망을 일본의 극우 세력은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극우세력을 대변하는 신친일파또한 이러한 관점으로 이 세상을 판단하고 있다. 그들은 학문을 연구한다는 미명 아래 서슴없이 역사를 강자의 관점으로 왜곡한다. 강제로 징병에 끌려간 만득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이들은 왜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입장에 서서 역사를 해석하는 것일까?

 

예나 지금이나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들이 권력을 쥐고 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원칙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권력이 없는 약자는 결코 쿠데타를 일으킬 수 없다. 쿠데타는 오로지 권력자만이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이다. 강자는 강자의 논리로 이 세상을 재구성한다. 그래야 강자가 영원히 강자로 사는 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강자가 강도짓을 하면 면책을 받지만, 약자가 강도짓을 하면 사회로부터 곧바로 격리된다. 수천 명을 죽인 권력자는 용서받을 수 있어도, 배가 고파 빵을 훔친 사람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다.

 

지금 우리는 당한 자의 한을 제대로 풀기는커녕, 면한 자의 한마저도 외면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이상한말로 사람들은 어떻게든 아픈 역사를 흙으로 덮어버리려 한다. 역사의 아픔을 덮으면 누구에게 좋은 것일까? 아니, 도대체 왜 역사의 아픔을 온 세상에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다시 말하지만 역사 아픔을 겪는 이들은 언제나 약자들이다. 진실이 밝혀지면 약자들의 목소리가 드높아질 수밖에 없다. 일본과 한국의 극우세력이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그들은 약자의 목소리가 드높아지는 사회를 본능적으로 두려워한다.

 

모난 돌이 없는 매끄러운 사회를 강자들은 원한다. 매끄러운 사회는 약자들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사회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질서가 잡힌 사회이다. 매끄러운 사회를 부정하는 모난 돌을 제거하기 위해 권력은 끔찍한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약자들이 행복한 세상은 이리 보면 폭력의 저편에서나 이루어질 수 있다. 명분 있는 전쟁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전쟁이란 약자들의 희생을 밑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극악(極惡)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작가는 노인이 된 만득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만득이 곧 역사의 피해자가 아니던가. ()의 목소리를 기록함으로써 작가는 이 시대 약자들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지금 이 시대로 호명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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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 사랑을 묻다

오홍진 저
피서산장 | 2020년 08월

 

 

아직도 지상에서 분을 삭이지 못하고 울부짖고 있나요? 박속 지진 것을 먹이기 위해 당신을 잡은 어머니를 원망하고 있나요? 그러면 당신은 또 다시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겁니다. 누구도 당신을 붙잡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지금 처한 상황은 당신 스스로 만들었다는 얘기입니다. 저에게는 저대로 가야할 길이 있고, 당신에게는 당신대로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저를 잃고, 아이들을 잃은 분노에만 휩싸이지 말고, 차분히 당신이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면 어떨까요?

 

부부는 하늘이 맺어준다고 하지요. 당신과 나도 하늘이 맺어준 부부 인연이었을까요? 차마 당신과 땅에서 산 수년의 삶이 행복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몸은 지상에 두었어도 저는 항상 하늘을 꿈꾸었으니까요. 이제 더 이상 당신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먼 길을 돌아오긴 했지만 저는 원래 제가 있던 자리로 돌아왔으니까요.

 

지금 당신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지 저도 충분히 짐작합니다. 하지만 당신을 서럽게 하는 그 마음을 누구도 치유해 줄 수는 없습니다. 당신 눈에서 떨어지는 그 눈물 한 방울조차도 당신이 감당해야 몫입니다. 모질다고요? 천만예요. 모진 짓은 당신이 제게 했지요. 단 한 번이라도 날개옷을 잃고 낯선 남자를 따라나선 여인의 마음을 헤아려본 적이 있나요? 제가 땅 위의 운명을 온전히 제 몫으로 받아들였듯, 당신도 반드시 당신 몫의 운명을 스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만이 언젠가 당신과 저와 아이들이 밝게 웃으며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당신은, 그럴 수 있나요? (7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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