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NANABELLA NOTE
http://blog.yes24.com/ooooobi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나나벨
 
파워 문화 블로그

PowerCultureBlog with YES24 Since 2010

6·9·16기 책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11월 스타지수 : 별785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함
전체보기
책일기
글짓기
보관함
이벤트
스크랩
└ 당첨
나의 리뷰
내가 소설인지    소설이 나인지
짧은 감상
한줄 감상
태그
책있는일상 책기록 예스24구매 예스24창립20주년 스무살생일축하해 파블활동내역 한달정리 박사 파람북 은하철도999너의별에데려다줄게
2015 / 10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월별보기
최근 댓글
늦었지만 우수상 수상.. 
그 책으로 나의 일상.. 
부러워요 ㅋㅋㅋ 소식.. 
축하해요 저도 갖고 .. 
나나벨님 16기 파블 .. 
나의 친구
001
002
오늘 10 | 전체 102695
2012-12-02 개설

2015-10 의 전체보기
루이제 린저, 삶의 한가운데 - 슈타인의 일기를 다시 읽으며 | 내가 소설인지    소설이 나인지 2015-10-31 23:43
http://blog.yes24.com/document/8266829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삶의 한가운데

루이제 린저 저
민음사 | 1999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루이제 린저, 삶의 한가운데 - 슈타인의 일기를 다시 읽으며

 

 

 

 처음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를 접한 건 스무 살 때였다. 이제 막 교복을 벗고 미성년을 넘은 시기였고 그와 함께 허락된 갖가지의 자유들에 정신을 못 차릴 때였다. 자유. 그렇다. 그것은 그 무렵 내게 새로 생긴 종교의 이름과 같았다. 그러니 내가 거침없고 자유분방한 ‘니나’에게 매혹된 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꽤 두툼한 두께에도 불구하고 당시 내게 이 소설은 ‘니나’로 시작해서 ‘니나’만 읽혔다. 누구에게도 잡힐 것 같지 않은 매혹적 존재. 죽음도 삶도 감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 포기하지 않는 대범함. 무모할 정도의 추진력. 모험과 용기, 극단으로 내딛고자 하는 격렬한 열정. 어느 것 하나 빠질 것 없이 나를 뒤흔들고 끌어당겼다. 내 ‘자유’라는 종교에 있어 상像을 만들자면 ‘니나’로 해야 마땅할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딱 십년 만에 다시 읽는 <삶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니나보다 ‘슈타인’에 빠져 있었다. 십년 전, 니나 추종자이던 시절엔 그저 나와 같은 추종자나 내 심정의 대변인쯤에 불과하던 로맨티스트 슈타인이 새롭게 읽히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어떻게 슈타인의 구구절절한 일기장을 읽으면서 ‘어쩔 수 없어, 니나는 잡히지 않아, 슬프지만 당연한 일이야.’ 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는지 놀라운 일이다. 우상과 같은 니나를 흠모하며 가슴앓이 하는 자가 있는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지나친 도취가 아니었나 싶다. 그런 점이 스무 살답기도 하지만.

 

 다시 슈타인으로 돌아가서. 이 소설에서 슈타인의 일기장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거의 니나를 이야기하는 소설의 중요 장치이자 니나를 향한 슈타인의 애정이 얼마나 각별했는가는 증명하는 증거물이다.

 

 일기장의 내용은 앞서 언급했던 아주 절절하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마음으로 인식한 순간부터 시작되는 모든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기대했다 실망하고 그러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지 못하겠으면 쫓아가고. 사랑하는 여자의 시선이 다른 남자에게 머물러 있는 것을 목격하고, 몰래 떠난 그녀의 뒤를 밟으며 이사한 거처를 알아내고, 부르면 쫓아가는 개인가 라고 불평하다가도 결국엔 또 찾아가고 마는. 만나지 않겠다고 단호히 결심하고도 결국 그 결심을 무너뜨리는 일의 연속. 이 모든 이야기는 무려 18년에 거쳐 작성되었고 그 동안 주고받은 서신까지 빠짐없이 동봉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사랑했던 여자에게 바치는 뒤늦은 고백만으론 볼 수 없었다. 나는 이것을 한 여자로 인해 삶이 뒤바뀌어버린 자의 투쟁의 기록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읽어나갔다.

 

 일견 죽음이나 우울 같은 단어는 니나에게 한정되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니나는 ‘삶’쪽에 더 가까운 사람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에 죽음이나 우울, 갖가지의 시련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제 몫으로 기꺼이 치러내는 존재다. 그러나 슈타인은 달랐다. 그는 의사이자 교수였고 지위든 재물이든 부족할 것이 없었으며 언제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자였지만 그 내면엔 어둠이 있었다.

 

 그는 무엇 때문에 더 살아야 하는가(26p)라고 자문하며 인생을 계속 영위해야 할 의무를 알지 못하는 자였다. 삶과 연결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평안함을 느끼며 엄청난 무기력이, 어떤 환멸이나 권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무관심이 나를 가득 채우고 있다. (26p)고 독백하는 자다. 우울 중독이라 봐도 무방했다. 겉으론 활기와 분주함을 띠지만 뒤로는 희망도 분노도 없는 상태. 위험을 무릅쓴 적이 없었기에 방해물도 상처도 없이 순탄하게 살아왔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니나를 만난 후 달라졌다. 삶의 궤도 자체가 니나쪽으로 옮겨갔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니나를 향한 슈타인의 사랑이 도취나 중독에 불과할 지라도 그것이 그의 무기력하고 무가치했던 삶을 벗어나게 하는 원동력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니나를 원한다. 사랑한다. 결혼하고 싶다. 그런 욕망들을 슈타인은 니나를 만난 후 갖게 되었고 그 때문에 고뇌하고 도전한 흔적들은 일기에 빼곡히 남아 있다. 그의 간절하기만 한 바람들은 이루어질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결국 실패로 끝이 났다. 대부분의 이유는 바로 그가 단념했기 때문이었는데 이게 바로 슈타인의 한계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말하자면 니나와 슈타인은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 아무리 교점을 찾는다 해도 닿지 않는 모서리가 보란 듯이 남는 사이. 그것을 무시하기엔 그들은 각자로서 너무 분명한 존재였다.

 

 슈타인은 끝내 니나의 손을 잡고 따라나서지 못했다. 그녀를 이끌고 가지도 못했다. 그러나 죽음을 결심하는 순간까지도 그는 니나를 향한 편지를 잊지 않았다.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끝까지 도전하는 것. 지금껏 자신의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의 궤도로 옮겨졌어도 목적한 행성을 향해 닿으려는 심지와 몸짓. 나는 이걸 그의 투쟁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는 목적했고 모험을 시도했다. 한 여자를 대상으로 18년이나 지속되어온 집요한 기록이 불쾌하거나 섬뜩한 집착의 흔적일 법도 한데, 전혀 그런 기색 없이 흥미롭거나 안타깝게만 읽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니나’에 빠져 읽었을 때는 삶을 치열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무모한 추진력이나 죽음과 우울을 향한 겁 없는 대면 같은 건 그 무렵 배운 것이다. 피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내 몫이라면 기꺼이 감당하리라, 배우고 생각하여 뜻한 대로 살리라. 그리하여 비극마저 매혹적인 이야기를 살겠다. 거창하지만 나름 가슴 깊이 심었던 불꽃이 있었다. 그 곁에 또 다른 불꽃들을 심어둔다. 시간에 지지 말자.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을 갖자. 한계에 부딪쳐도, 죽을 때까지 못 넘는다 해도 일단 죽을 때까지 시도는 계속 해보자 등.

 

 사실 ‘니나’를 읽든 ‘슈타인’을 읽든 아니면 글의 화자인 ‘나’를 중점에 두고 읽든, 여기서 사랑이야기를 읽든 전쟁이야기를 읽든 ‘삶’을 대하고 있는 자신의 자세를 점검하게 되는 건 마찬가지다. 그런 이유로라도 한번쯤은 꼭 봐야 할 소설이지 않을까 싶다. 혹 다시 읽게 되어 또 리뷰를 쓰게 된다면 그때는 사랑이야기를 제외한 부분에 대해서 정리를 해두고 싶다. 전쟁이나 안락사, 여자의 마음이나 여성의 성공이란, 같은 내용들로. 그만큼 짚어봐야 할 문제들이 많았다는 거다.

 

 

 

 -花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1        
안소영, 시인 동주 - 이름만 불러도 당신은 새롭게 시로 태어나고 | 내가 소설인지    소설이 나인지 2015-10-31 21:40
http://blog.yes24.com/document/8266612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시인 동주

안소영 저
창비 | 2015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안소영, 시인 동주 - 이름만 불러도 당신은 새롭게 시로 태어나고

 

 

 

 윤동주의 시구를 접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나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중략)… 별 하나에 어머니’ 정도는 들어봤을 것 같다. 학창시절, 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시인과 시에 그쳤던 그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내겐 몇 개의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학생, 맑음, 일제강점기, 이른 죽음 등의 몇 안 되는 키워드와 드문드문 떠오르는 시 구절 등으로.

 

 안소영 작가의 <시인 동주>를 보기로 한 건 그 어렴풋하고 터무니없이 부족한 기억에 두툼한 살을 붙여주고 싶어서였다. 지루한 해설부터 들이대는 시읽기 말고 비록 재연일지라도 시인의 삶 속에 들어가 그의 시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바람으로. 그런 면에서 소설은 적합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심정으로 그가 시어를 다듬고 반듯하게 옮겨 적었는지가 고스란히 그려져 있었다. 이제 윤동주의 시를 볼 때면 그 시를 짓고 있는 시인의 모습도 함께 떠오를 것이다. 보다 더한 울림을 음미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상과 다른 게 있다면 시보다 시인의 이름을 더 오래 읊조리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거다. 이제 그의 이름은 음절마다 긴긴 사연과 앓는 마음이 깃들어 있어 이름만으로도 시가 되었다. 동주, 동주, 윤동주, 하고 가만히 입안에 굴릴 때마다 새로운 시들이 창조되고 매번 묵직하게 가슴을 울렸다.

 

 동주, 한 번 부르니 가슴이 쓰렸다. 그리고 나는 식민지 시대에 시를 쓰고 있는 동주를 생각한다. 중학 시절부터 시 없이 살아본 적 없던 동주에게 시 쓰기는 체온 같은, 맥박 같은, 피돌기 같고 숨쉬기 같은(128p) 것이었다. 동경하던 문인들이 변절하는 모습을 보며 제 숨을 끊듯 시 쓰기를 멈춘 때도 있었지만 결국 그는 다시 펜을 들었다. 우리말을 쓸 수 없는 절망의 시대, 사람들의 지성과 감성이 모두 무너진 폐허와도 같은 시대, 더 이상 아무도 시를 쓰려 하지 않는 시대(161p), 전쟁과 죽음과 파괴로만 달려가는 이 삭막하고도 불안한 시대(245p)에도 그는 시 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민족의 말과 글을 잊지 않으려 혼자라도 싸워온 것이다.

 

 그토록 지옥 같은 시절에서 이리 맑고 단정한 시를 써냈다는 게 읽을 적마다 놀랍다. 노트에 옮겨 적기까지 수없이 고르고 매만졌던 시어들엔 그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고 유순하고 사려 깊었지만 그릇된 일 앞에서는 정색을 하고 굽히지 않던 그의 곧은 성품도 그대로 보인다. 시인의 억울한 죽음을 생각하면 원통해서 주먹부터 쥐게 되지만 모난 마음에 잠식되는 것은 그의 시를 읽는 예의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또 동주, 하고 시인의 이름을 부르고 이미 읽었던 그의 시구를 반복해 더듬어본다.

 

 

 -花

 

 

 이러한 때 일개 젊은이가, 더구나 식민의 땅에서 태어나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처지로 앞날을 그려 보고 계획해 보는 것이 무슨 소용 있을까. 무사히 공부를 마치고 세상에 나아가, 가족을 거느리고 살아갈 꿈을 꾸어도 되는 걸까. 어느 순간 자신들의 삶이 거대한 삽으로 송두리째 떠져, 다른 곳으로 휙 던져지거나 파묻히는 것은 아닐까. 불현듯 떠오르는 불길함에 다들 몸서리쳤다. 75p

 

 동주는 결심했다. 잘못된 전쟁을 지지하고 동포들의 고달픈 삶을 외면하는 것이 문학의 길이라면, 가지 않으리라. 감투와 명성을 탐하고 궤변으로 자신의 행동을 미화하는 자들이 문인이라면, 되지 않으리라. 하나의 시어를 찾기 위해 수없이 버리고 취하는 연마의 과정이 저렇게 쓰이는 것이라면, 더 이상 쓰지 않으리라. 127p

 

 “하긴 우리가 어디 청춘이라 할 수 있겠나? 열렬한 ‘주의자’가 되어 본 적도, 무엇에 미쳐 몸 바쳐 본 적도 없지 않은가? 좌절했느니 어쨌느니 해도 한때 청춘을 누려 본 선배들이 부럽네.”

 “아, 가엾은 조국아! 가엾은 이내 청춘아! 한번 불타오르지도 못하고 다 사라져 버렸구나!” 112p

 

 

 동주의 새로운 시는 절망의 어두운 그늘 속까지, 슬픔의 웅덩이 깊은 곳까지 닿아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시였다.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맑고 고요한 눈을 잃지 않은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이기도 했다. 162p

 

 만 이십칠 년 이 개월이 채 못 되는 삶. 동주가 태어날 때부터 조국은 남의 나라 식민지였다. 아무런 근심 없이 한번 싱그럽게 웃어 보지도 못했고, 어떤 일을 마음껏 좋아해 본 적도 없었다. 누군가를 연모하는 것도 주저되었다. 길 가다 순사나 헌병을 만나면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멀찌감치 돌아서서 책잡힐 게 없는지 머리에서 발끝까지 혼자 점검해 보곤 했다. 손들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보지 못했고, 온전히 속 터놓고 의논할 사람도, 기대고 의지할 하늘도 없었다. 298p

 

 동주의 장례가 있던 그다음 날, 몽규도 후쿠오카 형무소 독방에서 세상을 떠났다. 동주가 떠난 지 이십 일이 채 못된 3월 7일이었다. 사촌 형제이자 벗이었던 두 사람은, 태어난 해도 떠난 해도 같았다. 북간도 용정에서 태어나 연희 전문을 거쳐 일본에 유학하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히기까지, 살다 간 흔적도 같았다. 이 세상에는 몽규가 먼저 와 동주를 기다렸으나, 다른 세상에는 동주가 먼저 가 몽규를 기다렸을 따름이다. 303p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히가시노 게이고, 붉은 손가락 - 부모는 어쩌면 그렇게도 부모인 건지 | 내가 소설인지    소설이 나인지 2015-10-28 13:15
http://blog.yes24.com/document/8261344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붉은 손가락

히가시노 게이고 저/양윤옥 역
현대문학 | 2007년 07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히가시노 게이고, 붉은 손가락 - 부모는 어쩌면 그렇게도 부모인 건지

 

 

 

  부모는 어쩌면 그렇게도 부모인 건지. 그리고 자식은 또 어쩌면 그리도 자식인 건지.

 

  <붉은 손가락>의 아키오 가족을 보는 내내 그 생각을 했다. 자식이 저질러버린 과오와 그것을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부모. 진범을 버젓이 두고도 과연 가족원 중 누가 범죄자가 되어 형무소로 가게 될 건지를 궁금해 하며 읽어나가는 이상야릇한 시간이었다.

 

  사견이지만 이 소설은 추리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사건보다는 인물들의 관계가 더 돋보이지 않나 싶다. 이미 저질러진 사건의 내용은 빤했고 그들의 어설픈 은폐가 반드시 실패할 거란 걸 의심할 필요가 없었으며 형사는 차분하게 정해진 순차처럼 진실을 밝혀주었다. 그에 반해 가족이라고 구성되어 있는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언동은 몇 번이나 욱할 만큼 유난해서 모난 마음으로도 줄곧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가정에 무관심한 가장과 아들만 싸고도는 아내, 뭐라 답이 안 나올 정도로 삐뚤어진 아들. 이제와 말이지만 소설 초반을 지나면서 그만 읽을까, 고민할 정도로 짜증을 냈던 건 이들 때문이었다. 잘못을 떠넘기고 어쩔 수 없다며 포기하고 무시하고 싸우고 그러다 범죄은폐라는 나쁜 상황에서야 어설프게 모여 일을 도모하는. 이런 속내를 갖고서도 전형적인 가족이라는 타이틀 아래 보통의 것으로 치부된다면 그것만큼 비극적인 일도 없을 것 같다.

 

  어찌되었든 내 관점은 그렇게 아키오의 가족에 사로잡혀 ‘당신이 그러면 안 되지’, ‘못됐네!’, ‘형사한테 빨리 걸려 버려라’ 등 그들의 납득할 수 없는 행동들에 주를 두고 있었고 그 때문인지 중요 트릭인 <붉은 손가락>을 알게 되고도 큰 반동은 없었다. 그보단 오히려 형사인 가가 교이치로가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마지막 장면, 마지막 대사가 더 강한 인상을 남긴 편이었으니 이 소설이 관계, 특히 가족을 돌아보게 되는 이야기라는 감상이 완전히 틀리지만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가 교이치로란 형사를 이 소설을 통해 처음 보는 거였는데 차분하면서도 빈틈없이 사건을 풀어가는 게 마음에 들었다. 홀로 골똘해 하는 모습이라거나 순간을 포착하는 날카로운 눈빛이라거나 과감히 밀어붙이는 추진력과 주저 없는 행동력. 모든 게 상상이 되었다. 특히 나는 가가 특유의 저자세가 좋았다. 비굴하지도 비열해보이지도 않는 그렇다고 능글대는 것도 아닌 접근 방법. 거칠고 삐딱한 형사들은 제법 봐 왔는데 이런 느낌의 형사는 처음이라 제법 설렜다. 알고 보니 그가 등장한 추리소설이 이미 여러 권 있었다. 뒤늦게 히가시노 게이고를 접한 독자라는 티가 팍팍 나지만 그런 부끄러움보다는 장바구니에 가가가 등장한 소설을 넣는 일이 더 빨랐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은 일단 접하고 나면 늘 감탄하게 되는 것 같다. 이제 겨우 세 권 째인데 3연타 모두 아주 만족이다. 그리고 또 사들이고 있고. 다음에 읽게 될 소설이 무엇이 될진 모르지만 그의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단 기대가 된다.

 

  글을 마칠 때는 꼭 이 문장을 쓰고 싶었다.

 

  부모를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가……. 152p

 

  아들에게 이 질문을 던지던 아키오는 문득 그것이 자신에게 던져야 할 물음이라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니까 오늘만큼은 나도 고개를 바닥까지 숙이고 오래 생각을 해봐야겠다. 더 늦기 전에. 도가 지나친 잘못을 늘이기 전에. 부모를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가.

 

  -花

 

 

  그는 다갈색으로 변한 다다미 바닥에 눈을 떨구었다. 그 다다미가 아직 새것으로 푸르렀던 무렵의 일이 생각났다. 아키오는 아직 고등학교를 막 졸업했을 때였다. 우리 아버지는 그렇게 뼈빠지게 일하면서 기껏해야 이런 작은 집밖에 짓지 못하는가……. 그런 식으로 내심 아버지를 경멸했었다.

  하지만, 이라고 아키오는 생각했다. 나는 과연 무엇을 해낸 것일까. 하찮게만 여겼던 그 작은 집에 다시 들어와 살고 있고, 제대로 화목한 가정조차 만들지 못했다. 그것뿐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남의 가정까지 파탄을 내고 말았다. 그 요인을 키우고 말았다. 65p

 

  부모를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자기 자신에게 던져야 할 물음이라는 것을 문득 깨닫고 아키오는 털썩 고개를 떨구었다. 152p

 

  “여보…….”

  “듣고 있어.” 아키오는 부루퉁하게 내뱉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그는 아내에게 퍽 거칠고 단호한 말투를 쓰고 있었다. 이런 일은 결혼 이후로 처음인지도 모른다. 아내가 모든 것은 자신에게 맡기고 기대온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일 터였다. 이런 일이 아닌 다른 일로 매사에 의지가 되는 남편이었어야 했다고, 아키오는 이제 새삼 아무 소용도 없는 후회를 했다. 202p

 

  “어머니의 눈을 정확하게 나를 보고 있었어요. 뭔가 말을 건네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건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의 눈이 아니었어요. 마에하라 씨, 당신은 어머님의 눈을 진지하게 들여다본 적이 있습니까?” 274p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건, 노인에게도, 아니, 노인이기 때문에 더더욱,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있다는 거야. 그것을 치유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 달라. 주위 사람들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방법도 있는 거고. 하지만 중요한 건 아무리 이해할 수 없더라도 그 의사를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해. 284p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황현진, 달의 의지 - 달을 띄우기 위하여 | 내가 소설인지    소설이 나인지 2015-10-23 22:31
http://blog.yes24.com/document/8255040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달의 의지

황현진 저
은행나무 | 2015년 0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무기력한 자들로서는 도무지 좁힐 수 없는 그 ‘거리’, 그 한계성. 그런 것들을 심취해 읽다보니 역설적으로도 뜨거운 의지가 치밀어 올랐다.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한두는 내가 언제나 달을 반긴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의 뒤를 걸으면서 문득 호수에도 달이 떴을까 살펴보았다. 호수는 꺼멨다. 밤이 훨씬 밝았다. 호수의 커다란 반경 안에 달이 들지 못했다. 나는 그것이 달의 의지 때문이라고 여겼다. 8p

 

 호수의 맞은편을 건너다보았다. 거기에도 사람이 보였으나 너무 작았다. 나는 맞은편의 사람과 내가 마주칠 확률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그럴 일이 생기기란 쉽지 않았다. 둘 중 하나가 방향을 바꾸어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는다면, 둘 중 하나가 한참 동안 멈춰 서 있지 않는다면, 둘 중 하나가 호수를 가로질러 오지 않는다면 호수의 궤도 안에서 서로를 대면할 가능성은 거의 전무했다. 아무도 호수를 침범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무한한 의지를 가진 달일지라도. 그건 절대로 위로가 될 수 없고 완벽한 패배를 증명하는 것에 불과했다. 126p

 

 

 

 호수 안에 달이 뜨는 것을 사랑이라고 한다면.

 간격을 좁히지 못한 채 호수의 둘레를 도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침범해야 하는 것이다. 서로를 혼내기도 하고 각자의 인생에 멋대로 침입도 하면서 조금의 간격이라도 허용치 않은 채 무모하게 호수로 함께 빠져들려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사랑이라는 달을 수면 위가 꽉 차도록 띄울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나’와 한두의 산책이 답답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별을 예감하고 있는 연인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한쪽이 일부러 걸음을 늦춰도 다른 쪽에서 그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간격을 없애면 신경 쓰이는 일이 많으니까. 손을 잡아야 하고 어깨에 팔이라도 둘러야 했다. 하다못해 옷자락이라도 잡아야 했다. 그건 참으로 새삼스러운 일이었(11p)기 때문에.

 

 연인 사이는 별 게 아니었다. 한쪽의 태도를 고스란히 따라하면 그뿐이었다(51p). 그런 소극적인 방식으로 유지한 연애는 당연한 수순인 것처럼 이별에 도달한다. 무심해지는 상대를 따라 무심해지는 동안 서로의 연애는 각자 정리한다. 이토록 무기력한 연인들이 못 견디게 답답해진 나는 차갑게 자문했다. 나의 사랑은, 나의 연애는 어땠나. 상대를 위한다고 저질렀던 배려들이 사실은 비겁함을 숨기려던 치졸한 변명이었던 것은 아니었나.

 

 

 호수 안에 달이 뜨는 것을 삶이라고 한다면.

 그 달을 띄우기 위해 우리는 끝내 삶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떤 불운의 생이라도. 불운을 넘어 불경할지라도 달이 뜨는 그 순간까지 그 생을 밀고 나가야 한다.

 

 살기 위해 불행을 이야기로 팔지라도 내가 행복한 순간과 연인이 불행한 순간이 교차할지라도. 구걸을 하고 강제로 안기고 폭력과 학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몸에 기록해놓더라도. 누가 더 나쁜 부모인지를 재며 행복해지기 위한 삶의 가닥을 찾기 위한 학생도 치명적으로 자란 병마에 시달려 앓는 신음을 그리운 이름 대신 부르게 되는 병자도. 죽음이지 않는 한 어찌 되었든 호수의 둘레를 따라 도는 것이다. 밤보다 어둡고 달도 꺼려하는 깊고 어둔 호수(34p)안에 내 삶 하나는 띄워보기 위하여.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에서 가장 불행하게 살아온 ‘에그’란 인물의 이름이 오래 남는다. 단란주점 웨이터로 일하던 그는 사장이 부쳐낸 계란 프라이를 제일 많이 먹어치운 사람이었다. 가스레인지 앞에서 사장에게 얻어먹는 것도 모자라 손님에게 갖다주는 체하면서 접시에 입을 대기도 하고, 손님이 남기고 간 것을 손으로 집어먹(28p)기도 했다. 계란을 먹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고 그 당시 그에게 계란은 유일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필사적으로 계란을 집어먹는 에그의 행위는 가난하고 불운한 인간이 병들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처연한 몸부림이었고 이런 의지야 말로 삶을 포기하거나 방관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특히 나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정리하면

 소설은 음울하고 답답하다. 두 가지의 감정 중에는 답답함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는데 이건 소설 전반에서 목격되는 지긋지긋한 ‘간격’ 때문이었다. 연인을 파고들지 못하고 타인의 불행 속으로도 침투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향한 불꽃 튀는 열정도 없다. 무기력한 자들로서는 도무지 좁힐 수 없는 그 ‘거리’, 그 한계성. 그런 것들을 심취해 읽다보니 역설적으로도 뜨거운 의지가 치밀어 올랐다. 살자, 파고들자, 피하지 말자. 용기 내자, 침범하자, 그리하여 달을 띄우자.

 

 생각해보니 나도 오래 걷기만 했다. 그게 내가 나를 답답하게 느꼈던 이유라는 걸 알 것 같다. 그러니까 이제는 좀 뛰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애써 찾지 않으면 잃어버린 게 되고 마니까 (79p)

 

 

 -花

 

 

 

 

 네가 달 뜬 밤을 좋아해서 밤에만 만났지. 네가 긴 여행을 할 시간이 없어서 짧은 여행을 수시로 다녔지. 네가 혼자 있는 걸 좋아해서 너를 겨우 내버려 두었지. 너는 항상 내게 시간을 충분히 내어주지 않았지. 나는 너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자고 조르지 않았지. 이제 나도 그런 너의 방식에 익숙해지기 시작했어. 그리고. 15p

 

 가장 나쁜 방식의 이별이었다. 우리는 너무 자신만만했다. 시간을 질질 끌면서 미련이나 후회 따위를 정리하고 있었다. 비교적 차분하고 담담하게 우리의 이별을 완수하기 위해서 각자 알아서 노력했다. 우리가 만났던 시간을 이기적으로 재해석하는 수순을 각자 밟아왔다는 이야기이다. 지나치게 의미가 부여된 날들을, 지나치게 무의미화하는, 지루하고 단순한 작업이었다. 그 와중에 아무도 우리를 혼내지 않았고, 우리 역시 서로를 혼내지 않았다. 뭔가 단단히 글러 먹은 상태였다. 16p

 

 한두, 혼자서 그 이름을 불러보았다. 번번이 떼를 놓쳐 목 안으로 삼켜버린 이름, 한두. 오래전부터 명치께 걸려 있던 뼛조각이 저절로 튀어나오는 듯했다. 하지만 내가 부르는 그 이름은 여전히 어색하고 민망했다. 조용한 지하철 안에서 혼자 재채기를 연달아 해대는 기분이었다. 38p

 

 물론 에그는 그것을 읽을 수 없지만, 그것이 기다랗고 복잡한 무늬처럼 읽혀도 나는 아무 상관없었다. 내가 해독하지 못하는 도형이나 기호만 아니라면 그저 다행이었다. 119p

 

 누나, 팬티에 뭐가 많이 묻었어요.

 나는 그제야 섹스라는 행위에는 그 어떤 굴욕보다 비참함이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선한 의도도 섹스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것도. 치미는 욕지기를 참으며 에그의 집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귀를 막고 지하철역으로 무작정 뛰었다. 등 뒤에서 누가 아무 죄책감도 없이 나를 시팔 년이라고 부르는 소리가 연거푸 들려왔다. 나는 뒤돌아 함께 외치고 싶었다. 왜, 이 시팔 새끼야. 솔직히 알기 싫었다. 실제로 나를 욕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가 않았다. 121p

 

 나는 다시 걸음을 뗐다. 우레탄 보도 위를 올라섰다. 바람이 불어왔다. 옷깃을 여미고 팔짱을 끼고 고개를 푹 숙이며 걸었다. 내가 어떤 사람을 사랑했던 시간을 길이라 치고, 그 길의 궤적이 어떤 도형을 그리고 있다고 하면 왠지 그것은 호수처럼 원의 모양일 것만 같았다. 그 안을 채우는 내용물이 출렁이는 검은 기억이라면, 나는 지금 앞서 걸어가고 있는 것이 된다. 그렇게 믿어도 아무 상관없는 길을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것이다. 누가 잘못했는지, 누가 더 나쁜 사람이었는지, 누가 나를 울렸는지, 내가 언제 너를 울렸는지 가늠자를 들이대지 않을 거라고 내게 내게 결심하도록 채근하면서 계속 걸었다. 진흙이 묻은 구두를 내려다보면서, 너무 추워서 뛰고 싶지만 어떻게든 같은 속도를 유지하면서 나는 가장자리부터 얼어가고 있는 호수의 둘레를 묵묵히 걸어갔다. 걷다가 알았다. 나는 아무것도 잃어버릴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무것도 두고 오질 않았다. 129p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2)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2        
카트린 아를레, 지푸라기 여자 - 로맨스가 없어도 흥미롭고 매혹적이다 | 내가 소설인지    소설이 나인지 2015-10-19 15:56
http://blog.yes24.com/document/8249020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지푸라기 여자

카트린 아를레 원저/홍은주 저
북하우스 | 2015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카트린 아를레, 지푸라기 여자 - 로맨스가 없어도 흥미롭고 매혹적이다

 

 

 표지를 장식한 임수정과 유연석의 모습을 보고 로맨스려니 했던 나는 그야말로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이 소설에서 ‘사랑’이란 어디에도 없다. 완벽한 범죄와 승리하는 악당이 있을 뿐.

 

 

 이건 나한테는 좋은 거래고 당신한테는 꿈보다 황홀한 동화죠. 35p

 

 소설의 시작은 어쩌면 너무도 빤할지 모르겠다. 폭격으로 가족을 잃고 번역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는 34세의 미혼녀 힐데가르트가 신문 공고를 보고 억만장자인 칼 리치먼드의 신부가 되려한다. 남편감인줄 알고 만났던 남자는 사실 그의 비서 안톤 코르프였고, 그는 힐데가르트에게 억만장자의 신부로 만들어줄 테니 대가로 20만 달러를 달라고 제안한다. 예상대로 두 사람이 단합하여 결혼성공과 유산상속을 위해 작전을 펼치게 된다는 이야기.

 

 어딘가에서 한번쯤은 봤을 법도 한 전개를 그럼에도 읽을 수밖에 없던 건 역시 작가의 필력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뻔하다 생각하면서도 후루룩 읽을 수밖에 없던 것. 소설을 진행하는 속도감이 굉장했다. 거기엔 대화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 이유도 있을 것인데, 나오는 족족 흥미롭기만 한 인물들의 대화는 소설을 중반까지 단숨에 해치우게 만드는 훌륭한 동력이 되었다.

 

 

 “저런! 그럼 안 되지! 그렇게 무기력하게 있으면 안 되오. 당신이 약간의 신랄함을 되찾고, 유일한 출구는 역시 진실이라고 믿는 게 나한테는 이득이 되니까 말이오. 왜냐하면 당신이 출구라고 믿는 그 진실을 이야기하면 할수록 결과는 더욱 걷잡을 수 없어질 테니까. 그러나 당신이 그런 서툰 짓을 하기 시작한 이상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나가는 수밖에 없소. 276p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단연 안톤 코르프다. 탐정도 없고 경찰 역시 악당의 체스말로 이용되는 이 범죄게임판에서 그는 제일의 비중을 차지한 인물이었다. 살인범을 잡고 범인의 동기를 찾아 유죄의 대가를 묻는 모든 과정이 사실은 그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그의 막강한 힘을, 영리한 악당의 승리는 망연하게 보고만 있는 것은 비단 나뿐 아닐 것이다. 그는 악마다. 아주 치밀하고 분할 만큼 똑똑한 악마. 안톤 코르프가 쏟아 붓는 물음과 비난 앞에서 답을 찾는 것은 어렵다. 그가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반박할 수가 없다. 당당하고 이성적으로 보였던 힐데가르트가 후일엔 왜 정신을 못 차리고 감옥 안을 맴돌았는지 충분히 알 것 같은 심정이었다.

 

 

 “천만에, 친애하는 내 딸. 신문 공고를 열심히 들여다보면 부자를 만난다고 믿었던 때, 아무나 복권에 당첨되고 아무나 동화의 주인공이 된다고 믿었던 때가 당신이 꿈을 꾼 때요. 재산을 만드는 데는 아주 긴 세월이 걸리오. 다대한 노력과 지성과 꾀와 주름살과 모욕과 잠 못 드는 밤들이 요구되는 일이지. 그건 당신 몫이 아니오. 당신은 그런 부류의 인간이 아니오.” 228p

 

 “그렇게 믿소, 친애하는 힐데가르트? 그것 참 잘됐구려. 당신은 당신 식으로 정직하게 일을 벌이시오. 난 싫소. 난 내 식으로, 지뢰를 남겨두겠소.” 238p

 

 

 

 힐데가르트가 추락의 종말을 맞게 된 것은 그녀의 선택 때문이었다. 무의미한 전쟁의 포성 속에서 되는대로 쥐어뜯긴, 비참하고 고독하고 초라한 존재(11p)가 되어버린 이유를 사회적 부조리 탓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녀가 새로운 인생을 도래하기 위해 선택한 모험이었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이 왜 바닥이 없는 절망 속으로 빠져드는 건지, 이토록 잔인한 시련이 다른 사람도 아닌 힐데가르트에게 떨어진 것인지를 묻는 것은 무용했다. 억만장자의 신부가 되겠다고 선택한 순간 그녀의 인생은 짧은 낙원을 살다가 긴 암흑 속으로 굴어 떨어지는 운명으로 바뀐 것뿐이다.

 

 운명론을 운운하며 빈틈없이 완벽한 음모에 희생당한 책임을 모두 힐데가르트에게 떠밀기에는 가혹한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두둔할 수만도 없다는 게 바로 이 소설이 가진 의미가 아닌가 생각한다. 동화 같은 일을 꿈꾸기 전에 남의 부를 탐내기 전에 자신의 삶을 더 깊이 바라봐야 했다. 타인을 핑계로 엉망이 된 삶을 체념하고 방관할 것이 아니라 애착을 가져야 했다. 그랬다면 재물보다 소소한 자유를 뒤늦게야 갈망하게 되는 어리석은 일은 없지 않았을까.

 

 

 “내일 재판정에서 만납시다. 그러나 둘이서만 얼굴을 마주보는 일은 다시는 없을 거요. 승리자로서 패배자에게, 사심 없이 한마디 충고하리다. 당신한테 닥칠 일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마시오. 진짜로 중요한 건 당신한테 좋은 시절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거요. 그 사실을 생각하란 것, 그게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오.” 278p

 

 

 이 같은 악마의 충고가 오래도록 남는 건 바로 그 이유였다.

 

 삶에 대한 애착이 솟구치는 순간이 종말을 예감할 때 가장 뜨겁게 목격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조금이라도 빠르게 몸부림쳐야 한다고. 얼마 남지 않은 책장을 더디게 남기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무렵 소설은 힐데가르트의 최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앞서 언급했지만 소설 <지푸라기 여자>는 정말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다. 재미도 재미지만 단순히 흥미에 지나지 않고 날카롭게 꼬집는 문제들이 많아서 더 만족했던 소설이다. 특히 소설의 전반에 걸쳐 있는 모순들을 음미할 수 있다는 게 묘한 쾌감을 주었다.

 

 레이먼드 앞에서 돈이 아닌 인간의 존엄성을 피력하며 그것이 자신의 전부라고 당차게 주장하던 힐데가라트는 완벽한 명배우였다. 신의만 저버리지 않으면 분명 성공할 거라던 안톤 코르프의 단언은 결국 힐데가르트를 추락시키는 이유가 되었다. 진실을 찾는 것뿐이라던 형사는 정작 진실로 둔갑한 것들만을 진실이라 확신하고 있었고 이들 모두에게 심취해 몰입하며 읽던 나에겐 “정상적으로 진화한 것처럼 보이는 일부 인간들이 경솔하게 사람을 믿는 건 퍽 불가해한 일” (228p) 이라는 카트린 아를레의 문장만이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이래저래 참으로 매혹적인 소설이다. 즐거웠다.

 

 

 -花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1        
[구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 책일기 2015-10-14 21:16
http://blog.yes24.com/document/8243076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날도 서늘한 것이 모쪼록 읽기 좋은 때가 아닌가.

 물론  도통 진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게 흠이긴 하다만은.

 그래도 가을도 오고 했으니 뭐라도 사자 싶어 몇 권 골랐다.

 오래도록 장바구니에 갇혀 있던 녀석들을 비로소 해방시켜주게 되었다는데 만족 플러스.

 솔직히 말하면 원래 사려던 것은 <생의 한가운데>였지만

 혼자는 외로우니까 이왕 오는거 함께 오라고 두 권 더  (가 충동구매를 정당화 시킬리는 없겠지. 후.)

 

 

 

 

 꼭 10년 전에 읽었던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10년이란 세월 동안 가장 손 닿기 쉬운 책꽂이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켰던 책이다.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 가족처럼 나란히 붙어 있다.)

 

 너무 오래 전에 읽은 터라 소설 내용도 아득하지만

 니나, 하고 부르면 사뭇 떨려오는 건 여전해서 책을 보고 있기만 해도 설렌다.

 10년 만에 다시 읽는 작품은 과연 어떨지. 이번에는 부러 밑줄 그은 부분을 손으로 직접 필사하며 읽을 작정인데

 (10년 전엔 하다 포기했다. 전혜린 에세이를 필사하다 진이 다 빠졌던지라.)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기쁜 시간이 될 것이란데 의심이 없다.

 

 데이트라도 하는 심정으로 떨리는 손목 붙들고 꾹꾹 눌러서 빼곡히 채워야지.

 10월 안에 마무리 짓는게 목표인만큼 이 책만큼은 조금씩이라도 매일 꾸준해야겠다.

 

.

.

.

 

 

 

 지만, 이미 읽다가 대기 중인 책들의 분노가 느껴진다.

 부지런 좀 떨어야지. 신선 놀이는 집어 치우고 전투적인 독서 모드로 전환이다.

 

 밀린 서평도…‥.

 

 

 음, 산책과 잠을 좀 줄여야겠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2)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스크랩] 예스블로그 릴레이 인터뷰☞ | 이벤트 2015-10-07 21:17
http://blog.yes24.com/document/8234493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YES 블로그 이야기

안녕하세요 예스블로그입니다^0^


정말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끝말잇기와 추석 이벤트 이후 또 어떤 이벤트로 

예블님들을 즐겁게 해드릴까 고민하다가 새로운 이벤트를 들고 왔습니다.


오늘부터 진행될 이벤트는 바로... 릴레이 인터뷰 입니다!! 





예스블로그의 장점을 꼽자면 바로 상호간의 '소통'인데요,

이러한 소통이 몇몇 분들에게 국한되어 있는 것 같아

서로 더욱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진행될 지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2주에 한 분씩, 한 달에 두 명.

처음 시작하시는 분은 자원을 받고 그 후에는 지목 릴레이로 진행됩니다.


 - 이메일로 보내드린 질문에 답변을 성실히 작성 후, 다시 이메일로 회신.

질문은 총 10개 문항으로 글자 수 제한이 없으므로 성실히 답변해주셔야 합니다.


 - 인터뷰 답변 내용과 함께 업로드 될 사진도 첨부

자신을 잘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사진, 다른 예스블로거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진, 

아끼는 사진(두 장 이내)을 함께 보내주세요.  인터뷰 내용과 함께 게재될 예정입니다.

(ex. 셀카, 책, 영화 포스터, 풍경, 애완동물 등 모두 가능)


 -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께는 포인트 30,000점을 지급

한 질문 당 한 줄 이상으로 성실히 답변해주셨을 때에 지급됩니다.


 - 7번 문항 '최근 본 책이나 영화 중에 추천하고 싶은 것이 있으신가요?'에서

추천해주신 도서를 읽고 리뷰를 써주신 분들 중 10분을 추첨하여 포인트 3,000점씩 지급

리뷰 작성 기간은 다음 인터뷰가 업데이트 되기 전인 2주입니다.

(기존 테마추천도서읽기 캠페인과 동일)


 - 인터뷰 게시글에 댓글을 달아주신 10분을 추첨하여 포인트 1,000점씩 지급

따듯한 관심과 소통의 의지를 가지신 분들 모두 환영합니다.




벌써부터 두근대지 않으신가요~?>_<

첫번째 타자를 자원받기 전에 먼저

인터뷰 질문 내용을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Q. 안녕하세요 000님. 릴레이 인터뷰의 첫 번째 주인공이 되신 것을 먼저 축하드립니다. 
     우선, 닉네임을 000이라고 짓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Q. 예스블로그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Q.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좋았던 점이 있으신가요?

Q. 조금 더 사적인 질문으로 가볼까요?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신가요?

Q. 최근 새롭게 생긴 관심 분야가 있으신가요?

Q. 시간을 3년 전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Q. 최근 본 책이나 좋아하시는 책 중에서 추천하고 싶으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Q. 좋아하는 작가가 있으신가요? 있다면 누구신가요? 그리고 좋아하시게 된 이유도 말씀해주세요.

Q. 슬슬 마무리를 해야겠네요. 예스블로그에 바라는 점을 적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다음 릴레이 인터뷰를 이어갈 블로거를 지목해주세요!


예스블로그님들의 개성넘치는 답변과 사진들이 기대됩니다. ^^

그렇다면 첫번째 릴레이 인터뷰이(interviewee)가 되고싶은 분들은 

 지금부터 댓글로 자원해주세요!

양식 :  ID / 닉네임 / 메일주소 / 한 마디

자원은 10/11 일요일까지 받겠습니다.  



앞으로 격주로 화요일마다 업데이트 될 릴레이 인터뷰

많이 많이 사랑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2)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스크랩] [당첨자 발표] 9월 북켄드 캠페인 | └ 당첨 2015-10-06 13:02
http://blog.yes24.com/document/8232447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http://blog.yes24.com/yesbookend

안녕하세요 북캔드지기입니다^0^


또 이렇게 한 달이 지나고 예블님들을 만나뵙습니다.

벌써 올해도 3달 밖에 남지 않았다는게 믿기지가 않네요!


9월 북켄드 심사도 역시나 만만치 않았습니다.

되도록이면 많은 분들께 수상의 영예를 안겨드리기위해

중복을 최소화 하고자 합니다.


10월의 둘째 주 월요일,

9월 북켄드 수상자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두구두구두구두구




 

최우수 주말 독서왕
se**h

우수 주말 독서왕
cy**n1
he**th21c
ls**25
zi**a
no**nhui

 

최다 독서왕
se**802

 

행운상
vo**p57 jk**5636 kh**501
yo**gkt ps**m ni**lekm
eg**st2718 sh**213 bl**russ
yu**17 go**sj ya**412
k8**67 ea**a ia**es
ky**00 ha**7546 hg**m69
lo**yid bi**aden ni**uem
yi**2000 me**7 ia**2
lk**kl44 jh**913 hl**nn
cd**41 an**tasa88 cy**es24
yy**me53 dh**ml27 wa**relf
tr**0226 an**78 k1**0k
ra**ag bo**bee do**parkej
so**inja id**tkd jy**38317
is**ah423 cy**ong lo**inno
lm**orld hw**koo hi**sea
pj**207 xo**jd46 cl**hes_peg
ga**ultong sh**rud ga**suki1
ep** ma**mazi ne**8
ha**lde go**leaves 13**018
ba**ohoya fi**rleesy gu**ess1
ki**lyhj e1**10 mk**rean
no**rk9 yo**gmin97 hw**ito
lo**71 ki**0c or**on
my**ve616 ha**ho es**n77
ky**ng8932 ja**750531 kh**i
ka**laa ss**ib wi**and
jw**ry do**na l7**7
ja**som ka**a12222 lo**look
oo**obi je**6 js**1713
ar**angkk bi**07 na**vehea
en**94 by**8 ki**wd
7l**ht2 as**sa11 ro**978
bo**mian75 do**enam ss**2g
kg**ther sa**hya na**oile
ke**006 mk**0729 kh**23
sm**a22 lm**311 ql**2005
ph**o1 re**ation yj**0320
ne**go85 ho**7880 mu**n98
od**42 ki**monkey li**x00
zz**vbnm1 nc**6 su**ell
kl**e201 sk**adoo sp**d1931
wi**sayuri re**loom216 ki**8345
kk**dam ls**025 ss**um
bo**nmanse jo**147 sa**t565
ce**1 en**ndhi rj**2
pr**ress1422 or**osa ah**197
oc**y24 an**rose dk**tlak
ks**903 te**imee sj**18
yh**es lh**19 ga**hbs
ve**tase00 pp**pppppp ri**ecactus

※개인정보 보호를 위하여, ID 세번째 부터 두자리가 *처리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본인의 아이디가 맞는지 확인하시고 싶으신 분은 쪽지로 문의해주시면 됩니다.

당첨자 수가 많은 관계로 Ctr+F로 찾아주세요!


 

수상하신 모든 분들 축하드립니다

 

북켄드 이벤트 공지사항에서 말씀 드렸다시피,

최우수 주말 독서왕께는 100,000원

우수 주말 독서왕께는 30,000원

최다 독서왕께는 70,000원

행운상분들께는 2,000원씩

이번주 10/9일 내로 포인트가 지급 될 예정입니다.

 

 

!매월 둘 째주 월요일!에 당첨자 발표로 찾아뵙는거 잊지 않으셨죠~?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길 바라면서

이만 물러갑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1 2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