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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유시민 “확실한 자존감이 필요한 시대” | 기본 카테고리 2017-06-3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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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바쁘다. 정치할 때는 좀 외로웠는데 정치판을 벗어났더니 의외로 불러주는 곳이 많다. 그렇다. 유시민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부터 책을 썼다. 시사 칼럼을 연재했고 토론 프로그램 진행자로도 일했다. 2002년 정치에 입문한 후에도 꾸준히 책을 써온 그. 2013년 정계를 은퇴한 뒤로는 ‘지식소매상’이라는 명함을 파고 전업작가로 살고 있다. JTBC <썰전>, tvN <알쓸신잡> 등에 출연 중이라 간혹 10대들에게는 “방송인이세요?”라는 질문을 듣지만, 그가 가장 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집필이다. 파주출판단지 지혜의숲에서 작가 유시민을 만났다. 책상 위에는 『국가란 무엇인가』를 올려두었다. 2011년 4월에 쓴 책으로 올해 1월 개정 신판을 출간, 현재 14만 부가 팔렸다.

 

유시민 셀렉 (2).jpg


이것이 국가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개정신판 리뷰를 보다가 재밌는 글을 발견했다. “책을 안 팔아줘야 한다.” 인세가 들어오지 않으면 정치판에 다시 나올까, 기대하는 독자들이 있더라.

 

웃자고 하신 이야기이겠지만, 정치하면 돈 못 번다.(웃음)

 

방송의 힘이 무섭긴 하다. 요즘 인기가 무척 많다. JTBC <썰전>과 tvN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의 시청자는 좀 다르지 않나? 방송을 보니 아내 분이 추천해서 출연하게 됐다고.


시즌제니까 그렇게 힘들지 않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교양의 확산’이라는 관점에서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찍다 보니 독서로도 연결이 되더라. 정재승 박사나 김영하 작가, 황교익 칼럼니스트도 모두 책을 쓰는 사람 아닌가? 통영에서는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이야기하고, 또 네루의 『세계사 편력』도 언급되고. 사람들이 방송에 나오는 책을 좀 찾아 읽으시는 것 같더라.

 

<알쓸신잡> 출연진의 도서를 묶은 기획전도 한다. 가끔 베스트셀러 순위를 찾아보기도 하나?


집에서 신문을 두 개 구독하고 있어서 주말판이나 수요판, 북 섹션을 눈여겨본다. 무슨 기준으로 이런 책을 크게 소개하나? 싶을 때도 있지만, 신간을 보면 사람들의 관심사, 트렌드를 알 수 있으니까 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총,균,쇠』는 우리나라에 번역된 게 2005년 아닌가? 지금까지 스테디셀러인데 읽기 수월한 책이 결코 아니다. 과학자가 쓴 역사책이기 때문에 절반은 과학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읽고 나면 엄청난 지적 자극을 받는 이 책이 오랜 사랑을 받는 걸 보면 우리나라 독자들이 장난 아니구나 싶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베스트셀러도 많다. 이런 책을 뭐 하러 읽지? 이걸 책이라고 할 수 있나? 이건 그냥 소비재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물론 책의 기능은 다양하니까 생산재도 될 수 있고 소비재도 될 수 있지만, 가끔은 출판사에서 장난 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이런 생각이 들면 꼭 몇 달 후에 신문에 기사가 나더라.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책이 인기가 많다.


선거가 끝났으니 일시적 유행이 아닐까. 시간이 좀 지나 읽을 분들이 다 읽으면 또 다른 책을 읽지 않겠나. 나쁠 거야 없다고 생각한다. 남이 써준 게 아니라 본인이 쓴 책이라면 정치인의 책이든, 대통령의 책이든 가치가 있다고 본다.


『국가란 무엇인가』 개정 신판이 6개월 만에 14만 부가 나갔다. 2011년에 초판을 찍은 책이니 개정판이 나오긴 좀 짧은 기간 아닌가 싶었다.


초판을 썼을 때는 내가 정치를 업으로 하고 있을 때라 절치부심이 심했다. 언론, 미디어에서 일종의 반지성주의가 심하다고 느꼈다. 무슨 말을 하면 그 주장이나 의견의 사실적 근거, 이론적 타당성의 여부를 보지 않고, 현실적인 어떤 정파적 대결의 맥락 안에서만 해석을 하니까 힘들었다. 어떤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면 그것이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행동인 것처럼 두들기고. 진보, 보수를 불문하고 일종의 반지성주의 아닌가? 하는 생각이 컸다. 정치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내가 생각하는 국가, 내가 생각하는 정치를 쓴 게 2011년의 『국가란 무엇인가』였다면, 개정판에서는 직업 정치인으로서 주장했던 대목을 덜어냈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국가와 정치를 분석하는 지식인의 시각을 분명하게 입혔다.

 

초판 원고 집필을 시작했을 때는 이명박 정부 3년 차였다. 2009년 1월에 용산참사가 있었고. 박근혜 정부 2년차인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 2015년에는 메르스 파동, 2016년 10월에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졌다. 아마 이 같은 사건이 없었다면 개정판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명박 정부가 권력의 폭주였다면 박근혜 정부는 국가의 사유화, 정부의 오작동이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파동을 통해 정부의 무능이 드러났다. 국가의 무기력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국가 권력을 사유화하고 오남용한 대통령과 측근들의 행위가 노출되자 대통령의 정치적 정통성이 무너지고 정부의 기능은 사실상 정지됐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자문했다. ‘이것이 국가인가?’ 나 역시, 이 질문을 던지면서 다시 한 번 대답을 찾아봤다. 그래서 나온 게 개정판이고.

 

서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썼더라.


좋아하는 말이다. 눈보라 치는 광장에 섰던 시민들에게 응원의 말이 될 것 같았다.

 

“훌륭한 국가는 우연과 행운이 아니라 지혜와 윤리적 결단의 산물이다. 국가가 훌륭해지려면 국정에 참여하는 시민이 훌륭해야 한다. 따라서 시민 각자가 어떻게 해야 스스로가 훌륭해질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유시민 셀렉 (1).jpg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글을 정리하면서 느낀 개인적인 소회는 없나?

 

우선 살아가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으니까. 사실 정치는 지적인 활동을 하기 참 힘들다. 일상 자체가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데,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어떤 기업의 제품을 세일즈 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자신을 판다는 게 좀 다를 뿐이지. 그러다 보니 거의 세일즈맨의 삶과 비슷한 면이 있다. 아주 많은 사람과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가볍게 접촉해야 하는데 이런 생활에서 어떤 기쁨, 삶의 의미, 자기 존재의 근거를 찾을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또 아닌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였던 것 같고. 직업 정치 자체가 한편으론 굉장히 빛나 보이지만, 이면을 보면 상당히 공허한 활동이다.

 

작가의 삶은 반대가 아닐까 싶은데.

 

글 쓰는 일은 겉보기에는 그리 빛나는 일은 아니지만 내면적으로는 굉장히 충만해지는 일이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이 행위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아주 극단적으로 생각해보면 정말 다른 삶의 패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정판을 쓰면서 느낀 소회는 별 차이가 없다. 그러니까 글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것과 어떤 정치적 메시지를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것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본다면.

 

인간이 만들어내는 관계와 사회질서, 그리고 그것들이 변화할 수 있는 폭과 깊이에 대해 예전이나 지금이나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사람들이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우리의 생애가 너무 짧다. 근원적인 변화를 이끌고 오기에 인간은 너무 어리석은 존재고. 그래서 소박하게, 그냥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하고 진실한 대화를 나누는데 의미를 두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로부터 ‘멘토’라는 칭호를 받고 있지 않나? 특히 대학생들에게 만나고 싶은 작가를 물으면 ‘유시민’이라는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멘토라는 것 자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물론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삶에서 그냥 생각과 감정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자극이 되는 관계, 그 안에서 각자가 필요한 조언을 발견해내는 그런 관계 정도가 맞는 게 아닌가 싶다. 멘토라는 게 좀 웃기지 않나? 과연 어떤 사람들이 멘토로서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멘토링을 해서 나온 결과는 누가 책임을 지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떤 책임을 부여받는 일, 나는 하고 싶지 않다.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주장, 내가 전달하는 보에서 뭔가를 발견했다면, 그 결과도 당신이 져야 하는 게 아닌가? 우리가 리영희 선생님 같은 분에 대해 말할 때, 그 분께 많은 걸 배웠다고 한다. 물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 분을 멘토로 생각하진 않는다. 즉 내 삶에서 요만큼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안 한다. 멘토, 멘티를 남발하는 것은 인격적 주체 또는 삶의 주인으로서 각자가 감당해야 할 책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다. 좀 발칙한 생각이긴 하지만.

 

예전에 한 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 “사실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멘토링을 듣겠다고 강연장에 오지 않는다. 그 시간에 혼자 이미 실행한다. 책을 보거나.” 맞는 이야기 아닌가, 싶었다.

 

책이 훨씬 낫다. 왜냐면 책은 말보다 훨씬 더 압축되어 있으니까. 또 더 정제되어 있으니까 빨리 읽을 수 있다. 눈으로 읽는 게 말로 듣는 것보다 몇 배 빠르다. 자기가 집중하고 싶은 대목은 반복해서 집중할 수 있고. 서양 속담에 “좋아하는 책의 필자는 만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글은 필자의 어떤 한 면을 보여주는 것이라서 그 사람에게 그런 면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만나보니까 다른 면이 보여 실망할 수 있고, 책은 괜찮았는데 말을 들어보니까 별로일 수도 있다. 말은 덜 압축되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 그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정보는 책으로 접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지 않나, 싶다.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걸 얻을 수는 없다.

 

동의한다. 만나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저자는 “기대감을 드러내는 것도 저자에게는 폭력”이라고 하더라.

 

그럴 수 있다. 이해한다.

 

지금의 유시민은 어떤 시기라고 생각하나.


글 쓰는 사람으로서, 상대적으로 높은 긴장이 필요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가 아닐까 싶다. 나이도 들었고 공부도 부족하고. 작년까지 글을 많이 쓰느라 팔이 아파 상반기에는 작업을 거의 못했다. 지적으로 많이 긴장하고 써야 하는 글을 매년 쓰기엔 이제 힘들 것 같다. 앞으로 남은 몇 년은 어떻게 버틸 수 있겠지만, 그 시기가 지나면 긴장도가 높지 않은 장르의 글쓰기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행, 도시 기행 같은 가벼운 글쓰기랄까. 그쪽으로 전환하는 게 맞지 않을까, 궁리 중이다.

 

살면서 후회하는 일이 있나?

 

딱히 없다. 모든 선택이 잘 되진 않았지만, 그 때 상황에서는 잘 판단해서 행동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중에 생각해보니 판단이 잘못됐거나 결과가 안 좋았던 것도 있었지만 후회는 안 한다. ‘그 때 내가 잘못 판단했어’ 이렇게 생각할 뿐이지, ‘괜히 그랬어. 다른 걸 할걸’ 이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당시에는 최선이었으니까. 내 선택이 왜 그랬지? 이유가 뭐였지? 그렇게 돌아보고,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면 다르게 해야겠다’ 그 정도로 생각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판을 볼 때, 화나는 일은 없나?

 

옛날에 강준만 교수가 자주 썼던 말인데, 공격적인 뻔뻔스러움? 그런 걸 느낄 때 화가 난다. 뻔뻔한 건 어느 정도 참아줄 수 있지만 그 뻔뻔함이 공격적인 형태로 표출될 때 화난다. 20대 때는 공격적인 무지를 볼 때 몹시 화났는데, 환갑을 바라보는 50대 후반에 들어선 후에는 권력을 잃어버린 자들의 뻔뻔스러운 공격성이 보인다.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 아직도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사회의 변화라는 게 쉬운 게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유시민을 두고 ‘애증’을 표하는 사람이 많은데. 유시민이 애증하는 대상이 있나?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것 아닐까. 호불호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애증, 이건 정치를 하기 전부터 많이 들었던 말이다. 일간지에 칼럼을 연재하고, 라디오 방송, 토론 프로그램도 진행했을 때도 내가 주장이 강한 편이니까, 항상 반대편이 많았다. 입장이 어떠하든 자기 주장이 뚜렷하면 반대편은 생기기 마련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I don’t care’. 그 사람의 문제지 내 문제는 아니다. 나는 내 색깔대로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옳다고 믿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고, 이것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느끼거나 옳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은 그 사람들의 몫이다. 내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고 별로 마음을 쓰지 않는다. 오늘도 <썰전>에서 청와대 인선에 대해 비판했다고 문자 메시지, 메일을 엄청 받았는데 이것도 OK. 내가 남을 비판했으니까 남이 나를 비판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가 비판한 당사자가 나에게 항의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나를 욕하는 SNS 유저들에게 항의하지 않는다. ‘That’s OK’하고 넘어간다.

 

오래 전 해명한 개혁당 ‘조개’ 발언이 지금도 페미니즘 관련 책에 등장하던데.


알고 있다. 온라인에 뭔가 한 번 나타나면 없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겠나. 명백히 왜곡된 보도였고 내가 항의를 했지만 시정이 안됐다. 계속 맥락 없이 인용되고 있는데, 이건 나의 과거 활동의 부산물이라고 생각하고 내버려둘 수밖에 없다. 내가 알려진 삶을 살았으니까, 내 모든 게 있었던 그대로 알려지기를 바랄 순 없다. 그래서 ‘욕을 하려면 욕을 해라, 내가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그걸 바로 잡는데 인생을 쓸 수는 없다’가 내 태도다. 아무리 해명을 해도 안 듣는 상대들이 있다.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이제 해명을 안 한다.

 

우리나라 보수들이 ‘이런 책 좀 읽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은 안 하나?


글쎄. 내가 인문, 사회, 역사 쪽 글을 쓰는 사람인데도 이쪽 분야 책은 잘 안 읽게 되더라. 익숙해서 그런지 아니면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런지, 지적인 자극이나 긴장감이 별로 없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과학 책을 좀 많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의견을 형성하고 주장하게 될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런데 이런 의견이나 주장의 토대가 되는 기본적 사실을 우리가 얼마나 알고 하나, 그런 의심이 많이 든다. 이를 테면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보다 ‘우리는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보통 인문학이 인간의 문제, 삶의 문제를 다룬다고 하는데, 과학도 부분적으로는 동일하다.

 

근거를 더 살펴야 한다는 말로 해석된다.


그렇다. 최근 과학자들이 발견해낸 물리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팩트로, 인문서나 사회 서적에 들어 있는 정보나 이론, 주장, 견해를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어떤 새로운 주장이 나올 때, 바탕이 되는 근거들이 얼마나 튼튼한가에 의문이 간다. 진보, 보수가 논쟁해서는 끝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토대로 접근하는 게 더 낫지 않나? 싶은 거다. 트럼프는 온실 효과도 부정하지 않는가. 이건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무지의 문제다. 그래서 최근에는 인문서, 사회과학서보다 과학책을 더 보고 있다. 좀 어렵긴 해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사피엔스』를 읽고 극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근에 재밌게 읽은 과학 책은 무엇인가?


『랩 걸(Lab Girl)』을 재밌게 읽었다. 여성 과학자 ‘호프 자런’이 식물에 비추어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인데, 과학 연구자들의 삶에 관한 내용도 있고 철학적으로 보면 페미니즘 시각도 전반적으로 깔려 있다. 올해 들어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인데 지적으로도 아주 큰 도전을 받았다. ‘내가 아는 게 별로 없구나’라는 사실도 새삼스레 느꼈고.

 

유시민 셀렉 (3).jpg

 

자존감의 폭, 크기, 강도

 

새 정부, 문재인 대통령을 어떻게 보고 있나?

 

대통령이 굉장히 용기를 내서 일하는 것 같다. 그 점이 마음이 놓이고. 계속해서 용기를 갖고 할 수 있도록 국민들이 지켜봐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한다.

 

책에서 “선호하는 국가론과 선호하는 리더십 스타일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리더십을 가진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나?

 

자존감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스스로 판단할 줄 알고 옳고 그름을 가리려고 노력하는. 대통령은 최고 권력자 아닌가? 어디를 가나 대화를 주고받아야 한다. 그 자리에서 정서적으로 교감을 할 수 있는 게 중요한데 문재인 대통령은 참 잘한다. 문 대통령은 자존감이 엄청 강한 사람이다. 자존감이 강한 만큼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도 강하다. 그리고 상대방이 그걸 느끼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위축되지 않고 셀카도 찍자고 한다. 상대가 나를 존중하지 않을 거라는 예측이 있으면 경직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권력을 가진 앞에서는 긴장하게 되는데, 그 사람이 나를 존중하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면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 지금 김정은 옆에 있는 사람과 문 대통령 옆에 있는 사람을 비교해봐라. 두 사회의 체제의 차이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권력자의 인격, 자존감의 차이를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확실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권력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래야 뻔뻔하게 정치하지 않는다. 자기 무지를 공격적으로 과시하지도 않을 거고,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사과할 줄 알고.

 

『국가란 무엇인가』도 결국 정의와 존중 아닌가.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민주공화국의 시민, 유권자라는 사실에 대해 대통령 자리에서 느끼는 만큼의 자부심을 시민들이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민주주의자가 없으면 민주주의가 잘 안 된다. 단순한 원리지만, 주권자답게 행동하는 민주주의자가 많아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간다. 이번 촛불집회 때 가장 두드러진 대목이, 스스로를 대표하는 시민들이 많이 나왔다는 점이다. 우리 현대 사회에서는 별로 없었던 현상이다. 깃발 밑에 모이지 않고, 직접 만든 손팻말을 든, 자기 의견을 직접 대변하는 시민들이 대거 등장했다는 사실에 의미를 둬야 한다. 이건 자존감이 강한 시민이라는 증거다. 최근에 『자존감 수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나는 좋게 봤다.

 

자존감을 인지하는 독자가 많아진 현상에 대한 긍정적 인식인가?

 

그렇다. 사실 그런 책은 흔할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오랜 임상경험을 토대로 일반 원리를 밝혀주니까. 제목이 독자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않았나? 그건 스스로 자존감이 너무 약한 것 같다고 자각한 독자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를 키울 때, 절대 자존감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다음부터 회복이 안 된다. 학교에서 성적이 많이 안 나오고 체육 시간에 다른 애들에 비해 체력이 조금 떨어져도 자존감이 있으면 견뎌낸다. 삶을 자기가 버텨낸다. 그런데 자존감이 무너지면 그 때부터는 막 나간다. 엄마한테 욕하고 대드는 것도 아이의 자존감을 파괴했을 때 나오는 현상이다. 엄마가 자존감을 지켜주는 양육을 했더라면 어떤 경우에도 엄마에게 욕하지 않는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자존감이 진짜 중요하다. 사회의 리더가 됐든, 일반 시민이 됐든 간에 한 사회의 수준과 품격을 좌우하는 건 시민 개개인이 갖고 있는 자존감의 폭, 크기, 강도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젊은 독자들이 유시민에게 가장 궁금해 하는 질문을 찾아봤다. 토론 잘하는 법이 압도적이더라. 책과 방송에서도 종종 말했지만, 압축해서 이야기를 해준다면.

 

논리적으로 말을 잘하고 싶다면 일상적인 삶에서 누군가가 논리적이고 지적인, 정신적인 도발을 해오는 걸 즐겨야 한다. 자기도 도발하고 주변에 그런 친구들이 있어야 한다. 친구가 됐든, 동료가 됐든. 내가 운동권 생활을 꽤 했지 않나. 늘 그런 생활이었다. 사실 지금보면 다 틀린 이야기인데, 그 맞지도 않는 이야기를 두고 피 터지게 논쟁했다. 독일 유학 5년 동안도 늘 도전의 연속, 정치 생활 10년에서도 일상이 매일 공격과 방어였다. 그렇게 20년 넘게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사고 패턴이나 문장을 구사할 때 사용하는 어휘나 문장의 형식이 논쟁적으로 되더라. 그런데 정치는 그렇게 하니까 잘 안 된다. 정치는 세일즈라 논쟁해서 팔 수는 없으니까.

 

지적 도전을 많이 받으려면 책 읽기만큼 좋은 방법은 없을 것 같은데.

 

물론이다.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늘 생각한다. ‘이거 맞아? 이렇단 말이야? 이 이론이 맞다면 내가 지금까지 생각한 개념이 무너져야 하나?’ 매일이 도전이다. 책을 읽고 생각해보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아닌 건 참고하고. 그렇게 가면 된다. 독서뿐 아니라 일상생활 모든 데서 도전 받고 응전 받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삶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 속 모습과는 다르다.(웃음) 역시 사람에겐 다양한 면이 있다. 다음 주에 유럽 여행을 간다고 들었다. 여행 작가가 오랜 꿈이지 않나? 여행서는 언제쯤 출간 예정인지.

 

그건 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먼저 작업할 책이 있어서 준비 중이다.

 

어떤 책인가?

 

우리말로 옮기면 의미 전달이 좀 어렵던데. History of writing history. 일종의 ‘역사서 속의 역사’를 쓰고 있다. 역사 서술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가를 찾아보는 책인데, 돌베개에서 나올 예정이다. 연말까지는 이 작업을 해야 해서 좀 바쁘다.

 

『국가란 무엇인가』를 읽은, 또는 읽을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 이런 책을 읽고자 마음먹은 독자에게 어쩌면 더 희망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고 국가에 대해 이해를 하셨다면, ‘내가 사는 국가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면 내 몫은 뭐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지?’를 생각해보셨으면 좋겠다. 그것이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정부의 한 책임자를 바꾸는 일도 수많은 사람이 보이지 않은 곳에서 노력해서 바뀐 게 아닌가? 일상적인 삶 속에서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이 꾸준히 노력해야만 사회가 조금씩이라도 좋아지는 건 사실이니까. 그 일을 찾는데 조금이라도 이 책이 보탬이 된다면 더 없이 좋을 거고.

 

유시민 셀렉 마지막에 넣어주세요.jpg


 

<채널예스> 베스트 기사를 댓글로 알려주세요! (~6월 30일까지)

 

http://ch.yes24.com/Article/View/33720
위 링크 하단에 댓글로 ‘2017년 기사 중  가장 좋았던 기사 1개’를 꼽아주세요!
해당 기사 URL과 이유를 댓글로 남겨주시면, 1회 응모시마다, YES포인트 200원을 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 클릭!


 

 

국가란 무엇인가유시민 저 | 돌베개
2016년 10월 말부터 나라를 뒤흔든 최순실 국정농단, 세 차례에 걸친 박근혜 대통령의 국민 담화, 이어진 청문회와 특검, 대통령 탄핵 그리고 아직 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여러 사안들까지.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런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왜 우리는 이런 국가에서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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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아한 늙음에 대한 에필로그 | 기본 카테고리 2017-06-29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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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문장(안 이후 로소 보이는 문장)

 

그러나 나는 어쨌든 살아야 했다. 우박이 쏟아지든 산사태가 일어나든  밥 짓고 빨래하고 살아갈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나는 삶 외부에서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신이 아닌 나의 하루를 모셔야 했다. 나에게 닥친 우연에 저항하지 말고 운명을 회피하지 말고 삶의 요청을 수용하기로 했다. (중략)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빚지고 있다는 사실이 뜨겁게 자각되었다. 삶을 옹호하는 본능일까. 주위에 더 눈길을 돌리고 더 아우르며 마음 다해 살 수 있었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지음, 126 쪽

 

1.


심보선 시인이 낳은 말처럼,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었다. 진행 중인 늙음을 알아차리면서 무감한 여유로움으로 그 변화를 수용하고 싶었다. 서른과 마흔을 치열하게 달려왔으니 그럴만한 자격도 있고 또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쉰을 넘고 한 두 해가 흘렀을 때, 젊은 시절의 내 노동은 현물로 치환되지 못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은 잡히지 않는 추상이었고 통장의 마이나스 수치는 눈에 보이는 구체성이었다. 10년 이상을 운영하던 회사는 작게 비가 새더니 그 구멍이 점점 커져서 난파선처럼 위태로웠다. 한때 회사를 확장하겠다고 무리한 대출을 일으킨 것이 화근이었다. 이자와 원금을 내기 위해 또 다시 대출을 일으키는 악순환. 특별히 잘 못한 것도 없는데, 흥청망청 낭비한 것도 없는데, 왜 이런 고통을 맞이하고 있는지 억울했지만 억울한 사이에도 갚아야 할 하루의 빚은 늘어갔다.

 

심보선 시인이 같은 시에서 말한 대로,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를 밥처럼 읽고 위로 받으며 꾸역꾸역 살아내는 날들이 이어졌다. 올해 초에 극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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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람처럼

 

몇 번의 이자를 연체하고, 카드가 정지되고, 줘야 할 돈을 주지 못해 전화 소리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다가 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자는 생각이 유혹처럼 들었다. 한 번도 그런 적 없었으니 빌려줄 거야, 누구에게 먼저 부탁을 할까. 인간의 뇌는 확정한 것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보다 결정된 것의 알리바이와 구실을 먼저 만들도록 세팅돼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뇌세포가 그 매뉴얼에 반란을 일으켰다.


에라이! 그럴 바에는 그들에게 영업을 하자!


돈을 빌려달라는 구차함보다는 내 물건을 사달라는 협박이 백배 당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훅하고 들었다. 그래도 누군가의 눈물을 흘리게 하지 않고 오십을 살아왔다는 자신감으로 며칠 밤을 새워 3시간의 치유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리고 메일로 알리고 전화로 알리고 찾아가서 알렸다.

 

그 과정에서 나는 지인들에게 거의 은혜라고 불러도 좋을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자기 회사에서 몰래 내 프로그램의 제안서를 만들어 준 후배 J, 프로그램의 로고를 만들어준 S, 도입부의 음성 녹음을 자처해준 H, 자신이 운영하는 팟캐스트를 통해 선배의 프로그램을 발벗고 홍보해 준 W, 그 내용이 무엇이건 나라는 이유로 첫번째 클라이언트가 되겠다며 선급금을 보내온 J형, 술자리에서 조용히 불러내 박카스 값이라며 오만원 짜리 한장을 쥐어주던 D형, 밥 거르지 말고 재기하라며 피자를 보내준 L 누님, 힘든 아빠에게 소주와 순댓국을 사준 나의 딸…. 일일이 호명할 수가 없을 정도로 온정의 손길이, 과장한다면, 사랑의 리퀘스트 수준이었다.

 

그 동력으로 재기의 시동을 제대로 걸 수 있었다. 반년이 지난 지금 내가 만든 프로그램은 내 회사의 대표 상품이 되었고, 쓰러지는 회사를 두 손으로 일으켜세우는 골리앗의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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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시간의 적정치유, 곁

 

은혜의 쓰나미를 맞던 무렵이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냉담했던 나의 신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출근 전 집 앞의 기도소에 들려 무릎을 끓고 기도했다. 나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을 절대 잊지 않게 해달라고, 그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고,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 위기가 지나더라도 그들에게 받은 고마움을 죽을 때까지 기억하게 해달라고 간곡히 빌었다.  

 

그렇게 일주일, 열흘, 그리고 보름이 될 무렵, 지금의 이 힘든 시기에 나에게 특별한 도움을 준 사람들만이 아니라, 내 인생 전체가 누군가의 도움 속에서 지어진 것이라는 자각이 스르륵 스며들었다. 내가 잊고 있거나, 무심했거나 아예 생각도 못했거나 더러는 기억하고 있거나 그런 모든 존재들의 손길 속에서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이라는 내면의 소리를 나는 아침마다 듣기 시작했다.

 

겸손해야지, 감사해야지, 그리고 초 단위로 조용히 늙을 것이 아니라 초 단위로 더 열심히 노동해야지, 그리고 누구에게든 나의 것을 되돌려줘야지, 빚 갚아야지, 그것이 내 인생의 숙제인 것이지, 라는 말을 기도소에서 나오면서 늘 중얼거렸다.


2.

 

점쟁이에게 줄초상을 치를 것이라는 점괘를 받고 육백만 원짜리 굿을 하라는 처방을 받은 여자가 있다. 그러나 특별히 고민할 것도 없는 것이, 당장 그녀에게는 그만큼의 돈이 없었다. 점쟁이를 소개해 준 선배는 미안한 마음에 여자를 위로한다. 예전에는 굿을 하면 굿판의 떡과 과일로 70가구, 280명을 먹여살렸대, 그냥 보시해서 업보를 풀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굿 대신 내가 간절히 기도해줄게.

 

“선배의 말에 위로를 받으며 여자는 오히려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살아가는 동안 280명에게 따뜻한 밥 한끼 나눠주겠다고 다짐한다. 자신의 삶도 누군가에게 빚지고 있다는 자각,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성장.” 그 여자, 은유의 책,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중에서 ‘오래 고통 받은 사람은 알 것이다’ 의 내용이다.

 

나는 이 에세이를 읽으며 나의 고통,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 얻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내 인생 전체의 빚짐을 더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것 외에도 이 책은, 생각할 거리를 참 많이 던져주고 멈추게 하고 돌아보게 하고 한숨 쉬게 하고 부끄럽게 한다.

 

작가는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를 서른 다섯부터 마흔 다섯을 경유하는 한 여자의 투쟁 기록이라고 정의했지만 그 기록의 사유는 너무나 깊고 그 연원은 꾸미지 않고 생생하며 특히 기록의 문장은 매혹을 넘어 치명적으로 황홀하다. 자기가 좋아서 무언가를 했던 사람의 나무에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달디단 과실이 열린다. 좋아서 했던 절실한 자기 학습과 풍성한 독서 속에서 뽑아낸 인용과 시(詩)를 골재로 하여 , 여자의 본분과 인간의 존재와 사랑이라는 의미와 일이라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녀의 언어는 진정하고 활자에서는 사람의 향기로 온통 분분하다.

 

“남자는 애 아니면 개”라는 김제동의 말 속에서 가부장제 언어를 잡아내는 섬세한 문제의식, 한쪽의 수고로 한쪽의 안락을 누리지 않아야 좋은 관계라고 생각하는 합리적 철학, 사랑은 새로운 생활방식이지 신앙이 아니라는 자유로운 낭만, 이런 마중물이 작가의 우물에서 이 좋은 글들을 뽑아내는 힘일 것이다.

 

그 어떤 페미니스트 책보다, 연륜과 경험을 갖춘 유명한 작가의 에세이보다, 학식과 명성을 두루 갖춘 시인, 소설가, 철학가의 글보다 나는 은유의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를 읽은 것이 감동적이고 고맙다. 오랜 만에 정말 제대로 된 진짜를 만난 것 같은 흥분감이 이 책의 마지막 장에 떨리는 지문으로 남아있다. 

 

무엇보다, 초 단위로 확인하는 우아한 늙음보다 초 단위의 노동을 선택한 동지를 만난 듯해 나는 기쁜 것이다.

 

2016년 3월부터 15개월 동안 <노비문장>을 써왔다. 34권의 책을 소재로 하여, 품위 있고 우아하게 늙는 방법을 34회에 걸쳐서 이야기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정말 힘든 시기에 이 코너는 나에게 구원이었다. 정신과 육체가 모두 바닥을 기던 하루를 끝내고, 새벽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유일한 나의 본연적 시간이었고 내가 원하는 본분적 활동이었다.

 

역시 또 많은 이들에게 빚을 졌다. 좋은 기회를 준 예스24의 웹진 <채널예스>와 이 코너를 사랑해준 독자, 특히 단 한번도 답글을 달지 않았지만 항상 댓글을 통해 후감을 남겨주신 Ldj1999, 봄봄봄, lyj314, bluek0919, kh7419, yogo999, 동글, 책사랑, 껌정드레스, iuiu22, kenziner, jijiopop, 민재씨,carri, rosemaryd, jijiopop, 언강이숨트는새벽, a50044, 꿈의대화, 감귤님에게 감사드린다. 자자손손 번창하시고 가가호호 만세 부르시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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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최승호 PD “권력을 비판하기는 쉽다, 어려운 것은 진실이다”- ② | 기본 카테고리 2017-06-2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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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김용진 대표 “정권이 바뀌었다고 적폐가 사라질까”- ①에서 이어집니다.

 

“기성매체의 언론 장악력 같은 부분들이 이전에 비해서는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는 김용진 대표의 말은 여러 면에서 의미심장하다. 언론도, 시민도 이 변화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더 이상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며 이제 언론인에게는 이런 시민들을 설득하기 위한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최승호 PD는 이에 대해 “사실을 전달하는 방식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 해야죠. 생각과는 다른 진실을 들어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들이 그것을 팩트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해요. ”라는 최승호 PD. 이런 설득과 이해만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의 원천이라고 그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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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의 본가가 되기 위해


미디어 환경이 변화했고, 이제 시민들은 스스로 공부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뉴스타파>의 미래는 어떻게 전망하고 계세요?


최승호: 어떤 사안에 대해 깊이 파헤쳐서 뿌리를 제대로 밝힌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기존 언론들이 설사 정상화 된다손 치더라도 그렇게까지 밝히기가 쉽지 않거든요. 탐사보도를 좋아하지도 않고요.(웃음) 그러니 탐사보도 전문가가 기성 언론 속에서 길러지기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탐사보도의 본가 같은 <뉴스타파>가 계속 인력을 양성하고 새로운 탐사보도 주제를 파헤쳐 나가면서 시대를 개척해 나가야죠. 그렇다면 <뉴스타파>의 미래는 굉장히 밝다고 봐요. 오히려 시민들이 뉴스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과거처럼 주는 것만 받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그만큼 차별성 있는 콘텐츠, 깊이 있는 콘텐츠를 내놓는 매체에 대해서는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평가해주는 시대니까요. 자신이 있어요.

 

김용진: 미국 같은 경우 <뉴욕 타임스>니 <워싱턴 포스트>처럼 탐사보도 잘하는 기성 매체들이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근래 들어 탐사보도만 전문으로 하는 매체들이 많이 생겼거든요. 시민들의 후원, 지지로 운영되는, 탄력적이고 유연한 형태이면서 탐사보도를 전문으로 하는 매체들이 굉장히 빨리 생기고 있고 굉장히 성공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것은 역할을 달리 하며 언론 생태계를 조화롭게 가져가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는 의미겠죠. 한국의 언론 시장도 그런 식으로 재편되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우리가 시작을 했고, 선두에 있으니까 이 모델을 잘 정착시키고 확산시켜 나가고 싶어요. 

 

두 분이 탐사보도를 해오면서 실제 경험한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요. 그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김용진: 충분히 뉴스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증거들을 100% 확인한 후 보도를 하는데요. 막상 기성 매체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을 때는 힘들죠. 가령 삼성 이건희 회장 성매매 동영상 방송을 하던 당시, 삼성 측에 공식 입장을 여러 번 요구했는데 답을 주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쪽을 출입하던 기자들에게 삼성이 문자를 보내서 <뉴스타파>에 오늘 뭐가 나오는데 받아쓰지 말라, 는 협조 당부를 한 거예요. 심지어 그 사실을 문자를 받은 기자들이 또 우리한테 연락을 줬고요. 그럴 때는 상당히 힘들죠. 실제 극히 일부 매체를 제외하고는 보도가 안 나왔거든요. 며칠 뒤 삼성 측에서 공식적으로 ‘유감으로 생각하는데 회장님의 사생활이니 할 말이 없다’는 내용으로 입장이 나오니까 그때야 비로소 삼성 측 공식 멘트를 받아서 ‘이런 게 있었다’는 식으로만 나왔어요. 그럴 때는 한국 언론의 모습들이 좀 암담하기도 하고 그랬죠.

 

최승호: 사실 요즘은 언론인으로서 대중들로부터 비판 받을 수 있는 지점이 굉장히 많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또 때로는 대중들이 원하는 스토리가 사실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있는데요. 그런데 그때가 권력과 싸우는 것보다 더 힘든 것 같아요. 오히려 모두가 싫어하는 권력을 강하게 비판하기는 쉬워요. 정말 어려운 것은 대중이 갖고 있는 특정한 방향으로의 믿음이 틀렸다는 이야기를 할 때죠. 저는 처음 그걸 겪은 게 황우석 보도 때였는데요. 대중의 마음속에 대단한 신뢰가 있던 분이 줄기세포를 조작했다는, 치명적인 내용을 보도해야 했잖아요. 그런데 그때 심지어는 ‘그게 사실이라도 방송하지 말라’는 요구를 대중들이 서슴없이 했었어요. 그런 부분이 굉장히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최근에 그런 어려운 점을 많이 느끼신다는 말씀인가요?


최승호: 정치 지형이나 이런 것들에 따라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시는 분들의 경우 그쪽에 대한 비판을 굉장히 싫어하시는 거죠. 그게 설사 사실이라 하더라도 말이에요. 그런 현상이 요즘 한국 언론을 많이 시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사실을 정확하게 보도해야 한다는 언론인으로서의 기준이 있겠죠?


최승호: 그렇죠, 또 중요한 것은 시간이 갈수록 더 생각하는 부분인데요. 사실을 전달하는 방식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과거 ‘내가 이런 걸 밝혔다!’는 듯이, 뽐내듯이 통쾌한 느낌으로 보도를 했다면 점점 시간이 갈수록 그렇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듣는 사람 입장에서 해야죠. 생각과는 다른 진실을 들어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들이 그것을 팩트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해요. 또 다른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굉장히 겸손하게, 많이 생각하고, 아주 낮은 자세로 이야기 해야겠구나, 그래야 수용이 되는 거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최승호: 정말 어려운데요. 사실은 그걸 제대로 해낼 수 있어야 세상이 바뀌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요. 대중이 적개심을 가진 대상을 꼬집기는 쉽지만 그런 것이 세상을 그렇게 바꾸는 것 같지는 않고요. 대중이 자신의 생각에 대해 ‘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구나’, ‘저 사람 얘기가 맞는 것 같다’, ‘다른 생각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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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공기, 공영방송


특별히 시민들에게 바라는 점도 있을 것 같거든요.


최승호: 언론 자체가 불신을 초래했기 때문에 언론인이나 언론사가 전체적으로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봐요. 굉장히 큰 책임이 있어요. 이 불신이 더 심해지면 사회적으로 좋지 않은 정도까지 갈 우려도 있거든요. 다만 그런 부분에서 언론이 갖는 원초적 잘못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낮은 자세로, 정말 엄정하게 모든 것을 많이 생각해서 보도하고 실수를 줄여서 사람들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겠죠.

 

언론이나 시민 모두 힘든 시간을 지나왔다는 생각이 드네요.


최승호: 공영방송이 대단한 신뢰를 구가할 때는 통상적으로 보도를 하면 사람들이 믿었거든요. <KBS>에서 저렇게 말했으니 맞겠지, 하고는 생업에 종사할 수 있었고요. 어떤 사안에 대해 사회적으로 쉽게 여론이 형성되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십 년 동안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곳이 없어져버린 거죠. 찾아서 헤매는 거예요. 믿을 수 있는 곳이 어디냐 하면서 팟캐스트도 들어야 하고, <뉴스타파>도 와서 봐야 했죠. 말하자면 예전에는 마을 공동의 우물이 있어서 누구나 안심하고 물을 떠먹으면 됐는데요. 지금은 우물을 완전히 오염시켜서 각자 산골짜기에서 쫄쫄 흐르는 물을 찾아 먹는 거예요. 그만큼 공을 많이 들여서 쌓아놓은 뉴스나 생각이기 때문에 언론에서 하는 얘기는 믿을 수 없는 얘기가 되고요. 불신이 굉장히 크죠. 대체로 신뢰 있는 뉴스라 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믿을 수 없다는 걸 너무 많이 봐왔으니까요.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새로운 숙제기도 하겠네요.


최승호: 우리에게는 기회기도 해요. <뉴스타파>는 그래도 그 과정에서 신뢰를 많이 얻어온 매체니까요.

 

앞서 잠깐 언급했던 영화 <공범자들>, 이제 개봉 막바지 준비 중이죠? 영화 제작 배경이 궁금합니다.


최승호: 다른 분야는 정부가 주도해서 해결해 나갈 수 있어요. 물론 국회와의 관계가 있긴 하지만요. 그런데 공영방송은 유일하게 세상이 바뀌었는데 동토의 왕국으로 그대로 남아 있는 곳입니다. 아주 지독한 사람들이 국가의 공기라고 할 수 있는 공영방송을 장악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박근혜 정권에서 했던 식의 보도를 지금도 하고 있고요. 사실은 공영방송을 정상화시키는 게 우리 사회의 다른 많은 부분 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영화는 2008년부터 지금까지의 상황을 다루고 있어요. 그동안 권력이 어떻게 공영방송을 장악했는지, 공영방송 내부에 있던 권력 추종 세력들이 어떻게 방송을 농단해왔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로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최승호: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은 방송이라는 게 이렇게 망가지는 거구나, 이렇게 방송이 중요한 거구나, 이건 고쳐야겠다, 라는 생각을 반드시 하실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영화는 잘 만들어졌으니(웃음) 영화를 많이 보시도록 하는 게 남은 저희의 숙제죠.

 

그 전에 영화 <자백>으로 간첩 조작 사건을 깊이 다루었는데요. 이와 비교했을 때 <공범자들>은 어떨 거라고 기대하세요?


최승호: <공범자들>이 <자백>보다 대중성은 더 있을 거라고 보거든요. 방송에 대해 다루고 있으니까요. <자백>은 그에 비하면 약간 장애물이 있잖아요. 그보다는 일상에서 다루는 방송 이야기기 때문에 <공범자들>이 조금 더 장벽이 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해요. 한편 <자백>을 개봉할 당시는 너무 엄혹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적극적으로 우리라도 도와야지, 하는 심정이었던 것 같은데요. 지금은 그런 부분은 좀 덜해졌죠.(웃음) 어쨌든 그런 것들을 잘 이야기해서 보여주면 <자백>보다 더 많은 관객 수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다른 주제들에 대해서도 영화 작업이 계속 되나요?


최승호: 그렇죠, <뉴스타파>는 제 생각에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산실이 될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이 프로젝트들이 대부분 몇 년이 걸리는 프로젝트들이잖아요. 그걸 처음부터 영화로 만들 수 있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찍기 시작하면 영화 만드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자백>도 3년을 찍었어요. 보통은 그렇게 한 사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찍을 수가 없죠. 영화를 처음부터 만들겠다고 작심하고 한다면 3년이나 찍다간 굶어 죽어요. 그런데 우리는 3년 동안 작업을 할 수 있잖아요. 약간만 더 생각하면 되거든요. 그러니까 1년 정도는 취재를 하고, 하다가 얘기가 된다고 하면 영화 생각을 해보면서 할 수 있죠. 그렇게 되면 앞으로도 충분히 굉장히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가령 4대강 문제가 그런 이슈 중 하나겠네요?


김용진: 4대강도 그렇고요. 조세 피난처도 그렇고, 이건희 회장도 그래요. 영화적 소재가 될 만한 것들은 굉장히 많죠.

 

마지막으로 동료나 후배 언론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최승호: 과거보다 인정받는 언론인이라는 자격을 얻기가 굉장히 어려워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냥 언론사에 들어가서 기자나 PD를 하면 언론인이라고 대접받을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안 그렇잖아요. 그때는 대중들이 믿어줬으니까 그것이 가능했던 거고요. 지금은 대중들이 언론인을 안 믿어요. 항상 기사의 배후에 무슨 음모가 숨어 있는지, 누구의 이해관계가 개입되어 있는지 의심하고 보는 거거든요. 때문에 그만큼 더 우리 언론인들은 자기 자신이 하는 언론 행위에 대해 스스로가 객관적으로 보면서 노력해야 해요. 실력을 길러야죠. 그 실력으로 독자들을 설득하지 않으면 생존하기가 진짜 어려워질 거라고 봐요. 대신 실력만 있으면 대중들이 평가를 해주니까요.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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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포기하지 않는 눈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 저 | 책담
이 책은 지난 5년간 이전 두 정권의 그러한 유산들을 집요하게 파헤친 뉴스타파의 대표 탐사기획 결과물이다. 1부 ‘MB의 유산’, 2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3부 ‘내 세금 어떻게 쓰이나’, 4부 ‘원전 묵시록’, 제목만 들어도 적지 않은 무게감이 전해지는 주제들로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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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는 최근 다양한 취미 활동 중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실과 바늘, 천만 있으면 나만의 예쁜 아이템을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차분히 앉아 수를 놓으면 복잡했던 머릿속도 단순해지고 위로를 얻는다는 것이 큰 매력일 것이다. 감사와 사랑을 전할 일이 많을 때,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으로 만들지 않아도 좋다. 백화점에서 산 그이의 셔츠 소매에, 선물 받은 우리 아기 배냇저고리에, 부모님 댁 오래된 액자에, 실용적인 아이템에 직접 수를 놓아 선물할 수 있는 자수 아이템을 『선물 자수』에서 볼 수 있다.

 

『선물 자수』를 쓴 장정은 저자는 프리랜서 아나운서 10년 차가 되던 해 자수를 접했고, 자수의 매력에 빠져 전업을 결심했다. 몇 년 전부터 소규모 클래스 ‘함께자수’를 진행하며 자수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자수’하면 나이 지긋한 분들이 취미생활로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자수를 접하게 되셨나요? 자수를 취미가 아닌 ‘업’으로 삼게 된 계기가 있다면?

 

어느 날 서점에서 감각적인 자수 책 한 권을 접하고 자수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 후 우연히 클래스를 듣게 되었는데, 그 날 바로 자수가 내 인생의 2막을 열어줄 새로운 길이라 직감했어요. 뭔가에 블랙홀처럼 빠져들게 된 게 처음이라 자연스레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던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잘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있었고요. 자수는 제게 운명과도 같아요.

 

소규모 자수 클래스를 운영 중이신데 이름이 특이합니다. ‘함께자수’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셨나요?

‘함께자수’라는 이름은 제가 클래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재미삼아 친구들과 모여 수를 놓을 때 사용한 이름이에요. “함께해!” “함께하자!”라는 아주 1차원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데 클래스 열기 전 더 멋지고 좋은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그냥 ‘함께자수’가 됐어요. 너무 흔하거나 성의 없어 보일까 걱정했는데 예상 외로 한글인데다 쉽고 좋다고 해주셔서 기쁘답니다.


처음 자수를 시작하는 분들은 ‘책만 보고 따라 하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독학으로도 가능할까요? 독학하는 분들을 위한 ‘소소한 팁'이 있다면?


바늘과 실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책을 보면 사실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아요. 사람마다 소질이나 이해도에 차이가 있어서 ‘독학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답을 드리기가 어렵지만, 책을 여러 번 들여다본다면 어느 정도의 독학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한 번 보고 어렵다 생각해 바로 책을 덮지 마시고 찬찬히 여러 번 읽어보세요. 그래도 이해가 잘 안 된다면 유튜브 등에서 동영상을 찾아보시는 것도 정말 좋은 방법이랍니다.

 

제목이 『선물 자수』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자수 작품을 많이 선물하셨을 것 같은데, 가장 뜻 깊었던 선물이나 받는 이의 반응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원래 선물하는 걸 참 좋아해요. 선물은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동시에 행복해지는 일이잖아요. 자수를 시작한 뒤로 따로 뭔가를 사지 않고도 직접 만들어 마음을 전할 수 있으니, 선물하는 게 더 즐거워졌어요. 최근 평소에 알고 지내던 가방 브랜드의 대표님께 그 브랜드의 시그니쳐 백이 수 놓인 액자를 선물했는데 정말 좋아해주셔서 기뻤어요.

 

최근 학교 선생님이나 좋은 분들께 선물하는 것이 무척 조심스러워졌는데, 자수 선물은 특별하면서도 부담 없이 받을 수 있을 듯합니다. 『선물 자수』 콘셉트를 보고 그런 점을 떠올리신 분들도 많으실 듯한데, 그런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맞아요. 『선물 자수』는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소중한 사람에게 충분히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어요.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좋죠. 받는 사람의 이니셜이나 어여쁜 꽃 한 송이를 수 놓아 만든 아이템을 선물해보세요. 어설프거나 완벽하지 않을까봐 걱정하는 분들이 많은데 우리의 손을 거친 물건들은 그 자체로 이미 특별하고 소중해요. 좋은 사람이라면 그것을 받고 충분히 행복해할 거예요. 세상 어디에도 없는 하나 뿐인 선물이니까요.

 

책에 담은 작품 중에 가장 소중한 작품은 무엇인가요?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아기 배냇저고리에 수를 놓은 작품이에요. (나중에 아기가 태어난다면) 내 아기에게 꼭 입히고 싶은 아이템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책이 출간되기 전부터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은 작품이었고, 실제로 ‘예비맘들의 마음을 심쿵하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댓글을 보고 더 각별하게 느껴졌어요.


배냇저고리의 자수를 디자인할 때 시판용 아이템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파는 것보다 예쁘다고 말씀해주셔서 정말 뿌듯하고 의미있는 작품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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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나 페이지가 있다면?


책 속에 펠트를 사용한 작품들이 몇 가지 있는데, 재료 소개 페이지에 따로 소개해두지 않은 게 아쉬움이 남아요. 자수는 의외로 다양한 소재와 원단을 활용해 작품을 만들 수 있는데 너무 뻔한 것들만 설명해둔 것 같아요. 다시 책을 쓴다면 다양한 소재에 대한 설명을 꼭 추가하고 싶어요.

 

자수를 취미로 하는 독자들에게 가장 권하고 싶은 도안이 있다면?


『선물 자수』 속의 도안 중 가장 뚝딱 뚝딱 만들어 내기 쉬운 게 패턴자수가 들어간 거울이에요. 가운데 이니셜을 수 놓을 수 있어 선물하기도 참 좋고 실제로 시도한 분들이 선물했을 때 반응이 너무 좋아 기뻤다는 후문이에요. 적극 권합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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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디자인, 색상, 실용성 등

 

깔끔하고 심플한 디자인과 감각적인 색 조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당장 우리 집 테이블 위에 놓여 있어도 잘 어우러지도록’이라는 원칙을 가지고 디자인을 해요. 현실과 동떨어진 디자인은 아무리 다양한 스티치가 들어 있어도 실생활에서 그다지 사용하고 싶지 않아요. 또한 아무리 수를 잘 놓는다 해도 색감이 예쁘지 않으면 멋지다고 느껴지지 않아요. 색을 감각적으로 조합하는 것이 제가 수를 놓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랍니다.

 

가장 좋아하는 자수 기법(스티치)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최근 멋지다고 느낀 작품은 무엇인가요?


(우습게도) 저는 아우트라인스티치를 가장 좋아해요. 아우트라인은 선뿐만 아니라 면을 표현하는 등 다양한 느낌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죠. 최근 아우트라인 스티치 하나로 드로잉 스케치를 수놓아 만든 작품을 본적이 있었는데 다양한 스티치가 없어도, 혹은 다양한 컬러가 없어도 그렇게 멋진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에 큰 영감을 받았어요.

 

자수의 매력 중 하나는 여러 가지 아름다운 색실을 사용해서 표현한다는 것인데, 특별히 좋아하는 색깔(실)이 있다면?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쁜 색감의 실이 너무나 많아서 좋아하는 것 하나만 꼽는 일은 불가능해요. 그렇지만 실 보관함을 열어보면 녹색 계열의 실들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요. 제가 워낙 식물을 좋아하기도 하고 화분이나 나뭇잎 수 놓는 걸 좋아해서 다양한 색감의 초록 실을 사들이는 것 같아요.

 

책을 보니 자수도 정말 예쁘지만 작가님 댁도 잡지에 나오는 집처럼 예쁘던데, 인테리어도 직접 하신 건가요?


인테리어에 워낙 관심이 많아요. 제가 좋아하는 컬러의 가구와 소품들로 직접 꾸민 집이에요. 옷, 인테리어, 자수는 다양한 컬러로 나만의 감각을 표현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요. 더구나 예쁜 것을 좋아하는 여자라면 즐겨할 만한 것들이죠. 저희 집의 포인트는 예쁜 계단과 집 안 곳곳에 놓인 제 자수 작품들이랍니다^^ 자수 작품은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손색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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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아나운서 10년 차에 자수를 접했다고 소개되었는데, 어떤 방송을 주로 하셨나요? 그때가 그립지는 않은지요?


안 믿기시겠지만 저는 주로 뉴스나 경제, 건강 관련 프로그램들을 진행했어요. 어릴 적부터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었고, 방송국에 들어가면 그런 재미난 일들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어요. 전업을 한 건 정말 잘한 일 같아요. 그 때가 하나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현재의 일에 만족하는 중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작업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저는 앞으로도 실생활에 기반을 둔 작품을 만들고 작업해보고 싶어요. 쓸모 있는 자수를 놓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자주 입는 재킷 위에 혹은 좋아하는 모자 위에, 우리 집 쿠션이나 커튼 등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고 내 삶에 온전히 스며들 수 있는 자수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한 가지 더 욕심내자면, 최근에 브랜드 아이템 작업을 했는데 예상 외로 너무 재밌더라고요. 좋아하는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하는 꿈도 꾸는 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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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자수 장정은 저 | 다산지식하우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수’ 하면 사극 속 어여쁜 공주가 조신하게 야생화를 수놓던 모습을 떠올렸다. 하지만 최근에는 젊은이들이 다양한 취미 활동을 즐기면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어, 동네 카페에서 자수 놓는 이들을 볼 수 있을 정도다. 실과 바늘, 천만 있으면 나만의 예쁜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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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정명 “1987년은 2017년을 비추는 거울” | 기본 카테고리 2017-06-26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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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인물 최민석은 운동권의 실세로 지목된, 한 번도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는 신출귀몰한 사람이다. 신문 사회면에 그에 관한 기사가 실리고, 술자리에서 영웅으로 회자되면서 정보 당국은 최민석을 잡아들이기 위해 특별팀을 꾸린다. 팀장으로 발탁된 김기준은 젊은 연극 연출가인 이태주가 최민석이라 확신하고 그의 인생을 조종하면서 궁지에 몰아넣는다.


『선한 이웃』은 등장인물의 시점으로 격동의 시대인 1980년대를 돌아본다. 소설 속에서는 정보기관 공작원도, 무고하게 잡혀 들어가는 예술가도 ‘관리자’로 대표되는 권력 앞에서 장기판에 놓인 말처럼 이용당할 뿐이다. 과연 선과 악의 기준은 무엇인가? 『바람의 화원』, 『뿌리 깊은 나무』 등의 전작에서 주로 역사적 배경으로 매력적인 이야기를 선보인 이정명 작가는 『선한 이웃』을 통해 1987년 직선제 전후 30년간 ‘정의’와 ‘선’이 정권에 의해 흐려지고 뒤바뀌는 과정을 묵직하게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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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그 분이 아닙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연극이 소재로 많이 나왔어요.

 

이제까지 제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행동과 그 행동을 추동하는 다른 하나의 매개체가 있는데, 『뿌리 깊은 나무』는 한글과 언어, 『바람의 화원』은 그림, 『별을 스치는 바람』은 시였죠. 연극은 80년대를 이야기하기에 가장 적합한 매개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음악이나 철학, 역사 등 각 분야의 지식인들이 실질적으로 연극 무대를 통해 정권을 비판하고 현실을 풍자하면서 정권 쪽에서는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고요. 심했기 때문에 연극판을 하나의 배경으로 삼으면 그 당시 사회에서 예술을 검열하고 압박하는 분위기를 더 절실하게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실제 대학을 다닐 때 연극을 하신 적이 있나요?


직접적인 상관은 없었지만, 그 사건에 직접 가담하거나 연루되는 것과는 별개로 심정적으로 그 사건 혹은 인물에게 얼마나 동정심을 느끼는가가 더 그 사건과 상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사건이나 그 이후 여러 사건에 내가 관련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할 수 없듯이, 어떤 식으로든 동시대의 사건을 겪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관련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이제까지 소설에서 이야기나 재미가 중시되었다면 이번에는 주제나 메시지가 조금 더 나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80년대 이야기를 하면서 주제의식을 얕게 짚고 넘어갈 수는 없었어요. 이전의 조선 시대라든가 하는 배경에서는 이야기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80년대 사건은 아직 우리 삶을 규정하기도 하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많이 있기 때문에 생각할 거리를 우리가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태주가 ‘관객이 무엇을 좋아할 건가가 아니라 그들에게 무엇을 말할 건가’(37쪽)가 중요하다고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주인공의 입을 빌려 작가가 한 말이 아닐까 싶었어요.

 

어떤 면에서는 그런 대사가 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겠죠. 책을 쓰면서도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반전이 있는 소설입니다. 인물의 순서가 중요했을 것 같은데요.


어떤 인물이나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기보다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할지가 더 집중했던 부분이었습니다. 형식적으로 각각 인물의 눈으로 상황을 제시하고 그 인물들이 결국 같은 주제를 이야기하되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면서 하나의 큰 사건을 일으키게 되죠. 그 사건에서 다시 각각의 결론으로 도달하고요. 개념적으로 모래시계 형상을 생각했었어요. 각각의 인물을 통해 그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이 다양하게 그 시대를 보여주는 방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과 ‘악’이 주요 모티프이기도 합니다. 선한 이웃일지라도 악한 일을 한다는 문제의식은 어디서부터 시작됐나요?


서울대 프락치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사건 자체의 내용이라든가 그 사건의 법적인 판결보다는 항소 이유서에서 꿈많은 소년이 결국은 폭력배가 되어 법정에 서 있다는 구절이 귀에 걸렸다고 해야 할까요? 한 개인의 도덕적인 양심과 그 개인을 둘러싼 국가 또는 체제, 사회 전체가 지향하는 이상이 각각 괴리될 때, 개인의 선한 의도가 결국에는 권력과 결부되면서 선하지 못한 방향으로 왜곡되는 일들이 매우 많이 있었고, 지금도 그런 경우를 흔히들 보고 있죠. 
 
빛나는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 설레던 열아홉 살의 소년이 7년이 지난 지금 용서받을 수 없는 폭력배처럼 비난받게 된 것은 결코 온순한 청년이 포악한 청년으로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시대가 ‘가장 온순한 인간들 중에서 가장 열렬한 투사를 만들어 내는’ 부정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 1984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에 연루된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중

 

범죄자들이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고 결과적으로 잘못되어서 교도소에 왔다는 장면을 흔히 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판단할 때 그 사람이 한 행위와 그 사람의 행위로 낳은 결과로 판단하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는 선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자기변명 혹은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되겠죠. 그래서 보통 사람으로 사는 개인의 선택이 권력과 결부되었을 때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 경각심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소설을 읽으면 떠오르는 실제 인물들이 있게 되잖아요. ‘서울대 프락치 사건’의 항소 이유서도 유시민 씨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데, 실제 인물을 겹쳐서 그리게 되는 부담감은 없으셨나요?


소설은 소설로 받아들여져야 하고 또 그럴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큰 부담은 느끼지 않았어요. 조금이라도 소설 때문에 피해가 있다면 그런 부분에서는 전혀 의도한 것이 아니고, 주인공은 그분이 아니라고(웃음) 정확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습니다. 항소이유서에는 전적으로 공감했는데, 불의한 권력이 개인의 도덕적 양심을 악으로 왜곡시켜서 전과자로 만든 상황이었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개인을 탓할 것만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통해서 불의한 시스템 자체를 개선하고 제거해나가는 게 제대로 된 방법인 것 같아요. 『선한 이웃』이라는 제목도 중의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죠. 개인의 선한 의도가 정의로운 사회와 부합하면서 선함이 선함으로 계속 지켜져 나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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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이 2017년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를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인용문으로 소설이 시작합니다. 책을 관통하는 내용으로 봐도 될까요?


원고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넣은 구절인데요, 내용과는 상관없이 권력과 개인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어서 넣었습니다. 적합하다고 생각한 첫 번째 이유로는 제가 쓴 이야기가 결국 개인과 권력의 마찰 또는 관계에서 개인이 허물어져 가는 모습이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로는 시민들이 권력의 억압을 견디지 못할 때까지는 견디는 것들이 어느 정도는 체질화되어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1987년에 직선제를 획득하고도 민주주의의 질적 완성을 가져오지 못한 하나의 이유가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 항상 주의하고 견제하고 감시하는 시민의식이 계속 가동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이청준 선생께는 죄송스럽지만 그런 부분과 가장 부합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독자들께서 꼭 한 번 곱씹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었죠.

 

“…그 지배자가 최초에는 아무리 성실한 인간성과 선의의 명분을 지닌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그 갇힌 인간의 무리가 아무리 그들의 지배자를 바로 경계한다 하더라도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가 다 함께 그들을 가두고 있는 울타리에 대한 깊은 각성에 도달하지 못하는 한, 다스리는 자는 결국 그의 무리를 일방적으로 조작해나가게 마련이며, 다스림을 당하는 자들 또한 다스리는 자의 뜻을 재빨리 수락하고 그것에 봉사해나갈 수밖에 없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처음에는 ‘대통령 후보가 된 비밀 정보원’이란 소재로 집필을 시작하셨다고요. 초고에서도 선과 악에 관한 주제의식이 있었나요?


전반적인 주제는 비슷했지만, 처음 구상 단계에서는 조금 더 플롯의 전개에 충실하게 무게를 둔 방식으로 써나가려고 했고, 초고 단계에서는 주인공들의 물고 물리는 관계가 빠르게 진행하는 장면이 많았었죠. 이후 수정하는 과정에서 연극적인 요소가 강조되고 결과적으로는 지금의 소설이 되었습니다.


‘1987년 6월이라는 시점이 2017년 6월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고 썼습니다.


처음 소설을 구상한 건 2012년 대선 전후 시기쯤이었던 것 같아요. 한 번 더 대통령이 바뀌면 절차적인 민주주의를 획득했다고 하는 6월 항쟁에서 30년이 되는 시점이었죠. 30년이 한 세대를 상징한다고 봤어요. 한 세대가 넘어가는 동안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어떤 방향으로 왔는지 생각해 보고 싶었고, 저 스스로 앞으로 30년을 어떻게 나아갈지 생각하는 계기로 삼고 싶었어요.


2012년부터 쓴 소설이었으면 꽤 오랫동안 집필하신 셈이에요. 세월호 사건 이후 원고 수정이 중단되기도 했다고요.


저뿐만 아니라 어떤 측면에서는 대한민국 전 국민이 거의 탈진상태에 마비 상태였어요. 넋을 잃고 거의 1년, 길게는 2년이 지나간 상황에서 저 자신도 역시나 쓴다는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느끼지 못할 정도의 상태로 보낸 거죠. 그 이후 작업이 더뎌지고 아예 작업을 중단했던 상황까지 갔었어요.


다른 문인들도 거의 그런 상황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세월호 이후 글쓰기가 달라졌다고 하는 분도 있었어요.


저도 이번 원고를 수정 과정에서 보충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이야기 자체로 나가기보다 생각할 수 있는 부분에 조금 더 무게중심을 두고 개고 작업을 했습니다.


수정은 어느 정도나 하셨나요?


작품마다 다를 것 같아요. 이 작품은 거의 1년 가까이 하지 않았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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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간에 숨은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갑니다


전작을 보면서 ‘소재가 다양한 소설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류 백제부터 시작해서 서양의 살인 사건을 다루기도 하고요.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싶다는 마음인가요, 혹은 다양한 주제를 다뤄야 한다는 당위인가요?


소재 자체를 탐닉하는 건 아닌 것 같고요. 아마도 기록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게 아닐까 해요. 주로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다 보니 역사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제가 관심이 있는 건 역사가 아니라 기록된 기록인 거죠. 지금 기자님도 제가 드린 말씀을 일일이 쓰지 않고 일정 부분은 기록자의 관점에 따라 삭제되기도 하고 관점이 삽입되기도 하지 않습니까? 기록은 모든 걸 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기록된 것보다는 기록되지 않은 이면의 이야기, 행간에 숨은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갑니다. 특히 역사에서 빈 부분을 호기심 또는 상상으로 채우는 과정 때문에 제가 역사 소설을 많이 쓰게 된 것 같아요.


역사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역사가 비어 있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었네요.


『별을 스치는 바람』에서도, 윤동주 시인에 관해 여러 가지로 취재한 내용과 판결문 등 꽤 많은 자료가 나와 있어요. 하지만 형무소로 체포되고 난 뒤에는 기록이 다 말소됐거든요. 그 비어 있는 부분이 오히려 저한테는 상상력을 펼치는 공간이 되었던 것이죠.


『선한 이웃』 띠지에 ‘가장 한국적으로 압도적인 서사’라는 홍보 문구가 들어갔어요. 부담스럽진 않으셨나요? (웃음)


출판사에서 이렇게 써주셨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제가 어떻게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웃음)


왜 ‘한국적인 서사’일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한국의 거시적인 역사적 상황을 소재로 쓰시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 같거든요. 역사를 크게 보는 것도 어떻게 보면 비어 있는 부분이 많아 보여서 그런 걸까요?


주로 대한민국 국민이 다 안다고 해도 될 만한 이야기를 많이 그리는데요. 어떤 시대를 쓸 것인가, 어떤 시대의 어떤 인물을 쓸 것인가 보다는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 것인지 더 고민하는 편이에요. 세종을 다루면 사실 쓸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은 사람이 알고 있죠. 하지만 그 인물과 시대를 이제까지 바라봤던 관점과 다르게 봤을 때 그 상황과 인물의 새로운 면모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게 소재를 채용하는 데 제 나름대로 기준이 될 것 같아요. 물론 그 사람의 이면이 사실이 아닌 허구라고 할지라도 이제까지 나온 기록에 근거해 개연성 있는 하나의 관점이 될 수 있다면 그걸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게 흥미로워요.


이제까지 소설을 낸 걸 보면 1,2년에 한 권씩은 꼬박꼬박 나오고 있어요.


출판사에서는 저보고 과작이라고(웃음) 더 빨리 쓰라고 그러시는걸요. 이번 책은 제가 생각해도 중간에 작업을 중단한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꽤 시간이 걸린 편이었어요. 더 분발해야 될 것 같습니다.


요새 생각하는 소재는 무엇인가요?


여러 소재를 두고 생각하는데, 소재가 작품이 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 소재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방안이 서야 집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만 본다면 소재만 많은 셈이죠.


자료를 선택하는 방식이나 축적하는 방식, 작품을 발표하는 시기를 보면서 소설가라는 직업에 성실한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직장인으로 10년, 15년 가까이 살았기 때문인지 직장인의 생활 양식에 충실한 편이에요. 9시에 출근해서 저녁까지 사무실에서 일하고 6시가 되면 또 내일을 위해서 퇴근하는 게 저한테는 제일 편하더라고요.


직장을 다닐 때는 저녁이나 이른 아침에 소설을 쓰셨는데, 소설을 쓰는 일이 업이 되면서부터는 저녁에 다른 취미가 생겼나요?


주로 운동을 많이 해요.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9시부터 6시까지 일하는 시간이 굉장히 고통스러워지더라고요. 글을 열심히 쓰기 위해서라도 운동을 해야 하는 셈이죠.


직업 정신이 투철하시네요.


정신만 투철하고요. (웃음) 게으름도 사실 많이 피웁니다. 일이라는 게 하겠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 시간만큼은 충실히 하려고 노력하죠.


소설을 쓰기 전에는 기자 생활을 오래 하셨죠. 인터뷰를 하는 입장에서 받는 입장으로 바뀐 지 꽤 오래됐는데, 인터뷰이로서 많이 자연스러워진 것 같아요.


인터뷰 초기에는 새삼스레 무슨 이야기를 할 게 있나 생각하고 제 자리 같지 않았거든요. ‘웬만한 건 책 내용을 통해서 독자분들이 아시겠지’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간간히 독자들과의 만남을 가지면서 의외로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궁금증, 아니면 만나서 설명할 수밖에 없는 부분들이 또 있더라고요. 책만 불쑥 내놓고 알아서 읽으라고 하는 게 어떻게 보면 무심하고 불친절해 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최소한 어떤 부분이라도 보충해서 말씀드려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번역본도 많이 나왔다고 들었어요. 다른 언어로 쓰인 책을 보면 기분이 어떤가요?


제 책 같지는 않지만 먼 친척뻘 정도 되는 느낌이에요. 직접 모국어로 쓴 책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거리감은 있지만, 나와 아주 가느다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약간의 감정이 생기죠. 먼 친척을 오랜만에 보는 감정이 들더라고요.


여러 책을 내셨는데, 독자에게 특히 사랑받거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주목을 못 받아서 안타깝거나 하는 책이 있나요?


모든 소설은 저한테는 소중하죠. 독자분들이 사랑해 주시느냐와는 별개로 그 시점에서 제가 쓸 이유가 있었고 또 썼기 때문에 모든 소설이 다 비슷한 비중으로 소중합니다. 제가 안타까운 것은 소설 자체에서 놓치고 지나간 부분, 혹은 과했던 부분이 나중에 발견되었을 때일까요. 그런 부분이 아쉬울 뿐이에요.


 

 

선한 이웃이정명 저 | 은행나무
선보이는 작품마다 마니아를 양산하며 대중을 끊임없이 매료시켜왔던 작가 이정명이 4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장편소설 『선한 이웃』이 출간되었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정보기관 공작원과 권력의 타깃이 된 연극 연출가 간의 대립을 담은 『선한 이웃』은 생존을 위해 악에 부역할 수밖에 없었던 이 사회의 주변인들이 겪는 고뇌, 갈등 그리고 최후의 선택을 그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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