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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날들 | 이야기들 2012-12-3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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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탁상 달력에 기념일과 생일을 옮겨 적으려 2012년 1월부터 지난 달력을 넘기는데 메모들을 보니 그 날들이 멀기가 참으로 아득하다. 아들애 입시 원서와 인터뷰 스케쥴들, 집 팔던 일들, 시카고 갔던 일, 아들애 졸업식과 프롬 파티...귀국, 이사 그리고 한국에서의 생활들.....사랑하는 가족을 둘이나 잃었고, 아이는 대학생이 되어 첫 학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있다. 2월 5일 부터 시작한 블로그에 글도 100편이나 올렸다. 여름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다른 우주 같은 느낌이 든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는게 계곡물 가운데 서서 퀄퀄 흘러가는 물줄기를 몸으로 맞는것 같다. 나는 서있고 물은 흘러가고, 물과 바람에 내 몸이 깎여나간다. 

 

평생토록 새해를 맞으며 야무지거나 거창한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다. 욕심 없이 그저 작은 일들에 애 끓이며 살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나하나에 의미 찾고, 의미를 부여하던 때는 사는게 힘들었다. 자기 개발서에 나오는 내용들에 반하여 살았지만 그렇다고 열심히 살지 않은건 아니다. 눈 앞에 닥친 일들에 급급, 해결해 가면 살았지만 그것만으로도 벅찬 날들이었다.

 

시간은, 미래는 언제나 내 용량에 벅차게 오지만 어떻게든 이겨내며 살아왔다. 어린시절, 닥친 모든 일들을 해결하며 사는 어른들에게 느꼈던 경이를 내가 몸으로 실현하며 살고 있다는 기특함이 든다. 내가 자식을 길러내고 늙은 부모님들의 의지가 된다는 사실이 놀라울 때가 있다. 

 

...........내가 대.견.하.다.

 

 

* 친구 여러분 아름다운 삶, 새로운 시간들입니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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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닭 | 이야기들 2012-12-28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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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화장실에 한 줄로 죽 줄 서있는데 초딩 아이들이 우르르 들어오더니 뒤에 줄서있는 사람들 상관 없이 화장실에 들어간다. 그래도 모두 아무 말이 없다. 아니, 이런!

"너희들 왜 줄 안서? 어린이들이라도 줄은 서야해. 아주 급해서 일 날거 같은 사람만 먼저 들어가고 나머지는 줄 서." 

아이들이 눈치를 슬슬 본다.

 

장면 #2.

대형 마트에 점심 시간에 갔더니 시식 코너가 활황이다. 쵸콜렛, 오뎅, 우동...스테이크도 있다. 간이 좀 짜서 목이 마르면 마침 맞게 쥬스나 커피 시식 코너도 있다. 한 시식 코너 앞에 섰는데 시식 컵이 딱 두개 남았다. 그런데 저쪽에서 아줌마 한명이 코트를 휘날리며 이쪽으로 슬라이딩 한다. 나는 속으로 저 아줌마랑 둘이 하나씩 먹으면 되겠다 하고 손을 뻗었는데... 그 아줌마 단숨에 두개를 나꿔채 간다. 이미 손을 뻗었던 나는 뻘쭘하게 됐다. 화가 났다. 시식에도 상도덕은 있는거다!

"아줌마 저 손 뻗은거 안보여요? 정말 경우가 없군요."

아줌마 아무말 없이 어색하게 눈치 본다.

 

장면 #3.

백화점에 갔는데 그 넓은 공간에 화장실이 딱 한 곳이다. 몹시 불편하다, 이 넓은 매장에 딱 한 곳이라니 이럴 수가. 들어갔더니 그나마 화장실이 겨우 두칸인데 한 칸은 뭘 넣어놨는지 잠궈 못쓰게 해놨다. 화가 난다. 손을 씻으려니 물도 안나온다. 수도 꼭지에 테이프를 칭칭 감아 놓은게 못쓰게 된지 오래된것 같다. 내 앞의 여자는 어, 물이 안나오네 하더니 그냥 간다. 

동생이 호떡을 샀는데 손을 못씻은 나는 호떡을 먹을 수가 없다. 화가 폭발했다. 계산대의 직원이 자기들도 너무 불편하다고 손님들이 항의를 해주었으면 하는 눈치다. 고객 센터로 당장 올라갔다. 상황을 얘기하는데 담당 직원이 교육 받은 화법인지 내가 말 한마디 할떄 마다 똑같이 "....하시단 말씀이십니까?" 하며 따라 한다. 수도 고장난건 오래된거 같은데 했더니 "수도 고장 난지 오래된것 같단 말씀이십니까?" 한다. 아, 뭥미? 수도 고장난지 오래 됐는데 그것도 여직 모르고 있단 말예요? 했더니 알아보겠단다, 참내!

나오며 같이 간 동생에게 왜 아무도 항의를 안하는거야? 했더니 "그냥 다 그런가보다 하는거지." 란다. 

 

긴 생머리에 짧은 가죽 미니 스커트를 입던 아가씨 시절에도 택시를 새치기하는 아저씨와 싸움이 붙으면 포기하지 않았다. 택시 손잡이를 잡고 아저씨가 내릴때까지 버티고, 그 택시를 타고선 새치기를 태운 기사 아저씨를 나무랐다. 외근 나갈때 같이 나가던 후배가 언니랑 다니면 누구랑 또 싸울까봐 무섭다고 했다. 쇼핑센터에서 주차 공간을 새치기하는 인도 청년에 화가나 심지어 영어로 싸우기도 했다. 아들애가 그러다 총 맞으면 어떡하려고 그러냐 질색을 했다. 

 

못마땅한게 너무 많다. 식당에서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아줌마들, 지하철에 다리 쩍 벌리고 앉은 아저씨, 버릇 없고 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10대 아이들, 공공장소에서 스킨쉽이 진한 젊은이들, 계단 놔두고 환승역의 복잡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젊은 청년들, 사람 많은 장소에서 제 아이가 난장을 벌여도 흐뭇해하는 젊은 엄마들, 뒷사람 위해 문 잡아주면 끝없이 줄줄이 들어가는 사람들....

 

내 눈의 들보는 안보이고 남의 눈의 티끌은 잘 보인다. 불의(!)를 보면 화가 불끈 솟는다. 작은 일에도 분노가 아들애 말대로 오버 작렬이다. 참견도 늘어져 엘리베이터에서 귀여운 어린이를 보면 너 참 똘똘하고 잘생겼다 아는채 하고, 손님 응대를 잘하는 점원을 대하면 참 잘한다 칭찬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돈 낼떄 맛있다 잘먹었다 인사한다. 쇼핑몰의 주차장이나 입구의 안내원들이 인사할때 같이 고개 숙여 인사 하면 안내원이 도리어 깜짝 놀란다.

 

이러다 창가에 붙어 앉아 온 동네 감시하는 할머니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나는 왜 작은 일에 이렇게 분노하는지 이 소심함이 또한 걱정스럽다. 아, 나 제대로 나이들어 가는건가 여러가지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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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그린게이블즈 빨강머리 앤 4, 약속 | 영화와 책들 2012-12-0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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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을 넘어가고 나니 너무 달콤해서 좀 멀미가 난다. 우리의 앤 셜리양은 이제 미운 오리에서 백조가 되어 날씬하고, 예쁘고, 똑똑하고, 재주 있고, 매력이 철철 흘러 보는사람 마다 호감이 넘치고, 반하고, 아무리 골치 아픈 문제가 생겨도 진심과 매력으로 그 일을 해결하곤 한다. 너무 완벽한 아가씨가 된 앤의 이야기는 더 이상 활력이 없다. 대신 내 마음을 끄는 다른 많은 여자들이 이 책에 나온다. 할머니와 노처녀들이다.

4편에만에도 깁슨 부인과 그녀의 노처녀 딸 폴린, 앤의 학교 동료 교사 케서린 브룩, 넬슨가의 대고모 그레이스와 노처녀 노라, 톰갤런 저택의 미스 미너버...등('노처녀'란 말은 그냥 책에 나온대로 쓴다.) 많은 여자들이 있다.

 

깁슨 부인은 80살의 휠체어를 타는 심술궂은 할머니다. 입에서 나오느니 독설, 불평. 남의 가슴을 후벼 파고, 끊임없이 자기 몸 아픈 얘기를 한다. 자식들도 모두 질려 찾아 보지 않고, 막내딸 폴린만이 남아 어머니를 돌보느라 결혼도 못하고 45살 노처녀가 되었다. 딸의 결혼도 '네 양심에 맡긴다'라는 교묘한 말로 막아버린 산들바람이나 햇살도 못마땅한, 사람 돌게 만드는 불평쟁이이다.

 

넬슨가의 대고모 그레이스 할머니. 그녀는 늘 눈을 번득이며 먹이를 찾는 고양이 처럼 돌아다니며, 무엇 하나 놓치지 않고 해서는 안될 말, 묻지 말고 덮어야 할 일을 콕콕 짚어낸다. 결혼하는 신부에게 "남자는 괴로움의 씨앗에 지나지 않고, 뭐니뭐니해도 결혼 만큼 믿을 수 없는 일은 없다"고 말한다. 딸의 결혼식에 흥분한 아버지에게 '불행을 바라는건 아니지만 뇌일혈의 조짐이 된다'고 '걱정'한다. 그녀는 살아 온 세월만큼 재수 없는 무수한 경우를 알고 있고, 때마다 그 불행을 모든 사람에게 일깨운다.  

 

황실 집안이라는 톰갤런가의 저택. 그 안에, 이제는 대가 끊겨 홀로 남은 미스 미너버는 가족의 모든 비극을 지켜보고 한걸음 옮길때 마다 저주 받은 가족사을 증언한다. 횡사하고 다치고 미치고 사라진 가족의 망령에 사로잡혀 그녀의 시간은 앞으로 한치도 나가지 못한채 우아하게 박제 되어있다. 

 

앤의 매력, 우정, 청춘을 시기 질투하던 동료 교사 캐서린. 그녀의 고백이 마음을 울린다. "나는 사는 방법을 잊어버렸어요. 아니, 처음 부터 몰랐어요. 나는 덫에 걸린 동물 같아요. 아무래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어요. 언제나 누군가 창살 사이로 막대기를 디밀어 쿡쿡 찌르는것 같아요."

철 들고 처음 들은 말이 '어쩌면 얘는 이토록 보기 싫을까', 태어나기 전부터 자신을 미워한것 같은 부모, 7살부터 천덕꾸러기로 외삼촌 집에 얹혀 살며 한번도 친절한 말을 들어 보지 못하고, 흉한 헌옷을 얻어 입고, 아무것도 허락 받지 못하고 살아온 인생. 모든것을 미워하며 산 인생. 그녀는 긴 시간 동안 삼촌에게 진 빚을 모두 갚고 그린게이블즈에 와서 대자연 속에서 영혼을 치유 받는다. 가르치는 것이 싫다는 그녀의 꿈은 여행이다. 연인도 돈도 아닌 타지마할이나 카르나크의 신전을 보는 일이다. 결국 다시 비서학을 공부해 세계일주 하는 사람의 비서직에 채용되어 세계일주를 떠난다.

 

요즘 나는 너무 늙어버리신 양쪽 어머니를 보며 마음이 심란하다. 이제 80 언저리 연세에 몸도 정신도 쇠약하여 상당 부분 예전과 다른 분이 되어버리셨다. 아무리 설명해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얘기는 입력이 안된다. 자기 중심적으로 편집 입력이다. 배려가 줄어든듯 작은 일에도 노골적으로 서운해 하고 , 희생과 포용의 대명사였던 '엄마'가 아니라 자기중심적이다 못해 이기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깁슨 부인 같기도 하고, 그레이스 대고모 같기도 하고, 미스 미너버 같을 때도 있다. 성격 깔깔한 나는 대화하다 엄마의 애먼 소리에 속이 터진다. 하지만 내 심란함은 엄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다. 엄마와 시어머니를 보며 미래의 내 모습을 보는것 같아서다. 그러지 않을 자신이 자꾸 없어진다.  

 

캐나다에 살때 내가 살던 지역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기후로 노인들에게 무척 인기가 좋아 노인이 많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동네 마트에 가면 예쁘게 머리 하고, 악세서리를 여러개 걸치고, 유행은 좀 지났지만 옷을 차려입은 할머니들을 만난다. 자기들 끼리 만나면 How are you? I'm fine, and you? Thank you, I'm fine. 이라고 정말 내가 영어책에서 배운대로 격식있게 또받또박 인사하는 할머니들이다. 하지만 심술궂고 몰인정하기로 치면 백인 할머니들을 따라갈 수 없다. 괴팍하고, 이기적이고, 꼬장꼬장하고, 편견 많고, 창문에 붙어 앉아 사람들을 감시하다 걸핏하면 신고하고, 그러고도 얼굴 보면 언제 그랬냐는듯 더 없이 상냥하게 How are you? 하며 말을 건다.  

 

5년 전만해도 흉보고 비난했을 모습들이 이제 내 모습인것만 같아 두렵다. 게다가 나는 한국 할머니와 서양 할머니의 나쁜점을 다 합친 모양으로 변할것 같아 더 걱정이 된다. 친정 엄마 얘기하다 동생과 나는 종국에는 한숨 쉬며 어떻게 나이들어야하나, 어떻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나이드나 그 걱정으로 끝나곤 한다. 

 

4편에서 가장 매력적인 사람이 캐서린이다. 앤의 말대로 그것이 다인것 같은 사람, 더 이상 발견할 것이 없는 사람이 아닌, 일단 그 경계를 넘어서고 나면 발견할 것이 많은 사람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자신의 정신을 치유할 줄 아는 사람, 결혼이나 남자를 넘어서 자신을 실현할 줄 아는 여자. 그녀는 세계 여행을 떠나며 이렇게 말한다, 자신있게.

"인생은 지금까지 지불해준 이상의 것을 내게 빚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나는 그것을 되찾을 작정이에요."

인생에 구걸하지 않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 그것이 이제 내가 지켜야할 태도란 생각이 들어 정신이 번쩍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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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밤의 이야기 | 영화와 책들 2012-12-0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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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극장에 모인 세명의 에디터는 시공을 초월하여 아름다운 얘기들을 만들어낸다. 13세기, 15세기의 유럽, 카리브해, 아프리카, 티벳, 아즈텍. 이야기의 배경에는 아무런 편견이 없고 순수한 마음, 진실한 사랑, 따뜻한 심성이 신선한 공기처럼 우리를 감동시킨다. 오슬로 감독의 말대로 등장하는 영웅들이 하나같이 순수하며, 폭압적인 권력과 잘못된 행동과 미신에 맞서 싸운다.

 

영화가 시작되자 마자 나는 익숙한 언어가 아닌, 귀에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외국어의 향연에 흠뻑 빠져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다른 나라의 언어를 듣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가! 그림은 전작 보다 더욱 정교하고 화려해져서 나도 모르게 화면과 소리에 압도되어 문득문득 자막 읽기를 놓쳤다.

 

미셸 오슬로의 다른 작품과 같은 그림자 애니메이션이다. 역동적이고 매끄러운 미국식 애니메이션과 다르게 우리에게 정적이고 섬세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아프리카나 아시아가 배경인 이야기라도 미국식 사고방식을 주입시키는 디즈니의 만화영화와 다소 다른 시각의 얘기를 들려준다. 나는 이런 작품을 만날때 우리가 얼마나 '미국식'에 경도되어 있나 새삼스레 놀란다. 남아메리카나 아프리카도 아닌 유럽 스타일도 이렇게 낯설고 신선하게 느끼는데 놀란다.

 

이국적이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화면, 리드미컬한 프랑스어의 음률, 순백의 마음 같은 깨끗한 스토리. 눈과 귀와 마음이 호강하는 영화다.   

 

 

 

2011년, 프랑스, 미셸 오슬로

원제:Les contes de la nuit (Tales Of The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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