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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요리책 | 이야기들 2012-05-3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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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책꽂이 맨 아래 한칸이 다 요리책이다. 한국에서 올때 역시나 많이 버리거나 남 주고 왔는데 어느새 또 한칸이 꽉 찼다. 수퍼 갈때마다 계산대에 줄 서있다 하나씩 산 'FOOD'들(마사 스튜어트가 내는 주간 요리책이다.) 베이킹 책, 샐러드 요리책, 파스타 요리책, 브랙퍼스트 요리책, 디저트 요리책, 저칼로리 요리책, 스프 요리책, 계절별 요리 묶음책, 슬로우 푸드 요리책(아, 주물 냄비 사야되는데.)........한국 요리책- 김치, 오늘의 반찬, 유명 샌드위치집 레시피, 잔치상 차리기, 일식, 중식, 찌개, 일품요리, 국수......거기다 여성잡지 부록으로 나온 요리책도 꼼꼼히 엄선해 모아놔서, 올때 처분하지 않았으면 책장 두칸이 찼을것이다. 인터넷에서 모아놓은 레시피도 엄청 많고, 여기저기서 베끼고 메모해 놓은 노트도 한권있다.

 

보는 사람들이 어이없어 비웃는다. 둘이 살며 얼마나 해먹는다고, 게다가 아이만 아니면 빵이나 과자로 연명하는 나를 알기에. 온갖 요리 기구들에 정식 불고기 판까지 있는걸 보면 다들 뒤집어진다.

 

나는 요리보다 요리책 보는걸 더 좋아한다. 우선 완성된 요리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뭐가 들어갔는지 어떤 맛이 날지 요모조모 상상해 본다.-이 과정이 요리책 보기의 백미이다. 그리고나서 쓰이는 재료를 읽어보며 내가 생각한 재료가 맞는지 뭐가 더 들어가는지 맞춰본다. 마지막으로 요리법을 본다. 요리법을 보면 상상했던 맛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글씨가 요리로 탈바꿈하는 마법 같은 과정이다. 하지만 요리법을 다 봤다고 요리가 끝나는게 아니다. 어떻게 써빙하는지도 꼼꼼히 봐두어야한다. 잘못하면 다 된 요리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다 보고나면 학교 다닐떄 공부하면서도 하지 않았던 노트를 한다. 인상 깊은 요리는(특이하거나, 손쉬우면서도 그럴듯한 요리들) 내 노트에 다시 기록을 해둔다. 영어 요리책의 경우는 사전까지 찾아가며, 계량법이 다르면 계산기까지 두드려가며. 옆에서 보면 우습게도 엄청 학구적이다.  

 

아들애가 제일 좋아하는것 중에 하나가 엄마랑 같이 요리책 보기이다.(이거 하나는 모전자전이다.) 둘이 나란히 앉아 책장을 넘기며 재료나 요리, 요리법에 대해 진지하고 사이좋게 대화를 나눈다. 서양 요리로 들어가면 다년간 해박한 지식을 쌓은 아들애가 자상하게 설명을 해준다. 자기가 좋아하는 요리사 얘기도 하고, 유명 음식점 얘기도 한다. 먹고 싶은 요리도 골라본다. 드물게 다정한 시간이니 나는 꿩먹고 알먹는 시간이다.

 

우리 친정집은 먹는데 목숨거는 가풍을 가졌다. 엄마가 음식, 요리하기를 좋아해 식탁이나 상에 음식을 차리면 반찬이 너무 많아 옆으로 떨어지려는 그릇을 손으로 받쳐야했다. 김치만 해도 보통 한번에 서너가지씩 상에 올랐다. 친구들이 놀러오면 밥상을 보고 모두 놀랐다. 내 친구들, 동생 친구들이 아직도 한정식집 같았던 우리집 밥상 얘기를 하곤 한다. 냉장고를 열면 새로 장을 보지 않아도 금새 한 분대의 식사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음식 재료가 가득했다. 냉동실 문을 열면 꽉 차있던 음식 재료들이 발밑으로 떨어지곤 했다. 

 

신혼 초 친정집에 놀러와 자고갈때, 한밤중에 "출출한데 뭐 좀 먹을까" 하는 처제들을 따라 부엌에 내려갔던 남편이 놀랐었다. 기껏해야 라면이나 끓여먹겠지 생각하고 한젓가락 얻어먹을까 했는데, 밤 12시에 아가씨 처제들이 불판을 얹고 고기를 구워먹었으니. 우리 식구들은 먹을때도 그냥 먹지 않는다. 맛있다 맛있다, 와~ 진짜 맛있다, 맛있지? 얼른 먹어봐, 끝내준다....추임새가 시끄럽다. 한상 가득 차려진 음식에 그 페이스에 휘말리면 누구도 과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래전 친정 엄마가 젊었을때 유명 관상쟁이한테 관상을 보러간 적이 있었단다. 관상쟁이가 얼굴을 보자마자 "지글지글 보글보글...산꼭대기에 혼자 올려다놔도 진수성찬 차려먹는 사람이야." 했다고한다. 음식 재료를 사도 짝으로 들이고, 자주 시장이나 마트에 들락거리고 그러다 낭비하는 재료들도 많아 우리 딸들은 은근 엄마의 그런 점들을 질려했다. 아, 하지만 흉보면서 배운다고 누가 그랬는가. 우리는 모두 시집가서 제 살림을 하며, 엄마랑 똑같이 보글보글 지지고 볶으며 냉장고가 터지게 음식 재료들을 넣어놓고 산다. 제일 비실하고 식탐이 없었던 나까지도.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데, 책 읽고 요리하고 음악 들으며 사는 삶, 거기 무릉도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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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백설공주 | 영화와 책들 2012-05-30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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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다는걸 아는 것도 중요한거야.

 

백설공주가 영리해져서 돌아왔다. 그저 예쁘고 착한, 공주의 외모와 하녀 근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던 수동적 인물에서 소녀성에 정치성을 더한 능동적인 그녀로 돌아왔다. 동화 속 공주들 중에서도 가장 수동적이었던 그녀가!

순진하고 애처롭게 슬픈 눈으로 상대를 넘어오게 만들고, 왕좌를 되찾겠다고 검술 훈련을 하고, 정신 빠진 왕자에게 먼저 다가가(기다리지 않고) 키스도 한다. 마지막 독사과 씬에서는 마녀 왕비를 능가하는 교활함도 보여준다. 

 

그녀의 후견 하녀장은 왕자를 만나 그에게 왕비를 물리칠 군대를 요청하겠다는 공주에게 그것보다 더 강력한것-무도회에 직접 등장하라는 훈수를 둔다. 모든 것을 이해한 백설공주는 왕자를 사랑의 포로로 만들고, 성에서 쫒겨나서는 7 난쟁이 도적떼를 만나 그들을 의적 영웅으로 탈바꿈 시키고, 나아가 왕비를 치는 선봉으로 만든다. 검술 훈련이래야 왕자와 사랑 싸움에 쓰이는 정도일 뿐, 그녀는 자신의 배후 세력으로 일곱 난쟁이와 왕자를 두는 정치력을 발휘한 것이다. 순진하고 어여쁜 얼굴에 참으로 유능하니, 실속있는 그녀를 어디 당해내겠는가.

 

오 오, 가엾은 왕비. 그녀는 헛똑똑이다. 아름답고 똑똑해서 어딘가 밑바닥에서 여기까지 올라왔음에 틀림없는 그녀. 하지만 신분의 열등감과 함께 타고난 자존심은 그녀 자신을 운명의 승자가 되지 못하게 하는 어리석은 결정을 하게한다. 그녀는 왕위 계승권을 노리는 돈 많은 너구리 배론과 결혼했어야 했다. 백설공주의 죽음을 더욱 치밀하게 추진했어야 했고, 자신의 손에 직접 피를 묻히는 너절한 수고도 마다하지 말았어야 했다. 백설공주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선 이 모든걸 했어야 했다. 

 

 "기준이란게 있잖아, 나처럼 특별한 여자는 눈이 아주 높다고.

그 제안은 구린내 나는 왕위 계승인데다가 그자랑 죽을때까지 살긴 싫어."

배론과의 결혼을 권하는 거울에게 왕비가 하는 말이다. 그녀는 출신은 미천하나 타고난 감각과 심미안을 가지고 있다. 돈이나 지위를 위해 그것을 포기할 수 없는 자존심이 있다. 왕족이나 상류 계급 출신이었다면 도리어 그녀는 자신의 '자리'를 위해 다른것들을 포기할 수도 있었을것이다.(백설공주는 도적떼 난쟁이들과 함께 그들의 가정부가 되어 살고있지 않은가.) 그녀는 폼나지 않는것, 구질한것을 참지 못한다. 왕비의 취향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신분은 미천했던 그녀의 비극이다.

 

똑똑하고 노력하지만 인생의 적자가 아닌 인물들이 있다.(내가 누구인가, 알라딘에게 요술 램프를 빼앗긴 어둠의 마법사 쟈파가 아닌가.) 그들은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은수저나 왕관을 물고 태어난 사람, 인생의 주인공으로 내정된 사람에게 결정적일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손에 움켜쥔 것을 내주지 않으려면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의 고독, 어둠과 맞서 이겨내야한다. 외부의 굴욕을 이겨내야한다. 물 밑에서 처절하게 발차기를 해야한다. 완전히 구겨지고 폼이 안나는 모든 것을 해야한다. 그 모든것을 해내지 못하는 섬세한 유리 같은 자존심을 가졌다면.....그들은 주인공들의 세레모니 뒤로 조용히 사라져야한다. 

 

깊숙하고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 홀로, 거울속 자신과 만나는 왕비.("전 당신을 비추는 환영일뿐인걸요.") 자신과 대화하고, 자신과 싸우지만 최후의 더티한 일격을 자신의 손으로 하지 못하는 보기보다 심약하고, 쿨하고, 유머있는 왕비에게 나는 감정이입했다. 이 이야기를 백설공주가 아닌 자신의 얘기로 만들겠다고 호언했으나 쿨하게 조용히 사라져간 그녀에게 무한 애정을 느꼈다. 

  

그래, 결국엔 백설공주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나 다시, 언젠가는 왕자와 왕관 모두를 가진 백설이가 결코 승자가 되지 못하는 '백설공주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타셈 싱이 이번에 그걸 해줬으면 좋았을텐데 화려하고 아름다운 비주얼에 비해 이야기 능력은 좀 부족한듯 하다.  

 

 

 

 

2012년, 미국, 타셈 싱 감독.

원제 :Mirror Mirror

출연: 줄리아 로버츠, 릴리 콜린스, 아미 해머, 네이던 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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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무도 모른다 | 영화와 책들 2012-05-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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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천사는 나를 돌아볼까.....
누구도 가까이 할 수 없는 악취를 풍기는 보석

 

두 모자가 이사를 하고 이웃들에게 인사를 다닌다. 하지만 실제는 가방 속에 넣어 옮긴 두 어린 동생과  나중에 몰래 들어온 여동생까지 모두 다섯 식구이다.

 

첫 장면에, 너덜해진 티셔츠를 입고 때낀 손으로 큰 가방을 쓰다듬는 소년의 모습과 그다음 이사할때 가방 속에 넣어 어린 동생을 옮기는 장면을 보고 바로 가슴이 덜컹해 영화를 계속 보지 못했다. 다시 보기 시작하고도 또 끝까지 보지 못하고 중간에 한번 더 멈춰야 했다. 두번 쉬어가며 겨우 영화를 봤다.

 

집에만 갇혀 사는 아이들이 신통했다. 언제 또 집을 나갈지 모르는 엄마, 그 엄마를 잃을까봐 두려운 아이들은 나이답지 않게 조심하며 조용조용 규율을 지키며 산다. 잘 웃지 않는 소년도 마음 아프고, 해맑게 웃는 어린 동생들도 마음 아프다. 의사 표현을 거의 하지 않는 그림자 같은 소년의 동생 소녀도 슬펐다. 철 없고 무책임한 엄마지만 엄마가 있어 행복한 아이들은 비참한 현실에서도 즐겁게 살고, 카메라는 다큐 처럼 아이들을 담담히 따라다닌다.

 

감독의 담담함에 도리어 보는 사람들은 한숨과 분노, 절망을 넘어 옅은 희망을 기원하기까지 한다. 가슴이 미어지고 짓눌리며 나도 모르게 내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하지만, 

 

두번 쉬어가며 겨우 영화를 다 보고, 이 얘기가 실화라는 소리에 믿을 수가 없어 실제 사건을 찾아보았다. 실제 얘기는 더 참혹하고 거칠고 병적이다. 실제 사건을 찾아본걸 후회했다. 영화에서 한가닥 가슴 저리고 아름다웠던것 마저 무참하게 무너졌다. 실제는 그렇게 참혹한데 그 사건을 영화적으로 만드는 '위선'에 속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현실의 사건은 어떤 영화적인것도, 아름다운것도 없다. 실제와 영화 사이에서 '영화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일'을 회의하게 만든다. 환타지물만 환타지인가...영화 자체가 환타지이다.

 

아키라역의 소년 배우 야기라 유야는 이 영화로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올드보이로 남우주연상이 유력시 되던 최민식을 물리치고 왠 일본 소년이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봤었는데 이 영화의 이 아이였다. 소년은 칸의 수상으로 국민 배우로 떠올랐으나 그후 출연한 영화가 모두 흥행에 실패해 중압감과 우울증에 자살 기도까지 했다한다.

 

아무도 모른다.....그 아이들이 태어난것, 태어나지 않았기에 죽은 줄도, 어떻게 살았는지, 다시 어디론가 갔다가 사라져져간것......

 

 

 

2004년,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어 제목: Nobody knows

출연: 야기라 유야, 키타우라 아유, 키무라 히헤이, 시미즈 모모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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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빙 세일 | 이야기들 2012-05-2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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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짐 싸기 전에 한국으로 가져갈 것과 아닌 것을 나눠, 가져가지 않을 물건들을 한국 사람들의 인터넷 장터에 올렸다. 몇 년전만 해도 물건을 내놓으면 불티나게 팔렸는데 요즘은 나가는 사람은 많은데 들어오는 사람은 적어 잘 팔리지 않는다.

 

몇가지 가구와 물건을 팔았는데 원래 가격의 1/10로 내놓은것도 사람들은 가격을 깎는다.(원래 중고품 세일의 기본이 산 가격의 1/2로 내놓는 것이다.) 400불 주고산 농구대를 80불에 내놓았는데 50불로 깎는다. 200불 주고 산 얼마 되지 않은 미니 소파를 60불에 내놓았는데 싼줄 아면서도 10불이라도 깎는다. 어차피 가져갈게 아니니 선선히 가격을 깎아준다. 하지만 비싸게 사서 소중한 내 물건이었던걸 생각하면 아깝다. 이제 이렇게 이사다니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까지 든다.

늦은 밤 무례하게 전화 하는사람, 곧 온다 해서 기다리게 해놓고 오지 않는 사람, 엄청 싼데도 기어코 심하게 깎는 사람...별별 사람이 다 있다.(몇년전 한국에서 이사올때 아파트 게시판에 무빙 세일 광고를 붙이며 물건을 사는 사람에겐 소품들을 무료로 주겠다고 했더니, 와서 물건을 마구 고르더니 소품은 공짜로 준댔지? 하며 가져가던 얌체 아줌마도 있었다.)

 

인터넷 장터에 올릴때 사진도 같이 올려야 잘 팔린다. 책장을 팔기 위해 사진을 올렸는데 그 사진을 보고 책을 사고 싶다는 메일이 왔다. 의외였다. 난 영어책은 팔고 가려 했지만 한국 책은 아예 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한국에서 올때 다 버리고 온게 너무 가슴 쓰려 이번에는 왠만하면 다 가져가려 했다. 게다가 한국 책은 원하는 사람도 없었다. 뜻밖이지만 와서 가져가라 했더니 50살이 조금 넘은 총기 있어 보이는 아줌마가 왔다.(죽 훑어보더니 아이가 미국으로 가나봐요, 공부 잘했죠? 하고 점쟁이 처럼 말해서 놀랐다.)

 

책을 좋아해 늘 인터넷 장터를 유심히 보는데 아이들 책은 많은데 어른 책은 거의 없단다. 엄마들이 너무 책을 안읽는다고 한탄을 한다. 특히 역사책을 좋아한다며 내 책들을 보더니 그야말로 침을 줄줄 흘린다. 책을 마구 골라내는데 책 좋아하는 사람의 눈썰미가 있어 좋은 책을 귀신 같이 골라낸다. 몇가지 그건 안된다고 도로 뺏자니 미안해 또 몇가지는 안된다 말 못하고 그냥 내주었다. 속으로 '에이, 그래 난 한국가면 이제 쉽게 살 수 있는데 가져가세요.' 했다. 외국에 있으며 한국책에 대한 갈증을 알기에. 

 

그날 밤, 주기 아까웠던 책 몇권이 자꾸 맘에 떠올랐다. 나의 사양미술 순례, 느긋하게 걸어라, 만델라 평전, 리스본 대지진,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비싼 물건 헐값에 또 깎아 내주고도 그러지 않았는데 잠도 안오고 내 책 생각이 마구 났다. 괜히 줬다고 치사하게 후회도 했다. 이렇게 이사다니며 내 책 하나 간수하지 못하는 내 팔자를 슬퍼하기까지 했다.

 

아들에게 '토이 스토리'가 있다면 내게는 '북 스토리'가 있다.

책들아 안녕! 좋은 주인 만났으니 행복하게 읽히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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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빠진 동그라미 | 이야기들 2012-05-17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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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온 글 - 결혼체질, 결혼식

내 인생에 잘한 일 한가지를 꼽으라면 그건 '결혼'이다. 엄청 이상적인 배우자를 만나 아무 근심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아서냐 하면 그건 아니다. 살면서 여러가지 어려운 일도 있었고, 일하며 아이 기르며 힘든 일도 많았다. 남편 뒤통수만 봐도 미운 적도 있었다.

 

끊임 없이 선보고 소개팅하며 소진당하던 시절,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주로 결혼한 친구들) 내게 결혼하지 말라고 조언을 했다. 지금 아주 잘하고 있고, 결혼해봐야 별로 좋은 일이 없다고, 일하며 자유롭게 살라고 나를 부추겼다. 꾸질하게 지내다 나를 한번씩 만나면 너무 기분이 좋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여자친구들은 나를 보며 자유로운 독신녀의 대리만족을 하는것 같았고, 결혼한 남자친구들은 스스럼 없는 사이인척 하며 은근 속으로 아가씨와의 데이트를 즐기는것 같았다. 그 사람들한테 휘둘려 하루도 한가한 날이 없이 사교 활동에 바빴다. 이런저런 일로 불러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지금이야 많이들 결혼이 늦지만 그때 서른을 넘긴 처자는 집안의 큰 근심거리여서 엄마는 나때문에 잠도 못 잘 만큼 걱정을 하셨다. 그 근심과 참견이 내 마지막 경계선까지 넘어들어와 괴롭힘을 당해 미칠것 같았다. 모아놓은 돈만 있으면 외국으로 도망가버리고 싶은 지경이었다.(모아 놓은 돈이 없었다.ㅠㅠ)

 

주변 사람들한테 휘둘리며 나 자신도 나는 결혼 체질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흔히 말하는 여성적인 것이나 가정적인 것에 관심도 별로 없고, 일면 까탈스런 성격에 결벽증까지 다소 있어 평생의 파트너를 옆에 받아들이는 일이 자신이 없었다.

 

주변 사람들의 이중적인 이기심을 눈치채고 나서, 나를 조용히 놔두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정리했다. 그리고 더 이상 결혼 때문에 나를 소모시키고 괴롭힘을 당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하고 어떤 식으로든 독립해야한다고 마음 먹었다. 그때 남편을 만났다. '알고보면 허접한 관계들'에 계속 휩쓸려 다니는 중이었다면 남편을 만나고도 그냥 흘려 지나갔을 거란 생각이 든다.

 

처음 남편과 결혼하겠다고 나섰을때 모든 사람들이 놀랐다. 평소 내가 말하던 혹은 나와 어울릴거라고 생각했던 스타일과 남편이 너무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아보니 이상적인 결혼의 법칙은 없다. 어떤 커플은 비슷해서 잘살고, 어떤 커플은 반대라서 잘산다. 어떤 커플은 비슷해서 답답하다고 하고, 어떤 커플은 달라서 못 맞추겠다고 한다. 단한가지 불변의 중요한 점은 상대가 얼마나 소중한가이다. 소중하다면, 비슷하면 편안하고, 다르면 재미있다.

 

쉘 실버스타인의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서'라는 그림책이 있다.(배철수의 활주로 '이 빠진 동그라미' 가사의 원전이다.) 한 조각을 잃어버려 이가 빠진 동그라미가 자신의 조각을 찾아 길을 떠나 별별 고생 끝에 딱 맞는 자신의 조각을 만난다. 완전하게 동그랗게 되어 더 빨리 데굴데굴 굴러갈 수 있게 됐지만 노래하고 덜컹거리며 천천히 굴러갈 수있는 자유를 잃어버려("음, 이게 바로 그런 것이구나."라고 생각한다.) 다시 조각을 내려 놓고 길을 떠난다.

결혼에 관한 비유를 생각하자면 이 얘기가 떠오른다. 맞는 조각을 만나 완전한 동그라미가 되어 채워지고 공허함이 사라지는 것엔 반대 급부가 따른다. 덜컹거려도 천천히 굴러가며 노래하며 다니는 자유를 잃어버리는것이다. 완전한 동그라미가 되는 것도 가치 있고, 덜컹거리며 굴러다니는것도 즐거운 일이다.

 

나는 내 조각을 찾아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마음 깊은 곳의 공허함, 공중으로 산화할 것 같은 신산함을 떨쳐냈다. 땅에 발을 붙이고 살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나 내 편인 친구이자 애인을 얻었다. 모나고 편협한 나를 릴렉스 시켜주는 보호자를 만났다. 잃어버린 자유로 인해 겸손함을 배웠다. 

 

엄마가 쓰러져서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던 날, 길고 긴 검사 과정을 기다리며 남편의 손을 잡고 병원 복도 벤치에 앉아 밤을 새웠다. 정신 없는 와중에 부모님 안계신 무서운 세상이라도 남편이 있어 다행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그날 남편의 따뜻한 손을 평생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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