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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상실의 시간 | 영화와 책들 2014-09-28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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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월 지음

한겨레출판ㅣ 2014.7.11

 

 

아버지 돌아가신 후 허망함에 하릴없이 책이나 읽던 나는 돌아온 탕아처럼 책에서 위로를 받는다. 연암을 따라 북경 가는 장도에 오르기도 하고, 눈물로 얼룩진 중국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김훈의 '내 젊은날의 숲'에서는 말할 수 없이 위로를 받았다. 다시 도서관에 들락거리게 된 나는 파로님의 언급으로 읽은 '키친'으로(여간해선 읽지 않던 일본 소설까지 읽으며) 그 위로들이 사뭇 따뜻하게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던 끝에 만난 책이 이 책, <상실의 시간>이다. 그러나 이 책은 나를 따뜻하게 위로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죽음 후에 삐그덕거리며 어쩔줄 몰라하는 나를 거울에 비춰주며 삶이 지나온 시간과 가족, 죽음과 죽음을 증명해가는 지난한 시간들을 보여주었다.

 

작가가 자신의 어머니를 보내며 겪었던 것들이 이 소설이 된만큼 책은 한편으로 소설이 아닌 다큐멘터리 같다. 나직하고 담담한 나레이션으로 특별하지 않은,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게 막대한 그 '죽음'을 기억의 왜곡이나 미화를 걷어내고 찬찬히 돌아보게 했다. 가족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 한통, 이미 세상 떠난 몸을 응급실에 눕혀놓고 통곡해야했던 시간, 넋이 반쯤 빠진채 일사천리로 진행해야했던 장례식, 남은 가족들, 특히 평생의 반려자를 보낸 연로한 부모, 떠나보낸 사람을 잊으려고 그러나 동시에 추억하려는 우리의 기억.....이 책 속의 이야기들은 바로 내 얘기와 완전히 같아 나는 책을 읽으며 깊은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책의 내용은 화자의 엄마가 돌아가신 직후부터 여러가지 장례의 절차들, 그날로부터 99일간의 기록, 그 사이사이 기억되는 가족들의 지난 이야기, 홀로 남은 아버지의 이야기로 되어 있다. 아버지 돌아가신지 90여일된 나는 죽음과 서류로 증명되어야 하는 죽음 후의 사회적 죽음 과정, 잊혀져서 아프고 생각하면 또 아픈 고인과의 추억, 장례나 제사 같은 의례의 뿌리나 의미를 생각하며 생겨나는 의아함들과 한 부모 아래 자랐지만 이제 각기 다른 길을 가고있는 형제들 사이의 의견 차이, 홀로 남은 부모(내 경우는 엄마)를 돌보아야하는 어려움을 책에서 얘기하는 순서 그대로 겪고 있는 중이다. 

 

나는 작가의 분신인 책 속 화자와 같은 고민을 하고, 홀로 남은 엄마는 책 속 홀로 남은 아버지와 같은 상황에 빠져있다. 우리는(우리 가족은) 죽음의 존엄이나 살아서 유지했던 아버지의 인격에 대한 배려를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그러나 큰 돈을 들여 장례를 치뤘다. 그나마 돈을 아끼지 않는게 아버지께 해드릴 수 있는 마지막 존중이었다. 동생과 나는 49재나 제사에 의견 충돌을 겪었고, 상속이나 유품 정리 과정에서도 표내지 않게 마음 상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는 동산이나 부동산뿐 아니라 예전 그때 엄마 아빠가 어쨌다거나, 누가 부모한테 더 사랑 받았다거나, 그래도 누구누구가 부모한테 잘했다거나, 내가 그랬잖아 하는 원망까지 참으로 미묘하고 다양한 상처와 감정들이 올라왔다. 작가가 99일의 기록 사이에 가족들의 지난 얘기를 쓴것이 다름아닌 것이다.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혼자는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되었다. 아버지와 둘이 꾸려가던 모든 것이 혼란에 빠지고 무너져버려 자식들의 손을 빌리지 않고는 아무것도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아버지 혼자 남으셨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생활 일부를 팽개치고 엄마를 위해 해야할 많은 일들을 했다. 엄마는 그런 상황이 두렵고도 자존심 상해 일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 아는척 하거나, 숨기거나, 당신이 해야할 일에 완전히 손을 놓아버리기도 했다. 또 노인 특유의 이기심에 엄마로서의 모성애가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런저런 큰 일을 마무리 짓고, 드디어 엄마는 혼자 남았다. 그러나 엄마는 실제로는 혼자 남겨질 수 없었다. 은행이나 세금을 챙겨드리고, 식사나 식료품을 체크하고, 병원에 모시고 다니고, 외로움을 달래드려야 한다. 책에서 화자가 '연애 소설을 쓰는 시간이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이유로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야했던 것처럼 나는 돌볼 자식도 없이 시간이 제일 많은 사람이란 이유로 엄마의 1호 심부름꾼이 되었다. 병원을 돌고, 은행 볼일을 보고, 같이 점심을 먹고, 음악회에 가고, 매일 밤 전화를 한다. 엄마는 내 인생 깊숙히 들어와 나는 가슴이 답답하다. 나는 가슴이 답답한게 답답하고, 엄마는 뭔갈 해드리면 미안해 하셔서 또 가슴이 답답하다.

 

내게 하지 못한 남은 일이 한가지 있다. 엄마에게 죽음을 준비하시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조금씩 신변도 정리하고, 죽음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준비도 하고, 이겨내지 못할 병마가 덮쳤을때 어떻게 대처할건지 미리 생각해 놓으시라는 거다.(생명연장 장치와 연명치료를 하지 마시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동생들은 너무 냉정한 처사라며 좀 더 두고 보자고 나를 말린다. 책 속 화자는 불길한 소리 하지말라는 언니의 책망을 뒤로 하고 아버지에게 '사전의료의향서'를 내민다.

 

엄마에게 죽음에 관해 하려는 얘기는 기실은 나 자신에게 묻는 얘기다. 죽음을 삶의 완성으로 받아들이고, 마지막 순간 어떻게 품위있게 떠날지, 죽음도 존중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이제라도 알고 싶은것이다, 생각해보고 싶은 것이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자신처럼 평범하게 누군가를 상실한 경험이 있는 독자가 이 책을 읽고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면 큰 기쁨과 보람이 되겠다'고 했다. 우리의 죽음을 되돌아 보는것, 그리고 앞질러 보는것 그것이 위로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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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김선욱 피아노 리사이틀 | 공연 2014-09-26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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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티타 2번 C단조 BWC 826 바흐

프렐류드, 코랄과 푸가, M.21 I 세자르 프랑크

아베크 주제와 변주곡, Op.1 슈만

피아노 소나타 1번 F-Sharp Op.1 슈만

 

 

3월에 예술의 전당에서 그의 연주가 있었는데 너무 비싸서 못갔다.(런던 심포니와의 협연이었다.) 그런데 오케스트라를 떼고 그가 피아노 리사이틀을, 오케스트라가 없어서 그런지 한결 저렴한 가격으로, 그것도 순회공연으로 용인까지 와서 정말 이게 왠 떡이냐 하면서 갔다왔다.

 

그는 젊은 거장으로 불리는 순 국산 연주자다. 요즘엔 '젊은 거장'이란 말이 과장되게 흔하긴 하지만 유럽 음악계에 본격적으로 진입한 그의 이력을 보면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에 틀림없다. 독일이나 미국으로 조기 유학 떠나는게 일반적인 음악계에서 그는 국내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 훌륭한 연주자가 되었으니 신선한 일이다. 그의 부모는 그에게 피아노를 강요하지 않고, 그저 놓친 음악회의 tv 방송을 녹화해 주고, 음악회에 같이 가서 로비에서 기다리다 연주자의 싸인을 맨 먼저 받아주고, 연주할때 악보를 넘겨준게 전부였다니 도리어 그 따뜻한 관심이 그를 키워냈나보다. 

 

1부의 두 곡 <파르티타 2번>과 세자르 프랑크의 <프렐류드, 코랄과 푸가>는 너무나 아름다운 곡이라 연주장에서는 시간도 음악을 따라가버리는는 듯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버렸다. 김선욱의 이 1부 45분과 축구 경기의 전반전 45분 을 비교해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특히 직접 듣는 세자르 프랑크의 프렐류드, 코랄과 푸가는 심해와 같은 격정과 우아함을 느끼게 해서 홀딱 반해버렸다.

 

2부의 슈만의 피아노 소나타는 듣다 나도 모르게 아버지 생각이 나 한순간 음악을 놓쳐버렸다. 한번 음악을 놓치고나니 정신이 산란해져 흐르는 음악이 안타까웠다.

 

김선욱은 예민하고 내성적인 얼굴을 가졌다. 그의 얼굴을 보고, 그의 연주를 들으며 나는 그의 손이 궁금해졌다. 탐구하는듯 진지한 연주는 요즘의 화려한 젊은 스타 연주가들과는 무척 다른 느낌을 주고, 그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견고해서 내 자리에서 그의 손은 보이지 않지만 나는 그의 크고 부드럽고 힘있는 흰 손을 떠올렸다. 그의 연주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소리보다 소리 끝의 공기의 떨림, 공기의 떨림 그 마지막까지 매달려있는 그의 모습이었다. 소리와 음악의 미세한것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그의 모습은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다. 음악이 공간을 채우고 공기를 가르며 나가는것, 소리가 공기를 미세하게 떨게 만드는것....이런 것들은 연주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인데 김선욱은 그 즐거움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깊이 몸을 숙여 인사하고, 그에 반해 자리에 앉으면 바로 연주를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비해 구도자 같은 인상을 준다. 두 곡의 앵콜곡도 놀라웠다. 가볍고 짧은 곡이 아니라 또 다시 시작된 공연인듯 진지해서 고마웠다.(드보르작 현악4중주, 슈베르트 소나타 D 960이었다는데 잘 모르겠다.) 

 

가을의 음악회를 김선욱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미사 시간에도 음악회에서도 산란한 마음을 잡기가 힘들다. 가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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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긴 어게인 | 영화와 책들 2014-09-1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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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전반부는 마치 <인사이드 르윈>의 스핀 오프 같은 느낌을 준다. 클럽을 전전하며 노래하고 곡을 만들고 언젠가 성공할 그 날, 내 노래를 알아 줄 그 날을 기다리는 젊은이들과 프로듀서들이 나온다. 삶의 밑바닥으로 떨어진 남자 주인공 댄의 모습은 르윈이 어떻게든 버텨내 나이든 모습만 같다. 하지만 <인사이드 르윈>의 그 신산함 대신 이 영화에는 따뜻하고 행복한 기운이 넘친다. 

 

감독(존 카니)의 전작, 그 좋았다는 <원스>는 보지 못했다. 그래도 뻔할 뻔한 이 영화의 뻔하지 않은 몇가지 장점이 앞으로도 그를 기억하게 한다. 너무 달콤한 유혹이라(감독에게도 관객에게도) 좀처럼 버리기 힘든 '로맨스'를 아쉬워하면서도 버린 점, 유명 배우들을 대수로워 보이지 않게 쓴 점, 스크린에 '보여주는' 음악 등....영화 속 노래들이 아주 매력적이다. 사유20+ 감성80의 노랫말을 가진 이 노래들은 음악 그 자체보다 감독이 영화 속에 보여주는 모습에서 몇배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주인공들이 와이 잭으로 음악을 나눠 들으며 뉴욕의 곳곳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모습 등은 영화적이면서도 내 기억 같은 친숙함을 느끼며 영화를 보게 만든다.(영화 소개에서 말하는 '뉴욕의 명소나 숨겨진 아름다운 곳'은 공감되지 않는다. 아름다운줄 모르겠다, 좀 허접해 보이기도 한다.)  

 

키이라 나이들리가 노래를 꽤 잘해 깜짝 놀랐다. 하지만 내게 이 배우는 대중의 평가가 과해보인다. 찬양받는것 만큼 예쁜 줄 모르겠고(백인 여배우 치고 드물게 다리가 짧다.ㅋㅋ), 매력도 깊이가 없고 자연스럽지 않다. 오드리 헵번으로 비교될 때는 코웃음이 나온다. 마크 러팔로는 말하는 소리만 들어도 끌린다. 그는 묘한 배우다. 이번에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니 전에 내가 본 영화가 몇개 되는데도 정확히 기억을 못했다. 아는 사람인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하지만 뒤늦게 생각해보면 그 역에 완벽했던 그런 배우다. 그레타의 남자친구로 나온 배우가 노래를 너무 잘해 이상할 정도였는데 그가 '마룬5'의 리드 싱어 애덤 리바인이란다.('마룬5'는 노래만 들어봤지 한번도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비오는 어느날 저녁 집에 돌아가는 버스에서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들으며, 차창에 투명하게 반짝이는 빗방울들, 촉촉히 젖어있는 푸르스름한 거리를 보는 것 같은 영화다. 거리 풍경에서 나를 떨어뜨려 그 거리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쓸쓸한 것도 아늑하게 느껴지는 그런 영화다. 하지만 '다양한 영화'로 '그랜드 부다페스트'와 비교되며 심지어 그랜드 부다페스트 관객 동원 수의 두배를 넘어섰다고 말하는 기사는 좀 아닌것 같다. 비교할 동년배 친구는 아닌듯 하여. 

 

 

 

2013년, 미국, 존 카니 감독

원제: Begin Again 

출연: 마크 러팔로, 키이라 나이들리, 애덤 리바인, 제임스 코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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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노동하는 아줌마의 유머 감각 | 이야기들 2014-09-06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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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장을 보려고 오랜만에 대형 마트에 갔는데 입구에 이렇게 써있다.

"경보음이 울려도 당황하지 마세요."

 

나는  "경보음이 울려도~ 당황하지 않고......빡.....끝!"이라 말하고

혼자 막 웃었다. 내 유머 감각이 기특해서!

 

그러다 갑자기 표정 관리하고 '아냐, 정신줄 놓지 말아야해.' 하면서 서둘러 카트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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