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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생일 | 영화와 책들 2019-04-2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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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널 잊지 않을게

 

 

아이들을 잊지 않기 위해 이 영화를 보았다.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해 이 영화를 보았다.

 

'회 쳐먹고, 찜 쪄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먹고, 진짜 징하게 우려먹어'도 우리는 여전히 너무 배가 고프다. 우리의 뱃속에는 '진실'이라는 아귀가 들어 앉아 진실을 달라고 아우성인데 모든 것이 터무니 없이 모자라서 우리는 바짝 마르고 큰 배를 가진채 고통스럽기만 하다. 감당할 길 없는 허기에 눈물만 흐른다.

 

아이들아, 너희를 잊지 않을게. 나 혼자 따뜻한 밥상 받으며 다른사람의 고통을 잊으려할 때마다 너희들로 내 마음을 깨워볼게. 우리 뱃속의 진실의 아귀가 아, 이제 배불러요 할 때까지.....  

 

 

 

 

 

2018, 한국, 이종언 감독

출연: 전도연, 설경구, 김보민, 윤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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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 | 공연 2019-04-16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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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 피아노 협주곡 A단조, Op.54

말러, 교향곡 6번 A단조 '비극적'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은 요즘 나의 최애곡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 날 손열음의 연주는 좀 실망스러웠다. 자리가 안좋았기 때문이었을까.-롯데 콘서트홀의 자리는 언제나 불만족스럽다. 로열석에 앉으면이야 저절로 만족스럽겠지만 A석에서 최선을 찾으려는 나는 이 곳의 여러 A석을 돌아가며 앉아보지만 어디나 언제나 불만족이다. 로열석 비중이 유난히 큰 느낌도 든다. 그리하여 이 날 앉은 자리는 오케스트라 오른쪽, 튜바 윗쪽이었다.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피아노 뚜껑이 막힌쪽 방향이었다는 것. 피아노 소리가 퍼져나가지 않고 mumble 되는 듯 느껴졌다.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은 듣는 사람이 음악과 함께 쓸려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나는 스메타나의 '몰다우 강'을 들을 때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소리가 옹성거리며 피아노 타건 특유의 울림이 적고 답답했다. 작년 여름 대관령 음악제에서도 그녀의 연주는 내게는 개성도 감동도 없이 들렸었다. 나하고는 합이 안맞는 연주자인가보다. 다만 피협 연주중 오케스트라의 현 소리가 너무나 우아하고 아름다워 2부의 교향곡 연주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말러의 이 여섯번째 교향곡은 '비극적'이라는 별칭이 붙어있다. 그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만들었던 곡이 마치 그의 비극을 예견한 것처럼 된 것은 지나치게 결과론적인 해석인걸까. 말러 자신은 "나의 여섯번째 교향곡은 수수께끼를 던질 것이다. 그 해답은 이전의 다섯 교향곡을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이해한 세대만이 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는데..... 나는 행복할 때조차도 생의 한가운데 도사리고 있는 어두운 심연, 그곳으로 빨려들어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생각하며 전율하고, 또한 음악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이날의 연주는 2악장 스케르초, 3악장 안단테 모데라토 순서로 연주되었다. 2,3악장이 바뀌어 연주되기도 한다는데 나는 이 순서가 좋다. 운명의 군화 발자국이 쳐들어오고, 뒤이어 이 기괴한 춤이 연주되는게 좋다. 그러다 3악장의 우아한 비가를 들으면 저절로 눈물을 훔치게 된다. 내 좌석은 지휘자의 지휘를 볼 수 있어 조나단 노트의 지휘를 따라 음악을 듣는 즐거움이 있었다. 음악을 끌고가는 그의 오른 손, 음악을 표현하는 그의 왼손. 그가 표현하는 음악을 듣고 그가 지적하는 쪽을 바라보며 음악을 들으니 새로운 느낌이었다. 튜바 윗쪽에 앉아 드물게 튜바 소리를 생생하게 듣기도 했다. 우아하고 풍부한 소리, 모든 것을 잊고 완전히 음악에 몰입하게 하는 연주였다.

 

나는 말러의 교향곡 중에 가장 듣기에 좋은 곡을 꼽으라면 이 6번을 말해주고 싶다. 고전적인 짜임과 아름다움이 있고,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한사람의 인생 일대기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관념의 숲에 부는 서정의 바람' 같은 곡이다. 

 

 

 

 

 

지휘: 조나단 노트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

피아노 : 손열음

2019.4.7, 롯데콘서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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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 오페라] 마담 버터플라이 | 오페라 2019-04-15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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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초'라고 부르지 마세요

 

 

몇년 전 이것과 같은 연출로 제작된 메트의 다른 <마담 버터플라이>를 보고 리뷰를 쓴 적이 있다.(초초상에 파트리샤 라세트, 핑커톤에 마르첼로 지오르다니) 이번 공연 영상을 보고 와, 전에 쓴 리뷰를 읽어 보니 느낌이 많이 다르다. 그 사이 음악이나 오페라를 보고 듣는 내 감정이 보다 느긋해졌고, 삶이나 사건을 대하는 내 태도가 더 부드러워졌음을 느낀다.

 

<마담 버터플라이>는 어린 게이샤 초초의 사랑 이야기다. 그녀의 사랑과 결혼은 '제국주의 시선으로 본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프레임을 쓰고 있고, 보는 사람은 그 관점을 피해가기 어렵다. 하지만 이번에 본 <마담 버터플라이>는 핑커톤 마저 이해할 수 있어 초초상의 사랑이 더 실감으로 느껴져 그들의 비극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었다. 1막에서 초초와 핑커톤이 결혼식을 치르고 맞이한 초야의 길고도 달콤한 사랑의 이중창에 가슴이 미어져 눈시울을 붉혔다. 등과 꽃잎으로 표현된 무대가 너무 아름다웠고, 그들의 청춘이 애닯았다.(순정한 사랑을 꿈꾸는 초초와 다르게 가볍게 그녀의 몸을 탐하려고 안달이 난 핑커톤으로 느껴지지 않고.ㅎㅎㅎ) 

 

그동안 오페라 속 초초상의 나이가 15~18살이라는 것만 알았지 핑커톤이 스물두세 살의 젊은이라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초초상은 나이가 15살이라고 노래 가사에 나오는 반면, 핑커톤 배역을 맡은 남자 연주자들이 상 아저씨들이라 그랬나보다.) 자연히 잘사는 나라에서 온 아저씨와 가난한 나라의 어린 현지처의 관계를 떠올렸다. 멀고 먼 이국의 땅에 온 22살의 젊은이 핑커톤. 그의 피 끓는 청춘은 이국의 모든 것이 아름답고, 모험과 환상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이 오페라를 보며 나는 일본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애를 생각했다. 이국에서의 하루 하루가 익사이팅한 아들애는 아름다운 일본 아가씨를 사귀고 싶어 했다. 한두달 짧은 데이트라 할지라도 언제나 결혼해도 좋을 아가씨들만 만난다는, 이성을 사귐에 다소 보수적인 아들애는 그러나 일본 아가씨와 결혼은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철없고 이기적인 스물다섯 살의 아들애를 생각하니 이 오페라가 이제까지와 다르게 느껴졌다. 

 

게다가 여주인공 크리스티네 오폴라이스는 노래는 물론 뛰어난 연기로 초초상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 극을 보고 노래를 듣는 사람들을 자신의 비극 속으로 쓸려들어가게 만들었다. 파란 눈의 체격이 큰 이 서양 여자가 어느 순간 정말 초초상이 되어, 아니 초초상이든 누구든 상관 없이,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그 사랑에 배신 당한 가련한 여자가 되어 우리의 심금을 울렸다. 초초상 배역은 15살의(죽을 때 나이도 고작해야 18살) 여린 소녀로 표현하기엔 격하고 무거운 감정선의 노래들을 폭풍처럼 불러야 해서 외모와 감정 표현이 상충되는 역할이다. 그래서 리릭보다는 스핀토 소프라노의 배역이다. 대체로 나이가 삼십대 이상인 연주자들에게 쉽지 않은 배역일텐데 오폴라이스가 나이도 인종도 다 잊고 오로지 사랑 하나만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번에 이 오페라를 <나비 부인>이라 명칭하는 게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초초는 핑커톤에게 꼭 맞는 아내가 되고 싶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다. 가족도 종교도. '초초'라는 일본 이름도 버리고 미국인인 남편을 위해 '버터플라이'라는 새 영어 이름을 짓는다. 극 중에 그녀가 초초라 부르지 말고 버터플라이라 부르라는 대사도 나온다. 미국인의 아내로 인정 받고 싶은, 미국인이 되고 싶었던 그녀의 소망이 담긴 특별한 이름이니, 제목 또한 '나비부인'도, 이탈리아어 'Madama farfalla'도 아닌 'Madama Butterfly'가 되어야하는 것이다. 

 

영화감독 안소니 밍겔라 연출의 이 <마담 버터플라이>가 처음 제작되고 10년이 지났단다.(오폴라이스의 이 <마담 버터플라이>는 2016년 판이다.) 그 10년의 세월 동안 많은 초초와 핑커톤이 지나갔지만 하녀 스즈키역의 마리아 지프차크와 미국 영사 샤플리스역의 드웨인 크로프트는 한결같이 이 역할을 맡아 노래했다. 같은 역할이지만 초초와 핑커톤을 맡은 가수들에 따라, 연출자들에 따라 그에 맞는 다른 리액션으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같은 버전의 연출, 같은 곡이라도 그때마다 그들이 다르게 노래했듯이 관객도 들을 때마다 다르게 느끼니 이것이 오페라의 힘이고 매력인 것 같다. 

 

나는 다음의 <마담 버터플라이>를 또 기대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실황

연출: 안소니 밍겔라

지휘: 카렐 마크 시숑

출연: 크리스티네 오폴라이스, 로베르토 알라냐, 드웨인 크로프트, 마리아 지프차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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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2019 교향악 축제, KBS 교향악단 | 공연 2019-04-04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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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니슬라브 모니우슈코, 할카 서곡

펠릭스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Op.64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1번 D장조 '거인'

 

 

'예술의 전당'의 봄은 <교향악 축제>로부터 시작된다. 이런저런 일들로 올해는 서울시향, kbs교향악단, 부산시향의 연주를 예매했다. 좀 더 많이 가보고 싶은데, 더구나 이번 교향악 축제에는 유럽의 여러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이나 수석으로 재직하고 있거나 있었던 한국인 연주자들을 대거 불러 모았다고 하니 다 가보지 못하는게 아쉽다. 스위스 바젤심포니 악장 윤소영(Vn),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악장 박지윤(Vn), 쾰른 필하모닉 수석 조성현(Fl),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악장 이지윤(Vn), 로테르담 필하모닉 전 수석 임희영(Vc), 필란드 방송 교향악단 수석 함경(Ob),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수석 이지혜(Vn) 얼마전 kbs 클래식 fm 프로에서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연주자들 특집을 해준 적이 있는데 흥미롭게 들었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몇몇 천재 솔로 연주가들 뿐만이 아니라 그들은 우리 클래식 저변이 더 넓고 더 깊어졌다는 의미라 기쁜 일이다.    

 

윤소영의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는 봄 중의 봄이다. 그녀의 바이올린은 아름답고 젊은 여성인 자신과 같은 소리를 냈다. 팜플렛에 연주자를 소개하는 글을 보면 종종 사용하고 있는 악기가 뭐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윤소영은 과다니니를 쓴다고 한다. 과다니니와 과르네리가 스트라디바리보다 좀 더 힘있고 거친 소리를 낸다는데 섬세하고 여성적이면서도 힘 떨어지지 않는 소리였다. 공연에 들어가기 전 아들애에게 "설레어 죽을 거 같다"는 톡이 왔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할랑 말랑 하는 아이는 이 봄에, 인생의 봄날 청춘 한가운데서 심장이 터질듯한 설레임에 마음을 어쩌지 못해 내게 톡을 날렸다. 윤소영의 멘델스존은 바로 그런 아들애의 마음 같아서 나는 그녀의 바이올린에 아들애의 청춘을 얹어서 더할 수 없이 애틋하고 사랑스럽게 연주를 들었다. 오케스트라의 긴 서주 없이 바로 바이올린이 들어가는 것도, 3악장 전체가 하나로 연결돼 연주되어 더없이 바이올린의 매력을 드러내는 것도 봄과 청춘을 닮아있었다. 나도 그 음악 속에서 청춘을 살았다.  

 

2부는 말러의 교향곡 1번 연주. 클래식 문외한인 친구를 데려간 나는 조금 걱정을 했다. 좀 더 선율이 아름다운 곡이면 부담 없이 들을텐데 괜찮을지. 하지만 말러 1번이라면 얼마나 변화무쌍하고 독특한가! 나는 친구에게 피아니스트 에마르 이야기를 해주었다. "7살에 바로 쇤베르크의 음악을 배우기 시작하여 20세기 이전 곡들은 연주해본 적도 없이 '현대 음악의 교과서'라고 불리던 그는 나이들어 시대를 거슬러 바흐, 리스트, 베토벤을 연주했다. 음악을 배우거나 듣는데 정해진 순서가 있는 것도, 순서가 있다한들 꼭 그것을 따를 필요는 없다..." 과연 감수성 풍부하고 흥 많은 친구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물론이고 말러의 이 교향곡에 완전히 반해버려서 나를 기쁘고도 놀랍게 했다. 친구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데 편견이 있을 수 없다는 증거 자체였다. 

 

활기와 우울함, 환상과 괴기함, 춤곡과 장송 행진곡이 함께 나오는 말러의 교향곡 1번은 영화 <아담스 패밀리>를 좋아하는 내 취향을 바로 저격한다. 흔치 않게 더블베이스의 최고 매력도 느낄 수 있다.(오케스트라에서 더블베이스나 팀파니, 튜바같은 악기는 신기하게 보이지 않는가.) 친구는 곡 하나가 영화 한편이라며 너무 좋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1889년 초연에서 야유 받고 실패했다는데 아름답고 조화로운 음악만의 프레임에 갇혀있다면 이 곡의 특별함을 알아보지 못할 수 있겠다 싶다. 친구는 에마르 선생처럼 시대나 순서에 얽매이지 않은 클래식 듣기를 시작한 거 같아 심지어 부럽기까지 했다.

 

kbs교향악단의 연주가 베스트는 아니었다. 관악은 불안하고 내가 기대하지 못한 날카롭고 거칠고 강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듣는 우리는 충분히 즐겁고 감동했기에, 작년 가을 나를 무섭게 했던 지지부진한 그들의 연주는 이제 잊으려 한다.   

 

윤소영이 앵콜곡으로 러시아 출신 오스트리아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이구데스만의 <현을 위한 펑크 Funk the String>를 연주했다.-처음 들어보는 멋진 곡에 현란한 기교의 연주라 정말 솔깃했다.(기억해두려고 적어놓음.)

 

 

 

 

 

지휘: 요엘 레비

KBS 교향악단 

바이올린: 윤소영

2019.4.3, 예술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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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마술피리 | 오페라 2019-04-0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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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로 어이 없는 오페라

 

 

나는 꽤 오래전에 산 <마술피리> 음반을 가지고 있다. 오페라라고는 <라 트라비아타>와 <카르멘> 밖에 모르던 시절, 모짜르트가 교향곡이나 콘체르토나 소나타가 아닌 오페라도 썼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어디서 들었는지 마술피리의 아리아를 듣고 cd를 사서, 오페라의 스토리도 모르고 가사 내용도 모른채 수십년 애청해왔다. 오페라란 당연히 '베르디 같은' 장르인 줄 알았었는데 천상에서 들려오는 듯한 모짜르트 스타일의 아름다운 노래가 정말 놀라웠었다.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와 함께 모차르트의 3대 오페라로 꼽히는 이 작품은 동화적인 특징을 보인다. 현명한 왕자 타미노와 그를 시중드는 새잡이 파파게노의 모험 이야기는 아이들을 위한 음악극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이처럼 동화적인 오페라는 당시 유행하던 ‘징슈필’의 경향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에는 동화적인 순수함을 뛰어넘는 심오한 사상과 상징성이 내포되어 있다.[Daum백과]- 이것이 내가 대략 알고 있었던 오페라 <마술피리>다.(백과사전에 나온 그대로)

 

그러나 진짜 공연으로 처음 본(자막과 함께 본) 마술피리는 나를 어이 없게 만들었다. 일단 내용이 동화적이고 아이들을 위한 음악극으로 사랑 받을만한 것이 아니었다. 대본에 노골적으로- 외모 지상주의, 신분에 따라 거들먹거리거나 차별 받고, 무어인(혹은 흑인)에 대한 인종적 문화적 혐오에, 강력한 남성 우월주의, 성폭력까지.....나는 경악해서 입이 떡 벌어졌다. 이야기의 구성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여성적 문화(밤의 여왕으로 대표되는)와 남성적 문화(현자 자라스트로로 대표되는)에 대한 찌질하고도 식상한 대결은 그 반전에 개연성도 없어 어설프기만 했다. 

 

부실한 이야기 구성을 더 어설프게 만든 건 연출 덕분이라 해야할까. '온 가족이 즐길 오페라를 만들겠다'는 연출자의 의욕은 유치해져야 어린이들이 이해할 거라 생각했나보다. 오케스트라와 지휘는 서곡부터 불안했다. 무대 장치는 빈약하기 짝이 없어 그 원하는 동화적 느낌이나 환상적 느낌을 전혀 살리지도 못했고, 의상은 컨셉도 개성도 없었다.

 

세번째 가장 어이 없었던 것은 관객 운용이었다. 어린이, 청소년 관객에게 저렴하게 대량으로 티켓을 팔고, 어리거나 젊은 관객은 공연에 늦게 오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 공연 중에 늦은 수많은 관객들을 계속 들여보내고, 그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 수선 떠는 걸 묵과 하거나 부추기기까지 했다. 내 옆자리 두 젊은이가 자기 자리를 찾아 공연 중에 두번이나 의자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떠들더니 안내원까지 와서 셋이 시끄럽게 굴다가 급기야 내자리에 앉은 내게 티켓을 꺼내보이길 요구했다. 내 자리가 맞다고 작은 소리도 대답하니 안내원이 티켓을 내놓으라고 화를 내기까지 해서 나는 깜깜한 객석에서 핸드백을 부시럭 거리며 뒤져서 티켓을 보여줬더니 안내원이 손전등(!)까지 켜서 확인을 했다. ㅎㅎㅎㅎㅎㅎㅎ 내 평생 공연장에 와서 이런 꼴을 처음 보고 처음 당했다. 그러는 사이 서곡뿐 아니라 노래 두 곡이 그냥 지나갔다. 어린이 관객들은 보호자도 없이 자기들끼리 앉아 마음껏 기침하고 얘기하고 몸을 움직였다. 연출자의 단 하나의 성공이라면, 징슈필은 당시 귀족들보다는 교양의 수준이 덜한 민중들을 관객으로 겨냥해 좀 더 민속적인 배경을 갖고 있고, 공연장에서는 소시지 굽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더니, 과연 자유롭고도 소란스러운 징슈필의 초창기 분위기를 달성했다는 것이다.  

 

좋은 것은 오로지 모짜르트의 음악과 젊은 연주자들 뿐이었다. 허영훈(타미노), 김순영(파미나), 안갑성(파파게노), 박예랑(파파게나)은 젊은 미성으로 이름다운 노래들을 들려줬다.(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의 밤의 여왕 전문이라는 소프라노 소니아 그라네는 노래가 불안불안 ㅠㅠ)

 

최악의 공연이었다. 삼일운동 백주년 기념으로 제작된다는 국립오페라단 5월의 <윌리엄 텔>은 패스하기로 했다. 애국심 마케팅을 할까 무서워서이다.(애국심이 나쁘다는게 아니라 애국심 마케팅을 하는게 무섭다는 거다.) 새로 바뀐 국립오페라단 감독에 대한 기대가 '구관이 명관인가보다'가 되어 앞날이 캄캄하다.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를 애정해온 나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제대로 된 <마술피리> 리뷰는 언제 다른 기회에  해야할 거 같다. 

 

 

 

 

 

작곡: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

지휘: 토마스 뢰스너

연출: 크리스티안 파데

출연: 허영훈, 김순영, 안갑성, 박예랑, 양희준, 소니아 그라네

오케스트라: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

그란데 오페라 합창단, cpbc 소년 소녀 합창단

2019.3.28,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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