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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게 나이 들기, [스웨덴 인생노트] by 대그 세바스찬 아란더 | 기본 카테고리 2017-11-27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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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스웨덴 인생 노트

대그 세바츠찬 아란더 저/김성웅 역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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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상큼한 민트색 표지에 고급 다이어리를 연상케 하는 양장, 단정한 글씨와 둥근 안경, 빨간 나비 넥타이, 햇님 같은 미소를 짓고 계신 이 노신사분(저자)의 사진이 톤다운되어 띠지로 장식되어 있는 멋진 책에 첫눈에 반해버렸다.

눈에 쏙 들어오는 제목들과 그 제목에 맞는 토막토막 길지 않은 글들이 담겨 있어 읽기도 무척 쉬웠다. 그러나 저자가 평생에 걸쳐 배워온 교훈을 독자들에게 담담하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두고 두고 곱씹어볼 만하다. 40대의 초입에 들어선 지금 다가오는 내용이 있고, 아마도 50대, 60대, 70대 연령대가 달라질수록 다가오는 내용들이 달라질 것 같다. 좋은 책이라 읽어보고 책꽂이에 꽂아두고 한번씩 읽기로 했다.

* 일기장이 있는 인생

옛날 일기장에 적힌 천진난만한 몇 마디 문장들 때문에 수많은 기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살아난다는 생각을 해보라.

추억이란 한때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이 마지막 순간에 되살아나는 것이다. 추억이 없으면 시간 감각도 정체성을 잃어버린다. 살아오면서 세운 기초들도 잃고 만다. (pg. 46~47)

사춘기 시절, 독서실에서 다이어리를 끼고 누구에게도 하지 못하는 말들을 때로는 여학생다운 정갈한 글씨로, 때로는 못내 부대끼는 마음으로 거친 글씨로 지면 위에 고함을 질러대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손바닥만한 작은 플래너에 그 날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촘촘하게 적어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것들이 무거운 추처럼 느껴졌다. 아마 20대다운 낭만과 허세가 섞인 허무와 염세가 아니었나 싶다. 내가 살았던 흔적 하나 없이 바람 같이 살고 싶다고 생각하며 다 버렸다. 기억의 처분이랄까? 그리고 기록 자체를 하지 않았다.

이후 기록이라 하면 회사에서 그 날 그 날 처리해야 할 업무를 번호 매겨 적어놓고 하나하나 지워나가고 주간 업무보고 작성할 때 참고하는 정도였던 것 같다.

다시 기록을 시작한 것은 역시 아이를 낳고 나서이다. 하루하루 일상 속에서 아이의 한마디 말, 작은 몸짓 하나, 다음 단계의 성장으로 넘어가는 한 걸음, 표정 하나까지... 아이가 커 가면 예전 모습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현재 아이의 모습만을 보고 판단하기 쉽지만 예전의 기록, 예전에 아이가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어떤 추억들을 함께 쌓아 왔는지를 기억하면 통합적이고 입체적으로 더욱 깊이 아이를 이해하게 된다. 또한 내가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생각했는지, 지금 어떻게 변했는지가 보이고 되돌이켜야할 부분이 눈에 띈다. 이렇게 함께 만들어가는 삶이면 좋겠다. 매일 매일의 일상이 거기서 거긴 것 같지만 일정 시간이 흐른 후 돌아보면 많은 것이 변해 있고, 어디가 그 변곡점인지를 찾아내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 흔히 하는 후회인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를 늘 모니터할 수 있고 교정할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 징조가 보이면 잡아라

글을 쓰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내가 작가가 된 것은, 당신의 삶에서 운명 같은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 그 징조가 보이거든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pg. 69)

그렇다. 징조가 보일 때가 반드시 있다. 내 소박한 삶 속에서 극적인 징조랄 것은 없었지만 '계기', '기회'가 되는 순간이 있었다. 누군가와의 만남이, 우연히 발견한 인터넷 정보가, 아는 사람의 소개가 징조가 되어 준다. 앞으로 징조가 비칠 때 잡을 수 있도록 매일의 삶 속에서 담금질을 하듯 준비가 되어 있어야겠다.

* 재미가 없다면 책장을 덮어라

중역 자리를 걷어차도, 수업을 중도 포기해도, 광고 카피에 비해 형편없이 재미없는 책을 읽다가 덮어도 된다. 연극의 막간에 자리를 떠도 된다. 좋은 평판을 들으려고 하지 말라. 당신의 인생에서 결정을 내릴 사람은 오직 당신밖에 없다.

아이고, 참 고마운 말이다. 왜냐하면 내가 참 보기와는 달리 변덕이 죽 쑤듯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보기엔 차분해 보인다고들 한다.) 저자의 글을 나 좋은 대로 해석한 건가? ㅋㅋㅋ 이거 하면 저게 하고 싶고, 저거 하면 이게 하고 싶고... 사실 학창시절은 거의 누구에게나 정해진 길이니 다른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잘하기' 위해 노력했다. 회사에서도 그 안의 체계가 있으니 그 체계와 기준을 따라 별 생각없이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이렇게 어떤 제도권에서 벗어나 보니 '자기주도권'이 없으면 그저 그렇게 흘러가 버릴 수도 있는 게 인생이라는 걸 알게 됐다.

중도 포기하고, 책도 덮고, 다른 어떤 기준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인생으로 일구어가도록 내가 결정하는 것... 올해 초 마흔이 되며 내가 결정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아전인수격일지 모르지만 위로가 되는 내용이다. 마흔이 되면서 '뭐가 유망할까'보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자는 결심을 했다. 40년 가까이 살아보니 인생이 이렇게 짧고 어차피 회사도 그만뒀는데 좋아하는 거 한번 해 보자, 생각했다. 그래서 일어 원서를 보다 적극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 전에도 책을 좋아하고 원어 그대로의 의미가 전달되므로 원서를 종종 읽었다.

하지만 앞으로 주력하여 할 일은 수요 면에서나 전망 면에서 영어 관련된 일을 하려고 많이 신경을 썼었다. 그래서 몇 년 전에 외대에서 테솔(TESOL) 단기 과정도 들었었다. 성향상 몰입하는 것을 좋아하고 뭘 하면 열심히 하기 때문에 집중해서 밤잠 덜어내며 공부했다. 그리고 뭘 배우고 습득하는 것을 좋아해서 진심으로 즐기며 공부했다. 그 전데도 그 후에도 친정부모님께 아이를 맡긴 적이 없는데 네 달간, 일주일에 세 번, 3시간씩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오로지 집중해서 교실에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달콤했다. 아이가 폐렴 걸려 입원하여 한 주를 통째로 빼먹고 병원에서 아이를 돌봐야 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열심히 했다. 하지만 이후 둘째 임신과 출산이 이어졌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상대하여 영어를 가르친다는 것이 기쁘지가 않았다.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어본 적 거의 없이 무난하게 지내왔지만 사실은 내가 무난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이다. '사회화'라는 과정을 거쳤으므로 살아남기 위해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사람들과 어울려 왔지만 근본적으로는 그것이 싫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점점 드는 것이다.

마흔이 되며 기회가 닿으면 영어에 대해서도 일을 할 수 있겠지만 무리해서 애쓸 필요 없이 내가 좋아하는 일어로 좋아하는 책을 마음 편하게 읽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더 삶에 활력도 생기고 즐거움도 생기고 블로그도 적극적으로 하게 된 것 같다. 물론 지금 하는 프리랜서 일은 영어 일이 90%이지만 사람을 대면하여 하는 일이 아니고 영어와 한글 문장을 대면하여 하는 일이기에 적성에 맞다. 일이 들어오면 즐겁게 하고 시간이 남으면(둘째 꼬마가 잘 때, 밤에 애들 재우다가 먼저 잠들지 않고 다행히 일어나서 밤에 여유시간을 가질 때) 책을 집중해서 읽고 서평도 쓴다.

저자분이 그렇게 나 하고 싶은 거 해도 된다고 컨펌해 준 기분이 들어 해방감도 들고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한다.ㅋㅋ

06 가족도 조금씩 달라진다

지금까지의 부모 역할은 잊어라 / 참견과 간섭은 금물 / 자녀들과의 새로운 교제 / 소소한 일들에 손을 내민다면 / 큰 문제는 모른 체하기 / 관계가 서먹해지기 전에 / 자녀들에게 잘하는 방법 / 침묵할 때는 침묵 / 부모의 뒷모습을 배운다 / 모든 말을 들을 필요는 없다 / 모든 것에 답할 필요도 없다 / 자녀들을 위한 시간과 공간 / 손주들과의 시간은 적당히

제6장의 내용은 깊이 깊이 새겨두고 싶어서 타이틀을 적어봤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 품 안의 자식이라고 부모를 많이 필요로 하지만 언젠가는 빈 둥지로 남겨질 것이다. 지금 그토록 원하는 '나만의 시간'을 원치 않아도 무한정 갖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나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 아이들의 삶에 분노하고 내 수고를 인정받지 못한 것 같아 자기연민에 빠지면서 아이들과 점점 더 거리가 멀어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진작부터 나를 괴롭히고 있다. 아이들을 혼내면서도 나를 미워하게 되면 어떡하나, 생각이 먼저 든다. 너무나 미성숙한 엄마이다.

아마 좋은 본을 보지 못하고 그렇게 당했기 때문이 아닐까? 부모 탓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친정 엄마도 시어머니도 저 위의 항목들과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뭘 해도 어설프다며 모든 것을 본인이 해야 제대로라고 생각하시는 듯한 친정 엄마와 아들에 대한 애착을 끊지 못하는 자기중심적인 시어머니.

나이 들어서 이렇게 아이가 어렸을 때와는 다른 형태로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정신적으로 풍요하고 교감하는 부모자식 사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도 내 인생을 아이들에게 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을 충실히 하며 나의 일의 영역을 넓혀가며 평생 현역으로 살아가며 아이들에게 멘토로, 때로는 아이들이 나의 멘토로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란다. 오늘도 미성숙하지만 엄마도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처럼 엄마도 엄마로서 성장하고 있음을 언젠가는 알아주길 바란다.

-----

처음에 짧은 토막글 같아서 휙휙 넘겨보다가 서서히 책장 넘기는 손길이 느려지고 다시 들여다보고 다시 읽어보고 하면서 읽어내려갔다. 요즘 출판의 추세가 '에이징'인지 다각도에서 늙어가는 법을 조명한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관심이 있다 보니 꽤 접하게 되는데 먼저 인생을 살아오신 멘토로부터의 살아있는 조언이 최고인 것 같다.

유전으로 인해 벌써부터 새치라고 하기엔 흰머리가 너무나 많아 서럽지만 나중에 늙어서 긴 생머리로 흰머리 휙휙 날리는 멋진 호호 할머니가 되어 나도 이렇게 살아있는 조언들 담은 작은 책 하나 자비 출판하는 것도 좋은 인생의 목표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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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똑똑이, but super-duper real girl crush, [아르테미스] by 앤디 위어 | 기본 카테고리 2017-11-26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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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르테미스

앤디 위어 저/남명성 역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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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건설된 우주 도시 아르테미스. 작은 공동체이지만 사람 사는 데 필요한 것은 다 있는 곳이다. 마찬가지로, 당연히 사람 사는 곳에 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범죄자라고 읽는다)도 존재한다. 가령, 백만장자를 꿈꾸는 무일푼의 밀수꾼. 게다가 26세의 새파란 여성. 바로 주인공 재즈 바샤라이다. 그녀의 공식적인 직업은 택배기사라고 해야 하나, 배달꾼이라고 해야 하나? 그녀는 아주 소박하게 혼자 쓸 수 있는 샤워실에 있는 자그마한 집을 갖고 싶을 뿐인데 공식적인 직업만으로는 달성하기가 불가능하기에 부수입으로 지구에서 담배나 술 같은 것들을 슬쩍 슬쩍 들여오는 일을 남몰래 하고 있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사람이지만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10대의 자기 자신이라고 할 정도로 제멋대로 살아온, 그러나 미워할 수 없는 '헛똑똑이'이다.

어느날, 그녀의 밀수 거래의 고객이자 사업가인 트론으로부터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고 꿀꺽 수용해 버린다. 몹시 위험한 일이지만 단숨에 그녀를 백만장자로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으나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로 끝난다. 그것은 실패를 의미한다. 그리고 다가오는 죽음의 손길... 아까 말했듯이 사람 사는 곳에 다 있는 음험한 인간 군상이 있고, 음모가 있고, 이권의 대립이 있고, 불법이 있다. 그 위험한 일을 제안했던 트론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고 이제는 재즈의 목숨까지 노리고 있다.

본격적으로 지구의 범죄세력과 결탁하여 달에서의 이권 사업을 둘러싼 추잡한 대립이 시작되고, 스릴 넘치는 추적이 시작된다. 작은 범죄(예를 들면, 밀수 거래 등)는 왕왕 일어나기도 하지만 이번 일은 보통일이 아니다. 재즈가 파악해 낸 음모는 아르테미스 공동체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고 지구의 폭력 조직의 손아귀에 놀아나게 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기에 그녀는 드림팀을 모아본다. 그들은 재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아르테미스를 구한다는 대의를 위해 떨떠름하지만 열심히 협조한다. 그리고 가장 위험한 역할을 재즈 본인이 도맡아 하며 하나 하나 아르테미스를 구하기 위한 작전을 진행해 간다. 그녀는 6살 때 지구에서 아르테미스로 이주해 와 지금까지 살고 있으며 아르테미스를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르테미스를 구하려다 아르테미스 전체를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뜨린 재즈. 우여곡절 끝에 믿을 수 없는 의협심과 '운'과 드림팀의 협력으로 '좋은 게 좋은 것'으로 끝이 난다.

유후~~!! 재즈는 너무나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가 여성으로 둔갑한 듯한 똑똑하면서 능청맞고 음담패설 던져가며 퇴폐미 넘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여성 캐릭터이다. 그리고, 달이라는 무대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아직 미지와 동경의 세계가 아닌가? 이 달의 작은 도시에도 신분의 높고 낮음이 있고, 물질의 많고 적음이 있다. 또한 경제적 이익을 위해 남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가족과 친구라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 따뜻한 인간관계도 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같구나.

재즈에게 빠진 것 같다. 걸 크러시 유발자이다. 제멋대로에 헛똑똑이에 후회투성이 망나니 같은 그녀이지만 미워할 수가 없다.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이면서도 잔머리나 굴리며 소소히 밀수라는 범죄를 꾸미기나 하다니. 그 분방함과 자유함이 부럽다고나 할까?

이 책은 주요 캐릭터가 다 여성이다. 주인공 재즈는 물론 아르테미스의 통치자라고 할 수 있는 행정관도 케냐 출신의 성공적인 여성 정치인이고(뒤통수 제대로 치지만...), 악역이긴 하나 아르테미스 최고 기업의 경영자 역시 여성이다. 그리고 재즈의 고객이었다가 죽은 트론의 딸 레네도 연약한 10대 소녀의 모습을 보이다가 아버지의 사업 재능을 물려 받아 어엿한 사업가로 사업계약을 따낸다. 여성들의 멋진 승부도 볼만하다.

앤디 위어가 또 해냈다는 느낌이고, 영화로 나온다고 들었는데 꼭 큰 스크린으로 볼 수 있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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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책 어디에 밑줄을 긋는가 | 기본 카테고리 2017-11-20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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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들은 책 어디에 밑줄을 긋는가

도이 에이지 저/이자영 역
비즈니스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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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책 앞부분에서 밝히고 있듯이 경제/경영 도서를 읽을 때 가장 효과적인 독서법에 대한 책이다. 그러나 비문학 도서 즉, 감상을 목적으로 하기보다 '정보'를 얻기 위한 모든 독서에 적용할 수 있는 독서법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11가지 독서 전략을 제시한다. 독서 전략이라기보다 수많은 신간의 홍수 중에서 어떤 책을 읽을지 고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하는데 본인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내려고 하는 사람은 넘쳐나는 세상이다. 일부 전문가만이 책을 내었던 과거에 비해 출판의 저변이 확대되고 다양한 책들이 보급되고 있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으나 옥석을 가려서 읽을 수 있는 전략이 진정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1. 저자가 경영자일 경우 창업가나 기업 전성기를 이끈 경영자 책을 고른다.

2. 프로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가려낸다.

3. 최고 중 조금 특이한 사람의 책을 고른다.

4. 컨설턴트에게는 왕도의 전략을 배울 수 있다.

5.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저자의 책은 피한다.

6. 책 제목에 속지 않는다.

7. 고유명사가 많이 들어간 책을 고른다.

8. 글 앞머리에 밑줄을 그을 만한 문장이 있는 책을 고른다.

9.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쓴 책을 고른다.

10. 번역서는 양서일 확률이 높다.

11. 항목별로 분류해 놓은 것에 주목한다.

저자는 빨리 읽지 말고 천천히 읽을 것, 많이 읽지 말고 부분에 집중하여 읽을 것을 강조하는 사람이나 본인은 하루에 3권 정도의 책을 읽는 다독가이다. 책 멘토이자 기획자라는 직업 때문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책들을 접하면서 책을 고르는 안목을 가지게 되었고 나름의 책 고르는 전략을 제시할 수 있는 것 같다. 11가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면 자칭이 아닌, 자타 공인할 수 있는 전문가가 쓴, 객관적이고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책을 고르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저자는 단지 '권수 채우기'나 서평을 남기기 위한 독서를 하지 말라고 권한다. 그 대신에 깊이 읽고 자신에게 가장 통찰력을 주는 '부분'에 줄을 긋고 반복하여 읽으라고 권한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부분이 아니라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 기존에 생각하던 것과 다른 부분,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부분들을 정독, 숙독하라는 의미이다.

"여러 번 이야기하지만 여기서 소개한 추천 도서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지 않아도 된다. 가장 마음을 사로잡은 부분만 '10번 읽는' 방법도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p. 107)"

​저자는 경제/경영 분야에서 주옥같은 책들을 몇 권 소개하고 있는데, 그 책들조차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라고 권하지 않는다. 필요한 부분을 찾아 집중하여 되새기라고 한다.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독서법에 대한 교육을 섬세하게 ​시행하지는 않는 것 같다. 테솔(TESOL ; 외국인을 위한 영어 교수법) 교육을 외대에서 받았던 적이 있다. 이때 '읽기' 지도를 공부하면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서 단시간 내에 (제한된 시간 내에) 정보를 찾아내는 연습을 한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익숙한 처음부터 하나하나 읽는 방법뿐만 아니라 필요한 정보를 찾아가면서 skip하며 읽는 방법도 매우 중요한데 이는 시험을 볼 때나 정보를 얻기 위한 독서에서 특히 필요하다.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학교에서 독서 지도를 하며 훈련을 통하여 인생에 필요한 다양한 독서법을 터득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예전에 아는 분이 '사금'을 찾아내는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종교의 경전도 아니고, 수많은 책은 각기 다양한 생각을 가진 개인이 쓰는 것이기 때문에 통째로 모든 것을 흡수할 필요는 없고 수많은 페이지 속에서 자신이 원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사금 캐듯 읽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후로는 나도 책을 지나치게 비판하지도, 맹신하지도 않는 거리를 유지하며 내게 필요한 부분을 흡수하여 읽고 있다.

놀라운 휘발력을 가진 나의 빈약한 기억력 때문에 나는 짧게라도 서평을 남겨놓는 편인데 이제는 좀 더 밑줄 그은 부분을 중심으로 집중해서 독서의 틀을 잡아봐야겠다. 주로 문학 그 중에서도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라서 정보성 도서를 읽을 때와는 조금 다를 수 있으나 다양한 독서법을 몸에 익히고 체화하여 전천후로 구사하고 싶다.

저자가 부록으로 수록한 본인이 밑줄 그은 44개의 문장이 나오는데 이 또한 명저자들의 명저들과 그 가운데 통찰력을 주는 부분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매우 유익하고 그 책들을 읽어보고 싶은 강한 욕구를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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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교열은 그녀의 운명, [교열걸1] | 기본 카테고리 2017-11-1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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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교열걸 1

미야기 아야코 저/김은모 역
arte(아르테)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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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지의 남다른 패션 감각을 가진 세련된 여성이 연필과 원고지 들고 있는 모습이 모든 걸 말해 주는 것 같다. 이렇게 멋진 여성이 교열 보며 능력도 발휘하고, 돌직구도 서슴없이 내뱉고, 탐정같이 사건 해결도 해 주고, 사랑도 한다는 것.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읽고 프라다 입는 악마들이 가득한 패션 잡지 에디터가 되기 위해 경범사에 입사하였지만, 얼굴 없는 부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교열부에 배치된 고노 에쓰코. 열심히 해서 인정을 받으면 그토록 원하던 칸막이 저 너머의 패션 잡지부로 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투지를 불태운다.

저렴한 편의점 도시락을 먹더라도 패션은 한 치의 양보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에쓰코의 지론. 겉모습에만 신경 쓰는 허영 덩어리인가 생각할 수 있지만, 업무 능력은 그야말로 부러울 정도로 탁월하다. 거의 신기에 가까운 기억력과 앞뒤를 읽어내는 뛰어난 이해력, 그리고 사소한 것도 그냥 보아 넘기지 않는 철저함이 삼위일체가 되어 그녀는 뛰어나게 교열 작업을 해낸다. 교열 세계는 그것이 다가 아니어서 너무 꼼꼼하게 하다가 눈 밖에 나기도 했지만, 놀라운 능력이긴 하다.

출판에 막연한 동경이 있어서인지 <배를 엮다>, <중쇄를 찍자>, <싸우다 서점 걸> 등 출판사 및 서점과 관련된 드라마나 책을 정말 좋아한다. 교열을 다루는 건 참 기가 막힌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딱 눈에 보이는 동적인 장면보다는 문장과 씨름하는 정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지루할지도 모르겠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에서는 교열 작업을 하며 의문을 갖게 되는 앞뒤가 안 맞는 문장들을 통해 작가의 비밀을 파고들기도 하고, 흡사 미스터리 소설처럼 문장 속에 나오는 단서들을 가지고 실종된 작가의 부인을 찾아내기도 한다. 그 놀라운 일을 고노 에쓰코가 한다는 것.

버릇처럼 틀린 한자를 찾아내는 모습을 보고 큭 하며 웃었다. 나의 버릇이기 때문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초등학생 때 초등학생용으로 나온 셰익스피어 작품집 같은 걸 보면서 맘에 안 드는 표현이나 틀린 맞춤법은 책에다가 줄 찍찍 긋고 고쳐가면 읽었던 사람이다. 중학교 때 고전문학을 읽으며 서서히 독서에 흥미를 잃어가고 글이나 문장과는 크게 관련 없이 살다가 성인이 되고 나서 역시 책으로 회귀하였다. 태어난 곳으로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그러나 문장에 대한 감각 따위 잃어버린 지 오래이기 때문에 그냥 읽었다. 번역이 이상한 것 같아, 정도만 감지했다.

4년 전부터 프리랜서로 어학 동영상 강좌를 검수하는 일을 하면서부터 다시 감각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일 자체가 영어 및 우리말의 모든 오류를 잡아내야 하므로 내가 아는 지식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공부를 해나가야 했다. 맞춤법 검사기를 끼고 살고 국립국어원 홈페이지를 뒤지고 그래도 안 되면 국립국어원에 카톡을 뻔질나게 보내야 했다. 그러면서 발견하는 것들이 나는 즐거웠다. 언어 속에 숨어 있는 특이한 조개 껍데기를 찾는 것이 너무나 즐거운 것이다. 일할 때도 해야 할 일에 포함되지 않는 것들, 즉, 굳이 안 해도 되는 것들까지 내 맘에 들게 싹 고쳐서 보냈었다. 그랬더니 관련 일까지 의뢰가 들어왔다. 즉, 교정/교열하는 일과 번역문을 검수하는 일이다. 원문과 번역문 대조하여 번역이 바르게 되었나부터 해서 번역문의 표현까지 교열하는 일이다. 정답도 없고 노가다에 상응하는 일이지만 나는 즐거운데 어찌하랴. 돈을 너무 쪼끔 준다는 게 함정이지만, 이게 다 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잔뼈를 굵게 하는 통로가 되니 즐기며 하는 걸로! 끝도 없이 공부해 갈 수 있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나도 비록 집에서 머리카락 뜯으며 컴퓨터 앞에 놓고 고민을 하더라도 에쓰코처럼 스타일 멋지게 하고 일을 할까 보다. 한때는 '클래식해 보이는데 어딘가 꼭 하나씩 포인트가 있다'라는 말을 들었었다. 무지하게 특이한 코르사주라든가, 평범한 H라인 치마 뒤에 리본을 하나 묶는다든가... 그게 내가 추구하는 취향이었다. 그걸 콕 집어내 준 같은 부서 선배 언니가 갑자기 그리워지네. 지금은 '취향'이라는 것 자체가 '부재'이다.

그나저나 에쓰코가 시쳇말로 '썸'을 타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되려나 궁금하다. 결국, 2, 3권 사게 되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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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뜨겁게] by 배지영 | 기본 카테고리 2017-11-1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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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안녕, 뜨겁게

배지영 저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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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재미있는 한국소설을 읽었다. 다른 소설이 재미없다는 것이 아니라 국내 도서는 많이 읽지 않고 읽을 때는 보통 번역서를 많이 읽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난 번역이라도 번역투에서 자유롭기는 참 힘든 것이라 번역본을 읽을 때 긴장을 하는데, 자연스럽게 강물 흐르듯 유려한 우리말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어깨에서 힘을 빼고 내용 자체에 몰입해도 되는 자유를 느끼게 해 줌을 간만에 느낀다.

제이(J)라는 주인공은 요즘 세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20대 비정규직 여성이다. (본문을 읽을 때는 이름이 '윤제이'인 줄 알았는데, 저자의 후기에서 J라고 쓰신 것을 보니 이니셜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해방 이후 부모보다 못 사는 세대라는 20대에,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게다가 여성이다. 제이라는 이니셜도 요즘 어린아이들에게야 많이 없는 이름이겠지만 지영, 지은, 지혜, 지애, 지연 등으로 대변되는 흔하디 흔한 이름을 가진 보통 여자를 뜻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나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많은 20대 여성들이 겪을 법한 성장통을 몸으로 부대끼며 치열하게 겪어내는 이야기를 약간의 소설적 허구(UFO와 외계인, 그들과의 교신)를 곁들여 풀어내고 있다. 지극히 빈곤한 상상력을 소유한 독자인 나는 처음에는 UFO에 외계인, 그들과 교신하는 남자, 그들이 납치해 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조금 난감하긴 했다.

그런데 제이와 제이의 가족과 회사 동료들이 보기에는 단지, 아줌마, 아저씨, 젊은 여자, 젊은 남자일지라도 각 사람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고 화해해 나가는지가 흥미롭게 그려진다. 그래서 독특한 존재로서의 개별성이 중요한 것 같다.

제이는 29살이 되기까지 그럴 듯한 경력 없이 아직도 비정규직을 전전하고 있다. 대단한 야심이 있는 것도 아닌데 보통, 평균의 삶도 손에 넣기가 쉽지 않다. 제이의 엄마는 십여 년 전, 아빠의 중병 앞에서는 생활인으로서의 비정함을 서슴없이 내보이더니 노년이라 할 수 있는 지금은 새로운 사랑을 시도하고 있다. 소위 '엄친아'로 제이의 자랑이었던 제이의 오빠는 소위 '애 딸린 이혼녀'와 소설 같은 순정의 사랑의 결실로 결혼을 하려고 한다. 사회의 잣대로 판단되어지는 것이 못내 싫은 제이도 그 사회의 잣대로 오빠의 신붓감을 재단하고 자른다. 모순투성이 보통 여자이다. 사람이 그런 것이지 않을까? 완벽하게 일관성 있고, 완벽하게 논리적이며 완벽하게 앞뒤가 맞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그녀에게 더욱 공감이 된다.

제이는 과거에 꽤나 명성 있던 잡지 <좋은 이웃>의 기자이다. 제이의 회사 사장은 명색이 출판인이면서 출판의 사명따위 안중에 없고 어떻게 권력의 하수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려볼까 생각하며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하다. 갑질의 원조이다. 예전의 명성의 흔적에 기대어 입사한 서울대 출신의 조 기자는 얼마 못 버티고 때려치고 나가고 나이도 같으면서 주민증 운운하며 언니 노릇하는 한 기자(보람 언니)는 자기계발서에나 나올 법한 처세술을 읊어대나 실상은 현재 급여로는 삶이 빠듯하여 주말에 투잡을 뛰고 있다. 그저 사람 좋고 무능한 손 부장은 존재감 없다.

​제이의 회사 옆 성인용품 가게 주인은 그야말로 색안경 끼고 보기에 좋은 존재이지만 제이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실은 좋은 이웃이다. 그리고 기사가 될까 하여 접근한 배명호 씨는 외계인이 납치하여 잃어버린 아내를 찾고 있는 사람이다. 행방불명된 제이의 아빠도 함께 찾아달라고 하며 제이가 접근했다. 주변에서 정신병자로 분류되는 사람이지만 제이는 묘한 편안함을 그에게서 느끼고 외계인의 단서를 함께 추적해 간다.

이 모든 사람들과 일련의 사건 속에서 제이는 봉인해 두고 있던 20대의 가슴 아픈 기억들을 떠올리고 인정하며 과거로 흘려 보내는 작업을 한다. 이별을 정식으로 고해 주지 않고 말 그대로 산에 버리고 간 사람에 대한 상처로 사랑에 철벽을 쌓아왔으나 아픈 사랑도 과거로 보내고, 갑자기 말 없이 사라져버린 아빠에 대해서도 아빠와 함께 했던 시간의 온기만으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충전한다.

단순한 몇 마디의 말이 아닌, 공유했던 기억들, 미처 기억으로 남지 않았던 시간들. 그것들이 아주 길고 아름다운 노래가 되어 내게 들려주고 있었다.

이젠 내가 아빠에게 말하고 싶다. 내게 좋은 추억을 남겨주어 고맙다고, 그런데 인사도 없이 갑자기 떠났다는 이유만으로 그 좋은 기억마저 잊으려 했던 나를 용서해달라고, 미안하다고.

지질하고 못나빠진 나의 20대를 향해서도. 짧은 순간이나마 사랑이 충만했던 순간에 대해 고맙다고. 사랑 때문에 헤어짐이 너무 힘들어서, 시랑의 시간마저 저주했던 순간에 대해 미안하다고. 그리고, 그리고...... (p. 284)

​그리고, 또 성공과 처세에 대해 읊어주는 언니 노릇하는 보람 언니에게 이렇게 외친다.

"내가 언제 성공하고 싶다고 했어요? 누굴 이기겠다고 한 적도 없잖아요. 그런데 왜 자꾸 방법을 알려주는 건데요. 난 그냥 평범하게, 땅바닥에 발 딱 붙이고서 살고 싶을 뿐이라고요."(p. 251)

그럼으로써, 기존 사회로의 편입만이 생존의 유일한 끈인 것처럼 애를 쓰던 제이는 자신을 해방한다. 그리고 자유로워진다. 오빠의 결혼도, 그 상대인 '애 딸린 이혼녀'도 수용하게 된다. 그렇게 30대를 맞는다. 늘 훈수 두었던 보람 언니는 갑자기 닥친 질병으로 인해 입원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녀도 이제 진정한 20대다운 방황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 아닐까.

"난 말이야.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인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누가 알았냐고, 내가 이렇게 쓰러져버릴지. 모을 땐 그렇게 힘든 돈이 병원비로 나가는 건 순식간이더라고. 억울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어. 계획대로 되지 않는 미래는 그냥 공포야. 더구나 난 하나도 괜찮지 않은데 주변에선 자꾸 '괜찮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라'는 거야. 누가 넘어졌다는 거야? 난 쉬고 싶지 않다고!" 그러곤 그녀는 심호흡을 몇 번 하더니, "아니야, 실은 나 괜찮아. 지금은 심리적인 공황 상태인 거야. 미안해.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탄 것만 같아"라고 말했다.

괜찮다. 그녀도 괜찮아질 것이다. 그렇게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면 된다. 20대이기 때문에 괜찮다.

 

나도 그랬는데... 충실히 살고자 노력했는데, 어쩌면 계획 없이는 못 사는 보람 언니같은 나였는데, 살다보니 나의 계획만이 다가 아니고 갑자기 닥친 위기도 꼭 새드엔딩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전화위복이라는 말도 삶에서 체득하고 나니, 좀 더 부드러워 진다고 할까, 둥글어진다고 할까 그런 연륜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미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었던 힘든 과거를 가진 배명호 씨도 치유를 얻었을까? 어찌 생각하면 뉴스에서 들려오는 소식들, 호러 영화보다 더 호러스러운 현실을 보면 제정신으로는 살아가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혈육보다도 더 좋은 이웃(제이가 일했던 잡지 이름이기도 한)들이 있어 공허한 마음 보듬고 또 일어서서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20대를, 그리고 그 20대를 겪어 '어른'이라 불리게 된 사람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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