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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가장 무도회같은 미스터리의 향연, 《매스커레이드 나이트》 by 히가시노 게이고 | 기본 카테고리 2018-09-14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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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매스커레이드 나이트

히가시노 게이고 저/양윤옥 역
현대문학 | 201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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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초일류 호텔 '호텔 코르테시아도쿄'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섣달 그믐날의 카운트다운 행사인 가장 무도회 일명 '매스커레이드 나이트'를 둘러싸고 경시청 수사 1과 닛타 형사와 호텔리어 나오미가 다시 뭉쳤다.

《매스커레이드 호텔》, 《매스커레이드 이브》에 이은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세 번째 책이다. '매스커레이드 (masquerade)'는 가장, 가장 무도회를 뜻한다. 이 시리즈의 무대가 되는 호텔이라는 곳의 '비일상성', 온갖 사람들이 모이는 '익명성'이 합쳐져서 모두가 가면을 쓰고 가장을 한 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그러나 여실히 보여주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남편의 이름으로 예약하고 부부인 채하지만 혼자 행동하는 아름다운 외모의 여성 고객,

화려한 프로포즈 대작전을 선보이고 보기좋게 퇴짜 맞은 후, 바로 다음 날, 호텔에서 스친 아름다운 여성에게 반했다는 남자,

초일류 호텔에 어울리지 않는 행색의 남성, 게다가 의심스러운 택배가 날아들지를 않나...

불륜 대상 여성과 늘 찾던 호텔에 가족과 함께 찾은 남성 투숙객,

뒤이어 그 불륜 대상 여성이 두 사람 이름으로 체크인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의심의 색안경을 끼고 보면 누구 하나 수상하지 않은 자가 없는 곳이 또한 호텔이다.

익명의 밀고자에 의해 최근 발생한 살인사건의 범인이 이 호텔의 가장 무도회 행사인 '매스커레이드 나이트'에 나타날 것이라는 정보를 얻고 감시망을 친 경찰.

수상쩍은 투숙객들과 잔뜩 긴장한 경찰인력, 경찰에 협력하면서도 고객을 최우선하는 자부심 높은 호텔리어들의 팽팽한 신경전이 흥미로운 볼거리이다.

의외로 범인은 엄청 놀랍지는 않았지만 역시 초일류 호텔 로비에 내가 앉아 관찰하는 듯한 지켜보는 재미가 백미였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건 캐릭터의 매력이다. 캐릭터에 동일화할 수 있는 매력! 이것이 이들에게 있다는 게 유쾌한 동행의 비결이었다. 냉철한 형사의 감과 함께 매력적이고 세련된 용모의 닛타, '안 된다'는 말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지 않는 만능 호텔리어 나오미, 닛타와 묘한 콤비를 이루며 겸손히 사건 해결의 단서를 제공하는 노세 형사, 그리고 이번에 새로 등장한 표정 없는 가면 같은 얼굴의 호텔리어 우지하라, 그리고 수상쩍지만 분명한 캐릭터를 가진 투숙객들...

엔터테인먼트 소설의 미덕을 두루 갖춘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진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사회파 미스터리도, 가볍고 유쾌한 터치의 엔터테인먼트 미스터리도 모두 맘에 드는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님이다. 550페이지가 어느새 넘어가 있는 게 아쉬웠다.

기무라 타쿠야, 나가사와 마사미 주연의 영화가 2019년 1월 18일에 일본 현지에서 개봉 예정인데 무척 기대된다. (개인적으로는 에이타와 이시하라 사토미 조합을 캐스팅해 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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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하지만 정의롭고 아름다운, 《블루 머더》 by 혼다 데쓰야 | 기본 카테고리 2018-09-05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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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블루 머더

혼다 데쓰야 저/이로미 역
자음과모음 | 201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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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코 형사 시리즈의 6번째 책이다.

이케부쿠로를 주름잡는 폭력 조직의 두목이 가석방된 지 엿새 만에 잔혹하게 맞아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조직 간 갈등으로 보고 조직 간의 항쟁으로 번져 일반 시민의 안전이 위협당할까 봐 경찰은 바로 조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비슷한 형태의 잔인무도하게 구타당하여 죽은 시체들이 발견된다. 발견된 시체의 형태는 그야말로 엽기 그 자체인데 경찰은 흉기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암흑 속에 몸을 감추고 검은 돈을 손에 넣는 자들이다. 조직폭력배, 점조직 형태로 송금 사기 등을 주로 하는 신흥 범죄 그룹 한구레, 중국 잔류 일본인 2세들과 재일 중국인을 중심으로 하는 슈카류의 멤버들이다. 물론 경찰관들의 부상도 빠질 수 없다. 신출귀몰하여 이케부쿠로 주변의 모든 악당들을 벌벌 떨게 하고 줄행랑치게 하는 이 정체모를 자는 파란 가면을 쓰고 다니며 '블루 머더'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조직에 스파이로 심어놓은 전직 경찰관 기노가 하루 아침에 사라지자 그의 행방을 아직도 궁금해 하고 염려하는 이전 조직 폭력단 담당 형사 시모이는 7년이 지난 지금 온갖 연줄을 이용하여 그의 행방을 추적하며 한 가지 진실에 근접해 간다.

독자들은 중간에 이르기 전부터 범인인 '블루 머더'의 정체를 눈치챌 것이다. 저자는 범인을 찾아가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 그가 '블루 머더'가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과 그가 한 잔혹한 행위의 이유, 그리고 그가 자신을 얽매었던 저주에서 풀려나는 과정, 그가 얻은 구원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공감을 불러오는 호소력 있는 집필력에 감탄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한 살해 방법을 서슴없이 구사하는 연쇄 살인범의 심정에 동조하게 될 줄이야...

그리고, 블루 머더와 함께했던 두 명의 조력자 중 한 명 이와부치는 레이코 형사의 부하였던 기쿠타가 좇던 지명수배자인데, 그는 궁지에 몰려 기쿠타와 나가세 경사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 인질극을 벌인다. 그 역시 자신이 약하여 비굴하고 굴욕적으로 인격을 모독당했던 과거가 있는 청년이다. 그를 설득하고 기쿠타를 구하기 위해 우리의 멋진 여형사 히메카와 레이코가 방탄조끼도 착용하지 않고 무방비 상태로 그와 마주한다. 그리고 자신이 당한 참혹한 범죄의 경험을 그에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수도 없이 죽였어. 수백, 수천, 수만 번이나 머릿속에서 그놈을 죽이며 살아왔지. 찔러 죽이고, 총으로 쏘아 죽이고, 목을 졸라 죽이고, 때려서 죽었어. 텔레비전에서 살인 사건 뉴스를 볼 때마다 실제로는 어떻게 해서 죽였을까, 하고 혼자서 상상을 해. 그런 상상은 언제부터인가 점점 더 소름 끼치는 아이디어로 변해가더군. 저 범인이 나였다면 이렇게 했을 텐데, 저놈을 이렇게 죽이는 거라고 보여주었을 텐데, 하고 말이야...... 맞아, 난 그런 생각만 미친 듯이 하면서 살아왔어. 그 사건 이후의 인생을." (417쪽)

기쿠타에게도 밝힌 적 없는 아픈 자신의 과거, 이렇게 죽도록 자신을 시험하듯 끊임없이 스스로를 사지로 몰아 넣으며 강하게 살아가게 된 계기를 그 자리에서 밝힌다. 이와부치는 순순히 총을 내려놓고 굴복한다. 레이코 형사의 말로 인해 그도 구원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블루 머더는 자신이 블루 머더가 될 수밖에 없도록 몰아간 사건의 진상을 드디어 알고 부드럽고 순한 눈빛으로 다시 돌아간다. 예전, 순경으로 파출소에서 일할 때의 정의감 넘치는 소년과 같은 그의 눈빛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잔인하고 참혹한 살인자를 보고 마음이 이렇게 엘 수가 없다. 그리고, 이와부치의 마음을 녹게 한 레이코 형사의 말들에 눈물이 났다. 범죄의 피해까지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상처 속에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상처에 취약하기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았고 내게 상처 준 사람들에 대해 레이코 형사가 했던 상상들을 수도 없이 반복했었다.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 20~30년 전의 사람들, 지금 지나가다가 봐도 얼굴도 못 알아볼 사람들의 그 예전 모습을 기억하며 그들의 인생을 저주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건전한 대한민국의 성인으로 살아가고 있을 수 있는 것은 역시 인생에는 그런 쓰라린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의 가치와 효능감을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나마 기쿠타에게 마음을 표현했던 레이코 형사. 이미 그는 결혼해 버렸지만 다시 형사로서 경찰로서 다시 같은 팀에서 뭉칠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며 이번 6권이 끝났다. 설마 불륜이라는 시궁창으로 빠지지 않길 바라면서도 두 사람의 콜라보에 대한 기대가 모락모락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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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혁명가에게 꽃다발을, 《지니의 퍼즐》 by 최실 | 기본 카테고리 2018-09-04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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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니의 퍼즐

최실 저/정수윤 역
은행나무 | 201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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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상반기, 아쿠타가와 상 최종 후보 다섯 작품에 올랐던 작품이다. (수상작은 《편의점 인간》이었다.) 그때 못 읽고 넘어간 책을 번역본으로 읽게 됐다. 저자인 최실 작가는 1985년생 재일교포 3세이다. 조선학교와 미국 유학에서 겪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 작품을 썼다.

초반부의 오리건 주의 작은 도시에서의 외톨이 학교 생활, 홈스테이 호스트인 스테퍼니와의 오리건 주와 워싱턴 주의 경계 지역의 여행, 선문답 같은 스테퍼니와의 대화를 보며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나 궁금해졌다.

과거로부터 도망하고 도망하여 거기에까지 이르렀는데 더 이상 도망할 곳도 없는데 세상은 또 그녀를 벼랑 끝으로 몰고 또 몰아간다. 동아줄 같은 스테퍼니와의 사랑과 애정, 이해를 기반으로 지니는 어둡고 긴 터널 끝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한다.

지니는 일본학교를 다니다 중학교를 조선학교로 가게 되었다. 조선학교는 북조선 계열의 학교로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 액자를 교실 앞에 걸어놓는다. 사진 액자가 해꼬지를 하는 것도 아닌데 지니는 이질감과 거북한 느낌에 심기가 몹시 불편하다. 조선어를 말할 줄 모르고 배우려는 적극적인 자세도 없는 지니는 눈엣가시이다. 위악을 떠는 사춘기 소녀이지만 위악을 떠는 사람일수록 마음은 여리고 상처받기 쉬운 법이다.

그러던 어느날, 대포동 미사일이 발사된 후 일본 내의 조선인에 대한 눈길이 싸늘하게 일변한다.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협을 당한다.

아무하고도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지면 앞을 주시하며 걸었다. 여긴 어디지. 어제까지만 해도 내게 위험한 장소가 아니었는데. 그랬는데 오늘 갑자기 이렇게 위험한 곳이 돼버리다니. 앞에 있는 길모퉁이가 두렵다. (98쪽)

사람의 욕구 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이 '안전'에 대한 욕구일 텐데 어떤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존재만으로도 위험해지는 상황이라니, 등골이 서늘하다. 실제로 건장한 남자 3명가 위협하며 성추행을 하고 '조센진'이라는 말로 모욕을 주고 간다. 그 수치와 모욕감에 마음이 무너지지만 지니는 그대로 주저앉지 않는다.

그녀는 혁명가이다. 작고 연약하지만 그녀는 두 발로 굳게 서서 세상에 맞선다. 그녀는 사진 액자 둘을 떼어내어 바깥으로 던져 버리고 선언을 담은 전단지를 뿌린다.

정말로 아이들을 지키고 싶다면, 평화를 위해 싸우길 두려워하는 민족이 돼선 안 된다. 그건 우리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 어느 누가 우릴 믿어주겠는가. 일본에 사는 우리는 반항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주변에 떠밀려 사는 인간이 돼서는 안 된다. 목소리를 내는 일, 행동하는 일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돼서는 안 된다. 학생들이여, 이 상황을 외면하지 말고 당당히 맞서자! ... 초상화 하나 떼어낸다고 뭐가 달라져.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분명히 말하겠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것은 최초의 걸음에 불과하다. 함께 떨쳐 일어나자. 누군가의 정의가 아닌 나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137~139쪽)

그러나, 혁명의 결과는 참담하다. 그녀는 정신병원에 수감되었고, 가족은 무너졌다. 조선학교에서 친구가 되어 준 니나는 쇼크로 등교도 못 한다. 그녀는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몰라 북조선으로 돌아가 돌아가신 할아버지께 마음으로 편지를 보낸다.

이렇게 하늘이 무너진 세상의 끝에 몰린 그녀를 홈스테이 호스트인 스테퍼니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염려하고 보듬어주고 끊임없이 대화한다. 그리고 스테퍼니의 품 안에서 오열을 터뜨리며 지니는 과거와 화해하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쪽으로 몸의 방향을 틀게 된다.

일본어를 공부하고 일본에서 1년 반을 살았으면서도 재일교포에 대한 관심조차 없었던 내 자신이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신기하다. 자이니치, 자이니치, 조센진, 조센진 하며 차별하는 말은 알고 있었고 지식적으로는 아는 면도 있었을 텐데 그들의 정체성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일본어를 한참 배울 때 어학당에 한국어를 배우러 와서 언어 교환을 했던 친구, 동생들은 일본인으로 귀화한 재일교포들이었다.

상대방이 불편해 할 수도 있는 사적인 질문은 하지 않고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나의 성향 때문에 놓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재일교포로 살아가는 것의 의미, 귀화에 이르게 된 과정, 그럼에도 차별이 있는지 등등 그땐 무식해서 혹은 무심해서 문제의식이 없었거나 껄끄러워지거나 부담 주는 게 두려워서이거나 둘 다이거나 그랬다.

작은 소녀 혁명가 지니, 다부지고 용감한 것 같지만 상처투성이의 여린 마음, 그러면서도 사춘기 소녀다운 우정과 짝사랑... 정체성의 문제와 한 인간의 성장담을 멋지게 조화시킨 책이었다. 짧아서 앉은 자리에서 두 시간이면 읽을 책이지만 읽고 나서는 마음이 참 묵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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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숨쉬는 우리의 도시,서울, 《경성에서 보낸 하루》 by 김향금 | 기본 카테고리 2018-09-04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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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경성에서 보낸 하루

김향금 저
라임 | 201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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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속성으로 한국 근대사 정리를 한 기분이다. 부끄럽게도 달달 외워서 국사 시험을 보며 지낸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근대사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했다. 푸른숲의 자회사인 라임에서 펴낸 《경성에서 보낸 하루》는 청소년 뿐만 아니라 나와 같이 한국 근대사에 갈증을 느끼는 성인에게도 강력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의 무대는 1934년 경성이다. 1904년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 1910년에 국권을 완전히 빼앗기며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나서 강산이 2, 3번은 바뀌었을 세월이 지난 후의 옛 서울인 것이다. 식민통치가 본격화되고 안정화되어 이미 일상이 되어 있을 시점. 1910년에 태어나 독립 국가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이미 20대 중반이 되어 있을 시점이다.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변절하여 친일로 전향하였고 일본은 만주를 침략하여 만주국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한반도를 병참기지화하고 있을 시점이다.

자연스럽게 근대화가 추진되지 못하고, 식민지의 피지배 국민으로 강제로 근대화를 추진당하고, 일제의 대륙 진출의 야욕으로 일제를 위한, 일제에 의한 근대화였기에 사회적 혼란은 불가피했다.

사업적 안목이 있는 자들은 시대의 흐름을 읽어 신흥부자가 되기도 했고, 일본의 토지 수탈로 인해 농업이라는 생업의 기반을 잃고 도시로 몰려 들어 새로 도시의 빈민층이 형성되기도 했다. 일확천금을 노리다 패가망신하는 자들, 태어날 때부터 식민 통치하에 있었기에 일제의 식민 통치를 당연시하는 젊은 세대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주변국 등에서 계속 무장 항쟁을 하다가 일제 경찰에 잡혀 고문을 받다가 독립을 보지 못한 채 죽어간 의사들도 있었다.

신문물에 대한 거부감과 함께 동경을 가지고 실제로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자들도 많았다. 독립에 대해 포기하며 일본의 문화를 동경하고 맹목적으로 우월한 것으로 여기기도 했다. 물론 이는 조선인이 야만스럽다는 일본의 정신 말살 정책에 기인한 면도 적지 않다. 자기부인과 자기혐오를 통해 새로운 지배계층에 편승하려 한 자들도 많았다. "한국 사람은 이래서 안 돼."라고 스스로를 비하하는 언행은 지금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어서 일제 식민 통치의 후유증인가 하는 아리고 쓰린 마음도 들었다.

이 책의 주요 무대는 현재 서울 강북 일대이다. 내가 평생을 익숙하게 지냈고 지금도 가장 마음이 편안한 곳들이다. 이 책에는 매우 충실한 이미지 자료들을 싣고 있는데 책 중간 중간에 나오는 지도들, 당시 건물들의 사진들을 보면 머릿속에 현재의 그 거리들의 모습이 지도의 길을 따라 그려진다. 내 속에서 역사가 살아 숨을 쉬는 기분이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광화문 복건 작업, 그리고 창경궁에서 종묘로, 종묘에서 창경궁으로 뚫린 다리를 지나다니면서도 알지 못했는데 원래 연결되었던 창경궁, 창덕궁, 종묘를 일제가 일부러 끊어 도로를 놓았다는 것, 그리고 늘 걷고 싶은 거리인 정동 거리가 외교의 메카였던 것, 독립 투사들이 서슬 퍼런 고문을 당하며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죽어갔던 서대문 형무소의 모습 등 한 곳 한 곳 눈과 마음으로 짚어갈 수 있었다.

너무나 흥미로웠던 것은 쇼생크 탈출에 버금가는 혁명가 이재유의 서대문 형무소 탈출 사건이다. 그는 경성 트로이카라는 지하 혁명 조직을 이끌며 저항 운동을 펼쳤었다. 남, 북한 양쪽에서 독립 유공자로 지정된 호걸이었다. 이 분에 대한 책들을 더 찾아 읽어봐야겠다. TV를 거의 안 보기 때문에 본 적은 없지만 몇 년 전 크게 인기와 공감을 얻었던 '각시탈'이 생각나기도 했다.

이 책의 뒤에 실려 있는 참고 문헌은 정말로 근대사의 보물 창고 같은 존재이다. 한 장르의 독서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뒷부분 참고 문헌을 따라서 심화하여 읽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대학원 때 교수님 연구 조교를 했었는데 저널의 아티클을 읽으시고 참고문헌에서 몇 편을 찾아오라고 하시면 그 자료를 찾아 이 대학, 저 대학 도서관에 발품을 팔기도 했다. 그때 이미 전자 데이타베이스가 구축되어 출력을 하면 되는 것도 있었지만 우리 학교에서 구할 수 없는 저널들이 있었다. 그러면서 참고문헌의 중요성을 배웠던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키워드로 해당 부분을 찾아가 읽을 수 있는 인덱스가 없다는 점이다. 읽고 나서 사람의 기억력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사건과 사건, 맥락과 맥락이 매끄럽게 연결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때 떠오르는 키워드들을 단서로 그 부분을 찾아가 읽어가며 내용을 더욱 온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인덱스가 있으면 매우 도움이 될 것 같다.

단기 속성으로 그러나 결고 얕지 않는 근대사 공부 이제라도 시작하실 분들께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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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사회와 인간 본성의 민낯, 《은수의 레퀴엠》 by 나카야마 시치리 | 기본 카테고리 2018-09-0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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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은수의 레퀴엠

나카야마 시치리 저/이연승 역
블루홀6 | 201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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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 때 살인 및 시체 훼손으로 의료소년원에 수감됐으나 죽기 살기로 공부하여 변호사가 된 미코시바 레이지. 의료소년원에서 그를 감화시켜 오늘의 그가 있게 해준 지도 교관 이나미가 살인자로 피고인이 되어 나타난다. 속죄를 위해 죽게 해달라는 피고인 이나미와 어떻게든 구하려는 변호인 미코시바의 합이 안 맞는 동행이 시작된다.

강렬한 초반부. 뉴스 기사에서 많이 본 듯 기시감으로 시작한다.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한국적 선박의 침몰 사고... 251명의 사망자 발생. 서술된 사고의 요소들이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사건을 쏙 빼닮았다. 소설로 구성한 세월호 사건을 보는 듯한 느낌에 흠칫 놀랐다.

이 작품은 일본 현지에서 고단샤의 문예지 메피스토 2014년 vol.2부터 2015년 vol.1에 실렸던 것을 2016년 3월 16일에 단행본으로 발간한 것이다. 메피스토 2014년 vol.2의 발간일을 검색해 보니 2014년 8월 7일. 세월호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의식하고 쓴 것이 분명한 것 같다. 그 사건 자체보다는 그것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인물을 뽑아내기 위해 사용한 부분이었지만 내겐 강렬하고 씁쓸했다.

이번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의 배경은 특별 노인 요양원이다. 인생의 마지막을 의탁하는 병든 노인들, 그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들, 학대와 공포, 속죄와 구원의 이야기이다.

사회파 작가인만큼 고령사회 일본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고령자의 삶에 무척 관심이 많기 때문에 원서들을 찾아서 읽는 편인데 노인요양시설의 상주 의사가 쓴 책, 재택의료의가 쓴 책 모두 노인 요양시설의 모습을 천국처럼 그리고 있어서 설마 그럴까, 하고 내심 의구심을 품고 있었던 면이 있었다. 그런 시설도 있겠지만 반면 나카야마 작가가 그린 지옥 같은 시설도 다수 존재할 것이다.

요코는 지극히 일반적인 윤리관을 지닌 여성이다. 그녀의 윤리관에서 보면 보호사가 휘두르는 폭력이 그야말로 잔인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제삼자의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다분히 무책임한 윤리관이기도 하다. 시설 내 학대를 없애려면 요양 보호 제도 자체를 재검토해야 할 뿐 아니라 시설 확충, 노동자 임금 인상, 최종적으로는 가족 제도 자체에 메스를 갖다 대야 힐다. 그토록 시간과 비용, 수고가 드는 개혁을 누가 도맡아 한다는 말인가. 적어도 현상을 겉에서만 보고 비난하는 이는 자신의 손을 더럽힐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는 경우가 많다. (254쪽)

정말 생각할 거리를 주는 작가님의 묘수이다. 바로 곁에서 고령자를 돌보는 것을 보지 않은 사람은 위와 같이 반응할 수 있다. 그러나 본인이 혹은 곁에서 간병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그래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전제하에 학대자에게 심적으로 동조하게 되는 서글픈 현실을 부인할 수 없다.

'시체 배달부'라 불렸던 소년범 미코시바에게 살아서 속죄하라고 했던 스승 이나미는 정작 자신은 죽음으로 속죄하겠다 한다. 사건을 규명하기 위해 피고인과 피해자의 가족들을 파헤치며 조사를 하는 미코시바는 사건의 배후에 있는 진상들을 하나하나 알아간다. 조직의 논리보다 개인의 신념을 중시한 한 마리 외로운 늑대와도 같았던 이나미의 순교자적 인생에 경의를 표한다.

미코시바가 이나미에게 입은 은혜와 이 사건의 피해자이지만 악인이었던 도치노에의 복수가 한 곡의 장엄한 진혼곡 (레퀴엠)처럼 펼쳐지는 아름답고 슬픈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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