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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찬 컨텐츠, 찰진 설명, 『미국 영어 문화 수업』 by 김아영 | 기본 카테고리 2019-10-3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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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미국 영어 문화 수업

김아영 저
사람in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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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글을 쓴다면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을 만났습니다. 장르를 굳이 구분하자면 '어학 에세이'랄까요? 이런 장르가 있는지는 모르지만요. 어학, 언어, 문화를 주제로 하는 에세이라고 정의를 내려보죠.

이전에도 김아영 저자님이 쓰신 『조금은 특별한 미국 보통 사람들의 영어』를 공부하며 제 스타일과 맞다고 느꼈었던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영어와 미국 문화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밝히신 에세이인 것 같아서 꼭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읽었던 어떤 에세이보다 저에게 깊이 다가왔습니다. 아마도 깨작거리는 수준이나마 영어를 공부해 왔고 1년도 안 되는 기간이지만 20년 전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생활해 봤고 저자님이 몸담고 계신 분야인 '외국인을 위한 영어 교수법(TESOL, TEFL)'을 단기과정으로나마 경험해 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책 속에서 저자님이 '이론'과 '경험'에 충실한 학습의 중요성에 관하여 역설하셨는데 이 책 역시 어학에 관한 다양한 이론과 함께 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경험 및 사례들을 제시해 주셔서 이보다 더 흥미로울 수 없었습니다.

Shared knowledge, shared views, shared patterns의 중요성

고지식할 만큼의 정직성의 상징 George Washington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한석봉과 어머니의 어둠 속의 배틀의 예시를 통해 한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지식, 가치관, 행동양식의 중요성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왕왕 이것들은 미국인 특유의 빈정댐(sarcasm)과 함께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좀 오래된 미드이긴 하지만 "길모어 걸스"를 예전에 봤었는데 유난히 sarcasm과 함께 무슨 말인지 모를 유머가 많이 나왔습니다. 일일이 찾아보니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둔 유머였지요. 그래서 꽤 어렵게 느껴지는 드라마로 기억됩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지요. 고유명사를 활용하여 sarcasm을 구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찾아보기는 귀찮지만 그렇게 하나하나 쌓이면 엄청난 저력이 되지요. 요즘은 정말 어학 공부하기 좋은 것 같습니다. 수많은 미국드라마와 뉴스, 원서가 있기 때문에 자기 노력 여하에 따라서 현지에 있는 것보다 더 콤팩트하게 많은 언어 지식을 습득할 수가 있습니다. 현지에 가서 나태하게 임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요. 물론 아는 만큼 보인다고 사전 학습을 충분히 하고 현지에 가서 현지인과 접하고 문화를 접할 수 있다면 그게 제일이겠지만요.


고맥락 문화와 저맥락 문화

명확한 언어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저맥락 문화, 말뿐만이 아닌 다른 요소들이 작용하는 것이 고맥락 문화입니다. 미국 등 서양권이 저맥락 문화라면 우리나라, 또 대표적으로 일본이 고맥락 문화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인들이 음험하며 겉과 속이 다르다고 얘기하시는 부분이 아마 고맥락 문화와 관련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일본에서 "그건 좀......"하고 말을 흐리거나 "생각해 보겠습니다......" 정도라면 거의 거절의 의미로 보면 됩니다. 이런 부분은 그 사회를 이해하기 전에는 좀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지요. 개인적으로는 저맥락 문화가 맞고 편안합니다. 뭔가를 막 마음에 품고 언어로는 명확히 얘기하지 않는 사람은 피곤합니다. 일본어에 察し(헤아림, 짐작)이라는 말이 있는데 상대방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찰떡같이 센스 있게 헤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글로벌 시대이니까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이런 반대가 되는 맥락의 문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어느 문화권에 가더라도 무난히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면 스트레스를 덜 받고 일도 원활히 인간관계도 풍성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술문법과 규범문법

기술문법은 표준어뿐만 아니라 사투리 등 많은 사람이 쓰는 문법을 인정하는 것이고 규범문법은 표준적인 문법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는 제가 언어를 구사할 때는 규범문법의 자세를, 타인의 언어를 이해할 때는 기술문법의 관점을 가집니다. 한국외대에서 TESOL 단기과정을 이수한 적이 있는데 외국인 교수님 중 한 분이 영어를 전 세계에서 쓰다 보니 원칙이 무너지는 영어가 정착되는 경우도 생길 것 같다면서 예로 '비교급'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1음절 등의 짧은 형용사는 뒤에 -er를 붙여서 비교급을 만들지요. cheap-cheaper 이런 식으로요. 좀 긴 형용사의 경우는 단어 앞에 more를 붙이지요. more expensive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형용사의 길이에 상관없이 more를 붙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서 몇 십 년이 지나면 -er 형태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실 그게 저도 편하고 저도 모르게 more를 붙여 말을 하다가 수정하기도 합니다. 이건 전형적인 기술문법에 해당되겠지요. 그리고 책에서 보면 어린이들이나 저학력층의 대화문에 There's not nothing.이라는 문장을 드물지 않게 접한다. nothing만 쓰거나 not anything이라고 써야 한다고 배웠지만 실제 말하다 보면 그렇게 말하는 경우도 있는 거지요. 언어를 사용할 때 되도록 본연의 문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투리, 방언 등 독특하고 풍부한 언어의 형태들 역시 지켜주면 좋겠습니다.


미국 사회의 이슈들에 대한 관점

궁금하지만 정확히 몰랐던 이슈들에 관해 미국 시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찬반으로 실어주셔서 그들의 생각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신혼 때 남편이 어학연수를 하고 싶다고 하여 시애틀에 몇 달 체류한 적이 있는데 얼마 전 뉴스에서 바로 그 학교 앞, 횡단보도 앞에서 총기 사고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매일같이 지나다니던 길에서 그런 참사가 일어나다니 일상을 위협하는 총기를 왜 엄격히 규제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총기 옹호단체의 로비가 대단한가, 영토가 넓어서 경찰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벽지의 주민들의 자기방어를 위해서인가 생각해봤습니다. 그 이유들도 있긴 하지만 총기를 소유할 '자유'의 관점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북미지만 미국인과 캐나다인의 관점 역시 달랐습니다. 이외에도 낙태, 백인 극빈층 문제, 장애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본 마인드 등 미국사회에 관한 담론이 생생한 인터뷰 내용과 함께 제시되어 신선했습니다.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몰랐던 내용들이었기 때문입니다.

*

언어를 배우고 책을 읽고 소통을 하는 것은 제 인생의 가장 큰 재미인데 참 근사한 책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끝이 없는 배움의 길을 오늘도 가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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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과 아이가 함께 보는 한국사 입문, 《구해줘 카카오프렌즈 한국사 2》 by 최태성/조윤호 | 기본 카테고리 2019-10-28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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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구해줘 카카오프렌즈 한국사 2

최태성,조윤호 글/도니패밀리 그림
메가스터디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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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프렌즈와 함께하는 국사 공부 길잡이 책이다.

 

2권으로 한국사의 주요 장면을 풀어나가서 국사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워밍업 단계로 그만이겠다 싶어 1권을 구입하여 초2 아들에게 주니 이틀만에 독파하고 나에게도 차례가 왔다.

 

 

각 챕터의 도입부에 책에서 다루는 핵심 사건들을 시간 순서로 질문으로 실어서 호기심을 유도한다. 

 

 

알기 쉽게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그림과 설명으로 이해가 쉽다. 물론 나처럼 20여년 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국사와 담 쌓은 독자에게도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한 질문에 대한 그림과 설명 후, 글로 차분히 정리해 준다. 어떤 사건 및 인물에 대해 공과, 장단점, 이슈 및 특이사항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니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예전에 시험만을 목표로 맥락과 인과관계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달달 외웠던 때와 달리, 이야기로 풀어내니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한 사람의 인생과 역사 속 사건들이 모두 살아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흐름 속에서 파악이 돼야 하는데 그게 내겐 힘들었던 것 같다.

 

 

정말 내가 얼마나 무식한지 깨닫게 된 것도 이 책을 읽은 수확 중 하나이다. 김구 선생의 호인 백범이 민족 정기를 상징하는 '흰 호랑이'인 줄 혼자 멋대로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천한 신분인 백정의 '백'과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의 범부에서 '범'을 따 지은 것이었다. 정말 자신의 무식함에 탄식이 절로 나오지만 이제라도 공부를 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도 재미있게 읽으며 역사의 기본을 다질 수 있는 국사 입문서로 추천한다. 역사를 알아야 진정한 미래지형형 인재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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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지키는 사람들이 되길, 《숲짱 할아버지와 자작나무 친구들》 by 이용직 글/유유 그림 | 기본 카테고리 2019-10-28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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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숲짱 할아버지와 자작나무 친구들

이용직 글/유유 그림
들메나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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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나무들과 달리, 나무껍질이 흰색의 자작나무는 무척 신비롭고 특별해 보여서 좋아한다. 16년 전인가, 홋카이도에 여행 갔을 때 갔던 통나무로 만든 치즈 공방 옆의 자작나무 숲이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난다. 마치 빨강머리 앤과 다이아나가 우정의 서약을 맺었던 숲이 꼭 이렇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공상 속에 잠겼었다.

강원도에 자작나무 숲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은 그 자작나무 숲의 자작나무 3총사 (자작이, 작희, 작비)와 숲을 지켜온 나무의사 할아버지와의 잔잔한 대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시기라도 특별한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자작나무 숲인데 기억해야 할 것은 누군가가 심고 가꾸었기에 숲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우리나라가 영국, 독일, 뉴질랜드와 함께 전 세계 4대 산림녹화 성공국가로 꼽히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일하게 민둥산에서 조림(造林)에 성공한 나라라는 기사를 읽었던 적이 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삽화와 함께 어른도 몰랐던 나무들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려준다. 자작나무 원산지가 러시아 및 북유럽이지만 1974년 조림을 시작했을 당시 러시아와의 국교가 체결되어 있지 않아 홋카이도에서 자작나무를 들여와 수많은 주민들이 묘목을 이고 지고 날라가며 한 그루 한 그루 심었다. 무려 70만 그루의 나무이다. 한 그루 한 그루 얼마나 아끼는 마음으로 심었을지 마음이 찡하다. 그리고 소중하게 가꾸어 하늘을 향해 건강하게 쭉쭉 뻗은 오늘의 숲이 조성되었다. 2012년에 일반에 공개되어 매년 2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그렇게 소중하게 가꿔왔는데 산불의 위험, 병충해의 위험, 나무를 함부로 다루는 사람들의 위험 등 수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한다. 특히, 이 책에서 자작나무 숲과 함께 다루고 있는 소나무들에 치명적이고 치료제가 없는 소나무재선충병은 얼핏 들어보기만 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자세히 알게 되니 저절로 걱정이 되었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사랑하는 대상을 찬찬히 관찰하고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 그게 관심이고 사랑인 것이다. 나는 나무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뇌리에 남아있는 나무가 몇 그루 있을 정도로 어느 곳에 가든 나무들을 살피고 늘 바라보며 흐뭇해 한다. 대학 캠퍼스 신과대 앞에 있던 아름다운 느티나무, 도쿄 다이칸야마에 있었던 화려한 여왕 같았던 능수 벚나무, 기숙사 가는 길에 있었던 매혹적인 향의 금목서 등등... 그러면서도 나무에 대해 알려는 노력은 한 적이 없었다. 이름 정도는 검색해 보고 기억해 두려고 노력했지만 나무의 특성, 위험,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무심했던 것 같다.

아이와 함께 보려고 실은 학습적인 목적으로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오히려 내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 아이와 함께 공부하고 아이들 걸음으로는 좀 힘들다지만 둘째가 좀 더 크면 인제 원대리에 있는 자작나무 숲에 찾아가 숲 속 산보를 경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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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잔혹한 진실, 《침묵에 갇힌 소년》 by 로이스 로리 | 기본 카테고리 2019-10-28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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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침묵에 갇힌 소년

로이스 로리 저/최지현 역
f(에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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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이랄까, 까다롭달까, 기준이 높달까? 무엇에든 절대적인 충성이 없는 편인 나에게 인생 작가가 있다. 원어의 느낌대로 책을 읽고 싶다는 욕심이 외국어 공부의 원동력이 되었고 모국어만큼의 완벽한 이해는 아닐지라도 영어와 일어 원서를 읽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작품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내 인생의 기쁨이고 보람인 것 같다. 그 와중에 현재로서는 딱 한 분 인생 작가는 바로 로이스 로리 작가님이시다. 하와이 출신의 아동/청소년 문학가인 그녀는 영미권 아동문학의 최고의 명예인 뉴베리상을 두 번 수상한 작가이다.



모든 책을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충격과 감동을 주었다. 이번에 읽은 책 《침묵에 갇힌 소년》은 타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 것으로 아는데 이번에 새로 단장하고 개정판이 나온 것 같다. 원서는 《The Silent Boy》로 2003년에 출간되었다.



이야기는 1987년 이제 노년의 은퇴한 의사인 캐이티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191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할머니가 어린 소녀 캐이티였을 때의 가족과 이웃들의 이야기, 말을 하지 않는 소년 제이콥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이어진다. 캐이티는 사랑이 많은 부모님과 유복하고 안온한 가정 환경 속에서 건전하고 영특하고 따뜻한 시선을 가진 소녀이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그랬듯이, 캐이티의 아버지는 진료소에서도 환자를 돌보지만 24시간 환자가 필요로 할 때면 왕진도 하는 양식 있는 의사이다.



캐이티의 이웃들도 참 유별나지만 따뜻한 사람들이다. 새로운 신문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옆집 비숍 씨, 그런 남편을 못말린다고 생각하면서도 웃음으로 넘기는 비숍 씨 부인, 캐이티의 소꿉친구인 비숍 씨의 작은 아들... 캐이티의 엄마의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시골 농장에서 페기라는 소녀가 가정을 돌봐주기 위해 '가정부'로 캐이티의 집으로 온다. 페기의 언니 넬은 옆집 비숍 씨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 이 둘은 자매이면서도 무척이나 성격이 다르다. 일은 야무지게 잘하지만 화려하고 허영심 가득하며 늘 뉴욕을 동경하는 넬과 달리, 페기는 수줍음 많으면서도 믿음직하고 충실하다. 캐이티와 친 자매처럼 지내고 캐이티의 부모님도 페기를 무척 아낀다. 페기의 집은 시골 농장인데 가난 때문에 넬과 페기가 집을 떠나 일을 한다. 페기에게는 자폐아(로 판단되는) 남동생 제이콥이 있다. 제이콥은 여러 가지 소리를 그대로 흉내를 잘 낸다. 캐이티는 아무 말이 없지만 제이콥이 좋다. 제이콥은 밤중에 캐이티네 집 마구간에 와서 말들을 어루만지다가 돌아가곤 한다. 6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걸어와서 말들을 어루만지다 돌아간다. 캐이티는 굳이 아빠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는 않는다.



여러 가지 그림 같이 평온한 일상의 풍경들이 그려지지만 실은 불온한 시대였다. 제 1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세계는 불안한 정세 속에 흘러가고 있었고 경제 대공황 이 전의 불안한 사회 변화들, 그 가운데서 화려한 뉴욕의 무대를 동경하지만 가난한 식모에 불과한 넬의 동경과 허영... 그런 넬을 이용하기만 하는 비숍 씨의 장남 폴의 불장난...



작중에서 그려지는 여러 이야기들이 하나의 결론을 향해가는 복선이라는 것을 다 읽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다. 성미가 급한 독자인 나는 사건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책을 선호하는 편이다 보니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인물들의 이야기가 느릿느릿 풍경처럼 그려지나 했다. 뭔가 불행한 사건이 그려질 듯한데, 그런 그림자가 계속 드리워지는데 폭풍 전야 같은 어두운 평온함이 계속되는 것일까 하며 읽어갔다. 아니다다를까, 마지막 부분에서 작가의 저력이 여실히 발휘된다. 갑자기 다가온 거대한 소용돌이, 마지막 몇 장 속에서 여태까지의 풍경들이 하나하나의 퍼즐조각으로 연결되며 온전한 그림으로 연결되었을 때, 난 통곡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무도 없는 곳이었다면 땅을 치며 울었을 것이다.



너무나 애절하고 잔혹하지만 아름다운 진실이었다. 사건의 끝은 비극이었지만 제이콥의 진심, 그것을 알아차린 유일한 사람 캐이티... 사건 이후의 제이콥의 행방은 아무도 모르지만 아마도 불행이었을 것이다. 말을 하는 사람이 깨닫지 못하는 침묵에 갇힌 소년의 비밀... 어찌할 힘도 없는 캐이티...



로이스 로리 작가는 급성 백혈병으로 언니를 잃은 경험이 있고 또 아들은 먼저 보낸 경험이 있다. 그 경험들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그녀의 작품에 충격적이면서도 중요한 진실을 말해주는 듯하다. 자전적 소설 《A summer to Die (그 여름의 끝)》에서는 출산을 앞둔 젊은 부부가 갓난아이가 만일 잘못되었을 때 무덤자리까지 예비해 두었던 부분에서 난 울었었다. 우리 큰아이가 태어날 때 그럴 수 있었기에 그 마음을 알기에 그 각오를 알기에 울었다. 또 《The Giver (기억 전달자)》 4부작 중 4번째 작품인 《Son (태양의 아들)》에서 그려진 히로인의 모성은 남다른 것이었다.



이 책에서도 제이콥이라는 14세 소년의 모습에 한없는 애정과 연민이 따뜻하고도 아프게 그려져 있다. 원서의 표지 그리고 역서의 마지막 장에 들어가 있는 사진은 책 속에서 그려진 제이콥 그 자체였다.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통곡을 부르는 책이지만 또 한 권의 소중한 로이스 로리 작가님의 작품으로 내 맘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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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다 울다 찡하다, 《할매가 돌아왔다》 by 김범 | 기본 카테고리 2019-10-28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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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할매가 돌아왔다

김범 저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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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보통이 아닌 책을 만났다. 띠지에 "10초마다 빵빵 터지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지?"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런 책일수록 실망이 클 수 있어서 각오를 단단히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 대단했다. 초판 발행이 2012년 7쇄까지 발행되었으니 요즘같은 출판 시장에서 쾌거였다. 이번에 새로이 단장하고 개정판이 나왔다. 인디언 핑크의 센스 넘치는 할매 일러스트를 입은 표지는 그야말로 취향저격이었다.


여느 미스터리물 이상의 흥미진진한 흡인력이 있을 뿐더러 시대를 조금 앞서 태어난 페미니즘 소설로 손색이 없다. 2016년 10월에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그간 조금씩 불씨를 지피던 페미니즘 문학의 불길이 확 치솟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로부터 3년 정도 전에 출간되었으니 시대를 앞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문학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은 없지만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정말 잘 설계된 것 같다. 어느 누구 하나 낭비된 캐릭터 없이 독특하고 고유한 캐릭터대로 자기가 있을 곳에서 자기 몫을 톡톡히 해낸다. 처음부터 60억의 진위에 대한 호기심으로 쭉쭉 빨려들어갔다가 결국에는 그에 해당하는 답은 주지 않고 끝낸 불친절(?ㅋㅋ)은 있었지만 그게 오히려 매력이었고 모든 것이 아름답게 정리된 후련함까지 주었으니 아름답고 완벽한 완결인 것이다.


이 책은 '찌질이' 최동석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정말 찌질하고 찌질하다. 세상 이렇게 비호감 캐릭터가 있을까 싶어 책을 덮고 싶어졌다. 그러나 곧 충격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는 할머니. 그 할머니의 등장에 따라 데면데면했던 친척들의 구도가 엎치락뒤치락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가문의 수치, 민족의 배신자로 떠났던 할머니가 60억을 들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돈 앞에서 민낯을 드러내는 각 사람들... 600억처럼 터무니없지도 않고 6억처럼 어딘가 아쉬운 금액도 아닌, 중산층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딱 그만한 금액 60억 앞에서 사람들의 마음은 팔랑팔랑한다. 각자 자기 몫의 유산으로 뭘 할까, 공상 혹은 망상의 나래를 맘껏 펼친다.


장손이라는 이유로 1억 정도를 미리 얻어낼 기회를 얻은 동석은 PC방을 하겠다고 설레발치고 있고 이혼한 여동생 동주는 그 틈을 타 한몫 잡아보려고 온갖 머리를 굴린다.


동석의 엄마, 고모, 여동생으로 이루어진 여성탐정단(?)은 정끝순 할머니의 과거에 관한 조사를 펼치고, 정치자금이 늘 부족한 이상만 높은 한물 간 진보 정치인인 아버지는 어떻게 한몫 얻어볼까 눈치작전 및 연기를 펼치고 평생 고상했던 할아버지는 있는 욕 없는 욕 입에 담으며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식구들을 당황케 한다.


이야기는 60억을 둘러싼 유산 상속 소동과 함께 동석이 사랑했던 여인, 사회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낙오자로 거의 확정되자, 그를 배신하고 잘나가는 친구 상우와 결혼해버린 현애를 못 잊고 연연하는 동석의 개인사가 날실과 씨실처럼 이루어진다.


모두들 자기 이익에 눈에 불을 켠다. 물론 동석 역시 그렇긴 하지만 할머니와 우연히 같은 방을 쓰게 되며 할머니와 정이 들고 연민을 갖게 된다. 그리고 동석이 우연히 발견했던 종이접기의 재능이 할머니에게로부터 온 것을 알게 되어 둘은 평온하게 종이를 접고 또 접으며 마음이 연결되는 유대의 시간을 갖게 된다.


이윽고 할머니의 과거가 할머니 자신의 입으로 밝혀진다. 그녀는 그 누구도 배신하지 않았었다. 자신을 믿지 않은 남편으로부터 버림 받았고 시대가 그랬기 때문에 시대의 희생자가 되었던 어리고 연약한 여성이었다. 울며 떠나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기고 억세게 살았고 이렇게 강인한 여성이 되어 나타났다.


이 책을 읽으며 얼마 전 스스로 생을 마감한 설리 씨가 생각났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TV를 보지도 않고 연예인에는 관심도 없어 그 핫한 BTS가 몇 명인지도 모르는 나지만 눈에 띄는 언행으로 인터넷에 뜨고 인구에 회자되는 아름다운 20대 연예인 설리 씨는 우연히 자주 접했고 볼 때마다 예쁘다고 생각했다. 남들과는 다를지 모르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악플이 많다고 들었는데 왠지 그런 거 개의치 말고 억세게 살아보라고 마음 속으로 응원했었다. 갑자기 들려온 비보에 울고 싶었다. 채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가 톡 꺾여버린 듯한 분함조차 들었다. 정끝순 여사, 억세게 살아온 일명 제니 할머니를 보며 왜 그녀를 떠올렸을까? 아무리 더럽고 거칠어도 살아보지 그랬냐고, 정끝순 할머니처럼 모든 게 풀리고 좋은 날도 오지 않았겠냐고 외치고 싶었다.


그리고 정끝순 여사의 인생 역정 못지 않게 동석의 고모, 엄마, 여동생의 인생도 서럽고 억세고 찬란하다. 그들의 인생을 무한 응원하고 눈물겹게 그들이 애틋하고 자랑스러웠다. 세대를 달리 하는 그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분투하며 명분과 체면만을 내세우는 남자들로 인해 똥밭에 구르며 가정의 경제를 책임져왔다.


정끝순 여사와 최씨 가문의 강해서 아름다운 여성들을 끝까지 응원한다. 그리고 인과응보랄까, 찌질이 동석을 둘러싼 관계들도 최선의 방향으로 끝맺어진다. 찌질이 동석의 눈물은 가치있는 것이었다.


앞으로 챙겨서 볼 국내 작가가 생겨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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