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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관성 속에 묻힌 악의 존재,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by 로세라 포스토리노 | 기본 카테고리 2019-12-24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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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로셀라 포스토리노 저/김지우 역
문예출판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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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자체로서는 무척 유려하고 섬세하고 빼어난 작품인데 그리 맘 편히 읽을 수 없었던 책이었다. 의자 등에 기대어 보기보다는 의자 끝에 걸터앉아 미간을 찌푸리며 집중해서 읽어야 했던 것 같다.

 

 

마고 뵐크라는 여성이 95세까지 숨기고 지냈다가 비밀을 털어놓은 실화를 기반으로 문학으로 완성시킨 책이다. 리얼리티가 주는 강력한 힘이 대단했다. 전쟁 가해자였던 독일의 여성의 관점으로 그 당시의 상황과 사람들의 생각과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인 동시에 사람이 태어나 먹고 살며 웃고 울며, 배신하고 배신당하는 사람의 소박한 일상의 모습이 함께 담겨져 있다는 것이 이 책이 이토록 어필한 이유인 것 같다. 46개국 출간 및 50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이탈리아 8개 주요 문학상 수상작품이며 크리스티 코멘치니 감독의 영화제작이 결정되었다.

 

 

로자라는 여성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베를린에서 나고 자란 로자는 포탄으로 인해 어머니를 잃고 결혼한 지 1년만에 남편은 나라에 충성한다며 전장으로 향했다. 더 이상 베를린에 있을 이유가 없어져 남편 그레고어의 집으로 간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히틀러의 시식가가 된다. 10여명의 여성들과 함께 히틀러가 먹을 음식을 미리 먹고 1시간 동안 음식에 독이 들어있는지 여부를 몸으로 증명해내는 것이다. 생사가 왔다갔다 하지만 이들은 일반인들보다 높은 시급을 받는다. 본인이 원치 않았더라도 히틀러의 안녕을 위해 일하고 있는 셈이다. 처음의 긴장은 곧 일상 속에 녹아들고 물론 음식을 대할 때마다 두려움은 있지만 전쟁통에 맛볼 수 없는 진수성찬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일상과 관성 속에서 그리고 전쟁이라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이들의 욕망과 정서적 불안은 사납게 요동친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돌아올 것이라던 로자의 남편 그레고어는 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편지만을 남기고 돌아오지 않는다. 로자는 시식가들을 관리하는 유부남 장교와 육체적 관계에 빠지게 된다. 시부모님께 언제 들킬까 하는 불안 속에서도 불장난을 이어간다. 그리고 시식가 여성들 중 묘하게 겉도는 듯하면서도 로자와 마음이 통했던 엘프리데가 숨어든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그녀는 추방당하고 그 충격으로 로자는 심한 마음의 방황을 겪게 된다. 패색이 짙어지는 상황에서 그녀는 내연의 관계에 있던 장교 치글러의 도움으로 도주하게 된다.

 

 

로자와 치글러가 사랑을 나눈 후 씁쓸하게 나누던 유대인 여성들의 검열과 무자비한 폭행과 죽음의 이야기에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누군가는 인격을 살해당하고 실제 목숨도 빼앗기는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사랑을 나눈 후에 무심히 나누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것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아마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악인 중 하나일 히틀러가 민감한 대장의 소유자였다는 것, 독살당할까 봐 신경을 곤두세웠다는 것이 왜 이렇게 가소롭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너무 인간적이어서, 나와 똑같이 살과 뼈와 피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 실감났다. 너무 익숙하지만 실제 인물로 느껴지지 않고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 같은 느낌이었는데 육체와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을 비인간적이고 무자비한 방법으로 인종청소한 사람이 고작 나같이 민감한 대장의 소유자였다는 것이 한심스럽다고나 할까?

 

 

전쟁도 악도 일상이 되고 관성이 되어 버리면 참 평범하게 인간은 살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오히려 비정상적이고 비일상적인 상황이기에 더 몸부림치며 일상을 유지하고 싶어 하고 식욕과 성욕이 소용돌이치는 것일까? 불안하고 두렵고 현실을 잊고 싶기에 욕망 속으로 도피하는 것일까?

 

 

이들이 만약 히틀러라는 악에 저항한다면 어떤 형태로 저항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을 소개하는 사람마다 언급하는 유대인 정치학자인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정말 형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히틀러를 위해 시식을 하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우리는 수많은 시간이 흐른 후 역사가 평가하는 대로 독일 나치스의 패악하고 비인도적인 행위를 비난하지만 그 시대, 그 순간을 살아가는 수많은 일반인들은 어떻게 그 시대를 살아가야 했을까?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나라면 어땠을까, 피할 수 없는 질문을 책을 읽는 내내 직면해야 했기에 괴로웠다.

 

 

참 많은 생각이 든다. 일제시대를 겪은 우리나라이기에 더 그런 것 같다. 일제 36년, 초기에 독립운동했던 투사들이 변절하고 친일로 돌아섰다고 우리는 간단하게 말하지만 36년이라는 세월은 철 모르는 4살짜리 아이가 40살이 되는 분량의 세월이다. 욕할 수 있을까? 일상이 되고 관성에 빠져들면 영원히 그렇게 굳어진다고 당연히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그렇기에 친일인사들, 독립인사들의 공과 과를 구분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것일 것이다. 역시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을 이뤄낸 우리 민족의 기상이 눈물겹도록 대단하고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시대를 읽고 살아가야 할지를 성찰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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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를 | 추천 2        
나무 더 사랑하기를 원함, 『나무 다시 보기를 권함』 by 피터 볼레벤 | 기본 카테고리 2019-12-17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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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무 다시 보기를 권함

페터 볼레벤 저/강영옥 역
더숲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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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평생 수많은 풍파를 겪는다. 바람이 수관을 채찍질하면 나무줄기가 탄탄한 구조로 만들어졌는지 검증을 받는다 섬유의 결이 일정하지 않으면 나무줄기가 구부러지거나 분지가 생긴다. 그러다가 목질이 갈라질 수 있다. 실제로 나무는 목질의 갈라짐을 느낄 수 있어서 아파한다. 통증은 절박함을 알리는 경고 신호 아닌가? 그래서 우리도 통증을 무시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이처럼 목질의 상처는 나무에게 극심한 통증일 수 있다. (71쪽)



나무가 통증을 느낀다니... 갑자기 마음이 막 아려온다. 나는 피부가 좋지 못해 겨울이면 툭하면 습진에 시달리고 그러다가 손가락과 손톱 사이의 피부가 쩍 갈라져 피가 줄줄 흘러 병원으로 달려가기를 반복한다. 그 고통이란... 피부가 갈라졌을 때 그 정도도 아픈데 나무는 목질이 갈라져 극심한 통증을 느끼다니... 책 속의 삽화를 보니 나무 줄기에 이질적으로 부풀어 오늘 부위가 있는데 이건 갈라진 적이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마치 켈로이드 피부처럼 나무껍질이 주위의 매끄러운 부분들과 달리 부풀어 있다. 게다가 나무에 철조망을 고정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아무리 만물의 영장으로서 식물과 동물을 인간의 편의에 따라 쓸 수 있다고 하지만 너무나 무자비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나무의 다양한 면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나무의 병에 관심이 많이 갔다. 인간의 병에도 관심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오며 가며 가로수나 아파트 단지 안에 심겨진 나무들을 보며 나무껍질이나 울퉁불퉁한 자국, 태풍에 기울어진 모습의 나무들, 아파트 근처에서 있었던 화재 때문에 그을은 나무들을 보면서 잘은 모르지만 뭔가 병증이 있는 것 같다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아무래도 좋지 않은 환경에 많이 노출이 되니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는 수많은 나무의 병 중에서 대표적인 것들을 소개하고 있다.



목마름, 인간의 혈액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한 수액의 흐름 중단, 축 늘어진 나무, 병충해, 화상, 폭풍, 그리고 상상도 못한 암이라는 병까지. 나무도 암에 걸린다고? 균류에 의한 암이며 인간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건강 이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고 한다. 즉 충분한 햇빛과 적합한 토양 등으로 건강했던 나무라면 웬만해선 병에 걸리지 않지만 상처가 난 부분의 균열을 통해 균류가 침입하고 그 공격을 속히 차단하지 않으면 상처가 점점 커진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겨울에 길의 결빙을 막기 위해 뿌리는 염화칼슘이 나무를 병들게 한다는 것이다. 즉 소금을 너무 많이 섭취한 셈인 것이다. 소금 대신 흙이나 잘게 부순 돌을 뿌리는 것이 좋다고 한다. 흙이나 돌은 하수구 등을 막히게 하지 않나? 문외한이라 여러 물질들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간의 편의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갈 자연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살아있는 생명이고 생명을 대하는 태도가 사회와 사람들의 수준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이 책이 나무의 특성들을 명상의 재료로 삼은 에세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은 뼛속까지 철저한 과학책이다. 그러나 에세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강력한 무기에 기반한 감동과 울림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나무들을 더 알고 더 사랑하게 되었다. 자연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철저한 자연주의자는 아니다. 나 자신이 도시를 좋아하고 그것도 사람의 손으로 인공적으로 가꿔진 자연이 공존하는 도시를 선호하기 때문에 나무에게 있어서의 최상을 주장할 자격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언제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을 대할 때나 자연을 대할 때의 '태도'이다. 그것은 존중과 경의이다. 내게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에 오히려 의식적으로 노력하고자 하는 부분이다. 사람을 존중하고 경의를 가지고 나무를 존중하고 경의를 가지고 대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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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불허전 한자와 나오키, 《한자와 나오키 3 ~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 by 이케이도 준 | 기본 카테고리 2019-12-1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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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한자와 나오키 3

이케이도 준 저/이선희 역
인플루엔셜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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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좌천을 의미하는 자회사로 파견 나간 한자와 나오키의 정의롭고 심지 굳은 활약상을 볼 수 있는 한자와 나오키 3권이다.

 

이제 한자와 나오키는 직접 실무를 진행하며 소수의 부하직원을 인솔하던 중간관리자에서 한 부서를 이끄는 부장이 되어 있다. 그리고 거품 세대의 대표으로 그의 수하에는 거품 붕괴 이후 꿈과 희망을 박탈당한 '잃어버린 세대' 청년들이 있다. 그들은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과 경멸을 숨기지 않다.

 

IT 업계의 적대적 M&A를 둘러싼 모략과 암투, 배신과 음모 속에서 정공법으로 성공적으로 자신의 정의를 관철하며 잃어버린 세대에게 믿을 수 있는 선배의 모습을 보여주는 한자와 나오키의 모습에 감동을 받음과 동시에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격인 모리야마가 회의와 불만을 초월하여 믿음직하고 정의로운 직장인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이 감격적이었다.

 

도쿄센트럴증권을 무시하며 평소에 상대도 하지 않던 IT 업계 공룡 전뇌전기집단이 웬일로 소프트웨어의 강자인 도쿄스파이럴을 적대적 인수합병하고 싶다며 주관사를 맡아달라고 한다. 그 자체도 이상하게 여기지만 곧 전략을 짜서 방문하자 도쿄센트럴증권의 모회사인 도쿄중앙은행 증권부에서 그 일을 가로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쿄스파이럴은 청년 기업가 세나 요스케가 서른 살에 창업하여 승승장구한 IT 회사이다. 그리고 사장 세나는 한자와 나오키의 부하직원 모리야마의 학창시절 동창이었다. 뉴스를 보고 연락하여 오랜만에 만나 사정을 듣고 한자와 나오키 부장과 함께 적대적 인수합병을 방어하는 전략을 짠다. 총명한 모리야마, 한자와 나오키의 리더십, 도쿄중앙은행에 남아 있는 한자와 나오키의 동기들의 협력으로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한자와 나오키는 다시 은행으로 돌아온다.

 

진정한 리더의 부재가 이 세대의 문제인 것 같다. 그래서 독자들이 한자와 나오키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모든 세대는 각기 그 세대만의 어려움을 겪어왔고 최선을 다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제상황이 달라지며 세대 간의 갈등이 생기는 것 같다.

 

나는 48년생, 53년생 즉, 베이비붐 세대보다 조금 앞선 세대 부모로 두고 제 2 베이비붐 세대보다 조금 나중인 78년에 태어나 X세대라 불렸던 세대이다. 대학 2학년 때 IMF를 겪으며 얼어붙은 취업시장을 경험했지만 그래도 정규직의 자리는 적지만 있었던 시기에 취직하여 2008년 금융위기를 겪었다. 그러면서 다양한 세대를 관찰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 통역 아르바이트를 할 때 만났던 80년대 후반 학번 아저씨께 일자리가 남아돌아 어디든 원하는 곳을 골라 갔었다는 전래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얘기를 듣기도 했고 94학번 선배들이 당장 취업 빙하기를 맞으며 달러 환율이 1800원대까지 가는 것도 목도하기도 했다. 금융회사 기획부에 있었기에 금리 추이를 보며 97년 IMF 시절 금리가 10%가 넘는 것을 보며 내 눈을 의심하기도 했다.

 

요즘 청년들의 좌절감을 직접 겪지는 못했지만 사상 최고의 스펙이라는데 사상 최악의 취업난을 겪는 것을 무척 안타깝게 생각한다. 세대 간의 갈등이 너무나 속상하다. 서로 공감능력을 조금만 발휘해 주면 좋겠다. 쉽지는 않다. 자기가 겪은 것을 초월하여 생각하기 힘든 것이 인간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당장 우리 아빠만 해도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이직을 고민하던 남편에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렇게 살아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그러다가 정말 죽는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과로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분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무시한 채 개인의 노력만을 강조하는 기성 세대를 꼰대라고 말하는 밀레니얼 세대도 이해한다. 그러나 그 꼰대들이 죽을 둥 살 둥하며 밤낮으로 일하며 그들을 키워낸 부모들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될 것 같다.

 

아쉽게도 한자와 나오키 같은 리더는 보지 못했다. 아마 그렇게 드물기 때문에 책의 주인공이 되는 것일 것이고 독자가 열광하는 것일 것이다. 직장인은 아닐지라도 한자와 나오키 같은 좋은 리더들이 많은 사회, 그리고 모리야마처럼 좌절스러운 상황 속에서 성장하고 배워가는 팔로워들이 많은 사회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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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예술은 연결된다, 『그림으로 읽는 아리아』 by 손수연 | 기본 카테고리 2019-12-10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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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림으로 읽는 아리아

손수연 저
북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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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와 음악 평론가인 저자가 오페라에 나오는 23곡의 아리아와 각 아리아를 표현한 혹은 각 아리아에서 연상되는 그림을 연결하여 적은 글 모음집이다. 성악 전공자이자 문학 박사라서 그런지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은 것은 물론 글로 풀어낸 솜씨가 그야말로 예술이다.

 

오페라의 내용은 물론, 오페라가 작곡된 시대적 배경, 오페라의 대략적인 내용, 오페라에 함축된 풍자와 시대 비판까지 풍부한 지식이 담겨 있다. 그리고 저자가 제시한 그림을 보면 아리아와 절묘하게 조화가 되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피아노, 바이올린 등이 사용된 기악곡과 협주곡, 혹은 교향곡이 가깝게 느껴지는 바면, 오페라는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거리감이 꽤 느껴지는 음악의 장르인데, 각 오페라를 대표하는 아리아들은 이곳저곳에서 일부분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라 트라비아타>의 <축배의 노래>처럼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곳들도 있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한 장면에 삽입된 '편지의 이중창'은 모짜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아리아이다. 정확한 음은 생각나지 않았으나 유튜브를 찾아서 <쇼생크 탈출>의 그 장면을 보니 분명히 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드물게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나비 부인>의 정확한 내용을 알고 경악했다. <나비 부인>의 무대를 관광지로 삼기도 하고 일본인들이 꽤 자랑스러워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내용을 알고 나니 분노가 치밀 지경이었다. 물론 몇백 년 전 작품을 지금의 시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순애보로 포장된 삼류 드라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의식하지도 않았지만 모르는 것투성이인 것 같다. 오페라의 제목 정도를 들어본 적만 있을 뿐, 내용은 전혀 몰랐다. 익숙하다고 해서 아는 것이 아닌데 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책에 소개된 아리아들은 거의 유튜브에서 찾아 들어봤는데 오페라 전체를 찾아서 한번 봐야겠다. 보면 더 관심이 생기고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오페라는 드라마와 음악의 결합인 동시에 부용, 무대미술, 의상 등을 포함한 당대 예술의 총체다. 오페라를 보다 보면 음악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시가 들리고, 무용이 보이고, 미술이 보인다. 다양한 예술이 공존하는 오페라는 하나의 장르로 규정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빛깔을 지닌 무대예술이다."(4쪽)

 

바로 이러한 이유로 뮤지컬을 좋아하는데 앞으로 오페라에도 반하게 되고 뮤지컬 배우 중 좋아하는 배우가 있는 것처럼 오페라 가수 중에도 좋아하는 성악가가 생길지 모르겠다. 아니, 이미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유지태 씨가 열연한 영화 <더 테너 리리코 스핀코>의 주인공 배재철 성악가이다. 최고의 테너에게 주어지는 찬사 '리리코 스핀코'라고 불렸지만 세계적인 가수로 도약하려던 30대 초반, 성대암으로 인해 목소리의 기능을 잃고 만다. 유튜브를 찾아 전성기 무대를 보았는데 정말 문외한인 내 귀에도 세계적인 재능을 가졌다는 것이 느껴지는 전율이 돋는 목소리였다. 눈물겨운 재활을 통해 지금도 무대에 서신다. 이전과 음역대는 다르고 성량도 조금은 다른 것 같지만 여전히 음을 정확히 짚어내는 타고난 음감, 낮고 부드럽고 풍부한 그 음색에는 절로 눈물이 흘렀다. 지금은 인간 승리를 여실히 보여주는 인생이라는 오페라의 주인공인 것이다. 앞으로도 이 분의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노래를 듣고 싶다.

 

책을 읽는데 차분하고 지적인 음성으로 조근조근 설명해 주는 듯한 오디오북 같은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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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현실을 이기게 해 주는 판타지, 『라이트 보이』 by 리사 톰슨 | 기본 카테고리 2019-12-1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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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라이트 보이

리사 톰슨 저/ 김지선 역
블랙홀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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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로 읽었던 『골드피쉬 보이」의 작가 리사 톰슨은 자칫 어른들이 간과하기 쉬운 청소년들의 섬세한 마음 상태와 상처, 트라우마를 소재로 기발한 아이디어의 글로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전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간 『라이트 보이』 역시 부모의 외도와 이혼, 가정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판타지 요소를 포함한 뛰어난 스토리텔링으로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다. 판타지 요소와 의외성, 스릴 면에서 이전 작품인 『골드피쉬 보이」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휴가여행이라고 하지만 도망치듯 서두르는 엄마의 태도에 휴가여행이 아님을 깨닫는 11살 소년 네이트. 네이트는 교묘하게 네이트를 학대하고 엄마를 조종하는 엄마의 새 남편 게리로부터 도망하는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외딴 숲 속의 쥐와 닭이 서식하는 더럽고 오래된 집으로 와서 청소를 시작하는 엄마. 할머니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할머니와 엄마는 서로를 향한 서운함으로 대판 싸운 상태여서 갈 수가 없다. 식료품을 사러 간다던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네이트를 버려두고 게리에게 돌아간 걸까? 네이트는 비상 식량을 조금씩 먹으며 불안하지만 그럴 리 없다며 애써 엄마를 믿으며 기다린다. 그런 네이트에게 6년이나 잊고 있었던 환상 속의 친구 샘이 나타난다. 그리고 숲 속에서 당돌한 여자아이 키티가 나타나 함께 보물찾기를 하자고 한다. 네이트는 몹시 내키지 않지만 여자아이가 찾아낸 암호들을 하나둘씩 척척 풀어낸다. 하루하루 지나가도 엄마는 오지 않는다. 네이트는 상상 속의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이겨낸다. 그리고 키티를 구하기 위해 어둠을 두려워하는 트라우마도 부인한다. 자기 자신을 이겨내는 것이다. 그러다가 알게 된 캐티의 정체... 그리고 캐티가 이끌어 준 엄마의 소재. 그리고 엄마와 할머니의 화해와 관계의 회복과 재건. 살짝 눈물이 날 뻔했다.

 

네이트가 암호를 풀어가는 과정, 키티, 그리고 샘과의 대화. 그리고 마지막까지 엄마는 어디로 간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단숨에 책장을 넘기게 했다.

 

게리와 같이 정말 나쁜 사람들도 있긴 할 것이다. 그러나, 어른도 완벽하지 않은 이상, 네이트의 아빠, 엄마, 할머니처럼 원치 않은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픔 없이 성장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아이들은 자신만의 치유방법을 찾아내는 용기와 힘이 있는 것 같다. 뉴베리상 수상작인 『안녕, 우주』에서도 깊고 깊은 우물에 빠진 주인공에게 환상의 친구가 나타나 용기를 북돋워주고 우물에서 빠져나온 주인공은 이전과는 다른 용기 있는 아이가 된다. 책 속에서 만난 친구가 상상 속의 친구가 되어줄 수도 있고 애착인형이 친구가 되어줄 수도 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라도 아이들이 희망을 가지고 컸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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