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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의 말. 나혜석. 이다북스 | 감사히 읽은 책-서평단 2020-09-1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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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혜석의 말

나혜석 저/조일동 편
이다북스 | 2020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나도 내가 해야할 말, 내야할 목소리를 꼭 내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남들 눈치 보느라 내 이야기를 하기 두려워 질 때 이 책이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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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5

나는 못 가더라도 너만 무사히 도착되어도 좋다. 허나 너무 달음질 말고 이따금 뒤 좀 돌아보아 주오. 올라가지 못할 곳에는 손목도 좀 끌어 주어야겠소. 다리가 아파 주저 앉을 때 가야만 할 이유를 설명해 주어야겠소.

 

길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발걸음을 내딛는 일. 그 길을 간 사람의 외로움과 두려움. 그렇지만 확고한 의지를 <나혜석의 말>을 통에 엿볼 수 있었다. 착한 아이로 자란 나는 가지말라는 길에 발을 내미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 주어진 길만 걸어왔다. 그러면서 남들이 아니라는 길을 가는 이들을 보면 이해하기 어려웠다. 별나다 생각했다. 그래서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을 많이 달고 있었던 나혜석 님을 볼 때도 원래 별나고 다른 이라서 그런가보다 하고 내 마음대로 생각했더랬다. 앞서 인용한 저 문구를 읽는 순간 자신만을 위해 남들 보기에 별난 길을 간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누군가는 먼저 시린 걸음을 내딛어야 길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감내하며 나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p. 26

그러나 그 발자국을 따라 반쯤 올라가서 그 사람의 간 길과 나 가고 싶은 길이 다르오그려. 나도 그 사람과 같이 두렵게 깔린 눈을 디디어야만 하게 되었소.

 

차디찬 눈이 종아리에 가 닿을 때에는 선득선득하고 몸에 소름이 쭉쭉 끼칩니다.

 

p.27

아무려나 미끄러져서 머리가 터질 각오로 밟아나 볼 욕심이오.

 

머리 터질 각오로 밟아나간 길은 그녀를 이혼당한 여자, 자식들도 만날 수 없는 엄마로 만들었다. 마지막은  신원 미상, 무연고자, 사망원인 영양실조의 노인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길을 만들었고, 그 길을 따르는 이들에게 여전히 울림을 준다. 그녀가 살던 시대보다 처세가 많이 달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가다듬어야할 부분들은 남아있다. 남녀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여전히 자신을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이들이 있다. 그녀의 말을 통해 사람답게 사는 것, 온전한 한 사람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어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p. 119

우리 중에 한 사람도 자기를 잊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 먹고 잘 입고 편안히 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조선 여자는 확실히 예부터 오늘까지 나를 잊고 살아왔다. 아무 한 가지도 그 스스로 노력해 본 일이 없었고, 제 것으로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가엽다. 나를 잊고 사는 것, 이것이야말로 처량한 일이 아닌가.

 

 

내가 여자이자, 아내이고 엄마라서 또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인지라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 나 역시 임신하고 대학원 논문을 쓰고 했기에 나도 그랬지, 나도 그런 기분이었지 하며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 났다.

 

p.54

 

나는 비로소 시간 경제의 타산이 생겼다. 다른 것은 다 예상하지 못하더라도 아이가 나오면 적어도 제 시간의 반은 그 아이에게 바치게 될 것쯤이야 추측할 수 있었다.

 

p.54

활기 있고 건강한 그들의 안생, 그들의 체격을 볼 때 밉고 심사가 났다.

 

그들의 천진난만한 것이 어찌나 부럽고 탐이 나던지, 무슨 물건 같으면 어떠한 형벌을 당하든지 도적질할지 몰랐을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이 내가 처녀 때에 기혼한 부인을 싫어하고 미워하던 감정을 도리어 내 자신이 받게 되었다.

 

나의 경우 간절히 원하던 아이였음에도 몸이 변하고 하던 공부를 마저해야 하고, 일도 해야했기에 감사한 마음과는 또 별도로 지치고 힘든 시기이기도 했다. 나혜석 님의 경우 아이는 생각도 하지 않다 생겼으니 오죽 했을까 싶다. 아이가 건강하면 됐지 하다가도 이왕이면 재능이 있었으면 하다가, 자신이 모가 될 자격이 있을까 고민하는 모습도 나와 너무나 똑같았다. 그러다 출산후 '잠'을 잘 수 없어 괴로워하는 모습도 그때의 나를 떠올리게 했다.

 

 

p.72

잠 오는 때 잠자지 못하는 자처럼 불행 고통은 없을 터다. 이것은 실로 이브가 선악과 따먹었다는 죄값으로 하느님의 분풀이보다 너무  참혹한 저주다. 나는 이러한 첫경험으로 인해 태고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모가 불쌍한 줄을 알았다.

 

그때에 비해 육아 환경이 많이 편해졌다고는 해도 엄마가 되는 순간 겪는 많은 변화와 어려움들은 남아있다. 그런 어려움을 토로하면 우리 때는 더했다던지, 그런 것도 몰랐냐는 핀잔들 역시 여전히 남아있고 말이다. 유세가 아닌데 말이다. 정말 힘든 일인데 말이다.

 

 

나혜석이라는 인물의 일생을 글을 통해 보다보니,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항상 자기자신 그대로 표현하고 인정 받기를 원했던 한 사람의 인생. 지금의 나는 나의 무엇을 표현하고 남기고 싶은 것인지 묻게 된다. 내 길은 무엇인지 묻게 된다.

 

p.191

 

인생은 고통 그것일는지 모릅니다. 고통은 인생의 사실이외다. 인생의 운명은 고통이외다. 일생을 두고 고통스러운 병을 깊이 맛보는 데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고통을 명확히 사람에게 알리는 데 있습니다. 평범한 이는 고통의 지배를 받고 천재는 죽음을 가지고 고통을 이겨 내어 영광과 권위를 취해 낼 만한 방침을 차립니다.

 

내 갈 길은 내가 찾아 얻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운명이 어찌 될지 모릅니다.  속마디를 지은 운명이 있습니다.  끊을 수 없는 운명의 쇠사슬이외다. 그러나 너무 비참한 운명은 와왕 약한 사람으로 하여금 반역하게 합니다. 나는 재기할 기분이 없을 만큼 때리고 욕하고 저주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필경 같은 운명의 줄에 얽혀 없어질지라도 필사의 쟁투에 끌리고 애태우고 괴로워하면서 재기하려 합니다.

 

평탄하지 않은 운명 앞에서도 나약한 소리가 아닌 나아가겠다는 나혜석. 남이 듣기 좋을 말보다 해야할 말을 한 이였다. 나도 내가 해야할 말, 내야할 목소리를 꼭 내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남들 눈치 보느라 내 이야기를 하기 두려워 질 때 이 책 <나혜석의 말>이 떠오를 것 같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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