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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삶이 될 때(김미소) | 서평/리뷰 2022-04-14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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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언어가 삶이 될 때

김미소 저
한겨레출판 | 2022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계속 공감하며 읽었던 에세이.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고는 '설마'했다. 왠지 내 이야기랑 비슷한 이야기를 할 것 같은 제목이었지만, 그렇다고 실제로 그렇게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책은 많이 없었기에. 그런데 책을 다 읽은 지금, 이 책은 '거의 내 이야기'라고 봐도 될 법한 책이 되었다.

 

나는 어릴때부터 외국어 배우기를 좋아했다. 대여섯살 때부터 내 꿈은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거였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무슨 책인가를 읽고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때부터 내 꿈은 통번역사였다. 그래서 고등학교도 그 쪽 계열로 갔었고, 그때만 해도 영어통역사만을 생각했었으나, 영어만 해서는 큰 비전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넓고,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정말 많으니.

그래서 나는 희소한 제2외국어를 전공언어로 선택했고, 지금 나는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그 제2외국어 동시통역사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 전에, 내 첫 외국어는 영어였다. 어릴 때부터 영어공부를 너무 좋아했었고, 심지어 지금까지도 그런 성향은 바뀐 적이 없었다. 대학생 때는 미리 준비해둔 어학 성적을 활용해서 미국 교환학생도 다녀올 수 있었다. 그랬기에 이 책 저자의 삶, 특히 미국에서 좌충우돌하며 영어를 습득하고, 성인이 되어 제2외국어를 배우는 것에 대한 저자의 고민과 고찰에 더욱 깊이 공감을 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더 공감했거나, 더 반가웠거나, 더 생각해 보고 싶어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던 부분들은 아래와 같다.

언어를 배우는 데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그 언어와 함께 살아가는 경험이다. 사람은 지식이나 능력을 들고 다니는 컴퓨터가 아니고, 제2언어 역시 뇌 안에만 존재하는 추상적인 능력이 아니다. 사람들은 언어를 배워서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새로운 사회와 교류하며 삶ㅇ르 꾸려간다. 이처럼 언어는 관계, 사회, 삶 속에 존재한다.

34쪽

성인이 되어 배우기 시작한 제2외국어를 동시통역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리는 데 내가 들인 노력을 생각하면, 확실히 어렸을 때부터 배운 영어와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것 같다. 영어를 했을 땐 미국에 오래 살다온 교포인 것 줄 알았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지만, 그 제2외국어를 했을 땐 그런 말을 들어보진 못했다. 그렇지만, 중간에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그래도 배울 수는 있는 거다.

 

내가 말하고 싶은 이미지가 이미 내 머릿속에 있더라도, 어떤 언어로 풀어내고 싶은지에 따라 어느 부분에 주의를 기울여 말해야 하는지가 달라진다. 언어가 강제하는 자질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언어에 따라 세상을 인식하는 법이 약간 달라질 수 있다.

65쪽

이 말에는 나도 공감한다. 나 역시 한국어를 쓰는 나 자신과 영어를 쓰는 나, 그리고 제2외국어를 쓰는 나 자신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기에. 그렇지만 '이중언어자는 각 언어의 문화에 맞는 행동양식을 따르게 되는 것(66쪽)' 이라는 말을 보니, 나도 성격이 바뀌었다기보단 그냥 그 언어의 문화를 따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에일리언(alien)

114쪽

내가 미국에서 듣고 처음엔 가장 이질적으로 다가왔던 단어. 물론 나도 알고 있었다. alien이 꼭 외계인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걸. alien은 외국인을 뜻하기도 한다는 걸. 그렇지만 foreigner이 아닌, 그 단어를 볼 때마다 '이 나라 사람들은 나를 외계인 취급하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한 게 역시 나 뿐만은 아니었구나, 하며 공감했던 부분이었다.

 

영어는 우리를 어떤 문화에도 속하지 않는 공간으로 데려다 줄 수 있다. 영어는 우리의 손발을 묶어놓을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한 국가에 얽힌 문화나 관계에서 해방시켜주기도 한다.

171쪽

정말 공감했던 문장. 나 역시 영어나 전공 제2외국어를 쓰면서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꼈었는데, 그게 이런 이유에서였나 싶었다.

나는 영어를 직접 쓰려고 공부하는 걸까, 혹은 남을 줘서 다른 걸 얻으려고 공부하는 걸까? 스트레스가 심하다거나, 내 영어 공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면, 한 번쯤은 나를 위해 공부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다른 걸 얻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건지 점검해 보는 것도 좋다.

221쪽

사실 나는 언제나 영어 공부가 즐거웠다. 고등학생 때는 지루한 수능 공부 중 영어를 도피처나 해방구 정도로 생각할 정도였다. 어릴 때부터 영어를 좋아했던 덕에, 고등학생 때도 그 이후에도 항상 영어는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성적이 잘 나왔다. 그렇지만 이제 아이 엄마가 되었기에, 내 아이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안다. 만약 아이가 영어 혹은 제2외국어 공부 때문에 힘들어한다면, 이 말을 들려주고 싶다.

 

내가 정말 공감할 수 있었던 에피소드,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내게 필요했던 문장들이 가득한 에세이였다. 이번 한 번 읽고 그치는 게 아니라, 앞으로 두고두고 계속 꺼내볼 것 같은 에세이. 이런 책을 만날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하다.

 

 

* 한겨레출판사 하니포터 2기 활동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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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엔딩 이후에도 우리는 산다(윤이나) | 서평/리뷰 2022-04-10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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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해피 엔딩 이후에도 우리는 산다

윤이나 저
한겨레출판 | 2022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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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봤을 땐, 그냥 삶에서 우러나온 교훈(?) 들을 쓴 여러 에세이 중 하나일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에세이는 요즘 핫한 OTT 작품을 감상하고 쓰여진, 감상 후기 같기도 한 에세이다. 처음 목차를 펴 보고 이 사실을 알게 되어 기뻤지만, 그 기쁨도 잠시.. 내가 아예 볼 생각이 없는 작품에 대한 에세이는 상관 없는데, 아직 보진 않았지만 볼 예정인 작품들의 에세이도 읽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책을 다 읽었다. 특히, 다른 분들의 추천을 받아 나도 앞으로 볼 예정이긴 하지만..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던 <노멀 피플> 편과 <올리브 키터리지>까지 결국 읽고 말았다. 에세이 특성상 스포가 아주 없다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모두 읽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시간과 마음을 나누는 과정을 청해 성장하고 변화한 내가 다시 이전의 내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듯이, 한 세계의 문이 열리면 등 뒤의 문은 닫혀야만 한다. 이런 세계에서는 열린 결말이야말로 완전히 닫힌 결말일 테니까.

126쪽

평범한 우리는 문제를, 고통을, 상처를 끌어안고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채로 그저 매일을 살 뿐이라는 진실을 이 드라마가 보여줄 때, 올리브는 소설 속에서 걸어나와서 살아 있는 사람이 된다. 세상에, 내가 누구라고. 나는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니라, 그냥 오늘을 사는 사람인 것을.

234쪽

 

나는 그냥 시간이나 떼울 심산으로 보곤 하는 OTT 프로그램들을 보고도 누군가는 이런 에세이를 쓴다는 게 참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특히나 이런 퀄리티의 감상을 남기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게(그런 마음을 먹는 것 자체가) 얼마나 부지런해야 하는 일인지도 알기에, 잘 읽히는 편인데도 이 에세이집을 앉은 자리에서 막 읽어갈 수는 없었다.

 

내가 본 영화나 드라마는 물론, 안 본 것들에 대한 에세이가 훨씬 많기 때문에.. 앞으로 나도 이 책에 소개된 작품들을 하나 하나 직접 본 다음 다시 이 책으로 돌아온다면 더욱 깊이있는 독서가 가능할 것 같다.

 

+) 내가 전혀 볼 생각이 없던 작품도 궁금하게 만든 에세이.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뭘 봐야할지 고민인 분들은 이 책을 가이드 삼아 선택하실 수도 있을듯.

 

 

 

* 한겨레출판사 하니포터 2기 활동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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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아저씨는 꼭 아저씨여야 하는가_이어달리기(조우리) | 서평/리뷰 2022-03-10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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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어달리기

조우리 저
한겨레출판 |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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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히는 연작소설. 현명한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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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달리기>라는 제목만 봤을 땐, 달리기 이야기를 소재로 한 소설인가? 싶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니 '혈연과 세대를 초월한 여성들의 다정하고 느슨한 공동체'라는 소개 문구만큼 이 책을 잘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새삼 띠지의 문구에 감탄했다.

 

이 소설은 '성희 이모'를 중심축으로, 성희 이모와 인연이 닿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쌓여 가는 구조이다. 그래서 연작소설인 것이다. 성희는 일찍이 부동산 쪽에도 일가견이 있어 '돈은 많지만 시간은 없는' 부류이고, 여성만을 만나며 결혼은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만나는 여성들, 또는 주변 친구들의 조카를 자신의 조카처럼 생각하며 '이모'가 되기를 자처한다.

 

성희는 이들을 말로만 조카처럼 생각하고, 또는 기념일이나 챙겨주고 하는 수준이 아니다. 이들의 미래까지 아예 책임지겠다는 일념으로, 그리고 이들이 친조카라도 된다는 듯이, 유언장까지 고쳐 가며 유산을 나눠 준다. 그렇지만 유산을 그냥 막 퍼주듯 주는 게 아니고, 각자에게 어울리는 '미션'을 주어 미션의 성공 보상으로 유산을 준다. 어렸을 때 어린이의 모습으로 성희 이모를 만났던 이들은 성희 이모보다 나이가 많아질 무렵 그 유산을 받고, 각자의 꿈을 이룬다.

 

책을 읽다 보니, 성희 이모는 각 조카들의 성향을 매우 세심하게 파악해서 각자에게 어울리는 미션과 유산을 준 것 같다. 미션 자체도 각자의 성격과 상황에 맞게 주어지며, 편지로 오는 성희의 미션에 답장이 없으면 이메일을 하기도 하고, 자신감이 부족한 조카에게는 은근슬쩍 자신감을 올려주면서까지 조카들을 끝까지 끌고 간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 책에선 남자가 나오지 않는다. 중간중간 성별이 불분명한 사람이 나오긴 하는데, 엑스트라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조금이라도 비중 있는 역할을 하는 인물들은 모두 여성이다. 그래서 '여성들의 공동체'라는 말이 띠지에 들어가 있는 거겠지.

 

일부러 그러려고 한 건 아니지만, 최근에 여성 서사의 소설들을 참 많이 읽었다. 그래서인지 처음 이 소설을 펼쳤을 때 '또 여성 서사야?' 라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다. 그런데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 책에선 성별은 중요하지 않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성희 언니는 그 옛날 주디에기 힘이 되어 주던 '키다리 아저씨' 같은 역할인 것이고, 여러 조카들이 '주디'인 거다. 키다리 아저씨가 꼭 아저씨일 필요는 없는 거다. 마찬가지로 꼭 여자일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책은, 어린이를 좋아하고 어린이의 가능성을 믿는 한 따뜻한 어른이, 이 어린이들을 끝까지 저버리거나 끈을 놓지 않고 세심하게, 또는 은밀하게 돌봐주는 내용인 것이다. 그 어린이, 또는 그 어른의 성별은 상관이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제목 <이어달리기>가 참 좋은 것 같다. 이만큼 연작 소설에 잘 어울리는 제목도 없겠다 싶기도 했고, 제목에 '여성 서사'임을 강조하는 내용이 들어가지 않은 게 좋았다. 맨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도 그랬다. 조우리 작가님은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을 쓰면서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218면)"고 했다. 어른과 어린이의 성별은 상관 없다.

 

이 책을 읽는 나도, 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가 아니라 그냥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어린이에게 좋은 어른이고 싶다. 아래의 문장을 항상 기억하면서.

 

왜 어떤 어른은 어린이를 만나면 꼭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을까. 지금 눈앞에 있는 어린이가 아니라 미래에 어른이 될 존재하고만 대화하겠다는 것처럼. 차라리 어젯밤에 꾼 꿈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텐데. 왜 재미없는 어른들이 그렇게도 많은지.

이어달리기, 85면

 

* 한겨레출판사 하니포터 2기 활동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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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점심 먹는 사람에게(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시집) | 서평/리뷰 2022-03-06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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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시집+산문

강혜빈,김승일,김현,백은선,성다영,안미옥,오은,주민현,황인찬,강지희,김신회,심너울,엄지혜 등저
한겨레출판 |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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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구미가 확 당기는 두 권의 책을 읽었다. 직장인 치고, 아니 직장인이 아니라 학생이라도, 혼자 점심 한 번 먹어본 적 없는 사람이 많이 있을까?


혼자 점심을 먹는 날이 많아진 건 대학생 때부터였던 것 같다. 공강 시간을 맞춰 밥을 먹는 것도 한두번이지, 모두 다른 시간표와 다른 일정으로 살아가는데 어떻게 매번 점심을 같이 먹겠는가? 생각해보면 그 전까진 모두 획일적으로 같은 시간표 하에서 같이 움직였기에, 따로 점심을 먹을 일도 없었고, 그래서 타지에서 대학 생활을 하는 것에 더해 점심을 혼자 먹는 것이 무척 쓸쓸하게 여겨졌었다.


그렇지만 그런 혼점의 시간이 쌓여갈수록 나는 더 의연해졌다. 혼자 점심을 먹는 건 외로울 일도 쓸쓸할 일도 아닌, 그냥 당연한 일이 되었다. 시간이 맞으면 같이 먹고, 아니면 그냥 따로 먹는 거지.


직장에 들어가고 나서는 오히려 혼자 점심을 먹는 시간이 줄었다. 대신 어색함을 이기기 위해 의무적인 대화를 하는 시간은 길어졌다. 같은 팀원이라지만 사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 이들과 친구들처럼 시시덕거리며 즐겁게 점심을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시간이 약이라지만, 그렇게 시간이 약이 되려면 어색함과 과장된 리액션으로 점철된 시간이 쌓이고 쌓여야만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기에, 나는 ‘혼자 점심을 먹고 싶지만 사회생활을 위해 어색함을 견디고 점심 먹는 직장인의 비애’ 또는 더 나아가서 ‘마이웨이로 혼자 점심 먹을 깡이 있는 직장인의 이야기’ 정도를 기대했던 것 같다. 김신회 작가님의 에세이 중 비슷한 스타일이 있었다.
 

사무실 막내였던 나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부장님이 오늘은 초복이니 삼계탕을 먹자고 하면 그날은 입구에 각종 화분이 잔뜩 놓여 있는 삼계탕집 좌식 테이블에 앉았다. 이사님이 특별히 회를 쏘겠다고 하면 대리님 차를 얻어 타고 도시 중심가에 있는 회 식당으로 향했다. 삼계탕이고 회 정식이고 다 싫었다. 내가 원하는 점심 메뉴는 혼자 말없이 먹는 구내식당 밥이었다.
- 42면



그리고 이런 문장도 있다.



왜 먹고 싶지도 않은 메뉴를 쏘겠다며 나대는가. 안 얻어먹고 싶은데 나는? 점심만이라도 혼자서 조용히 먹고 싶은데?
- 45면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특히 막내 생활을 해 본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문장 아닌가. 점심 사주겠다는 선배의 마음은 알겠지만, 안 얻어먹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가야하는 막내의 마음도 알아줬으면..


그렇지만 내가 기대했던 문장이 아니었음에도 내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았던 문장은 이거였다.


모두에게 점심이 편안하고 당연한 권리가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점심을 거르게 되고 어쩌다 아프더라도 괜찮다고, 조금 느리거나 완벽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서로에게 말해줄 수 있는 사회에서 살 수 있기를.
- 27면


강지희 평론가님의 문장인데, 첫 타자로 등장하신 작가님임에도 끝까지 제일 기억에 남았다. 나 역시도 그런 사회를 꿈꾸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정지돈 작가님의 글도 인용해야겠다. 피식 웃으며, 또는 음, 맞는 말이군 하고 맞장구치며 읽은 부분은 많았는데, 이상하게 일본의 뛰어난(그렇지만 아주 특이한..) 미시마 유키오에 대한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미시마 유키오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의 어그로 끌기 능력이다. (…) 에세이에는 미시마 유키오 특유의 엄정한 문체나 유미주의적인 미학은 없지만, 글쓰기 또는 예술에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또렷이 살아있다. 바로 어그로 끌기.
- 243면


노벨상 후보까지 여러 번 갔었던 미시마 유키오와 ‘어그로 끌기’라.. 그 단어들의 이질감에 제일 기억에 남았던 부분인 것 같다.



그런데 산문 중에는 그냥 점심 시간에 썼을 뿐, 점심과 무슨 상관이지? 싶었던 글이나, 단순히 신변잡기적으로 보이는 글도 일부 있었다. 그런 반면에 시는 정말로 ‘혼자 점심을 먹는 사람이 남는 시간에 읽기 좋을’ 글들이 많았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시인님들이 쓰신 시가 많아, 아껴가며 읽었다.


그렇지만 시는 읽는 사람에 따라 정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 시집을 읽은 감흥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결국 구구절절하게 쓰기보단, 내가 느끼기에 좋았던 부분들을 조금씩 인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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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잠은 샌드위치처럼 쉽게 흩어진다 9.0

너의 신년 계획은 김밥처럼 위태롭고 무모하다 4.5

너의 허기는 들깨미역국처럼 불어난다 8.5

- 95면, 알찬 하루를 보내려는 비유의 메뉴판 중 (안미옥 시인)

 

이 메뉴판 같은 시가 제일 좋았다면, 거기다 제일 밑에 깨알같이 달린 *금일 준비된 재료 소진 시 영업을 종료합니다 라는 각주도 기억에 남았다면, 너무 시알못같을까? (그게 사실이다..)



너는 흡수가 빠르구나. 네 얼굴에는 붉음과 불콰함과 불쾌함이 한데 모여 있다. 우리 사이에는 아직 테이블이 있다. 그 위에 올려둔 것이 바닥나고 있다.

- 114면, 그것 중(오은 시인)



이 시도 다 좋았는데, 전문을 올리면 시인님의 소중한 저작권이..ㅠ 그런 생각에 부분만 올렸다.



지금 학교에 있는데 점심시간이고 한 아이가 울고 있다고 합니다 물어보아도 왜 우는지 말을 안 하는데 자신의 슬픔이 그 아이의 슬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그 아이의 슬픔이 정말로 저의 슬픔보다 더한 슬픔인가요?

- 38면, 점심으로의 잠 중 (김승일 시인)


김승일 시인은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이지만, 어쨌든 이 시도 좋았다.



전체적으로 시도 산문도, 직장에서 점심 먹을 때, 점심 먹고 조금의 여유가 있을 때 한 편씩 꺼내 읽기 좋을 글들이었다.



* 한겨레출판사 하니포터 2기 활동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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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은 날마다 봄_봄이다, 살아보자(나태주) | 서평/리뷰 2022-02-0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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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봄이다, 살아보자

나태주 저
한겨레출판 |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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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호흡으로 위로받을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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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하니포터 서평단 책 신청을 하면서, 목록에 나태주 시인님의 신간 <봄이다, 살아보자>가 있는 걸 보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선택했어요. 풀꽃 시인으로 유명하지만 개인적으론 ‘사랑의 시인’이 아닐까 싶은, 나태주 시인님이 이번엔 또 어떤 식으로 위로를 해 주실까 궁금했었거든요.

 

 

처음 책 제목을 봤을 땐 사실 ‘아직 겨울인데, 책이 빨리 나온건가?’ 싶었어요. 그런데 책머리에 쓰신 글을 보니 제목이 와닿았어요.

 

봄과 함께 살아볼 일이다. 봄의 느낌으로 살아볼 일이다. 여름이나 가을이나 겨울에도 봄의 느낌으로 살아보자는 거다. 그러다 보면 우리 저신도 생명다운 생명이 되고 창조가 되고 날마다 순간마다 출발이 되고 축복이 되지 않을까!

5면

 

 영원한 겨울은 없습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은 당연히 오지요. 그걸 잊지 말고, 더 나아가서 언제나 마음 속에 봄을 품고 살자고, 그러면 우리 인생 전체가 봄이 될 거라는 시인님의 말씀에 시작부터 마음이 좀 따뜻해지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도 나태주 시인님의 시와 에세이를 읽으며 ‘그래, 내가 더 이해하고 남편과 싸우지 말아야지’ 등의 다짐을 혼자 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위로를 받으며 그런 종류의 다짐들을 더 해 보고 싶었어요.

 

 이번 책에는 짧은 호흡의 에세이들이 여러 편 실려 있었는데, 그 덕에 더 부담없이 글들을 읽으며 위로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예전부터 좋아했던, ‘아주 인간적인 시인님’을 엿볼 수 있어 더 좋았어요.

 

예를 들면, 공주 풀꽃 문학관을 찾아오는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고 책도 주곤 하시는 시인님이 그 곳에서 직접 화단을 가꾸다 만난 방문객과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누고도 모자라 번호까지 주고받아 연락을 하신 에피소드도 좋았고, 사위와 며느리에게 ‘우리 자식들과 살아줘서 고맙다’ 라고 하시는 에피소드도 인상적이었어요.

방문객과 꾸밈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누구에게든지 통하는 것이어야 하고 다 같이 좋은 것이어야 한다. 특히 사회 지도층에 있는 분들, 유능한 분들(…)이 이것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140면)’ 이라고 하신 부분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우리 자식들이랑 살아줘서 고맙다’는 것은 부모로서 하기에 쉽지는 않은 말일 것 같은데, 시인님은 관대한 마음으로 이런 말씀을 해 주시는 것에 저까지 넓은 품과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번에도 저는 부부에 관한 글을 찾아 기억하려고 합니다. 바로 이 부분이요.

 

 

 

가까운 사이, 좋은 사이일수록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세심한 조심이 필요하다. 그것은 한집에 사는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다. 상호 존중할 것은 존중하고 삼갈 것은 삼가고 눈감거나 비켜갈 것은 또 그래야 한다.

61면

 

 이 부분을 보고 다시 한 번 남편의 입장을 이해하고 서로 배려하고 조심하는 관계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육아로 서로 지쳐가는 요즘같은 시기일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말이 아닐까 싶어요.

 

 또 우리 모두가 새겨 본다면 좋을 것 같은 말도 있었어요.

 

 

다른 사람에게 잘하는 일이 나에게 잘하는 일이고 다른 사람에게 하는 일은 결국은 나에게로 돌아오는 일

87면

 

 시인님의 글을 읽으며 항상 느끼는 건데, 세상에 이렇게 관대하고 다 잘 지내보자! 으쌰으쌰! 하는 분들이 많아진다면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정말 아름다워질 것 같아요.

 

이 밖에도 책 속에는 정말 주옥같은 말들이 많았어요. 사실 시인님의 글 하나하나에 모두 새겨볼 만한 문구가 있었는데, 일일이 다 쓰진 못했네요.

 

아이를 키우면서, 또는 나중에 복직을 하고 나서라도 마음이 힘들어질 때 꺼내볼 것 같은 책이었어요.

 

 

 

* 한겨레출판사 하니포터 2기 활동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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