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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중국경제 | 경제경영 2010-11-30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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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패권전쟁

취엔위엔치, 랑치똥 공저/김준우 역
21세기북스 | 201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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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니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미국은 단지 경상을 입었을 뿐이고 유럽은 중상을 입었는데 중국은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 이책에 소개되는 관점이다. 중국의 입장에 치우친 견해이긴 하지만 타당성이 있는 관점이긴 하다. 중국경제의 모델이 바뀌어야 하는 강요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제는 예컨데 (원자재 공급원과 제품 판매 시장이라는) 양 끝을 밖에 두고, 크게 들어오고 크게 나가는 (대량으로 수입하고 대량으로 수출하는) 외향적 경제발전 모델로, 외수(외부 수요)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번 위기는 중국이 택한 모델 자체의 한계와 모델의 내재적 한계 두가지를 해결해야만 하는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금융위기를 전환점으로 중국 경제는 고비용 시대로 들어섰다. 중국은 지금까지 값싼 원자재와 인건비를 비교우위로 삼아 성장해왔다. 그러나 더 이상 저비용은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인건비는 지속적으로 올라 베트남 등의 나라에 뒤지고 외수도 예전같지 않을 것이므로 성장을 이끌었던 투자는 예전 같은 속도를 낼 수 없다.

이젠 소비가 투자를 대신해 성장을 이끌어야 하지만 수요가 단기간 내에 성장하기는 어렵다. “중국은 아마도 구조조정 시기에 들어설 것이다.”

기존 모델의 효율은 한계에 달한 듯 보인다. “중국은 국제시장에서 심각하게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다. 중국이 무엇을 사든 그것은 가격이 오른다. 중국이 무엇을 팔든 그것은 가격이 떨어진다.” 70%에 달하는 대외의존도 덕분이다. 경제의 외형은 커졌지만 그 덕분에 비용이 올라간다. 더군다나 그 외형은 실속이 없다. “미국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낮은 저축률로 70% 이상의 고소비를 지탱한다. 중국은 50%의 높은 저축률로 30% 내외의 낮은 소비를 유지한다.” 결국 무엇을 위한 성장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으며 경제적 위기는 언제든 사회적 위기로 바뀔 수 있다.

모델이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이 적기라고 저자들은 생각한다. “교육, 의료, 양로, 주택, 사회보장 등은 경제발전의 기본 동력이 될 수 있다. 만일 이 문제들을 남겨두었다가는 사회와 경제의 조화로운 발전에 무거운 부담이 될 것이다. 지금 내수 확장을 이끌어내는 사회사업을 충분히 중시하지 않으면 발전의 찬스를 잃어버릴 것이다.”

중국이 구조조정의 전환점에 들어섰다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외향적 경제모델 자체의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의 국제분업 측면에서 본다면 하이테크 영역과 기술집약형 산업 분야에서 일본의 경쟁력은 미국을 넘어서지 못한다. 전통적인 공업과 노동집약형 상품 분야에서 일본의 경쟁력이 신흥 공업국을 넘어서지 못한다. 21세기에 둘어선 일본은 어떤 영역에서도 절대적으로 우세한 산업이 없다.

새로운 세기에 들어선 이후에는 인터넷을 대표로 한 정보기술이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해 제조업을 대표로 하는 일본은 기존의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일본 기업들은 새로운 상품을 내놓을 수 없었고 일본의 공산품이 세계시장에서 1등을 독점하던 상황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정보산업을 주축으로 한 미국 경제가 다시 우뚝 솟았다. 정보 시스템에 대해 말하자면 미국의 산업과 상품이 세계를 주도하고 1등을 독점했고 일본은 정보혁명의 낙오자가 되었다.”

일본의 현재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버블붕괴의 후유증이기도 하지만 경제가 방향을 잃었다는 문제가 더 크다고 본다. 그들이 방향을 잃은 것은 대세를 놓쳤기 때문이다. 세계화와 정보화에 낙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모델의 문제이다. 일본의 캣치업 모델은 따라갈 방향이 분명할 때는 잘 작동한다. 그러나 자신들이 그 방향을 개척해야할 때는 헤메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면 일본의 모델을 따라했던 한국 그리고 중국은 어떨까?

일본의 현재는 일본을 따라갔던 한국 그리고 중국의 미래이기도 하다. 일본식 모델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것이 한국은 물론 중국의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문제였다고 저자들은 생각한다.

금융위기의 결과 “네 마리 호랑이는 모두 죽었고 네 마리 용은 두 마리 반이 죽었다. 수입대체와 수출주도는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적 성공을 가져온 모델이다. 그러나 이 모델은 경제발전이 일정단계에 도달한 뒤에는 그 모순이 밖으로 드러난다. 경제발전이 일정단계에 도달하면 생산원가가 높아져 수출이 억제되고 국제수지의 불균형을 가져온다. 이 수출주도 전략이 수많은 나라들의 발전전략이 되면 각국 간의 상호 경쟁이 형성된다. 상품의 단계적 진보는 수출주도를 계속 실행하기 위한 필수조건인데 값싼 자원과 노동력에만 의존해서는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아시아 국가들은 고석 성장을 실현한 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지금 국제적으로 유행하는 관점 하나는 바로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가 아시아의 수출주도형 발전모델이 철저히 끝났음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동아시아 모델의 한계는 내생적인만큼 이제는 외생적으로 시효가 끝났다고 보아야 한다.

동아시아 모델은 내생적으로 과잉투자를 부른다. “생산능력 과잉은 중국경제ㅐ의 고질병이자 난치병이다.” ‘고투자, 고소모, 고오염, 저산출’이라는 ‘3고 1저’는 대량의 과잉생산능력을 낳았고 자원의 낭비를 불러왔다. 그 낭비는 정부의 투자로 만들어진 것이다.

“계획경제 체제의 타성은 생산능력 과잉의 주원인이다. 이는 방대한 중공업 체계를 적절하게 전환하지 못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진입한 후에도 정부의 중심 작업은 여전히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었고 운영 모델은 어느 정도 계획경제의 방식을 답습하고 있었다.

계획경제 시기에 ‘협상가격차’ 정책을 실시해 농민의 이익을 박탈하고 도시의 발전과 공업 건설을 지탱했다. 현재 농민들은 요 몇 년 사이 자주 나타나는 경기과열로 여전히 손해를 입으며 농촌은 시장위축을 보이고 잇다. 동시에 기업 노동자의 임금수준은 지나치게 낮아 소비능력을 떨어트리고 의료 주택 교육 분야에 대한 정부의 방대한 지출은 소비 전망을 불확실하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감히 소비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이처럼 경제성장의 트로이카 가운데 소비라는 말 한 필이 힘이 없으면 결국 투자에 기대러 경제성장을 끌어당길 수 밖에 없는데 이는 생산능력 과잉을 도리어 격화시켰다.

현행 관리체제의 결함도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첫번째는 세금제도의 결함이다. 중국의 세수는 간접세를 위주로 하는데 이런 세수구조는 정부가 온 힘을 다해 경제에 중점을 둘 수 밖에 없게 해서 특히 2차 산업을 강조해 재정수입을 확보하게 한다.

두번째는 관리승진 시스템이다. 관리승진 심사의 주내용은 아직도 GDP나 세수, 투자유치 등의 경제지표인데 현실절으로 이들 지표를 초과달성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버은 바로 제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관리들이 공공자원을 사용해 제조업 발전을 가속화시키고 빠른 전시행정을 추구하게 하여 생산능력 과잉을 부른다.”

“국유자본은 생산능력 과잉을 억제한다며 민간자본을 억압한다. 대형 국유기업이 더 많은 융자와 토지점용, 특별금융, 정책적 우대특권을 누리며 더 많은 과잉을 낳고” 더 효율적으로 자원을 사용할 수 있는 민간자본을 몰아내고 시장의 수요에 부합하며 더 높은 부가가치를 낳을 수 있는 하이테크 산업과 서비스업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과잉생산능력 자체가 바로 일찌감치 도태되어야 할 낙후된 생산능력이라는 것이다.” 기초산업과 첨단산업이 지나치게 부족한데도 이미 포화상태를 넘어 과잉상태인 전통산업에 투자하기 때문에 새로운 기간산업이 발전하지 못한다.

“경제구조의 불합리는 무역구조의 불합리에 집중적으로 반영된다. 중국의 수출에서 가공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 2008년 그 비중은 41.1%였고 많은 수출상품이 OEM인데 대부분의 이윤은 외국 브랜드업체가 가져가고 오염과 저원소모는 국내에 남는다.”

그러나 고비용구조로 중국경제의 체질이 바뀌면서 “ 이상 ‘로우엔드 제조 + 염가수출’의 모델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과잉투자가 자원의 낭비로 그친다면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지만 중국의 문제는 그보다 더 심각하다.

“경제 대공황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크다. 지금 중국이 직면한 것은 마치 1929년의 미국과 서방세계가 직면했던 문제와도 같다. 중국 경제는 세계 경기순환의 본질적 리스크에 직면해 있다. 전 세계에 생산과잉의 위기가 출현한 것이다. 미국의 자산 불리기와 과소비는 중국을 대표로 한 ‘세계의 공장’에 매우 큰 생산력을 만들어냈고 이는 중국이 매년 수출과 무역흑자가 증가한 것으로 표현되었다. 그런데 경제위기로 미국의 소비수요가 위축되고 이어 더 많은 외부 수요가 사라져 버리면 중국의 과잉생산능력은 기업 도산이나 실업률 증가 등 심각한 문제를 양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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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없는 전쟁 | 인문/사회/역사 2010-11-3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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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아의 나라

앤 패디먼 저/이한중 역
윌북(willbook)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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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두 문화가 충돌할 때의 비극을 이야기한다.

 

비극의 주인공은 몽족이며 몽족의 한 가족이다. 몽족이라 하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묘족이라면 알 사람이 꽤 될 것이다. 묘족은 중국인들이 몽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묘족 또는 몽족은 중국의 황제들에게 악몽이었다. 이들은 죽을지언정 굽히지 않는 종족이었기 때문이다. 묘족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그들은 양자강 이남의 땅에 살면서 중국의 역대 왕조들이 영토를 넓힐 때마다 부딪힐 수 밖에 없었다.

 

몽족은 중국의 지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존심 강한 몽족은 자신들 위에 지배자를 인정하지 않았고 중국어도 중국의 뛰어난 문명도 거부했으며 어디에 있던 자신들의 문화를 자신들의 정체성을 고집했다. 한족과 몽족은 공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몽족도 농민이었다. 푸아는 내게 그녀가 살던 마을에서는 모두가 같은 일을 했기 때문에 누구도 남들보다 특별히 귀할 게 없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계급제도도 없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누구도 글을 몰라 박탈감이나 불편함을 느끼는 일도 없었다. 다음 세대가 알아야 할 것은 전부 구전이나 행동으로 전해졌다. 이를테면 조상을 공경하는 일도 켕을 연주하는 법도 장례를 치르는 법도 청혼을 하나느법도 사슴을 뒤쫓는 법도, 집을 짓는 법도, 치마에 수놓는 법도, 돼지를 잡는 법도, 낱알 터는 법도.”

 

결국 그들은 힘에 밀려 조금씩 조금씩 남쪽으로 산으로 밀려났고 지금은 운남성의 고산지대로 밀려났다. 그래서 몽족 속담은 이렇게 말한다. “물고기는 물에서 헤엄치고 새는 하늘을 날고 몽족은 산에 산다.”

 

그리고 운남성에서조차 살 수 없다고 느낀 몽족의 일부는 인도차이나로 떠났다. 이책의 주인공인 몽족은 19세기 라오스의 고산지대에 정착한 사람들이다. 몽족 속담대로 산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들은 라오스의 산에서도 쫓겨나야 했다.

 

베트남전쟁에 휘말린 라오스에도 이념전쟁이 일어났다. 몽족은 라오스 국왕과 미국의 편을 들었다. 공산주의보다 자본주의가 좋아서가 아니었다. 몽족에겐 그런 것은 상관이 없었다. 단지 공산주의자들이 몽족을 그들끼리 살던 대로 살도록 내벌려두지 않을 것같았기 때문이다. 프랑스도 건드리지 못했던 그들의 자치를 허용하지 않을 것 같았고 농지개혁을 주장하는 공산주의자들이 몽족의 화전농업을 봐줄 것 같지도 않았다.

 

몽족은 미국의 용병이 되었고 미국은 그 전쟁을 조용한 전쟁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 전쟁은 몽족에겐 조용한 전쟁일 수 없었다. “몽족은 자기 뜻대로 전사가 된 게 아니었다. 라오스 북부를 향한 폭격 때문에 농사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다른 일자리도 구할 수 엇ㅂ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라오스에 투하된 폭탄은 200만톤이 넘고 대부분 미군 비행기가 몽족 거주지에 있는 인민군 부대를 공격하면서 퍼부은 것이었다. 9년 동안 8분에 한 번꼴로 폭격을 위한 출격이 있었다. 1968년부터 1972년 사이 단지 평원 한 곳에 투하된 폭탄 통수가 2차 대전 동안 미군이 유럽과 태평양에 퍼부은 양보다 많았다.”

 

전쟁의 결과는 참혹했다. “며칠 전 장교들과 있는데 (몽족) 신병 300명을 막 데려오더군요. 그 아이들 중 30%는 열네 살이 안 됐고 여남은 명은 열 살밖에 안 됐어요. 다른 30%는 열대여섯 살이었고요. 나머지는 서른다섯 살 이상이었어요. 그렇다면 그 중간은 어디 있을까요? 답을 말씀드리죠. 전부 죽었습니다.”

 

1960년 라오스에 거주하는 몽족 인구는 30만에서 40만 사이였다. 그중 전쟁으로 죽은 수가 얼마인지는 추정치에 따라 10%에서 50%까지 편차가 크다. 그러나 1970년 인구의 1/3은 내국 난민이 되었다. 그리고 난민이 된 그들은 라오스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이 들어서면서 를 메오는 종족의 뿌리를 아예 뽑아버려야 한다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쫓겨 태국으로 그리고 미국으로 떠밀려가야 했다.

 

미국은 몽족에게 의리를 지켰다. 그러나 미국은 몽족의 긍지를 지켜주지는 않앗다. 몽족들은 라오스에서처럼 농사를 지을 땅을 달라고 했다. 그러나 미국정부는 그들을 도시로 흩어놓았다. 말도 통하지 않는 도시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옮겨가는 새로운 산마다 살 만했던 것은 옛날 일이었다.”

 

미국에 온 뒤로 이 부부는 너희는 하찮다고 느끼게 만드는 미국인들만 만나온 것이다. 두 사람이 받은 교육 때문인지 영어 실력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권위가 떨어질 수 밖에 없어서인지 분명치 않았다.

 

내가 참 바보지.”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선 아무 것도 모르잖아요. 미국 말도 모르고. 하루 종일 TV를 봐도 하나도 모르겠어요. 전화도 못 걸어요. 숫자를 모르니까. 애들이 가르쳐 주는 데 바로 잊어버려요. 먹을 건 애들이 가게에서 가서 사와요. 난 가봤자 뭐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니까. 슬픈 일도 너무 많고 해서 머리가 이상해졌나봐요.

 

라오스에선 쉬웠어요. 난 농사만 알면 됐으니까. 벼가 자라는 철에는 첫닭이 울 때 일어나요. 다른 철엔 두 번째나 세 번째 울 때 일어나면 되고 세번 째 울 때도 아직 동이 안 터서 캄캄해요. 그래서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등불 켜는 거지. 등불은 이런 거였어요.”

 

푸아가 라오스에서 하던 쉬운일 수십 가지를 얘기해주는 동안 나는 그녀가 자신을 바보라고 했을 때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전에 할 줄 알았던 것들을 미국에서는 전혀 써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아닌가 생각했다. 남은 아이 아홉에게 너무나 훌륭한 엄마가 되어주는 것 말고는 말이다. 그런데 그녀는 마지막 남은 그 능력마저 미국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부정당했다.

 

나는 푸아에게 라오스가 그립냐고 물어보았다. 대나무 의자에 앉아 있던 그녀는 잠시 말 없이 몸을 앞뒤로 흔들흔들했다.

 

먹을 게 모자라고 지저분하고 다 떨어진 옷을 떠올리면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요. 여긴 대단한 나라예요. 살기 편하고 먹을 것도 많지요. 하지만 말을 못하잖아요. 나ㅣㅁ한테 기대서 살아야 하고. 복지 수당을 안 주면 굶어죽어야 할거고요. 라오스가 그리운 건 마음 편하고 자유로운 거지요. 원하는 대로 할 수 잇고. 자기 땅 있겠다. 자기 쌀 있겠다. 자기 채소 있겠다. 정말 내 것이 있던 게 그립지요.”

 

자부심 강하고 독립적인 그들이 땅을 잃고 복지수당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무력한 난민에 불과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들을 석시시대에서 우주시대로 온 사람들이라 부르며 그들의 비참함을 그들 탓으로 돌렸다. 베트남 전쟁으로 몽족만 미국으로 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몽족은 가장 성공을 못한 난민이라는 말을 든곤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은 미국인이 되기 위해 미국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전쟁과 학살을 피할 곳을 찾은 것 뿐이엇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들은 몽족으로 남길 원했다.

 

“17년이 지난 지금 지금 푸아와 나오 키오는 미국의 가전제품들은 사용하지만 여전히 몽족 말을 쓰고 몽족 명절을 지내고 몽족 신앙을 믿고 몽족 음식을 해먹고 몽족 노래를 부르고 몽족 악기를 다루고 몽족 전래 이야기를 하고 정치에 대해선 미국보다 라오스와 태국 사정에 훨씬 밝다.”

 

유럽 이민자들이 미국에 온 것은 미국의 주류 사회에 동화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몽족이 미국에 온 것은 19세기 중국을 떠난 것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동화에 저항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몽족은 비자발적 이주민인 것이다.”

 

그런 그들이니 모든 것과 충돌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그 충돌이 심했던 곳이 병원이엇다.

 

치 넹은 아픈 사람의 집에 찾아와 8시간 동안 있기도 했다. 그러나 서양 의사는 호나자가 아무리 아파도 병원으로 오도록 했고 병상 곁에 기껏하애 20분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치 넹은 정중하고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러나 의사는 환자의 생활에 대한 온갖 무례하고 은밀한 것들, 심지어 성적 습관이나 배변 습관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치 넹은 즉각적인 진단을 내릴 수 있었다. 의사는 흔히 혈액 샘플을 요구하거나 엑스레이를 찍었고 결과가 오기까지 며칠을 기다리곤 했다. 치 넹은 사람 몸을 치유하면서 혼을 다루지 않는다는 게 명백히 어리석은 행위임을 알았다. 의사는 혼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혼은 그 사람의 그림자 같은 거에요. 때로는 나비처럼 밖으로 떠도는데 그럴 때 그 사람이 슬퍼지거나 아파지는 거에요. 그러다 혼이 다시 돌아오면 다시 기분이 좋아지고 몸도 낫게 되지요. 이따금 혼이 다른 데로 가버리는데 의사들은 그걸 믿질 않지요. 의사들은 몸이나 피 때문에 아픈 병을 고치는데 우리 몽족은 혼 때문에 아픈 경우가 있고 그럴 땐 영적인 게 필요해요. 리아의 경우엔 약도 좀 쓰고 넹도 좀 하는 게 좋았어요. 하지만 약을 너무 많이 쓰면 넹이 효과가 없어져 버려요. 둘 다 적당히 할 때는 애가 별로 아프지 않았어요. 그런데 의사들은 약을 조금만 주도록 놔두지 않았어요. 혼을 이해하질 못하니까요.”

 

몽족만 의사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몽족이 의사를 이해할 수 없다면 의사 역시 몽족을 이해할 수 없었다.

 

초등학생인 아들의 가슴에 부항 자국을 본 학교 선생이 신고를 했다. 몽족 아빠는 감방에서 목을 맸다.” 이런 경우는 물론 극단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몽족이 가는 병원이면 어디서나 통역자가 없으면 의사와 환자 모두 안개 속에서 마구 비틀거렷다. 그러나 언어 장벽은 가장 분명한 문제이긴 해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어요. 제일 큰 문제는 문화 장벽이었으니까요.’”

 

서로 세상을 보는 방식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하며 약간의 경이감을 갖게 됐지요. 전문가의 의견에 단호히 맛설 수 있는 그들의 행동은 저한테는 아주 생소한 것이었어요.”

 

그와 페기는 환자 때문에 그만큼 화를 내 본 적이 없었다. ‘제발 이해를 좀 하라며 부모를 마구 흔들고 싶던 기억이 나요. 너무 답답했어요. 벽에다 계속 머리로 들이밀지만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기분이엇어요.’ 그만큼 열심히 하고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감사는 커녕 기껏 애를 써도 매번 원망만 듣기 일쑤였다. 메디캘은 상환율이 낮았기 때문에 그들의 서비스는 사실 자선행위에 가까웠다. 당시 메디캘 환자를 받아주는 소아과 의사는 그들 뿐이었다. 그들이 수입이 제일 적은 가정의학을 택한 것은 대부분 이타적인 동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가장 비협조적인 미국인 환자일지라도 의사에 대해 기본적으로 보이는 공손함을 리 부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몽족에게 미국인 의사들은 어떤 권위도 가질 수 없었다. 그들이 많이 알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몽족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는 문외한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몽족은 병원을 다른 모든 방법이 실패하고 나서야 마지막으로 찾는 끔찍한 곳으로 여겼다.

 

그런 몽족이니 의사의 권위를 인정할리도 없었다. 의사의 권위는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부여되는 것이다. 그러나 몽족은 그런 권위를 부여하는 문화를 공유하지 않았고 공유할 생각도 없었다.

 

의료계 경력이 얼마 안되는 사람들은 배우는 데 어마어마한 시간과 에너지와 공을 들인데다가 자신들이 의대에서 배운 걸 건강 문제를 다루는 유일하고 적법한 접근법으로 알고 있어요. 제가 보기엔 그래서 아직 어린 의사들이 몽족 환자가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발끈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서구 의학이 할 수 있는 게 대단한 게 아니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니까요.”

 

그러나 의사들 역시 몽족을 인정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엿다. “그들이 다녔던 의대에선 떠도는 영혼 때문에 병이 날 수 있고 닭의 목을 따서 병을 낫게 할 수 있다는 건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몽족이 이런 금기들을 자기 정체성 심지어 자기 혼을 지켜주는 것으로 여긴다는 것을 알 길이 없었다.”

 

이책은 몽족과 의사의 신념이 충돌할 때 일어난 비극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쁜 의사들 같으니!’ ‘나쁜 부모들 같으니!’ 간질을 앓는 아이인 리아가 두 문화가 충돌하면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고 결국은 간질이 악화되어 식물인간이 되는 이야기이다.

 

자신이 할 일은 좋은 약을 쓰는 것이고 리아의 부모는 따라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물론의사와 부모가 계속해서 협상을 한다면 서로 의견이 달라도 갈등은 신념 체계의 차이로만 그칠 수 있다. 그러다 경찰이 불려 오고 법원의 명령을 받게 되면 차이는 더 이상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의사는 경찰을 부르고 국가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만 몽족에겐 그런 힘이 없다.”

 

리아의 케이스는 몽족 사회에는 의료 종사자들에 대한 최악의 편견을 의료계에는 몽족에 대한 최악의 편견을 확실히 심어주었다.”

 

이 비극에서 누구도 악의는 없었다. 그러나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면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저자도 저자가 인터뷰한 의사들은 생각한다.

 

캘리포니아의 머세드에 있는 군립병권에 가게 된 것은 그곳에서 몽족 호나자와 의료진들 사이에 이상한 오해가 벌어지고 잇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둘의 만남은 어지럽긴 했어도 정면충돌은 아니었ㄷ가. 그리고 둘 다 상처를 입었으나 양쪽 모두 무엇에 부딪친 것인지 어떻게 충돌을 피할 수 있는지 모르는 듯했다.

 

머세드 병원 역사상 최악의 분쟁이었던 리 부부의 딸 리아의 사례에 대해 듣고 그 가족과 의사들을 알게 된 후 나는 진심으로 양쪽 모두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깨달았다. 그리고 두 가지 질문을 자주 곱씹어보곤 했다.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일까?’ ‘어떤 부모가 좋은 부모일까?’

 

이따금 나는 그 녹음들을 밤늦게 들으며 몽족과 미국 두 문화를 합성할 수 있다면 어떤 소리가 날지 상상해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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