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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경제경영 2011-02-27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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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공병호의 대한민국 기업흥망사

공병호 저
해냄 | 201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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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 쌍방울, 우성, 새한, 뉴코아, 대농, 한일, 갑일, 쌍용, 해태, 한보, 극동, 동아 그리고 대우.

이 이름들의 공통점은 외환위기와 함께 사라져간 재벌들이란 것이다. 외환위기는 재벌의 위기였다. 그러나 그 위기는 2류 재벌의 위기였다. (다음은 외환위기에 대해 썼던 글을 재활용한 것이다. 외환위기에 대해 새로 쓰기엔 게으름을 이길 수 없었다.)

“외환위기는 공식적으로 1997년 11월 7일 환율절하와 함께 시작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위기는 1996년부터 시작되었다. 1995년부터 수출이 줄면서 내수가 위축되었고 1996년 이틀에 하나씩 189개 건설회사가 파산했다(그 중 대다수는 대형건설사들이었다). 건설업이 무너지면서 철강수요가 줄어든데다 자동차, 기계, 전자, 조선업 등 수출부문의 수요감소가 겹치면서 1993-95년 반도체 호황으로 내수경기가 좋을 때 시설을 확장한 한보, 삼미, 기아가 차례로 무너졌고 역시 호경기 때 사세를 확장했던 해태, 뉴코아, 대농, 진로, 한신 등 내수부문의 재벌들이 무너졌다. 1999년 5대 재벌 중 대우가 파산할 때까지 25개 재벌이(이중 40%는 외환위기 직전에) 빚의 무게에 압사당하면서 외환위기는 막을 내린다.

그러나 정작 수출을 주도하던 삼성, LG, 현대, 대우는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다. 대우의 파산은 자동차 산업에 무모한 투자를 한 것이 원인이지 전자산업과는 무관하다. 1995년 주력인 반도체 부문의 수익이 감소하자 삼성전자는 TV, 냉장고, 핸드폰 등의 마케팅에 주력했다. 1996년 반도체 판매가 17% 감소했지만 비 반도체부문 매출이 31% 증가하여 삼성전자의 1996년 매출은 1995년을 상회한다.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는 것이 아니다’는 속담처럼 다각화는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한 전략이다. 그러나 2류 재벌들은 그러한 전략을 구사하기엔 너무 작았다. 리스크를 분산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매출을 자동차, 철강, 건설, 유통 등 특정 시장에 의존하던 한보, 삼미, 기아. 해태는 파산할 수 밖에 없었다. 2류 재벌들이 무너지면서 상위재벌들의 경제지배력은 더욱 강화된다. 1996년에서 1999년 30대 그룹 중 4대 그룹의 자산은 전체의 48%에서 58%로 증가하였다.

경제의 집중도가 높으면 기업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어떤 중간재를 만들던 그룹 안에서 대량으로 소화할 수 있으므로 다양한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경제전체로 볼 때 제품의 다양성이 줄어든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부에서 해결하는 수직계열화는 거대한 고정비용을 만든다. 부품과 원료를 내부에서 조달한다면 중간재를 공급하는 자회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동일한 투자로 되도록 더 적은 품목에 더 많은 물량을 만들어야 비용을 낮출 수 있고 그룹 전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므로 재벌은 소수의 산업에서 적은 품목의 제품을 만들게 되었고 철강, 자동차, 전자제품, 반도체 등 규모가 클수록 유리한 시장에서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윤율보다는 규모와 시장점유율을 우선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시장구조에서 재벌이 만드는 제품의 다양성은 줄어들었고 반도체 등 재벌의 주력시장이 침체된 것이 외환위기의 원인이 된 것처럼 해당 시장의 주기에 따라 재벌에 의존하는 한국경제 역시 번지점프를 하면서 외적 충격에 취약한 경제구조를 갖게 되었다.

외환위기 이전 한국과 (경제집중도가 낮은) 대만의 반도체 산업을 비교하면 한국은 시장규모가 큰 메모리에 특화되어 있었고 대만은 특수한 목적에 맞춘 소량, 다품종 생산에 특화되어 있었다. 물론 장난감 강아지가 ‘왈왈’ 짖는 소리를 내는데 쓰이는, 주문자의 필요에 맞추는 칩들이 반도체 시장의 꽃이라 할 수는 없고 그러한 차이는 수출규모의 차이로 나타났다. 반도체뿐 아니라 상위 재벌들이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에 특화한 것 역시 동일한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리스크가 크게 마련이다. DRAM 가격이 오르면서 공급이 늘었고 공급이 늘면서 1995년 $54이던 16M DRAM의 가격은 1996년 $13, 1997년 $3로 폭락한다. 메모리 가격이 떨어지면서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대만은 다른 제품을 팔아 충격을 비껴갔지만 수출의 12%를 메모리에 의존하던 한국은 충격을 완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외환위기를 겪게 된다.

1995년 30%에 달하던 수출증가율은 1996년 마이너스로 돌아선다. 반도체뿐 아니라 1996년 한국의 주력시장인 석유화학, 철강, 전자 시장에서 평균수출가격은 1995-96년 6%, 1996-97년 15% 떨어진다. 그러나 다양한 제품을 수출하는 대만의 수출단가는 같은 기간 한국의 반정도 떨어지는데 그쳤다.

그러나 수출이 어려워지면서 파산한 것은 수출기업이 아니라 건설, 철강, 유통 등 내수업종에 종사하는 2류 재벌들이었다. 충분히 다각화되어 있는 상위재벌들은 리스크를 회피하기에 충분히 다양한 제품군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상위재벌들에게 자원이 집중된 결과 경제 전체로는 다양성이 작아질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외부충격에 취약한 경제구조로 나타났으며 그 극적인 결과가 외환위기였다.

철강, 건설업종의 과잉투자를 외환위기의 원인이라 말한다. 상위재벌이 지배하는 전자, 자동차 등과 달리 철강, 건설업은 진입장벽이 낮은 업종이었다. 외환위기로 무너진 2류 재벌들은 5대재벌의 지배력이 덜한 업종에 진출할 수 밖에 없었다. 수출수요가 갑작스럽게 감소하면서 경제전체가 충격을 받았을 때 5대재벌에선 1/5이 2류 재벌에선 반이 3류 재벌은 1/3이 무너져 2류 재벌이 가장 심한 타격을 받았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력은 더욱 집중되었고 경제의 활력은 집중도와 반비례해 줄어들었다. 저성장, 양극화는 집중도 증가의 결과이다. 오늘날 한국경제를 먹여살리는 산업은 전자,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등이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70년대에 씨가 뿌려진 산업들이라는 것이다. 그 이후 한국경제의 역동성은 사라졌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한때 벤처붐이 한번 있었다. 경제력 집중이 완화되고 경제의 성장동력이 만들어질 것이라는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잊혀진 꿈에 불과하다. 외환위기로 그 많은 2류들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그들의 생존은 87년에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책에서 다루어지는 사라진 재벌들의 대다수는 다각화에 실패해 무너졋다. 다각화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다각화는 분명 필요햇다. 주력업종이 사양길을 걷고 있거나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할 수 없거나 업종 자체의 성격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변덕이 심한 널뛰기를 하거나 이책에서 다루어지는 2류들이 다각화를 한 이유는 여러가지이다. 대부분은 87년을 전후한 충격에 대한 대응이었다고 볼 수 있다. 몇 년만에 임금이 3배가 오르면서 사업성이 없어진 섬유업종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이책은 2류 재벌들이 직면했던 구조적인 문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언제 사업이 어렵지 않은 때가 있었는가? 언제 어디서나 어려움은 차고 넘친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문제를 인식하고 해법을 내놓는 사람이 문제이다. 저자의 관점은 그런 것같다.

실패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배우기 위해서다. 성공사례를 보아 봤자. 배울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성공이 그때 그 사람에게 특수한 상황이고 행운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누구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해서 성공할 확률은 0.3%이다. 어떤 새로운 기술을 기초로 제품을 만들려는 회사를 차린다고 하자. 회사가 성공하려면 자금, 사람, 설비, 고객 등 10가지 요소가 필요하고 이 모든 것이 맞아떨어질 뿐더러 서로 상승작용을 해야 성공을 한다. 드물 수 밖에 없다.” (‘실패학의 법칙’ 리뷰에서)

실패도 성공만큼이나 드물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산업재해보험사의 조사관이었던 하인리히는 하나의 사고가 나기 전엔 29건의 사소한 사고가 있었고 300건의 아차할 뻔한 불발사고가 있었다고 말한다. 사고 즉 실패가 나올 확율은 0.3% 이하이다.

그러나 실패는 성공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사고를 막으려면 28건과 300건의 불발사고가 났을 때 메커니즘을 고치면 실패를 막을 수 잇다. 성공처럼 10박자가 맞아떨어져야하는 어처구니없는 수준의 확률을 다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류 재벌들의 실패를 돌아보는 것은 87년을 전후해 한국경제의 체질변화란 도전이 무엇이엇는가보다 그 도전에 응전하는데 왜 실패했는가 그들의 대응에서 어떤 메커니즘이 잘못되었는가를 돌아보는 것이다. 저자는 무너져간 2류들이 왜 망했는가를 더듬으면서 많은 경우 피할 수 있는 인간적인 이유들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여러가지 이유를 들고 있지만 과욕, 과신, 과속의 3과로 요약한다.

대우의 예를 들어보자. “나는 일을 벌이기를 좋아한다. 도대체 가만히 잇지를 못하는 편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움직여야 한다.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자꾸만 일을 만들어내게 된다.” 김우중 전회장의 말이다.

저자는 대우의 성공과 실패가 모두 이말에 있었다고 말한다. 많고 세계는 넓다는 ‘세계경영’은 일 벌이기 좋아하는 김우중 철학의 궁극이엇다. 그러나 “전선은 엄청나게 넓어졋지만 실질적인 경영은 현장의 전문경영인이 아니라 여전히 김우중 회장 혼자서 진두지휘하는 형식이엇다. ‘대우그룹이 그처럼 전선을 넓히는 세계경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시스템적 노하우를 갖고 잇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대우그룹의 기업 확장전략에서는 시스템적인 접근보다는 김 회장의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 이루어진 부분이 많았다. 대우그룹의 문제는 기업 규모가 재계 3위로 커졌는데도 김회장이 혼자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한 점이었다. 과감한 도전 정신이 무모함으로 연결되지 않기 위해서는 체계화된 과정을 통해서 육성되는 실질적인 경영자 풀이 존재해야 했다. 그리고 회장은 자신의 능력을 과도하게 신뢰하지 않고 권한위임으로 각자가 자기 역할 이상을 맡도록 독려해야 햇다.” 그러나 일 벌이기 좋아하는 부지런한 오너는 권한을 위임하지 않았다. 사람을 키우지 못했고 주변 사람들을 거수기로 만들었으며 시스템도 갖춰지지 않았다. “제대로 사람 움직이기가 사업의 핵심이라면 김우중회장은 매우 중요한 조직관리 부분에서 실패를 보이고 말앗다.”

지금 와서 대우와 함께 죽어간 기업들에게 이책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죽음이란 수업료를 내고 가르쳐준 교훈은 기억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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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현장 | 경제경영 2011-02-2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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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똑바로 일하라

제이슨 프라이드, 데이비드 하이네마이어 핸슨 공저/정성묵 역
21세기북스 | 201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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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별거 아니다. 흔하디 흔한 경영 에세이다. 어떤 한가지 뚜렷한 주제를 놓고 그 주제를 논하는 책이 아니라 회사를 경영하면서 느낀 것 경험한 것을 두서 없이 이것 저것 늘어놓았다는 말이다. 이책은 저자들이 직원들을 상대로 회사 블로그에 포스팅햇던 것들이고 책으로 낼 생각은 없던 것이다. 그때 그때 생각나는대로 필요에 따라 쓴 것들을 편집한 것이니 이책에서 어떤 체계를 기대할 수는 없다.

물론 이책의 내용은 주제 별로 분류되어 있다. 그러니 체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책은 처음부터 읽어나갈 필요 없이 아무데나 어디 부분을 읽어도 되니 체계가 있다고 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체계가 없다는 것은 이책의 장점이기도 하다. 체계를 위해 내용을 잘라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책을 읽다보면 저자들이 회사를 어떻게 경영하는지가 그려진다. 따끈한 생생함이 그대로 책에 담아졌다는 말이다.

이책의 내용은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다른 책에도 다 나오는 것들이다. 계획, 회의, 사훈(또는 비전), 자금조달, 인력채용, 성장이냐 이익이냐, 핵심역량, 등등. 그리고 그런 주제들에 대한 내용도 새롭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책은 읽을 가치가 있는가? 결론을 말하자면, 있다. 현장의 생생함 때문이다.

“일을 할 때는 그 일을 하는 이유를 늘 잊지 말아야 한다. 위대한 기업에는 위대한 제품이나 서비스만이 아니라 위대한 가치관이 있다. 우리도 소신이 있어야 한다. 무엇을 위해 싸우려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 뒤에는 세상을 향해 그 소신을 펼쳐야 한다.

강한 소신은 열혈팬을 끌어들인다. 굳이 광고를 내지 않아도 입소문만으로 인기가 훨씬 더 빠르고도 멀리까지 퍼져나간다.”

쉽고 간결하다는 것 외에는 새로울 것이 없다. ‘Built to Last’와 ‘Good to Great’ 이후 상식이 된 견해를 저자 나름의 말로 풀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강한 소신에는 대가가 따른다. 적잖은 사람이 등을 돌릴 것이다. 오만하고 고집스럽다는 비난이 날아올 것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이런 말을 해주는 책은 정말 정말 드물다. 좋은 가치의 장점만 말하지 그 난점은 빠진 경우가 경영서적의 약점이다. 이유야 여러가지이겠지만 실제 현장의 목소리가 아니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그러나 이책은 경영의 상식을 현장의 관점에서 쉽고 간결하게 말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책은 현장의 실무에서만 알 수 있는 내용들로 채워진다.

“결정을 미루면 미해결 문제가 쌓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문제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거나 성급하게 처리된다. 그 결과 미해결 문제는 언제까지고 미해결 상태로 남는다. ‘생각해보자.’ 이말보다는 ‘결정을 내리자’가 낫다. 완벽한 해법을 기다리면 끝이 없다. 결정을 내리고 속히 진행해라. 이왕이면 결정의 흐름을 타는 게 좋다.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 일사천리로 결정을 내리면 일의 진행에 탄력이 붙고 사기가 올라간다. 당신이 내린 결정 하나하나는 기초가 쌓이는 벽돌이다.”

경험에서만 얻을 수 잇는 요령 또는 지혜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책의 새삼스럽지 않은 내용이 새삼스러워지는 이유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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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맑스주의자가 아니다’ | 경제경영 2011-02-25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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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마르크스의 복수

메그나드 데사이 저/김종원 역
아침이슬 | 2003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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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한 나는 맑스주의자가 아니다.” 이책은 맑스의 이 말이 무슨 의미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쓰여졌다. 저자는 맑시즘의 역사를 개괄하면서 맑스의 사상이 어떻게 왜곡되었고 그 왜곡 때문에 어떻게 맑시즘이 자멸해갔는가를 추적해 나간다.

저자는 맑스의 이론은 아직도 아니 오히려 지금이기에 더 유효하다고 말한다. 자본주의는 맑스주의자들이 갈망해마지 않고 맑스의 이름을 빌려 예언해 마지 않았던 것처럼 쓰러져 죽어가는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어느 때보다 더 승승장구하며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지구를 정복하는데 성공했다. 저자는 “이 지점이 맑스가 그 적실성을 다시 얻는 지점”이라 말한다.

“자본주의가 의기양양하게 득세하고 전지구적으로 확장되는 가운데 이로 인해 명예를 회복할 자는 바로 마르크스이다. 애덤 스미스 이후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이해하고자 진지하게 시도한 인물은 오직 마르크스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르크스 이래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슘페터가 근접하긴 했지만 말이다.” 맑스를 다시 보아야 하는 이유라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맑스는 소련 공산당의 신학자들이 신으로 만든 맑스는 아니다. “1917년 10월혁명으로 착수된 사회주의 실험의 파탄은 무신론자인 그가 지옥이든 연옥이든 천당이든 어디든 살아 있다면 그를 슬프게 하기는커녕 기쁘게 할 것임이 틀림없다.” 볼셰비키와 아시아, 아프리카의 볼셰비키 사촌등이 마르크스를 팔아 마르크스의 이름으로 만들어 놓은 저 끔찍한 유산이 일단 버려지면 마르크스는 진지한 그러나 무오류는 아닌 사회천문학의 이론가로 등장할 것이다.”

“맑스의 사상은 재검토되었다. 공백과 부적절한 지점이 발견되었다. 그의 경제이론은 이미 1900년대에 루돌프 힐퍼딩과 이어 레닌의 손에서 수정과 정정을 겪은 바 있다.” 맑스가 무오류의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이상 당연하고 필요하며 바람직한 일이다. 맑스는 어디까지나 이론을 만든 것이지 경전을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바람직한 수정과 보완이 아니라 맑스가 살아있었다면 충격을 받았을 방향으로 수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국가, 계급, 정치 변동의 주체 등에 대한 이론이 모두 결여되어 있다고 지적되엇다. 생산양식의 이행에 대한 그의 분석은 너무 단순하고 너무 기계적이라고 이야기되었다.”

그러나 맑스가 살아있었다면 그런 비판에 대해 어이없어 했을 것이라 저자는 본다. “그는 틀리지 않았고 단순하지 않았으며 기계적이지도 않았다.”
그런 비판은 맑스가 하지 않은 것을 햇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산양식도 자신의 잠재력을 죄다 소진하지 않는 한-말하자면 자신의 역동성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맑스는, 적어도 후기 맑스는 유혈혁명 같은 인위적인 수단으로 생산양식이 이행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저자는 본다. “자본주의의 한계는 자본주의가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을 때 도래하겟지만 그 한계가 감지되는 것은 자본주의의 기제를 돌리는 사람들의 나날의 실천 속에서일 것이며 또한 자본주의가 극복되는 것도 그들에 의해서일 것이”라고 맑스는 생각햇다고 저자는 본다. 자본주의의 종말은 혁명 같은 외적 충격에서 오지 않고 시스템 내부에서 올 것이며 그것은 진화적 과정일 것이라는 것이다. 종말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본주의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종말은 백년 후일수도 6백년 후일수도 잇다.

“마지막에 웃는 사람은 맑스였다. 21세기 초두에도 계속되는 자본주의의 역동성은 맑스가 맑스주의자들에게 내리는 복수이다. 맑스의 이름으로 기만하고 속이고 살해하고 거짓 희망을 내놓은 사람들 모두에게 내리는 복수인 것이다. 그러한 과실이 남긴 파편 더미로 인해 사회 변화에 관한 사상은 대거 왜곡되었다. 맑스로 다시 돌아가 자본주의의 강점과 그 역동성의 비밀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20세기의 쓰디쓴 경험을 거치고도 언제 이 한계가 도래할 것인지 묻는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맑스는 역사의 천문학자이지 점성술사가 아니다.” 그리고 맑스로 돌아가기 위해선 애덤 스미스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저자는 본다. 최초의 사회천문학자는 애덤 스미스이고 맑스는 스미스가 개척한 길을 따라간 것뿐이기 때문이라 저자는 말한다.

“맑스는 정치경제학 연구를 통해 자본주의의 비밀을 탐색했지만 그가 염두에 두었던 것은 헤겔을 경유하여 애덤 스미스와 스코틀랜드 계몽철학자에게서 물려받은 역사 이론을 확장하는 것이었다.”

애덤 스미스와 그의 스코틀랜드 동료들은 뉴튼이 자연세계를 설명해냈듯이 인간세계를 설명하려 했다. 스미스의 “방법은 뉴턴식 의미에서 과학적이었다. 스미스는 오직 단일한 변수를 찾는다는 점에서 뉴턴을 좇았다. 넓은 의미에서 그 변수는 자기 이익이다.” 스미스가 말한 자기 이익은 이기심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는 인간은 자신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단순한 전제를 채택했을 뿐이다. 그런 전제에서 “수렵에서 상업으로의” 이행은 진보였다. 인간이 자기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상업을 옹호하는 선봉에 섰다. 그는 (나중에 자본주의라 불리게 될) 상업 시대가 봉건 시대에서 한 걸음 진전한 것임을 보여주고 싶어햇다.” 상업 시대 또는 자본주의는 불평등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들은 더 평등했지만 더 궁핍하기도 햇다. 근대 세계는 더 불평등하지만 더 높은 소비 수준을 제공한다.”

상업 시대가 더 불평등하지만 더 풍요로운 이유는 노동분업 때문이다. “거기에는 분업이 가져온 우월한 생산성이 있었다.” 물론 어느 사회든 노동분업 위에 성립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그 분업을 더 극대화했다는 점에서 우월하다. 자본주의가 분업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게 보장하기 때문이라 스미스는 말한다. “자기 노동과 자기 재산의 열매를 누릴 수 잇다는 확실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 열심히 일하도록 자극함으로써 생산성을 향상시켰다.”

스미스에게 자본주의는 “유토피아가 아니엇지만 확실히 진보였다.” 스미스는 그 이상을 보지 않았다. 그에겐 새롭게 떠오르는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것이 중요햇다. 그러나 헤겔에겐 그 이상이 필요햇다.

헤겔이 학창 시절부터 고민한 것은 “경건함의 상실이었다. 즉 자신이 볼 때 이제까지 도덕 공동체를 규정해 온 능동적인 프로테스탄 공민 도덕이 상실된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엇다.” 개인의 자기 이익이 우선되는 시장의 힘 앞에서 ‘이 도덕 공동체가 와해될 위협 아래 있었다.”

헤겔이 평생토록 씨름한 것은 “공민사회에서 어떻게 공적 행동이 윤리적일 수 있을지 발견하는 것이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단절이 존재햇다. 사적 도덕성과 공적 행위 사시의 이념적 일치가 깨져 버렷다. 현대 생활은 개인을 인간과 시민으로서의 이중적인 자격이라는 면에서 사적 인격과 공적 인격으로 나누어 놓앗다.”

프랑스 혁명 이전에는 “사람들 각자가 다른 사람을 돌보았다. 영주는 농노가 곤궁에 처하면 그를 보살폈다. 교회는 선행의 규칙을 세웠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인격적 유대에 바탕을 두엇다. 이제 갑자기 화폐가 이 모든 것을 뒤엎고 사회적 관계에 새로운 유동성을_정말이지 경박성을- 도입하고 잇었다. 사물은 그 가치가 화폐의 견지에서 평가되었다. 인간관계는 비인격적 교환에 기초를 두었다.”

헤겔의 프라젝트는 애덤 스미스가 그렇게 경멸하고 반박하려 햇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회고적이고 과거에 대한 향수에 기초한 것이었다. 사람들이 공동체의식으로 묶여 있고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인간과 시민-이 하나엿던 그 황금시대를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 것인가?”

헤겔에게 자유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엇다. 프랑스 혁명 직후의 공포정치는 자유가 절대적이라는 ‘망상’ 때문에 일어났다고 헤겔은 보았다. 모든 개인의 자유가 절대적이라면 권위는 불가능하고 통치도 불가능하다. 가능한 것은 자유와 자유의 투쟁 뿐이며 폭력만이 해결책이 된다.

자유는 공동체에서만 현실적이다. “자신들이 공동체 속에서 살아야 할 필요를 내면화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을 때만 개인은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국가를 불신하고 국가가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 시장은 제대로 굴러간다고 생각했던 애덤 스미스와 달리 헤겔은 현실적인 자유가 가능하려면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스미스가 말한 자기 이익 때문이다. 자기 이익에 충실하고 그 이익을 추구할 자유가 있는 “시민사회의 개인들인 부르주아지에 대응하는 균형추는 이해관계에 초연한 공무원 계급이엇다. 이들은 보편 계급을 구성하였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이해가 전체로서 공동체의 이해와 부합햇기 때문이다. 헤겔이 보기에 절대정신(공동체의 의지)의 그 같은 인격적 구현은 필수적이엇다.”

맑스는 헤겔이 그랫듯이 자본주의가 진보라는 애덤 스미스에게 동의했다. 그러나 공동체의 선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헤겔에게도 동의햇다. 맑스의 문제의식은 헤겔과 같았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에서 달랐다. “그는 단순히 역사의 종착점을 헤겔과 다르게 그려낸 것이 아니엇다. 그는 세계를 그 종착점 쪽으로 움직이고자 적극적으로 시도햇다. 철학자의 임무는 단지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햇다. 맑스는 그런 종류의 철학자엿다.”

맑스는 관료가 보편계급이라는 헤겔의 주장에 도전했다. 관료는 유산계급에서 오기 때문에 보편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보편성을 담지할 계급은 어떤 권리도 없는 계급에게서 찾아야 하며 그 계급은 프롤레타리아트란 결론에 이른다.

“사회의 다른 모든 영역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 그리하여 그 모든 영역을 해방시키기 않고는 해방될 수 없는 한 영역, 한 마디로 인간성의 완전한 상실인, 따라서 인간성의 완전한 되찾음에 의해서만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는 한 영역의 형성에 있다. 하나의 특수한 계급으로서 사회의 이와 같은 해소제는 프롤레타리아트이다.”

그러므로 (저자가 보기에 자칭) 맑스주의자들이 혁명론을 외친 이유는 맑스 자신에게 있었고 맑스의 말에 충실한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세계는 아주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철학자의 어떤 도움 없이도. 그 변화는 워낙 급속해서 맑스는 이론화해야 할 것이 별로 남아 잇지 않다고 생각했던 젊은 시절의 판단과는 달리 전 생애에 걸쳐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본주의 드라마를 파악하고자 노력해야 햇다.”

청년 맑스와 후기 맑스를 가르는 것은 그 노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1830년대 후반 및 1840년대 초반의 철학적 활동은 1968년 5월과 베트남전 반전 운동 당시의 열띤 시절만큼이나 열병을 앓고 있었던 듯이 보인다.” 맑스주의자들을 지배한 것은 그 열병을 앓던 시절의 맑스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정말이지 유연한 ‘후기’ 맑스엿다. 불가피한 역사의 법칙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산당 선언’에 나타나는 맑스 문체의 힘은 그의 추종자들로 하여금 자본주의의 극복이 임박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맑스 자신조차도 ‘자본론’을 완성하느라 시간이 계속 늘어져 가자 자신이 작업을 마치기도 전에 자본주의가 사멸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햇다. 그러나 이 무모한 희망은 1871년 이후 거두어졌다. 그러나 그의 추종자들은 자본주의가 실로 그 한계에 도달했고 붕괴가 멀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맑스의 사상에는 두가지 핵심이 있다. 첫째 무엇이 자본주의를 작동하게 하는가, 다시 말해 이윤이 어떻게 노동자 착취에서 생성되는가 하는 것이다. 둘째 자본주의의 미래에 관한 것이다.”

맑스의 자본주의 동학의 핵심은 잉여가치설이다. 잉여가치설의 디테일은 복잡하고 논쟁이 치열하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요점은 분명하다.

“고용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노동자를 고용할 자본가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진실이다. 그래서 이 차이가 좁혀질 정도로 임금이 오르면 자본가는 손실을 감당하기보다는 오히려 공장을 옮기는 것을 택할 것이다.” 세계화의 쟁점이 되는 산업공동화는 바로 이윤의 동학, 맑스식으로는 잉여가치의 동학으로 간단하게 설명된다.

이책에선 자세하게 다루지 않지만 네오리카도주의자들은 잉여가치를 단순하게 계급투쟁에 의해 결정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잉여가치를 결정하는 구체적인 과정이 어떻든 이윤의 몫을 어떻게 나누는가는 자본주의 동학에 핵심이며 이것이 저자가 맑스가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간파한 최초이자 마지막 경제학자라 말하는 이유이다.

“맑스는 전 과정을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갈등으로 보았다. 그는 호황 때는 고용이 증가하고 실업은 줄어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은 임금에 압박을 가하여 노동자들의 몫을 끌어올리고 이윤의 양과 이윤율을 낮출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자본가들이 노동 절약 기술을 끌어들여 이윤의 감소 뿐 아니라 고용과 임금의 증가를 뒤집으려 할 것이라고 맑스는 지적했다. 이것은 10년 또는 20년을 주리고 경기순환을 낳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맑스는 이윤을 회복하려는 시도가 경기순환을 낳을 것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이윤율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확신했다.”

자본주의의 역학은 이윤율이 핵심이라는 맑스의 명제는 경제의 일상용어로도 재확인된다. “이른바 경쟁력-회사든 부문이든 혹은 경제든-은 생산물의 단위노동비용으로 측정되곤 한다. 단위 비용이 낮으면 낮을수록 생산물이나 부문이나 경제의 경쟁력은 더욱 커진다. 간단하게 말하면 기술이 단위노동비용을 떨어뜨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노동 생산성을 증가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윤율은 떨어질 것이다. 이것이 신문의 경제란과 속이 타는 재무장관들이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다. 임금이 생산성 증가보다 더 빠르게 상승해선 안된다.”

자본주의의 미래는 자본주의가 이윤율 하락의 경향을 반전시킬 능력에 달려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맑스의 분석이 모호하게 보이기 때문에 맑스주의의 좌우 분열이 일어났다고 저자는 본다.

그러나 저자는 자본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본주의가 경기순환을 주기적이고 완만한 이윤율 저하 경향을 보이며 살아 나갈 것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자본의 반격’ 리뷰에서 보았듯이 실제 자본주의 역사를 보면 19세기 말과 1960년대의 이윤율 저하 경향을 반전시키면서 자본주의는 여러 번 부활할 수 있었다. 산업자본주의 이전의 자본주의에서도 브로델과 아리기는 여러 번의 이윤율 저하 경향의 위기를 극복해 나간 역사를 그린다. 그리고 위기의 극복은 언제나 세계화로 나타났다.

최초의 맑스주의 정당인 독일 사민당이 창립된 이래 맑스주의에는 좌우 분열, 구체적으로 “혁명적 요구와 개량주의적 요구 사이의 긴장”이 있어왔다.

“긴장은 맑스 자신의 모호한 정식화에서 연유한다. ‘공산당 선언’의 혁명적 전망은 ‘자본론’ 1권의 한 장에서 반복 언급되고 잇지만 (자본론 전체의 체계가 그리는)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복잡한 분석적 이해는 맑스를 훨씬 더 미묘한 해석을 내포한 이해로 인도하엿다. 어느쪽이 맞는 것인가?”

저자는 좌파를 통속적 맑스주의라 부른다. “전 세계 수백만 사회주의자에게 이데올로기적 기치로 복무해 온 맑스주의는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자본주의 상은 자본론에 의해 지지 받지 못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통속화는 필연적이엇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본론의 계시록적인 제 32장조차도 자본주의의 임박한 붕괴를 예언하는 것으로는 읽힐 수 없다. 그 장은 단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보다 시간이 덜 걸릴 것이라는 점만을 말한다. 그러나 그 기간은 4백년일 수도 잇고 6백년일 수도 잇다. 어떤 정당도 지지자들에게 그런 약속을 하면서 유지될 수는 없다. 그래서 독일 사민당은 시간표를 단축시켜야만 했다.”

그 분열의 “근원은 물론 자본주의 동학에 관한 것”이었고 구체적으로 이윤율 저하경향의 극복에 관한 것이엇다. 저하 경향을 극복할 수 있는가 없는가? 19세기 말의 극복을 맑스주의자들은 제국주의란 이름으로 불렀다.

그리고 제국주의 최후의 전쟁인 1차대전은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를 보여주었다. “독일인은 자신들의 전시 계획 경제의 경험을 ‘전쟁 사회주의’라고 불렀다. 여기에 의식적으로 중앙으로부터 운영된 선진 경제의 최초 사례가 있었다. 독일의 전쟁 사회주의 경험은 러시아에서 큰 관심을 끌었는데 특히 러시아 사회주의자는 독일의 업적에 매료되었다. 독일의 경험에 대한 레닌의 감탄은 1917년 11월 러시아에서 권력에 오른 이후 그의 사고 방향을 규정하게 된다.”

그러나 경제를 ‘계획’한다는, “경제를 기계처럼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19세기 사고로는 낯선 것이었다. 맑스는 이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한 적이 한번도 없는데 그에게 경제란 (복잡계 이론에서 말하듯0 자기 조직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사회’가 의식적인 방식으로 경제를 운영하겠지만 그런 그것은 언제일지 모르는 미래의 일이었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으로 맑스주의의 권위가 독일 사민당에서 볼셰비키에게 넘어가면서 ‘계획경제’는 맑시즘의 표준이 되었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 자체도 그 결과도 맑스의 이론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 세대의 맑스주의자들은 이런 의문을 가졌다. “러시아 자본주의의 후진적 상태를 감안할 때 어떻게 러시아가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할 수 있었단 말인가? 맑스주의 이론의 예언과는 그리도 배치되는 혁명에 어떻게 맑스주의적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혁명의 당사자인 트로츠키도 던졌던 것이다. 그의 답은 ‘배반당한 혁명’과 ‘국가자본주의’였다. 요점은 모든 것이 스탈린 때문이라는 것이다.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의 죄상을 폭로한 후 맑시즘에 대한 소련의 권위가 사라진 후 트로츠키의 대답은 표준이 된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설명은 이렇다. 혁명 직후 일어난 내전에서 혁명의 지지층인 노동자들이 전사하면서 무력화되엇고 스탈린의 당관료들을 견제할 세력이 거세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레닌의 혁명은 스탈린의 광기에 먹혀버린 것은 내전 때문이다.

“그러나 혁명이 어떻게 한 개인-그가 아무리 막강하다 하더라도-에 의해 배반당하는 일이 가능할까?’ 저자는 러시아 혁명의 실패는 레닌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레닌은 물론 스탈린도 사회주의 혁명은 러시아식이 모범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볼셰비키식의 혁명은 다른 나라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고 저자는 말하낟. “민주적 관행과 공개적인 노조 환행 속에서 훈련되지 못한 그리고 몇몇 도시 중심지에 집중되어 있는 소규모 노동자 계급을 가진 나라에서만 레닌주의 정당이 들어설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햇다. 노동자 계급이 대규모이고 그 계급이 노조와 합법적인 정치 참여를 통해 투쟁과 타협을 주고받는 경험을 한 곳에서 노동자 정당은 오직 공개적으로 활동할 때만 그리고 부분적인 성과물을 가져다줄 것으로 여겨질 때만 정치 게임을 수행할 때만 노동자 사이에서 우위를 유지할 수-노동자의 충성을 독점하지는 않더라도-있다. 독일 사민당은 그러한 정당이엇다.”

저자는 이런 정당이 택한 노선을 ‘자본주의 내 사회주의’라 부른다. 이 노선은 독일 사민당이 주도권을 쥐었던 제2 인터내셔널의 시각이엇다. “이 관점의 목표는 복지국가를 만듦으로써 자본주의를 인간화하고 그 역효과를 누그러뜨리고 노동자와 빈민층의 처지를 개선하며 좀더 나은 공공서비스를 창출하는 것이엇다. 자본주의 내 사회주의의 문제는 잘 작동하는 , 번영하는 자본주의를 전제로 한다는 점이었다. 사민당에게는 자본주의를 보존하고 자본주의가 좀더 잘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과제가 되었다.” 저자는 이런 개량주의 노선이 맑스의 이론에서 자연적으로 도출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볼셰비키가 일으킨 사회주의의 혁신은 그런 시각을 뒤집었다. 저자는 이 노선을 ‘자본주의 밖의 사회주의’라 부른다. 이들이 실제로 만든 사회주의는 맑스가 말한 “사회주의가 아니었다. 이것은 국가자본주의였다.” 그리고 러시아 혁명의 실패는 국가자본주의와 함께 예정된 것이었다고 저자는 본다.

“러시아적 맥락에서조차 레닌주의 정당은 자신의 조직적 특성 덕분에 권력을 얻은 것이 아니다. 우연에 의해 권력에 오른 것이다. 그러나 볼셰비키는 의식적인 계획으로 권력을 계속 거머쥐었다.” 러시아 혁명은 좌파 파시즘으로 진화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레닌주의 정치의 하부구조는 국가자본주의였다.

“”레닌은 국가자본주의-독일의 전쟁 사회주의 체제-의 장점을 격찬하고 나선다.” 레닌이 생각하기에 국가자본주의는 러시아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엇다. 레닌의 “목표는 러시아에서 축적을 가속화하는 것이었고 그러려면 제대로 된 회계와 위계제적 경영, 그리고 노동자의 귱율이 필요했다. 노조는 축적의 필요에 종속되어야만 했다. 그리하여 레닌은 사회주의의 가능성이 현실화되려면 자본주의가 발전해야만 한다는 고전 맑스주의적 시각으로 되돌아온다.”

이때 자본주의에 대한 레닌의 태도는 부정적이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봉건제보다 낫다. 대규모로 조직된 자본주의는 소상품 생산보다 낫다.” 레닌은 “외국 기술자를 환영하고 기꺼이 사업허가를 내주었다. 볼셰비키는 경제가 걸린 문제라면 유연한 자세를 취햇다.”

그러나 유럽 혁명에 대한 전망이 사그라들고 국제적으로 고립되면서 레닌은 “러시아 경제를 발전시킬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건설한다는 희한한 전망에 집착하엿다. 볼셰비키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들의 사회주의를 진정한 사회주의라 규정했다. 그들이 말하는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성숙 후에 오는 것이라기보다 자본주의와 나란히 고지를 향해 경주하는 것이었다. 독일인은 전쟁 중에 계획화를 도입했지만 러시아인은 경제 전반에 걸쳐 계획화를 실행햇다. 그리고 원시적 축적을 위해 농촌을 이용했다.” 러시아에서 뽑아낼 잉여가 있는 곳은 오직 농촌 뿐이엇다.

스탈린의 좌파 파시즘은 레닌의 비전을 실천한 것뿐이다. ‘낙후한 경제의 (강제적) 공업화를 위해 계획 경제를 수립하면서 스탈린은 전인미답의 길을 걸었다. (잉여를 축적하지 않고 써버리는) 소비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강하게 통제되었다. 모든 잉여는 (공업화를 위한) 자본재 부문을 확대하는데 투입되었다.”

그러나 농업 집산화는 스탈린의 독창적인 정책이었다. 러시아에서 유일한 잉여물인 “농산물이 공업화를 위해 징발되는 속도가 떨어지는 것을 참고 볼수가 없었던, 그리고 러시아 농민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잉여 농산물 가격을 지불할 의사가 없었던 스탈린은 1931년 집산화 캠페인에 착수했다. 그렇게 무자비하게 자기 국민을 대상으로 전쟁을 수행한 정부는 이제껏 없었다. ‘계급전쟁’이라는 표현은 맑스와 엥겔스가 비유로 사용했던 것이지 그렇게 글자 그대로 수행하라는 의도를 담았던 것은 아니었다.”

볼셰비키가 사회주의의 권위였던 전간기 동안 볼셰비키는 맑시즘을 신학으로 만들었고 자신들이 왜곡한 정통에서 벗어난 어떤 혁신이든 이단으로 몰아 사냥햇다. 이 기간 동안 맑스주의 특히 ‘맑스주의 경제학에는 혁신이 거의 없었다.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바의 맑스 경제학은 1936년 이후 서구의 연구자들이 노력한 소산이다. 몇몇 지점에서 맑스에 관한 논쟁이 1936년에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나 19세기 말 독일 사민당 시절과 달리 “그 배후에는 어떤 주요 정당도 없었다. 맑스 경제학은 정치적 무기가 아니라 학문적 분야로 돌아왔다.”

이책의 이후 부분은 2차대전 이후 주류경제학이 맑스 경제학과 어떻게 상호작용을 했는가 그리고 주류 경제학의 혁신을 맑스 경제학의 입장에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등을 21세기초까지 정치경제를 배경으로 개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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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퇴계 | 인문/사회/역사 2011-02-20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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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퇴계 이황의 어록이다. 이책에 수록된 것은 퇴계 자신의 말은 맞지만 퇴계 자신이 기록한 것은 아니다. 논어와 마찬가지로 퇴계의 사후 제자들의 기억을 모은 것이다. 이책이 공자의 어록이랄 수 있는 논어와 다른 점은 제자들의 편집을 주제별로 역자가 재편집했다는 것이다.

역자의 의도는 논어와 마찬가지로 퇴계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퇴계의 말과 행적을 보면서 느끼도록 하는데 있다. 그러면 이책이 보여주고자 하는 퇴계의 생각은 무엇인가?

“중국 송대 사대부 사회가 성립하면서 동시에 신유학이 그들의 이념으로 등장하였다. 사대부들은 새로운 이념에 맞는 새로운 예법을 필요로 햇다. 그들은 당시의 풍속과 법제에 맞고 누구나 쉽게 따를 수 있는 간결한 형식의 예법을 갖추어 나갔다. 사대부들의 예법은 신분에 따라 예법의 차별이 검격하게 지켜지던 이전 왕조의 예법과는 달리 신분과 지위에 따른 한계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보편적인 예를 추구하였다.

퇴계 또한 주자와 같은 고민을 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성리학을 사회의 지배 이념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주자가례’로 대표되는 성리학의 예법은 16세기 조선과 시대도 지역도 풍습도 다른 현실에 기반한 형식이엇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이것이 퇴계의 질문이엇다. 시대도 나라도 고민도 다른 주자학을 어떻게 조선에 맞게 할 것인가? 그러나 문제는 ‘스승’이 없다는 것이엇다. 퇴계 자신 성리학을 독학으로 마스터햇다. 이책은 그가 책만 붙잡고 성리학을 알기 위해 얼마나 고투를 해야 했는지 보여준다.

“내가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었으나 나를 깨우쳐줄 스승이나 벗이 없었다. 갈팡질팡 헤맨지가 수십 년이건만 어디로 돌아가서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부질없이 마음과 생각만 허비하고 말았다. 그래도 찾아 헤매는 일을 그치지 않고 밤새도록 고요히 앉아 있으면서 잠을 자지 않다가 결국 마음의 병을 얻어 아예 공부를 못한 것이 여러 해엿다. 만약 스승이나 벗이 있어 미로를 빠져나갈 길을 가리켜주었다면 어찌 이처럼 헛되이 애만 쓰고 늙도록 얻는 것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겠는가?”

겸사의 말이다. 퇴계는 혼자의 노력으로 한계를 극복했고 그 노력은 범상하지 않았다. “선생의 집에 주자의 문집 사본 한 질이 있었는데 책장이 몹시 낡아 글자의 획이 거의 깎여나갈 지경이엇다. 너무 많이 읽서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이것을 보면 선생이 그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상상할 수 있다. 그 뒤 사람들이 주자의 문집을 많이 간행했는데 새책을 얻을 때마다 반드시 대조하여 표시하고 고쳤다. 그런 식으로 한 번 지나가며 다시 익히니 장마다 서로 통하고 구절마다 환하게 익숙해져서 손으로 잡고 발로 디딘듯 귀로 듣고 눈으로 본 듯이 받아들여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일상의 말이나 행동 및 주고받고 들고나는 모든 의리가 이 책과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이 없었다. 누가 혹시 어렵고 의심나는 것을 물으면 반드시 이 책을 끌어다 대답하엿는데 또한 그 상황과 맞지 않거나 도리에 마땅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것은 곧 몸소 깨달은 견해가 확실하게 마음과 정신을 하나로 통달하는 경지에 이르러야 얻을 수 잇는 것이 책에 기대어 그저 입으로 읊고 귀로 들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선생과 같은 분은 글을 잘 읽었다고 이를 만하다.”

퇴계의 위대함은 자신은 책으로만 이해해야 했던 성리학을 제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도록 스승이 되어주었다는 것이다. “그의 가르침은 이해하지 못할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는 어렵게 익혔지만 그 어렵게 익혔기에 문자가 아닌 본질을 요점을 알 수 있었고 쉽게 가르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스승이 있었다는 것이 남인의 장점이엇다. 책에서 무엇이 요점인지 무엇을 봐야 하는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틀을 잡아줄 스승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스승이 없었다는 점이 서인의 문제엿다. 스승이 없으니 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서인들의 공리공론이 시작된 이유 중 하나엿다. 퇴계가 조광조를 비판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였다.

“조광조는 타고난 자질이 정말로 아름다웠으나 학문의 힘이 갖추어지지 못하여 시행한 바가 너무 지나쳤다. 그렇기 때문에 사업이 끝내 실패하고야 말았다. 만약 학문의 힘이 이미 갖추어지고 덕성의 도량이 완성된 뒤에 벼슬길에 나와 세상일을 맡았더라면 이룩한 바를 쉽게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 조광조의 문제가 뭐였는지 에두르는 이 말만으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퇴계가 지적한 것은 책상머리 관념론이었을 것이다. 조광조는 실제 그런 사람이엇다.

“중종 13년 '오랑캐의 수장인 속고내가 국경에서 가까운 곳으로 나와서 사냥중.' 이라는 보고가 올라왔다. 속고내는 원래 조선에 투항을 하였던 여진족 추장인데 그 뒤에 변심하여 갑산을 공격하여 큰 피해를 입혔다. 당시 혼란을 틈타 다른 여진족 역시 공격에 가담해 변방이 어지러웠다. 보고를 들은 조정은 소수의 정예 병력으로 속고내를 잡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당시 부제학이었던 조광조는 중종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왕의 움직임은 신중해야 합니다. 반드시 이치에 맞은 뒤에 행동해야 합니다. 지금 속고내가 공격하려는 마음이 없고 다만 사냥하러 왔을 뿐인데, 기습하여 사로잡는단 말입니까? 도적처럼 행동하여 기습한다면 의리에 맞겠습니까? 속고내가 죄가 있다면 죄를 묻는 군사를 일으켜야 합니다.”

영의정 정광필이 조광조의 말은 유학의 도리에는 맞지만 변방의 일은 해결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에 조광조는 “군주가 오랑캐를 대하는 데는 변경을 충실하게 하고 백성을 넉넉하게 하여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고, 저들이 먼저 변경을 소란하게 하여 적이 우리에게 침범하면 부득이 대응하되, 서서히 죄를 묻는 군사를 일으키는 것이 본디 사리에 마땅합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우리의 병력을 살피고 헤아려야 하며 가벼이 움직여서는 불가한데, 하물며 명분 없는 일까지 해야 합니까? 신은 변방의 일만 일으키고 국가의 체면만 크게 상하게 될까 염려됩니다.”

병조판서 유담년이 화가 나 중종에게 말했다. “ 밭을 가는 일은 남자 종에게 물어야 하고 베를 짜는 일은 여자 종에게 물으라는 옛 말처럼 이번 일에는 소신의 말을 들으셔야 합니다.” 그러나 중종은 훈구파를 무시하고 조광조의 사림파 편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중종 때 조선의 변방은 편할 날이 없어서 조정에서는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 국경을 지키는 조선군은 번번이 패배하였고 중종 18년 여진정벌전을 계획하였으나 허공교전투에서 조선토벌군이 패배하였다.”

“뭐 좀 안다는 놈들이 세상을 위한다며 나서지 못하게 하라.” 노자의 말이다. 그 학문은 뛰어날지 모르지만 조광조는 전략적 식견이 모자랐다. 그리고 그가 주장한 이상주의적인 왕도정치도 그러했다. 조광조를 변법을 주장한 송나라의 개혁가 왕안석에 비교하기도 한다. 그러나 왕안석은 무리한 이상주의자가 아니었고 현실감각이 있는 합리주의자였다. 그가 내놓은 개혁안(신법)은 그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얻어 시행한 것이었기에 실제로 그의 신법은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조광조가 내놓은 개혁안들은 말은 좋지만 실현성은 전무한 것이었다. 속고내 문제에서 그가 한 말과 다를 것이 없었다. 조광조가 발군의 실력을 보인 것은 구체적인 개혁안이 아니라 말로 하는 정치투쟁뿐이었다.

조광조는 스승이 없이 혼자 책만 보다 망한 예이다. 이책은 조광조 같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스승이 되어준 퇴계를 실생활과 관련된 예법의 해석을 통해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그리고 일상의 실천이어야 하는 유학의 이론가로서 퇴계가 실제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춘다.

우선 스승으로서의 퇴계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엇다. “그의 행동은 고상하지도 기괴하지도 않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렇지만 선생의 평범한 일상을 소개하는 제자의 글에는 어떤 떨림이 잇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감동과 자부심의 떨림이다. 평범한 교사는 말만 하고 좋은 교사는 설명을 하며 훌륭한 교사는 모범을 보이고 위대한 교사는 제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다는 말이 있다. 여기에 소개된 퇴계 선생에 대한 묘사를 보면 제자들이 선생이 보여주는 덕성의 경지를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지 자신들이 받은 삼동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어쩔 줄 몰라 했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퇴계는 성리학을 말로만 글로만 배운 것이 아니라 유학이 성리학이 요구하는 그대로 삶에 실천했고 제자들의 감동은 그런 몸으로 보여주는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선생의 학문은 일상의 행동거지나 말투에 적용해도 쉽고 분명하였으니 지나치게 고상하거나 어려운 것이 없었다. 하지만 겉모습이나 행동거지가 모두 예에 맞으니 참으로 남들이 따를 수 없는 오묘함이 있었다.”

이책은 성리학을 조선의 땅에 맞게 그리고 자신의 삶에 맞게 이해했던 퇴계가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스승으로서 정치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그의 말과 행적을 통해 보여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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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ure and Nuture | 수신/심리 2011-02-1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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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개성의 탄생

주디스 리치 해리스 저/곽미경 역
동녘사이언스 | 200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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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유전학자들은 사람의 성격은 평균 45%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개성은 유전자가 다르기 때문이 45%이고 나머지 차이는 환경의 차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문제는 그 환경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그 환경을 가정환경이라 생각해왔다.

그러나 환경이 가정환경이라면 쌍둥이가 다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쌍둥이는 유전자도 동일하고 가정환경도 공유한다. 그러나 어떤 쌍둥이도 같지 않다. 게다가 다른 가정환경에서 자란 쌍둥이의 차이는 같은 가정환경에서 자란 쌍둥이의 차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가정환경과 개성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저자는 가정환경과 개성을 연결하는 사고방식이 19세기 상류계층의 특수한 여건 때문이었다고 추정한다. “부모의 힘에 대한 감정은 우리 문화의 특색이다. 이 개념이 유럽과 미국 문화의 일부로 뿌리를 내린 것은 프로이트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부모와의 동일시를 통해 행동하는 법을 배운다는 프로이트의 개념은 자신의 유년 시절의 기억 뿐만 아니라 19세기 말 비엔나에 살던 자신의 이웃이나 동료의 자녀들에 대해 아는 사실에 기반을 두었을 지도 모른다. 이 아이들은 취학 전의 어린아이들이었으며 어쩌면 오늘날의 아이들보다 또래들과의 접촉이 적었을 수도 잇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맏이나 외동이었던 것처럼 보여 형제도 별로 없었다. 아이는 주변의 누구라도 모방하기 마련이지만 이 아이들은 모델 선택이 매우 한정적이엇다.”

저자는 어린 침팬지의 손에 자라면서 그 침팬지를 모방한 이야기를 예로 든다. “형제자매도 없고 부모는 어린아이한테 침팬지를 선물할 정도로 방치하는 지경이니 아이는 달리 대체할 어른을 찾아 모방한다. 아동발달 교과서에 면도하는 흉내를 내는 어린 사내아이와 요리하는 체를 하는 여자아이의 사진이 실려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아이들은 어른 흉내를 내는 것이 심지어 집에서도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이들은 가상의 놀이에서는 어른인 체할지도 모르지만 일찍부터 현실과 놀이의 차이를 인식한다. 어쨌든 아이들이 흉내내는 어른은 부모가 아니다. 그 대상은 자기 부모가 되엇든 다른 아이의 부모가 되었든 사회화 체계의 핵심 경향 계산기가 산출해 낸 원형이다.”

‘성격의 탄생’ 리뷰에서 보았듯이 인간의 기본적인 성격 패턴은 유전자가 결정한다. 그러나 쌍둥이처럼 유전자의 성격패턴이 동일하더라도 개성이 다른 사람으로 자란다. 그 이유는 환경이지만 그 환경은 가정환경이 아니라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개성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이가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 때문이라 저자는 말한다.

개성은 인간이 사회에 적응하려는 과정이며 그 과정은 “개인적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려는 성향과 자신이 속한 사회의 규범과 관습에 자신의 행동을 맞추려는 성향, 그리고 사회의 다른 성원들과 경쟁하려는 그리고 가능하면 어떤 식으로든 그들을 앞지르려는 성향, 세가지가 있다.” 저자는 3가지 성향을 관계체계, 사회화체계, 지위체계라 부른다.

관계체계는 사람을 구분하는 시스템이다.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그 누구는 어떤 사람이라는 정보를 연결하는 시스템이다. “신세는 갚아야 하고 표리부동은 기억해야 하고 뜻이 맞는 동료는 찾되 미운 놈은 피해야 하고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는 예를 갖춰야 한다. 정보가 끊임없이 들어오고” 나가는 시스템이 관계체계이다. 사람을 구분하고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저장하며 그 정보에 따라 그 사람에게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와 같은 인물사전을 작성하고 관리한다.

‘관계의 관리는 아기의 제1임무다. 관계체계는 출발선에 서는 순간 가동할 준비를 갖추고 잇다. 인간 유아는 첫 숨을 들이키자마자 인물사전을 만들 태세인 것이다.” 인물사전을 만들어 누가 누구인지 알았으면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아야 한다. 이것은 규칙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 규칙을 배우는 것을 사회화라 한다.

“인간의 집단은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집단에 소속되는 데 필요한 행동을 모두 타고날 수는 없었다. 상당부분은 학습되어야 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아기의 제2의 임무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다른 성원들에게 용납되는 행동방식을 터득하는 것이다.”

사회화는 성격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환경변수이다. “미국 사람들과 유럽 사람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람들에 비해 외향적이며 경험에 열려 있지만 상냥함이나 순응성이 떨어진다.” 문화권에 따라 유전자 분포가 다르기 때문이라 말할 수도 잇다. 그러나 “홍콩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온 중국계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시아계 대학생을 대상으로 인성검사를 햇다.” 결과는 “최근에 캐나다로 건너온 피험자의 성격이 여전히 홍콩에 사는 대학생 또래 사람들의 성격과 평균적으로 거의 비슷했다. 그러나 캐나다에서 태어난 피험자의 성격은 캐나다 대학생과 거의 비슷했다. 어릴 적에 캐나다로 건너온 피험자들은 홍콩 기준과 캐나다 기준의 중간이었다.” 이런 차이는 유전적일 수 없다. 그리고 부모에 의한 양육의 효과라 볼 수도 없다.

저자는 아이들이 어릴 때 언어를 배우는 모듈이 활성화되듯이 사회화 역시 특정 연령에 활동하는 뇌의 모듈이라 말한다. 그 모듈의 목적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준비작업이다.

“아이가 직면한 도전을 생각해 보자. 아이는 사회에 적합한 행동을 익혀야 한다. 남에게 비웃음이나 비난을 사지 않고 따돌림을 당하지 않는 행동방식을 익혀야 한다. 문제가 있다면 사회에 몸담은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현저한 개인차는 차치하더라도 각기 다른 사회적 범주에 속한 사람들의 행동에는 조직적 차이도 존재한다. 어떤 사회를 막론하고 남자는 여자와 아이는 어른과 다르게 행동한다.

사회 범주별 행동의 차이는 아이가 단순히 엄마를 흉내 내는 것만으로 제대로 된 행동을 배울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는 아이이고 엄마는 어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이답게, 여자아이는 여자아이답게 남자아이는 남자아이답게 행동하는 법을 아이는 어떻게 배울까? 분화된 마음의 장비를 요한 ㄴ 인지과정을 통해서라는 것이 그 대답이다.” 아이는 먼저 관계체계를 통해 인물사전을 만들었다. 그 과정은 차별화의 인지과정이다. 그러나 사회화의 과정은 그 “자료를 통합하고 그에 대한 통계를 내어 평균을 계산”해 범주를 추출하는 일반화의 인지과정이다.

사회화 과정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저자는 자신의 예를 든다. “나는 맏이였지만 꽤 불안한 유년시절을 보냇다. 나는 또래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그러나 그것은 따돌림의 결과였다기보다는 원인이었다고 본다. 나는 동갑내기 아이들이 왜 나를 받아들이지 앙ㄶ는지를 알지 못햇을 뿐 아니라 이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우리 반의 어떤 여자이이가 몰래 나를 불러서는 아이들과 어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교를 늘어놓앗다. 그 여자아이는 엄마끼리 친한 친구여서 우리 집을 드나들던 아이였다. 여저아이가 말해 준 지침에는 내가 늘 따분하다고 여겼던 주제인 옷을 제대로 입는 법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그 아이의 강의는 지루하고 당혹스러웠던 터라 대수럽지 않게 흘려듣고 말앗다. 그것이 친절이엇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몇 년이 지나고 나서엿다. 그 친구는 나를 도우려고 햇던 것이다.”

저자는 사회화체계가 프로이트의 초자아를 제대로 해석하는 개념일 수 있다 말한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그의 이론은 거의 전적으로 관계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관계체계는 대부분 드러난 상태로 작용한다. 그의 이론에 가장 큰 버팀목이 된 것은 무의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가장 큰 아군은 의식이엇다. 프로이트가 그렇게나 몰두했던 성과 공격성의 동기는 관계체계의 메커니즘에 의해 제공되며 의식의 접근이 용이하다. 그가 피험자들로부터 이끌어낸 대화는 모두 관계에 대한 것이ㅏㄷ.

그러나 관계체계와는 대조적으로 사회화체계는 대부분 의식에 쉽게 접근하지 못한느 차원에서 은밀하게 작용한다. 우리는 어떻게 사회화되는지 알지 못한다. 정작 그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잇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화체계는 프로이트의 초자아와 닮은 구석이 있다. 그리고 기능도 비슷하다. 그러나 같은 성별의 부모와의 동일시에서 초자아가 형성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아이가 동성 부모와의 동일시를 통해 행동을 배운다는 생각은 분석 가능한 예측을 프로이트 이론의 측면들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증거가 없다. 아버지 없이 자란 남자아이도 양쪽 부모 밑에서 자란 남자아이 못지않게 남자답다. 양쪽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남성성과 여성성의 정도에서 동성 부모를 닮는 것이 아니다. 사실 이를 조사한 발달심리학자는 “남자아이는 자기 아버지의 행동만큼 다른 아이들의 아버지의 행동을 닮는다.”는 증거가 있다고 햇다.”

저자는 사회화의 기관은 가정이 아니라 말한다. “전통 사회에서 아이는 실제로 부모에게 별로 배우지 않는다. 주로 아이들의 놀이집단에서 사회화되기 때문이다. 놀이집단은 아이의 놀이를 전수하듯 언어와 관습을 전수한다. 나이 어린 아이는 나이가 많은 아이에게서 어휘와 규칙을 익힌다. 놀이와 언어 그리고 관습은 수 세대의 아이들이 이 놀이집단에 들어가 나이가 많은 아이에게서 규칙을 배우고 그 집단에서 나오기 전에 이를 다시 더 어린 아이에게 전수해가는 식으로 수백년 동안 그대로 간직되기도 한다. 아이의 문화는 부모의 문화와 일치한다. 아이와 부모는 동일한 집단에 의해 동일한 방식으로 사회화되겅끼 때문이다. 놀이집단은 세월이 가면서 구성원은 바꿔도 놀이와 문화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맹자의 어머니는 옳았다.

그러나 사회화가 전부는 아니다. 인간은 집단에 속하고 싶어하지만 그 집단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싶어하기도 한다. 사회화는 행동을 비슷하게 만들지만 지위를 차지하려는 동기, 즉 지위체계는 경쟁하도록 만들며 개인을 차별화한다.

일단 사회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지위체계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지위체계 즉 경쟁이 성격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예를 들어보자. “평균적으로 기가 큰 남성이 작은 남성에 비해 급여수준이 높다. 이 차이는 무시해도 좋은 정도가 아니다. 인치 당 약 800달러 정도 차이가 난다. 그러나 고용주들이 키 자체에 다시 말해 성인이 되어서의 큰 키 때문에 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엇다. 임금에서 중요한 사항은 성인기의 키가 아니라 청소년기의 키다. 경제학자들은 ‘십대의 키 프리미엄’을 설명할 몇 가지 가설을 세웠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십대의 키 프리미엄의 1/3 가량은 고등학교에서의 과외활동, 특히 스포츠 활동의 참여엿다. 덩치와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고등학교 선수들은 대개 또래들 사이에서 지위가 높다.

청소년기의 체구와 힘, 운동능력의 두드러진 차이는 성격과 사회행동의 차이를 수반했다. 성장이 빠른 아이들은 침착하고 느긋하고 현실적이다. 반대로 성장이 느린 아이들은 열심이고 수다스럽고 긴장이 팽배하며 ‘영향받기 쉽고’ 남의 ‘관심을 좇는다’ 나이에 비해 체구가 작은 소년들은 또래에게 괴롭힘을 당하기 십상이다.

청소년기의 높은 지위는 성격에 지속적인 영향을 준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강하며 지배적이고 경쟁적이며 리더의 자질을 보인다. 이러한 성격상의 특성이 고용주뿐만 아니라 유권자에게도 좋은 인상을 준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보면 흔히 키가 큰쪽이 당선된다.”

이에 비해 여성의 지위는 미모로 결정된다. “잘생긴 자기주장과 자신에 대한 확신이 좀 더 강한 편이다. 어느 실험에서는 참가한 여성 피험자에게 무례한 대우를 한 것은 물론이고 가짜 인터뷰를 하는 도중 연구원이 방을 나가버리기까지 햇다. 매력이 떨어지는 여자들은 그냥 앉아서 기다리다가 평균 9분이 지나서야 불만을 제기했다. 반면에 매력적인 여성들은 3분 20초 만에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이처럼 강한 자기주장을 초래한 것은 잘 생긴 외모 그 자체가 아니라 잘생긴 외모가 갖는 사회적 영향이다.”

“인간이 경쟁하는 분야는 숱하다. 오로지 힘의 우열을 통해 얻은 정보로는 충분하지 않다.” 예를 들어 아이들의 지위는 힘이나 외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가령 우등생은 비리비리하더라도 학교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한두가지만이 아니다. “힘으로 경쟁자들을 제압할 수 없다고?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본다. 제일 웃기거나 제일 똑똑한 사람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아니면 식물을 귀신같이 알아본다거나 골프 공 하나는 제일 잘 칠수도 잇다. 내가 제일 예쁠 수는 없다고? 그럼 제일 착한 사람이 될수는 있다. 이도저도 안 통하면 차라리 제일 비열해지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어떻게 자신의 지위를 아는가? “내가 제안하는 장치는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를파악하고 각기 다른 수많은 출처를 통해 수집된 정보를 통합하여 자기 자신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장치다. 지위체계가 늦게 가동되는 이유도 정보의 상당부분이 남의 의중을 읽는 메커니즘에 의해 제공되기 때문이다. 이 메커니즘은 네 살 무렵이 되어야 어느 정도 인상적인 업무를 수행할 정도가 된다.”

이 장치는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작성된 인물사전을 읽는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인물사전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이득이므로 숨기려 한다. 그러므로 장치가 그리는 그림은 모호하다. 그러나 어쨌든 그렇게 남의 사전을 읽으면서 사람들은 타인이 자기에게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알면서 그들이 무엇을 평가하는 가를 알게 되며 자신의 지위를 알게 되고 사회적 피드백을 통해 성격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쌍둥이가 달라지는 것이다. 쌍둥이라도 미세한 차이가 있다.

“남자아이들 집단에서 강자는 오직 한 명뿐이다. 여자아이들 집단에서 제일 예쁜 아이도 오직 한명이다. 만약 어떤 집단에 일란성 쌍둥이가 속해 있다면 설사 두 아이가 모두 힘이나 미모가 특출하더라도 둘 중의 하나는 어절 수 없이 두번째가 되고 하나는 주목구조으ㅢ 상위를 차지한다. 사람들로부터 응시의 눈길을 더 많이 받는 쌍둥이가 집단 내에서의 목소리도 커지고 그 결과 더욱더 많은 눈길을 끌게 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의 차이는 출발은 사소했지만 갈수록 벌어진다. 집단 내의 다른 구성원들에게서 받는 질문이나 평가도 둘 가운데 상대적으로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으며 이쪽이 쌍둥이의 대변인 노릇을 톡톡히 한다.”

저자는 사회화체계와 지위체계의 변증법이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메커니즘이라 말한다. 두 체계 때문에 노동분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개미와 달리 전적으로 가까운 혈연으로만 구성된 것은 아닌 집단에서 갈기 때문에 이기심이 동기가 되기도 한다. 우리 인간 종이 대박 신화를 일궈 낸 비결 가운데 하나도 반드시 혈연에 기반한 것은 아닌 대규모 집단을 ㅅ형성할 수 있었던 능력때문이다. 모든 집단의 딜레마는 구성원이 집단 동료를 희생하여 자신의 성공을 극대화할 것인지 아니면 집단을 지원하고 지키는데 모든 노력을 경주할 것인지 어려운 선택에 봉착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집단을 위해 일하거나 죽을 때 그러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사회화 체계였다. 집단의 성원들이 가까운 혈연으로 구성되어 잇던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체계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위체계가 제공하는 동기는 전적으로 이기적이다. 인간 집단에서 분산을 초래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기심이다. 지위체계는 노력하면 승산이 있는 분야하면 직접적인 경쟁을 유도하고 그 밖의 분야는 가능하면 경쟁을 피하고 보는 장기적인 전략을 꾀한다. 그리하여 개개인은 임자가 없는 틈새분야를 찾게 된다. 각기 다른 분야를 전문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노동분업이 이루어지고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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