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恒産恒心 | 경제경영 2011-03-30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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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경제성장의 미래

벤저민 M. 프리드먼 저/안진환 역
현대경제연구원books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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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산항심(恒産恒心), 변치 않는 재산이 있어야 변치 않는 마음도 있다. 맹자의 말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곶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이다.

경제성장의 미래라는 제목이 붙은 이책의 원래 제목은 ‘경제성장의 도덕적 결과들’이다. 잘 살아야 도덕적이 된다는, 항산항심을 다른 말로 풀어놓은 말이다.

곶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을 증명하기 위해 본문만 700 페이지 짜리 책을 써야 하나? 그런 생각을 들지 모르겠다. 아무리 슬로우 라이프가 어쩌고 행복은 재산순이 아니라는 말을 해봤자 물질적 여유와 정신적 여유는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은 경험적으로도 직관적으로도 옳다.

그 뻔한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그렇게 두꺼운 책이 필요한가? 그러나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도덕적’이란 공적 영역의 가치를 말한다.

“경제성장은-즉 명백한 절대다수 시민의 생활수준의 향상- 대체로 더 많은 기회,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 사회적 지위의 유동성, 공정성 및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을 촉진한다. 계몽주의 이래로 서구사상은 이런 각각의 경향을 긍정적이며 명백히 도덕적인 것으로 여겼다.

이런 부분에서 이미 엄청난 발전을 이뤄온 사회들도, 생활수준이 향상할 때 진보를 이루기가 훨씬 더 쉽다. 그러나 생활수준이 정체되거나 하락할 경우 대부분의 사회는 대체로 이런 요소에서 명백히 퇴보하며, 설령 이런 목표들 중 일부가 진보한다 해도 그 정도는 극히 미진하다. 미국을 비롯해 경제가 고도로 발전한 많은 국가도 경제성장과 장기침체를 교차로 경험했으며 그에 따라 민주주의의 가치가 강화되거나 취약해졌다.”

이것은 자명한 명제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실제 역사를 검토하면서 증명해야 하는 명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은 미국과 유럽의(주로 미국을 중심으로) 역사를 추적하면서 공적 영역의 가치가 경제의 성장과 침체에 따라 어떻게 부침을 겪었는가를 보여준다. 이책의 두께가 이상하지 않은 작업이다.

물론 경제와 공적 가치는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변수는 아니다. 두가지를 연결하는 변수는 사람들의 심리, 경제현실에 대한 인식이다.

“더 풍요롭다는 것은 다른 많은 것들 중에서도 특히 더 나은 음식, 더 큰 집, 더 많은 여행, 향상된 건강 상태를 의미한다. 그것은 좀 더 많은 사람이 더 나은 교육을 감당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20세기에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이 경험햇듯이 가족과 친구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도록 해주는 더 짧은 주당 노동시간을 의미한다. 게다가 소득 증가의 이런 물질적 이점은 개인 및 그 가족은 물론 공동체 사회와 심지어 국가 전체에도 축적된다. 보다 풍요로운 상황은 또한 더 나은 학교와 더 많은 공원 및 박물관, 더 큰 콘서트홀과 스포츠 경기장을 의미하며 이런 공공시설들을 즐길 수 있는 더 많은 여가시간도 의미한다. 평균소득의 증가는 국가가 해외에서 국익을 꾀할 수 있게 해주거나 인간의 달 탐사도 가능하게 해준다.

전체적으로 그 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생활수준의 하락과 샹상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자신과 자녀의 경제적 전망에 대해 우려나 두려움을 느끼는지 아니면 확신을 갖는지에 따라서도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달라진다.’

그러나 “충분히 많은 국민이 더 나아지고 있다는 인식을 잃어버리고 나면 단순히 부유해지는 것만으로는 경직성과 편협으로 치닫는 사회의 퇴보를 막을 수 없다.”

지난 30년간 미국 경제는 번영이란 말이 잘 어울렸다. 그러나 성장의 결과는 불평등하게 분배되었고 대다수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으며 자식들이 자신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란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경제와 주식시장 모두 급상승을 이어가던 1990년대 후반에도 설문조사에 응한 미국인 중 절반 이상이 ‘이제 아메리칸 드림은 거의 불가능해졌다’는 데 동의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지속된 장기침체의 결과는 많은 측면에서 미국 사회구조의 면면을 갉아먹었다. 이 기간 동안 다시 표출된 이민자에 대한 대중의 반감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당시 미국의 반이민 정서는 2차대전 이래 최고였다. 또한 30년간 아프리카계 소수민족을ㅇ 주류에 편입하려는 노력을 계속 해왔던 상황이 이 기간에 반전되어 대중의 저항이 차별철폐조치를 무효화하도록 압박햇다는 점도 우연이 아니다. 백인우월주의 단체들이 1930년대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더 활발하고 두드러졌던 상황과 반정부를 표방하는 사설 ‘민병대’가 전에 없이 번성했던 일, 그리고 정기적으로 헤드라인을 차지한 교회 방화와 국내 테러공격, 사법당국과의 무장 교착상태 등에도 불구하고 정치 리더들이 사건의 주범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를 꺼렸던 상황도 전적인 우연은 아니다. 또한 ‘사회복지의 종결’ 노력이 전후 미국 사회의 성격과는 극히 다른 보복 심리를 종종 드러냈던 것도 단순히 우연이라고는 볼 수없다.

과거 미국 사회의 중요한 측면들로 꼽을 수 있던 관대함과 개방성이 줄어들고 편협하고 무례한 태도가 증가하는 최근의 현상은 20세기 4/4분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미국 중산층의 생활수준이 침체한 결과다.”

미국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여중생의 죽음과 광우병을 계기로 일어난 촛불시위나 노사모를 통해 드러났던 한국사회의 모습은 그리 달랐던 것같지 않다. 그리고 그 심리의 메커니즘 역시 그리 달랐던 것같지 않다.

저자는 경제성장과 공적가치 사이에는 분명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 인과관계는 편도가 아닌 왕복이다.

“경제성장은 사회를 더 개방적이고 관대하며 민주적으로 이끌고 그런 사회는 다시 기업가정신과 창의성을 더 잘 독려할 수 있으며 그 결과 훨씬 더 큰 경제적 번영을 이룰 수 있다.’

두 변수는 서로를 결정하면서 선순환을 만든다. “ㅋ토크빌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성취하고 발전할 기회는 다시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할 의무 의식을 만들었다. 거의 2세기가 지난 현재 시점에서 당시를 되돌아 볼 때 한때 엄청난 수의 인구를 배제했던 여러 형태의 차별 철폐가 미국 경제의 노동 자원과 브레인파워를 보다 강화했다는 점 또한 자명하다.

미국은 마마도 사회적, 정치적 개방성과 경제성장의 상호관계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미국의 역사는 경제적 향상과 자유의 확장의 과정을 상호 보강해주는 뚜렷한 양상을 보였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을 말할 것도 없이 경제와 가치는 서로를 결정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 사회의 도덕적 가치들이 경제성장을 자극하는 행위를 증가시키는 상황은 생활수준의 향상이 다시 우리 사회를 좀더 개방적이고 관대하며 민주적으로 만들 경우에 특히 더 잘 들어맞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시장의 측면보다 도덕적 차원에서 이런 품성에 가치를 두기 때문에 시장의 힘 자체만으로는 성장이 불충분해진다. 따라서 어느 정도 추가적인 자극이 필요하다. 베버는 익히 알고 잇는 도덕적 원칙들이 경제성장을 촉진한다고 주장했다. 내 주장은 여기에서 더 좀 더 나아간다. 경제성장은 도덕적 자극에 의존할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도덕적 ‘결과’를 낳기도 한다.”


평점 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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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는 흐른다 | 경제경영 2011-03-2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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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셜미디어 시대 보고 듣고 뉴스하라

공훈의 저
한스미디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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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21일에 벌어진 서울의 폭우사태를 실시간으로 전달한 트위터의 활약은 소셜 모바일로 무장한 스마트 리더들의 손으로 기존 모든 언론매체가 무용지물임을 명백히 입증한 일대 사건이었다.”

추석연휴 첫날, 수도권에는 시간당 100mm의 호우로 재난 상태였다. 그러나 관공서는 물론 언론사도 휴무상태라 대책도 보도도 되지 않았다. 이때 유일하게 상황을 전달한 매체는 트위터였다.

“이후 트위터는 비 피해 상황을 알리는 트윗으로 또다른 홍수를 이뤘다. 서울 각 지역이 침수된 장면이 꼬리에 꼬리를 물로 게시됐다. 강남역 부근 강남대로는 도로에 들어찬 물 때문에 건널목을 건널 수 없는 상황이 됐고 ‘강남 앞바다’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이러는 중에도 공중파 방송은 여전히 오락 프로그램만 방송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일제히 분통을 터뜨렸으나 재난방송은 오후 4시나 돼서야 겨우 시작됐다. 수도권은 완전히 물에 잠긴 다음이었다.

언론사의 한심한 행태는 그 뒤로 이어졌다. 현장을 제대로 커버하지 못한 YTN이나 mbn과 같은 케이블 채널은 아예 트위터 페이지를 그대로 내보이며 트위터 내용을 해설 하기에 이르렀다.”

트위터가 주류언론을 이기고 무능력을 드러낸 이 사건을 한 트위터리안은 이렇게 썼다: “오늘 여기 트위터 타임라인에 글 올리시는 여러분들이 진정 이 시대의 살아있는 기자입니다.”

인터넷은 매체소비를 바꾸어 언론을 멸종위기로 몰아갔다. 이제 소셜미디어는 매체생산까지 바꾸어 언론의 근본을 뒤흔든다.

“바야흐로 소셜뉴스의 시대다. 백달이 정의하는 소셜뉴스는 이렇다. 뉴스는 더 이상 기자들이 보도하는 것이 아니다. 뉴스는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로부터 직접 나온다는 것이다. 소셜뉴스란 뉴스원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여과되지 않고 뉴스를 얻게 되는 것을 말한다고 정의한다.”

“언론인들의 가장 큰 자산은 큰 권위다.” 그러면 그 권위의 근거는 무엇인가? 뉴스의 생산과유통의 비용이 만드는 진입장벽이었다. 뉴스를 만들고 유통하려면 막대한 자본이 필요했다. 그러나 소셜미디어는 그 비용을 사실상 0에 가깝게 낮췄고 주류언론의 권위가 흔들리게 된 것이다.

위키피디아는 수백년 역사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사라지게 했다. 백과사전의 생산과 유통에 드는 비용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일개 출판사가 동원할 수 있는 필자보다 더 많은 전문가들이 동원되고 그들의 생산물이 유통되는 비용이 거의 제로에 가깝게 되었을 때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살아남을 수 없었다. 같은 일이 언론에서도 일어나고 잇다고 저자는 말한다.

언론사의 기자가 커버할 수 있는 취재 범위는 한정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기자의 전문성이라는 것도 “외부 전문가와 비할 바가 못된다.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가는 언론매체 외부에 훨씬 더 많다.” 물론 기자는 전문가가 아니다. 기자들이 뉴스유통을 통제하는 이유는 전문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전문가의 말을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쓰는 글재주 때문이다. 그러나 글재주 좋은 사람 역시 언론사 밖에 더 많다.

그렇다면 언론의 권위라는 것은 신문사나 방송국이 유통채널을 가졌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근거가 없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뉴스를 가진 사람들이 “미디어를 직접 이용할 수 있다면 기자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그리고 소셜미디어는 그 수단을 제공한다.

“기자처럼 오랜 세월 동안 고정된 범주처럼 보이던 것이 알고 보니 출판 비용 때문에 우연히 생긴 희소성과 결부되어 있었던 것이다.”

“전통 언론매체가 누리고 또 지키고 잇던 미디어의 과점체제는 철저히 깨졌다. 진입장벽도, 인력의 전문성도, 설비나 플랫폼도, 보급 채널까지 모든 장벽이 무너진 채 불특정 다수의 대중과 무한 경쟁에 맞닥뜨렸다. 기존 언론매체는 이제 가진 것이 없다.”

브리태니커처럼 사라지지 않으려면, 주류매체가 살아남으려면 저자는 소셜네트웤을 뉴스의 소비와 생산의 핵심 채널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능한 기자는 뉴스가 될 만한 이슈를 잡는 안목, 그리고 이른바 ‘역피라미드’ 형식을 갖춰 정제된 기사를 작성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불행하게도 이 같은 기자의 핵심역량도 소셜네트웤 시대에는 빛을 잃고 잇다. 기존 언론매체의 취재범위 즉 커버리지는 너무 좁다. 대중의 관심은 범위가 너무 넓고 주제도 매우 다양해졋다. 뉴스룸에 속한 기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이슈의 범위는 매우 한정돼 있다. 소셜네트웤은 그 자체가 이슈를 만드는 기능을 갖고 잇다. 이슈를 형성하는 기능은 이제 소수의 기자들의 안목에서 네트워킹돼 있는 다수의 상호작용으로 넘어갔다.’

저자는 뉴스룸에서 빠져나와야 살아남을 수 잇다고 말한다. 뉴스룸 밖의 필자들에게 문을 열고 뉴스의 생산 자체를 크라우드 소싱하라고 말한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이슈의 생산 메커니즘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트위터에는 날마다 새로운 이슈가 만들어진다. 하나의 트윗이 다른 사용자들의 공감을 일으켜 리트윗과 멘션을 반복하면서 하나의 이슈로 자라난다. 이슈로 자라나는 속도와 그 이슈가 확산되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그 이슈는 대부분 대부분의 경우 사회전체의 관심사와 일치한다.” 이 지점에 저널리즘의 기회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금까지의 뉴스는 stock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만들어져 유통되면 그 생명이 다해 죽어버린다. 그러나 소셜 네트웤에서 뉴스는 flow라고 저자는 말한다. 네트웤을 타고 흐르면서 생명을 얻고 성장하는, 소셜미디어의 뉴스는 네트웤을 타고 흐르면서 성장할 때 뉴스로서 가치가 만들어지며 뉴스는 stock이 아니라 flow의 개념으로 바뀌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여기서 소셜네트웤 저널리즘의 필요가 생긴다. 이 이슈의 전말을 하나로 정리해서 다시 트위터에 전송하면 그 전말을 새로 이해한 사용자들에 의해 이슈가 다시 확산되는 증폭효과가 일어난다. 트위터 상에서 작동하는 저널리즘의 새로운 형식이다. 이슈를 발굴할 수도 있고 그 이슈를 뉴스로 정리하고 그 뉴스를 다시 증폭하는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역할을 언론사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직력을 갖춘 언론매체는 지속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소셜미디어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소셜 네트웤 상의 뉴스 서비스에서는 뉴스가 생산된 후 가능한한 오랫동안 가능한 한 넓은 범위로 확산되도록 관리해야 한다. 이는 그 뉴스를 생산한 뉴스미디어의 영향력과 직결된다. 동시에 뉴스가 흘러다니는 과정에서 수집되는 데이터와 반응을 수집하고 분석해야 한다. 뉴스의 확산범위를 정확히 보여주는 숫자가 있고 동시에 그 뉴스에 대한 촌철살인의 독자반응이 함께 나타난다. 이에 대한 관리”가 뉴스룸의 책임이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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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었다 | 경제경영 2011-03-24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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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언씽킹 Unthinking

해리 벡위드 저/이민주 역
토네이도 | 201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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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구절이다. “오래된 속담이 여전히 맞다. ‘변하는 것이 더 많은 수록 예전과 더 같아진다’ 오늘날 현명한 마케터라면 대부분의 트렌드가 미미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예를 들어 새로운 검정색 역할을 하는 파란색처럼. 그들은 또한 다른 사실도 알고 있다. 조그만 트렌드라도 발견하면 그때는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똑똑한 마케터들은 말한다. 그 작은 트렌드는 ‘절정을 지나야만 발견되죠.”

탁월한 마케터들은 미미한 트렌드들이 수없이 왔다가 사라지지만 사람들은 몇 세기가 지나도 좀처럼 변화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우리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고 최고의 마케터들은 그 사실을 안다. 그래서 그들은 트렌드를 따르지 않는다ㅓ. 우리처럼 그들은 우리의 마음을 따른다.”

이책은 바로 우리의 마음에 관한 것이다. 코크와 펩시의 오랜 전쟁은 마케팅 서적의 단골 손님이다. 펩시는 이겨본 적이 없는 전쟁이다. 그러나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사람들은 펩시를 더 좋아하면서 상표를 보고 고를 때는 코크가 더 맛있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MRI를 찍어보면 실제 우리의 뇌는 펩시를 더 좋아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시음자들의 뇌 가운데 한 부분이 특히 펩시를 사항했는데 뇌의 보상체계인 ‘배쪽 피각’이었다. 시음자들 뇌에서 이 부분은 펩시라는 사실을 모르고 펩시를 시음했을 때 5배나 더 강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상표를 가리지 않으면 시음자들의 뇌는 다르게 반응했다. “자아의 감각과 강한 연관이 있는 내측 전전두피질이 미친 듯 반응했다. 코크라는 단어와 생각이 우리 자신에 대한 감각에 강하게 연관되어 있음이 분명했다. 우리가 코크를 좋아하는 것은 그 좋아함이 우리 자신에게 훨신 이롭다고 느끼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상품의 질과 브랜드는 아무 상관이 없다. 더군다나 평평한 세계에선 가격과 품질로는 더 이상 차별화될 수 없다. 교과서에나 존재하는 완전경쟁이 현실이 된 것 같은 시대에는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차별화하는가? 마음을 다루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반복적으로 우리는 목격한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우리의 느낌을 바꾼다는 것. 우리는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경험한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경험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펩시가 더 맛있지만 코크가 더 맛있다고 느끼는 것처럼. ‘좋든 나쁘든 간에 품질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머릿 속에 존재한다. 어리둥절하고 변덕스러우며 우주 전체의 뇌보다도 복잡한 우리의 뇌 속에 말이다. 그것은 다시 21세기 마케팅의 제1원칙을 알려준다. 마케터는 그저 훌륭한 제품과 서비스만 개발해서는 안된다. 반드시 훌륭한 기대치를 개발해서 양성하고 관리해야만 한다.” 그것이 브랜딩의 모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마케팅이란 상품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대를 다루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코크가 전쟁에서 언제나 이기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기대를 잘 다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케터는 심리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예를 들어보자. 비타민 워터는 마케팅의 궁극을 보여준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비타민 워터란 드라이한 이름은 그 브랜드가 마케팅을 전혀 하지 않는 것처럼 위장한다. 그러나 저자들은 비타민 워터의 마케팅은 무위무불위(無爲無不爲)의 경지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비타민 워터의 마케터는 상품을 교묘하게 포지셔닝했다. 에너지 드링크나 청량음료로 포지셔닝햇다면 “그들이 TV 화면에 소심한 얼굴이라도 보일라치면” 게토레이나 코크는 광고의 쓰나미로 그들을 쓸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면 생수가 만만해보인다. 그러나 거기에도 네슬레란 거인이 있고 마찬가지로 마케팅 쓰나미를 만나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식료품점 매대로 직행하는 수 밖에 없다. 매대에서 직접 승부하는 수 밖에 없다.

“마케터들은 포장 같지 않은 포장을 만들었다. 의학적으로 입증된 비타민이 첨가된 물임을 입증하는 영양성분표가 붙은 포장을 만들었다.” 드라이한 이름을 가진 상품의 포장에 흑백으로 된 드라이하고 하드한 얼굴을 씌운 것이다.

“’나를 봐줘요’ 식으로 포장을 했다면 그들은 마법을 잃어버려” 매대의 다른 물들에 묻혀 익사했을 것이다. 수수하고 단순하게. 포인트는 그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문제가 하나 잇다. 사람들이 비타민 워터를 먼저 알아차리지 않는다면 비타민 외에 무엇이 이 물을 다른 것들과 차별화시키겠는가? 수십개의 서로 다른 물들이 매대에서 자기를 바달라며 외치고 있으니까 말이다.”

비타민 워터의 마케터들은 다른 병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자문해보앗다. “그답은 이렇다. 다른 물들은 그냥 물 색깔이라는 것, 즉 색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비타민 워터에 색을 입혔다. 오직 그것만 함으로써 진부한 이름이나 평범한 포장이라는 약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투명한 바다에서는 색깔 있는 물이 눈에 띄기 대문이다. 물을 사려고 매대를 둘러보는 사람들은 비타민 워터를 절대 놓칠 수 없다. 투명한 바다 위에 떠 있는 붉은 것이엇으니 말이다.

“소비자들은 이 제품 뒤에 숨겨진 전략적 치밀함과 영리함을 알아차리지 못란다. 그들은 이 붉은색 물과 평범하고 전혀 마케팅적이지 않은 이름을 보면, 그들의 뇌는 넌지시 속삭인다. ‘이건 분명 물이지만 뭔가 특별한 게 담겨 잇어. 비타민 말이야! 게다가 의학적으로도 입증됐다는군. 비타민 워터가 효과를 본 것은 마케팅이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포장도 없고 이름도 없는 비타민 워터라는 두 단어만으로도 다른 물과 음료로부터 차별성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마케팅의 궁극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이책에서 저자는 궁극으로 가는 길이 무엇인지 보여주려 한다.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상품에 대한 기대를 만드는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방법은 새로울 것이 없다. 심리학 교양서들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은 없다. 그러나 이책의 가치는 그 심리학을 마케터의 입장에서 설명하는데 있다. 저자는 마케팅의 역사를 뒤지면서 마케팅의 심장에는 심리학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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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의 혁신 | 경제경영 2011-03-23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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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일터 전쟁

진 마이스터,캐리 윌리어드 공저/김정수 역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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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 동안은 인사관리업무의 아웃소싱이 미래의 흐름인 듯했다. 인사업무를 아웃소싱하면 전문 공급업체를 통해 효율성을 얻을 것이고 인사부서는 자유롭게 맞춤형 복지제도를 만들거나 좀 더 전략적인 업무를 수행하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초점이 비용절감으로 옮겨졌고 절약된 돈은 혁신을 추진하는 데 쓰이지 않고 곧바로 수익으로 돌려졌다. 인사담당자들의 회의에서 사람들이 인사 관련 업무에 발전이 없었다며 잃어버린 10년을 이야기하거나 예상과 달리 발전 동력을 별로 얻지 못했다고 한탄하는 소리를 듣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책의 동기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뒷방에서 뒷치닥거리나 하는 티 나지 않는 일로 여겨지다보니 찬밥신세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인사란 조직에 관한 것이고 사람에 관한 것이다. 인사업무 역시 다른 일들처럼 기업의 무기가 될 수 있다. 인사업무에서 아무런 혁신도 창출하지 못한다면 기업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경쟁에서 뒤쳐질 것이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마케팅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고객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으로 재창조된 것처럼 인사부서도 이 시점을 제때 활용해 혁신과 변화를 도입할 수 있다.” 이책은 그 방법을 보여주고 앞으로 10년간 인사부문의 혁신이 기업의 전략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려 한다.

저자들은 앞으로 10년간 기업의 조직측면에서 도전이 될 변수를 두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인구구조의 변화이다.

고령화로 퇴직연령이 높아질 것이다. 그 결과는 일터에 공존하는 세대의 폭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다는 말이 된다.

2차대전 이전에 태어난 전통세대부터 베이붐세대, X세대 그리고 밀레니엄 세대, 그리고 2020년에 취업연령이 될 세대까지 다섯 세대가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인사부문에서 다양성 프로그램으로 인식되어 온 것이다. 다양성에 세대문제가 추가된다는 말이다. 물론 그 다양성에는 기업의 활동영역이 세계화되면서 다양한 국적의 직원들을 포용해야 된다는 것도 포함된다. 그러나 세계화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니 저자들은 앞으로 10년간 문제가 될 다양성은 세대문제라 본다.

그러나 세대문제의 핵심은 세대간이나 모든 세대를 포용하는 문제가 아니다. 인력부족의 문제이다. 고령화는 노동인구가 줄어든다는 말이다. 노동의 절대량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양이 줄면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질도 낮아진다는 말이다.

갈수록 일자리는 지식노동으로 채워지고 그 수준도 더욱 고도화된다. 다시 말해 갈수록 더 고급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고급인력은 언제나 모자라다. 그리고 그 모자란 정도는 더 악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들은 앞으로 주류가 될 밀레니엄 세대와 그 후 세대들의 입맛에 맞게 일터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선호하는 직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일터를 바꾸는 것은 동시에 인력부족과 조직을 고도화되어가는 지식경제에 적응하고 효율성을 높이며 경쟁력을 갖추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저자들은 소셜 네트웤 기술에 맞게 조직의 구조를 바꾸는 것을 제안한다. 디지털 네이티브라고도 불리는 밀레니엄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조직의 틀을 재편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선호하는 직장이 되면서 조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잇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구체적으로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소셜 네트웤 기술에 맞춰 조직구조와 워크플로우를 재편해야 한다고 말한다.

소셜 미디어를 조직구조 안으로 가지고 온다는 것은 정보의 흐름이 유연해지면서 사내의 자원활용이 극대화되고 생산성이 증대된다는 말이며 유연한 조직이 된다는 말이다.

새로울 것은 없는 내용이며 누구나 관심이 있으면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면 이책의 가치는 무엇인가? 필드워크에 있다. 저자들은 단순히 이론적으로 이런 트렌드가 있고 미래에 어떻게 될 것이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예측이라는 것이 결국은 틀리게 마련이다. 누가 10년후를 내다볼 수 있으랴?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예측한 사람이 없었듯이 10년 안에 또 무엇이 튀어나와 예측을 뒤집을지 누가 알겠는가?

이책의 가치는 그런 이론적 예측보다 실제 저자들의 주장을 시도하고 있는 기업들의 사례를 소개하는데 있다. 저자들은 선 마이크로시스템즈, IBM, 벨 캐나다, BT, 딜로이트 같은 기업들이 채용, 사내 네트웤, 직원교육 시스템에 SNS를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다양하면서 상세하게 보여준다. 게다가 신문, 잡지를 뒤져 끼워맞춘 케이스들이 아니라 기업의 담당임원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프로그램이 실제 어떻게 운용되는지 눈으로 확인한 것들이라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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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동물이다 | 인문/사회/역사 2011-03-21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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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인간 생태 보고서

한나 홈스 저/박종성 역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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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용이 새롭거나 독창적이지는 않지만 재미있다. 이 책의 내용이라고 해봐야 진화생물학자들이 인간을 다룰 때면 다들 말하는 주제들이다. 내용 상으로 이책이 뛰어난 점이라 해봐야 다양한 논문들을 요약해 보여준다는 정도인데 그것도 논문 하나에 짧막하게 반 페이지 정도이거나 길어야 한 두 페이지 정도 할애되는 정도이고 ‘카더라~’ 투로 정리하는 정도다. 물론 다루는 분야가 생물학부터 인류학, 고고학, 의학까지 걸치니 저자의 전공인 동물학을 넘어서 있고 전문가로서 논평을 하기는 힘든 일이니 당연하긴 하다. 그 정도로 방대한 논문을 정리할 능력이 된다는 자체가 평가받을 점이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이라는 것이 범위는 넓지만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러면 이책의 가치는 무엇인가? 관점이다.

저자는 아이가 없지만 아이를 잘 다룬다.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어린 인간은 동물과 같기 때문이라 말한다. 부모 역시 동물학자였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동물들과 살아온 저자는 동물과 어린 인간을 마찬가지로 다룬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어린 동물과 같아서 본능과 충동을 숨기지 못한다. 만일 어떤 동물이 나에게 선뜻 다가오지 않는다면 나는 구태여 억지로 붙잡으려 들지 않는다. 왜냐하며녀 내 몸짓을 공격으로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나는 눈을 돌리고 뭔가 관심을 끌 만한 것을 보여준다. 어린 ‘인간’에게 접근할 때도 겁먹지 않게 하면서 무너가 긍정적인 느낌을 투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는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서 망설임, 의심이나 위험의 신호를 감지한다.”

물론 인간과 동물, 특히 성인 인간은 동물처럼 다룰 수 없다. “성인 인간의 행동을 조종하고 싶다면 동물적 본능보다는 그들이 가진 ‘합리성’을 이용해서 일을 풀어가는 편이 훨씬 수월할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자신들이 나머지 동물들과는 다른 특별한 생물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근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차이가 무엇인가? 동물학자의 눈으로 보았을 때 그 차이는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저자의 질문이다. 동물학자가 동물을 연구하듯 인간을 동물로서 다루어보자는 것이 이책의 목적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인간이 까마귀와 달리 영역에 집착하지 않는 유형리라면 삶이 어떻게 진행될지 생각해보자. 어느 누구도 영역에 대한 권리가 없다. 우리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근거지로 돌아올 때 다른 사람들 또한 은신처를 찾아 미친 듯이 밀려들 것이다. 당연히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영역을 원한다. 경비가 있는 높이 솟은 현관문으로 한 때의 영장류들이 서로 먼저 들어가려고 각축전을 벌일 것이다. 영역에 대한 점유를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괜찮은 거주 장소를 찾으려면 이렇듯 몇 시간을 헤매야 한다. 낮에도 이런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사무실에 가장 먼저 들어온 인간이 그날 가장 많은 액수가 적힌 임금수표를 거머쥘 것이고 늦게 온 영장류는 뭐 쓸만한게 없나 쓰레기통을 뒤져 동전 몇 푼이라도 주워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는 결코 효율적인 삶의 방식이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인간들은 불완전하더라도 확고한 자신만의 영역에 정착하고 싶어한다.”

채식주의니 콜레스테롤이 해롭니 섬유질을 먹어야 하느니 등등 식단을 둘러싼 논쟁에 대해 동물학자인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동물이 ‘난 뭘 먹어야 해?’라고 물어야 한다면 그건 참 서글픈 일일게다. 곰은 그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다. 인간들 중에는 그런 일로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거의 미칠 지경이 되어 아무거나 몸이 원하는 것을 먹어야 한다고 부르짖는 사람도 있다.”

“이 운전이라는 일은 내가 속한 종이 가지고 있는 협력적인 천성의 결과물이다. 만일 오소리가 차를 몰고 있다면 정지 신호에서 기다리지 않으리라. 단독으로 생활하는 동물들은 상대를 신뢰할 필요가 없다. 윤리적으로 행동하려고 허비할 에너지가 없는 것이다. 오소리라면 교차로를 그냥 통과할 것이다. 이에 항의하는 동족 오소리를 그대로 깔아뭉개고.”

재미있다. 이책의 내용이 대부분 그렇다. 익숙한 경험을 동물학자의 논리로 보니 새로운 읨가 드러나고 재미있게 보인다. 그러나 새로울 것은 없다. 이책이 ‘벌거벗은 원숭이’가 나왔던 시절에 나왔다면 참신한 관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관점에서 인간을 다루는 책은 그 책 이후 많이 나왔다.

그러면 이책의 가치는 무엇인가? 우선 앞에서 말했듯이 다루는 범위가 넓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이책만큼 넓은 범위를 커버하는 책은 그리 흔치 않다. 그러나 그 약점은 앞에서 지적한대로이다. 그보다 이책의 장점은 역시 관점이다.

저자는 동물학자가 다른 종을 관찰하듯이 인간을 기술하지 않는다. “한 종은 궁극의 대원숭이로 진화했다. 그게 바로 나다.” 이책은 저자 자신의 생태를 동물로서 기술한다. 저자는 자신이 과체중인 이유를 동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속한 인간이란 종은 왜 특출한 장거리 선수가 되었는가? 나는 왜 화장하는 동물인가? 내 남편과 나는 왜 뇌 구조가 다른가? 나는 왜 당분과 지방질에 사족을 못쓰는가? 등등 자신을 동물학자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러다보니 이책의 문체는 사적으로 치우치며 수다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이런 식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누군가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내용은 전부 내 환경의 미비함에 대한 것 아니었던가? 커서도 아주 편안한 상태에 있으면 수다가 많이 줄어들곤 했다. 요는 이렇다. 나는 엄마 품 속에서의 의사전달을 통해 엄마가 나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더 잘 이해하게끔 하고 엄마를 움직여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확보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동물학자로서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인간을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이런 식이다.

“오호라 잠시 생각을 해보자. 총을 가진 침팬지 군단이 불구대천 원수의 영역으로 이주할 때 적들을 쏘아 죽이는 일을 거부할 수 있을까? 아니 범고래는 그럴까?/ 음, 아니. 늑대는 어떨까? 그럴 리 없음. 아니다, 오직 우리 종만이 위험한 포식자들을 쓰러트릴 수 있음에도 ‘도덕적인 근육’을 동원해서 살려 보낸다. 이런 태도는 인간들 사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로 잘 사는 문화권들에서 보이는 태도다. 많은 인간들은 자신들의 서식처를 그 동물들과 공유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잇다. 그러나 어떤 인간들이 자신들과 경쟁하는 포식자들의 편을 든다는 사실은 경이로운 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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