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Cura님의 블로그
http://blog.yes24.com/qrat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Cura
qrat님의 블로그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1월 스타지수 : 별419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음반
스크랩
알라딘 이벤트 리뷰
나의 리뷰
수신/심리
경제경영
인문/사회/역사
예술/문학/여행
음반
기본 카테고리
나의 메모
기본 카테고리
태그
치심마음다스리기
2011 / 07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월별보기
나의 친구
경영
최근 댓글
micro적인 미국역사 .. 
정말 예스24에서 리뷰.. 
저는 두번째 읽어요 .. 
정말 좋은 리뷰 입니.. 
안녕하세요. 책 지식 .. 
새로운 글
오늘 24 | 전체 244308
2009-04-03 개설

2011-07-03 의 전체보기
중국: 세계의 미래 | 경제경영 2011-07-03 20:13
http://blog.yes24.com/document/4587683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중국 없는 세계

조나단 와츠 저/윤태경 역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바이킹이 정착하기 시작햇을 때 아이슬란드는 1/4이 숲이엇다. 정착자들은 나무를 베고 초지를 만들었고 나무들을 땔감과 목재와 숯으로 사용했다. 정착하고 수십년 만에 삼림의 80%가 사라졌고 연재는 96%가 사라졌다. 나무가 사라지고 양들이 풀을 뜯었다. 그리고 정착 초기에 돼지들이 뿌리까지 캐먹었다. 카펫처럼 얄팍하게 흙을 덮은 풀이 사라지자 바람이 싣고 온 화산재에 불과하던 흙들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바람에 날리기 시작햇다. 결국 바이킹들이 정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슬란드의 토양이 고지대에서 저지대, 심지어 바다까지 밀려내려갔다. 그러자 고원지대에서 풀은 물론이고 흙조차 볼 수 없었다. 전에는 푸른 초원이었던 곳이 인간, 혹은 양 때문에 사막으로 변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아이슬란드의 사막화처럼 매년 중국의 황토고원에서 불어오는 황사는 人災이다. 사람이 황토고원은 울창한 숲이엇다. 그러나 사람이 정착하고 나무를 베어내면서 황토가 비바람에 노출되었다. 황토는 수백만년동안 바람이 쌓아올린 먼지이다. 그 먼지를 가려주던 나무가 없어지면서 황토를 쌓았던 바람은 다시 황토를 실어나르게 되었다. 황사는 자연현상이라기 보다는 사람 때문에 일어난 인재이다. 황사가 그런 것처럼 중국의 역사는 자연파괴의 역사라고 저자는 말한다.

서구인들은 중국이나 인도를 생각하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생태주의를 떠올리고는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물론 서구인들의 환상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고대 중국의 예술과 문학에는 자연을 찬미한 작품이 많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숲과 강, 늪을 보존할 수 없는 자는 왕이 될 수 없다’는 격언이 있었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가치관은 점차 자연을 개발하는 쪽으로 기울어졋다. 유교에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천지합일’ 사상이 잇다. 그러나 유학자들은 자연보다 사회에 중점을 두엇다.” 숲으로 뒤덮였던 유럽의 역사가 그러했던 것처럼 인도도 중국도 결국 문명, 농업문명이었고 농업은 숲과 공존할 수없다.

“환경사학자 마크 엘빈은 중국인의 자연관을 이렇게 정리했다. ‘전통적으로 중국인들은 숲을 좋아하는 동시에 적대했다.’ 그는 ‘코끼리의 후퇴’란 책에서 지난 3000년간 중국인들이 숲과 야생동물, 소수민족을 평야에서 산악지대로 내몬 과정을 추적했다. 3000년 전 중국에는 숲과 야생동물이 풍부해 베이징에서도 코끼리를 볼 수 있었지만 한족 왕조가 들어서면서 남쪽과 서쪽으로 국가 팽창함에 따라 무자비한 삼림파괴가 자행되었다.”

저자가 보기에 서구인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중국인 역시 자연을 정복하고 이용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을 뿐이다. 그런 중국인의 자연관은 마오쩌둥과 함께 새로운 단계에 올랐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난 60년간 중국 공산당은 마오쩌둥의 뜻을 이었다. 정치인들은 중국을 강한 국가로 만들고 인민을 전통 관습과 외세의 위협에서 해방하고자 마오가 계획한대로 자연을 개조했다. 이런 중국 공산당의 사고방식은 (장자의) ‘쓸모없는 나무’ 밑에서 졸고 있는 철학자의 생각과는 매우 다르다. 인간의 의지로 산을 옮기겠다는 (우공이산) 생각은 곧 사회의 주류가 되었다. 중국은 지구에서 가장 개척하기 어려운 티벳 고원까지도 개척했다.”

마오쩌둥의 사상은 아편전쟁 이후 중국인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부국강병. 서구의 충격 이후 중국 엘리트들의 머리 속에는 그 네글자 이외에는 다른 것이 없었다. 그 목적을 위해 무슨 수단이든 정당화되었다. 산업화 과정에서 서구인들이 그랫듯이 마오에게 자연이란 자원과 동의어일 뿐이었다. 그러나 마오는 어설펐다. 과학적 사회주의를 말햇지만 과학은 없고 이념만 떠든 어설픔이 대약진운동 같은 재앙을 낳았고 문화혁명 같은 역사의 코미디를 낳았다. 문화혁명 이후 마오는 화석일 뿐이다. 사진틀에 걸려 모셔놓으면 되는 무의미한 뒷방 귀신이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마오의 자연관은 그대로 이어졌다. 중국 엘리트의 목표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국강병을 위해선 자원일 뿐인 자연을 이용해야 했다.

그 결과는 인상적이다. “내가 중국에 이사온지 1년 만에 중국의 GDP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따라잡았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자니자 영국을 따라잡았다. 대약진 운동 시기에 마오쩌둥이 목표했던 일을 50년 만에 해낸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 역시 막대했다. “베이징은 도시의 공기가 너무 나쁜 날이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쉬는 시간에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을 정도였다 나는 두 딸이 걱정되었고 내 폐도 걱정되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계속 조깅을 해왔지만 베이징에서 몇 년 살다보니 짧은 거리를 뛰어도 숨을 헐ㄸ거이곤 했다. 집집마다 석탄 난방을 하는 겨울이 되면 목이 아플 정도로 기핌을 햇고 이사 온 뒤로 두번이나 폐렴에 걸려 생전 처음으로 흡입약을 처방 받은 적도 있었다. 베이징은 숨이 막히는 도시였고 나도 숨이 막혓다. 7년간 베이징에 머물면서 나는 영국이 200년간 겪은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을 빠르게 돌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중국이 세계 환경문제의 핵심지역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경제성장이 환경에 준 피해를 GDP에 반영한 그린 GDP로 계산하면 지난 한 세대동안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잘해야 0이거나 마이너스이다. 물론 중국 엘리트들도 할 말은 많다. 우선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환경은 그 다음.

“지금까지 경제성장은 대가를 치러야 햇다. 현대화는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영국에서 시작되어 유럽, 북미, 일본으로 이어진 경제발전모델은 우선 경제를 개발하고 나중에 부작용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 방식이라는 것이 문제를 남에게 떠넘기는 것이니 문제다. 어느 정도 살만하다 싶으면 이제 공해를 만들고 환경을 파괴하는 산업을 다른 못사는 나라에 떠 넘기고 자신의 땅만 깨끗하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일본이, 한국이 경제성장을 한 이유가 유럽과 미국이 더 이상 하려 하지 않는 더럽고 돈 안되는 산업을 하기 시작하면서였고 중국이 경제성장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현상은 어떤 면에서는 성장통이라 할 수잇다. 낙관론자들은 중국이 순조럽게 경제성장 단계를 밟아나가 결국에는 공해산업에서 벗어날 것이라 전망한다. 일본과 한국이 극복한 환경문제를 중국이라고 극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회의적이다. “중국은 산업화에 늦게 뛰어든 탓에 다른 나라로 폐기물을 버리기도 힘들다. 그래서 중국은 공해 산업을 외국으로 이전하는 대신 간쑤 성, 닝샤후이족 자치구, 네이멍구 자치구 같은 서부지역으로 이전할 수 밖에 없다.” ‘세계경제의 하수처리장’이 된 중국으로 흘러든 하수는 중국 밖으로 흘러갈 곳이 더 이상 없다. 중국의 문제는 중국 안에서 처리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방법이 잇는가?

중국 정부도 바보가 아니니 문제를 잘 알고 방법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중국 자체의 규모가 문제다. 환경문제란 결국 경제성장을 지속할 자원이 바닥난다는 뜻이다. 지금의 경제성장방식은 국내의 자원이 바닥나거나 더 이상 뽑아내기 힘들어지면 밖에서 들여오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일본과 한국은 유럽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자국의 숲을 열성적으로 보호한다. 그러면서 필요한 목재는 다른 곳에서 수입한다. 중국의 문제는 중국 자체의 덩치 때문에 그렇게 자신의 문제를 전가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상하이의 화려한 외관은 자원을 제공해주고 쓰레기를 대신 처리해주는 다른 지역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부유한 대도시들이 그렇듯, 상하이의 고단백, 고칼로리 식생활은 다른 지역의 환경을 파괴한다.” 그러나 중국인의 생활방식이 상하이를 닮아가면 갈수록 중국 내에서 희생이 되어줄 지역은 사라지고 중국 밖에서 그런 지역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지구는 중국의 규모로 커진 서구식 라이프스타일을 감당할 수 없다.

“1949년: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다
1979년: 자본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다.
1989년: 중국만이 사회주의를 구할 수 잇었다.
2009년: 중국만이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었다.”

저자가 인용한 베이징에서 유행한 농담이다. 미래에도 중국이 세계를 구할 것인가? 저자는 그래야만 한다고 본다. 영국에서 시작된 경제성장모델이 중국에서 그 한계에 이르럿고 중국이 그 한계를 넘지 못한다면 중국과 함께 세계는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정부는 “세계 역사상 어느 국가도 이루지 못한 일을” 해야 하고 하려고 한다. 2세기 넘게 바뀌지 않은 경제모델을 중국은 바꾸어야 하고 바꾸려고 한다. 저자는 이책을 쓰기 위해 중국 전역을 돌아보면서 환경파괴의 참상을 너무도 많이 보았다. 그러나 희망도 보았다. 그러나 과연 중국이 할 수 있을지 저자는 의문이다. 
 

 

평점 4.5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긍정심리학의 진화 | 수신/심리 2011-07-03 20:08
http://blog.yes24.com/document/4587630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행복의 완성

조지 베일런트 저/김한영 역
흐름출판 | 2011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1950년대 초, 네브라스카 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던 나의 할아버지 도널드 클리프턴 박사는 연구 도중 매우 김각한 문제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거의 모든 심리학 분야들이 사람들의 ‘부정적인 면’만을 다룬다는 사실이엇다.

사람들의 ‘긍정적인 면’을 연구하는 것이 그보다 중요하다고 믿던 할아버지는 지난 50년간 인간이 가진 긍정적인 면에 중점을 두고 동료들과 함께 수백만 번의 인터뷰를 실행해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할아버지가 40여년 째 연구를 진행오던 1990년대에 새롭게 떠오른 심리학 분야가 바로 인간의 긍정적인 면을 연구하는 긍정심리학이다.” (도널드 클리프턴, 톰 래스)

긍정심리학의 시조로 불리는 도널드 클리프턴의 이론은 ‘물통과 국자 이론’으로 요약된다: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물통을 가지고 있다. 그 물통은 주변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에 따라 지속적으로 채워지거나 비워진다. 물통이 가득 차 있을 대 우리는 행복을 느끼고 비어 있을 때 우리는 고통을 느낀다. 우리는 또한 보이지 않는 국자를 가지고 있다. 그 국자로 타인의 물통을 채워줄 때 즉 긍정적인 감정을 이끈 ㄴ말이나 행동을 할 때 우리의 물통도 채워진다. 그러나 국자로 타인의 물통에서 물을 퍼낸다면 즉 긍정적인 감정을 줄어들게 만드는 말이나 행동을 한다면 우리의 물통에서도 물이 빠져나가게 된다.” (도널드 클리프턴, 톰 래스)

긍정심리학의 논리는 반세기가 훨씬 넘었지만 그리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물통에 담긴 물의 정체는 세월과 함께 바뀌어갔다. 초창기 긍정심리학의 내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이다. 위에서 인용한 물통과 국자 이론을 소개한 책에서도 첫번째 사례로 드는 것이 칭찬의 효과를 보여주는 피그말리온 효과였다.

이후 긍정심리학의 논리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 미국식 성공학의 학술 버전에 불과하게 되었다.원하면 못 이룰 것이 없다는 ‘시크릿’류의 자기계발서와 다를 것이 없게 되었다. 긍정심리학에서 ‘긍정’의 기초가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실험적으로 증명된 가설이다. 그러나 칭찬을 아무리 해도 백치가 전교 수석이 되고 하버드에 들어갈 수 없고 아무리 나는 할 수 있다는 정신으로 무장해봐야 청소부가 대기업 CEO의 역할을 해낼 수는 없다.

이책은 긍정의 개념화가 잘못되었다는 반성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긍정의 기초를 새로 놓기 위해지난 10년동안 진화심리학과 생리심리학(보통 뇌과학이라 알려진)의 성과를 원용한다.

두 분야의 가장 두드러진 성과라면 그동안 심리학에서 무시되어온 감정의 메커니즘을 튼튼한 생물학적 토대 위에 올려놓았다는 점이다.

분노, 두려움, 짜증과 같은 스트레스성의 부정적 감정이 왜 진화했으며 어떤 메커니즘에 기초하고 있는가를 밝혔듯이 사랑, 기쁨, 관용과 같은 긍정적 감정이 어떻게 진화했고 어떤 메커니즘인지를 진화심리학과 생리심리학은 분명한 논리로 설명한다.

이책의 저자는 긍정심리학의 ‘긍정’을 두 분야에서 설명해낸 긍정적 감정으로 재해석한다. 저자가 열거하는 그 감정들은 이렇다: 사랑, 희망, 기쁨, 용서, 연민, 믿음(또는 신뢰). 저자가 이 6가지 감정을 다루는 이유는 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행복’에 결정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면서 고통은 불가피하다. 저자는 같은 고통을 겪더라도 그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행복이 결정된다고 이전 저서인 ‘행복의 조건’에서 말한다. 같은 고통이라도 누가 더 성숙한가에 따라 행복한가 불행한가 차이를 만들며 그 성숙함이란 6가지 감정을 느끼는 능력이라고 저자는 이책에서 말한다.

저자가 6가지 감정을 선택을 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 감정들이 사회적인 다시 말해 도덕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행복의 조건’에서 보여준 것은 도덕적인 능력 또는 사회적인 능력이 높을수록 더 행복한 삶을 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책에서 저자는 그 능력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말하려 한다. 원론적인 수준에서 감정들로 재정의하고 그 감정들이 어떻게 진화론적으로 형성되었는지 즉 우리의 생존에 어떻게 그 감정들이 유용했는지 다시 말해 그 감정들이 사회적 능력으로서 왜 선택되었는지 그 감정들이 개인의 삶에서 어떤 유용성이 있고 의미가 있는지를 설명한다.

이책은 ‘행복의 조건’의 연장선에서 보아야 그 의의가 제대로 이해된다. 그 책을 읽은 사람에겐 의미 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 그러나 ‘행복의 조건’과 같은 수준의 책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이책은 이전 저서와 같이 탄탄한 실제 연구에 기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책은 어디까지나 시론에 불과하다. 저자가 의지하는 진화심리학과 생리심리학이 저자의 전공이 아니란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이책이 하려는 시도가 현재로선 지나치게 대담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말하듯이 긍정적 감정에 대한 논의는 드물었다. 그리고 저자가 의지하는 두 분야의 성과가 쏟아져 나온지도 10년이 조금 넘는다. 아직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영역에 대해 이책은 기초를 놓으려는 대담한 시도를 한다.

이책의 논의는 무난하다. 아직 튼튼하지 않은 기초에서 많은 것을 말할 수 없고 저자가 모험을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만큼 이책의 논의는 무미건조해진다. 현재 학계의 수준에서 긍정적 감정에 대한 종합이 어떤 수준으로 가능한지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이책의 의의일 것이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1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