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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자본주의 새판짜기

대니 로드릭 저/고빛샘,구세희 공역
21세기북스 | 201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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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체제론의 핵심논지는 자본주의는 세계체제로서 존재해왔고 세계체제로서만 가능했다는 것이다. 세계체제론은 시장과 자본주의를 구분한다. 시장은 언제나 있었다. 그러나 시장은 자본주의가 아니다. 세계체제론의 실질적인 아버지인 브로델이 보여주었듯이 자본은 시장을 그리고 시공간을 재편한다. 시공간을 재편하는 하는 힘을 우리는 권력이라 한다. 자본은 권력이기에 시장과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 세계체제론의 요점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중상주의자의 담론은 국가와 기업이 서로 필요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견해를 기반으로 한다. 경제가 정치의 도구요, 정치는 곧 경제의 도구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선 거래비용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시장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제도가 시장을 위한 게임의 규칙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애플과 중국의 하청업체가 협력하려면 먼저 쌍방이 엄청난 양의 약속이 담긴 두툼한 계약서로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중국의 하청업체가 아이폰 디자인을 경쟁업체에 넘긴다든 하는 문제가 생긴다면 피해를 입은 편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거의 없다. 그런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야말로 거래의 가장 큰 방해물이다. 경제학자들의 말로 하자면 거래비용이 꽤 높은 무역이하 할 수 있다. 제도, 특히 적어도 시장을 지지하는 제도는 그러한 거래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고안된 사회적 합의다.” 이러한 제도는 시장이 대체로 국지적이고 규모가 작을 때 그 효과가 가장 크다. 그러나 경제규모가 커지고 지리적 이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분명하고 폭넓은 규칙과 더 믿을만한 강제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게 되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더 부유해진 곳은 시장을 다스리는 공식제도를 만든 나라들뿐이다. 국방과 기반시설 같은 공공재를 제공할 수 있는 세금 체제, 재산권을 확립하고 보호하는 법적 제도, 계약 집행을 강제하는 법정, 경제학자들 말로는 3자의 강재제도들이다. 시장은 튼튼한 정부 제도의 뒷받침을 받을 때 더 높은 효율성을 발휘하며 결과적으로 부를 창출한다.”

 

시장은 국가의 권력과 연합할 때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리 새로울 것은 없는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서 재미있는 논점을 제기한다. “1870년대 오늘날 경제적으로 가장 발달한 국가들의 정부지출비중은 약 11%였다. 그러다가 1920년까지 이 비중은 거의 두배가 되어 20%가 된다. 1960년에는 한층 더 늘어 2*%에 이르렀다. 지금은 40%가 넘었으며 정부지출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저자는 그 이유를 무역의 비중이라 말한다. “국제 시장에 가장 많이 노출된 국가의 정부규모가 가장 컸다. 경제가 국제 경제라는 강력한 힘에 노출되어 있을 때 사람들은 그 리스크에 보상을 요구하는 법이다. 리스크와 불안정한 시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시장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정부는 필요하다. 실업수당, 실업자를 대상으로 한 직업교육 프로그램과 노동시장 개입, 건강보험, 가족수당 등의 장치를 마련해놓아 이제는 높은 관세 장벽 뒤로 자국시장을 숨기는 식의 서툰 보호가 필요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저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복지국가는 개방경제의 이면이다. 시장과 국가는 여러 면에서 서로 보완한다.”

 

복지국가는 무역에 대한 보호비용이란 말이다. 그런 비용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시장을 지지하는 제도들은 일정한 지역에 한정돼 있으며 국가에 따라 편차가 가 크다. 그 결과 국제무역과 금융은 국내거래보다 훨씬 높은 거래비용을 유발할 수 밖에 없기때문이다. “전반적인 제도적 틀의 부재와 국가별로 상이한 제도의 지배를 받는 시장이 발생시키는 긴장은 경제 세계화를 이해하는 데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다시 말해 무역의 근본문제는 어떻게 하면 국제무역과 금융을 저렴하고 안전하게 만들 것인가?”이다. 아리기는 이 문제를 보호비용의 문제라 말하며 국가와 자본의 관계는 이 보호비용에 의해 규정되었다고 말한다. “National economy-making brought to perfection on a greatly enlarged scale the practice of making wars pay for themselves by turning protection costs into revenues, which the Italian city-states had pioneered three centuries earlier. Partly through commands to state bureaucracies and partly through incentives to private enterprise, the rulers of France and of the United Kingdom internalized within their domains as many of the growing number of activities that, directly or indirectly, entered as inputs in war-making and state-making as was feasible. In this way they managed to turn into tax revenues a much larger share of protection costs that the Italian city-states, or for that matter the United Provinces, ever did of could have done.” (Arrighi 1994) 새로울 것은 없는 내용이다. 거래비용을 보호비용으로 바꿔도 내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가능하게 한 것은 국내 경찰력, 사법권 형식의 보호비용이 아니라 war-making, state-making(식민지건설이 예이다)을 보호비용에 결합한 것이다. “What was happening was that wars were ‘paying for themselves’”

 

“The Genoese and Dutch cycles must be completed by a brief examination of the ‘organizational revolution’. The Dutch regime of accumulation ‘internalized protection costs.’” 대표적인 예로 아리기는 네델란드 동인도회사를 든다. 그 클론인 영국의 동인도회사도 마찬가지였지만 이 회사의 활동은 단순한 무역 이상이었다. “그들은 상비군을 갖추고 전쟁을 선포할 수 있었으며, 조약을 맺고 화폐를 주조했으며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무굴제국과 여러 차례 전투를 벌이는 한편 지역별 통치자들과 연합하며 권력을 인도전체로 넓혀갔다. 이러한 기업들은 그들만의 깃발, 군대, 판사, 화폐가 있었지만 고국의 주주들에게 배당금도 지불했다. 무역과 통치가 그리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오늘날에는 시대착오적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시장과 국가의 이분법은 옳지 않다. 시장거래 특히 장거리 무역은 누군가 정해놓은 규제와 제약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왜 일개 회사가 국가와 같은 권력을 가져야 했을까? 더 구체적인 예를 보자. 1680년 영국 노예무역회사인 로열 아프리칸 컴퍼니는 자신의 독점권을 변호하기 위해 이런 말을 했다: “노예 무역을 하기 위해 아프리카 서부해안을 따라 세운 요새들에는 개인 무역상들이 감당할 수 없는 막대한 비용을 투자했다. 이 무역을 하려면 다른 국가들의 공격을 방어해야 하며 요새와 군함의 유지와 관리에는 독점적 통제가 필요하다.” 국내시장이건 국제시장이건 거래를 위해서는 안전하고 안정적인 환경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무력이 뒷받침된 법률과 규제가 필요하다. 달리 말해 그들은 실제 무역이 발생하기까지 교통, 물류, 통신, 신뢰, 법과 질서, 계약 이행 같은 거래 기반시설에 투자해야 했다.상인-모험가들은 국가 못지 않은 기능을 수행했다. 그러지 않으면 무역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동인도회사나 노예 무역회사의 예는 권력과 경제교역의 밀접한 고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당신과 교역하고 싶으니 내가 정한 규칙을 따르라!’ 이 시기 이후의 세계화는 국가규제나 권력에서 조금 분리되어 있어 더 순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권력은 행사되어야 한다. 다만 조금 다르게, 그리고 조금 덜 눈에 띄게 행사되어야 한다. 세계화에는 반드시 규칙이 따른다. 중요한 것은 오직 그 규칙이 무엇이냐 그리고 누가, 어떻게 그것을 정하느냐다.”

 

“By being self-sufficient and competitive in the use and control of violence, these companies ‘produced’ their own protection.” war-making, state-making는 규칙을 정해 공간을 재편하는 문제이다. 세계화란 그 규칙을 정하는 문제가 일개 국가가 아닌 세계로 확대된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확대의 결과 하나의 세계라는 공간이 만들어지기 전까진 그 공간 자체를 만드는 war-making, state-making이란 폭력이 개입되어야만 한다.

 

일단 폭력으로 세계라는 공간이 만들어지면 더 이상 폭력이 표면에 나설 필요는 없다. 그 공간이 만들어지면서 19세기의 세계화가 가능했다. 그 세계화를 떠받친 것은 두 가지 제도였다.

 

첫번째는 신념 체계의 수렴이다. 경제 자유주의와 금본위제는 서로 다른 국가의 정책입안자들을 연결해주었으며 무역과 금융에서 거래비용을 최소화하는 관행을 중심으로 그들을 연합했다. 두번째는 바로 제국주의였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제국주의는 무역에 관대한 태도를 취했다. 제국주의는 또한 강대국 정부가 집행자 역할을 하는 일종의 3자 강제집행이라 할 수 있다. 강대국들은 필요한 때면 언제든 제국주의 정책을 이용하고 정치적, 군사적 힘을 전략적으로 배치하여 나머지 국가들을 조종했다.”

 

두가지 모두 영국과 관련이 있다. 네델란드가 그랬듯이 패권국으로서 영국은 세계체제의 규칙을 정했다. 이 체제를 아리기는 자유무역 제국주의라 부른다. 유럽국가들에게 자유무역이란 이데올로기는 강요되지는 않았다. 단지 영국의 것이라는 후광에 힘입어 쉽게 받아들여졌을 뿐이며 강자의 것이기에 증명은 끝났다고 이해되었을 뿐이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이 그랫듯이. 그러나 나머지 국가에서는 대부분 외부의 압력으로 자유무역이 성립했다. 아시아에서는 유럽 제국주의 때문에 외국인의 권리가 보호되고 계약집행이 강제되었으며 분쟁이 생기면 유럽 국가의 규칙에 따라 판결이 났다. 국제무역을 방해하는 여러가지 거래비용이 무력화된 것이다.”

 

자유무역을 가능하게 했던 제국주의와 공통의 신념체계란 제도는 자유로운 자본의 흐름을 지탱하는 데 또다시 중요한 역할을 햇다. 자본의 경우 그 신념체계는 금본위제였다. 이것 역시 영국의 것이란 외에는 다른 이유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어쨌든 공통의 기준이 마련되면서 자본은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었고 금과 동가로 정해진 고정환율에 따라 다른 나라 화폐로 바꿀 수 있었다.” 달리 말해 금본위제는 거래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춰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금본위제에서는 국가별 여건을 이리저리 조정할 재량권이 각국 정부에 부여되지 않는다. 순전히 국경을 넘어 유입되는 금과 자본으로 국가별 통화공급량이 결정되고 이자율이 결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금본위제는 분명하고 보편적이며 독단적인 원칙이었다.” 금본위제가 가능하려면 신축적인 임금으로 뒷받침된 개별적이고 분산화된 노동시장이 있어야 한다. 국내산업이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잃으면 임금과 다른 비용들이 감소해 이 산업들이 시장 점유율을 되찾도록 도울 것이다. 저렴한 노동력은 실업률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이것은 실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노동자가 조직화되고 노조의 힘이 세어지면서 훨씬 더 환상에 가깝게 변해버렷다.” 그리고 “1930년대 중앙은행과 정치가들은 경제불황과 높은 실업률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에 더는 무관심할 수 없었다. 노동자들은 이제 투표권을 가졌다. 대량실업의 결과로 정치적 재앙을 맞느냐 금본위제를 포기하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금본위제와 함께 자유무역도 끝났다.

 

금본위제가 끝장난 이유는 이렇다. 상품과 자본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면 경제학 교과서가 말하듯 무역에는 엄청난 혜택이 있다. 그러나 무역으로 얻는 이득에는 소득 재분배라는 문제가 따른다.” 예를 들어 자유무역을 실시할 경우 일부 집단은 반드시 장기적인 소득감소를 겪는다. 미국처럼 부유한 국가에서는 고교중퇴자처럼 숙련기술이 없는 노동자가 이런 집단에 속할 개연성이 높다. 무역은 같은 사람에게 반복해 영향을 미친다. 당신이 기술이 부족하고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고 기동성도 떨어진다면 국제무역은 평생 당신에게 악영향만 미칠 것이다. 무역은 첨예한 분배갈등을 초래한다. 고통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 그리고 무역의 자유도가 높아질 수록 무역의 혜택은 빠르게 체감하지만 비용은 그보다 더 빠르게 증가한다.

 

결국 무역정책과 정치는 언제나 같은 말일 수 밖에 없다. “조건 없는 자유무역은 획일적 자본주의에 대한 믿음으로 무장된 엄격한 기술관료 사회에서만 실행할 수 있다. 국민의 요구가 국제경제기준과 충돌할 때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쪽은 국내적 요구였다.” 대공황은 각국 정부가 개방경제체제에서 경영자, 노동자, 농민들의 불만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공황을 경험한 케인스와 화이트는 현실을 무시한 채 전면 붕괴를 맞이할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이 설계한 브레튼우즈 체제는 국제질서를 유지하면서 무역자유화를 진전시킴으로써 국제교역을 활성화하면서 대공황과 같은 사태를 피하기 위해 각국정부가 자국의 사회, 경제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엇다. 각국의 대외경제정책은 완전고용 실현, 경제성장 목표달성, 빈부격차 해소, 사회보험과 복지제도정비등을 아우르는 전반적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보조수단이 되어야 한다.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각국의 목표는 하이퍼글로벌라이제이션이 아닌 적정수준의 세계화를 달성하는 것이다. 정책 결정자들의 목표는 전반적인 자유무역이 아닌 제한된 자유무역이었다.”

 

그러나 제한된 자유무역은 오히려 세계경제의 성장에 더 도움이 되엇고 세계화를 촉진했다. “1948~90년 국제 교역량은 연평균 7% 증가했다. 그 어느 시기와 견주어도 유래없는 성장세였다. 총생산 또한 선진국, 빈곤국 할 것없이 전례 없이 확대일로를 걸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금본위 시대, 19세기 자유무역 시대를 뛰어 넘어 폭얿은 경제발전을 달성할 수 있ㅎ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지배하던 시기는 세계화의 황금기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성공은 국가 경제가 건전하다면 약간의 무역 제재나 통제가 있어라도 세계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상 자유무역은 각국의 분배정책, 경제정책, 가치와 상충하지 않을 때만 실현가능하다.”

 

그러나 “1990년 무렵 금융세계화가 시작되면서 WTO는 브레튼우즈 체제가 추구했던 바와 상반되는 새로운 세계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하이퍼글로벌라이제이션이 그것이다. 하이퍼글로벌라이제이션이 성립하려면 각국 정부는 국제무역과 금융시스템을 뒷받침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국의 경제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경제 세계화 즉 (노동시장을 제외한) 재화와 자본시장의 국제통합은 최종목적으로서 국가별 정책보다 우선순위에서 앞선다.정책 논의에 이러한 변화가 점점 반영되기 시작했다.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려면 그것이 꼭 필요합니다라는 말을 즐겨 쓰기 시작했다. 또 모든 국가가 법인세를 낮추고 긴축재정정책을 펼치고 규제를 완화하고 노조를 약화시키는 등의 세계화 물결에 동참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엇다. 브레튼우즈 체제처럼 얕은 통합을 추구하는 무역체제는 각국의 내부 정책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반면 깊은 통합을 추구하는 체제에서는 각국의 내부 정책과 무역정책 사이에 경계가 사라진다. 다시 말해 내부 정책이나 규제를 임의로 변경한 경우, 거래 비용을 상승시켜 국제무역을 방해했다고 비난받을 수 있다. 즉 국제 규범은 곧 각국으 내부 규범이 된다.”

 

저자는 이를 세계경제의 정치적 트릴레마라 요약한다. “우리에게는 세가지 대안이 있다. 첫째 이따금 세계경제로 비롯되는 경제적 사회적 충격을 무시하고 국제거래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제한하는 것이 있다. 둘째, 국내에 민주적 정통성이 확립되기를 기대하며 세계화를 제한하는 것이 있다. 셋째 국가주권을 희생하면서 세계화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잇다. 이 세가지 대안은 세계경제의 정치적 트릴레마를 정확하게 반영한다. 즉 우리는 하이퍼글로벌라이제션, 민주주의, 민족자결권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없다. 잘해야 두가지를 잡을 수 있을 뿐이다. 하이퍼글로벌라이제이션과 민주주의를 잡으려면 민족국가를 포기해야 한다. 민족국가를 유지하면서 하이퍼글로벌라이제션을 추구하려면 민주주의를 잊어야 한다. 민족국가에 민주주의를 결합하고 싶다면 깊은 세계화에는 이별을 고해야 한다. 세가지 대안이 이렇게 가혹할 정도로 서로 상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령 세계경제가 완전히 세계화되었다고 가정해보자. 모든 거래비용이 사라지고 국경은 상품, 서비스, 자본의 교환에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민족국가가 이런 세상을 버텨낼 수 있을까?민족국가들은 경제적 세계화와 상인 및 해외투자자들의 관심을 끄는데만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국내규제와 조세정책은 국제표준에 일치시키고 가능한한 세계경제통합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구조화될 것이다. 정부가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서비스는 국제시장의 원활한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게임의 규칙이 세계경제의 요구에 휘둘리면 국가경제에 관한 정책결정은 제한될 수 밖에 없다. 나는 민주주의와 민족자결권이 하이퍼글로벌라이제션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자신의 사회적 합의를 보호할 권리가 있고 이러한 권리가 글로벌 경제의 요구와 충돌할 때 물러서야 할 것은 후자다.”

 

그러면 브레튼우즈 체제의 제한된 세계화에서 하이퍼글로벌라이제이션으로 바뀐 이유는 무엇인가? 첫번째는 제한된 세계화의 성공 자체가 세계화의 심화에 대한 증명이 되엇다는 점이다. 그리고 워싱턴 컨센서스라 불리는 신념체계의 등장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무역이 아니라 금융이었다. 자본 이동의 자유를 위해선 얕은 통합이 아닌 깊은 통합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처참했다. “1996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한국, 타이에 유입된 민간 자본은 총 930억 달러였다. 그러나 1997년 들어 120억 달러가 순식간에 빠져나가서 기업회생을 위해 단 한 해 만에 1050억 달러가 필요했다. 이것은 다섯 나라 GDP 총합의 10%를 넘는 금액이었다. 이 정도 축격이라면 제아무리 견실한 국가다로 쑥대밭이 되는 것이 당연했다. 경제위기는 다른 지역국가들에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특히 국제금융시장에 상당한 빚을 지고 있던 러시아와 아르헨티나가 각각 1998년과 1999-2000년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아시아 국가에 만연한 비리와 정경유착으로 과도한 대출과 비효율적 투자가 나타났고 이로써 경제위기가 비롯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토록 기적적인 경제성장이 과연 가능했을까?” 그리고 “1998년 이후 신속하게 경제안정을 되찾았다는 사실은 세 국가의 경제기반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시아 국가들이 겪은 금융위기는 아시아국가들이 저지른 잘못이 아닌 금융시장에 내재한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이들 국가는 bank run당했다는 설명이 더 그럴 듯하다.”

 

당시 경제부총리를 지낸 강경식도 회고록(‘국가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에서 같은 말을 한다. 그가 경제부총리를 맡으면서 주력했던 일은 금융개혁법안이엇다. 당시 한국경제는 10년마다 터졌던 거품이 붕괴하던 상태엿다. 그런 시점에서 그가 주력한 것은 채권자들, 즉 외국인들에게 한국정부는 문제를 잘 알고 있고 문제를 고칠 능력이 잇다, 그러니 너희 빚을 떼먹는 일은 없다는 신뢰를 주는 것이엇다. 문제는 대선을 앞두고 국내정치는 선거정국에 들어가 마비된 상태에서 이익집단의 알력을 조정할 능력이 사라진 상태엿다. 정치권의 조정능력이 사라진 상태에서 이익집단에 끌려다니면서 한보와 기아 사태를 제대로 처리할 수 없었고 금융개혁법안에 관련된 이익집단인 한국은행노조의 실력행사에 끌려다니면서 외국에 보여주기 위해 마련했던 금융개혁법안도 무산되면서 신뢰를 잃었고 외환위기를 당했다고 강경식은 설명한다. bank run에 당했다는 말이다.

 

타이나 인도네시아처럼 글로벌 시스템의 변방에 있던 나라들이 위기로 무너졌을 때 우리는 그것이 그들 탓ㅎ이라고, 그들이 이 세계의 준엄한 법칙에 적응하는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그러고 나서 금융 세계 중심에 있는 국가들이 비슷하게 쓰러졌을 때는 체제 자체를 비난하며 이제 이것을 고칠 때가 되엇다고 입을 모았다.”

 

저자는 금융세계화는 바보짓이었다고 결론내린다. 2차대전은 자본통제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한 입장변화는 양차대전을 거치는 동안 겪은 국제금융시자으이 불안과 혼란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1920-30년대에 민간자본흐름은 금융시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케인스는 근본 문제를 지적했다. 자유로운 자본 이동은 금융시장의 안정성뿐 아니라 거시적 균형을 저해한다.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거시경제의 가지조정능력 덕분에 특별한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이 없어도 된다는 대공황 이후 암흑기를 거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케인스는 고용 및 생산 부문과 금융시장이 확연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금융시장은 도박장에 가까우며 경제적 복지에 거의 기여하지 못한다고 여긴 것이다. 따라서 자본이동자유화는 버림받고 자본통제가 득세한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각국정부에 완전고용과 경제성장을 추구할 권리를 주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자본통제를 거부하고 자본이동자유화를 옹호하는 담론이 득세한다. 이후 전 세계는 금융위기 124차례 외환위기 208차례, 국가부채위기 63차례를 겪었다. 1800년 이후 발행한 모든 금융위기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금융위기 시기와 자본이동 시기는 정확히 들어맞았다. 익히 잘 알고 있는 1990년대의 금융위기 때뿐 아니라 그전에도 국제자본 이동성이 높아질 때마다 국제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그러면 왜 미국과 IMF는 금융세계화를 밀어붙였던 것일까? 아리기는 자본축적의 사이클 때문이라 말한다.

 

자본이 시공간을 재편하는 논리는 축적의 논리이다. 아리기는 축적의 사이클을 두가지로 구분한다. 축적의 사이클은 trade expansion부터 시작된다. 시장의 확장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본의 공간은 쌓여가는 자본의 양에 비해 좁아진다. 이윤율저하 경향에 대한 아리기의 해석이다. trade expansion에선 이윤이 자본으로 재투자된다. 그러나 자본의 절대량에 비해 공간이 좁아지면서 자본의 이윤율은 낮아질 수 밖에 없고 경쟁이 치열해진다. 경쟁은 경쟁자를 제거하여 좁아진 공간을 넓게 만들려는 시도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기의 도시국가들간의 치열한 전쟁(이탈리아 100년 전쟁이라 불린다) 19세기말 이후 유럽의 제국주의를 아리기는 이 단계로 해석한다. 말 그대로 cut-throat competition이다.

 

trade expansion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축적의 논리는 방향을 바꾼다. 더 이상 실물로는적정이윤을 올릴 수 없다. 이때부터 financial expansion이 시작된다. 돈을 물건으로 바꿔 물건을 다시 돈으로 바꾸는 축적의 논리는 돈을 바로 돈으로 바꾸는 금융의 논리로 바뀐다. “The diminishing returns and increasing risks of its employment in trade and production engender the overabundance of money capital and this drives the world-economy comes into the phase of finanacial expansion.” 메디치 가문이 그 좋은 예이다. 메디치가 돈을 불린 시장은 전쟁터였고 그들은 high finanace를 창조했다. 메디치가가 개척한 이 시장에 스페인 제국을 고객으로 제노바인들이 뛰어들었고 스페인제국과 제노바인의 연합은 대항해시대를 열어 시장의 확장을 가능하게 했다. 다음 주기의 trade expansion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다음 사이클의 trade expansion은 스페인-제노바 연합이 아닌 네델란드에 의해 이루어진다. 더 넓은 공간을 재편할 논리는 기존의 패자에게서 나오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a systemic cycle of accumulation.’ First established by the Genoese capitalist class in the 16th century, it was repeated three more times under the successive leadership and dominance of the Dutch, British and US capitalist classes. In this succession, financial expansions have always been the initial and concluding moments of systemic cycles.” (Arrighi 1994)

 

1970년대가 그런 순간이었다고 아리기는 말한다. 아리기는 1970년대 이후 미국, 일본, 독일 간의 경쟁은 과잉축적, 또는 이윤율저하 경향의 증상이었고 그 이후 미국의 산업공동화 역시 동일한 증상이었다고 해석한다. “Its very unfolding resulted in a major intensification of competitive pressures on each and every governmental and business organization of the capitalist world-economy and in a consequent massive withdrawal of money capital from trade and production. The switch occurred in the critical years of 1968-73. It was during these years that deposits on the so called Eurodollar market experienced a sudden upward jump followed by twenty years of explosive growth. By the mid-1970s the volume of purely monetary transactions carried out in offshore money markets already exceeded the value of world trade many times over. From then on the financial expansion became unstoppable.” (Arrighi 1994)

 

이 시기는 영국의 Belle Epoche와 너무나 닮았기에 아리기는 70년대 이후의 금융확장기을 미국의 Belle Epoche라 부른다. 그러나 금융확장기의 문제는 축적 사이클의 모순이 해결되지 않고 보류될 뿐이라는 것이다. Belle Epoche의 아름다움은 위기의 해결보다는 위기의 심화 덕분에 가능했다. “The striking similarities can be detected between the cumulative influence of finance on the US in the 1980s, on Britain in the Edwardian era, on Holland in the periwig era, and on Spain in the Age of the Genoese. Excessive preoccupation with finance and tolerance of debt are apparently typical of great economic powers in their late stages. They foreshadow economic decline. The costs of financialization concentrated to the lower and middle strata of the economic power. Finance cannot nurture a large middle class, because only a small elite portion of any national population. Manufacturing, transportation and trade supremacies, by contrast, provide a broader national prosperity” (Arrighi 1994)

 

80년대 이후 미국에서 시작된 양극화는 역사의 반복일 뿐이며 8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라 불리던 것은 그 양극화를 이념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Belle Epoche의 아름다움은 역진적 재분배에 의해 가능한 덧없는 아름다움이며 지속가능한 축적논리를 보여주지 않는다.

 

에드워드 시대 즉 영국의 Belle Epoche처럼 레이건 이후 미국의 Belle Epoche 역시 세계화의 시대엿다. 그러나 그 세계화는 영국도, 미국도 금융의 세계화였다. 금융화가 반드시 나쁜 결과만 낳는 것은 아니다. 영국도 미국도 금융의 주도로 경제의 재편이 가능했고 그 재편은 경제의 생산성을 회복해 이윤율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고 그러한 재편은 다음 단계의 trade expansio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이 시기 이윤율의 회복은 역진적 재분배가 큰 이유였다. 금융은 생산하지 않는다. 분배할 뿐이다. 다시 trade expansion이 가능하려면 시공간의 새로운 조직논리가 필요하지만 금융은 그런 논리를 제공할 수 없다. 더군다나 재분배는 무한하게 가능하지 않다. 어느 순간 더 이상 분배할 것을 찾아내지 못하는 단계에 도달해 제 무덤을 팔 수 밖에 없었고 그 순간이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The historical record shows that in the phases of financial expansion of the capitalist world-economy two different kinds of concentration of capital have occurred simultanously. One kind has occurred within the organizational structures of the cycle of accumulation that was drawing to a close. As a rule, this kind of concentration has been associated with a final ‘wonderful moment’ of revival of the still dominant but increasingly volatile regime of accumulation. But this wonderful moment has never been the expression of renewed capabilities of that regime to generate a new round of material expansion of the capitalist world-economy. On the contrary, it has always been the expression of an escalating competitive and power struggle that was about to precipitate the terminal cirisis of the reg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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