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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체험의 생리학 | 수신/심리 2010-12-31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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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저자의 뇌졸증 체험을 기록한 것이다. 뇌졸증은 드문 것도 아니고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러나 뇌졸증을 겪은 뇌과학자라니, 얼마나 기막힌 처지인지.” 바로 그 기막힌 처지 때문에 이책은 특별하다. “내가 알기로 신경해부학자가 직접 중증 뇌출혉을 겪었다가 나은 사연을 기록한 책은 지금까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사연은 뇌를 다룬 개론서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뇌졸증으로 좌뇌가 망가진 저자는 언어능력을 잃어버리고 계산능력도 시간감각도 자아정체성도 잃어버린다. 끔찍한 일이다. 한 때 잘 나가는 하버드대의 학자가 세상과 소통할 수단을 모두 잃어버리고 아기만도 못하게 되다니.

 

여러분의 타고난 능력이 체계적으로 하나씩 의식에서 사자져 가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보라.

 

먼저 여러분의 귀로 들어오는 소리를 분간하는 능력이 사라졌다고 생각해보자. 귀가 들리지 않는 게 아니다. 그저 소리가 혼돈스러운 소음으로 들리는 것뿐이다. 둘째로 눈앞의 대상의 명확한 형태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지워보자. 눈이 먼 게 아니라 3차원으로 보거나 색을 알아보는 능력이 없어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움직이는 대상을 따라가거나 대상들 사이의 명확한 경계를 구분하는 능력 또한 사라진다. 게다가 보통 때라면 그냥 지나칠 만한 냄새가 증폭되어 여러분을 압도하기 때문에 숨을 쉬기조차 어려워진다.”

 

읽는 법을 다시 배우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도 힘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전에 읽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S를 보여주며 이것은 S라고 말햇던 기억이 난다. ‘아니야, 엄마, 그건 그냥 꼬불꼬불 쓴 거잖아.’ 그러자 엄마는 이 꼬불꼬불한 글자가 S. 스으으라고 소리나지라고 했다. 나는 어머니가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했다. 그건 그냥 꼬불꼬불한 그림일 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앗다.”

 

깨끗한 접시를 선반에 차곡차곡 정렬하려면 놀랍게도 계산 능력이 필요했다. 나는 접시를 깨끗이 씻는 일은 해냈다. 그러나 다 씻은 접시들을 작은 선반에 말끔하게 집어넣으려고 계산을 시작하자 아찔하리만큼 머릿속이 복잡해졋다. 그 방법을 알아내는데 거의 1년이 걸렸다.’

 

흥미로운 것은 내가 글자를 타이핑하고 나서(우뇌) 방금 쓴 것을 읽지 못한다는 점(좌뇌)이엇다.”

 

사람들이 내 박사학위를 빼앗아갈까? 해부학에 대해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아!”

 

이후 예전처럼 회복되기까지 저자는 8년을 소비해야 했다. 뇌출혈로 죽은 뉴럼은 거의 없었다. 단지 뉴런들의 네트웤이 교란된 상태엿고 다시 네트웤을 잇기 위해 자극을 주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말은 간단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다시 유아기로 돌아가 사실상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배워야 할 판이었다. 나는 완전히 기본으로 돌아갔다. 걷는 법, 말하는 법, 읽는 법, 쓰는 법, 퍼즐을 맞추는 법을 배웠다. 신체의 회복 과정은 정상적인 발달 단계와 비슷했다. 각각의 단계를 익혀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식이엇다.”

 

8년 동안 저자는 하나씩 예전 기억들과 능력들을 되살릴 수 있었고 다시 유능한 학자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8년이 지나고 나서도 수리능력은 회복되지 않았다. 뇌출혈로 수리를 담당하는 뇌세포들이 파괴된 것이다. “4년째에 접어들자 뇌가 덧셈에 다시 반응을 보였다. 6개월 정도 더 지나자 뺄셈과 곱셈이 가능해졌다. 나눗셈은 5년차가 될 때까지도 힘들었다.”

 

그러나 저자는 좌뇌가 망가진 끔찍한 상황에서도 예전처럼 돌아가야 하는지 망설여 졌다고 말한다. “회복하기로 마음먹는 것은 쉽지 않은 인지적 결단이었다. 나는 영원한 우주의 흐름에 몸을 맡긴채 더 없는 희열을 느끼는 것이 좋았다. 누군들 안 그랫겠는가? 그곳은 아름다웠다.. 내 영혼이 자유롭고 거대하고 평화롭게 빛났다. 나를 집어삼킨 희열에 빠져 회복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질문해야 했다.”

 

거의 예전으로 회복되었을 때 마침내 내 몸에 대한 자각이 유동체에서 고체로 돌아왔다. 그러나 나 자신이 유동체로 지각되던 때가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 자신이 유동체여서 좋았다. 내 영혼이 우주와 하나이며 주위의 모든 것과 함게 흘러가는 것이 황홀햇다.”

 

저자가 느낀 황홀함을 요가학파들은 자나(황홀경)’라 부른다. 인도의 요가 수행자들만큼 내적인 영성을 철저하게 추구한 경우는 없었다. “축의 시대의 중요한 통찰들 가운데 하나는 성스러움이 단순히 저 밖에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존재의 바닥에 내재한다는 것이었다.”(카렌 암스트롱) 이러한 깨달음은 브라만과 아트만이 같다는 범아일여로 정식화된다.

 

그러나 범아일여를 깨닫기 위해선 폭력이 필요햇다. 저자가 뇌출혈로 좌뇌가 마비된 것과 비교될 만한 폭력이. 범아일여를 깨닫기 위해서는 성스러운 것과 자기를 보호하려는 의식적인 자아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불연속성을 깨야 했다. “거룩한 존재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가끔 문명화된 개인의 정상적인 반응을 부정하고 세속적인 자아에 폭력을 휘둘러야 했다.

 

요가 수행자들은 정상적인 사고 과정을 파괴하고 사고와 감정을 없애소 깨달음에 저항하며 버티는 무의식적인 바사나를 제거할 때에만 자아가 해방될 수 있다고 믿었다.” (카렌 암스트롱)

 

우리가 아는 요가는 건강체조에 가깝다. 그러나 요가의 목적은 건강을 위해서도 아니고 내공을 쌓기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 자신을 부수기 위한 기술로 개발된 것이다.

 

요가 수행의 초기단계에서 수행자는 음악, 특히 스스로 연주하는 음악을 듣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웅장하고 고아대하며 차분하면서도 고상한 영역에 들어선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마치 자신의 몸을 소유한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러한 느낌이 아마도 저자의 좌뇌가 무너졌을 때 느낌일 것이다.

 

요가 수행 최고의 경지는 이렇게 묘사된다. “수행자가 정말로 능숙하면 자나의 단계들을 넘어서 네 개의 아야타나(四空處)에 들어갈 수 있다. 이 상태는 매우 강렬해서 초기의 요가 수행자들은 자신이 신들이 사는 영역에 들어왔다고 느꼈다. 요가 수행자는 네 개의 정신 상태를 차례로 경험하면서 존재의 새로운 양식에 진입했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는 무한에 대한 느낌(空無邊處)이다. 두 번째는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는 순수한 의식(識無邊處)이다. 세 번째는 부재에 대한 인식(무소유처(無所有處)이며 이것은 역설적으로 풍요에 대한 인식이기도 하다. 오직 재능이 뛰어난 요가 수행자만이 이 세 번째 아야타나에 이를 수 있었다. 이 단계는 (또는 )’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세속적으로 경험하는 존재의 형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 다른 존재가 아니다. 이것을 적절하게 묘사할 수 있는 말이나 개념은 없다. 따라서 이것은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라고 부른 ㄴ 것이 더 정확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방 안에 걸어들어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묘사한다. 그럴 때 우리는 공허, 공간, 자유를 느끼게 된다.

 

일신교에서도 신을 경험하는 일에 대해 비슷한 언급을 햇다.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 인간의식에서 거룩한 것의 가장 고양된 방출상태를 라고 했다. 신은 단지 또 다른 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이나 거룩함과 마주치는 것은 말로는 도저히 표현이 불가능한 경험이기 때문에 언어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신비주의자들은 그 다름을 강조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이런 종류의 부정적 용어법을 채택했다. 요가 수행자들은 그들의 존재의 핵심에 자리잡고 잇는 무한한 자아를 마침내 경험하게 되었다고 상상했을 것이다.” (카렌 암스트롱)

 

저자가 느낀 평화와 기쁨, 행복, 우주와의 일체감은 영적 체험의 느낌과 거의 일치한다. 물론 저자가 요가의 최고 경지를 느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경험은 영적 체험이 신경학적인 근거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체험은 뇌과학 서적에서 종교적 체험을 설명할 때 거론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종교적 혹은 영적 경험의 밑바탕에 있는 신경해부 구조가 확인되었다. 우리가 개인의 존재에서 벗어나 우주(, 열반, 극도의 행복감)와 하나가 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 뇌의 어느 부위가 관여하는지 확인된 것이다.

 

티벳 수도승과 프란체스코 수도회 수녀들을 불러 SPECT 기계 안에 들어가 명상을 하거나 기도를 올리게 햇다. 이어 명상이 절정에 달하거나 신과의 합일을 느끼는 순간, 실을 잡아당시도록 했다. 이 실럼을 통해 뇌의 특정 부위의 신경 활동이 달라지는 것이 확인되었다.” 좌뇌의 언어중추와 공간지각, 자아중추가 침묵한 것이다.

 

이때의 경험은 저자의 좌뇌가 마비되고 우뇌가 의식을 지배할 때와 비슷한 상태이다. 저자가 몸을 고체가 아니라 유동체로 지각하고 우주와 하나가 되는 기분을 느낀 것이 신경학적으로 설명 가능해진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체험을 세상 모든 번뇌로부터의 해방감이라 말하며 열반과 같은 느낌일거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책에서 자신의 체험을 종교적으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단지 자신의 체험을 삶에서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교훈으로 받아들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뇌졸증 경험으로 축복에 가까운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누구든 언제라도 깊은 마음의 평화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열반과도 같은 경험이 우뇌의 의식 속에 존재하며 언제라도 스스로 뇌의 그 부분에 접속할 수 있다고 믿는다.”

 

뇌졸증이 나에게 가르쳐준 최고의 것은 감정을 몸으로 느끼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기쁨의 감정이 내 안에 있었다. 평화의 감정이 내 안에 있었다.” 그러나 좌뇌의 힘이 점차 강해지면서 예전의 감정이 돌아왔다. “판단은 몸이 어떻게 느끼는지에 따라 결정되었다. 분노, 좌절, 공포 같은 감정이 몸 안에 차오르면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나는 어떤 감정 프로그램을 되찾고 싶고 어떤 감정 프로그램(조바심, 비난, 불친절)에 발언권을 부여하고 싶지 않은지 무척 까다롭게 골랐다. 뇌졸증은 내가 세상에서 누구이고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지 선택할 수 있게 해준 놀라운 선물이었다. 사고 이후 나는 내게 선택의 권리가 있다는 걸 실감한 것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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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역사 | 인문/사회/역사 2010-12-3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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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마크 뷰캐넌 저 /김희봉 역
지호 | 2004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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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이책을 쓰게 된 이유이다. “왜 역사는 따분하지 않은가? 역사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현재의 경향이 계속된다고 볼 수도 없다.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미래는 끊임없이 우리의 기대를 저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가 흥미로운 이유이다.”

역사는 우연의 연속이기에 재미있다. 그러나 역사가 우연이기만 하다면 그것은 그리 재미있는 것이 될 수는 없다. 역사는 우연적이면서 규칙적이기에 재미있다.

“우리는 필연적인 일보다는 끝없는 조사와 숙고로만 원인을 알 수 있는 것에 감동한다. 이에 비해 양극단에 있는 뚜렷한 법칙에 의해 그렇게밖에 될 수 없는 상황과 완전히 마구잡이인 상황은 대개 우리의 마음을 끌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는 역사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대상들이 역사를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며, 역사를 능동적으로 바꿀 방법조차 없이 꼭두각시처럼 끌려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발성은 우리를 매혹시킨다. 우리는 개별 사건의 인과적인 힘을 알게 된다. 우리는 모든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화고 논쟁한다. 그 사소한 일들 모두가 각자 거대한 변화의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우발성은 즉각적인 사건이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왕국은 말굽에 박을 못이 부족해서 망할 수도 잇다.” (스티븐 제이 굴드, 저자의 인용)

역사는 왜 우발적이면서 규칙적인가? 이책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려는 시도이다. 그리고 역사가 과학이 될 수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시도이다.

저자는 과학으로서 역사의 모델을 비평형 통계물리학에서 찾는다. “이런 시스템에서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그러면서도 개별적인 사건들의 무질서 속에는 심오한 규칙성이 들어 있고 아주 간단한 통계법칙에 지배되는 경우도 많다.”

간단한 통계법칙의 대표적인 예는 멱함수(power law) 관계이다.


“모래알을 하나씩 계속 떨어트리면 넓은 모래산이 점점 높이 쌓인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계속 잘 쌓이지는 않는다. 모래더미가 커지면서 경사가 점점 가팔라져 나중에는 모래알이 경사면을 타고 조금씩 흘러내리게 된다. 조그만 산사태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 때 모래알은 아래로 미끄러져서 더 평평한 곳으로 가고 모래산은 더 낮아진다. 이렇게 해서 모래산은 커지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하고 그 들쭉날쭉한 윤곽은 영원히 요동친다.”

복잡계를 설명할 때 거의 반드시 나오는 예이다. 이 실험을 고안한 백, 탕, 위젠필드는 모래산이 쌓이고 무너지는 리듬을 이해하려고 했다. “사태의 ‘전형적인’ 크기는 얼마인가? 다시 말해 다음 사태는 얼마나 클 것으로 기대되는가?” 그들의 질문이다. 그들은 컴퓨터 상에서 수천개의 모래더미를 만들고 수백만번의 사태를 일으켜 보았다. 그러나 그들이 찾는 답은 없었다: ’전형적인’ 사태 따위는 없었다.

“어떤 때는 모래알 하나가 구르는 것으로 끝나기도 했고, 백 개 또는 천 개가 한꺼번에 구르기도 했다. 또 어떤 때는 수백만개의 모래알이 한꺼번에 굴러내려 더미 전체가 무너지는 ‘격변’이 일어나기도 했다.”

왜 그럴까? 모래더미가 언제나 무너질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모래더미가 ‘악마 같은 불안정성’에 있기 때문에, 과도하게 민감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를 물리학에선 ‘임계상태(critical state)’라 부른다.

임계상태에 있는 모래더미가 어떻게 무너질 것인가는 ‘역사’가 결정한다. 임계상태에 있는 ‘계’는 “본질적으로 역사적이고 프랜시스 크릭이 말한 ‘얼어붙은 우연(frozen accidnets)’에 민감하다. 모래더미 게임에서 모래알은 무작위로 여기저기에 떨어진다. 더미가 자라면서 모래알은 떨어진 곳에 그대로 ‘얼어붙고’ 그 모래알의 영향은 영원히 그 자리에 고착된다.”

“제임스 왓슨과 함께 DNA를 발견한 크릭은 ‘얼어붙은 우연을 진화의 본질적 요소라 말했다. 생물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돌연변이는 거의 항상 생물의 생존과 생식 능력을 저하시키고, 따라서 돌연변이를 일으킨 변종은 대개 멸종한다. 그러나 어쩌다 드물게 돌연변이가 적응성을 높여서 집단 전체로 퍼질 수 잇다. 그러면 그 우연이 그 자리에 얼어붙어서 그 뒤로 일어나는 그 종의 모든 진화는 이 새로운 도약대에서 시작하게 된다. 진화는 이러한 방식으로 누적된다. 역사는 얼어붙은 우연이 만든 구불구불한 경로를 따라 진행되며 이 얼어붙은 우연이 바로 역사적 우발성이 구체화된 것이다.”

물리법칙이 얼어붙은 우연을 허용하지 않으면 세계는 평형상태가 되어 모든 것은 풍선 속의기체처럼 균일하고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물리법칙이 한 장소에 고착되는 결과를 허용하면 거기에 따라서 미해가 진행되는 바탕이 변경된다. 물리법칙이 역사의 존재를 허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가 개입하는 임계상태에선 시간이 개입하지 않는, 즉 가역적인 ‘평형’ 상태에 있지 않다. 비가역적인 비평형 상태에 있을 때 그 계를 복잡계라 부르며 그러한 계를 연구하는 물리학을 비평형 물리학 또는 복잡계 물리학이라 부른다.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은 비평형 물리학에서 찾아야 한다. 비평형 물리학의 개념들은 역사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특별히 조율된 것이다.”

저자는 폴 케네디의 ‘제국의 흥망’을 그 예로 든다. “국가의 경제력은 자연스럽게 줄었다 늘었다 한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어떤 국가의 경제적 기반은 점점 약화되고 어떤 국가는 새로운 경제적 기반을 얻지만 기존의 상황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서 쌓인 스트레스는 대개 무력 충돌의 형태로 방출되며 충돌이 벌어진 뒤에는 각각의 국가들이 진정한 경제력에 따라 대략 균형을 찾는다.

지각에 스트레스가 서서히 쌓였다가 갑작스런 지진으로 방출되거나 모래더미에서 경사가 점점 급해져서 계속 불안정성이 높아지다가 사태가 나는 것이 역사에 대한 케네디의 설명과 비슷하게 들린다면 이는 우연이 아니다. 전쟁은 실제로 지진이나 모래더미 게임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통계적 패턴을 보인다.”

비시간적인 즉 가역적인 평형 또는 균형이 지배하는 평형계에선 법칙에 따른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얼어붙은 우연에 의해, 사회과학자들이 말하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이 지배하기 때문에 복잡계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왜 복잡계는 예측이 불가능한가? 그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그 이유는 복잡계의 이벤트는 ‘전형성’이 없기 때문이다.

전형성이 없다는 것은 정규분포를 그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정규분포는 수학에서 가장 유명한 곡선이다. 계의 이벤트들이 종모양의 정규분포를 따른다는 것은 평균값이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평균값에서 크게 벗어날수록 그런 이벤트는 더 드물어진다. “120킬로그램인 사람은 몇 명쯤 있겠지만 200킬로그램이 넘는 사람은 아주 예외적이다. 2000킬로그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계의 이벤트들이 정규분포를 그린다면 이벤트가 대략 어느 정도의 값을 갖는다는 기대값(평균의 다른 이름)을 갖는다.

그러면 지진은 어떨까? “지진이 방출하는 에너지가 두배 커지면 지진의 빈도는 4배 작아진다.” 이런 관계를 멱함수 법칙(power law)라 한다. 계가 멱함수 관계에 있을 때 그 계의 이벤트들은 규모불변의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냉동감자를 벽에 던져 만들어진 조각을 센다고 하자. 감자 파편의 무게와 개수는 멱함수 분포를 따른다. 조각의 무게가 두배가 될 때마다 조각의 수는 6배로 줄어든다.

“몸집을 마으대로 줄일 수 있다고 상상해 보라. 이런 능력이 있다면 감자 조각을 검사하는데 편리할 것이다. 몸을 콩알만하게 줄엿다고 하자. 이 크기에서 보이는 풍경에 대한 느낌을 얻는다. 여기에서 대략 콩알만한 조각들을 보고 얼마간 크거나 작은 것들도 본다. 그런 다음 몸을 더 줄여서 열배 작은 규모를 조사한다. 이 규모에서도 풍경은 거의 비슷하다. 콩알만한 그키였을 때 자신의 무게와 비슷한 모든 조각에 대해서 그 절반 무게의 조각들은 대략 6배 많다. 몸의 크기를 줄여도 항상 그 전과 같은 풍경을 볼 것이다. 어떤 규모에서도 풍경은 정확하게 똑 같은 느낌을 줄 것이다.”

이것이 멱함수 패턴의 의미이다. 이 관계에 있는 감자 조각에는 “특별히 ‘선호’되는 크기가 없다. 멱함수 패턴이 나왔다는 것은 정상적이거나 전형적인 파편 따위는 없다는 뜻이다. 감자 조각의 무더기가 규모 불변성을 보인다는 것은 큰 조각과 작은 조각은 단지 크기만 다를 뿐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의미이다.”

지진은 멱함수 패턴을 따른다. 그러므로 “큰 지진이라고 해서 작은 지진과 특별히 다른 원인을 가지지 않는다.” 거대한 지진은 아무 이유없이 그런 규모를 갖는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지진 예측은 불가능하다.

지진은 단층의 마찰력이 단층의 토막들에 쌓이고 마찰력이 쌓인 토막들에 누적된 스트레스가 방출되면 단층이 미끄지면서 지진이 일어난다. 이때 지층 토막이 방출하는 스트레스는 이웃한 토막으로도 전달되어 그 토막의 스트레스를 높인다. 큰 지진과 작은 지진은 처음 스트레스를 방출한 토막이 어느 위치에 있었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우연히 토막들의 네트웤의 중심에 있어서 네트웤 전체에 스트레스를 방출할 수 있는 토막이 진앙이었다면 네트웤 전체가 흔들려 큰 지진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지진이 예측 불가능한 이유이고 무시무시한 격변이 아무 경고 없이 일어나는 이유이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이것이 얼마나 커질지는 지진 자신도 모른다. 지진 자신이 모른다면 우리도 모른다.”

“임계상태에 사는 것들은 엇비슷하게 조직되는 경향이 있고 이 조직은 계의 세부적인 성질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계의 기하학적 구조(멱함수 패턴과 프랙탈 패턴)에만 관계된다. 따라서 어떤 것이 임계상태라면, 계의 세부적인 성질들을 거의 무시하면서도 본질적인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임계상태에 잇으면 인간세계 역시 마찬가지라 말한다. “불행히도 역사가들은 오로지 사건들의 연쇄만을 서술할 수 있고 그 배후에 잇는 심오한 역사적 과정을 잡아내지 못한다. 이 서사는 다만 역사의 변덕스러운 우발성에 존경을 표할 따름이다. 왜 모든 사태가 작지 않은가 하는 질문에는 아무 대답도 없다. 왜 모래 한 알이 파국을 일으킬 수 잇는지 이해ㅗ하기 위해서는 모래더미의 세부적인 구조를 작은 지역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알아야 한다. 이것을 통해 불안정성이 파급될 수 있는 범위를 알아내야 한다. 오로지 이런 방식으로만 역사가들은 역사를 훨씬 더 깊이 인식할 수 있다.”

저자는 인간의 역사에 어떻게 복잡계 물리학을 적용할 수 있는지 쿤의 과학혁명을 예로 든다. 쿤의 논리를 요약하면 정상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벤트들이 누적되면 정상과학의 개념들의 네트워크에 ‘부적응’이란 스트레스가 쌓인다. 부적응의 임계상태에 있는 것이다. “부적응이 어떤 문턱에 이르면 그 조직과 거기에 기초한 정상과학은 무너진다.” 저자는 과학혁명과 지진의 역학은 동일하다고 말한다.

“정상과학의 연구는 대륙판의 느린 이동과 비슷하고 과학혁명은 지진과 비슷하다. 지진에는 전형적인 크기가 없다. 과학혁명도 마찬가지일까?” 쿤 자신이 그렇다고 말한다. 과학혁명은 “큰 변화일 필요가 없고 그 집단 밖에서도 혁명적으로 보일 필요가 없으며 어쩌면 25명 이하의 소규모 집단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쿤의 논의는 전형적인 크기의 혁명은 없다는 말이다. 과학의 변동은 규모 불변일 수 있고 패러다임의 개념 네트웤은 지국의 지각처럼 임계상태일 수 잇다.”

그렇다면 복잡계는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에 인간세계 역시 예측불가능인가? 그렇지는 않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역사에 관련된 대상에서 우리가 알아내고자 하는 것은 수많은 사건의 연쇄에서 나타나는 통계적 패턴이다. 그런 법칙은 단 하나가 아니라 여러 서사의 일반적인 성질을 잡아내며 사건들의 배후에서 작동하는 역사적 과정의 심오한 성격을 반영한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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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밈 | 인문/사회/역사 2010-12-2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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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의 고전이 된 ‘이기적 유전자’는 진화의 단위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한 답이다. 진화는 적자생존의 게임이다. 그런데 그 ‘적자’는 정확히 누구인가? 보통 그 답은 ‘종’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란 책 한권으로 진화의 단위는 종이 아니라 유전자라는 것을 확정짓는다. 그럼 진화가 유전자의 드라마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도킨스는 유전자의 유일한 존재이유는 자기복제일 뿐이라 말한다. 원시 바다에서 유전자가 처음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생존한 유전자는 자기복제에 성공한 유전자 뿐이기 때문이다. 진화는 유전자가 자기복제에 성공하기 위한 드라마일 뿐이라는 것이다.

진화의 주인공이 유전자라면 우리는 그리고 이 행성의 모든 생물은 그 유전자가 자기복제를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유전자의 존재이유는 그리고 유일한 관심사는 자기복제일 뿐이지 더 똑똑해지고 더 강해지고 더 예뻐지는 것 같은 목적은 가지고 잇지 않다는 것이다.

유전자는 자신의 운반체인 우리가 어떤 삶을 사는가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우리가 비참하게 살더라도 유전자의 복제만 계속된다면 아무 상관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유전자의 관점에선 토끼가 호랑이보다 더 성공적인 운반체이다. 생태계의 균형 상 호랑이는 숫자가 많을 수가 없다. 귀를 쫑긋 세우고 벌벌 떨며 일생을 보내며 누구의 입에 들어갈까 두려움에 떠는 것이 전부인 토끼의 삶이 호랑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토끼는 수가 많다. 유전자의 입장에서 어느 종이 더 효율적일까?

오직 자기복제를 통한 자신의 영생만을 원하고 그것 이외의 것은 관심 밖이기에 유전자는 ‘이기적’이라 도킨스는 말한다.

도킨스는 그런 이기적인 자기복제자의 생존논리는 유전자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말한다. 오직 자기복제를 통해 생존하고 영생하는 것이 존재이유인 모든 것은 이기적 자기복제자이다.

“신종의 자기복제자가 최근 바로 이 행성에 등장했다. 우리는 현재 그것과 코를 맞대고 있다. 그것은 아직 탄생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이며 자신의 원시 수프 속에 꼴사납게 둥둥 떠 있다. 그러나 이미 그것은 오래된 유전자를 일찌감치 제쳤을 만큼 빠른 속도로 진화적 변화를 달성하고 있다.”(‘이기적 유전자’) 도킨스는 그 자기복제자의 이름을 ‘밈(meme)’이라 부른다.

도킨스는 문화 전달의 단위를 밈이라 부른다. “밈의 예에는 곡조, 사상, 표어, 의복의 유행, 단지 만드는 법, 아치 건조법 등이 있다. 유전자가 유전자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 정자나 난자를 운반자로 하여 이 몸에서 저 몸으로 뛰어다니는 것과 같이 밈도 밈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에는 넓은 의미로 모방이라 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뇌에서 뇌로 건너다닌다.” (‘이기적 유전자’)

밈 역시 유전자만큼이나 이기적이다. 밈은 인간의 창조물이다. 인간이 창조한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밈 역시 인간이 생존을 위해 만든 도구이며 유용성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그러나 밈의 자기복제가 성공적인가는 창조자인 인간에게 얼마나 유용한가와는 그리 상관이 없는 것같다.

“밈은 비유로서가 아니라 엄밀한 의미에서 살아있는 구조로 간주해야 한다. 당신이 내 머리에 번식력 있는 밈을 심어 놓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당신이 내 뇌에 기생하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 기생하면서 그 유전 기구를 이용하는 것과 같이 나의 뇌는 그 밈의 번식을 위한 운반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예컨데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이라는 밈은 수백만 전 세계 사람들의 신경계 속에 하나의 구조로서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이기적 유전자’)

밈은 유용하기 때문에 번성하는 것이 아니라 숙주인 뇌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안착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효과적으로 다른 뇌로 전파될 수 있는가에 따라 번성한다. 밈의 진화에서 적응도는 유용성이 아니라 자기복제의 효율성이 기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밈의 자기복제 메커니즘은 바이러스에 가깝다.

이책의 저자는 밈의 그런 기생성에 주목한다. 그렇기 때문에 책의 제목도 ‘마인드 바이러스’이다. 밈을, 문화를 사람의 마음을 바이러스의 메커니즘을 통해 보는 것은 패러다임의 전환에 가깝다.

밈은 정의상 우리 마음을 구성하는 기본요소이다. 밈은 세계 그 자체이다. 우리가 밈을 통해서만 세계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땅, 대기, 우주 공간도 모두 밈이다. 땅은 말 그대로 땅이지 우리가 편의상 만들어낸 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진리가 아니라 밈이라고 보기 시작하면 똑 같은 것을 지칭하기 위해 다른 밈(원소, 결정, 아원자 입자 등)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전자현미셩으로 들여다보면 지구의 대부분이 빈 공간이라는 점을 상기하라. 모든 구별은 이간이 만들어낸 것일 뿐 현실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밈은 우리의 마음 그 자체일 수 있기에 우리의 현실 자체이다. 그러나 밈의 자기복제 메커니즘을 바이러스와 같다고 보는 관점에선 밈이 참이냐 거짓이냐 유용한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저자는 도킨스가 제시한 밈의 개념에서 더 나아가 실제 밈이 어떤 것들이 있는가를 이책에서 정의한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밈은 세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첫번째는 구별 밈(distinction-meme)이다. 현실을 작은 조각으로 자르는 칼과 같다. 두 번째는 전략 밈(strategy-meme)으로 어떤 원인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한 믿음을 말하낟. 전략 밈은 일종의 경험법칙으로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을 때 우회전을 하려면 일단 멈춘 다음 우회전한다, 경찰이 보이면 속도를 늦춘다 같은 것이 그 예이다. 세번째는 삶의 모든 것에 대한 태도인 연상 밈(association-meme)이다. 각각의 밈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프로그래밍한다.” 소주 광고에 섹시한 여자 사진을 쓰는 것은 쓰는 이유는 우리 뇌에 섹시한 여자와 소주와 연결하는 연상 밈을 심으려는 것이다. “우리가 연상 밈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잇다면 한 사물의 존재가 다른 것에 대한 생각이나 감정을 유발한다. 결국 행동에 변화가 일어난다.”

“밈의 세가지 분류는 초기에 뇌가 사용되었던 방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뇌는 그런 식으로 우리의 생존과 번식을 도왔다. 동물의 뇌도 구별(어미의 얼굴, 포식자, 먹어도 되는 것), 전략(이동경로, 먹을 것을 찾아내는 방법), 연상(즐겁거나 위험했던 경험의 기억, 친구와 적에 대한 기억)으포 프로그래밍될 수 있다. 밈은 기본적인 뇌 기능을 활용한다. 뇌는 밈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위해 설계된 하드웨어다.”

저자는 다시 자연적으로 진화했는가 의식적으로 만들어졌는가에 따라 밈을 문화 바이러스(natural viruses)와 설계 바이러스(designer viruses)로 나눈다.

도킨스의 원래 이론에서 상당히 나아간 진전이다. 그러나 저자는 밈의 이론을 발전시키려는 의도로 이책을 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저자는 문화 바이러스와 설계 바이러스란 분류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는 밈의 바이러스성을 보여주고 우리가 밈에 휘둘리지 않을 자유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책의 상당부분을 밈이 유용성이 아니라 밈 스스로의 자기복제를 위한 자기복제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할애한다.

“텔레비전은 밈 진화의 용광로다. 본방 사수와 입소문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프로그램은 재빨리 사라지고 돌연변이와 변종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사업을 운영하고 돈을 관리하고 삶을 개선하기 위한 아이디어들은 우리에게 가장 유익해서가 아니라 가장 잘 퍼지기 때문에 널리 유행한다. 두가지는 관련이 있을 수도 잇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다큐는 ‘조작’, 예능은 ‘표절’, 드라마는 ‘막장’”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이었다. 짜증난다는 수도 없이 하면서 왜 막장 드라마를 계속 보는 것인가? 그 드라마가 ‘성공한’ 밈들로 조립되어 잇기 때문이다.

“냉소적인 사람들은 왜 우리 인생과 문화, 특히 텔레비전에는 예술적이고 진지한 콘텐츠 대신에 무가치하고 저급한 쓰레기밖에 없는 거냐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답은 간단하다. 무가치하고 저급한 쓰레기가 더 훌륭한 복제자이기 때문이다.”

“‘주의를 기울이다(pay attention)’란 표현에서 pay란 단어는 의미심장하다. 의식을 가진 존재로서 우리에게 주의력은 가장 소중한 자원이다. 우리가 뭔가에 주의를 기울일 때는 의식적인 삶의 한 조각을 소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저자는 묻는다. 우리의 주의를 뺏으면서 자신의 번식을 위해 우리를 이용하려는 밈들. 대중매체 덕분에 우리는 밈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막장 드라마 같은 것에 소중한 ‘주의’를 빼았기는 것은 그 드라마가 담고 있는 밈들이 “오래전 동물이었던 시절의 잔재인 생존과 번식”과 같은 우리의 본능이 새겨진 뇌의 회로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가장 쉽게 퍼지고 결과적으로 사회에 널리 퍼지는 생각은 우리의 원시적인 뇌에 침투하기 쉬운 생각이다.” 뇌의 버튼을 눌러대면서 밈은 우리의 주의력을 빨아들이고 우리의 삶을 낭비하도록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새로운 밈은 트로이 목마처럼 우리의 유전자 버튼을 이용해 마음 속에 들어온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위험의 경고,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성적 매력 같은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밈이 우리의 유전자 버튼을 눌러 관심을 끌어놓고 다른 밈을 몰래 끌고 들어오면 웬만해서는 넘어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저자는 이책의 상당부분을 우리의 원시적 뇌가 어떤 버튼을 우리의 뇌에 남겨두었는지 그리고 그 버튼을 밈이 어떻게 눌러대는지를 보여주는데 할애한다.

생존본능을 예로 들어보자. “위험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이 시작되자 다시 한번 밈 진화에 불이 붙었다. 오늘날 우리는 일상에서 생존을 위협하는 것을 대부분 제거했지만 여전히 우리 삶은 위험 밈으로 가득 차 있다.” 저자는 보험업이 번성하고 호러영화가 인기있는 장르인 것을 예로 든다. 그리고 미신이 번성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미신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리고 위험보다 더 좋은 화젯거리는 그리 많지 않으므로 미신은 자유롭게 통요된다. 그래서 미신은 마인드 바이러스가 되어 우리의 주의를 산만하게 하고 행동에 영향을 주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퍼뜨리도록 우리를 프로그래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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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월 스트리트 | 경제경영 2010-12-27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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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빅 숏 BIG SHORT

마이클 루이스 저/이미정 역
비즈니스맵 | 201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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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제목에서 short는 short selling 즉 공도매를 말한다. 주식의 하락에 베팅하는 거래말이다. 그러나 이책으ㅢ 주인공들이 베팅한 것은 자잘한 주식종목이 아니라 시장 자체의 몰락이었다. 이책은 이번 금융위기 이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 전체의 붕괴에 베팅한 헤지펀드들의 이야기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이 어떻게 세계경제를 무너트렸는가는 이제 상식에 속한다. 새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이책에 등장하는 헤지펀드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몰락을 예견했다는 것을 빼면 이책의 내용은 새로울 것이 없다.

이책은 모기지 시장이 어떻게 채권시장의 주류가 되었고 서브프라임 시장이 다시 그 시장의 주류가 되는 과정을 다루면서 왜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붕괴가 세계금융시장을 무너트렸는가를 추적해간다. 그러나 그 내용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이책이 나왔을 당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저자는 이전에 쓴 책들에서 뻔한 것을 뻔하지 않게 만드는 재주가 잇다. 그 재주의 비결은 월 스트리트 내부의 시점에서 사건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요 몇 년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책은 홍수처럼 쏟아졌다. 그중에는 뛰어난 책도 많았다. 그런 책들은 대개 두가지 관점을 갖는다. 첫째 부류는 경제학자들이 쓴 책으로 거시적 관점에서 위기를 분석한다. 둘째 부류는 위기의 진원지가 된 미국투자은행 관계자의 회고록 형식이거나 위기를 봉합하기 위해 분투한 정부기구 관계자의 회고록 같은 부류이다.

첫째 부류는 큰 그림을 그린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둘째 부류는 사건의 미시적 관점에서 구체성이 풍부하다는 장점이 있다.

일장일단이 있다. 그러나 위기의 속살을 들여다보기에는 부족하다. 이책은 두 부류의 빈 중간을 메워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전의 책들과 마찬가지로 위기에서 시장 즉 월 스트리트 전체가 어떻게 움직였는가를 시장참여자들의 구체적인 행적을 따라가며 서술한다. 추리소설을 읽는 것같다. 물론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범인이 누구인지는 이미 다 알려져 있다. 그러나 왜 그런 결말이 났는지 범인이 왜 그인지 왜 그런 짓을 했는지는 그리 잘 알려진 것은 아니다. 이책은 추리소설처럼 사건을 파헤치면서 범죄의 현장을 재구성한다.

물론 이책이 그려내는 위기의 과정을 요점만 본다면 다른 책들과 다를 것은 없다. 추리소설의 줄거리를 알아봐야 작품의 재미를 느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다른 책들이 간과 또는 잘 모르기 때문에 보여주지 못했던 점이 하나 있다: 어떻게 월스트리트 투자은행들이 거대한 사기극을 꾸밀 수 있었는가?

사기의 요점은 쓰레기 채권을 비싸게 파는 것이었다. 모기지를 채권으로 포장해 파는 것은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채권은 팔아봐야 그리 남는 것이 없다. 그러나 문제있는 채권을 문제가 없는 채권으로 둔갑시킬 수 있다면 거대한 이익이 만들어진다. “드러난 위험을 부정직하고 인위적인 방법으로 낮추어 트리플B등급으로 바꾸면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골드만삭스가 하는 일이엇다.” 위기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었다.

납을 금으로 보이게 하려면 먼저 아무도 그것이 납인지 알기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만이 서브프라임모기지채권의 투자 설명서를 읽을 수 있죠.” 골드만삭스는 투자자들과 신용등급평가기관들이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불투명하고 복잡한 증권을 창조햇다. 그것은 바로 서브프라임모기지 합성증권인 CDO 혹은 부채담보부증권이었다.

저자는 금융의 탈규제 명분으로 주장되었던 금융의 혁신이란 것이 실상은 이런 것이라 말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에 주택저당채권의 본래 목적은 주택담보대출과 관련된 위험을 재분배하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채권시장 투자자들은 주택담보대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어서 주택소유자들이 지불하는 금리가 하락했다. 이러한 혁신의 목적은 간단히 말해서 금융시장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엇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반대의 목적을 위해 혁신을 꾀하는 사태가 벌어졋다. 시장을 복잡하게 만들어 위험을 숨기려 하는 것이엇다.”

월가 회사들은 문제가 있는 쓰레기 대출을 싸게 사들여 트리플B등급 트란셰란 이름을 붙이고 “채권 탑을 쌓았다. 그것이 바로 CDO엿다. 월가 회사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신용평가기관들이 부실한 대출 집합에 기초한 채권 더미를 받아서 그 중 80%에 트리플A등급을 부여하기 때문이었다. 월가 회사들은 그렇게 프리플A등급을 받은 채권들을 신용등급이 높은 증권에만 투자해야 하는 연금펀드와 보험회사 같은 투자자들에게 팔 수 있었다. 모두가 트리플A등급만 믿고 자신들이 안고 있는 위험을 무시한 것이었다.”

“월가의 대형회사들인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라더스, 골드만삭스, 씨티그룹, 그밖에 다른 회사들은 제조업체와 동일한 목적을 추구했다. 최대한 값싼 원자재-주택대출-로 최대한 비싼 최종상품-모기지채권-을 내놓는 것이엇다. 이때 최종상품의 가격은 무디스와 S&P로 선정된 등급에 좌우되엇다.”

신용평가회사를 속이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월가 회사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무디스에 입사하죠.’ 일곱 자리 연봉을 받는 사람들로 꽉찬 월가의 트레이딩 부서들은 다섯자리 연봉을 받는 멍청이들을 속여서 최악의 대출에 최고등급을 받아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이비리그 출신답게 치밀하고도 효율적인 방법으로 일을 처리햇다.

신용평가기관들의 모델은 갖가지 기회를 낳았다. 누구보다 먼저 그 기회를 찾아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서브프라임모기지채권은 모두 무디스에서 부여한 등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었다. 트리플A등급 조각은 모두 동일한 가격에 거래되엇고 프리플B등급 조각도 모두 또 다른 동일한 가격에 거래되었다. 각각의 트리플B등급 조각이 확연하게 차이 났음에도 모두 일괄적인 가격에 거래된 것이다. 이처럼 등급이 잘못 부여된 채권들은 대부분 월가 회사들이 신용평가기관들을 속여서 얻어낸 것이었다.”

그러나 속여서 얻은 등급도 등급이었고 그 등급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라스베이거스에 갔을 때 업계 전체가 신용평가기관을 믿고 잇음을 알아차렸어요. 모두가 신용평가기관만 믿었죠.” 스티브가 말햇다. “신용평가기관 사람들은 모두 공무원 같았어요. 그들은 박봉에 시달렸어요. 영리한 사람들은 월가 회사로 떠나 예전에 근무했던 신용평가기관들은 교묘하게 조종하는데 일조할 수 ㅇㅆ죠. 무디스의 애널리스트가 되는 것이 애널리스트의 최고영예가 되어야 합니다. 무디스의 애널리스트는 애널리스트로서 이보다 더 높은 자리는 없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해요. 그런데 실제로 그들의 지위는 바닥이엇죠! 골드만삭스가 GE의 증권을 좋게 평가한다고 해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요. 그러나 무디스가 등급을 낮추면 그 여파가 엄청나죠. 그런데 왜 무디스 직원은 골드만삭스에서 일하고 싶어할까요?” 스티브가 말햇다.

그러나 아무리 신용등급을 속일 수 있더라도 CDO는 쓰레기다. 상환이 안될 것이니까. 그러나 상환이 안되더라도 그것을 누가 대신 갚아준다면 문제가 없다. 여기서 사기극의 봉이 하나 더 등장한다. AIG가 봉이 된다. AIG가 봉이 되지 않았다면 “새롭게 발생할 위험들은 숨을 곳이 없어서 은행 규제자들에게 완전히 노출되었을 것이다.”

AIG는 기업대출, 자동차대출이나 신용카드 매출채권 등에 대한 보험을 팔아왔었다. “마이클은 신용부도스왑CDS라는 상품을 발견했다. 신용부도스왑은 반기별 프리미엄 지불과 기한부 조건으로 기업 채권의 상환을 보장해주는 보험증권이엇다. 예컨대 매년 20만 달러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GE의 채권 1억 달러를 보장해주는 10년 만기 CDS를 구매할 수 있다. 이 경우 신용부도스왑 구매자의 최대 손해액은 20만 달러씩 10년간 지불하는 200만 달러다.

GE가 10년 내 아무 때나 부도를 내고 채권보유자가 채권을 상환받지 못해도 CDS 구매자는 1억 달러를 상환받을 수 있다. 이것은 CDS 구매자가 1억 달러를 얻으면 CDS 판매자가 1억 달러를 잃는 제로섬 베팅이었다.”

AIG 관계자들은 “거의 10년 동안 다루어왔던 것과 기본저긍로 동일한 위험을 보장해주고 보험 프리미엄을 받는다고 생각햇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파크는 소비자대출에 대한 CDS 중에서 몇 퍼센트가 서브프라임모기지인지를 담당자에게 물어보았다. 런던의 위험분석가는 20%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모기지 비율이 95%에 달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죠.’”

“이제 그들은 사실상 세계 최대의 서브프라임채권 보유자가 되엇다.” “알고도 믿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일개 보험회사가 연간 몇 백 달러를 받고 200억 달러가 한순간에 사라질지도 모르는 엄청난 위험을 떠안았으니 말이다.”

도이체방크와 골드만삭스와의 회의에 참석햇던 AIG FP의 트레이더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기계를 떠받치는 사상이나 분석이 얼마나 미미한지를 깨닫고 충격을 감추지 못햇다. 서브프라임모기지 거래는 주택가격이 일시에 하락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가정에 기초한 것이었다.” AIG는 더 이상 그와 같은 상품을 보장해주지 않기로 햇다. 그러나 트리플A등급의 다양화된 소비자대출로 포장된 트리플B등급 서브프라임모기지채권 500억달러 규모를 신나게 매수한 후였다.

“서브프라임시장은 두단계를 거쳤다. 첫단계에서는 AIG가 대부분의 시장붕괴위험을 떠안고 2005년말까지 명맥을 이어갔다. AIG가 태도를 바꾸었을 때 AIG FP의 트레이더들은 자신들의 결정으로 시장이 폐쇄될 것이라고 추측햇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월가는 이미 CDO를 이용해 부실한 트리플B등급 서브프라임채권을 위험없는 트리플A등급 채권으로 만들어 너무나 많은 돈을 벌었기 때문에 그일을 그만둘 수 없엇다ㅓ. 여러 회사에서 CDO 기계를 운영했던 사람들은 너무나 크나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춤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처럼 돈이 나오는 동안 월스트리트는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주식시장은 소액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법률과 규제로 통제되는 세계이다. 그러나 기관투자자들의 세계인 채권시장은 주식시장을 압도하는 규모인데도 규제를 피해왔다. “채권 트레이더들은 법망에 걸릴 염려 없이 내부정보를 이용할 수 있었다. 채권 테크니션들은 정부 듀제에 신경 쓸 필요없이 보다 더 복잡한 증권을 개발 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채권에서 파생되는 상품이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채권시장의 불투명성과 복잡성은 월가의 대형 회사들에게 크나큰 이점이 되엇다. 채권부서들은 점차 월가 수익의 원천으로 성장했다. 채권시장에서는 아직도 고객들의 무지와 두려움을 이용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한 이유였다.”

“채권이 주식을 위축시켰다. 주식시장은 채권시장에 비교했을 때 뾰루지처럼 성가신 존재엿다. 일류 채권회사 살로먼브러더스가 엄청난 수익을 올려 완전히 다른 산업을 창출한 것 같았던 1980년대 이후로 채권시장은 큰돈이 생겨나는 곳이 되었다.” 이후 20년 동안 채권시장은 월스트리트의 호황을 주도하면서 다른 모든 것을 압도했다.

“월가는 구시대적 사업의 수익이 점차 감소하자 구조화금융이라는 새로운 산업을 창조했다. 주식중개 수익과 그보다 훨씬 전통적인 채권중개 수익은 인터넷과의 경쟁으로 크게 감소햇다.” 그런데 서브프라임시장이란 손쉬운 먹이감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단 몇 년 사이에 서브프라임모기지시장은 월가의 수익과 고용을 좌우하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다.”

월스트리트의 입장에서 서브프라임 시장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엇고 굴러가야만 하는 시장이었으며 굴러가게 만들어야만 하는 시장이었다.

“월가는 신용도가 낮으면서도 대출을 하는 미국인들이 충분하지 않자 최종상품을 찾는 투자자들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러사는 스티브의 베팅을 이용해 더욱 많은 상품을 합성했다. ‘자격이 없는 대량의 채무자들에게 감당할 수도 없는 집을 살 돈을 빌려주는데서 만족하지 않았죠. 허깨비 같은 대출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어요. 100배나 많이 말이죠! 그래서 서브프라임대출보다 금융시스템의 손실이 훨씬 컸어요.’ 스티브가 말했다.”

“그때 옵션원은 엄청난 손실을 발표했다. 옵션원은 원래 위험을 떠안지 않아야 마땅했다. 그러나 채무자가 최초 불입금을 내지 못할 경우에는 월가가 대출을 옵션원에 되돌려준다는 조항이 있었다. ‘대체 어떤 사람이 최초불입금도 내지 못하죠?’ 대니가 말햇다. ‘최초 불입금도 집할 수 없는 없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인간들은 대체 누굽니까?’ 스티브는 이렇게 말햇다.”

“월가 사람들이 서브프라임대출 문제가 미국 시민들의 거짓말과 재정적 무책임 때문에 발행햇다고 주장할 때마다 스티브는 이렇게 말했다. ‘뭐라고요? 미국인 전체가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 대출신청서에 거짓정보를 기록할 것에요’라고 말했다고요? 맞습니다. 그들은 거짓말을 했죠. 그러나 거짓말을 하라고 지시받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 겁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시장은 마르지 않는 샘물일 수는 없었다. “(2005년 기준으로) 지난 3년동안 주택가격은 과거 30년 동안 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상승햇다. 주택가격은 아직 하락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상승하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주택담보대출은 대출 첫해에 놀라운 속도로 부실해져 채무불이행율이 1%에서 4%로 상승했다. 주택을 사려고 대출을 받았다가 12개월 만에 채무불이행을 선언하는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2000년 이래로 자기 소유의 주택가격이 1%에서 5% 사이로 상승한 사람들의 채무불이행 확률이 10% 이상 상승한 사람들의 채무불이행 확률보다 거의 4배나 높았다. 수백만명에 달하는 미국인들이 주택가격이 상승하지 않을 경우 대출금을 갚지 못해 대출을 늘려야 한다는 소리였다.

주택가격 하락이라는 최악의 상황조차 필요없었다. 과거 몇 년동안 이어졌던 주택가격의 이례적인 상승세만 멈춰도 상당수의 미국인들은 대출금을 갚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리프만은 그 차트를 보고 또 보았다. 그조차도 그 차트의 수치에 충격을 받았다. ‘주택가격이 하락할 필요도 없잖아. 지금처럼 빠르게 상승하지만 않으면 돼.’

주택가격은 여전히 상승하고 있지만 채무불이행 비율은 4%에 육박하고 잇었다. 7%까지만 상승하면 저투자등급인 트리플B마이너스 채권은 휴지조각이 된다.

리프만은 서브프라임모기지채권에 대한 신용부도스왑을 보유해도 괜찮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용부도스왑은 보험이 아니라 도박이었다. 리프만은 승산이 있음을 알자 이제는 공매도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서브프라임 시장이 사라졌을 때 “리먼브라더스는 사라졌고 메릴린치도 무너졌다.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텐리는 투자은행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투자은행가들은 이제 멸종됐다. ‘월가의 몰락은 정의의 심판이야.’ 스티브가 말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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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화의 기적 | 인문/사회/역사 2010-12-26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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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회적 원자

마크 뷰캐넌 저/김희봉 역
사이언스북스 | 201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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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따라 역사가 진행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개인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몇십억 배 늘려보라. 그러면 역사에 단순한 법칙이 없다는 것이 놀랄 일이 아니다.”

저자의 전작인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에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저자는 묻는다. 사람을 그리고 사람이 모여서 만든 사회를 다루는 학문인 사회과학은 과학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과학은 아니다. 과학의 기본인 예측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 예측을 할 수 없는가? 설명은 여러가지가 있다. 대표적인 설명은 자연과학의 대상은 단순하지만 사회는 복잡하기 때문이고 사회가 복잡한 것은 “사람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간 세상을 물리학이나 화학처럼 정밀하게 이해할수(그리고 예측할수) 없다고 보았다. 원자는 단순하고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걸로 이야기는 끝.”

그러나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복잡하기는 원자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사람보다 더 복잡하고 종 잡을 수 없다.

“조지와 그레이시는 기나긴 우주혀행을 끝내고 드디어 지구로 귀환하여 오랜만에 휴식을 즐겼다. 이들은 술집에서 만나 우주여행에 관한 대화를 나누면서 지구의 포근함을 한껏 누릴 수 잇었다.조지는 바텐더에세 자신이 늘 마시건 파파야주스를 달라고 하면서 그레이시를 위해 토닉워터를 탄 보드카를 추가로 주문했다. 그런데 조지가 막 시가를 한 모금 빨아들이던 순간, 시가가 갑자기 사라졌다! 어디서도 시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조지를 보고 놀란 그레이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랬더니 조지가 앉아 있던 의자 뒤편의 카운터에 문제의 시가가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시가가 대체 왜 저지기 있지? 내 뒷머리를 뚫고 지나간 건가? 그러나 뒤통수에 구멍은 없었다.

조지는 유리잔에 담겨나온 파파야주스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거기에 떠 있는 얼음조각들이 마구 출렁대면서 서로 정신없이 부딪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레이시의 보드카 잔에 있는 얼음조각들은 더 격렬하게 난리를 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벌어진 일에 비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둘이 잔을 바라보는 사이에 얼음조각 하나가 유리잔의 옆면을 ‘빠져나와’ 바닥에 떨어졋다. 유리잔은 멀쩡했다.

조지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우주공간에 너무 오래 있었나봐. 이런 말도 안되는 환상이 보이다니…” 그들은 술집을 나왔다. 그런데 그들이 술집에서 나올 때 통과한 문은 사실 진짜 문이 아니라 견고한 벽에 문처럼 그려놓은 그림이었다.”(브라이언 그린)

이 해괴한 풍경은 양자역학이 연구하는 소립자의 세계를 의인화한 것이다. 에너지이면 물질이기도 한 소립자 세계에선 순간이동을 하거나 벽을 뚫고 지나가는 일은 일상사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파인만은 이렇게 말햇다. “상대성이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전 세계에 12명뿐이라는 기사가 뉴스로 보도되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그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고 믿는다.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논문을 세상에 발표하기 전에 그 내용을 이해하는 사람이 전 세계에 단 한 명뿐어었던 시절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논문이 공개되고 난 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12명은 분명 과소평가된 수치이다. 그러나 양자역학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나는 현재 이 세상에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잇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고 자신 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아무 문제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물질을 이루는 부분들의 성질이 아니라 그것들의 조직과 패턴과 형태라는 것이 현대 물리학의 교훈이다.” 소립자들이 모여 만든 패턴에선 양자역학의 황당함이 아무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왜 인간의 세계는 달라야 하는가? 라고 저자는 묻는다. “사회과학의 기본 방향은 물리학과 비슷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먼저 사회적 원자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다음에 많은 수의 원자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때 풍부한 집단적 패턴이 나타나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사회과학 역시 그렇게 생각해왔다. 뒤르켐은 사회학의 대상은 개인이 아니라 말했다. 사회학의 대상은 3사람(triad)의 집단, 즉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패턴이 대상이란 말이다. 경제학 역시 마찬가지이다. 경제학의 대상은 시장이지 시장에 참여하는 개인이 아니다.

그러나 저자는 지금까지 사회과학은 방법론에서 틀렸다고 말한다. 특히 경제학이 그렇다고 저자는 본다. 과학은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하는 것이다.

“사람도 복잡하고 사회도 복잡하고 문화도 복잡하다. 보잘 것없는 수학 모형이 이런 것들을 설명한다는 것은 그럴듯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이다. 아무리 복잡한 대상도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모형으로 그 핵심을 짚을 수 잇음과 그 모형으로 실세계에 도달할 수 있음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하면 기적처럼 보일 것이다. 어쩜녀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적이 없으면 과학도 없다.

물리학을 ‘정밀’ 과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물리학자들은 방정식을 가지고 엄밀한 해만을 구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개념적으로 철학적으로 실용적으로 물리학의 강점은 언제나 어림짐작에 잇다 진짜로 중요하지 안ㅇㅎ은 사소한 것들을 무시하고 중요한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특수한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현실을 그렇게 심각하게 단순화하면서도 어떻게 그처럼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는지 우리는 진정으로 모른다. 우주는 쉽게 분해를 허용하는 듯하다. 세계는 의외로 아주 단순한 방식으로 조립되어 잇다.”

단순화는 과학의 핵심이다. 그러나 사회과학은 특히 경제학은 잘못된 단순화의 오류를 범하고 잇다고 그렇기 때문에 과학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경제학자들의 전통적인 아이디어, 우리는 모두 초이성적인 계산 기계여서 실수 없이 자기 이득을 위해 행동한다,는 생산적인 과학의 아이디어에 속하지 않는다. 이것은 완전히 비과학적인 방식이 인간 과학에 침입하는 데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기념비하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경제학의 오류는 경제학의 대상인 시장의 원자가 되는 개인에 대한 잘못된 단순화에 있고 그 단순화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 원자들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내는 패턴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결과 경제학이 그리는 세계에 대한 이미지는 잘못되엇다.

저자는 경제학이 개인에 대해 가정하는 이기적 합리성에 대해 길게 비판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심리학은 물론 다른 사회과학, 그리고 행동경제학에서 수많은 비판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또 반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경제학의 이기적 합리성이 비현실적이라고 비생산적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는 그것이 복잡계의 이미지를 수용할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경제학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은 인간사회를 평형계로 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물리학은 100년 동안 ‘평형’에만 주목햇다. 금속과 액정, 반도체에서 초유통체에 이르는 물질들의 성질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잇는 거의 모든 것들은 평형 이론에서 나온다. 양자 컴퓨터처럼 꽤 매혹적인 물리학의 응용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경제학 역시 평형에 주목해왔다. 경제학원론을 들었다면 가격이 균형으로 돌아간다, 경기순환이 균형상태로 복귀햇다 등의 설명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시장은 물론 인간사회는 “지각이나 인터넷처럼 끊임없이 진화하며 불변인 상태로 안정되는 법이 결코 없는 ‘비평형계’라고” 말한다.

“복잡계 과학의 주된 통찰 한 가지는 복잡한 비평형계에서 법칙에 가까운 패턴이 나오면 디테일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더 큰 그림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큰 그림은 사회의 원자인 개인들의 상호작용으로 어떻게 패턴이 ‘자기조직화’되며 그 패턴에 따라 어떻게 비평형계가 진화하는가에만 주목하는 것이다.

“역사에는 명백한 경향이나 단순한 순환 과정은 없는 것같다. 뉴턴 방정식 같은 몇 가지 방정식으로 역사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들만 아니라 패턴에 주목했을 때 역사에 어떤 식별 가능한 과정이 있다면 그리고 그 자신만의 리듬과 특징이 잇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찾는 것이다.”

저자는 자연과학의 복잡계 이론의 설명방식을 이용해 어떻게 주식시장의 등락을 설명할 수 잇는가, 보스니아에서 벌어진 인종청소를 설명할 수 있는가, 80:20의 파레토 법칙으로 불리는 부의 불평등과 제국의 붕괴를 설명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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