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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일기 | 서평 2020-11-30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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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카프카의 일기

프란츠 카프카 저/이유선,장혜순,오순희,목승숙 공역
솔 | 2017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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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일기

카프카 (지음) | 이유선 장혜순 오순희 목승숙 (옮김) | 솔출판사 (펴냄)

일기는 쓰는 이의 입장에서는 일상의 기록과 간직하고 싶은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읽는 이에게는 일기의 주인에 대해 알고 싶은 호기심과 비밀을 엿본다는 짜릿함이 있지 않을까 한다. '카프카의 일기'는 그가 고인이 되었기에 그리고 공식적인 활자가 되었기에 비밀스럽지는 않지만 그 어떤 암호보다도 해석이 쉽지 않은 그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은 내면의 흐름이라는 실핏줄같은 힌트라도 있지만 '카프카의 일기'는 연결되지 않는 뜬금없는 상황들과 맥락없이 이어지는 사색의 기록들이 읽어내기가 쉽진 않았다.

109.

<1910년 12월 16일>

나는 일기 쓰는 것을 더 이상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여기에서 나를 확인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만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바로 지금처럼 때때로 내 안에 갖고 있는 행복이란 느낌을 기꺼이 설명하고 싶다. ~ 그런데 이 능력이 부재하다는 것은 매순간, 지금도 역시, 아주 확실하게 나를 설득할 수 있다.

많이 쓰기도 했지만 자신이 직접 폐기하고 유언으로 소각한 양은 남겨진 것에 비해 더 많았다고 하니 쓰기 위한 삶을 살다 간 것만 같다.

연극,공연 관람에 관한 후기와 감상평도 줄거리와 함께 많이 실려있다. 분야는 달라도 예술은 예술로 이어지고 통하는 지점이 있나 보다.

유대인과 관련된 일화나 역사에 관한 관심이 많이 보였다. 유대인이었던 모계쪽 혈통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자랐나 보다. 건장한 체격의 아버지에 비해 왜소했던 카프카는 심리적으로 많은 위축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의 소설들에서 보이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짐작된다. 기울어져 가는 아버지의 사업으로 섬세한 감성을 가진 그가 장남으로써 느꼈을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감이 일기에도 표현되어 있다. 아버지의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나 아버지와는 아무래도 카프카는 잘 맞지 않았던 듯 하다. 공장은 카프카에게 고통이었고 카프카에게 엄격했던 아버지는 욕설과 비난을 퍼부었다.

262. 아버지가 끊임없이 동시대인들의, 특히 자식들의 행복한 상황을 빈정대면서 당신이 어린 시절에 겪어야만 했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귀 기울이는 일은 고통스럽다.~ 나는 그 모든 것을 겪지 않았다는 사실과 비교된다고 해서, 내가 아버지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왔다거나, 아버지가 남들에게 교만한 태도를 취해도 된다거나, 당신이 당시에 겪었던 고통들의 진가를 내가 인정할 줄 모른다고 가정하고 주장하거나, 아버지와 동일한 고통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무한정 감사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325. 그저께 공장 때문에 욕을 먹었다. 그다음 한 시간 동안 쇼파에 누워서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는 것에 대해 생각.

문학을 위한 시간이 줄어드는 것에, 주어진 시간을 문학을 위해 사용 할 수 없음에 퍽이나 낙담했을 카프카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래서 더 많이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들 뿐만 아니라 '실종자' '선고' 등 소설의 습작도 기록한 걸 보면 '카프카의 일기'는 단순한 일기를 넘어선 그의 인생 그 자체로 보여지기도 한다. 어느 부분에서는 일기인지 습작인지 구분이 안되는 곳도 있었다. 도스토옙스키의 편지도 있다. 일기가 개인의 기록이라고는 하지만 독자에게는 혼돈 그 자체다. 카프카 본인은 자신의 일기가 훗날 타인에게 읽히게 되리라는 것을 상상이나 해 보았을까?

그의 대표작인 '변신'에 대한 아쉬움을 넘은 불만족도 보인다.

476. 저는 문학 외에는 다른 그 무엇도 아니며, 다른 그 무엇일 수도 없으며, 다른 무엇이기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477. 제 직장이 저를 변화시킬 수 없듯이, 결혼 생활도 저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629. 나는 무의미하게 자신을 소진시키고 있다. 글을 쓸 수 있으면 행복할 텐데, 글을 쓰고 있지 않다.

'오늘도 쓰지 못했다' '오늘부터 일기를 쓸 것!규칙적으로 쓸 것!'과 같은 다짐도 곳곳에 보인다. 쓰고 싶은 만큼 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인지, 써야 한다는 강박인지 아니면 그 사이 어디쯤인지는 알 수 없다. '읽고 싶다'와 '읽어야 한다'를 쉴 새없이 반복하는 내 모습을 잠시 겹쳐 본다.

겁없이 카프카 시리즈 중 가장 두꺼운 <카프카의 일기>를 먼저 읽었다. '잘못된 선택이었나?'하는 후회도 잠시. 혹시나 카프카의 작품을 읽을 계획을 가진 독자라면 <카프카의 일기>를 먼저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유대계 독일인이라는 모호한 정체성과 문학에 전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가정 형편, 섬세한 그를 강압적으로 대했던 아버지. 카프카가 안정감을 느낄 곳은 없었던 것 같다. 불안함과 외로움,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집착과 강박이 된 그의 마음이 일기 전체에 녹아있는 듯 하다. 카프카에 대해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해' 해보고 싶어진 책읽기였다.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솔출판사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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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이드 수잔 | 서평 2020-11-30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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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블랙 아이드 수잔

줄리아 히벌린 저/유소영 역
소담출판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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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이드 수잔

줄리아 히벌린 (지음) | 유소영 (옮김) | 소담출판사 (펴냄)

'블랙 아이드 수잔' 네명 중 유일하게 운이 좋은 한 명이었던 테시. 그녀가 죽음의 문턱에서 귀환한 1995년과 18년이 흐른 현재의 시점이 번갈아 가며 과거의 그녀는 테시로, 현재의 그녀는 테사로 표현되며 진행된다. 시점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지만 읽으며 혼란스럽다거나 부자연스러움 없이 이어진다.

테사는 열 여섯 한참 예민할 나이에 겪은 뜻하지 않은 경험에, 히스테리성 실명으로 몇 주간 앞을 볼 수 없었다.

범인으로 체포된 테렐 다시 굿윈. 덩치 큰 흑인의 전과자는 백인이었다면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을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 받았다. 그런 그를 무죄라고 주장하다가 심장마비로 숨진 앤젤라 로스차일드. 그녀의 친구인 변호사 빌이 그녀의 뒤를 이어 법과학자 조애나와 함께 진실을 파고 든다.

사형의 집행을 앞두고 테사의 침실 창문 아래에 누군가 심은 '블랙 아이드 수잔'. 두 구의 시체와 함께 블랙 아이드 수잔 꽃 무더기에 버려졌던 테사는 테렐이 아닌 다른 누군가 범인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사건이 빨리 일단락되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십대의 테시는 십대 딸 찰리를 키우는 테사가 되어 적극적으로 진실을 밝히지 못했던 죄책감에 괴롭다.

18년전 그날의 진실은 무얼까?

구조 되고나서 정신상담을 받을 때 드로잉한 그림들. 상담에 혼선을 주고 싶어 리디아의 그림을 섞어 두었는데,그때의 정신과 상담의도 지금의 자일즈 박사도 모두들 리디아의 그림에 관심을 보인다. 거대한 꽃이 두 소녀를 향해 조롱하듯 웃는 그림.

재판 직후에 그냥 갑자기 사라진 리디아.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그게 왜 중요하지?'

테사! 그 장면을 그린 소녀, 당신 친구 리디아는 진심으로 두려웠던 것 같아요. ~소녀 둘 중 하나는 다른 소녀 위에 엎드린 자세로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붉은색은 꽃 괴물의 공격 때문에 흘린 피로 보이지 않아요. 보호자 쪽이 빨강머리인 것 같습니다.

빨강 머리의 테사. 지워진 32시간의 기억. 그리고 테사에게 들리는 수잔들의 목소리.

과거로부터 도망칠 때마다 괴물은 테사를 조롱하듯 따라다니며 블랙 아이드 수잔을 심었다.여섯번이나!

테렐의 무죄증명을 위해 수잔들의 유전자 감식 도중 소녀는 둘이 아닌 셋이었고 그 중 한명은 임신 중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답을 가진건 나야

네 명의 수잔 중 하나의 목소리.

비밀이 벗겨질 때마다 갑자기 사라진 리디아와 관련된 실마리가 나온다. 리디아가 아니었다면 그 힘든 시기를 살아서 버티지 못했을 테사는 17년전 종적을 감춘 리디아가 그립고 궁금하다.

비밀의 열쇠는 사라진 32시간의 기억에 있는 것이 아니라 리디아에게 있는 건지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밤새도록 나를 안아주던 소녀. 시력을 잃었을 때 내 머리를 땋아주던 소녀. 에드가 앨런 포에 나오듯 햇빚에 비춰 보아야 읽을 수 있는 레몬주스 잉크로 내게 암호를 써서 다음 날 찾도록 통나무 집 안 틈새에 끼워 놓던 소녀.

마침내 진실은 밝혀지고 테렐은 무죄 방면된다. 텍사스 주에서 배상금 백만 달러와 평생 매년 팔만 달러의 연금도 받게 되었지만 폐쇄공포증을 떨칠 수 없어 혼자 방에 틀어 박힌 채 블라인드를 내리고 쇼파에서 잠이 드는 그를, 이제라도 누명을 벗어 다행이라고, 보상을 받았으니 되었다고 할 것인가?

얼마전 진범의 고백으로 억울한 20년의 옥살이와 잃어버린 인생까지 30여년을 토로하던 화성 8차 사건의 윤성여씨가 연상되었다. 진범과 재판장에서 마주한 윤성여씨는 "이제라도 자백을 해주어서 고맙다"라고 했다고 들었다. 분노 대신 용서를 하는 자와 그저 살인을 하는 자의 차이는 무얼까?

테사를 원래는 갈기갈기 찢고 싶었다던 진범. 웃으며 그런 얘기를 하는 그들의 처음은 무엇이 달랐기 때문일까?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소담출판사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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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 서평 2020-11-2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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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당신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아서 P. 시아라미콜리,케서린 케첨 공저/박단비 역
위즈덤하우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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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아서 p.시아라미콜리 & 케서린 케첨 (지음) | 박단비 (옮김) | 위즈덤하우스 (펴냄)

공감에 관한 책이다. 책을 읽고 나서 문고사이트에 들어가 해당 책의 분류 카테고리를 일부러 찾아보는 일은 지금까지 없었다.<당신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를 거의 다 읽었을 무렵 분류 카테고리를 검색해 보았다. '인문, 심리학, 정신분석학'으로 분류 되어 있었다. 이 카테고리의 책을 읽고 이렇게 감동받은 적이 없었다. 공감에 관한 뻔한 얘기. 이해,사랑,포용 뭐 이런 다른 책이나 강연에서 우려먹을대로 우려 먹은 뻔한 얘기로 '그래, 결국은 속 좁은 내 탓으로 몰고 가겠구나' 생각했는데, 결단코 아.니.다!

책의 첫인상이라 할 수 있는 제목. <당신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를 처음 접했을 땐 '뭐가 이리 길어? 너무 감성적으로 지은거 아냐?'했는데 완독하고 난 지금은 이 책 제목에서 작가의 진심이 느껴진다. 자신은 동생의 자살을 경험하며 늦게 깨달은 공감의 힘을 독자들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진심.

공감이라고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이심전심, 동감,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부모의 마음 등등. 여기에 나는 공감이 곧 동감은 아니라는 생각을 보태서 하고 있었다. "네 마음이 그렇다는 것은 이해하고 알겠다"까지. '그러나 그 마음에 꼭 같은 의견이나 마음이어야만 공감은 아니다.'라고 말이다.

저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양 날의 칼과 같은 공감의 양면성.

"공감이 마음 따뜻한 사람만의 특권은 아니다."라고 얘기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건설적 공감에 반대되는 파괴적 힘을 가진 공감을 짚어 준다.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사기나 영업 더 나아가 범죄에 이용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런 파괴적 힘을 가진 공감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고 방어해야 하는지도 말해주고 있다. 공감이 없다면? 깨어 있지만 무감각하고, 의식이 있지만 무신경하며, 감정이 차 있어도 그것을 이해하거나 영향을 주지도 못하는 삶...

공감이 꼭 타인과의 관계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진실을 기반으로 한 객관적인 시각이 전제 된 자신을 향한 공감은 성장으로 이어진다. 공감은 이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섣부른 동정으로 자기연민이나 타인에게 위로를 건네는 대신 깊은 이해를 해야 한다. 현재를 만든 과거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 과거는 현재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해를 위해서는 듣기, 공감적 듣기를 해야 한다. 나의 경험과 상대방의 경험을 하나로 일원화 시킨 교감적 듣기가 되면 모든 문제는 일반화가 되어버려 진정한 공감이라 할 수 없게 된다.

정직,겸손,용납,관용,감사,믿음,희망,용서는 공감이 선행되기도 하고 공감에 영향을 주기도 하는 상호 보완적인 키워드이다.

가차없이 진실을 폭로하고서 정직이라고 말하는 어리석음과 무조건 자신을 낮추는 것이 겸손이라는 오류를 범해선 안된다. 내가 옳다고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견해를 넓히고 '난 못해'가 아니라 '아직 배울게 많아'라는 긍정적 힘의 성장을 바라보아야 한다. 완전하지 않은 나와 타인을 불완전한 자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고통을 통한 성장도 꿈꿀 수 있는 것이다. 편견을 내려 놓고 가끔 삶의 속도를 늦춰 뒤돌아보며 반성하는 여유도 필요하다.

저자 자신의 개인적 경험으로 시작되는 공감의 이야기는 쉽지만 깊은 울림으로 먹먹함을 주었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때로는 공감의 침묵이 강한 위로와 응원이 될 때가 있다. 눈맞춤 조차 없는 공감없는 "그랬구나~"하는 위로를 섣불리 건넨적은 없는지...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출판사 위즈덤하우스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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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망다랭 1 | 서평 2020-11-2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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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레 망다랭 1

시몬 드 보부아르 저/이송이 역
현암사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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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망다랭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 이송이 (옮김) | 현암사 (펴냄)

1954년에 발표되었다는 <레 망다랭>.2차 세계대전 종식 후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금은 러시아라고 불리는 옛 소련의 공산주의와 미국의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젊은이들과 지식인들이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보여진다.

<레 망다랭> 은 자신의 신념인 신문사 '레스푸아'를 지키며 고독과 자유를 즐기고 싶어하는 앙리의 시점과 신념에 가득차 정치적 행보를 하려는 뒤브뢰유의 아내이자 정신과 의사인 안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읽기 전에 두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서술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오래전 읽었던 '냉정과 열정사이'가 떠올랐다.

같은 문제와 같은 사건들을 두고 바라보는 견해는 처해진 입장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

초반부를 읽어 가면서는 이상의 '날개'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생각났다. 날개에 나오는 박제 되어버린 천재만큼은 아닐지라도 앙리의 현실은 그닥 자유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자유와 고독은 연인 폴에 의해 제한되고 신념은 뒤브뢰유와의 견해차이와 신문의 구독자를 신경쓰느라 자유롭지 못하다. 한 때 레지스탕스 운동을 할 정도의 신념에 찬 좌파이기도 했으나 여러 분파로 갈리며 서로를 적대시하는 공산주의에 회의가 일기도 한다. 같은 편에 서지 않으면 무조건 적이 되는 무서운 현실이다.

안의 딸 나딘은 스무살도 되지 않았지만 사춘기 시절에 겪은 연인 디에고의 죽음으로 삶에 애착을 보이지 않는다.

남자들과의 잠자리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듯 하다.이런 삶이 절망 때문인지 쾌락 때문인지는 그녀 자신도 모르는 듯 하다. 리스본에서 마주하게 된 아름다운 야경의 불빛들이 사실은 빈곤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힘들어한다. 전쟁 후 어려움을 겪는 프랑스를 벗어나서도 보게 된 가난은 나딘을 견딜 수 없이 힘들게 한다.

195. 그래도 사람들이 제대로 살 수 있는 나라가 분명 한 곳은 있을 거에요.

앙리의 연인인 폴은 얼핏 보면 사랑밖에 모르는 집착녀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사랑이라는 이름뒤에 숨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앙리를 위해서 모든것을 포기하고 희생했다고 말하는 그녀는 그를 위해 포기하지 않은 삶을 살았더라도 꿈꾸던 성공가도의 삶을 살 수 없었으리란 것을 느끼고 '앙리 때문에'라는 허울 좋은 핑계가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녀 자신조차도 그런 사실을 깨닫고 있진 못하지만...

앙리는 글쓰기를, 폴은 앙리를, 뒤브뢰유는 정치를, 나딘은 남자를 통해 삶을 증명하려는 듯 보인다. 그러나 안은? 상처받은 사람들을 상담해 주는 그녀 자신은 정작 붙잡을 것이 없어 보인다. 신의 부재를 확신했던 스무살엔 도덕도 그녀에겐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그런 그녀가 세상의 전부로 받아들인 로베르는 이제 그때의 로베르가 아니다.

335. 살아남는다는 것, 자기 인생의 반대편에서 산다는 것. 어쨌든 아주 편안한 일이다. 무엇도 기대하지 않고,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니까.

소련에서 도주해 온 스크리아신의 냉소적인 자세나 마약에 기대어 살아가는 세즈나크, 독일에 협력했던 사람들을 테러하는 것에서 삶의 보람과 정당성을 찾는 뱅상, 어머니가 정해준 대로 인생을 사는 조제트. 모두가 살기 위한 이유를 찾는 발버둥 중인지도 모른다.

전쟁 후의 혼란한 정세에 지식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높인다.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서로를 비방하고 적대시 한다. 통합과 화합 대신 비방과 편가르기가 판치고 속한 분파의 비리는 대의를 위해 눈감는 '소'일 뿐이다. 옷을 갈아 입듯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게 현실이라는 씁쓸한 정당함과 불가피함을 내세워 본다.

낯설지 않다. 한반도가 둘로 나뉠때의 모습처럼.

2권에서는 달라진 등장인물들을 만나볼 수 있을까.


※출판사의 지원을 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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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 서평 2020-11-2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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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오만과 편견 : 풀컬러 일러스트 에디션

제인 오스틴 저/강수정 역/앨리스 패툴로 그림
아르볼 | 202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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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 강수정 (옮김) | 지학사아르볼 (펴냄)

고전 읽기에 거의 매번 거론되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십대에 읽었을 때는 소녀소녀한 마음으로 로맨스 소설로 읽었고 십년 후쯤 재독할 때는 제목에 충실하게 '오만한 다아시'와 '편견에 사로잡힌 엘리자베스'에게 집중하며 읽었었다. 다시 십 여년이 흘러 읽게 된 풀컬러 일러스트의 예쁜 옷을 입은 <오만과 편견>은 각 커플들과 주변인들의 캐릭터가 통통 튀는 개성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빙리 양의 앞 뒤가 다른 태도와 캐서린 부인의 도를 넘은 무례가 신분을 떠나서 요즘도 흔히 볼 수 있는 부류이고, 그런 그들에게 잘 보이려 전전 긍긍하는 콜린스, 결혼을 한탕의 장사처럼 남을 이용하려는 위컴, 금사빠인 리디아와 남일을 소문으로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하지만 지금에도 너무나 현실적인 캐릭터들이다.

특히 베넷 부부는 이 '오만과 편견'을 마치 처음 읽는 듯한 느낌을 줄 만큼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아름다운 미모에 반해 아내를 맞았던 베넷 씨는 매사 아내와 의견이 맞진 않지만 무시하거나 불화를 일으키는 대신 적당한 무관심과 위트를 지닌 남자다. 베넷 부인은 딸 다섯을 키우며 딸들의 결혼이 지상 최대의 과제인 엄마로, 남자가 가진 재력과 지위를 매너이자 인격으로 동일시 해서 보는 속물이면서도 미워할 수는 없는 캐릭터다. 배경인 그 시대가 여자의 행복은 재력을 갖춘 남자와의 결혼이었다는 점과 어리석기는 해도 악의는 없다는 것이 아마도 그 이유일 것이다. (그래도 그런 베넷 부인을 바라보는 부끄러움은 엘리자베스와 나의 몫?)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사교성이 보통의 사람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고 말수가 지나치게 없다는 것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오만하다는 평가를 듣기 일쑤인 다아시 씨는 만약 그가 지닌 재산과 지위가 아니었다면 그런 평가들을 만회할 기회를 가져볼 수 없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타인을 향한 냉정한 평가가 자신을 지적이고 수준있어 보이게 한다고 여기고 있었던 듯하다. 제인은 빼어나게 아름다운 외모가 아니었다면 모두를 포용하는 그녀의 마음도 우유부단함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을 것이고 신분을 뛰어넘는 결혼이 사회적 관습과 보이지 않는 경계로 어려웠다는 것에 비해서 빙리의 사랑을 그렇게 쉽게 가질 수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다아시의 품성과 사랑이 빛나 보였던 사건은 리디아와 위컴의 도피 행각에 대한 대처였다. 사랑하는 여자의 근심을 덜어주기 위해 금전은 물론이거니와 굴욕과 수치로 여겼던 사람들을 대면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멋지게 비밀로 해결하려는 낭만도 지닌 채 말이다.

할 말은 해야 하는 성격의 엘리자베스는 소문 만을 듣고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결혼을 반대하러 온 캐서린 부인에게 요즘 시각으로 봐도 사이다인 발언을 지혜롭게 한다.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을 알고 후회할 줄 안다는 것이 다아시와 엘리자베스가 다른 인물들과의 두드러진 차이로 보였다.

오만한 다아시와 편견으로 그를 바라본 엘리자베스이기도 했지만, 신분의 다름이라는 편견의 시각으로 엘리자베스를 보고, 냉랭한 다아시를 더 차갑게 대한 엘리자베스의 태도 또한 자신이 그보다 낫다는 오만은 아니었을까.

근래 읽은 고전들 가운데 유일하게 비극으로 치닫지 않고 해피엔딩 이었던, 그래서 좋았던! 역시 로맨스는 해피엔딩이 제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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