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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 서평 2020-10-17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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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키르케

매들린 밀러 저/이은선 역
이봄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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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매들린 (밀러) | 이은선 (옮김) | 이봄 (펴냄)



<아킬레우스의 노래>로 지상에서 인간과 신의 전쟁을 사랑으로 풀어냈다면, <키르케>는 지하로 밀려난 티탄족 신들과 천상의 올림포스의 신들에 대한 이야기다.
신화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하급신 님프, 그중에서도 '키르케'를 주인공으로 한 신화이자 사랑받고 싶었지만 사랑받지 못했던 한여인의 이야기를 만났다.
키르케는 아름답지 못한 외모와 인간의 목소리를 닮아 학대받고 따돌려지며 가족들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되풀이되던 비웃음을 받았다. 누구보다도 사랑으로 품었어야 할 엄마에게서 조차 사랑받지 못했다.

어부 글라우코스를 만나 사랑했지만 인간에서 신으로 변신한 그의 사랑과 숭배는 변질되었다. 그녀 '키르케'를 무인도인 아이아이에로 유배 가도록 한 죄는 무엇이었을까? 사랑이었을까, 금단의 파르마콘을 사용했기 때문일까, 죄를 곧이곧대로 자백하고 거짓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처음부터 누군가의 희생이 되어야할만큼 사랑받지 못했던것이 죄였던 걸까?

《94.
가장 눈부신 미모를 자랑하는 님프도 대체로 별 쓸모가 없는데 못생긴 님프는 아무것도 아니지.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더 미천하지.결혼도 하지 못하고 아이도 낳지 못하겠지. 가족에게는 짐이고 이 세상을 더럽히는 얼룩이겠지. 멸시와 악담에 시달리며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하니. 하지만 괴물은 항상 자기 자리가 있잖아.》

《101.
세상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거야, 키르케. 나는 아버지에게 마법을 우연히 발견했다고 얘기하고,아버지는 내 말을 믿는 척하고, 제우스는 아버지의 말을 믿는 척하고, 그렇게 세상은 균형을 유지하지. 실토한 누나가 잘못했어. 》

그녀의 유배지 아이아이에로 찾아든 많은 님프들과 길잃은 인간들은 키르케를 이용하려 할 뿐, 어느 신도 님프도 인간도 키르케를 진정으로 사랑해 주는 이가 없었다. 오디세우스를 만나며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에 안도하게 된다. 아들 텔레고노스를 기르며 노심초사하는 모습은 신과 마녀라는 그녀의 능력과 별개로 세상의 다른 어머니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글라우코스, 다이달로스, 오디세우스를 만나며 여인으로서의 삶을 잠시 느껴보기도 하지만 매번 그녀는 다시 혼자가 된다. 혼자가 아니었다면, '아이아이에'에서 고립된 시간들을 보내지 않았다면 자신의 타고난 주술 능력을 그만큼 끌어올리진 못했을 것이다. 유배지는 요새가 되어 키르케와 텔레고노스,페넬로페와 텔레마고스를 지켰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의존하는 여성이나 여신이 아닌 스스로를 지키고 키울 수 밖에 없는 키르케는 얼핏 차가운 듯 보이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거절하지 못하는 따뜻함을 품은 마녀이다.
미노타우로스를 출산한 파시파에, 이아손과 메데이아, 길을 잃은 인간들, 페넬로페의 은신까지 도움을 요청받고 거절한 적은 없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상냥한 모습이 아니었을 뿐.

《485.
나는 후회와 세월이 새겨진 거석처럼 너무 오랫동안 칙칙하고 근엄하게 지냈다. 하지만 그건 남들이 나를 억지로 끼워맞춘 틀에 불과했다. 이제 그안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었다.》

마지막 꿈을 꾸어 본다.
파르마콘을 통해 그녀 자신의 본성을 꺼내려 한다. 부디 그녀의 소망이 이루어 지기를!

《500.
인간의 목소리를 가졌으니 그 나머지까지 가져보자. 나는 찰랑거리는 사발을 입술에 대고 마신다.》

모두에게 무시당하고 비웃음 받던 그녀가 아테나에게서 아들과 페넬로페 모자를 지켜내고 나중에는 아버지 헬리오스에게서 자신의 영원한 유배를 끝내는 담판을 이끌어내는 것을 보며 마녀로서, 엄마로서, 무엇보다도 자신의 재능을 키워나가는 키르케 자신으로서의 성장을 보았다. 또한 그녀가 느꼈을 외로움과 혼자이길 원했던 시간만큼 누구보다도 누군가를 필요로 했던 애정의 욕구와 모성을 보았다.
높은 신들의 무시를 받았지만 그 어떤 신보다 따뜻했던 마녀가 아니었을런지.

※출판사의 지원을 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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