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결핍을 타인을 통해 채울 수는 없다.
『웃는남자』 2권
빅토르 위고(지음) | 열린책들(펴냄)
내 인생 책 중 한 권인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를 1년 반 만에 재독했다. 재독을 하면 처음 읽을 때보다 감동이 덜해지는데 이 책의 감동은 오히려 더 깊어졌다. 처음 읽었을 때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렇게 모든 게 끝나는구나'라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재독을 하면서 역시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똑같이 울었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이렇게 끝나는 게 아니라 소설은 여기서부터 시작이구나.'라는 생각. 소설은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펜을 놓는 순간 다시 시작되었다. 우리들 마음에서 감동으로 누군가의 행동으로!
가난한 자의 겨울은 더 길고 춥다. '그 시절 런던에는 다리가 하나밖에 없었다'로 시작하는 제2권!! 구걸하는 사람부터 성직자까지 그윈플레인에게 열광했다. 여공작에게서 온 편지를 받은 그윈플레인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그대의 모습 흉측한데, 나는 아름다워요. 그대는 익살 광대인데, 나는 여공작이에요. 나는 최상류인데, 그대는 최하류에요. 나는 당신을 원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오세요」
또 다른 비극이 편지를 통해 시작되었다. 흉측함 때문에 사랑받다니!
사람은 늘 자신이 가진 것을 보지 못하고 남이 가진것을 부러워한다. 여공작 역시 모든 걸 가졌으나 결핍이 있다. 그 결핍의 일부분을 그윈플레인을 통해 과연 채울 수 있을까?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한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의 사랑은 유한하다. 자기 스스로 단단해지지 않으면 결코 채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정의라는 것은 땅거미 질 무렵처럼 어둑한데, 찬사는 그 속에서 장님처럼 더듬거리기 때문이다. 감옥으로 끌려가는 동안에도 내내 데아만 생각하는 그윈플레인.
감옥은 그 분위기만으로도 그윈플레인을 압도했다. 거의 알몸이다시피한 수감자 한 사람. 그는 그윈플레인을 알아보았다. 도대체 그와 그윈플레인 사이에 무슨 인과관계가 있단 말인가! 집정관은 엄숙한 목소리로 낭독하기 시작했다. 그윈플레인 그 출생의 비밀을, 그가 왜 버려지고 흉한 얼굴로 사람답지 못한 삶을 살아야 했던지를....
아! 진실이 마침내 밝혀지는 순간인가! 늘 그렇다. 결국 진실은 밝혀진다. 다만, 진실은 늘 더디게 온다.
밝음이란 밝음이 아닐 수도 있다. 빛은 진리이되 섬광은 배신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섬광이 밝힌다고들 믿으나, 실은 화재를 읽으킨다. p667
절망과 가난, 운명의 저주 앞에 내던져진 익살 광대 그윈플레인은 과연 숙명 앞에 나아갈 것인가! 데아는.....
중세의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넘어오는 과도기.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치에 참여하는 그윈플레인. 백성들의 삶은 내몰라라 하고 사치와 향락을 일삼는 왕, 귀족, 주교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그윈플레인의 연설을 들으며 귀족들은 박장대소한다. 웃고 있어도 속은 울고 있는 그윈플레인의 모습은 평민의 삶을 대변한다. 이 장면을 쓰기 위해 위고는 이 소설을 쓴 거 아닐까요, 위고님? 리뷰에 문장을 다 옮기지는 못하지만 귀족을 향한 그윈플레인의 연설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 같았다. 주님이 살아오신다면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 내 인생책! 감히 성경 옆에 유일하게 놓을 수 있는 책 중 하나 『웃는 남자』
그윈플레인의 복권 절차가 이루어지던 날, 법관들의 눈이 어두워 그윈플레인의 얼굴을 자세히 알아보지 못했다. 용모의 기형 따위는 그 어떤 것을 흔들지 못했다.
불운과 행운이라는 두 유형이 동시에 영혼 하나를 수중에 넣으며, 서로 자신에게 끌어당기는 격이었다. 가난한 유령과 부유한 유령이라는 두 적대적인 형제 사이에서 이루어진, 지성과 의지와 뇌수의 비장한 분할이었다. 한 사람 속에 있는 아벨과 카인이었다. p816
비밀이란 그물과 같아서 코 하나가 풀리면 몽땅 찢긴다. '웃는 남자' '익살 광대'라 조롱 당하던 그윈플레인이 회의장에 들어서는 순간이다. 역사적인 순간이다. 2권에서 가장 압도하는 장면이었다. 발단, 도입, 전개, 위기, 절정, 결말중에서 절정 부분이랄까....
그윈플레인의 마지막 장면을 읽다 울다가 생각했다. 이제 나는 무엇을 읽지? 다른 책을 펼쳤지만 문장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소설의 옷을 빌려 입었을 뿐 감히 소설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들. 이런 소설을 쓰는 자가 이 세기에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위고가 죽었고 소설은 죽었다. 이 이상의 소설을 내평생 또 만날수 있을까? 이 감동을 고전을 사랑하는 많은 독자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인생이란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읽어가는 긴 과정이라고 위고는 말했다. 책을 덮었을 때 소설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내게....
언어에 의해 처발림당한 세상. 언어가 최소한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함부로 사유의 영역을 침범하는 요즘이다. 공상과 기만으로 포식한 위정자들. 「역사란 무엇인가 미래 속으로 울려 퍼지는 과거의 메아리」라고 위고는 말한다. 946페이지 분량의 2권을 읽는 내내 문장에 두들겨 맞는 기분이었다. 맞으며 느끼는 카타르시스! 1년쯤 지나 다시 재독한다면 나는 또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그 때는 울지 않고 읽기만 할 것이다! 너무 셀레서 두렵기까지한 소설 《웃는 남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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