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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자꾸 이야기하고 싶게 만드는, 책의 마력 | 그외 2018-08-06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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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북스_책이선생이다1-1.jpg

 

 

시원한 파랑색이 바탕인  『책이 선생이다』 의 표지에는 사람으로 가득 찬 전철 풍경의 일러스트가 삽입되어 있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심기가 불편해지는 그 공간에서 약간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책을 읽고 있다. 어떤 책을 읽고 있는 걸까. 저렇게 붐비는 곳에서 몰두할 수 있는 것을 보니 보통 재미있는 책이 아닌 게 틀림없다. 

 

실례가 되는 행동이겠지만, 대중교통수단이나 대형서점 같은 곳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힐끔 확인하고 싶어진다. 어쩌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보게 되면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물론 “그 책 재밌죠?”하며 말을 걸지는 않는다. 선량한 독자를 놀라게 할 위험이 있으며, 나는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호들갑을 떨고 싶어 하는 종류의 인간이긴 하지만, 불행히도 사교성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아주 높은 확률로 ‘책에 대한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책을 읽고 함께 흥분하는 것도 즐겁지만, 초롱초롱한 눈으로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 또한 기분 좋은 일이지 않나. 그리고 이렇게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아주 높은 확률로 자신도 무언가를 쓰고 싶어 하며, 그래서 훌륭한 독자는 아주 높은 확률로 훌륭한 저자가 된다고도 생각한다. 『책이 선생이다』 는 그런 훌륭한 독자이자 작가 여섯 명의 ‘내 인생의 선생이자 친구가 되어 준 책’을 향한 고백이 실려 있다.

 

 

엑스북스_책이선생이다2-1.jpg

 

 

『책이 선생이다』 의 원고를 읽으며 느꼈던 점도 그랬다. 내가 예전에 읽었던 책에 대한 부분이 나오면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고, 아직 읽어 보지 못한 책이 나오면 그 책을 읽고 함께 공감하고 싶어졌다. 이 책을 작업하며 황시운 선생님의 원고에 등장하는 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의  『달팽이 안단테』 라는 책을 알게 된 것도 수확이었다. 원고에 인용된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어디까지나 업무적으로 펼쳐들었던 책이었는데, 인용된 부분만 확인하고 내버려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책이기도 했다. 일을 하다 보면 흥미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책을 읽어야만 할 때가 있는데, 그러다보니 이 기회가 아니었다면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책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는 점이 또 재미있다. 이런 책과의 만남도 어쩌면 편집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는 건 곧 그 책을 읽은 나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책이 선생이다』  원고를 읽으며 결국 마음에 남는 것 또한 그 책을 읽고 달라진 그들의 인생 이야기였다. ‘나에게 선생이, 친구가 되어 준 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나’가 없는 ‘책’ 이야기만 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책에 대한 이야기와 읽는 이의 인생 이야기가 뒤섞인 이 원고를 읽으며 나는 ‘내 인생에 영향을 미쳤던 책은 뭐였더라’, ‘내 인생 최초의 책은 뭐였더라’ 하며 내 인생을 펼쳐 보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렇게 주절주절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책이란 그런 존재인가 보다. 책에 대해,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 그 이야기들이 또 책이 되고, 그렇게 멈추지 않고 줄곧 이어지는 것.

 


 

 

책이 선생이다듀나, 김보영, 황시운, 김중일, 한지혜 저 외 1명 | xbooks
김보영, 황시운, 한지혜, 홍희정, 김중일, 듀나 등 ‘독자 겸 작가’ 여섯 명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은 계기가 되고 친구가 되어 준 책에 대한 애정 어린 고백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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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공작> 추운 나라로 들어간 스파이 | 그외 2018-08-06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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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jpg

            영화 <공작>의 한 장면

 


(* 결말과 관련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존 르 카레의 첩보소설을 좋아한다.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를 비롯해 『원티드 맨』,  『영원한 친구』 ,  『리틀 드러머 걸』  등 이념의 공기가 서리처럼 내려앉은 분위기 하며 그 속에서 무표정으로 정체와 목적을 숨기지만, 짙은 피곤함까지 감출 수 없는 첩보원의 애환은 공작의 세계가 우리와 무관한 듯해도 실은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감정적으로 인정하게 했다. 하물며 남북 분단의 상황을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는 나와 같은 한국인에게 존 르 카레의 작품은 남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윤종빈 감독이 연출한 <공작>의 영문 제목은 ‘The Spy Gone North’다.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The Spy Who Came in From the Cold』  를 염두에 둔 제목은 존 르 카레의 소설 속 세계와 한반도의 냉전 역사가 그리 다르지 않은 지반에 놓여 있음을 확인하는 듯하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와야 하는 스파이’가 아니라‘추운 나라로 들어가야 한다’는 설정이 다를 뿐.

 

때는 1993년, 북한의 핵 개발을 둘러싸고 한반도 정세가 불안해지면서 안기부에서는 정보사 소령 출신 박석영(황정민)을 주목한다. 박석영에게 주어진 임무는 북핵의 실체를 캐기 위해 북한 내부로 잠입하라는 것. 암호명 ‘흑금성’으로 활동하게 된 박석영은 무역 사업가로 위장하여 중국에서 베이징 주재 북 고위간부 리명운(이성민)과 자리를 함께한다. 달러 유입 줄이 막힌 리명운은 남측의 박석영에게 어떻게 하면 북측을 위해 돈을 마련해줄 수 있을지 의중을 떠보고 박석영은 어떻게 하면 북측의 리명운에게 믿음을 줄지 노심초사한다.

 

접점을 마련한 건 TV 광고다. 남측의 대기업이 북한을 배경으로 하는 광고를 제작할 경우, 북측이 얻게 될 이득이 크다는 것을 강조한 박석영은 마침내 ‘추운 북쪽 나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이를 빌미로 북한의 핵시설 실체를 파악하는 박석영은 안기부 해외실장 최학성(조진웅)으로 부터 전혀 새로운 임무를 하달받는다. 대선을 앞두고 여당의 이회창 후보가 야당의 김대중 후보에게 뒤지고 있는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한 모종의 음모가 담긴 편지를 북한에 전달하라는 것. 국가를 위해 헌신한다는 자세로 첩보 활동을 하던 박석영은 혼란을 느낀다.

 

 

2.jpg

            영화 <공작>의 한 장면

 

 

<공작>이 처음 공개된 건 지난 5월 프랑스 칸에서 열린 칸영화제의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서였다. 당시는 남북이 그동안의 냉전과 핵 위협에서 벗어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하며 화해 무드가 한창인 상황이었다. 북한에 홀로 잠입한 남한 스파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공작>은 자칫 시대착오적으로 비칠 가능성도 있었다. 그에 관한 우려는 개봉(8월 8일 예정)을 앞둔 지금도 유효하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영화를 보니 오히려 현 상황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하는 보완적 텍스트라는 인상이 들었다.

 

이 영화의 오프닝에는 지난 2005년 최초의 남북한 합작 광고에 등장했던 이효리와 북한의 무용수 조명애가 만나는 영상이 흘러나온다. 이유가 있다. <공작>이 모티브로 삼은 일명 ‘흑금성 사건’은 1997년 12월 15대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안기부가 주도했던 북풍 공작 사건이다. 박석영의 실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박채서는 안기부의 지시로 광고 회사에 위장 취업한 뒤 대북사업을 명목으로 공작을 벌였다. 그러면서 이효리와 조명애가 함께한 광고가 성사됐는데 <공작>은 그 과정, 아니 막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따라간다.

 

알고 보니, 극 중 박석영은 한반도 정세를 게임판처럼 바라보는 지배 계급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굴렸던 졸(卒)과 같은 존재였다는 사실이 <공작>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작용한다. 이는 박석영에게 정체성 혼란이면서 각성의 계기를 마련하는 삶의 전환점이기도 하다. 박석영이 정체를 숨기고 북한으로 들어가는 절체절명의 선택을 감행한 건 그 자신의 첩보 활동이 핵 위협으로부터 조국을 안전하게 할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리명운이 쉽게 믿음을 주기 힘든 박석영을 파트너로 삼아 자금을 확보하려 한 건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의 형편이 조금이나마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절실한 심정에서였다.

 

한반도를 반으로 가르고 체제로 정체성을 구별하는 박석영과 리명운은 게임판 위에서 서로를 마주 보는 위치에 서 있지만, 국가와 체제의 밝은 미래를 위한 선택을 감행한다는 점에서 같은 곳을 바라본다. 이에 대해 윤종빈 감독은 지난 칸영화제 당시 국내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스파이의 정체성 변화에 관한 것이었다. 이 영화는 적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동지였고, 동지였던 사람이 적이 되는 이야기다.”

 

지금 우리는 ‘적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동지이고 동지였던 사람이 적이 되는’ 상황 속에서 화해를 향한 시간 속을 지나가고 있다. 금방이라도 이뤄질 것만 같았던 종전과 한반도의 평화는 그동안 대립과 불인과 준(準) 전쟁상황에서 기득권을 누렸던 세력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방해 ‘공작’ 속에서 지지부진해 보이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공작>에서 우여곡절 끝에 두터운 신의를 쌓은 박석영과 리명운은 지배 계급의 또 다른 노림수로 반목하는 사이가 된다. 그 후에 성사된 남북 합작 광고. 이효리와 조명애가 서로 손을 맞잡고 작은 통일을 이룬 한쪽에서 박석영과 리명운은 오랜만에 다시 만난다. 그리고 서로에게 다가가 손을 내미는 순간, 그 손을 맞잡기 전에 영화는 가차 없이 암전 화면으로 끝을 맺는다.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를 읽으면서 소설 속 주인공의 운명이 걸린 극한 상황에 서늘한 기운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재밌게 읽었던 건 동서독의 냉전 시대, 즉 과거형이 배경이었던 까닭이 크다. <공작> 또한, 1993년부터 2005년까지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때 이후 다시 한번 맞이한 남북 화해의 절호의 기회에서 끝내 우리가 바라는 평화의 악수를 할 수 있을지 숨 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총성은 울리지 않아도 그에 버금가는 긴장감 속에서 (윤종빈은 액션 대신 말로 긴장감을 자아내는 <공작>을 일러 “구강 액션”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시대를 맞이하게 될까, 과거로의 회귀일까, 미래로의 진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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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평균에 속하려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 | 그외 2018-08-0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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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1.jpg

           언스플래쉬

 

 

평균 안에 머무르면 안전함을 느낄 수 있지만
 
“이번 수학 시험 몇 점이니?”
“55점이요.”

“왜 이렇게 점수가 낮아?”
“어려웠어요.”

“그래? 반 평균이 얼마인데?”
“평균이 50점이요.”
 
그제야 엄마의 표정은 조금은 풀린다. 잘 본 건 아니지만 평균보다는 잘했으니 말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는 평균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평균보다 나으면 안심이 되고, 평균보다 못하면 불안해지고, 능력이 모자란 것으로 여긴다. 이건 자존감의 문제라는 주관적 영역이 아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평균보다 잘 하고 있는데도, 현 상황을 비합리적으로 낮게 평가하기 쉽다. 그런 마음을 직면할 때 쓰는게 평균의 잣대다. 평균은 보통을 평가하는 가장 객관적 수단이다. 공부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평균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평균 결혼연령이 남녀 공히 처음 30세를 넘어섰다는 통계청의 발표가 있었다. 20년 전에는 20대에 결혼하는게 일반적이었는데, 이제는 “오, 빨리 결혼했네요”라는 말을 듣게 되었고, 30세에 결혼을 하지 않아도 전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아직 평균에서 많이 벗어난 것은 아니니 말이다. 어른들이 흔히 말씀하신다.
 
“너무 튀려고 하지 마라. 중간만 가라. 그러면 위험하지 않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속한 집단에서 평균치 정도를 하는게 제일 안전하다는 삶의 교훈을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내가 속한 집단의 평균 범위 안에는 들어가려고 노력한다. 이건 키나 몸무게뿐 아니다. 남들이 가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 남들이 알만한 직장에 취업하는 것, 적당한 나이에 평균 범위 안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을 포함한다. 그러면 안심이 된다. 35살에 뚜렷한 직장 없이 프리랜서로 살면서 일 년에 3달씩 해외에서 여행을 다니면서 비혼을 이야기하면, 잠깐 부러움의 대상은 될지 모르나 평균에서 벗어난 사람으로 신기해 하며 ‘저러다 나이가 들면 어떻게 하려고?’ 하는 말을 들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심하다. 작은 땅덩어리에서 비슷한 옷, 비슷한 머리모양, 적당한 크기의 같은 디자인의 아파트에 살면서 내가 평균 안에 들어간 중산층이 되어야 행복감을 느낀다. 모두가 같은 교과서로 배우고, 같은 시험을 치고, 같은 국민드라마를 40%의 시청률로 보면서 어제 뭘 받는지 이야기해야 뒤쳐지지 않는 동질적 세상이다. 평판에 예민한 사회일수록 그 안에 속한 개인은 평균의 강박을 갖고 살아간다. 
 
집단의 평균 안에 머무르면 안전함을 느낄 수 있지만, 뭔가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개성, 취향이란 게 있을 수 있는데 매번 평균이란 잣대를 놓고 비교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니 말이다. 아침에 중고교 앞을 지나가면 똑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본다. 신기하게 같은 모양의 뿔테 학생안경을 쓴 아이들인데 자세히 보면 교복이 조금씩 다른 것을 발견한다. 치맛단이 짧은 아이, 좁게 한 아이, 브로치를 하고 다니는 아이, 튀는 색 양말을 신은 아이 등 평균의 교복 안에서 ‘이건 나야’라는 개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숨통이 트이는 것 같지만, 그래도 평균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 같다.

 

 

언스플래쉬 2.jpg

          언스플래쉬

 

 

평균 =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은 이데올로기

 

학교를 벗어난 학교 밖 아이들이 있다. “We don’t need no education’이라고 외치는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의 한 장면을 온몸으로 거부한 10대다. 최근 방영된 <고등래퍼>에서 화제를 모은 김하온, 이병재는 모두 학교 밖 10대로 평균의 삶을 거부한 아이들이다. 그런데, 고등래퍼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의 평가를 받고 랩이라는 공간에서 평균보다 잘하는 우월성의 평가를 받았다. 결국 개인을 선택했지만 다른 영역의 평균의 틀에서는 집단 안에 있는 아이러니컬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런 마음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을 한 권 만났다. 토드 로즈의 평균의 종말(The end of average)』 다. 저자는 하버드 교육대학원에서 지성/두뇌/교육 프로그램과 개개인학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교육학자다. 그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 과거 근대사회를 만들면서 구축된 지금과 같이 평균 안에서 성적을 매기고, 잘하는 사람의 수월성을 확인하고, 못하는 사람을 골라내 등수를 매기는 이런 방식의 교육의 근본적 문제점을 제기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교육의 개인화의 필요성을 역설한 후반부가 아니라, 평균이란 개념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겨온 ‘평균’이 사실은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은 이데올로기일 수 있다는 사실을 낱낱이 밝힌 것이다.

 

1796년 벨기에에서 태어난 아돌프 케틀레는 겐트 대학교에서 수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당시 가장 유행하던 천문대장이 되어 최신 관측법을 적용하는 일을 했다. 당시 가장 큰 난제는 천체의 회전속도를 측정하는 것이었다. 10명이 측정한 속도가 모두 제각각 다르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값을 적용해야 할지를 놓고 논쟁을 하였고 뚜렷한 해결책이 없었다. 여기에 대한 결론이 ‘평균법’이었다. 10번의 개별측정값을 모아서 평균값을 내놓고 이걸 ‘참값’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저 멀리 있는 행성간의 속도를 실제 알 길이 없으니 택할 수 밖에 없는 고육지책이었다. 그런데 케틀레는 이걸 사회에 적용해보겠다는 아이디어를 갖고 1840년대 초 병사 수 천명의 가슴둘레를 측정해서 이 평균값이 가장 중요한 수치라고 주장했다. 개개인의 측정값은 오류이고, 평균값을 가진 인간이 참인간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이 주장은 센세이널한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케틀레는 가장 이상적 인간형은 바로 이런 평균치에 부합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 개념에서 지금의 ‘유형화’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 다음 욕심은 이런 참값에 속하는 인간을 현실에서 찾는 것이었다. 1940년대 미국에서 이 개념을 받아서 부인과 의사 로버트 디킨슨이 15000명의 젊은 성인 여성의 신체 수치를 평균값을 내서 ‘노르마’란 조각상을 만들었다. 모든 신체 수치의 각각의 평균값을 모은 모습이니 가장 이상적이며 아름다운 여성일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노르마 조각상을 전시하고 실제 현실의 모델을 찾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참가자 3864명중 단 한 명도 9가지 수치의 평균값에 부합하는 여성은 없었다. 모든 평균값을 다 가진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평균의 환상을 우월성의 이슈로 진화시킨 일이 케틀레 다음으로 이어진다. 1850년대 미국의 프랜시스 골턴은 평균을 최대한 향상시키려고 노력하는게 인류의 의무라고 주장하며 평균보다 훨씬 위에 있는 사람을 ‘우월층’ 그렇지 못한 하위권에 있는 사람을 ‘저능층’이라고 지칭했다. 한 가지에서 평균보다 50% 더 잘하는 사람은 나머지 영역도 모두 우월할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평균을 정상의 개념에서 평범의 개념으로, 평균에서 훨씬 위를 우월성을 가진 인간형으로 탈바꿈 시킨 것이다. 한 가지 잘하는 것이 결국 나머지 영역인 지적, 도덕적, 신체적인 면을 모두 아우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개념은 널리 퍼져서 1900년대 초반에 이르러 사회학, 행동과학계 전반에 퍼지게 되었다. 


 

언스플래쉬 3.jpg

          언스플래쉬

 

 

맥락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

 

지금 우리가 평균에 속하려고 애를 쓰는 것, 정상은 평균치 안에 있는 것이라 믿는 것, 아이큐가 매우 높은 사람을 영재라 부르고, 우월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모두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평균에서 떨어진 영역이 있다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든 것도 케틀레와 골튼에서 비롯한 ‘평균의 이데올로기’가 불가침의 진리와 같이 우리 사회에 깊이 박혀버린 결과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평균에 대한 집착은 모든 것을 표준화하고, 객관화하고, 공정화해서 효율성 위주로 재편하게 만들었다. 근대교육의 커리큘럼의 일반화로 모든 학생이 매 학년 같은 교과목을 배우고 같은 시험으로 평가를 받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는 현대사회의 포드와 테일러의 공장 작업 표준화, 매뉴얼화에도 이어지고 산업공학과 같은 학문으로 발전한다.

 

저자는 이런 역사적 흐름을 설명하면서, 평균의 참값, 우월성 이데올로기는 일종의 근대사회 이후의 신화라고, 인간은 다차원적이고, 평균값은 실제 인물을 반영할 수 없다고 말한다. 같은 평균값을 가진다 해도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이에 맞게 대해야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기말고사 평균 80점인 두 명의 학생이 있는데 영어 90점, 수학 50점, 국어 100점과, 영어 70점, 수학 100점, 국어 70점인 학생은 전혀 다른 사람이니 말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다차원성을 개개인의 특징과 개성이란 측면에서 바라보고, 어디서도 변하지 않는 성격의 천성적 본질이 있다고 여기기보다 모든 이는 ‘맥락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는 관점을 갖고 매번 사람은 다르게 반응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직선으로 가장 빠른 길이 있다고 여기기보다, 네트워크로 분포된 세상에서 길을 만들어가는 이정표없는 삶을 살도록 하는게 앞으로의 변화한 세상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길이고, 그것이 새로운 교육이 되어야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평균의 종말’에서 평균주의의 허상을 적나라하게 역사적 측면에서 너무나 당연하고 신성불가침의 진리로 여기던 것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낱낱이 알려준 점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집단을 비교할 때에는 평균을 보는 것이 여전히 가장 적합한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집단이 아닌 개인을 중심으로 본다면 나를 평균에 맞추려 노력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며 불필요한 일이며 평균이 아니라고 자책하는 것도 더는 필요없다는 것을 잘 알려주고 있다. 모든 영역에서 평균에 속하려고 너무 애를 쓰지 않아도 된다. 모두는 각자의 삶 안에서 각자 자기가 잘하고 못하는 것이 있다. 그래서 모여서 살아가는 것이다.


 

 


 

 

평균의 종말토드 로즈 저/이우일 감수/정미나 역 | 21세기북스
시대가 바뀌면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4차산업혁명 시대가 되면서 창조적 인재가 필요한 지금, 창의성을 죽이는 주입식 교육도, 재능을 평가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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