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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의 대화 | 기본 카테고리 2018-10-1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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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적과의 대화

히가시 다이사쿠 저/서각수 역
원더박스 | 2018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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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62년부터 1975년까지 이루어졌던 베트남 전쟁(월남전)이 왜 발생했는가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당시 맥나마라 장관의 제안으로 베트남의 외무부와 고위급이 회담을 가졌던 자리인 만큼 세간에서도 크게 주목했습니다. 또한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의 서한으로 그 회담의 공신력이 더욱 가중된 가운데 이루어진 회담을 그대로 적어둔 회의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이 책은 우리가 왜 베트남 전쟁을 수행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도 32만 5천5백명이 참전했을 정도로 관여를 많이 했던 만큼 베트남전쟁에 대한 고찰은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베트남은 이전부터 투쟁의 역사가 지속되었습니다. 프랑스는 베트남은 식민지로 두고자 하였으나 디엔비엔푸 전투로 프랑스는 베트남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겪었으며 결국 이 전투로 인해 프랑스는 베트남에서 식민지지배에 대한 야욕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뒤 베트남은 다시 공산화와 민주화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특히 베트남에 대해 공산화를 막겠다는 명목으로 17도선을 그러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을 나뉘어서 남베트남은 친미정부를 세우기에 이릅니다. 이런 과정에서 남베트남은 부패정부가 형성되었고 이런 일련의 과정속에서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의 분쟁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964년 통킹 만 사건이 발생합니다. 첫 공격은 베트남의 공격이 맞다는 걸 인정했으나 결정적인 전쟁개입이 되었던 2번째 사건에 대해서는 베트남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또 비행장 공격에 대해서는 현장 사령관의 판단으로 공격한 것이라는 말로 일축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맥나마라 장관의 회고록에서 통킹 만 사건은 자작극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특히 이 회고록이라는 저서로 인해 베트남과의 대화의 물꼬를 트였다고 할 정도로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 책은 4일간에 걸쳐서 양국 정상급이 계속해서 질의를 하고 답변을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큰 의문점을 갖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수차례에 걸쳐서 관계서류를 모두 제공했지만 왜 베트남은 제공을 하지 못했냐는 것이 가장 큰 의문이었습니다. 여기서 가장 큰 전제는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우월적 지위에서 베트남을 전혀 이해하지 않으려고 했고 이해하지 않은 채 패권적 군사력으로 압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군사엘리트의 자만이 낳은 결과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기 보다는 베트남측에서 주장하는 근거에 조금 기울어진 면이 있지 않았는가? 라는 생각을 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가장 결정적인 전쟁근거를 남겨준 비행장 공격에 대해서는 일개 사령관의 오판으로 일축하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농업국가와 기계국가의 지휘체계에 대해서 다른점이 있다는 사실은 이해합니다만 그걸로는 이 결정적인 사건에 대한 변명은 되지 않는다는 생각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의문점은 여운을 남긴 채 회담이 종결되기는 했습니다만 베트남과 미국의 협상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그와 더불이 미국과 북한, 대한민국과 북한, 대한민국과 미국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단지 제3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앞에서 이번 기회가 우리 후손에게 부끄러운 오점을 남길지 아니면 통일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지는 그걸 지켜보는 입장에 달려있다고 생각됩니다.

누군가는 한국전쟁의 참화를 전적으로 북한의 남침에서 시작되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그것이 통설이고 저도 그렇게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그 전쟁을 둘러싼 정치적인 관계를 다시 되짚어보면 한국전쟁은 단지 우발적인 전쟁이 아니라 세계 냉전의 대리전이라는 느낌을 확실히 받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베트남 전쟁도 남베트남을 공산화하려는 무리들이 우발적으로 일으킨 전쟁이라고만 알고 있었지만 그와 둘러싼 정치적인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것처럼 그 스토리를 이해하고 풀어내지 않는 한 통일에 대한 진전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이제는 대립과 정쟁의 시대에서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려는 평화의 길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중심에서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역사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모른채 살아가는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역사와 비슷한 베트남의 역사를 짚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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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석을 따라 한양을 거닐다 | 기본 카테고리 2018-10-1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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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표석을 따라 한성을 거닐다

전국역사지도사모임 저
유씨북스 | 2018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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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석을 따라 경성을 거닐다의 2번째 시리즈인 표석을 따라 한양을 거닐다입니다. 1864년 고종황제가 철종이 승하하면서 후사가 없자 즉위한 해를 근현대사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가 통설이며 아직도 그 통설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조선이 아닌 대한제국에서 근대화를 꿈꿨던 인물인 고종은 경성에 그 흔적이 하나하나 고스란이 남아있습니다. 특히 콜브란과 합작하여 세운 한성전기회사는 건청궁에 동북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전등이 가설되는 효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 흔적이 바로 경성에 남아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런 흔적을 하나하나 챙겨볼 수 있는 꼼꼼함을 챙긴 책입니다. 서울에 가면 뭘 볼 수 있나요? 라는 질문을 외국인에게 자주 받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외국인들이 많이 가는 명동과 홍대 등 번화가를 추천하기 쉽습니다. 물론 이곳이 결코 좋지 않은 곳이라는 말은 아닙니다만 그 말대로 도시화된 한국을 보는 것입니다. 도시화는 편리함을 제공하기 때문에 편리하고 쾌적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곳을 다녀온 외국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바로 "한국스러움"은? 이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말씀드리는 것이 경복궁과 창덕궁과 같은 조선의 궁궐을 대표적인 예로 들지만 그곳마저 요즘은 상업화가 진행되고 있어서 완벽한 한국스러움을 느끼기엔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북촌 한옥마을도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남들에게 알려진 것보다는 소소한 한국스러움을 추구하는 여행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자주 해봤습니다. 그렇게 시작할 수 있는 여행이 바로 흔적찾기입니다.

최근 서울특별시는 한양성터 복원공사를 대대적으로 시행하고 있고 지금도 진행중에 있습니다. 서울을 한양이라는 색깔을 입혀 좀 더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기위함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복원이 진행되고 있는 곳을 찾아가는 재미로 서울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그 책이 바로 표석을 따라 한양을 거닐다가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렇다면 한양을 지나 서울과 한양의 사잇돌 하지만 어떻게보면 우리가 부끄러운 역사 중 하나인 경성은 어떤 모습일까요? 가장 경성스러움을 느끼기에 좋은 곳은 서울역입니다. 지금은 경의중앙선 서울역과 서울문화예술회관으로 탈바꿈하여 예전 서울역의 모습에서 조금 바뀐 느낌을 많이 받지만 그래도 당시 서울역의 청사를 그대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이의 느낌을 물씬 풍기게합니다. 하지만 서울역보다는 저는 좀 더 멀리 보는 것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린 것이 바로 한성전기회사 주변 터입니다. 지금도 그 주변으로는 근대사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유적이 상당히 많습니다만 사실 지금은 터만 남아있고 실제로 전기회사를 운영했던 유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만 그 당시 동북아시아 최초라는 타이틀에서 한번쯤 찾아가보는 게 좋지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은 지금까지의 서울은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은 사람에게는 더할나위없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문화재를 좋아하는 저같은 경우는 이런 책이 자주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습니다. 문화재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가 가장 큰 빛을 발하지만 그것보다 그것 그대로 현세의 사람들을 품을 때 그 빛이 한층 더해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이 바로 그런 문화재가 빛을 낼 수 있도록 우리가 찾아갈 수 있는 이정표가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이 책은 약도와 더불어 그 당시 사진을 하나하나 실어서 그 때의 모습을 상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서울이 지겹다. 그렇다면 서울이 아닌 경성을 여행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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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랑 | 기본 카테고리 2018-10-09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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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역랑

이주호 저
틀을깨는생각 | 201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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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4월 일본이 침공을 할 당시에 조선은 일반적으로 일본이 침공할 것을 전혀 모른채 당한 것으로만 표현됩니다만 사실 조선은 일본이 침공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나 200년 간 평화가 지속된지라 백성들이 동요할 것을 염려하여 대외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조용히 일본의 침공을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전라좌수사 이순신과 경상우수사 원균 전라우수사 이억기를 차출하여 수군을 방어하게 하였고 병마사 이일과 신립을 중심으로 제승방략 체계를 재정비하였으며 알게모르게 읍성을 수리하고 성곽을 다시 쌓았으며 삼남지역에 인재를 파견하여 침공을 대비했었습니다만 이러한 대비는 단순한 왜구의 침공에 대비한 방어책으로 전면전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때 히고 국 구마모토 성주였던 가토 기요마사를 1군으로 4월 13일(음력) 일본은 대대적으로 부산진, 동래부를 시작으로 조선을 침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장 큰 야망은 명을 점령하는 것이었지만 그 외에 다른 꿍꿍잇속이 있었습니다.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를 맞으면서 아즈치성의 오다 노부나가는 전국을 통일할 수 있는 목전에 있었지만 결국 아케치 쥬베 미쓰히데의 반란으로 교토의 혼노지에서 결국은 할복을 하면서 그의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敵は 本能寺に あり의 유례.) 그렇게 지금은 모두 도요토미의 군력아래 복종체계가 유지되고 있지만 그것은 단순히 힘에 의한 복종이었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같이 겉으로는 복종하나 속으로는 언제든 반란을 획책할 수 있는 다이묘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들의 군력을 어떻게든 소진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외적을 만들어 공격하는 방법이 제일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당시 평화시대가 익숙지 않은 일본은 언제든 내전이 벌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서야 평화시대가 도래한 일본에서 다시 군비를 증강하고 굳이 필요없는 적을 만들어 동티를 겪는 불상사를 만들고 싶지 않던 사야가는 이 전쟁을 극구 반대합니다. 하지만 그 반대는 일개 가신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사야가는 자신의 주군이자 히고 국 다이묘 가토 기요마사의 좌선봉장으로 참전하게 됩니다. 그는 상륙하자마자 바로 경상도병마절도사 박진에게 귀순을 결심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 경상도병마절도사 박진은 사야가의 귀순이 첩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우선은 감금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일련의 상황을 각색하여 만든 것이 바로 역랑입니다. 이 역랑은 이때까지 사야가는 항왜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지만 그가 어떻게 일본에서 귀순할 생각을 품게 만들었으며 그리고 원래 그 뿌리는 조선이라는 픽션을 통해서 재미를 가미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상대적으로 주목하지 않았던 항왜장을 이렇게 각색을 하여 임진왜란에 주목받던 조선의 영웅이 아닌 항왜의 삶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야가는 항왜가 되어 훈련도감에 조총술을 교육하였고 조총제작에 관여한 사실만 알고 있지만 이 책에는 사야가가 자신의 조총부대를 운용하여 행주산성에서의 승리에 큰 기여를 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사야가는 권율의 제청으로 충선(忠善)의 이름을 하사받았으며 그간 공을 인정받아 자헌대부의 직책을 얻었습니다. 이후 정묘호란에도 참전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김 충선의 이름은 사성 김해 김씨의 시조가 되기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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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자본주의 | 기본 카테고리 2018-10-0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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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

주성하 저
북돋움 | 2018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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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소위 우리가 알고 있는 북조선의 정식 명칭입니다.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면서 평양은 공화국의 수도자 혁명의 총집합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북한에서는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 곳에서 어떻게 보면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평양에서의 일거수 일투족을 그려낸 책이 "평양자본주의"입니다.

이때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북한은 겉으로만 보이는 북한이라고 생각하시면 가장 편할 듯합니다. 이 책은 우리가 평소가 알지 못한 북한과 그리고 알고있었지만 잘못알고 있었던 북한에 대해서 이 책은 진짜 북한사람이 하나하나 다시 알려준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보는 순간 이때까지 알고 있었던 북한은 북한이 아니었구나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해서 평양자본주의라는 제목이 붙을 수 있었을까요. 바로 이런 역설에서 착안하여 좀 더 우리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북한에서 지위의 고하(高下)는 바로 급행료를 얼마나 더 뜯어낼 수 있냐에 따라서 고하가 나뉘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사소한 일 하나가 다 뇌물로 통하는 세계라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특히 유치원입학에서부터 초등학교 그리고 중학교과정에서도 하나하나 뇌물이 들어가지 않으면 어떠한 혜택도 누릴 수 없다는 걸 알게된 순간 북한이 그간 주장했던 사회주의의 낙원은 사실 내부에서부터 썩어들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 주성하 기자는 북한에서 최고 대학이라고 일컫는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에 그리고 북한에서는 가장 최상층이 거주하고 있다는 평양에서 거주하다 탈북을 결심하고 대한민국으로 들어왔습니다. 소위 말하는 엘리트코스를 직접 밟은 사람이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다보니 일반적으로 알 수 없던 사실마저 이 책에서 몇가지 있었습니다. 특히 평양시에서만 볼 수 있다는 채널은 이떄까지 그 어떤 매체를 통해서도 알지 못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최근 북한에 대해 관심이 있어 이른바 북한전문가의 의견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만 그들은 지극히 남한의 입장에서 바라본 북한이기 때문에 가끔씩 그 한계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전문가라고 하여도 접할 수 없는 공백이 생기기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들이 보지 못한 공백을 메워주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본인이 직접 살다 온 곳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외국인에게 개방되지 않은 밤문화에 대한 내용도 빼곡히 적어뒀었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낮보단 밤에 나온다고 했던가요? 일반적으로 우리가 북한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드라마,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접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었습니다만 텔레비전에서 생방송으로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상당히 놀랐었습니다.

비록 1인의 시각으로 본 평양이기 때문에 아주 큰 틀에서 본 북한은 아닙니다. 하지만 직접 평양에서 그리고 그 평양에서 단순히 거주만 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선망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다 온 기자의 눈에서 만들어진 책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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