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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 기본 카테고리 2020-02-26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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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이철희 저
인물과사상사 | 202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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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가는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 조제프 드 메스트르가 러시아 헌법제정 당시 했던 명언이 있습니다. 이 말은 알렉시 드 토크빌이 했다는 명언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습니다만 본질은 누가 이야기했냐기 보다는 정치를 구성하는 주체는 국민에게 있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정치는 개인의 삶과 직결되어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정치라고 하면 일부 사람들의 전유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정치에 대한 참여는 선거일에만 유효하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의 정치영향력은 단지 선거일에만 작용할까?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철희 의원은 그런 의문에 대한 답을 내고자 "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책을 집필하였습니다.

 이 책의 서두에서 "정치는 진실을 추구하거나 누가 옳은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건설적 방법이다." 는 체리 스토커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 책의 방향성을 잡아나가고 있었습니다. 정치라는 것은 개인의 의지로는 이루어 낼 수 없없는 집합적 산물이기 때문에 정치는 독불장군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거버넌스(Governance) 즉, 협치의 의미로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거버넌스적 정치에 대한 시각은 무엇인가? 에 대한 의문을 품고 이 책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거버넌스라고 하면 예전 노무현 정부 때 사용하였던 더불어 사는 세상과 일맥상통합니다. 그것은 진보의 이념이기도 하며 그리고 현 정부의 국정운영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런 더불어가는 세상의 정치는 어떤 것인지에 집중하면서 읽어나갔습니다.

 "정치는 네거티브 게임이 아니라 포지티브 게임이다. 일방이 일방을 제압하거나 무찌르는 승패의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본문 67P)

 여기서 보다시피 일반적으로 게임이든 시험이든 승자가 있다면 패자가 있고 승자는 그 지위를 선점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패자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지금도 그렇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위 문장에서 저자는 정치란 것은 포지티브섬 게임이 가능한 장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정치학에서도 제로섬 게임과 포지티브섬 게임을 내용으로 다루는 분야가 있습니다만 말만 들어도 Positive라고 하면 긍정적인 뉘앙스가 물씬풍기는 단어기도 합니다. 여기서 핵심적인 단어인 "공존"을 화두에 넣고 있었습니다.

 공존과 협치는 바로 거버넌스적 국정운영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기도 합니다. 그만큼 정치에 소통이 있어야하고 공감을 해야하며 독선적이지 않아야하며 국민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리고 국민은 본인의 의견을 개진하여야한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정치는 상호존중과 제도적 자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한다고 마무리를 짓고 있었습니다.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자제라는 것은 사법적 자제와 제도적 자제를 더불어 권한은 있으나 그 권한을 사용하지 않고 넣어둠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제도적으로 권한이 충분하나 그 충분한 권력을 남용하는 순간 공존할 수 없는 각축의 장으로 변모하기 때문입니다. 정치라는 것은 그렇게 그릇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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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 평전 | 기본 카테고리 2020-02-0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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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최명길 평전

한명기 저
보리 | 2019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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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는 안중근 의사의 일침이 책에서 그대로 드러난 책이었습니다. 최명길이라고 하면 남한산성이라는 영화에서 청 황제 홍타이지의 침공에 맞서서 화친으로 대표되는 자이자 김상헌과 다르게 결국은 나라를 팔아먹은 죄인이라는 오명을 쓰고 평가되기도 하던 인물이었습니다. 조선의 대부분이 청과의 결전을 외칠 때 홀로 청과의 화친을 주장하며 홀로 회담을 진행하여 성립까지 시켰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최명길의 삶은 시작부터 전란의 역사를 함께 끼고 살아왔습니다. 최명길이 태어나 세상에 발을 딛을 때 조선은 임진왜란의 화란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조선 국토 대부분이 유린되었고 그 전후 복구에 시달리고 있을 때 북에서는 누르하치가 주변 부족을 복속하면서 점점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후 복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북에서는 이미 여진의 후금이 명의 북방을 압박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광해군은 명과 청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광해군의 중립외교 속에서 명은 청을 정벌하기 위한 징발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광해군은 강홍립으로 전장에서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하지 말고 적당한 시기를 봐서 항복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것은 당시 분위기상 용납될 수 없는 행위였고 비열한 행위였고 재조지은의 은혜를 입은 조선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큰 불충을 저지른 왕으로 인식되기에 이릅니다. 게다가 인목대비를 유폐하고(폐모) 영창대군을 주살하여(살제) 조선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사대부의 순리에 역하는 행위를 저지르는 만행을 두 눈으로 보았던 최명길이었습니다.

 결국 최명길은 인조를 옹립하는 인조반정의 반열에 오르게됩니다. 그리고 김류, 이귀 등과 더불어 인조를 옹립하여 1623년 인조반정을 성공시키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조선은 불행의 연속을 걷게 됩니다. 전 정부와는 다르게 후금(청)에 노골적으로 적대행위를 하는 조선을 마냥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다음해인 1624년 서북방비를 책임지던 부원수 이괄의 반란이 있었습니다. 이괄의 반란으로 인조는 공주로 파천하기에 이르고 한양을 점령한 이괄은 더더욱 인조정부를 밀어붙이기에 이릅니다만 도원수 장만 등의 반격으로 반란은 진압됩니다. 하지만 인조 정부의 정당성에 큰 상처를 입게 되었고 이괄의 난으로 남은 잔당은 청으로 유입되어 청이 정묘호란을 일으키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청은 조선을 정벌할 목적보다는 명을 정벌할 때 후방을 안정시키기 위한 목적이 컸으므로 형제의 맹약을 맺는 조건으로 철군하기에 이릅니다. 

 사실 제대로 생각이 박혀있던 위정자라면 이 때부터 국방력을 강화하든 아니면 외교로 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하든 일단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당연지사며 결전을 치를 의사가 있었다면 그에 맞는 용병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하지만 임진왜란으로 당했던 조선은 학습효과는 전혀 없었나봅니다. 입으로는 와신상담과 결전을 외치지만 실상을 보면 사실 국가를 유지할 근간인 방어군조차 미비하던 때였습니다. 또한 전쟁을 수행하는 것에 가장 기본 중 기본인 병참을 확보하여야하나 전국에서 병력을 유지할 수 있는 군량미는 가장 형편이 좋은 곳이 3개월가량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또한 전쟁을 수행하기에 앞서 화전을 운운하는 자는 그 누구보다 군략과 병법 그리고 무예에 앞장서서 습득을 하여야하나 그저 "말"뿐인 사대부는 계속해서 소위 말하는 "입만 털고 있었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최명길은 그 누구보다 냉철하게 북방의 이치에 밝은 자를 중용할 것을 조언하지만 그 누구도 그 말은 듣지 않았습니다. 또한 전 정부의 패악질이었던 청과의 중립외교를 단지 본인 정부의 정당성을 강화하고자 파기하는 순서를 밟기 시작하였으며 그리고 북방에 밝은 자를 중용하기 보다 박엽을 처형함으로써 오히려 기용하지 않고 단지 "명분"만 위해서 그 누구보다 큰 실책을 저지르게 이릅니다. 또한 청을 정벌하기 위한 원병을 요구하기 위해 조선에 들어온 감군 황손무는 조선에 머물면서 조선의 실정을 온몸으로 체감한 뒤 조선은 본토를 방비할 병력조차 미비한 사실을 알고 괜한 도발을 하기보다 본토를 방위하기 위한 대책부터 세울 것을 조언하였으나 당시 집권층은 그 말을 귓등으로조차 듣지 않았습니다. 과학기술을 천시하였던 당시 성리학자들은 임진왜란 당시에도 200년 전 문종 기에 만든 화차로 임진왜란에서 대승을 거두었던 교훈은 이미 온데간데 없이 잊어버리고 국방력 강화에는 전혀 관심없이 본인들의 안위에만 신경쓰는 정도에 이릅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의 국방력을 보면 청과의 결전에서 군의 사기만 있다면 남한산성에서 유린 당할 만큼의 약체는 아니였습니다. 사실 병자호란에서도 청군과의 결전에서 일부 승리한 전투도 존재하였습니다.

 결국 조선은 청의 심기만 계속하여 도발하여 병자호란을 맞이하게 됩니다. 전략을 강구할 시간을 허비하고 사소한 문제에 본인들의 자존심을 세우면서 이도 저도 못하면서 결국은 가장 최악의 수를 두게 됩니다. 명분만 중시하는 성리학의 가장 큰 폐악이 아닐까라는 안타까움으로 계속해서 이 책을 봤었습니다. 가장 쓸모없는 학문이자 백성의 근간마저 뿌리뽑았던 최악의 적폐였던 성리학과 유교가 아직까지도 이어지는 사실이 사실 정말 안타깝습니다만 이 내용과 관련성이 없어서 여기에서 약간 접어두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병자호란에서 청군은 조선을 정벌할 수 있는 전략을 충분히 수립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의 방어전술이 산성에 집중되어있음을 파악하고 산성을 우회하여 한양으로 바로 공격하는 전격전을 수립하였으며 조선 왕실이 유사시 도성을 버리고 바로 강화도로 파천하는 전략을 미리간파하고 강화도로 가는 길목을 차단함과 동시에 일부가 강화도로 피난에 성공할 시 보강된 수군전력을 이용하여 강화도를 공략하는 전략까지 강구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무능한 정부는 정묘호란과 똑같은 과오를 저지르고 맙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남한산성의 군량과 산세가 험한 것만 믿고 무작정 들어갔던 정부는 굶주림과 물자부족으로 시달리게 됩니다. 군병은 추위에서 제대로 결전조차 하지 못한 채 얼어죽기에 이르렀으며 설사 전투를 수행한다고 해도 화약이 부족하였고 훈련이 부족하여 태반이 무의미하게 전사하였습니다. 실제로 북문전투에서도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조총수의 실수로 전군이 패닉상태에 빠졌고 청군의 기병대는 그대로 살육을 하였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위정자는 본인은 스스로 나서지 않고 입만 털고 있었습니다. 전투를 운운하면 어찌 학문을 하는 자가라는 핑계로 회피에 이르렀으나 유일하게 한명인 최명길은 그 적진을 뚫고 회담의 여지를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나라가 멸망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 같은 일말의 희망불씨를 최명길 홀로 살려내고 있었습니다.

 최명길은 이 일로 1등공신의 문묘에서 배제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 후손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숙종대에 이르러 다시 평가받기에 이르렀고 정조대에 이르러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야말로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하지만 사실 최명길의 희생으로 그나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위정자들은 다시 최명길을 힐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인조 또한 최명길을 힐난하는 데 가담하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하였습니다. 가장 격동의 시기였으며 당시 성리학자들의 무능함을 절실히 보여주던 양호란과 왜란 사이에서 최명길은 어떤 마음으로 헌신하였을까요. 지금 들어 다시 재조명받고 있는 최명길을 음미하기 위한 책으로 더할나위없이 좋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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