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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내용에 대해서 지적할 부분이 너무 많다. | ▣▣ 역사야 놀자 2012-06-25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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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십자군 이야기 3

시오노 나나미 저/송태욱 역/차용구 감수
문학동네 | 201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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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밝히는 생각이지만 시오노 나나미가 거둔 성과는 대단하다.

 

그녀로 인해 어쩌면 우리에게 생소하고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릴 법한 지중해의 역사가 영화처럼 한눈에 펼쳐졌다. 그녀의 필력이 있었기에 현재 케이블방송에서 상영중인 미드 스파르타쿠스가 한층 흥미진진하게 느껴지고, 글래디에이터(2000), 킹덤오브헤븐(2005), 로빈후드(2010)같은 영화를 한번 더 꺼내보게 되는 것이다. (써놓고 보니 위의 세 영화는 모두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이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그리스, 로마사와 동로마제국-유럽중세사는 따분하고 어려운 '학문'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그녀는 이러한 역사의 대중화에 큰 공헌을 했다. 다른 나라에서의 판매부수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에서의 인기는 쉬 누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공헌과 별개로 이번 십자군이야기 시리즈의 세부 내용에 대해서 지적할 부분이 너무 많다.

 

대략 다섯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편협성이다.

 

역사를 서술하는 자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동시대의 어느 편 연대기작가가 아니라면, 자기와 혈연-지연에 얽매인 내용이 아니라면 더더욱 객관적인 시각과 서술이 필요하다. (한국인이 유럽과 아랍세계가 맞붙은 11~13세기 역사를 배울 때는 이 부분이 더욱 중요해진다.) 그러나 그녀는 출생 탓에 더 쉽게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었음에도 그 기회를 쉬 저버렸다. 그녀는 대부분의 장면에서 유럽-십자군의 시각으로 책을 서술하였음은 물론 평가의 공정성도 포기하였다.

 

그녀가 원래 십자군 편에서 이야기를 쓰려고 한게 아니냐고 따질 수도 있겠다. 더불어 혹시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프랑크인 연대기 작가가 아니다. 종교적인 광신에 의해 이 책을 쓰는 것도 아니다. 역사를 이야기로 쓰는 작가, 이야기꾼일 뿐이다. 그 이야기는 당연히 팩트에 근거해야 하고 팩트가 아닌 것은 어떠한 호감, 비호감적인 것도 배제해야 마땅하다. 그녀는 이 부분에서 낙제점이다. 과도함 감정이입이 시각의 편협성을 낳았다.

 

십자군원정은 말그대로 유럽 십자군의 침략과 아랍세계의 방어로 점철된 역사이다. 이 개념 안에서 팩트를 명기해야 한다. 종교적 사명, 또는 옳고 그름의 명제는 그 다음이다.

 

또한 일방의 역사가 아닌 쌍방간의 전쟁의 기록이므로 양측의 기록과 평가를 더 세세하게 살폈어야 한다.

그러나 그녀는 아랍인이 쓴 기록은 유리한 부분만 가져다 사용한다. 그녀의 이러한 습관은 심지어 근현대 사학자들의 저작들에서 내용을 발췌할 때도 똑같이 행해진다. 이건 역사를 쓰는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아무리 역사학자가 아니더라도.

 

둘째, 굉장히 심각한 영웅사관이다.

 

그녀는 곳곳에서 '심취해있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어느 제후가 어느 왕에게 심취해있다거나 동생이 형에게 심취해있다는 등의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원문의 이탈리어 또는 영어가 어떤 것이지는 잘 모르겠으나 번역자가 굳이 이 단어를 선택한 걸 보면 이 단어가 원작자의 의도에 가장 부합한다고 봐야할 것이다. '심취하다'라는 뜻을 과연 사람에게 적용하는게 가능한가 의심스럽지만, 내가 보기엔 그녀 자신이 (그녀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소수의 영웅에 심취해있는게 아닌가 싶다. 로마인 이야기는 한마디로 불멸 무결점의 인간 카이사르에 대한 심취의 기록이고, 십자군 이야기는 사자심왕 리처드에 대한 심취의 기록이다. 사실 그녀가 사랑하는 도시 베네치아의 도제 단돌로도 중요한 심취의 대상이며, 각 기사단의 단장과 기사들,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황제 또한 그녀에게 행복한 상상력을 제공하는 남성 영웅들의 상징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심취의 대상들이 몽땅 등장하는 이번 3권이 십자군 이야기의 핵심이며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비교적 기록과 증거가 풍부한 시대의 역사를 읽으면서 신화적 요소가 가미된 로마사를 읽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녀의 이러한 영웅사관 때문이다.

 

그녀는 너무 긴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무려 2천년의 역사를 쏜살같이 달리다보니 소수의 인물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십자군 시대는 다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바꿨어야 했다. 그녀가 짝사랑하는 그 남성들을 '여러분도 나랑 같이 심취하세요!'라고 권유하진 말았어야 했다.

 

셋째, 4차 십자군이 저지른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이야기에서 통채로 빼버렸다.(p.287)

 

그녀의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책에서 썼으니 거기서 읽어보라는 것이다. 이건 책을 쓰는 사람이 내세울 핑계가 아니다.

 

4차 십자군 원정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십자군이 저지른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그 전후의 잡다한 사건들이다. 그녀가 사랑하는 도시 베네치아, 그리고 그녀가 사랑하는 정치인 단돌로가 그 앞장에 섰더라도 빼먹을 대목이 아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십자군은 더이상 십자군이 아니 것으로 많이들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그녀의 입장을 정리했어야 했다. 십자군 원정의 시발점이 콘스탄티노플의 구원 요청에서 비롯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되다. 콘스탄티노플이 동로마의 수도이자, 그리스도교가 성립된 토대임도 잊어서는 안된다. 그 도시를 십자군이 빼앗고 약탈한 것이다.

 

넷째, 셋째에서 이어지는 대목인데 4차 십자군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각이다.(p.298)

 

그녀는 4차 십자군의 과오를 과오로 보지 않는다. 이유는 20세기에 들기 전까지 누구도 4차 십자군에 대해 악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황도 파문하지 않았고, 주요 삽화도 남아있기 때문이란다. 어떻게 이런 논거를 찾았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예루살렘 순례가 더 자유로워졌으므로 다행인 거 아니냐는 생각도 내비친다. 아주 위험한 생각이고, 비논리적인 생각이다. 보통은 독재자나 전쟁광들이 펼치는 논법이기도 하다. 1~2권에 이어 다시 말하지만 그녀의 보수로의 퇴행(또는 강화)은 굉장히 속도가 빠르고 심각하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 이런 사관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다섯째, 다른 사학자의 서술을 엉뚱한 방법으로 꼬고, 활용한다.

 

특히 스티븐 런치먼에 대한 언급은 그녀 자신을 부각시키기 위해 학계의 거물을 논하면서 동등한 권위를 쉽게 얻으려 하는 목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평생동안 한 우물만 판 학자와 이야기꾼인 스스로를 같은 면에 맞대보는 것도 우습지만(이것은 소설가 김훈이 조선사를 연구한 학자에게 실력을 겨뤄보자고 큰 소리 치는 꼴이다. 우위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비교대상이 아니다.), 러치먼의 저작을 '재인용'이라고 에둘러 비판한 것은 이 베스트셀러 작가의 오버이다. 그러면서도 리치먼의 센스있는 인물평은 그대로 인용한다. 모두 동의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재미도 주고, 자기도 돋보이게 만들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리치먼의 저작 중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동시대 역사에 관심있는 많은 독자들이 한번쯤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재미는 모르겠지만 깊이가 다르다는 점은 확실하다.

 

마치려 하니 시오노 나나미에 대한 평이 너무 박하다. 맞다. 그녀는 우리 시대의 둘도 없는 역사분야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해박한 지식을 지닌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제라도 그녀의 역사관, 장단점을 면밀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그녀의 책을 읽는 수만명의 독자들, 특히 학생들을 생각한다면, 급하다.

 

잘못된 역사관은 잘못된 현실감각을 키운다.

그래서 전쟁은 계속되는 것이다.

그녀가 말한 '옳고 그름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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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충분히 자유롭다고 자각하는 독자라면, 자, 이제 조르바와 겨뤄보자. | ▣▣ 도전 고전 2012-06-04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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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저/이윤기 역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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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정말 오랫동안 별러왔던 책이다.

고전이 항상 그렇듯, 읽는데 많은 되새김과 그로인한 시간소요가 있었다.

그래도 다 읽고 난 후의 뿌듯함은 다른 책들에 비길 바가 아니다.

그런 맛에 또 어려운 고전을 읽는 것이리라.

 

그리스인 조르바는 자유의 화신이다.

그의 자유 의지는 막힘이 없다.

('자유'라는 단어가 이리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할 줄 몰랐다.)

인간에게 있어 자유란 인간임을 증명하는 길이다.

조르바는 삶과 행동으로 자유를 실천하며 추구하고,

작가 카잔차키스는 그의 자유로움에 감탄하고 경외한다.

또한 조르바는 많은 사람들의 위선과 비인간성(인간적인 것이 무엇이냐에

대한 이견이 있다.)과 집단의식을 조롱한다.

그는 타락한 종교와 성직자들을 경멸하고 신성을 모독한다.

그의 의지는 선한 것과 악한 것의 경계선을 넘나들고,

종교의 포용력과 배타성 사이를 곡예하며,

도덕적 일탈과 (유독 여성에 대한)이타주의 사이에서 희희낙낙한다.

 

이 책을 읽고 직업을 버렸다는 어느 유명인의 사례가 생각난다.

충분히 그럴 수 있을 법한 책이다.

다분히 어렵고, 난해한 부분도 있지만 카잔차키스의 문법도 음미해봄직하다.

더 고마운 건 번역자가 이윤기선생이다.

그의 마지막 번역작이 아니었을까 싶다.

 

스스로가 충분히 자유롭다고 자각하는 독자라면,

자, 이제 조르바와 겨뤄보자.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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