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seosfam님의 블로그
http://blog.yes24.com/seosfam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myseosfam
님의 블로그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12월 스타지수 : 별2,817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기본 카테고리
나의 리뷰
나의 리뷰
기본 카테고리
나의 메모
기본 카테고리
태그
내용이 없습니다.
2022 / 0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월별보기
나의 친구
나의 친구들
최근 댓글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혜안에 감명 받.. 
흥미로운 책이네요, 우수 리뷰 선정 .. 
과학 및 이론의 발전과 역사, 과학적.. 
신의 입자 관련된 다큐를 보고 신의 .. 
멀게만 느껴졌던 과학을 친근하게 만들.. 
새로운 글
오늘 13 | 전체 2735
2007-01-19 개설

2022-02 의 전체보기
2022년 이상문학상 대상, 손보미, 불장난 | 기본 카테고리 2022-02-24 14:44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5974499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불장난

손보미,강화길,백수린,서이제,염승숙,이장욱,최은미 공저
문학사상 | 2022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여성 작가들의 파워를 느끼는 해입니다~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2022년 이상문학상 대상 손보미 작가, 불장난

 

 2022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나왔다. 우수작과 대상작 7편 중 남자 작가가 쓴 작품은 한 편뿐이다. 여성파워가 느껴진다. 올해의 대상은 손보미 작가의 불장난이다.

 

 아버지는 길을 가다가 담배 피우는 사람을 보면 10살의 아이 손을 잡고는 다른 길로 돌아가고, 식당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을 보면 아이의 눈을 커다란 손으로 가렸다. 티브이 드라마에서의 애정표현 장면이 나오면 역시 아버지는 아이의 눈을 가렸다. 아버지는 ‘그런’ 세계에 접근 금지 딱지를 붙인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그 딱지를 붙였고 아이는 신체 전부가 거대한 귀가 되었다고 상상하기 시작했다. 말을 하는 입이 아니라 엿듣는 귀 말이다.

 

 봄방학이 끝나기 며칠 전, 아이의 어머니는 이제 많은 것들이 바뀌게 될 거라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했다. “엄마는 너에게 사과하고 싶지 않구나. 사과를 받고 싶다면 네 아빠에게 받으렴.” 하지만 단호한 태도는 순식간에 무너졌고 곧바로 어머니는 이렇게 덧붙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영원히 너의 엄마야.” 아이가 열두 살이었던 여름에, 일 년 동안 외국의 대학으로 떠나게 되었을 때도 어머니는 공항에서 똑같은 말을 했다.

나는 영원히 너의 엄마야

아버지는 아이에게 “너희 엄마는 야망이 있는 여자였어.” 이혼 직후,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집을 번갈아 지내던 아이는 원하는 책을 사달라고 요청했지만 어머니는 서점까지 가서는 망설였다. 아이는 어머니를 설득시키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면서 든 의문 ‘책을 사줄 어른이 남들의 두 배(물론 정확히 두 배는 아니었다. 1.5배!)나 마찬가지인데, 왜 나는 원하는 것을 하나도 가질 수 없단 말인가? 왜 이들은 내가 이렇게 얕은수를 쓰게 만든단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자, 여자 아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치심을 느꼈다.

그게 여자가 느끼는 혼란스러움과 상처의 정체였다고 이제 고백한다.

 

 방학이 되면 어머니의 집으로 살러 가던 아이가 갈 데가 없어져 방학임에도 아버지의 집에서 지낼 때, 아버지와 같이 사는 그녀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면서 이랬다.

“나는 너보다 훨씬 더 실망했어. 정말이야.” 여자는 아버지와 결혼한 여자를 ‘그녀’라고 부른다.

 

 말을 할 수 없는 갑갑함, 생각이 정리되지 못한 어수선함, 아이들과 어울려 런웨이를 걷지 못하는 소심함의 근원을 알고 싶어 온 몸을 귀로 바꾸는 상상을 하는 아이는 혼자 불장난을 하는 쾌감에 빠진다. 눈을 가릴 필요도 없고, 장소를 옮겨 다닐 필요도 없이 옥상에서 불장난을 했다. 원하는 것을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그저 들키지 않으면 되고, 가지고 있던 라이터에 가스가 떨어지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마침내 불장난을 글로 썼다. 그러나 그 글은 거짓이었다. 아이는 그 글이 다른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리라는 기대 때문에 안도했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그 글이 돌아와 다시 아이의 손에 쥐어지고 교실 아이들 앞에서 다시 읽어야 했을 때, 그녀는 한때의 굴욕을 손쉬운 안도와 거짓으로 무마하고자 했던 시도에 대한 형벌로 이해했다.

 

 그리고 아이는 진심의 글을 첨가하여 낭독을 한다. 성의 없고 산만한 아이들의 박수소리를 들으며, 아이는 이번에야 말로 마음껏 의기양양해지며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이는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관계였다. 그녀와 재혼한 아버지와 아이의 관계도 아이의 삶에 항구적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그것이 영원성을 가진 것으로 오해했다. 그 오해가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자라 성인이 된 후 어린 시절의 여정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돌이켜보는 눈을 가지게 된다. 나도 그랬다. 어린 시절 늘 우매했다. 한 박자 늦게 알았던 사실과 진실들을 나이 든 지금에서야 한 움큼씩 둘러볼 지혜도 안목도 생겼다.

 

 읽는 내내 우울함이 들었다. 이혼을 담담하게 말하는 주인공은 벌써 떨어 버렸을 것임에도 그녀가 쓴 글에 흔적만 남은 우울함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정리되지 못한 감정들은 한 번에 정리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몇 개의 필터를 통과해야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필터를 통과한 물이 맑아졌다고 해서 끝이 난 것도 아니다. 마치 정화조의 필터처럼 필터에 걸린 군더더기들은 언젠가는 청소해야 할 일이다.

 

 내가 감상이라고 쓴 글들은 모두 작품 속에서 표현된 글들이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아메리칸드림과 마이너 필링스 | 기본 카테고리 2022-02-21 15:22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5958607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마이너 필링스

캐시 박 홍 저/노시내 역
마티 | 2021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읽는 동안 무력감에 쓸쓸해지고 우울해짐. 그러나 이것 또한 현실이니 알아둡시다~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아메리칸드림과 마이너 필링스(마이너 필링스, 캐시 박 홍 지음, 도서출판 마티 )

 

 독재정권의 마수를 피해 이민을 갔던 부모들은 사상의 자유를 누리기보다는 하루의 일상을 살아 내기조차 버겁습니다. 백인들이 주류인 곳에서 인종차별의 피해를 입지 않으려 방어가 내면화되었습니다. 투자 이민을 간 것도 아닌 곳, 흑인을 무시하지만 그들의 주머니를 바라보고 산 모순의 일상 속에서 속은 얼마나 썩어 문드러졌을까요. 결국 모범 소수자의 지위를 얻음으로써 만족해야만 했던 불만의 세월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라오스 근로자가 3년의 근무를 한 후, 라오스에 잠깐 휴가를 갔을 때, 고향 사람들의 부러움은 대단합니다. 매월 송금한 돈으로 집 짓고, 땅도 샀습니다. 한 달 급여가 30만 원도 안 되고 일자리도 없는 라오스에서, 한국에서 보내오는 아들, 남편의 100만 원이 넘는 돈이 가진 위력을 이웃들도 알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자리를 잡았다며 한국을 방문한 친척에게서 느꼈던 부러움은 돌아보면 결국 한국 내 라오스 근로자의 이웃들이 가졌던 그것과 별반 다를 바 없진 않았을까요?

 

 이제는 살만해서 미국에 공부하러 가서는 미국에 정착하는 한국계 미국인이 많아졌습니다. 유학이 자유스럽고 유학생이 많아지자 귀국한 유학생이 영어가 유창해도 한국에서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는 않은가 봅니다. 이들은 미국에서 자유롭게 공부하고, 만족한 정착을 할까요? 이중국적을 가지고 한국과 미국을 두리번거리고, 기웃거리지는 않을까요?

 

 캐시 박 홍은 미국 이민 2세입니다. 로스엔젤리스 한인 타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입니다. 교육도 충분히 받았고, 교육받은 만큼 미국 사회를 불편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국 내 소수 민족인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살아갈 때, 그녀의 부모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그녀의 글은 우리가 들었던 미국의 한국인 이민자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게 합니다. 캐시 박 홍의 문제의식과 현실인식을 확인하자 처음 미국 이민을 결행한 그녀의 부모가 생존을 위하여 펼친 대서사시가 그녀에게서 반복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부모가 경제적 결핍에서 벗어난 뒤에 나타난 자녀의 정신적 결핍 극복의 대서사시의 반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디 캐시 박 홍의 노력이 다음 세대의 고민으로 이어지는 유전의 사슬을 끊어 주길 희망합니다.

 

 이 나라를 떠나 이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제는 독재권력 때문에 이민을 가시는 분들이 많지는 않겠지요? 꿈을 찾아 떠나거나, 이 땅에 실망하여 떠나시는 많은 분들이 모두 잘 정착하길 바랍니다.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소외감을 극복하고 꿈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마이너 필링스(소수인종의 소외감)에 가슴 아픕니다. 선거철이 되어 지지고 볶으면서 국민들을 갈라치는 선거전략에 너도나도 편을 갈라 싸우느라 난리입니다. 그런데 캐시 박 홍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이 또한 엄청난 특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종교와 과학, 창조론과 진화론, 그리고 창조과학 | 기본 카테고리 2022-02-14 11:17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5909322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과학과 종교

토머스 딕슨 저/김명주 역
교유서가 | 2017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과학과 종교의 갈등을 반기면서~~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종교와 과학, 창조론과 진화론, 그리고 창조과학

 

 종교와 과학의 갈등은 피할 수 없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한 권의 책으로 얻을 수는 없겠지만, 이 질문이 이제 시작한 것은 아닐 것이기에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진화론은 과학이라고 하지만, 이것도 단지 믿음에 불과하다" 존경하는 어느 목사님의 주장은 과학적 사실은 증명을 할 수 있을 때만 사실이고 진실이라는 전제를 무시한 듯하여 약간 거슬렸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믿음 그 자체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과학적 사실이 밝혀지기까지는 여러 가설들이 생기고, 폐기되는 과정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밝혀진 사실이 완벽한 진리는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뉴턴의 물리법칙은 우주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 광속이 등속이라는 전제하의 이론이라는 것, 현실적이지 못한 등속 조건을 가속 조건으로 변경하여 적용한 일반상대성이론이 그 후 10년의 과정을 거쳐 우주의 원리를 설명할 수 있었다는 것을 비록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듣고는 놀랐으니까요. 저자도 ‘과학과 종교 사이에 갈등의 종류를 지나치게 한정하지만 않으면’ 갈등을 완전히 삭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특정한 종교적 믿음과 과학 지식의 특정한 측면이 지적으로 양립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살피면서 이 문제의 실제 쟁점은 정치라는 것을 설명합니다.

 

 저는 종교(저자가 사용하는 이 용어는 대체로 기독교를 말한다면서도 아브라함을 근원으로 하는 일신교 전통들인 유대교, 이슬람교 내에서도 일반적인 논의가 가능하게 하는 역사적, 철학적, 신학적 공통점이 충분히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인 형제들이 다른 신앙을 만들어 치열한 싸움을 하는 것이 부조리하게 보입니다)를 믿는 사람으로 창조론을 믿지만 이를 증명하지 못하는 한 과학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과학적이냐 아니냐는 판단이 믿음의 전제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도구가 되어 내가 변하고, 세상이 변하여 서로가 잘 살면 된다고 믿습니다. 이 근본적인 믿음에 어긋나는 가르침을 믿으면 우리는 그것을 광신, 미신이라고 부른다고 저는 믿습니다. 창조론을 믿는 것과 그것이 과학으로 둔갑하여 창조과학이라 주장하는 것은 믿음과 별개로 과학적인 생각이 아니고, 증명되지 않은 과학을 진리라며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것으로 믿습니다.

 

 책의 5장은 창조론과 지적설계를 설명합니다. 별도의 따옴표를 생략하고 소개합니다.

1990년대 초부터 미국에서 ‘지적설계(ID)’ 운동의 지지자들은 모든 생명 형태가 변이, 유전,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했다는 신다윈주의 이론에 도전해왔다. ID의 신봉자들은 지적설계가 진화에 도전하는 진지한 과학 이론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이론의 여지가 있는 수학적 가정들을 토대로 특정 정보가 우연과 시간에 의해 만들어질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자세히 계산함으로써 그러한 불가능성을 양적으로 제시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불신을 정당화한다. 역사에서 드러나는 사실은, 그동안 미국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보수적인 기독교 유권자들이 공립학교에서 종교에 기반한 반진화론적 개념들을 가르치게 하기 위해 힘써왔으며, ID운동은 그러한 움직임의 연장선상에 있는 가장 최근의 시도라는 점이다. 진화와 ID에 대한 논쟁은 과학과 종교 사이의 충돌이 아니라, 누가 교육을 통제해야 하는가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들 사이의 충돌이다. 이 운동들은 20세기와 21세기 미국의 산물이다. 이 운동들은 현대과학을 모방하는 동시에 거부하면서, 발전된 과학, 수준 높은 종교의식, 국가와 종교의 엄격한 분리 같은 많은 요소들의 영향으로 현대 미국에서 폭넓게 퍼지게 되었다. ‘어린 지구 창조론’ 혹은 ‘창조과학’은 더 극단적인 버전이다.

미국과학진흥협회는 지적설계는 이론 구성에 “중대한 개념적 결함이 있고, 타당한 과학 증거가 없으며, 과학적 사실들을 잘못 기술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지적설계의 핵심 개념은 “사실상 과학 개념이 아니라 종교 개념”이라고 언명했다.

 

 ID에 대한 설명은 더 이어집니다만 직접 책을 보시라고 권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종교와 과학은 인간세상을 이해하고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신의 뜻을 알기 위하여 신학이 있듯이 최초 과학자들은 신의 뜻을 이해하기 위하여 자연의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종교가 편협해지면 과학도 편협해집니다. 창조과학이 그 증거입니다. 과학과 종교가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신의 뜻을 더욱 잘 이해하게 하기 위하여 갈등을 막을 일은 아닙니다.

 

종교와 과학 모두 파이팅입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 기본 카테고리 2022-02-11 16:37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5895468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저/이영의 역
민음사 | 2000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슬프고 아픈 기록이기에 별은 한 개를 줄였습니다~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내가 정녕 원하진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들어간 논산훈련소에서 만났던 장정들의 기억은 정말이지 하나도 없다. 나처럼 밖에서 미리 까까머리로 입소한 소심한 장정도 있었지만, 국방부가 제공하는 무료 이발소를 이용하려는 강단이 있는 터벅 머리 장정도 있었다. 논산훈련소에 빈자리가 생길 때까지 대기하는 장소가 장정 대기소였다. 아직까지는 배가 고프지 않아, 타 온 밥과 국이 남았던 짧은 사나흘로 기억한다. 기억은 그것뿐이다. 1982년 4월 봄날이었다.

 

 전국에서 모인 장정이었다. 군가 제목 그대로 우리는 팔도 사나이였다. 같은 내무반을 사용할 예정이었던 우리는 통성명을 하며 즐거이 인사를 하는 여유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을 메꾸기 위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앞으로 닥칠 훈련소 생활의 공포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직 사복을 입은 채, 군대가 제공하는 시설을 사용하는 부조화가 우리들의 몸과 마음에 불안을 만들고 있었다.

 

 드디어 훈련소로 입소하는 날, 훈련소 입구를 지나 건물을 돌아섰을 때부터 욕설은 시작되었다. 인솔하는 조교들이 갖가지 욕을 하며, 우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앉아, 일어섯,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씨발, 초장 군기를 잡는 방식이 이렇구나’ 예상은 했지만 아직 훈련복도 지급하지 않은 상황에서 당하는 기분이 더러웠다. 우리들의 더러운 기분은 집으로 돌아간 사복에 그대로 묻어 집에서 걱정하던 어머니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었고, 며칠을 잠 못 들고 울게 만들었다. 사복은 흙먼지가 묻었고, 우리들의 옷에는 훈련소에서 훈련병들 안전의 기본 조건이라는 군기를 위한 폭력의 흔적이 잔뜩 묻어 있었다.

 

 이반 데니소비치는 1941년 전쟁에 참전, 전투 중 독일군에게 잡혔다가 간신히 탈출하였지만, 독일군의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수용소에 투옥되었다. 자기의 잘못은 독일군에게서 탈출 후 소련군을 만났을 때, 길을 잃었다고 거짓말을 하지 못한 정직이었다. 국가가 부르면 달려가 총탄이 되고, 국가가 꾸짖으면 찍소리 못하고 수용소로 가야 하는 소심하고 정직한 소비에트 연방의 국민이었다. 수용소에서의 인원점검에서 줄을 제대로 안 서고, 뒤에서 개기는 수형자들에게 가하는 간수들의 날카롭고 둔탁한 폭력은 정작 줄을 제대로 안 선 뺀질이들은 피하고, 두려운 눈을 굴리며 시키는 대로 줄을 섰던 모지리들에게 향하듯이, 국가 권력의 피해자들은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던 정직한 사람들이었다. 위대한 소비에트가 불세출의 영광을 발휘했던 세월이었다.

 

 6.25 전쟁 중 전사하던 우리의 용감한 군인 아저씨들이 마지막으로 외치던 말이 ‘빽’이라고 회자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빽이 있었다면 전쟁터에 징집되지도 않았고, 총 맞아 죽을 일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뱉은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나 자신을 졸로 본 사회에 대한 회환이었을 말 같다는 느낌이 든다. 다만 한 조각이라도  진실을 품고 있는 말이었으니 세상에 오랫동안 살아 돌아다녔다. 지금도 엄연히 분리된 3권의 고위직들이나, 방구깨나 뀐다는 유력자들이나 그들의 아들들은 체크 앤 밸란스를 유지하여 너도나도 져야 할 국방의 의무를 한통속으로 회피한 경우가 많다. 무슨 병인지 젊은 시절 한때 군대를 피해 병마에 시달리다가도 잠깐 뒤면 건강해지는 비결은 3권 통합을 이뤄 총화단결한 비법 덕이리라.

 

 훈련소에서 불렀던 군가 속에는 충성 같은 이념의 말들이 잔뜩 들어있다. 내 한 몸 죽어 나라가 선다면, 불꽃 같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지겠다는 결의가 가득 있다. 그것은 거짓말이다. 우리는 피할 수 없어 군대를 갔다. 만약 전쟁이 터졌다면 우리는 입으로만 떠들며 젊은이를 사지로 모는 늙은이들을 위해 죽었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전쟁을 겪지 않았다.

 

 솔제니친은 이 소설에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기만을 희망하는 소망도 그리 길지 않은 수형 동안에 잊어버리게끔 만들 정도로 하루하루 살아내기에 버거운 일상을 단 하루만 소개한다. 국가권력의 비정함, 부패도 목놓아 강조하지 않는다. 수형생활을 하는 죄수들의 단 하루를 건조하게 소개하는 것으로 우리는 당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슈호프를 따라 하루를 보내다 잊은 듯했던 논산훈련소 기억이 떠올랐다. 슈호프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누구나 자기의 고통이 제일 절실한 기억이다. 나에게는 수용소와 가장 비슷한 경험이 군대의 기억이다. 슈호프의 고통이 비록 절대적으로 비참하여 듣는 사람이 슈호프와 비교한 나를 욕하더라도 어쩔 수가 없다.

 

 국가와 민족을 이야기하면서 자기의 배를 채우는 이들은 2022년에도 세계 여기저기에 있다. 우리라고 다를 것이라는 확신은 금물이다.

 

추신 : 자대 생활할 때, 주일 한낮에 북한의 공습경보를 듣고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는 결의를 그때 나는 그래도 했었다. 다행히 이웅평이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사건이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친애하는 나의 검사님 | 기본 카테고리 2022-02-07 15:54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5875546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정명원 저
한겨레출판 | 2021년 07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친애하는 검사님들이 많으니, 세상이 아직 굴러가는 거지요?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친애하는 나의 검사님(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정명원 지음)

 

 친애하는 나의 검사님을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검사님은 아이들과 집에서 체포 놀이를 즐기신다고 하지만, 제가 그 놀이를 검사님과 같이 하는 것은 선뜻 내키지 않습니다. 검사님과 말을 섞어봐야 검사님의 인지 범위가 넓어지는 것에 반비례하여 나의 행동반경이 좁아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어서 그렇겠지요. 그렇지만 검사님이 동료들과 나누는 얘기, 검사님의 고객들(?)과 겪는 일, 검사님의 직업이 만드는 가정의 풍경은 듣고 싶었습니다. 기자회견장에서 수사내용을 브리핑하는 각진 단어들이 진실을 강요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듣기만 하는데 검사님의 모습이 그려지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제 주변에 아는 검사님이 있었지만, 그들은 자기 직업에 대하여 애살맞은 얘기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검사님은 가지고 계신 능력이 그들은 없었겠지요. 그래서 검사님의 글이 반가웠습니다.

 

 아웃사이드, 비주류라는 말을 자주 들었던 저로서는 ‘체질적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 복잡한 곳, 핫한 곳, 관심이 집중되는 곳, 가장 높고 가장 비싼 곳을 불편하게 느끼고, 그 불편함을 외면하거나 무시하지 않겠다는 다소간의 고집’을 가지신 검사님이 좋습니다. 검사님의 주변에는 아마도 그런 분들이 많으시겠지요. 유유상종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저도 젊은 시절, ‘원의 중심’으로 들어가려고 애를 쓰다가 ‘스스로 찾은 외곽의 어느 지점에 머무’는 결정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아쉬움을 표하는 동료, 선배들이 진심이었길 바랐지만, 그것이 경쟁자의 탈락으로 생각했던들 뭐 그리 중요했겠습니까. 자기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절뚝거리며 걷지 않게 된 것에 만족합니다. 뭐라고 설명을 할 수 없던 아쉬움을 친애하는 검사님이 알게 해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아파트를 건설하는 일을 한때 했던 저로서는 민원이 많아졌다는 것을 보며 변화를 감지했습니다. 떼법이 우선한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동료들과 상사들의 말에 동조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민원을 해결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지출하기 싫어하는 사업주를 설득하여 민원인들이 만족하고 돌아서는 모습을 기억합니다. 아마도 이런 면에선 제가 친애하는 검사님보다는 능력이 조금 더 나은 듯합니다. 하지만 해결해 줄 수 없는 민원을 가진 민원인에 대한 검사님의 당혹감 혹은 무력감을 친애하시는 것에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제가 해결한 민원인들과 아직도 전화할 수 있고, 시간이 허락하면 다시 만날 수도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검사님이 부러운 것은 왜일까요.

 

 저는 세상에 대고 말을 하면 세상이 응답을 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사장에게 결정을 번복하시는 것이 시간비용을 줄이고, 사업비도 줄일 수 있다고 말을 하면 “오냐, 그러마”라고 답을 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안 돼” 응답이 오면 줄기차게 가서 요구했습니다. ‘당신의 시간과 당신의 돈을 내가 아껴주는데, 왜 안 받죠?’ 속으로 생각하면서 말을 이어갔습니다. 주변에서는 제가 사장을 들이받는다고 오해를 했습니다. ‘저들이 나를 모함하는구나’ 생각하면서 그들과 논쟁을 하였습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사장이 우스운 말을 하셔서 웃었더니, 그 후 자연스럽게 퇴사를 강요당했습니다. 아내의 반대로 자진해서 퇴사를 할 수가 없었는데, 다행히 아내에게 퇴사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수월해졌습니다. 검사님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는 없지만) 하기 싫은 말은 하지 않을 자유와 (웃긴다고 해서 그때마다 웃을 수는 없지만) 웃기지 않은 말에는 웃지 않’을 자유를 꿈꾸신다고 하셨는데 정말 현명하십니다. 작위와 부작위를 설명할 때에는 저의 경험과 검사님의 자유를 대비해서 설명하면 저와 같은 우둔한 사람이 줄어들 것으로 희망합니다.

 

 친애하는 검사님은 국숫집을 하시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에는 아직 국수 마는 실력이 많이 부족하시다고 고백하시지만,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잘하실 것 같으니, 법률 서비스를 주업으로 하시고, 의뢰인에게 국수를 참이나, 한끼 식사로 대접하시면 국수 마는 솜씨도 늘고, 의뢰인도 다소 늘지 않을까 짐작됩니다. 만에 하나, 법률 서비스가 부족한 것으로 판정이 나면 그때 연습했던 솜씨로 국숫집을 하시면 될 듯도 합니다. 부디 꿈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친애하는 검사님.

검사님을 알게 되어 무척이나 반가웠다는 말씀을 다시 전하면서 이만 글을 맺을까 합니다. 다음에도 다시 책으로 만나면 좋겠습니다. 이만 총총…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1 2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