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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배우자” 당선前 MB 발언 회자… “몰락도 배워야 하나” 비아냥 | 리더십 - 뭐라고들 하나? 2009-11-30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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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배우자” 당선前 MB 발언 회자… “몰락도 배워야 하나” 비아냥
[쿠키뉴스] 2009년 11월 30일(월) 오후 05:30 
 
 
[쿠키 정치] 세계 금융시장이 ‘두바이 쇼크’로 충격을 받은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의 과거 당선자 시절 ‘두바이 발언’이 새삼 회자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선 전부터 두바이를 예찬했다. 2007년 4월에는 직접 두바이를 방문해 “제2의 중동 붐을 일으켜야 한다”고 역설했고, 대선 유세 때는 “두바이 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과 기업인 간의 1대1 직접 통화도 두바이를 벤치마킹한 아이디어다.

이 대통령의 두바이에 대한 애정은 당선자 시절에도 계속됐다. 데이비드 엘든 두바이 국제금융센터기구 회장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위원장에 임명했고, 항만 주변에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두바이형 포트 비즈니스 밸리 정책도 발표했다.

또한, 모하메드 알 샤이바니 두바이 투자공사 사장을 만나 20억 달러 규모의 ‘한·두바이 펀드’ 설립을 추진하기도 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1970년대 후반 두바이에 갔을 때와는 세상이 다 바뀌어 지금은 한국이 두바이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한국에 많은 투자를 해 달라”며 “두바이는 21세기 지구에서 계속 놀라운 일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칭찬했다.

이에 샤이바니 사장은 “이 당선자는 두바이의 진정한 친구”라며 한·두바이 무역협정 체결을 제안하며 화답했다.

이 같은 이 대통령의 과거 두바이 발언이 최근 두바이 쇼크 이후 다시 전해지면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네티즌들을 아연실색케 하고 있다. ‘두바이 몰락에서 한 수 배우라’, ‘두바이를 보고 깨달아야 한다“ 등의 의견이 올라오고 있다.

한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국영 투자회사인 두바이월드는 25일 채무 지불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했다. 두바이월드의 이번 선언은 사실상 두바이 정부의 모라토리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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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로 간 현존 유일의 조선 별궁 | - 조선시대 2009-11-30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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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로 간 현존 유일의 조선 별궁
조선 왕실의 문화재, 이제 후학들의 배움터가 된다
09.11.28 14:00 ㅣ최종 업데이트 09.11.28 14:00 송영대 (greenyds)
  
▲ 안국동별궁 준공식 지난 25일 충남 부여군의 한국전통문화학교에서 열린 안국동별궁 준공식의 모습
ⓒ 송영대
안국동별궁

지난 25일 충남 부여군의 한국전통문화학교에서는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조선의 유일한 별궁인 안국동별궁이 한국전통문화학교로 이전하여 복원하였고, 그 준공식이 열린 것이다. 이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땅도 질퍽거렸지만 이건무 문화재청장, 배기동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 김무환 부여군수, 이진삼 국회의원과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직원 및 학생들을 비롯하여 약 300여 명의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안국동별궁은 조선 후기 고종 17년, 즉 1880년에 왕궁의 가례(嘉禮)를 거행하기 위해 지어진 별궁이다. 여기에서 가례란 왕실의 큰 경사를 뜻하는 말로서, 왕실의 혼례나 책봉 등의 의식예법을 말한다. 조선 후기에는 이러한 가례를 정리하여 <가례도감의궤>라는 책으로 편찬하였다. 안국동별궁은 실제 순종의 가례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 안국동별궁이 한국전통문화학교로 오기까지엔 여러 사연이 있었다. 조선 왕실에 있어선 소중한 장소였지만, 국가의 멸망과 왕실의 몰락, 그리고 후손들의 무지로 인하여 그 가치가 퇴색되었고 본래의 자취를 잃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 준공으로 인하여 앞으로는 조선 왕실의 소중한 문화재로서 지속적인 보존과 가례가 이뤄지는 장소 등의 역할을 다 할 것으로 기대된다.

 

안국동별궁은 3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경연당과 현광루, 그리고 정화당이다. 이 중에서도 이번에 준공된 것은 경연당과 현광루이다. 이런 안국동별궁이 부여로 이전하기까지는 깊은 사연이 있다.

 

조선 유일의 별궁이 부여로 오기까지

 

  
▲ 안국동별궁의 현광루 현존하는 유일한 별궁의 한 건물인 현광루의 모습. 충남 부여의 한국전통문화학교로 이전하여 복원되었다
ⓒ 송영대
안국동별궁

안국동별궁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에 민간에 매각되었다. 그래서 서울 풍문여고 건물로 사용되다가, 1965년 경연당과 현광루가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한양컨트리클럽으로 옮겨졌고, 이후 그에 대한 소식은 감춰져, 소위 사라진 궁궐로 알려져 왔었다.

 

그러던 2006년 2월 1일 YTN에서는 그동안 잊혔던 안국동별궁에 대한 보도를 하게 된다. 보도에 따르면 1960년대 이후로 그 행방을 알 수 없이 어디론가 사라진 안국동별궁이 경기도의 한 골프장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당시 발견된 안국동별궁의 모습은 서울시 600년사 등 문헌에서 나타나는 모습과 많이 흡사하다고 보도 되었다.

 

건물을 받치고 있는 각각 6개의 돌기둥과 나무기둥, 그리고 30여개의 나무 난간과 지붕 위에 있는 용머리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을 그 근거로 삼았었다. 또한 <고종실록> 등의 문헌에서 안국동별궁은 현광루, 경연당, 정화당으로 구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현광루라는 현판이 그대로 걸려있었다.

 

하지만 YTN의 보도 당시 안국동별궁은 창고로 쓰이고 있음이 확인되었고, 이는 다른 언론들도 앞다투어 보도하면서 파장이 일게 되었다. 잃어버린 궁궐의 일부가 발견되었다는 기쁨과 동시에 문화재가 훼손되고 방치되었다는 소식은 국민들의 공분을 사게 되었다.

 

이렇게 현광루와 경연당이 발견됨으로 인하여 또 다른 안국동별궁의 건물인 정화당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고 2월 3일, YTN은 정화당의 행방이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한 개인 별장으로 옮겨짐을 확인하고 보도하였다. 이 정화당은 풍문여고의 건물로 쓰이다가 풍문여고가 해체되고 개인 별장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았다.

 

이듬해인 2007년, 안국동별궁을 소유하던 경기도 고양시의 한양컨트리클럽에서는 별궁의 온전한 보전을 위하여 경연당과 현광루를 문화재청에 기증하게 되었다. 문화재청에서는 이 안국동별궁의 보전을 위하여 고심하다가 한국전통문화학교로 이전하여 복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하여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 동안 31억의 예산을 들이고, 철저한 고증을 통하여 안국동별궁을 복원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결실을 이번 준공식에서 그대로 보여주었다.

 

안국동별궁은 앞으로 어떻게 활용되어야 할 것인가

 

  
▲ 안국동별궁 경연당 현광루와 함께 한국전통문화학교로 이전 복원된 건물. 앞으로는 <가례도감의궤>를 바탕으로 조선시대 왕실의 가례가 복원될 것으로 기대된다
ⓒ 송영대
안국동별궁

안국동별궁의 이전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점이 많다. 일단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데 크게 외적 측면과 내적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단 외적 측면으론 이 안국동별궁의 건축학적 가치이다. 안국동별궁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왕실 건축물 중 하나로서 그 당시 건축양식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안국동별굴을 이전하면서 이 건물을 축조하는데 쓰였던 부재나 조립 방법 등을 모두 기록들로 남겼는데 이 또한 차후 전통 건축물의 이전 복원이나 연구에 있어서 큰 참고가 될 수 있다.

 

또한 한국전통문화학교 내에는 전통건축학과와 전통조경학과 등이 있다. 전통건축학과로서는 훌륭한 실습시설을 갖추게 된 셈으로서, 캠퍼스 내에서 실습을 할 때 교재로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전통조경학과로서는 현재 안국동별궁의 주변 조경을 꾸미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여기에 참여하여 조선시대 정원을 복원하고 조성하는 데 일조하면서 실습을 행할 수 있다.

 

그리고 내적 측면으로는 안국동별궁에서 있었던 무형문화재를 복원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안국동별궁에서는 조선왕실에서 2차례의 가례를 행한 바가 있으며, 이를 모두 <가례도감의궤>를 통하여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서 남겨놓았다. 이렇게 문헌과 장소가 동시에 남아 있다는 점은 그에 따른 구체적인 복원이 가능하다는 의미이기고 하다.

 

즉 이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검토를 거쳐 무형문화재의 복원이라는 뜻 깊은 자산으로 남길 수 있다. 부여군으로서도 현재 관광자원을 백제와 관련된 것으로 다양하게 개발해 놓았는데, 이와는 별도로 조선 왕실의 행사를 정기적으로 거행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이점으로 작용한다. 앞으로 이곳에서 정기적으로 전통혼례를 올리거나 조선의 행사들을 복원하여 시행하는 등 전통문화의 보급 및 교육장소로 적극적으로 활용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현실적인 여건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안국동별궁의 완벽한 재현을 위해서는 정화당의 이전 복원 또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본디 안국동별궁이 3채의 건물로 구성되었음을 상기해 본다면 현재 2채만이 남아있다는 점은 절반의 복원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안국동별궁의 활용과 보전에 대해 문화재청과 당국에서 깊은 관심과 애정을 두어, 우리 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에 적극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5일 충남 부여의 한국전통문화학교에서 열린 안국동별궁 준공식과 안국동별궁의 내력 및 앞으로의 기대에 대해 서술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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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과 재기 기로에 선 두바이 | 리더십 - 뭐라고들 하나? 2009-11-29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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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몰락과 재기 기로에 선 두바이
[연합뉴스] 2009년 11월 29일(일) 오전 07:45 
사태 진앙지 두바이월드 본사 적막감만

초호화 호텔 체크인 행렬 대조



(두바이=연합뉴스) 강종구 특파원 = 28일(현지시간) 오후 두바이 `팜 주메이라'.

`세계 최대 인공 섬', `세계 8대 불가사의'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 이 섬에 들어서자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임대 중(Now Leasing)'이라는 대형 광고 현수막이 아파트 곳곳에 걸려 있는 모습이었다.

이 아파트는 1년 임대 계약시 1년 거주 뒤에도 3개월을 공짜로 더 살 수 있는 혜택을 내걸고 지난 4월부터 대대적인 마케팅을 벌였지만 아직도 세입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무 상환을 위한 자금 확보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는 두바이의 한 단면이다.

`사막 위의 기적'으로 불리며 세계를 놀라게 했던 두바이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말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정난에 시달리던 두바이는 결국 지난 25일 채무상환을 6개월간 유예해 달라고 채권단에 요청했다.

이번 사태의 중심에는 두바이 정부 소유의 최대 지주회사 두바이월드가 있다.

두바이월드의 부채 규모는 590억달러(한화 68조원)로 두바이 정부와 정부 소유 기업의 전체 부채 규모 800억달러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당장 다음달 14일에는 자회사 나크힐의 이슬람 채권 35억달러의 만기가 예정돼 있는 등 내년 5월까지 상환 또는 재융자해야 하는 부채 규모도 56억8천만달러에 이른다.

이번 사태의 진앙지인 두바이월드의 본사는 이슬람 명절 `이드 알-아드하' 명절을 맞아 지난 26일부터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아 적막감만 감돌았다.

셰이크 칼리파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과 셰이크 모하메드 두바이 통치자의 초상화 아래 안내 데스크에 앉아 있는 경비원만이 유일한 근무자였다.

최근 분위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나도 채무 상환 유예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접했다. 우리 같은 경비원이 회사의 정확한 정황을 알기는 어렵지 않느냐"고 답했다.

두바이월드 본사 앞 두바이국제금융센터(DIFC) 역시 세계 각국에서 모인 금융인들로 분주하기만 했던 평소와는 달리 평온한 분위기였다.

파리 개선문을 연상케 하는 본관 `더 게이트' 앞의 증시 전광판만이 휴장 전 마지막 거래일이었던 지난 25일 주가를 종목별로 바쁘게 화면에 띄울 뿐이었다.

두바이 종합주가지수(DFM)는 연초 대비 40%가 증가하며 현재 2,070선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2007년에 6,253.10까지 치솟았던 점을 감안하면 2년만에 3분의1 수준으로 주저앉아 있는 형국이다.

한때 중동 이웃국가는 물론 전 세계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두바이가 빚 독촉에 쫓기는 신세로 전락한 것은 과도한 외국 자본 차입과 과잉 투자에 따른 결과라는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세계 최대 인공 섬, 세계 최고 건물(부르즈두바이), 세계 최대 테마파크(두바이랜드) 등 상상을 초월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는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대형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두바이의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외국 투자자본이 지속적으로 유입돼야만 지탱이 가능한 경제구조 속에서 지난해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는 두바이에 직격탄을 날렸다.

전 세계 금융권의 신용 경색으로 돈줄이 막힌 두바이로서는 야심차게 진행하던 대규모 프로젝트를 잇따라 보류해야만 했다.

UAE 전체적으로 400개의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 총 3천억 규모의 사업이 멈춰섰다. 이중 대다수는 두바이에서 진행되던 프로젝트였다.

두바이 주재 한국 건설업체의 한 간부는 "UAE 수도 아부다비와는 달리 두바이는 석유 자원이 거의 없어 생존전략으로 건설 프로젝트에 집착하게 된 것 같다"며 "고유가 때 중동 오일머니가 대거 유입되다 보니 두바이로서는 충분히 판을 계속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두바이는 이대로 몰락하고 말 것인가.

팜 주메이라 가장 끝에 위치한 아틀란티스호텔의 이날 풍경을 보면 두바이의 미래를 부정적으로만 보긴 어려울 듯 싶다.

불황으로 인해 특별 할인 행사를 벌이고 있는 현재에도 이 호텔의 가장 싼 객실은 1천680디르함(한화 60만원)에 이르지만 투숙객들의 체크인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연휴를 맞아 중동 인접국에서 휴가를 온 관광객이 넘치면서 주차장과 호텔을 잇는 셔틀버스도 쉴 새 없이 운행하는 모습이었다.

단편적인 예에 불과하지만 금융, 물류, 관광 분야에서 두바이는 여전히 강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두바이는 화약고라 불리는 중동의 한복판에서 안정된 치안을 유지하면서 각 분야의 허브로서 인프라를 공고하게 구축해 놓았다. 이는 이란,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주변국과의 경쟁에서 월등한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번 위기만 넘기면 어느 국가보다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고 강변하는 두바이 정부 관리들의 말을 과장된 것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아틀란티스 호텔 셔틀버스에서 만난 두바이 태생 시민은 "걸프지역에서도 변방에 불과했던 우리가 현재 위치까지 올 수 있게 만든 힘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라며 "두바이는 이번 위기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구 150만명의 90%가 외국인인 두바이의 경우 외환위기를 극복한 한국과 같은 국민적 단결력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두바이에게는 그래도 기댈 수 있는 언덕, 아부다비가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마침 UAE 연방정부의 수도 아부다비는 이날 두바이에 대한 지원의 뜻을 나타냈다.

아부다비 정부 관계자는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무조건적 지원은 지양할 것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두바이가 내건 약속들을 검토한 뒤 사안별로 접근해 언제 어디서 두바이의 기업들을 도울 것인지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두바이 주요 거리에는 UAE 건국기념일(12월 2일)을 앞두고 셰이크 모하메드의 얼굴이 새겨진 배너가 일제히 걸렸다.

그가 이끄는 두바이호가 격랑의 파고를 헤치고 순항할 수 있을지, 결국 좌초의 파국을 겪게 될지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iny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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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로 판명난 사막의 신화 | 리더십 - 뭐라고들 하나? 2009-11-29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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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로 판명난 사막의 신화…75억원 저택 “반값에 사세요”
[한겨레신문] 2009년 11월 29일(일) 오후 07:20 
 
[한겨레] 세계 최대 인공섬 팜 주메이라, 눈에 띄는 건 ‘세 놓음’ 현수막

호화 저택들 불꺼진 곳 더 많아…빚 얻어 부동산개발 성장 ‘파탄’

지난 28일(현지시각) 저녁 6시, 공항을 나서니 사방이 공사판이다. 짓다 만 빌딩, 주택, 도로 어디 하나 가지런히 정리된 곳이 없다. 공항에서 자동차로 약 35분 떨어진 팜 주메이라는 바다 밑 터널을 지나야 닿을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두바이가 ‘세계 8대 불가사의’로 선전해온 야자수잎 모양의 팜 주메이라는 ‘세계 최대 인공섬’으로 널리 홍보됐다. 여기서 가장 먼저 기자를 반긴 건 “집 세놨습니다”란 큰 펼침막이었다.

주변의 화려한 저택들처럼 마당이 곧장 바다로 통하는 A11번지. 소유주인 독일인은 지난해 2200만디르함(약 74억8000만원)까지 올랐던 이 저택을 1500만디르함에 넘기겠다고 흥정했다. 두바이에서 부동산 사업을 하는 강창희(47)씨는 “1350만디르함까지는 깎을 수 있을 것”이라며 발길을 돌렸다.

팜 주메이라의 밤 풍경은 황량했다. 불이 켜져 있는 집은 다섯 채 가운데 두 채 남짓뿐이었다. 이곳은 지난주 590억달러의 채무지급 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한 두바이 국영기업 두바이월드의 주력기업인 나킬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부동산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페르시아만 밖에서 꿔온 돈으로 크레인과 불도저를 굴려 사막에 ‘중동의 뉴욕’을 세우려던 두바이의 계획은 갑자기 멈춰섰다. 부동산 활황으로 지난 5년 동안 연평균 15%의 고성장을 구가해온 두바이의 하늘로 솟구치던 수많은 건물들은 입주자가 없거나 공사가 중단돼 어둠 속 콘크리트 알몸으로 서 있다. 아부다비에서 대규모 주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선진엔지니어링의 김지웅 두바이지사장은 “세계 최대, 세계 최고의 자극적인 부동산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두바이가 빨리 성공할 수 있었지만, 금융위기 여파로 외부 자금 유입이 끊기면서 쉽게 무너졌다”고 말했다. 인구가 132만명에 불과한 두바이는 외부에서 자본과 노동력의 유입이 끊기면 도시가 더는 성장하기 어려운 태생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팜 주메이라보다 큰 규모의 워터프런트, 더월드, 신공항 프로젝트 등이 이미 중단됐고, 올해 새롭게 발주된 부동산 프로젝트는 하나도 없다. 경제위기 이후 아랍에미리트에서 중단된 400여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 대부분이 두바이에서 진행되던 것들이다.

자본 유입 중단은 부동산값 하락으로 이어지고, 다시 자본 유입을 가로막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영국계 최대 부동산회사인 햄프턴의 장혜진씨는 “신규 자본 공급이 없어 새로운 프로젝트는 아예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모라토리엄 선언은 그나마 생기를 되찾는 듯하던 부동산시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두바이/류이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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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망과는 달리 외신들 잇단 ‘제2의 금융위기’ 경고 | 리더십 - 뭐라고들 하나? 2009-11-29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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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두바이 사태 한국 영향 제한적” 전망 내놓아

   

2009-11-29 17:55 CBS경제부 정영철 기자

정부는 29일 두바이 국영기업인 두바이월드의 채무상환 유예 사태가 우리나라 경제에 미칠 영향은 극히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하지만 외신들이 ‘제2의 금융위기’를 경고한 것처럼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 국내외 금융.외환시장을 실시간 점검하고 필요한 대비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이날 오후 권혁세 금융위 부위원장 주재로 비상금융합동대책반 회의를 열고 현 상황을 점검하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권 부위원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두바이 채권(익스포저) 규모가 크지 않은데다 주요국과 비교해 금융시장과 실물경기가 호조를 보이고 있으며 외국인 투자자의 인식도 개선됨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문제가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처럼 전면전인 글로벌 시스템 리스크(위험)로 확대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라고 밝혔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도 "뉴욕 증시 등을 볼 때 전체적으로 낙폭이 크지 않아 두바이 사태가 세계 경제 및 금융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특히 한국의 경우 영향이 극히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재정부는 두바이에 진출한 우리 건설업체나 금융기관이 이번 사태로 받지 못할 돈은 1억달러에 미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수도인 아부다비가 두바이를 도와줄 경우 사태가 조기에 수습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분위기도 있다.

그렇지만 정부는 낙관만 할 상황도 아니라고 보고, 사태 확산에 대비한 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권 부위원장은 "세계 경기의 개선 추세가 지속할지 여전히 불확실한 가운데 국내외 금융시장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만큼 이번 사태가 국제 금융 불안으로 확산할 가능성에도 예의주시하고 체계적으로 대비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은 금융위.금감원 중심의 비상금융통합상황실, 민간 금융전문가와 구축한 기존 핫라인을 통해 국내외 금융시장 동향을 정밀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또 국제신용평가사, 해외 투자은행(IB)과도 접촉해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해외 시각도 살펴보기로 했다.

재정부는 국제금융국과 경제정책국을 중심으로 외환과 국내 실물 시장의 동향을 수시로 점검하고 있다.

아울러 재정부와 금융위, 한국은행 등은 두바이 사태의 진행 상황을 보면서 필요하면 관계기관 회의를 열어 시장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국내 금융기관이 보유한 두바이 채권은 8천 800만달러이며, 국내 은행의 해외차입금 중 중동계 자금은 4억달러로 전체 차입금의 0.3% 정도이다.

한편, 외신들은 이번 두바이발(發) 쇼크가 신흥시장 전반의 충격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잇따라 경고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 보고서는 두바이 사태에 대해 “꼬리 위험(tail risk)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두바이 사태가 심각한 국가부도 사태로 악화될 수 있다”며“지난 2000년대초 아르헨티나와 1990년말 러시아에서 각각 시작된 신흥시장 전반의 금융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더 타임스도 두바이 사태가 ‘제2 금융위기’로 확산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제기하면서 영국 은행들이 UAE에 가장 많은 돈을 빌려주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영국 정부의 구제를 받은 로열 뱅크 오브 스코틀랜드(RBS)가 두바이 월드에 최대 23억달러의 여신을 주선했다고 밝혔다.

CNN 머니는 미국 은행들도 두바이 사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며 전했다.

CNN은 CMA 데이터 디비젼의 분석을 인용, “두바이의 채무불이행(디폴트) 확률이 35.82%로 나타났다”며 “씨티그룹이 공개하길 거부했으나 월가 은행들 가운데 두바이에 가장 많이 물려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JP모건은 씨티가 물린 돈이 19억달러 가량인 것으로 분석했다.

steel@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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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사태는 과도한 부채 국가에 대한 경고" | 리더십 - 뭐라고들 하나? 2009-11-2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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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프레시안 www.pressian.com>

 

"두바이 사태는 과도한 부채 국가에 대한 경고"

NYT "불확실성이 물결처럼 퍼지고 있다"

기사입력 2009-11-29 오후 1:31:10

 

두바이 정부 부채의 80%를 차지하는 최대 국영기업 두바이월드의 채무지급 유예(모라토리엄) 선언으로 '두바이 디폴트(채무불이행) 공포'가 계속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두바이의 디폴트가 현실화될 경우 제2의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될 것이라며 '패닉'에 휩싸이는 반응도 나온다.

이에 대해 2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Dubai Debt Woes Raise Fear of Wider Problem'이라는 분석 기사를 통해 "두바이의 디폴트가 금융위기를 초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도한 부채를 안고 있는 국가나 기관에 대해 투자자들의 신뢰가 전반적인 타격을 받을 가능성은 있다"면서 "세계 시장에서 이러한 불안전성이 반영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 두바이의 통치자 셰이크 모하메드의 얼굴이 새겨진 아랍에미리트(UAE) 건국기념일 배너가 28일(현지시간) 에미리트타워 근처에서 휘날리고 있다. 에미리트타워의 사진 오른쪽 건물 47층에는 두바이 금융쇼크의 진원지 두바이월드 본사가 입주해 있다. ⓒ연합뉴스


"아부다비의 두바이 구제 가능성에 의문"

투자자들의 신뢰가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근거에 대해 <NYT>는 "채권자와 시장관계자들은 두바이가 속한 아랍에미레이트연합(UAE)의 산유부국 아부다비가 두바이를 구제해줄 것이라는 전제 위해 행동했다"면서 "하지만 이러한 전제가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두바이의 디폴트 가능성이 커지자 불확실성이 시장에 물결처럼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날 중동의 <알자지라> 방송은 아부다비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아부다비가 두바이의 모든 채무를 인수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사안별로 선별적인 구제금융이 이뤄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두바이의 기관들이 모두 정부 기관이 아니며 일부는 상업기관이기 때문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선별과 선택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부다비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글로벌 금융위기의 최악 국면이 끝났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에 최악의 시나리오가 다시 전개될 우려는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두바이는 '탄광 속의 카나리아'가 될 가능성"

<NYT>는 "베어스턴스가 과도한 레버리지 투자를 일삼은 투자은행들의 연쇄파산의 전조였던 것처럼, 두바이는 과도한 부채를 안고 있는 국가들에게 '탄광 속의 카나리아'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NYT>에 따르면, 신흥시장은 물론, 일본과 미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들의 부채가 글로벌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과정에서 급격히 늘었다. 다른 나라와 기관들에게도 숨겨진 부채 폭탄이 있을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뉴욕증시의 다우존스 지수는 27일(현지시간) 1.5% 가까이 급락했다.

이날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시장의 우려를 증폭시키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현행 두바이 사태는 1998년 러시아, 2001년 아르헨티나 디폴트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두바이에서 디폴트가 발생할 경우 신흥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이 일시에 차단될 수 있다"며 "글로벌 금융위기 회복에 중요한 걸림돌이 될 것"이라 경고했다.

하지만 동유럽 금융위기가 잠재워진 것처럼 두바이 사태가 최악의 시나리오처럼 전개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두바이의 전체 부채 규모는 800억 달러인데 올해 초 국가 디폴트 우려가 집중됐던 러시아, 우크라이나, 라트비아 등 동유럽 국가들의 당시 국가 부채 규모 1조7000억달러와 비교해보면 미미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또한 국제결제은행(BIS)의 통계에 따르면, 두바이를 포함해 UAE에 대한 외국은행들의 익스포저는 1300억 달러에 불과하다. 영국이 510억 달러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미국의 은행들은 130억 달러의 채권을 갖고 있다. 사실상 두바이월드의 최대채권자들은 두바이와 아부다비의 국내 은행들이라는 것이다.

이때문에 두바이 사태는 그야말로 세계 시장 전체로 볼 때는 '잔물결 효과'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승선 기자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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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쇼크, 너무 겁냈나? | 리더십 - 뭐라고들 하나? 2009-11-29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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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쇼크, 너무 겁냈나?
[머니투데이] 2009년 11월 29일(일) 오후 03:37 
 
[머니투데이 김명룡기자][잠재적 악재해결 과정…간접 악영향 이어질 수도]두바이발 금융쇼크의 우려로 주가가 급락한 가운데 이번 위기는 해결 가능한 악재로 지나친 두려움은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7일(현지시간) 유럽 증권시장이 오름세로 돌아섬에 따라 국내 증시도 진정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29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 27일 코스피지수는 전날에 비해 4.7% 급락했다. 이에비해 지난 27일 런던증시는 전날보다 0.99%, 독일과 프랑스 증시는 각가 1.27%와 1.1% 올랐다. 이들 세 나라는 두바이의 외채 880억달러 가운데 721억4000만달러를 빌려줬다. 두바이발 모라토리엄(부채상환연기) 사태가 진정국면에 접어든 셈이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라는 서브프라임 사태에서도 확인됐듯 금융위기는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와 통화정책을 통해 해결 가능하다"며 "이번 위기는 지난 해와 같은 충격이 아닌 잠재된 악재를 걷어내는 과정에서의 진통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 급락은 과도매도 국면이라는 평가다. 경기 및 기업이익의 둔화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이는 회복속도가 둔화되고 있다는 문제이지 경기침체 등 극단적인 상황을 논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주된 이유다.

강 연구원은 "단기 급락으로 인해 연말 배당수익률이 높아진 점과 연기금 등 밸류투자자에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좋은 편입기회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에따라 가격매력 및 경쟁력 우위가 돋보이는 IT(전기전자), 자동차에 대한 관심을 높여한다는 것이 우리투자증권의 분석이다.

다만, 산타 랠리 또는 연말 미국소비 특수와 같이 시장이 기대했던 몇 가지 긍정적 신호들이 사라지거나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연말 장세에 대한 눈높이를 낮출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올 들어 한국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주식을 매수했던 유럽계 자금이 이번 사건으로 인해 매수세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국내 증시에 추가적인 압력이 될 수 있어 시장의 안정을 확인한 이후 접근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는 분석이다.

이승우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번 두바이 이슈로 코스피가 120일선을 하향 돌파하면서 새로운 지지선 구축이 쉽지 않은 상태"라며 "외국인 매수가 줄어들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수급 여건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애널리스트는 "두바이월드에 대한 직접적인 노출이 크지 않고 우리증시에서 중동계 자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낮다는 일반적이고 긍정적인 해석은 가능하다"면서도 "우회적인 자금 회수 가능성이나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주요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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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비와 계비, 폐비까지 모두 모여 있네 | - 조선시대 2009-11-29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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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비와 계비, 폐비까지 모두 모여 있네
[서오릉 답사] 숙종과 그의 부인들을 만나다
09.11.28 18:06 ㅣ최종 업데이트 09.11.28 19:06 박금옥 (salja88)

조선조 19대 왕인 숙종의 제 1계비 인현왕후와 희빈 장씨의 얽히고설킨 내막을, 김만중의 '사씨남정기'를 읽으면서 야사로 먼저 접했다.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철'이라는 구전 가요를 통해 미나리는 인현왕후요 장다리는 장희빈을 가리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뿐이랴 숙종과 그의 부인들의 이야기는 사극에서도 종종 사용되는 흥미진진한 소재거리였다. 정사와 야사를 통해 후대사람들에게 상상력을 맘껏 펼칠 수 있게 한 숙종과 그의 부인들, 그리고 희빈 장씨의 무덤이 있는 곳이 서오릉이다.

 

이제 조선 왕릉은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있어 사람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왔다. 능은 얼핏 비슷해 보이는 무덤들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아는 만큼' 보인다. 요즘은 능에 상주해 있는 해설사를 통해서도 능의 조성 역사와 무덤의 주인공들이 관련되어 있던 시대를 들을 수 있어, 배우는 재미도 쏠쏠하다. 현장에서 그 시대의 역사와 삶을 읽을 수 있는 좋은 유물인 셈이다.

 

  
▲ 서오릉 조선 왕릉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는 명패
ⓒ 박금옥
서오릉

 

서오릉은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에 위치한다. 서오릉은 그 자체가 능의 명칭이 아니라 서쪽에 다섯 개의 능이 있다는 뜻이다. 그곳에는 경릉, 창릉, 익릉, 명릉, 홍릉의 5개 능과 순창원, 수경원이 있고 대빈묘가 있다. 숙종과 관련되어 있는 능이 명릉, 익릉, 대빈묘다.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에는 3호선 녹번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야 한다. 북부 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가용을 이용해 의정부 쪽으로 넘어가면 훨씬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능 입구에 있는 주차장을 가운데 두고 오른 쪽이 명릉이다. 예전에는 소풍을 간 아이들이 능역까지 들어가 사초지를 뒹굴던 기억이 있는데 언제부터인지 보호차원에서 정자각까지만 들어갈 수 있지 능역은 통제구역이 되어 있다. 그곳까지 관람하려면 관리실에 해설을 요청하거나, 해설사를 동반한 단체는 미리 양해를 구해놓은 후에 관람할 수 있다. 명릉은 능제의 역사현장을 직접 체험하는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라는 의미로 개방이 되어 있어서 능역까지 돌아볼 수 있었다.

 

명릉은 조선조 19대 왕 숙종과 제 1계비인 인현왕후, 제 2계비인 인원왕후를 모신 능이다. 숙종과 인현왕후의 묘는 쌍릉으로 나란히 같이 있다. 합장릉은 봉분이 하나이지만 쌍릉은 같은 언덕에 봉분이 둘인 것이다. 조금 뒤편 숙종 능 오른 쪽 위 언덕에 동원이강(同原異岡)의 배치로 제2계비인 인원왕후의 단릉이 있다.

 

  
▲ 서오릉 숙종과 인현왕후, 인원왕후의 능이 있는 명릉, 정자각의 왼쪽 언덕에 인원왕후의 단릉이 보인다.
ⓒ 박금옥
서오릉

 

정자각 하나에 능이 3개가 들어 있는 셈이다. 왕의 제는 능역에 올라가 지내는 것이 아니라 정자각에서 지낸다. 그래서 정자각에서 보면 능이 정면으로 보이게끔 되어 있다. 숙종과 인현왕후의 쌍릉 뒤편 골짜기를 사이에 둔 언덕에 쓸쓸히 홀로 놓여 있는 인원왕후 능은 그 정자각에서 비껴나 있다.

 

능은 우상좌하로 앉힌다고 한다. 그러니까 정자각에서 능을 바라보면 왼쪽 능이 왕이고 오른 쪽 능이 왕비의 능이다. 능에 가서 이것 때문에 헷갈릴 때가 종종 있다. 살아 있을 때와는 반대의 위치라고 한다. 그런데 인원왕후는 왕의 오른 쪽 뒤편에 능이 있다. 제대로 하려면 인현왕후 쪽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숙종 승하 후 30여 년 뒤에 인원왕후가 승하하자 영조가 묘역 조성 예산문제를 들어 그곳에 정했다고 한다.

 

해설사가 인원왕후 능 뒤쪽에서 이미지를 잡아보라고 한다. 그러면 그 쓸쓸함이 더 해보이고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비록 숙종 능보다 위의 언덕을 차지하고 있으나 지아비 숙종의 묘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 같다고 덧붙인다. 명릉의 문무 석물들은 웅장하지 않고 소박하며 우리와 눈높이를 같이 하는 것이 돌의 차가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 서오릉 숙종과 인현왕후가 잠들어 있는 쌍릉 형태의 명릉, 사진 왼쪽이 숙종이고 오른 쪽이 인현왕후 능이다.
ⓒ 박금옥
서오릉

 

  
▲ 서오릉 숙종 능 오른 쪽 언덕에 놓여 있는 인원왕후의 능으로 가고 있다. 이런 형식의 능 배치를 동원이강형이라고 한단다.
ⓒ 박금옥
서오릉

  
▲ 서오릉 인원왕후 능 뒤편에서 바라본 명릉, 숙종과 인형왕후의 쌍릉이 나란히 보이고, 정자각도 그 능을 향해 일직선을 이루고 있다.
ⓒ 박금옥
서오릉

 

능을 나와서 주차장 맞은편에 있는 서오릉의 정문으로 들어갔다. 명릉도 서오릉 권역에 속해 있어서 입장권은 한 번만 구입해도 되지만 입구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기에 명릉과 다른 능을 오가려면 입장권을 끝까지 간직해야 한다.

 

숙종의 원비인 인경왕후 김씨가 잠들어 있는 익릉으로 가는 길목에 수경원이 있어서 들렀다. 수경원의 주인은 영조의 후궁이며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다. 왕이나 왕비의 무덤은 '능', 왕세자나 왕세자비, 왕을 낳은 후궁 무덤은 '원', 그 외 대군, 공주, 옹주, 후궁들의 무덤은 일반인과 같이 '묘'라고 칭한다.

 

영빈 이씨는 사도세자가 추존되어 왕이 되었기에 왕을 낳은 후궁인 셈이라 무덤을 '원'이라 불린다. '원'에도 홍살문과 정자각이 있지만 연세대학교 안에 있던 무덤을 이곳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원묘와 석물만 조성 되었다고 한다.

 

  
▲ 서오릉 서오릉 안에 있는 수경원,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의 무덤이다. 원래 원에는 홍살문, 정자각이 있게 마련인데 옮겨 오는 과정에서 빠졌다고 한다.
ⓒ 박금옥
서오릉

 

숙종의 원비인 인경왕후가 묻혀 있는 곳이 익릉이다. 인경왕후는 딸들을 낳았지만 모두 일찍 죽었다고 한다. 10세에 왕세자빈이 되고 13세 때 왕비가 되었다가 20세로 단명했다. 능의 석물이 명릉의 것보다는 우람한 것이 오히려 새로 조성한 것처럼 보였다. 지아비인 숙종과 함께한 시간도 짧더니 죽어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

 

  
▲ 서오릉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 김씨의 능인 익릉
ⓒ 박금옥
서오릉

 

이제 익릉에서 나와 잘생긴 나무숲 오솔길들을 걸어 명릉과는 멀리 멀리 떨어져 있는 대빈묘로 향했다. 희빈 장씨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같은 서오릉 권역이나 그 거리는 끝과 끝이다. 원래는 경기도 광주에 있었는데 1960년 말 이쪽으로 이장을 한 것이다.

 

왕을 낳았고 한 때 왕비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나 폐비가 되었기에 원도 아닌 묘다. 아들인 경종이 왕이 되어 옥산부대빈에 추존하였다. 원에는 문인석과 석말이 있었으나 묘에는 문인석은 있는데 석말은 없었다. 물론 석호 석양도 없다. 역사에서 인정받지 못한, 한 여인의 권력의 패배가 무덤에까지 덮여 있는 듯해 보인다.

 

청와대 옆에 있는 칠궁 안에는 그녀의 사당인 대빈궁이 있다. 얼마 전에 그곳을 방문했을 때 대빈궁의 기둥은 다른 후궁들 사당의 기둥과 달리 둥글었다. 이유를 물으니 그래도 한 때 왕비였던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한다. 능 안에서는 쓸쓸함을 모두 안고 있는 묘였지만 칠궁의 사당 안에서는 그나마 대접을 받고 있는 형상이다.

 

  
▲ 서오릉 대빈묘 한 때 숙종의 부인이었고 경종을 낳은 ,희빈 장씨의 대빈묘, 서오릉 한 쪽 귀퉁이에 쓸쓸히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다.
ⓒ 박금옥
장희빈

 

요즘은 고전을 여러 각도에서 새롭게 각색하여 우리 앞에 보여준다. 어쩌면 마녀사냥의 희생자였을 수도 있는 장희빈을 재조명해 보자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녀를 이용해서 권력의 중심에 서 보려고 했던 남자들은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정당성을 주장하고, 그녀만 악녀로 남게 되었다. 천한 신분에서 한 나라의 왕비로 신분상승이 되고 보니 그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선을 넘는 행동을 마다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문화유산연구회의 해설사는 "희빈 장씨는 리더가 되었을 때 갖춰야 했을, 덕목이나 지혜를 터득할 기회를 잃어버린 불쌍한 여인 일 수도 있다"며 "이분법적 권선징악에 희생당한 여인들을 여자인 우리들이라도 달리 생각해보자"고 말했는데, 그 말에 공감이 갔다.

 

능은 번잡한 곳을 벗어나 잠시 역사 속에 자신을 푸근히 담글만한 공간이라 종종 찾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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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환향녀'들, 홍제천에서 몸을 씻다 | - 소현세자 2009-11-2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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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환향녀'들, 홍제천에서 몸을 씻다
도성 주변에서 역사를 만나다 ④
09.11.04 16:14 ㅣ최종 업데이트 09.11.04 16:14 박금옥 (salja88)

지난 10월 29일에 여성문화유산연구회의 '서울을 걸어서 답사하기'가 있었다. 도성 밖 주변 돌아보기다.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조금 직진을 하면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1020번 버스를 타고 자하문고개에서 내렸다. 창의문으로 해서 도성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다.

 

도성 안에서 창의문을 바라보는 위치에서 보자면 오른쪽으로는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서울성곽길이고 왼쪽으로 도로를 건너서 오르는 성곽 길은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서울성곽이다. 창의문은 북쪽인 북악(백악)산과 서쪽인 인왕산 경계가 맞닿는 곳에 있는 문이라고 한다. 창의문의 옛 이름은 자하문이다. 인조반정 때 반정군은 이 창의문으로 해서 도성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고 한다.

 

  
▲ 창의문 현판이 보이는 도성 밖에서는 오른 쪽이 인왕산으로 오르는 성곽길이고 왼쪽이 북악으로 오르는 성곽길이다.
ⓒ 박금옥
창의문

 

창의문을 쑥 빠져 나오니 도성 밖 부암동이다. 동네로 들어가지 않고 '백사실' 계곡을 돌아 나오는 길을 답사하려고 한다. 여성문화유산연구회의 자료에 따르면 백사실 계곡은 북악산 기슭으로 흰 돌이 많고 경치가 좋아서 백석실(白石室)이라고도 불린단다. 또는 백사(白沙) 이항복이 이곳에 별장을 짓고 산 데서 유래했다고도 하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창의문 앞에 있는 굴다리를 지나 찻길을 건너서 도로 밑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다 갈림길들이 나오면 계속 오른쪽 길을 택해 걷는다. 갈림길들을 조금만 지나면 오른쪽은 담으로 쌓여 있고 왼쪽으로 부암동 동네가 내려다 보이는 숲길이 이어진다. 이 길에는 능금나무가 자라고 있었다고 해서 능금나무 길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숲길을 따라 걸으면서 왼쪽으로 내려 앉아 있는 마을도 구경하고 멀리 눈을 들어 산을 바라보면 북악산의 성벽과 인왕산의 성벽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 북악산 성곽 능금나무길로 오르면서 바라보면 사진으로 보이는 곳은 북악 쪽의 성곽이고 오른 쪽으로 인왕산 성곽길이 보인다.
ⓒ 박금옥
여성문화유산연구회

그렇게 약 20분쯤을 구경하며 걷다 보면 숲길의 끝인가 하는 느낌의 언덕길 위에 드라마 '커피프린스'에서 촬영했다는 '산모퉁이' 찻집이 나온다. 계속 길 따라 조금 더 오르면 '백사실' 계곡이라는 첫 번째 안내 표지판이 오른쪽으로 가라고 눈앞에 나타난다. 오른쪽으로 틀었는가 싶은데 바로 갈림 길이 나오면서 두 번째 안내판은 왼쪽 길 내리막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내리막길에 있는 집들의 문패를 보니 여전히 부암동이다. 걷다 보면 다시 갈림길이 나오고 오른 쪽으로 잠깐 발길을 옮기면 숲속 산이 나온다.

 

숲에 들자마자 바로 큰 바위가 나온다. 바위에는 '백석동천(白石洞天)'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절경이라고 소문난 백사실 계곡에 들어온 것이다. 해설에 따르면 백석은 백악(북악산)을 말하는 것이라 하고 동천은 신선이 내려와 놀만큼 경치가 빼어난 곳을 말한다고 한다. 동천(洞天) 즉 하늘의 골짜기라는 뜻이다.

 

  
▲ 백석동천 백사실계곡 입구에 놓여 있다. 동천은 '하늘의 골짜기'라는 뜻이다.
ⓒ 박금옥
백석동천

 

숲이 아름답게 단풍으로 채색되어 있어서 우리가 신선이 된 느낌이 들 정도다. 작년 이맘 때쯤에 왔었다는 일행에 따르면 작년보다는 단풍이 못하단다. 아마도 가뭄이 계속된 탓이 아닐까 서로 추측을 해 보았다. 인적 드물어 보이는 호젓한 숲이라서 여성 혼자보다는 두세 사람의 동행이 필요해 보이기도 했다. 계곡 길을 따라 아래로 조금 내려오면 옛 집터와 정자의 주춧돌들이 나온다. 정자 터와 연못 터, 사랑채 터와 그 뒤에 안채 터가 일직선에 놓여 있다. 이곳은 백사 이항복이 별장을 짓고 살았다는 유래가 있지만 정확한 정보는 아니라고 한다.

 

  
▲ 백석동천계곡 집터 맨 앞의 주춧돌은 정자 터, 둥그렇게 보이는 곳은 연못 터, 그 뒤 계단 위로 사랑채 터가 보이고 더 뒤가 안채 터다.
ⓒ 박금옥
백사실 계곡

 

집터에서 오른쪽에 계곡을 끼고 숲길로 얼마간 걷다 보면 갑자기 시야가 터지고 앞에 절이 나온다. 계곡 아래로 들어앉아 있는 주택가도 보인다. 주택가로 바로 내려가지 말고 오른쪽 계단으로 오르면 숲길을 좀 더 감상할 짬이 있는 길이 있고 다시 주택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온다. 이곳은 종로구 신영동이다. 오른쪽으로 담을 끼고 내려와서 '구암하이츠빌아파트'와 '양지하이츠빌라' 사이의 골목을 끼고 내려오면 홍제천이 보인다. 산을 벗어난 것이다. 앞에 보이는 신영교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틀어 조금 내려오면 길가에 '탕춘대한지마을터' 표지석을 만난다.

 

  
▲ 탕춘대한지마을터 계곡을 벗어나 홍제천으로 내려오자 곳곳에 옛터의 표지석들이 보인다.
ⓒ 박금옥
탕춘대한지마을터

 

이 부근은 국가에서 필요한 종이를 만드는, 즉 조지서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기도 하단다. 맑은 시냇물과 평평한 돌이 많고 인근 산에 한지의 재료가 되는 닥나무가 풍부하여 종이를 제조하기에 알맞은 곳이었다고 한다.

 

같은 길에 있는 '탕춘대터' 표지석을 보니 연산군 때 세운 누대자리다. 그 길 끝에 '세검정터'와 '세검정차일암' 표지석이 있다. 홍제천 기슭에 세워져 있는 세검정정자도 보인다.

 

  
▲ 세검정 차일암터 이 홍제천 부근이 종이를 만들기에 맞춤한 자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표지석들이 보인다.
ⓒ 박금옥
세검정차일암

 

'세검정' 정자는 인조반정을 기리기 위해 영조 때에 세운 정자라고 한다. 세검정 정자는 41년 이곳에 있던 종이공장에서 불이 나는 바람에 타서 없어진 것을 겸재 정선의 그림에 나와 있는 것을 그대로 보고 70년대에 복원을 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홍제천의 너럭바위와 곳곳의 표지석에는 이곳이 종이를 만들고 말리고 했던 곳이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세검정에서 길 건너 대각선으로 바라보니 상명대학교가 보인다.

 

  
▲ 세검정정자 인조반정 때 반정세력이 칼을 씻었단 뜻인지, 영조가 현판을 쓰면서 정의를 세운다는 의미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서로 다른 해석들을 했다.
ⓒ 박금옥
세검정 정자

 

길을 따라 내려오면 홍은 사거리를 만난다. 길을 건너 광화문 방향 쪽으로 조금만 오르면  '석파랑'이라는 한옥 음식점이 있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정면 높은 언덕 위에 대원군별장이었던 '석파정' 별당 집 한 채가 놓여 있다. 이 별당은 서예가 손재형씨가 이곳에 집을 지으면서 뒤뜰 바위 위에 옮겨다 놓은 것이란다. 대원군 별장 말고도 석파랑은 덕수궁, 운현궁, 선희궁, 칠궁 등에서 헐린 목재, 기와, 돌 등을 사용하여 지었다고 한다.

 

  
▲ 대원군별장 석파정 석파랑 안에 있는 대원군 별당인 석파정(오른 쪽 바위 위에 있는 집), 바로 앞에 보이는 문은 실제로 궁궐에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 박금옥
대원군 별장 석파정

 

석파랑을 나와서 왔던 길의 사거리로 다시 오면 분수대가 있고 그 건너편이 상명대학교다. 학교 쪽으로 길을 건너서 또 다시 학교를 오른 쪽으로 두고 길을 건너면 저 앞에 찻길 옆으로 성문이 보인다. 바로 홍지문이다. 서울의 서북쪽 방어를 위한 탕춘대성의 출입문이다. 한양의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여 세운 성이란다.

 

홍지문과 그 옆에 있는 오간수문은 1977년에 복원이 된 것이라고 하는데, 홍지문의 문루 아래쪽에 보면 색이 다른 돌들이 있다. 그것은 복원되기 전의 돌이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한다. 현판의 글씨도 왼쪽에서 시작하는 '홍지문'으로 쓰여 있었다. 홍지문을 쑥 빠져 나오면서 종로구에서 서대문구가 되었다.

 

  
▲ 홍지문 돌 들의 색깔이 다르다. 복원되기 전의 것들이 섞여 있기 때문이란다. 저 안에서 문을 빠져 나오니 서대문구였다.
ⓒ 박금옥
홍지문

홍지문으로 보자면 종로구는 성 안쪽이고 서대문구는 성 밖이다. 우리는 창의문을 나서면서부터는 성 밖을 돌았던 것인데 갑자기 홍지문에서는 성 안에서 나온 격이 된 것은 바로 홍지문이 도성의 외곽성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대문구 홍제천길을 따라 걸어 내려오면 머리 위에는 고가도로가 놓여 있고 왼쪽은 찻길, 오른쪽은 홍제천이 놓여 있다. 홍은동 주택가 일대다.

 

걷다가 길 끝에 놓여 있는 보도교 앞에 오면 우리의 마지막 답사지인 옥천암의 '보도각 백불'이 보인다. 보도각 백불은 바위에 부처를 새긴 것인데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며, 그 부처가 백불이 된 것은 대원군의 부인 민씨가 아들(고종)을 위해 치성을 드릴 때 흰 칠을 했다고 한다.

 

  
▲ 보도각 백불 바위에 새겨진 부처는 흰 칠이 되어 있다. 그 아래로 흐르는 곳이 홍제천 줄기다.
ⓒ 박금옥
보도각 백불

 

홍제천은 우리 여성 선조들의 애환이 드러나 있는 곳이기도 하단다. 정묘, 병자호란(인조)때 공녀로 청나라에 잡혀갔던 여자들이 돌아왔으나 어디에서도 반갑게 맞아주지 않았다. 피해자인 그녀들은 오히려 '환향녀'라고 손가락질을 받았을 뿐이다. 나라에서는 궁여지책으로 홍제천에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된다는 명을 내렸다.

 

무엇이 더럽고 무엇이 깨끗하게 된다는 말인가. 보여주기 위한 정책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공녀들이 나라의 명을 받아 홍제천에서 몸을 씻지만, 결국은 도성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이곳 주변에 눌러 앉아 살게 된 경우들이 많았다고 한다. 정신대 문제도 그렇지만 역사는 약자인 여자들 편이 아니었다.

 

답사는 종로구 자하문고개 창의문에서 걷기 시작하여 서대문구 홍은동에서 마쳤다. 약 2시간여의 시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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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학자도 발끈한 조선·동아 기자의 '황당' 질문 | 역사 속 - 이것이 궁금하다 2009-11-29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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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학자도 발끈한 조선·동아 기자의 '황당' 질문
[取중眞담] 친일진상규명위에 등재된 방응모, 김성수..."왜 사과도 없지?"
09.11.27 21:52 ㅣ최종 업데이트 09.11.28 03:25 박상규 (comune)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친일 진상규명위가 발간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보고서>
ⓒ 박상규
친일 진상규명위

어느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처럼, 이걸 기자의 근성이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사주 가문을 향한 충성이라고 봐야 할까?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이하 친일진상규명위)가 27일 오후 주최한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조선><동아>의 기자를 보면서 두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친일진상규명위는 4년 6개월 동안 활동을 마무리하며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를 발간했다. 여기에는 방응모 전 <조선일보> 사장과 김성수 <동아일보> 창업주 등 1005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활동 내역이 수록됐다.

 

방응모·김성수 등은 민간연구기관인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이어 국가 기관인 친일 진상규명위의 보고서에도 이름이 올랐으니 '친일파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셈이다.

 

사실 이쯤 되면, 사회와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언론이라면 대국민 사과 정도는 해야 한다. 사과가 좀 과(?)하다면 적어도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이날 기자간담회를 참석한 뒤 <조선>과 <동아>에게 그런 교양이나 품위를 기대하는 건 여전히 요원한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 "이완용과 서정주가 왜 같은 책에 수록됐나"
ⓒ 김윤상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동아>의 황당질문 "이완용과 서정주가 왜 같은 책에 수록됐나"

 

기자간담회 현장에는 성대경 친일진상규명위원장과 노경채 상임위원 등이 직접 참석해 그동안의 활동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에 관해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몇 번의 질의응답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 <동아> 기자가 물었다.

 

"이완용과 서정주가 친일파라고 해서 같은 보고서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걸 자라나는 우리의 학생들에게 어떻게 설명합니까?"

 

아마도 친일의 경중이 다른데 어떻게 같은 책에 수록했냐는 뜻의 물음인 듯했다. 이에 성균관대 대학원장을 지낸 노(老) 역사학자인 성대경 위원장은 다소 '발끈'하며 답답하다는 듯 답했다.

 

"이완용과 서정주를 같은 경우로 이해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친일의 분야와 성질이 다릅니다. 그걸 (학생들이) 동질의 친일 반민족 행위로 볼까봐 걱정되나 본데,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이완용과 서정주는 각각 정치계와 문학계라는 다른 분야에서 명백한 친일반민족행위를 했고, 이를 경중의 문제로 따지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의미다. 이에 앞서 <조선> 기자도 물었다.

 

"민간단체는 그렇다 치더라도 국가 기관의 '친일파' 평가에 대해서 후손들은 불명예를 안고 살아야 합니다. 또 공정하게 평가했다고 하더라도 여운형 등 좌익 사회주의 계열의 인사들 명단은 잘 안 보입니다.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성 위원장은 "여운형의 친일 자료는 단 1건이 있었지만 1943년부터 1945년까지 독립동맹을 만들어 활동을 했고 이를 11명의 위원들이 논의해 (보고서에 명단을 넣지 않는) 결론을 내렸다"며 '좌익편향'에 대한 지적을 반박했다.

 

이어 성 위원장은 "우리는 특별법이 규정하고 있는 20개 친일 조항에 맞춰 평가를 했고, 11명의 위원 중 과반 이상이 동의를 해야 보고서에 (친일파로) 기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들의 전력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일까? 사실 그동안 <조선><동아>는 민간이든 국가든 그 어떤 형태의 친일인사 정리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동아>는 지난 2005년 11월 12일자 신문 사설을 통해 "좌파적 역사 만들기에 혈세를 쏟아 붓는다"며 친일 진상규명위 활동 등을 비판했다.

 

  
▲ "좌익 사회주의 계열의 인사들 명단은 안 보인다"
ⓒ 김윤상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친일파 그랜드슬램' 달성한 <조선><동아>

 

  
일제 시절 식민지배에 협력한 인사들의 행적을 담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가 열린 지난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서 시민들이 '친일인명사전'을 살펴보고 있다.
ⓒ 유성호
친일인명사전

최근에도 두 신문은 민간연구기관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했을 때도 "좌파사관"(동아)의 결과라고 폄훼하고, "대한민국 정통성(을) 다시 갉아먹은" 행위로 색깔론을 덧씌웠다.

 

그리고 이젠 국가 연구기관에 대해서도 탐탁치 못한 시선을 보내는 듯하다. 그렇다면 <조선><동아>의 기자들이 의혹을 품을 만큼 친일진상규명위는 좌파 편향적이고, 균형 감각이 떨어지는 연구를 했을까? 물론 개인에 따라서는 그렇게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친일진상규명위는 그런 평가에 억울할 것이다. 사실 친일진상규명위가 공개한 친일반민족행위자는 1005명에 불과하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친일파 명단 4389명에 비하면 무척 관대하게 역사를 평가한 셈이다.

 

게다가 친일진상규명위는 국회가 통과시킨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활동을 했다. 11명 위원 역시 국회(4명)와 대법원장(3명) 지명 등 대통령이 임명했다. 여기에는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대표를 지낸 제성호 중앙대 교수, 역시 뉴라이트에서 활동해온 이명희 공주대학교 교수도 포함 돼 있다. 제적 위원 11명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봐도 '좌파' 딱지를 붙일 만한 인사는 찾기 어렵다.

 

또 친일진상규명위는 11명의 제적 위원 중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친일반민족 행위자로 평가했다고 한다. 뉴라이트 인사가 포함돼 있는 이런 위원회에서도 친일파 딱지를 떼어내지 못한 방응모, 김성수를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사실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고작' 4년 점령당하고서도 과거사 청산을 단호하게 했다. 언론인에 대해서는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고려해 더욱 엄하게 평가했다. 프랑스는 독일 점령 4년 동안 15일 이상 발행한 신문은 모두 발행을 금지했다. 나치에 협력하지 않고는 그렇게 긴(?) 기간 동안 신문 발행이 어렵다고 본 것이다. 최근 주간지 <시시IN>이 보도한 내용의 한 대목을 보자.

 

반성않는 <조선><동아>를 어찌해야 하나

 

"일간지 <로토> 사장 알베르 르죈은 적과 내통한 죄로 사형당했다. 일간지 <오주르디> 편집인 쉬아레즈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에 대해 "우리의 땅을 수호하고 있는 것은 독일인이다"라고 쓰고 히틀러의 관대함을 찬양한 기사를 쓴 혐의로 사형당했다. 일간지 <르 마탱>의 스테판 로잔 논설위원은 독일을 찬양한 사설을 쓴 혐의로 20년 독방구금과 재산몰수형을 당했다. 독일 점령 기간 선전 방송에 나섰던 아나운서도 대부분 10년 이상 징역형을 받았다."

 

우리는 일본 천황을 찬양해도 사형 당한 언론인 하나 없다. 이제야 '고작' 민간과 국가 차원에서 친일파 명단을 정리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조선><동아>는 부끄러워 할 줄 모르고, 친일인사 명단 정리를 공격한다.

 

<동아> 기자는 "이완용과 서정주가 친일파라고 해서 같은 보고서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걸 자라나는 우리의 학생들에게 어떻게 설명합니까?"라고 따지듯 물었다. 기자의 질문은 자유다. 그래서 나는 <조선><동아>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친일파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도 자신들의 역사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조선><동아>에 대해서 우리는 학생들에게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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