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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무슨 짓을 해도 결코 스스로 물러나지 마십시오 | 감시받아야 할 言論 2009-08-31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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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무슨 짓을 해도
결코 스스로 물러나지 마십시오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엄기영 MBC 사장에게 보내는 편지
09.08.31 11:31 ㅣ최종 업데이트 09.08.31 16:40 정연주 (jung46)
이명박 정권에 의해 지난해 8월 '강제해임'을 당했던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최근 비슷한 위기에 처해있는 엄기영 MBC 사장에게 보낸 편지이다. <오마이뉴스>에 공개되는 이 글은 정연주 전 사장이 강제해임을 당한 후 처음으로 쓰는 칼럼이다. <편집자말>

엄기영 사장께 드립니다.

 

참, 오랜만입니다.

 

마지막으로 뵌 게 지난해 봄으로 기억됩니다. 방송사 출신 중 국회의원에 당선된 몇몇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면서 방송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자리였지요. 그때를 잠시 되돌아보니, 지난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때는 유난히도 방송, 신문 등 언론계 출신들이 대통령 후보 특보나 국회의원 후보로 많이 뛰어들었지요. 그들 가운데 한나라당에 들어간 언론계 출신들이 지난번 미디어 관련법 난장판 때 보니, 맹활약을 하더군요.

 

그날 아침식사 자리 때, 엄 사장이 거의 줄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같이 담배 피우면서 "이렇게 담배 많이 태우면 앵커할 때 목소리 관리는 어떻게 했어요?"라고 제가 묻자, 당신은 그냥 사람 좋게 웃기만 했습니다. 아마 지금은 담배를 더 많이 태우시겠지요. 건강 챙기셔야 하는데…. 저도 14년간 끊었던 담배를 2004년 8월, KBS 개혁한다면서 팀제 도입하고, 지역국 7개 폐쇄할 때 다시 피우게 되었습니다. 개혁, 참 힘듭디다.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까닭

 

  
MBC 엄기영 사장
ⓒ MBC
엄기영

오늘, 엄 사장 당신에게 편지를 쓰게 된 까닭은 당신이 처해 있는 지금의 상황, 당신이 가슴 저미게 느낄 고뇌와 고통, 북풍 휘몰아치는 허허벌판에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외로움을 제가 지난해 비슷한 처지에서 절실하게 경험한 터여서, 그 고뇌와 고통,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당신이 받고 있는 천근 무게의 사퇴와 해임 압박, 그 방면에서는 제가 선배니까요.

 

저는 사퇴 압박을 꽤나 오랫동안 받았습니다. 2003년 4월말 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조중동과 한나라당이 집중 포격을 가했지요. 그것도 5년여 내내. 조중동의 공격은 참 집요했습니다. 언젠가 사장 재임 시 어느 언론과 인터뷰를 했는데, 인터뷰하러 온 기자가 기사 검색을 해보았더니, 조중동에서 기사, 해설, 칼럼, 사설을 통틀어 가장 지독하게 욕을 많이 얻어먹고 있는 인물이 1위 노무현 대통령, 2위 정연주였다면서 "선배님, 오래 사시겠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사자가 되어 겪어 보니 언론의 가장 기본인 사실 보도를 하지 않습디다. 그러니 누리꾼들로부터 "조중동이 신문이면, 우리 집 두루마리 화장지는 팔만대장경이다"라는 조롱을 받는 것 같습니다. 직접 당해 보면 그 실체가 확연하게 보이지요.

 

한나라당의 공격은 차라리 단조로웠습니다. KBS 결산 때나 국정감사 때 단골 메뉴 가운데 하나가 "책임지고 물러나라"였습니다. 그때 저는 그 단골메뉴에 "물러나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행동이다. 구조적으로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책임이다", 뭐 그런 식의 단골답변을 했습니다.

 

그런데 조중동과 한나라당의 사퇴, 해임 압박은 2007년 말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그 강도를 달리했습니다. 그 과정의 자세한 이야기는 앞으로 역사에 증언을 할 것입니다만, 참 험한 꼴 많이 겪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라는 최시중 방통위 위원장은 당시 KBS 김금수 이사장을 만나기만 하면 '정연주 때문에 못해먹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면서 사퇴 압박을 가했다고 전해들었고, 감사원, 검찰, 국세청, 이사회 등이 총동원되어서 정연주 참수 작전을 했습니다.

 

원칙이 나를 버티게 했습니다

 

최시중 방통위원장, 이분 요즘 보면, '방통' 위원장 자리를 '송대령' 자리로 착각하는 것 같아요. 마구 칼을 휘두르고 있어요. KBS는 색깔 없는 방송으로 만들겠다, MBC의 정명을 찾아주겠다, EBS를 어디 하고 합치겠다, 뭐 이런 이야기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지요. 이 정권의 오만함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인 것 같습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 남소연
최시중

이런 오만에는 반드시 국민의 심판이 뒤따릅니다. 국민을 바보로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오만한 짓을 주저 없이 함부로 하는지. 이분을 볼 때마다 조선왕조 때 참수형을 집행한 '망나니'가 떠오릅니다. 무모함입니다. 칼을 마구 휘두르면서 사람 목을 자르잖아요? 그에게는 이처럼 오만에 더하여 무모함까지 있습니다. 정권이 무한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오만하고 무모할까 심히 걱정이 됩니다. 이 정권은 이제 3년 남짓밖에 남지 않았는데, 게다가 레임덕이다, 대선 국면이다 어쩌고 하면 3년도 채 남지 않았어요.

 

어쨌거나 그런 온갖 모욕과 핍박, 인신공격을 당하면서도 내 발로 걸어나가지 않고 '해임'이라는 강제수단으로 저들이 나를 쫓아낼 때까지 나를 버티게 해주었던 것은 아주 단순하게도 원칙의 문제였습니다.

 

공영방송 KBS에는 정치적 독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그 정치적 독립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바탕은 공영방송 KBS 사장의 임기 보장이라고 저는 아주 단순하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내는 일은 우리 사회가 그동안 자유, 민주, 인권, 평화, 평등을 위해 온갖 희생과 고난을 치르면서 성취한 것 중 하나인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그게 내게 부여된 역사적, 사회적 책무였으며, 다른 한편으로 그런 상황에 놓인 것을 저는 역사의 축복으로까지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이 아무한테나, 아무 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해임'에 이르기까지 온갖 무리한 짓을 다한 이 정권의 폭력성과 야만성이 여지없이 폭로되었으니까요. 신태섭 교수 해임의 무죄 판결, 저의 배임혐의 1심 무죄판결은 이 정권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확인시켜준 것 아니었습니까? 

 

그런 기회를 준 것은 분명 역사의 축복이며, 그런 것을 통해 역사는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지요.

 

엄 사장 당신에게 이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힘들고, 온갖 모욕과 비난과 인신공격이 당신에게 가해지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견디어 내야 하는 것이 바로 MBC 사장이 지금 이 시점에 우리 역사 앞에서 감당해야 하는 책무라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것을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마시고, 역사의 축복으로 받아들입시오.

 

엄기영 사장은 나보다 좋은 조건입니다

 

게다가 당신은 저보다 훨씬 '좋은 조건' 속에 놓여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노동조합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저는 3년 8개월 동안 적대적인 노조의 저주와 해괴망칙한 인신공격을 당했습니다. 회사 주변은 온통 저주와 증오의 글귀로 가득찬 만장이 펄럭였습니다. <조선일보> 사설을 그대로 인용한 노조 성명서도 있었고, KBS 사랑한다며 지켜주겠다는 촛불시민들을 구박하고 험담을 퍼부은 집단이었습니다. 밖에서 휘몰아쳐 오는 핍박과 압박도 힘에 벅찬데, 내부에서 이렇게 나오니,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MBC 노조는 그런 악다구니 저주와 증오를 당신에게 쏟아 붓기는커녕, 지켜주겠다고, 모든 것을 희생하겠다고 나오니, 그렇다면 정말 해볼 만한 싸움 아닙니까.

 

게다가 MBC는 감사원 감사 대상이 아니니, 감사원 망나니들이 거짓, 왜곡 감사로 골탕 먹이는 짓을 할 수도 없구요. 그리고 MBC는 세금 소송문제가 없어서, 무슨 배임죄니 뭐니 그런 것으로 순식간에 중범으로 만드는 일은 없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 엄 사장 당신은 나보다 엄청 '좋은 조건'에 있다는 말이 무리한 얘기는 아니겠지요.

 

다만 지금 하는 것으로 보니, 김우룡 이사장이 지휘하는 방문진 이사회가 그 모든 총대를 대신 메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김우룡 이사장, 이분이 지난해 1월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희한한 이야기를 했지요. 당시 한나라당 몫으로 국회에서 추천되어 방송위원회 위원 신분이었던 그는 "편파방송의 책임자인 정연주 사장은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한 뒤 "정 사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변화를 가늠할 수 없는, 판을 뒤엎는 초강수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가 되었지요. 그의 말대로 진짜 판을 뒤엎은 초강수가 검찰, 감사원, 국세청, 방통위, KBS 이사회 등이 총동원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 분이니, 이제 자기가 이사장이 된 MBC에서 온갖 초강수를 두려고 하겠지요. 벌써 초강수를 두겠다고 공언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KBS 사장 재임시절 회사에 1,892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의 배임)로 불구속 기소된 정연주 전 KBS 사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 유성호
정연주

방문진 이사회에서 온갖 인간적인 모멸과 비난, 겁박이 있을 겁니다. 저는 지난해 KBS 이사회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조용히 제 지갑을 꺼냈습니다. 그 수첩에는 구약성서 시편 23편이 붙어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나를 인도하시는도다…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음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

 

나는 이 시편을 이사회 자리에서 혼자 읽고 또 읽고 하였습니다. 내 귓전으로 '무능경영, 편파방송' 등을 격하게 토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어도, 그 소리는 귓전을 그냥 스쳤을 뿐, 내 마음과 가슴은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로 가득하였습니다.

 

나는 어느 종교를 배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다만 어릴 때부터 믿어와 익숙해진 방식과 의식이 기독교 쪽이어서 그 방식과 의식을 행할 뿐이었습니다. (요즘 한국 기독교, 특히 거대교회는 예수를 팔아먹고 사는 장사꾼들이지, 예수의 참 제자들은 아닙니다.)

 

시편 23편에 나오는 '여호와' 대신 우리의 가장 소박한 민간신앙인 조상의 영혼일 수도 있으며, 불교의 붓다일 수도, 이슬람의 알라일 수도 있습니다. 이름이야 무엇이었건, 마음의 평화를 찾는 길이 필요합니다. 방문진 이사회에서 인간적인 모욕과 비난이 있으면, 엄 사장 당신도 이 시편을 또는 당신 방식의 잠언을 읽으면서 그들의 소음으로부터 해방되십시오.

 

결코 스스로 물러나지 마십시오

 

그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결코 스스로 물러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당신의 모습이나 인품이 신사여서, 이런저런 모멸에 '에이 더러운 것, 나쁜 사람들, 그냥 떠나자', 그렇게 할지도 몰라 걱정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내던지고 나면, 후배들은 어찌 되며, 방송의 마지막 보루로 남아 있는 MBC는 어떻게 되며,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겠습니까.

 

최소한 저들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폭로하기 위해서라도, 그래서 그러한 것들이 역사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포클레인으로 당신을 강제로 들어낼 때까지 그 자리에서 의연하게 버티셔야 합니다.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많은 벗들이 당신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그리하리라 확신합니다. 사람 좋은 웃음을 씩 웃으면서, 그리고 한국 방송 앵커의 상징적 존재로서 자존심을 지키면서 말이지요.

 

끝으로 제가 좋아하는 시 한편 보내드립니다.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입니다. KBS 신입사원 연수 때 첫 강의를 하고 난 뒤 그들에게 들려주었던 시입니다.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도 읽으면서 힘내라고 많이 권유하고 있습니다

 

담쟁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추신: 괜한 편지를 써서 부담을 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아끼기 때문에, 그리고 당신이 있는 MBC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이런 무례를 한 것이니 너그럽게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외로워하지 마세요. 담쟁이 수천 개가 당신과 함께 한 뼘씩 저 절망의 벽을 타고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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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의 '꽃미남', 알천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 - 신라 시대 2009-08-31 20:42
http://blog.yes24.com/document/1572113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선덕여왕>의 '꽃미남', 알천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사극으로 역사읽기] MBC 드라마 <선덕여왕>
09.08.31 10:28 ㅣ최종 업데이트 09.08.31 11:48 김종성 (qqqkim2000)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서라벌 10화랑 중 하나인 알천(이승효 분).
ⓒ MBC
알천

 

군신관계 의리 지키는 '알천', 기록에는 어떻게?

 

낭도 복장을 벗어버리고 왕관을 향해 도전을 선언한 덕만(이요원 분)을 따르는 네 남자가 있다. 유신, 알천, 비담, 월야가 그들이다.

 

저마다 제각각의 개성이 있는 이들 네 남자 중에서, 굵직한 중저음 목소리와 훈훈한 마음 씀씀이를 바탕으로 시청자들의 주목을 끌고 있는 등장인물이 있다. 바로 화랑 알천(이승효 분)이다.

 

일종의 기득권세력이라 할 수 있는 서라벌 10화랑 중 하나인 비천지도의 리더인 알천은 처음에는 '시골뜨기' 김유신과 용화향도에 대해 냉소적 태도를 취했지만, 속함성 전투 때의 동고동락을 계기로 주류 화랑들의 냉소에도 불구하고 비주류인 유신과 과감히 손을 잡았다. 또 유신의 낭도인 덕만과도 끈끈한 상호 신뢰를 쌓아 나가다가 덕만이 공주라는 사실이 판명된 뒤에는 과감하게 덕만에 대한 충성의 길을 선택했다. 

 

덕만에 대한 충성심의 밑바닥에 사적인 애정이 깔려 있는 유신과 비교할 때에, 알천의 경우에는 그런 사적 감정 없이 '무엇이 타당한가'에 대한 자기 나름의 판단에 기초하여 덕만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덕만의 네 남자 중에서 가장 순수하게 군신관계의 의리를 지키는 사람은 알천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에 묘사된 알천의 행적과 이미지는 기본적으로 픽션의 결과물이다. 요즘에는 작가의 상상에 더해 시청자 혹은 누리꾼들의 상상까지도 드라마 대본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시청자들이나 누리꾼들의 호응과 요구에 따라 앞으로 알천과 관련된 픽션이 얼마나 더 '농도'를 더하게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럼, 역사 기록 속에 나타난 실제 알천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행적을 간략히 정리한 다음에 그의 이미지를 세부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진골 신분의 소유자로 추정되는 알천은 생몰연대를 알 수 없는 인물로서, 선덕여왕 시대(632~647년)에 군공을 바탕으로 대장군의 위치에 오르고 진덕여왕 시대(647~654년)에는 상대등의 위치에 올랐다가 진덕여왕 사후에 섭정 자리를 스스로 포기하고 김춘추(재위 654~661년)를 왕으로 추천한 인물이다.

 

이상의 프로필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근거한 것이다. 위작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에는 알천의 이름이 단 1회 언급된 것을 제외하고는 그에 관한 정보가 전혀 수록되어 있지 않다. 이는 일차적으로 알천이 풍월주(대표 화랑)의 지위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이차적으로는 그가 화랑으로서는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거나 아니면 <화랑세기> 저자가 보기에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한 인물로 비쳤기 때문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이미지를 추출하려면 기존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기존 사서에 반영된 알천의 이미지 중에서 중요한 것으로서는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기민한 정세판단 능력 보유

 

첫째, 알천은 기민한 정세판단능력을 보유한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특성은, 선덕여왕 말년(647년)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독자노선 즉 반란을 선택한 비담과 달리 김유신 편에 서서 진덕여왕을 옹립한 사실과, 진덕여왕 사후(654년)에 관료들이 자신을 섭정으로 추대하는 분위기 속에서 실세인 김춘추를 왕으로 적극 추천한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647년과 654년의 정세변화에서 공통적인 점은 신진세력이라 할 수 있는 김춘추 가문과 김유신 가문의 정치적 승리였다. 폐위된 진지왕(재위 576~579년)의 피가 흐르는 김춘추 가문과 가야의 피가 흐르는 김유신 가문은 둘 다 정치적 콤플렉스를 안고 있었지만, 여성 국왕이라는 이유로 역시 콤플렉스를 안고 있던 선덕여왕과 연합하여 정치적 성장을 거듭하다가 선덕·진덕 두 여왕의 죽음을 거치면서 권력의 정점에 오를 수 있었다.

 

김춘추·김유신 가문의 정치적 승리와 직결되는 두 건의 정세변화 때에 알천은 변함없이 승자 쪽을 선택했다. 647년에는 반역자 비담과 정반대의 선택을 내림으로써 진덕여왕 시대를 여는 데에  기여했고, 654년에는 '왕위계승권자가 없을 때에는 상대등이 왕의 역할을 한다'는 기존 관행에 따라 자신이 섭정으로 추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들뜨지 않고 실세인 김춘추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구(舊)세력인 자신과 달리, 김춘추-김유신 같은 신(新)세력이 뜨고 있던 당시의 정치 흐름을 잘 읽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관료들이 실세인 김춘추를 놔두고 알천을 섭정으로 추대한 진짜 동기는 알천이 스스로 물러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순위 계승권자인 알천을 강압적으로 배제하고 김춘추를 추대하는 것보다는 알천이 스스로 물러나고 김춘추가 자연스레 등극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게 김춘추의 집권에 이로웠기 때문이다. 알천 역시 그러한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기에 '이제 내게도 기회가 왔구나'라며 들뜨지 않고 스스로 '현명한' 선택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주요 고비 때마다 기민한 정세판단능력을 발휘하여 신진세력인 김춘추·김유신 가문의 손을 들어준 실제 알천의 모습은, 서라벌 기존 화랑들의 냉소에도 불구하고 가야 출신인 김유신을 선택하고 또 당장에는 별로 가망이 없어 보이는 '버려진 공주' 덕만을 선택한 드라마 속 알천의 모습과 상당히 일치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호랑이가 뛰어들어도 태연

 

둘째, 알천은 용맹성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이러한 특성은 일차적으로 635년에 독산성에 잠입한 백제군을 기습적으로 격파한 사실, 638년에 칠중성(지금의 파주시 적성면)에서 고구려 군대를 격파한 사실 등에서 잘 드러난다. 백제·고구려를 상대로 모두 다 전승(戰勝)을 거둔 것이다.

 

알천이 용맹한 인물이었다는 점은 전쟁터뿐만 아니라 평상시의 사례에서도 나타났다. <삼국유사> 권1 '기이' 진덕왕 편에 따르면, 진덕여왕 때에 권력 핵심부인 알천·임종·술종·호림·염장·유신 6인방이 남산 오지암에서 국사를 논의하고 있을 때에 갑작스레 큰 호랑이가 나타나 좌중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이때 김유신을 포함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다 혼비백산하여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유독 알천만큼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태연하게 이야기를 하며 호랑이의 꼬리를 잡아 땅에 메어쳐 죽어버렸다고 한다. 

 

참고로, 위의 <삼국유사> 권1 '기이'에서는 진덕여왕 시대의 권력핵심부가 위와 같이 6인방이라고 한 데에 비해, 위작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 제14세 풍월주 호림 편에서는 위의 6명에 보종을 더한 칠성우(七星友)라는 그룹이 존재했다고 알려주면서 그중 호림(제14세 풍월주)은 국사에 간여하지 않았다고 알려주고 있다.

 

위와 같이 전쟁터에서 백제·고구려 모두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사실이나, 호랑이를 보고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도리어 호랑이의 꼬리를 잡아 죽여 버린 일화는 알천이 상당히 용맹한 인물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용맹성은 드라마 속에서는 그다지 분명히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용맹하긴한데 지도력은 글쎄...

 

셋째, 알천은 리더십이 취약한 인물이었다. 이러한 특성은, 위에 소개한 사실관계들 가운데에서 2개의 팩트를 거꾸로 뒤집어봄으로써 명확히 드러난다.

 

신라 권부의 핵심인사들이 모인 자리에 느닷없이 뛰어든 호랑이를 손으로 죽인 사실은 신라인들의 감탄을 사고도 남을 만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일화가 <삼국유사>에까지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알천의 이 같은 용맹성은 결코 리더십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호랑이를 죽인 뒤에 알천의 완력에 감탄한 여러 참석자들이 알천을 상석에 앉히기는 했지만, 분위기가 가라앉은 다음에는 다들 "김유신의 위엄에 심복"할 따름이었다고 <삼국유사>는 말한다.

 

<삼국유사>의 필자가 알천의 용맹성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다가 "모두 다 김유신의 위엄에 심복했다"는 '엉뚱한' 결론으로 끝맺은 것은, 알천이 용맹한 데에 비해서는 그릇이 작은 인물이었음을 암시하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알천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은 '알천은 용맹하기는 하지만, 지도자로서는 부족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앞에서 소개한 사례 가운데에서 알천의 리더십 부재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가 있다. 바로 진덕여왕 사후(654년)의 킹메이킹 과정이다. 자신을 섭정으로 추대하는 조정의 분위기에 휘말리지 않고 실세인 김춘추를 추대한 것은 그의 기민한 정세판단능력을 보여주는 것인 동시에 그의 리더십 부재를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화려하다 할 수 있는 군 경력을 가진 데에다가 권력계승 1순위인 상대등의 지위에까지 오르고도 스스로 김춘추에게 자리를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알천이 겸손한 인물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알천이 자신의 위상에 걸맞은 리더십을 확보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리더십을 구축할 수 있는 충분한 자원(신분·경력·관직·용맹성 등)을 갖고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을 보면, 알천이 리더십의 부재라는 체질적 약점을 갖고 있는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 속의 알천이 처음에는 유신·덕만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가 나중에는 유신과 대등해지고 그러다가 결국에는 유신의 부하였던 덕만의 신하가 되어버린 것도 알천의 리더십 부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드라마 속에서처럼 목소리가 듣기 좋고 마음씨가 훈훈하며 충성심이 순수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역사 속의 알천은 정세판단능력이 기민하고 용맹성이 탁월했지만 리더십은 상당히 부족했던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용맹성 여부만 제외하면 드라마 속의 이미지와 역사 속의 이미지가 별로 다르지 않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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飮水思源(음수사원) | 고사성어로 성경읽기 2009-08-3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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飮水思源(음수사원) - 창 1:1

 

飮水思源(음수사원)
  飮(마실 음) 水(물 수) 思(생각할 사) 源(근원 원)
 
  남북조(南北朝)시대, 북주(北周)에 유신(庾信)이라는 문인(文人)이 있었다. 자
(字)는 자산(子山)이었다. 서기 554년, 그는 양(梁)나라 원제(元帝) 소역(蕭繹)의
명을 받들어 서위(西魏)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장안(長安)에 도착하였다. 유신이
고국을 떠나와 있던 동안, 양나라는 서위에게 멸망되고 말았다. 유신은 당시 문단
(文壇)에서 그 명망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서위의 군주는 그를 강제로 장안에 잡
아두고 대관(大官)으로 삼았다. 유신은 고향을 떠나 북조(北朝)에서 28년 동안 머
무르며 고향을 매우 그리워하였다. 그는 자신의 이런 마음을 유자산집(庾子山集)
칠권의 징주곡(徵周曲)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과일을 먹을 때는 그 열매를 맺은 나무를 생각하고(落其實者思其樹),

   물을 마실 때는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하네(飮其流者懷其源).


   飮水思源 이란  음수지원(飮水知源) 이라고도 한다. 이는  근본을 잊지 않음
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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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헌식의 [죽음아, 날 살려라] | 철학자의 서재 2009-08-3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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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프레시안 www.pressian.com>

 

 "죽은 DJ가 우리를 살리는구나!"

[철학자의 서재] 유헌식의 <죽음아, 날 살려라>

기사입력 2009-08-30 오후 2:51:00

 

죽기 싫다니까? 살기 싫다니까!

솔직하게 고백한다. 살면서 죽음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버젓이 살아 있으니 죽음을 두려워한 적도 죽기 싫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면, 더 큰 거짓말이다. 인간의 본질적 조건과 생명의 존엄성을 등한시하는 뒤틀린 정치 구조 안에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뻔뻔스런 거짓말이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죽음 생각은 더 빈번해지고, 죽음에 대한 거부와 죽음에 대한 유혹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를 하고 있다. 죽음은 근원적으로 거부하고 싶은 사건이지만, 인격성을 박탈하는 사회에서 살다보니 오히려 어서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사건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죽음아, 날 살려라>(유헌식 외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라는 책을 발견했다.

책 제목을 읽으면서 든 생각. '다리야, 날 살려라'를 잘못 패러디했군. 죽음은 날 죽이는 것인데, 날 살리라니? 인간은 출생부터 죽음으로 향하지, 삶으로 향하는 게 아니야. 생명을 앗아가는 죽음에게 자기를 살려내라고 하다니. 어불성설이지.

그래도 어떻게 살려내는지가 다소 궁금하여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독서 와중에 몇 번의 사선과 갖은 고문, 계속되는 인권 탄압을 당하면서도 한국의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를 일궈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날 살리는 죽음에 대한 독서는 진지함으로 반전되었다.

나는 죽음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나

▲ <죽음아, 날 살려라>(유헌식 외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프레시안


독서 과정에서 이루어진 반전은 한 개인의 죽음이라는 단지 우연한 시간적 일치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책에 담긴 내용은 죽음에 대한 상투적 감정에서 시작하여 삶과의 연관을 깊이 통찰하여 삶의 의미, 생명의 가치를 본질적으로 되돌아보게 한다.

죽음을 상징하는 상엿소리에서부터 홀로 죽음과 싸우는 소설의 주인공들, 영생을 거부하는 뱀파이어, 사후 세계를 더 참다운 세계로 간주하여 기쁘게 죽음을 재촉하는 소크라테스, 사후에도 자연의 흐름 속에 영속하는 몸의 편재성을 순차로 다룸으로써 죽음에 대한 나의 태도와 내가 겪은 사람들의 태도가 어떠한지를 떠올리게 한다.

대체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관심은 있지만, 낯선 타인 대하듯이 죽음을 대한다. 관심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거부하고 싶기 때문이다. 죽음은 이것에서 저것으로의 단순한 형태 변화나 단순한 결핍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완전히 절멸되고 무화되는 것이라서, 어떤 식으로든 다시 돌이킬 여지를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을 낯선 타인 대하듯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절멸에 대한 두려움에 떨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이 죽음에 임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가까운 타인이 실제로 죽었을 경우에 슬퍼하기도 두려워하기도 하지만, 뒤돌아서면 곧바로 죽음을 잊어버린다. "친구의 죽음은 나랑 관계없는 일이야"로 일축해 버린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랑 관계없는 일이라기보다는 "나랑 관계없는 일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의 작용이다. 죽음을 자신과 관계없는 일로 만들고 싶은 소망이 현명하게도 죽음이 자신과 실제로 관계없다는 자기 최면을 일으킨다.

그러나 자기와 관계없는 일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고통이 자신의 삶을 후려치면 죽음이라는 도피처를 떠올리고, 죽는 방법을 찾으려고 애쓰기도 한다. 그와 반대로 자신의 죽음 대신 타인의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고통이 몰아칠 때는 고통을 야기한 자나 때로는 불특정 다수를 죽이는 방식을 취하여 세상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고, 심지어 엽기적 살인이 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드물게는 자신의 죽음은 담담히 받아들이면서도, 타인 중에서 어떤 사람은 죽지 않기를, 아니면 최소한 오래 살기라도 했으면 하고 바라는 경우도 있다. 깊이 사랑하는 사람, 존경하는 사람, 만인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위해 자신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정신적 스승과 같은 사람들은 죽음이 연기되거나 죽음 자체가 그에게서 소멸되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죽음은 삶을 거부하는가? 삶의 일부인가?

죽음 앞에서 느끼는 이러한 다양한 감정을 책의 저자는 삶과 긴밀하게 연결하여 성찰한다. 인간은 아등바등 사느라 자신의 욕구와 충동을 무시하는 경향이 강한 데, 저자는 상엿소리에서 죽음에 임하는 인간의 삶의 욕구, 충동을 건전하게 수용하는 태도 변화를 발견한다.

그에 반해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통해서는 인간은 언젠가 한번은 죽어야 하는데, 죽음 앞에서 죽기를 두려워하고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삶을 다른 각도, 다른 가치로 보게 하는 관점 전환을 일으킨다. 여기에서 삶과 죽음은 경계가 불투명하며, 죽음은 유한한 인간의 삶이 무한으로 이어지는 전환점이며, 죽음의 빛을 통한 개안이 죽음 가운데서 가능해진다.

그래서인지 3장에서는 영생을 얻은 자가 오히려 삶을 부담스러워 하고 그래서 살아있어도 죽어있는 삶이나 다름없는 신화, 뱀파이어 예를 제시한다. 유한한 인간이 영원불변한 삶을 추구한다는 것에 반해서, 변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삶의 절망을 야기하며, 탄생에서 성장으로, 성장에서 소멸로 진행되는 유한한 인간의 특징이 영생보다 더 아름답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라, 인간에게 무엇이 더 아름다우냐가 관건이며, 죽음은 인간에게 그런 아름다움을 깨우쳐주는 기제이다.

필자는 아름다움에 박차를 가하여 죽음은 삶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분이며, 삶에서 죽음을 의식하는 것은 오히려 삶을 삶답게 살기 위한 전제라고 밀고 나간다. 우리는 죽음에 직면하여 자신의 삶을 아무렇게 내팽개치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죽음 때문에 상실하게 될 삶의 의미, 타인과의 소통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삶이 개인적 욕구 충족에 그치지 않고 타인에게 소중한 사람,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게 된다. 살아있어도 죽어있는 삶이 아니라, 죽어있어도 살아있는 삶, 죽어서도 삶에 감동을 주는 최고로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게 된다.

그래서 5장에서 일상성의 반복과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서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자살을 기도하는 베로니카의 사례를 통해 죽음, 자살은 뻔한 삶에 종지부를 찍는 자기 부정 행위가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죽음과 자살에 대한 단상은 뻔한 삶으로 자기를 전락시키는 요소, 가치 있는 삶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제거하라는 자각을 야기한다.

죽음과 자살 앞에서 나는 그저 절망하고 삶을 단축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방해 요소를 제거하고 '새로운 자기를 만나는 길'을 모색한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삶의 태도를 바꾸고, 죽음을 훨씬 더 나은 삶을 야기하는 원동력으로 반전시킨다.

죽음에 대한 감정과 죽음에 대한 생각은 삶의 태도를 바꾸어서 삶을 더 알차고 풍요롭게 하는 삶의 일부분이다. 죽음 자각은 삶에 무기력하고 일상성에 구토를 느끼는 자기를 떠나서 새로운 자기를 찾는 원동력,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게 한다. 이때 사람들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가치 있는 것을 찾게 되고, 그래서 단순한 욕구 충족을 넘어서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집착하게 된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는 철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진리에 대한 사랑과 진리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6장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서 독배를 마시고 죽어야만 하는 소크라테스가 죽기 직전에 죽음에 대해 친구, 제자들과 나눈 대화를 플라톤의 <파이돈>을 인용하여 분석한다.

소크라테스에게서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자가 참된 진리에 도달하는 관문이다. 그래서 죽음은 삶의 완성이며, 참된 삶으로의 진입이다. 참된 삶으로 진입해야 진리에 도달한다면,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인간은 죽음을 거쳐야 하고, 죽음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말아야 한다.

위대한 죽음은 위대한 삶의 연속?

인간은 죽을 때 반드시 고통을 겪게 된다. 어느 고통보다도 심각하기 때문에 단말마의 고통이라고 인구에 회자되는 것이다. 죽음이 설령 참된 삶, 진리로 진입하는 관문이라고 해도, 육체의 고통을 야기하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도 죽음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실제로 고통을 용기 있게 무시하고서 초연하게 독배를 마신다. 자신의 행동이 진리를 찾는 행동이라면, 죽음 이후에 더 참된 삶이 가능하다면, 진리에 대한 믿음과 용기를 지니고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참다운 철학자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진리는 죽음을 무릅쓰고서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이다. 진리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단말마의 고통과 완전 소멸을 야기하는 죽음을 용기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 진리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는 용기를 보일 때, 위대한 죽음이 된다. 정의를 믿는 사람은 죽음을 무릅쓰고서 나아가야 한다는 소크라테스의 관점은 결국 진리와 정의에 대한 믿음과 용기를 현실 삶에서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위대한 죽음을 야기하는 용기는 삶 또한 위대하게 만든다.

죽음이 인간을 후려치더라도, 단말마 고통이 인간을 후려치더라도, 진리와 삶을 소신 있게 성찰할 때, 죽음은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진입시킨다. 우리의 죽음은 존재의 절멸, 존재의 완전한 무화로 끝나는 듯해도, 죽음이 후려칠 때의 두려움을 극복하여 진리, 정의를 위한 용기를 발휘한다면, 완전한 절멸에서 벗어나서 인류에게 삶의 보편적 가치와 존엄성을 선사해주며, 그 용기는 후대인의 삶에 편재하게 된다.

죽음의 고비가 여러 번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삶과 생명의 소중함을 뼛속 깊이 느끼면서, 한반도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려고 삶을 불사른 위인이 우리에게도 있다. 진리를 위해 죽음 앞에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소크라테스처럼, 사회 민주화, 한반도 평화, 남북관계 개선, 인권을 위해 죽음과 고문에도 굴하지 않던 김대중 전 대통령. 그는 고난 받는 순례자처럼, 진리를 향하는 철학자처럼, 마지막까지도 현 정권의 독재와 어리석음을 깨기 위해 사력을 다한 실천하는 시대양심이었다.

죽어간 이여,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소서

한 인간이 죽는다는 것은 안타까움을 야기하는 삶의 끝이 아니다. 오히려 삶의 시작이며,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기회이다. 애절한 안타까움을 야기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은 사회 진보의 끝도, 부족한 정치 행보에 대한 비난의 끝도 아니다. 살아남은 자들과 더불어 진행되는 새로운 발전의 시작이다. 그래서 '죽음아, 날 살려라'라고 외치듯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욕심스럽게 외치면서 새로운 발전의 시작을 주문하고 싶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아, 한반도의 평화와 인권을 살려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아, 남북관계의 경색을 풀고 평화와 화해를 약동하게 하라, 죽어버린 인권의 생명력이 솟아나게 하라."

그러나 이런 외침이 무색하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은 북측 특사조의방문단이 우리에게 오게 만들었고, 특사메시지를 동반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현 정권의 경직된 남북관계를 풀고 새로운 관계 맺기 기회로-마치 기다렸다는 듯이-사용하게 만들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해법을 찾지 못해 고심하는 한반도에 죽어서까지도 화해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죽음이 한반도 평화를 살려내고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죽음이 현 정권의 남북관계 개선을 야기하는 위대한 죽음이 되는 것은 살아생전에 이룬 남북 화해의 업적 때문이다. 위대한 삶은 위대한 죽음을 낳고, 위대한 죽음은 살아있는 자들의 삶을 역동적으로 만든다. 삶의 비범함과 내적으로 연관되어 죽음도 비범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금의 3대 위기(민주주의 위기, 중소서민 경제위기, 남북문제 위기)라는 무거운 짐을 남은 자들에게 맡기고 편안히 영면하시기를 빈다.

<죽음아, 날 살려라>는 열심히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죽음을 억지로 생각하게 만든다.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것은 삶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죽음은 삶의 핵심이며, 죽음 후에도 편재하는 삶의 생동성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철학자의 서재'는 <프레시안>과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서평 연재입니다. 매주 주말 한국철학사연구회 철학자들이 심사숙고해 선정한 책을, 철학자가 직접 심혈을 기울여 쓴 서평으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이정은 연세대 외래교수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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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구의 [우리 눈으로 보는 세계사 1] | 나의 서재에는 어떤 책이? 2009-08-29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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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프레시안 www.pressian.com>

 

'유럽 중심주의'를 벗어나기 위한 첫 걸음

[화제의 책] 강철구의 <우리 눈으로 보는 세계사 1>

기사입력 2009-08-29 오전 10:29:38

 

우리의 서양사 연구는 그리 역사가 길지 않다. 일제 강점기에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한 1세대들이 서양사 연구를 시작하여, 20세기 한국이 그랬듯이 짧은 시간에 큰 발전을 이루었다. 1970년대까지도 서양사 연구를 위한 2차 연구서조차 구하지 못해 어렵게 복사해서 읽었고, 외국에 나가 1차 사료를 보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이렇듯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1~2세대 학자들은 서양사 연구의 기본을 충실하게 다지는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였다. 이들에게는 서양사의 큰 줄기를 이해하는 일만으로도 버거운 작업이었던 만큼, 서양학자들의 연구를 우리의 눈으로 비판하는 작업들은 어찌 보면 사치에 가까왔으리라.

80년대에 3세대 학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예전보다 수월해진 외국 유학길에 올랐다. 90년대부터는 외국 유학을 다녀온 해외유학파들이 서양사의 새로운 흐름들과 그동안 소홀했던 서양사의 영역들을 소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1차 사료 분석을 통한 예전보다 훨씬 깊은 연구물들을 생산해내었다.

또한 70~80년대의 국내문제에 천착하여 고민하고 있던 국내파들이 서양사의 사례들을 통해 그들의 문제의식을 좀 더 세련되게 발전시킴으로써, 국내 서양사연구를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하지만 3세대 학자들도 여전히 우리의 눈으로 서양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부족했다. 특히 해외유학파들은 유학국가에서 배운 새로운 서양사 영역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데에만 급급하였고, 서양학자들의 시각을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런 의미에서 강철구 교수가 유럽중심의 세계사를 비판하고 우리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보려는 노력을 해온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강교수는 국내파로 특히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문제를 중심으로 고민해오면서 오래전부터 서양사학의 유럽중심주의에 대해 연구해왔다. 어쩌면 강교수가 서양사학의 유럽중심주의에 대해 전면적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은 그가 국내파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다. 프랑스에서 공부한 필자만 하더라도 오히려 프랑스 학자들의 연구에 매몰되어 유럽중심주의에 대해 돌아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 <우리 눈으로 보는 세계사>(강철구 지음, 용의숲 펴냄). ⓒ프레시안
강 교수는 이미 <역사와 이데올로기>라는 저서를 통해 서양학자들의 역사학에서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학계의 논쟁들을 국내학계에 자세히 소개함으로써 그동안 외면해왔던 '우리 눈으로 서양사보기'에 불을 지핀 선구자의 역할을 감당하였다.

강 교수의 이번 저서는 <프레시안>을 통해 그동안 발표해왔던 칼럼들을 모은 책이다. 이 책의 첫 번째 장점은 서양학자들의 유럽중심주의에 대해서 대중을 상대로 다양한 그림들과 사진들을 통해서 흥미롭고 알기 쉽게 서술했다는 점이다. 페이지마다 넘쳐나는 대형사진과 그림들, 친절한 설명은 독자들을 즐겁게 하기에 충분하다.

두 번째 장점은 쉽게 서술하면서도 학계의 깊이 있는 논의들을 균형 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대중을 상대로 글을 쓰다 보면 정작 학계에서 논의되는 중요한 논점들을 놓쳐버리는 경우가 많아 아쉬움을 남기곤 했는데, 강교수는 학계의 논의를 중심으로 균형감각을 유지하면서, 대중을 상대로 알기 쉽게 그러나 심도 있게 글을 썼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세 번째 장점은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논의를 서양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골고루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제 1권에서 강교수는 고대 그리스문명, 유럽중세도시, 르네상스, 유럽의 해외 팽창, 근대 자본주의 발전, 근대 자연법의 형성과 식민주의와 같이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역사 전반에 걸쳐 어떤 논의가 있는지 소개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저자는 방대한 영역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어서 매우 고무적이다.

그의 논의는 우선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사에 대한 기본 상식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면서 그러한 기본 상식이 과연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지를 묻는다. 예전에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이다. 기본 상식 속에 유럽중심주의의 관점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고 나서, 강교수는 기본 상식에 대해 최근 학계의 비판적 논의들을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기본상식을 뒤엎는 신선한 주장들을 펼친다.

예컨대 그리스문명은 서양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리스문명은 인류 역사에서 매우 독창적이며 인간중심적인 문명으로 서양문명의 본질을 차지한다고 그동안 알려져 있다. 과연 그렇게 독창적인 문명일까?

강 교수는 마틴 버널의 <블랙 아테나>의 주장을 소개하면서, 실제 그리스문명은 대부분 이집트문명으로부터 크게 영향 받은 것으로 이제 알고 있는 것처럼 독자적으로 발전한 문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1권 57~97쪽) 매우 설득력있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마턴 버널의 주장에 대한 학계의 비판도 잊지 않고 소개하는 학문적 신중함을 더하여 학문적 논의를 균형있게 다루고 있다.

그의 논의에서 아쉬움이 있다면, 그의 비판적 논의 대부분이 서양학자들의 비판에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총론에서 칼 맑스, 헤겔, 막스 베버 등에 대한 비판도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서양학자들로부터, 그리스문명 비판도 마틴 버널로부터, 그리고 르네상스에 대한 비판도 서양학자들의 주장에서 시작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강교수도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비판도 대체로 제 3세계 출신이기는 하나 서양학자들이 주도하고 있고, 서양 학문 체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이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1권 53쪽). 그러면서도 서양의 대표적인 역사가들의 "주장이나 이론에 지레 겁을 먹고 주눅이 들 것이 아니라 감연히 맞서려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데 그의 주장에 적극 동의한다.

시작단계인 현 상황에서 "당장은 서양 사람들이 해 놓은 자기반성의 수준이라도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강교수의 입장에 약간 옹색해 보이는 점이 없지는 않으나, 아직도 규모나 연구수준에서 서양의 학계보다 턱없이 열등한 국내학계의 현실을 생각하면 지당한 주장이다. 사실 유럽중심주의 비판은 한국인으로서 서양사를 공부할 때에 가져야할 가장 기본적인 학문적 자세가 아닐까? 근, 현대 부문을 다루는 제 2권의 빠른 출간을 기대한다.

/백인호 서강대 사학과 교수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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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던 YS, 일본 극우잡지에 본심(?) 토로 | 나라 돌아가는 모습 2009-08-29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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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국민장은 이명박의 실수"
[제보취재] '침묵'하던 YS, 일본 극우잡지에 본심(?) 토로
09.08.28 10:53 ㅣ최종 업데이트 09.08.28 17:25 손병관 (patrick21) / 박철현 (tetsu)
  
일본잡지 <애플타운> 9월호에 실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인터뷰 기사.
ⓒ 애플타운
김영삼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에 불편한 심경을 토로했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YS는 노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23일 서거한 직후 김기수 비서실장을 통해 "매우 충격적이고 불행한 일"이라고 짧은 소회를 밝힌 뒤 같은 달 29일 영결식에서도 침묵을 지켰다. YS의 침묵은 노 전 대통령의 유족들 앞에서 오열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습과 대비되며 여러가지 해석을 낳았다.

 

노 전 대통령이 살아있을 때만 해도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사상적으로 공산주의와 가까운 정권"(계간 <시대정신> 2007년 겨울호 인터뷰), "노 전 대통령이 머지않아 형무소에 가게 될 것으로 믿는 국민이 전부"(4월9일)라고 맹비난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이라 장례식 참석... 헌화할 꽃 던져버리고 왔다"

 

  
'노무현 국민장'에 대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발언을 옮긴 일본잡지 <애플타운> 기사.
ⓒ 애플타운
김영삼

그 동안 별말이 없었던 YS는 일본잡지 <애플타운> 9월호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의 국민장에 대해 언급했다.

 

YS를 인터뷰한 사람은 동 잡지의 발행인 모토야 도시오 회장으로, 그가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한일관계가 다소 안정됐지만,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양국 관계가 크게 흔들렸다"고 말하자 YS는 "노무현의 장례식을 국민장으로 치른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실수한 것이었다"고 잘라 말했다. YS는 "국민장이 아니라 가족장으로도 충분했다"고 덧붙였다.

 

YS도 노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민장으로 치러서는 안된다고 주장한 김동길·변희재씨와 엇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잡지에 따르면, YS는 이어 "내가 발탁해서 국회의원이 되었으니 그는 내게 빚이 있는데, 이렇게 돼 버려서 조금 실망했다"며 "나도 전직 대통령으로서 장례식에 참석했지만, 헌화할 꽃을 그냥 던져버리고 왔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29일 경복궁 앞마당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에서 헌화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권우성
김영삼

YS의 거침없는 발언에 도시오 회장은 "일본 정치인들은 불쾌한 감정이 있어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데, 그런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니 참으로 대담하다"고 추켜세웠다.

 

도시오 회장은 YS에게 "일본어를 아주 잘 하시는데, 당신과 비교하면 노무현씨는 일본에 별로 친숙하지 못했다"고 두 사람을 대비시키기도 했다.

 

YS는 생전의 노 전 대통령에게 독설을 퍼붓다가 그의 사후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있는데, 일본잡지 인터뷰는 그의 감정이 여전히 정리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YS가 극우 성향의 논조를 펼치는 잡지와 인터뷰한 것은 또 다른 논란거리다.

 

<애플타운>의 발행인 도시오 회장은 일본의 부동산·레저분야 대기업 APA그룹을 경영하고 있는데, 그는 일본의 극우성향 정치인과 자위대 간부들을 초청하는 좌담회를 연 뒤 <애플타운>에 기사를 게재하는 방식으로 극우세력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YS측 "문맥이 거두절미되고 엉뚱한 얘기가 기사로 나가"

 

그는 2008년 5월에는 '진정한 근·현대사관'이라는 현상논문전을 주최했는데, 그해 최우수상은 일본의 침략전쟁을 옹호하는 논문을 쓴 다모가미 도시오 전 자위대 항공막료장에게 돌아갔다.

 

다모가미는 논문 사건의 책임을 지고 자위대 간부직에서 물러났는데, 당시 <아사히신문>은 "도시오 회장이 최종 압축된 논문 3편중 다모가미의 논문을 (최우수상으로) 강력 추천했다"고 전했다.

 

  
5월29일 오전 경복궁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에서 권양숙 여사, 노건호, 노정연씨 등 유가족과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씨,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이 묵념을 하고 있다. 대다수가 고개를 숙인 가운데 허리를 꼿꼿이 세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 사진제공 청와대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YS 측은 사석에서 한 발언이 일본 잡지에 보도된 것에 대해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YS의 김기수 비서실장은 28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도시오 회장이 일본사람 여럿이 함께 각하를 만나고 갔지만, 그분이 기자도 아니고 정식으로 인터뷰한 것도 아니었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YS의 '가족장' 발언에 대해 "한국과 일본 모두 자살률이 높다는 기사가 나온 시점에서 각하는 '국가지도자가 자살하면 후세를 위한 교육에 안 좋다'는 취지의 얘기를 먼저 했는데, 문맥이 거두절미되고 엉뚱한 얘기가 기사로 나간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김 실장은 "사석에서 얘기한 걸 자기가 정리해서 쓴 걸 뭐라 하겠냐"며 문제의 기사에 대응할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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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에 발끈한 민주당 "눈과 귀 의심케하는 충격적 발언" | 나라 돌아가는 모습 2009-08-29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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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에 발끈한 민주당 "눈과 귀 의심케하는 충격적 발언"
안희정 최고위원·우상호 대변인, 김 전 대통령에 사과 요구
09.08.29 10:18 ㅣ최종 업데이트 09.08.29 10:18 손병관 (patrick21)

"노무현의 장례식을 국민장으로 치른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실수한 것이었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발언이 뒤늦게 알려지자 민주당이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YS로서는 국내정치의 라이벌이었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DJ)을 병문안하고 DJ가 죽은 뒤 상도동 자택에 조기를 거는 등의 유화적 제스처로 벌어놓은 '점수'까지 까먹게 됐다.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
ⓒ 유성호
안희정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오마이뉴스>에 보도된 YS의 발언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특히 그는 "(노무현은) 내가 발탁해서 국회의원이 되었으니 그는 내게 빚이 있다"는 YS의 말에 "노 대통령님은 김영삼 대통령님께 빚진 것 없다, 빚이 있다면 김영삼 대통령이 갖고 계시다는 걸 정말 모르십니까"라고 일갈했다.

 

"1990년 3당야합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를 결정적으로 왜곡하고 망가뜨린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님의 역사적 범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시 통일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의 비서관으로 재직하다가 사표를 내고 실직자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옳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 (중략) 그 후 당신을 따라갔던 수많은 후배 정치인들을 보십시오. 당신을 흉내 내며 배신과 변절의 정치를 '구국의 결단'인 양 모두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이 당 저 당을 기웃거리며 배신과 변절의 정치를 지도자의 고난에 찬 길인 양 가장하고 다니며 민주주의 책임정치를 훼손시키고 있습니다."

 

안 최고위원은 "김영삼 대통령이야말로 부산에서 떨어지고 떨어지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큰 빚을 지신 것"이라며 YS에게 노무현 유족과 국민들에 대한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같은 당 우상호 대변인은 "전직 대통령의 불행한 죽음 앞에서 경건한 예의를 취하기는커녕 사리에 맞지 않는 발언을 하다니 눈과 귀를 의심하게 하는 충격적인 일"이라며 "더구나 일본 언론인과의 인터뷰에서 웃으며 말한 것이 더욱 치욕적"이라고 논평했다.

 

우 대변인도 YS의 발언 취소와 사과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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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쓴 소설 [열외 인종 잔혹사]…세상과 교회의 부조리한 구조에 분노 | 나의 서재에는 어떤 책이? 2009-08-29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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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스앤조이 www.newsnjoy.co.kr>

 

열외 인종에게는 잔혹사, 주류 교회에게는 행복사

목사가 쓴 소설 <열외 인종 잔혹사>…세상과 교회의 부조리한 구조에 분노

 

 

입력 : 2009년 08월 24일 (월) 07:47:03 [조회수 : 909] 김세진 ( 기자에게 메일보내기

   
 
  ▲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열외 인종 잔혹사>의 저자 주원규 씨는 목사다. 돈이 주인이 되어 돌아가는 세상,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는 세상에 대해 분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땅히 표출해야 할 분노조차 표현할 줄 모르는 교회와 사회를 생각하며 소설을 썼다. ⓒ뉴스앤조이 김세진  
 

마리아 씨는 좋은 학점을 받고 어학연수도 다녀왔지만 돈이 없다. 콜라 없이 햄버거만으로 점심을 때운 이유는 취직이 안 되어 돈을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중혁 씨는 일자리에서 잘렸다. 돈 벌러 나간 아내마저 바람나, 오갈 데 없어 노숙자가 되었다. 고등학생 기무 군은 학교를 자퇴했지만 인생이 무료하다. 여자 친구와 성적 유희를 즐기거나 밤새 게임에 빠져 있다가 돈을 내지 않고 피시방에서 도망 나오는 게 전부다. 영달 씨는 퇴역 군인이다. 나라를 위해 일했지만 나라가 해 주는 게 없다. 그래도 충성한다.

 

'나와 처지가 비슷하군' 하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열외 인종'일지 모른다. 주원규 씨는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열외 인종 잔혹사>에서 위와 같은 인물들을 소개한다. 이들이 하루 동안 겪는 피비린내 나는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열외 인종에게 세상은 잔혹하다'는 것을 직면한다. 주원규 씨는 '인간'이나 '인류'가 아닌 '인종'이라는 단어를 썼다. 한 번 결정된 계급이 뒤바뀌기 어렵다는 한계를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주 씨는 "'요즘은 개천에서 용 나는 게 불가능'이라는 말이 있듯이 비주류가 주류로 가기 힘들다"고 했다.

 

주 씨는 목사다. 돈이 주인이 되어 돌아가는 세상,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는 세상에 대해 분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공분했듯 공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땅히 표출해야 할 분노조차 표현할 줄 모르는 교회와 사회를 생각하며 소설을 썼다.

 

열외 인종이 누구인가.

일차적으로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이다. 결과적으로 경쟁에서 이긴 사람들도 열외 인종이다. 돈을 벌기 위해 원치 않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천민자본주의를 추구하는 한국 사회에서 진정한 승자는 자본뿐이다.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인간의 존엄과 주체성, 공동체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탄핵 위기를 겪는 노무현 대통령을 보면서 소설을 구상했다. 대통령도 비주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

 

열외 인종으로 네 부류를 선택했다. 이 사람들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 <열외 인종 잔혹사> / 주원규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317면/ 1만 원  
 

한국 사회에서 열외의 극점에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려고 했다. 20대 백수, 10대 방황 청소년, 40대 노숙자, 70대 퇴역 군인이 그들이다. 소설을 쓰기 위해 이들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취재했다. 일주일 동안 노숙 체험도 했다.

 

소설에 기괴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는 '양머리를 한 사람들'이 나온다. 무엇을 의미하나.

양머리를 한 사람들은 지도자가 없어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양은 목자가 없으면 우왕좌왕하거나 어느 한 양만 좇아간다. 우두머리 양이 길을 잘못 들어 낭떠러지로 가도 좇아간다. 천민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도 잘못된 지도자인 자본을 따라 방황한다.

 

양머리를 한 사람들이 크게 두 부류의 사람을 죽인다. 노인과 비만 여성들이다. 그들을 죽인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노인은 사회에 변화를 일으키려 하지 않는 집단을 상징한다. 비만 여성은 외모로 여성을 평가하고 상품화하는 시대를 상징한다. 사회 불평등이나 잘못된 구조에 대한 분노가 때론 일그러진 모습으로 표출된다. 반대 쪽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양상을 띤다. 사람들은 메시아를 찾는다. 우상을 찾는 것이다. 누구라도 희생양을 세워서 분노를 가라앉히려고 한다. 희생시키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한다. 예수의 희생은 숭고하고 자발적인 사랑의 희생이지만, 열외 인간의 희생은 사회 구조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하는 희생, 억지로 떠밀려진 희생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희생도 이와 같다. 노 대통령은 집권 말기에 진보주의자에게 인정받지 못했고 보수주의자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결국 자살이란 이름으로 희생되었다.

 

소설을 통해 열외 인종에게는 삶이 잔혹하다는 것을 말하려고 했나.

마지막에 희망의 여지를 남겨 두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피시방에서 게임만 하던 10대 청소년이 까닭 모를 눈물을 흘리면서 '현실은 게임이 아니다'는 사실을 직면한다. 여러 인종이 희생양이 되고 있는 사실에 대한 자각 자체가 잔혹사를 벗어나는 시작이 될 수 있다.

 

작가의 말에서 '내면에 자리한 마땅한 분노도 경쟁 논리로 무장해제할 것을 요구 받는다'고 적었다. 마땅한 분노가 무엇인가.

공분이다. 경쟁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긴 사람이 물건을 가져간 후 그것을 나누면서 소수나 약자에게 베푼다고 생각하면 문제다. 가진 사람은 살아온 환경에서 특혜를 받은 부분이 있다. 당연히 복지에 신경 쓰고 기부할 책임이 있다.

 

한국 사회가 천민자본주의를 추구한다고?

   
 
  ▲ <열외 인종 잔혹사> 작가 소개 난엔 '권력과 자본에서 자유로운 종교 공동체를 지향하는 대안 교회를 운영하고 있다'고 적혔다.ⓒ뉴스앤조이 김세진  
 
한국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받아들였다. 경쟁을 부추기고 기업에 최대한 자율성을 부여한다. 이명박 정부가 그런 정책을 추진한다. 선심 쓰듯 서민을 위한다지만 분배나 복지 증진을 논의하지 않는다. 한국은 유교 사대주의까지 결합해 기묘한 계급 관계가 형성되었다. 되레 미국식 자본주의보다 퇴행한 것 같다. 한국교회도 다르지 않다. 유교식 사대주의에 미국적 근본주의를 받아들여 교회를 이끌려고 한다.

유럽식 사회주의가 천민자본주의의 대안일 수 있다. 기업을 키우기보다 국민의 필요를 채우는 정책이 필요하다. 주체성과 존엄성을 회복하는 것도 인간다운 삶을 사는 조건이다. 영성 회복이 필수다. 각자가 교회의 부분이라는 주체성을 회복하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시작이다. 예수는 요한복음에서 자신을 인자라고 한다. 인자는 참 사람이다. 예수가 온 것은 참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다.

 

한국교회도 천민자본주의의 모습이 있나.

교회가 양적 성장을 외치며 부흥을 꿈꾼다. 교회의 천민자본주의는 기묘하고 완고하게 기복신앙과 결탁했다. 기도는 욕망 실현의 방법이다. 성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고 한다. 작년에는 십일조로 100만 원을 냈는데 올해는 1,000만 원 내게 해달라는 게 기도인가.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인지, 이방인의 중언부언인지 분별하라. 목사들은 성도들이 욕심대로 기도하는 것을 독려한다. 하나님이 성공을 기뻐하신다는 사고를 주입한다. 메시아를 복과 안녕을 지켜주는 부적 같은 존재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공분하는 그리스도인이 늘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모순은 교조주의와 유교주의가 결탁했다. 여성이 목사 안수를 받으면 안 된다는 제도가 성서에 있나. 십일조도 이웃과 나누라는 원래 정신을 잃었다. '십일조를 하면 범사에 강건해진다'는 논리는 문제가 있다.

 

작가 소개 난에 '권력과 자본에서 자유로운 종교 공동체를 지향하는 대안 교회를 운영하고 있다'고 적혔다.

금권과 제도에서 자유로운 교회를 운영하고 있다. 한 명 한 명이 삶을 나누고 물질을 나누고 말씀을 나누는 것이 성찬이고 예배다. 교회는 예수의 몸 된 존재의 나눔과 사귐이 우선이다. 건물과 제도가 교회의 일차적 조건이 아니다. 순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교제를 최우선에 두는 것으로 교회 운영이 가능할 것이다. 주일과 주 중에 모이고 있다. 예배는 텍스트 중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헬라어와 히브리어 원서로 성경을 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래서 사복음서 원어 강독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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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교수, "세제 개편안 비전도 철학도 없다" | 나라 돌아가는 모습 2009-08-29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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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교수, "세제 개편안 비전도 철학도 없다"
09.08.28 16:47 ㅣ최종 업데이트 09.08.28 16:47 김동수 (kimds6671)

이준구 교수(서울대 경제학부)가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2009년 세제개편안'에 대해 "배 밑바닥에 큰 구멍을 뚫어 놓고 차오르는 물을 사발로 퍼내려고 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교수는 28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비전도 철학도 없는 2009년 세제개편안'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교수는 먼저 "4대강 정비사업이다 뭐다 해서 재정지출을 천문학적 규모로 늘리면서 조자룡 헌 칼 쓰듯 세금을 깎아주었으니 나라 살림에 큰 구멍이 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고 질타했다. 부자감세를 해놓고 4대강 때문에 재정을 천문학적으로 늘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재정위기가 닥치면 세수를 늘리든지, 지출을 줄이든지 둘 중에 하나는 해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는 세수는 줄이면서 재정을 늘리는 재정 정책을 펴고 있으니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교수 논리이다.

 

이 교수는 이어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재정건전성에 좋다고 해명하는 정부에 대해서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재정 건전성에 문제가 있는 나라들이 그것 때문에 정책 수행에 얼마나 큰 제약을 받고 있는지를 똑똑히 보아야 한다"며 "국가채무의 수준이 OECD 평균치를 훨씬 더 밑돈다는 사실이 방만한 재정 운영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고 해 건전성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방만한 재정운영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정부가 재정운영에 대해 문제를 인식하여 '2009년 세제개편안'을 내놓았지만 "이로 인한 세수 증가분이 앞으로 예상되는 재정적자를 메우기에 턱없이 모자랄 뿐 아니라, 그 내용을 보면 '눈 가리고 아웅'이란 말을 연상케 한다"고 기회재정부가 내놓은 세제개편안이 재정건정성을 키우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또 보수 언론이 세제개편안을 두고 "부자 증세로 세수 증대를 꾀한다고 대서특필하고 있지만, 마지못해 몇 푼의 세금 더 내게 하면서 부자 증세라고 말하는 것은 낯 간지러운 일"이라고 보수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부자증세가 낯 간지러운 이유는 정부가 부자들에게도 세금 부담을 높였다면서 선전하고 있는 1억원 이상 사람의 소득세가 48만원 정도 늘어나지만 "2008년 세제개편안에 따라 세율이 2% 포인트 낮아진 것만으로도 이미 2백만원 가량의 세금이 절약된 상황이라"며 "세폭 4분의 1밖에 안 되는 세금부담 증가를 갖고 부자 증세니 뭐니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고하여 부자들도 세금이 늘어난다는 논리의 허구성을 강하게 지적했다.

 

부자들 세금을 깎아주면 소비가 증대하여 우리 경제에 좋은 효과를 미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교수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무슨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경제이론을 모두 동원해 봐도 별다른 답이 나올 것 같지 않다"며 "소득세를 깎아주면 사람들이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는 것은 일종의 신화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이명박 정부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깎아주면 깎아준 세금으로 소비를 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말이다. 그 예로 스칸디나비아 국가처럼 90%를 깎아주면 모를까? "35%를 33%로 낮춰준다고 해서 사람들이 분발해 더 열심히 일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고 "부유층에 대한 소득세 감세는 아무 효과 없이 세수만 축내는 결과를 빚을 것이 너무나도 뻔하다"고 했다. 이는 고소득층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런 점에서 "재정 건전성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볼 때도 2009년 세제개혁안 같은 땜질식 처방은 결코 만족스러운 해법이 될 수 없다" 이는 "배 밑바닥에 큰 구멍을 뚫어 놓고 차오르는 물을 사발로 퍼내려고 하는 듯한 느낌이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재정정책인 "감세가 마치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듯한 시대착오적 믿음을 버리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하여 이명박 정부의 감세 정책 자체에 대해서 비판했다.

 

세금은 적극 거두고, 재정은 4대강 정비사업 따위때문에 돈 보따리를 푸는 것을 보면서 "세수 감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껏 돈을 쓰겠다는 그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할 따름이라"고 물었다.

 

만약 이렇게 가면 "머지않은 장래에 재정 건전성 문제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심각한 문제로 떠오를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재정 건전성은 "지난 몇 십 년 동안 역대 정부가 애써 쌓아놓은 업적이라"며 "입만 열면 '잃어버린 10년'을 말하는 사람조차 지난 두 정부가 재정 건전성만은 다치지 않았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고 하여 김대중 노무현 두 정부가 남긴 재정 건전성 업적을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현 정부도 역대 정부가 공들여 쌓아놓은 탑을 일거에 무너뜨렸다는 비난을 받고 싶지는 않을 것임이 틀림없다"고 지적하면서 이명박 정부가 부자감세와 방만한 재정지출을 삼가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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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려일실 - 間於齊楚 | 마음에 드는 책 2009-08-28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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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를 읽었다.

맹자를 번역한 여러 책이 있지만, 박경환 역본이 무난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군더더기 같은 말을 하지 않은 충실한 번역이 눈에 띈다.

하지만 천려일실이라 했던가, 오자가 눈에 뛴다. 그것도 원문에서이다. 

 

양혜왕 하 - 13에서 小國也 閒於齊楚. 事齊乎? 事楚乎? 란 구절이 있다.(80쪽)

이중 閒於齊楚란 말이 고사성어에서 배운 말이기에 유심히 살펴보니

내가 알던 것과는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閒於齊楚!!

 

이는 間於齊楚의 오식이다.

 

간어제초 間於齊楚 란 말은 강한 제(齊)나라와 초(楚)나라 사이에(於) 끼임(間) 즉, 약한 자가 강한 자들 사이에 끼어서 괴로움을 받는다는 말이다. 

 

사족, 위의 오식을 확인하기 위하여 다른 책을 살펴보았다.

명문당에서 발행한 차주환 역의 맹자(상)이다.

 

이책에서는 13장의 표제에 間於齊楚 대신 間於齊草라 표기하였다.

재미있다.  楚자가 草로 표기되다니,,,

 

이런 오식이 또 어디엔가 숨어있을지 모르겠다. 글 읽는 사람이 면밀히 검토하며 읽기는 어려운 일이니 출판사 직원들의 세심한 관찰을 재삼 재사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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