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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 [어둠의 아이들] | 영화 이야기 2010-05-30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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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월드컵에 환호하기 전에, 이 진실을 보시오
[영화로 읽는 세상이야기 32] 외면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 <어둠의 아이들>
10.05.29 17:26 ㅣ최종 업데이트 10.05.29 17:26 박호열 (tkaenao)

명치유신 이후 산업·문화·국제 금융도시로서 뉴욕과 함께 신자유주의를 쥐락펴락하는 제국 일본의 수도, 도쿄. 아름다운 불교사원 보다 군부의 정치개입 청산을 요구하는 유혈 도시항쟁으로 더 잘 알려진 태국의 수도, 방콕.

 

그런데, 이 도쿄와 방콕의 거리가 20cm에 불과하다는 영화가 있습니다.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본 지도상의 거리입니다. 채 20cm도 안 되는 이 거리를 사이에 두고 제국 일본과 개도국 태국 간에 밀무역이 벌어집니다. 대상은 태국 소년소녀들의 성과 신체 장기. 일본과 유럽의 부자 고객들에게 가공하지 않은 천연자원으로 팔리거나 싱싱한 횟감마냥 해체되어 넘겨집니다. 

 

영화의 헤드 카피가 '당신은 이 영화를 마주할 용기가 있습니까'인 이유입니다. 제국의 끝없는 탐욕과 개도국의 부패고리 사이에서 성 착취와 장기밀매로 남는 것은 에이즈와 폐기처분된 아이들의 시신뿐 임을 고발하는 실화 <어둠의 아이들>입니다.

 

소처럼 해체되는 아이들의 육신과 영혼 

 

  
미국인이 매음굴 유치장에 갇힌 아이들 중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 한 명씩을 데리고 일어서고 있다.
ⓒ (주)씨에이엔
어둠의 아이들

영화는 태국 국경 산악지대의 곤궁한 마을에서 어린 소녀 센라가 낯선 남자에게 팔려 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소녀가 도착한 곳은 인신매매조직이 어린 아이들을 유치장에 가둬둔 채 외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매춘을 시키는 사창가. 그곳에선 극비리에 어린 소년소녀들의 장기까지 밀매하고 있습니다.

 

태국 주재 일본신문 기자 난부(에구치 요스케)는 일본에서는 금지된 아동 장기 이식수술이 태국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을 접하고 본사에 취재 지원을 요청합니다. 취재를 통해 밝혀진 충격적인 사실. 뇌사자의 장기를 이식받는 수술이 아니라 살아 있는 아이를 마취한 뒤 심장을 몸에서 떼어내 이식하는 수술이었습니다.

 

방콕 아동인권센터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신참내기 인권운동가 케이코(미야자키 아오이)는 난부를 통해 아동 매춘과 장기밀매 실태를 전해 듣고 충격에 빠집니다. 난부는 케이코와 아동인권센터의 지원 속에 사고뭉치 프리랜서 사진작가 요다(츠마부키 사토시)와 함께 끔찍한 장기밀매의 현장을 포착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취재에 나섭니다. 

 

영화는 세 지점을 교차해 가면서 도쿄로 상징되는 제국과 방콕 사이의 '어둠의 루트'를 난부의 눈으로 추적합니다. 탐욕의 봉인이 풀린 뒤 드러나는 추악한 모습이 어떤 먹이사슬을 통해 얼굴을 드러내는지를 차곡차곡 기록해 갑니다. 그리고 마치 소처럼 버릴 것 하나 없이 해체되어 이곳저곳으로 팔리는 아이들의 육신과 영혼을 두 눈 부릅뜨고 대면할 것을 요구합니다.

 

비닐봉지에 담겨 버려지는 아이들

 

  
에이즈에 걸리자 인신매매조직이 비닐봉지에 담아 쓰레기하치장에 버린 소녀가 봉지를 찢으면서 기어 나오고 있다.
ⓒ (주)씨에이엔
어둠의 아이들

영화의 오프닝에서 에이즈에 걸려 쓰러졌던 소녀는 이윽고 비닐봉지에 쌓인 채 쓰레기하치장에 버려집니다. 성 매매도 장기밀매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품가치가 끝난 것입니다. 소녀는 스스로 비닐봉지를 찢고 기어 나와 우여곡절 끝에 고향 집을 찾아가지만 치료 한 번 받지 못하고 이내 숨지고 맙니다.

 

뿐만 아닙니다. '로리타'로 불리는 아동 포르노 촬영을 위해 가방에 숨겨진 채 모텔로 옮겨지는 소녀에, 호르몬제를 과다하게 투약해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소년에, 탈출을 기도했다 초죽음이 되도록 두들겨 맞는 소년에, 변태적인 미국인 남녀에게 학대받는 소년과 소녀 등 아이들은 오직 어른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제물로 전락합니다.

 

그 와중에 인권센터에서 수업을 받던 아란야에게서 다급한 구조요청이 옵니다. 치앙마이에서 강제로 매춘을 당하고 있다는 것. 케이코는 필사적으로 소녀를 구출하려 애쓰지만 부모마저도 외면하는 가혹한 현실. 아란야는 몇 십만 원에 인신매매조직에 팔려간 것입니다. 급기야 아란야마저 에이즈에 감염된 채 비닐봉지에 버려져 쓰레기장으로 가지만 중간에 차를 탈취해 간신히 생명을 구합니다.

 

손톱 끝에 촘촘히 박힌 가난 때문에, 가족을 굶기지 않는 8살이 되어서, 일본과 미국과 태국을 잇는 탐욕과 욕망에 의해서 어린 생명들은 가격표가 붙은 다용도 소모품처럼 무참하게 꺾여갑니다.  

 

산 채로 장기를 도려내다

 

세미다큐멘터리보다는 사회고발 르포에 가까운 <어둠의 아이들>은 관객들에게 절망에 가까운 곤혹스러움을 안깁니다.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참혹하고 어두운 현실이 버젓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두 눈 뜨고 대면한다는 것은 고통 그 자체입니다. 눈을 감거나 돌리고 싶지만 그렇다고 현실이 탈색되거나 지워지지도 않습니다.

 

참혹한 어둠은 그 영역을 확장합니다. 매음굴에서 살아남는 아이 중 건강한 아이들은 장기밀매의 희생양으로 선택됩니다. 소녀의 심장을 사려는 곳은 일본. '가해자의 나라'에서 온 케이코는 난부와 함께 도쿄로 돌아와 방콕에서 심장 수술을 받기로 한 아이의 집을 수소문 끝에 찾아 갑니다.

 

케이코의 절규에 가까운 부탁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보모는 아들의 건강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지 할 것이라며 거부합니다. 방콕에서 난부가 장기밀매 현장 사진을 채증하기 위해 준비하는 사이 아동인권센터의 사무장이 살해되고, 그 역시 조직으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하지만 포기하지 않습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인신매매조직에 36만원에 팔린 센라가 산 채로 심장을 이식해 주기 위해 병원에 도착한 뒤 난부와 눈이 맞주치차 쳐다보고 있다.
ⓒ (주)씨에이엔
어둠의 아이들

요다와 함께 공항에서부터 일본인들을 뒤쫓던 난부는 마침내 병원에 도착한 센라를 봅니다. 바람결에 살랑거리는 예쁜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얼굴 가득 행복한 웃음이 퍼집니다. 깊은 우물가에서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냥 티 없이 맑은 눈망울이 난부의 두 눈과 스치듯 짧게 마주칩니다. 그리고 소녀는 산 채로 장기를 도려내는 수술대 위를 향해 또박또박 걸어갑니다.

 

아이들의 성과 장기까지 착취해 가는 제국의 얼굴   

 

2010년 6월 11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월드컵 개막식이 열리는 날입니다. 4년간 갈고 닦은 꿈을 이루기 위해 지구촌이 들끓는 함성으로 하나 되는 날, 휘슬 소리와 함께 월드컵 공인구 자블라니가 푸른 창공을 가릅니다. 자블라니의 제작사는 아디다스. 아디다스 등 전 세계 유명브랜드 축구공의 75%는 파키스탄의 5~13살의 아이들이 꼬박 12시간씩 바느질한 손끝에서 만들어집니다.   

 

매년 2월 14일. 연인들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밸런타인데이입니다. 달콤한 초콜릿의 유혹은 감미롭습니다. 하지만 초콜릿의 주원료인 이 코코아를 생산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아이보리코스트에서는 매년 1만 명 내외의 아이들이 인신매매를 당한 뒤 코코아 농장으로 팔려가 하루 15시간 이상 강제노동에 갑니다.

 

하루 종일 바느질 하느라 손가락 기형과 허리 디스크로 고통 받는 파키스탄 아이들과 굶주림과 각종 질병으로 숨져가는 아이보리코스트 아이들의 꿈은 뭘까요? "단 하루만이라도 일하지 않고 놀아 보는 것"입니다.

 

  
에이즈에 걸린 소녀가 가까스로 고향에 도착해 움막에 격리 수용된 뒤 곧 숨지자 엄마가 통곡하는 사이 아버지가 화장을 하고 있다.
ⓒ (주)씨에이엔
어둠의 아이들

이렇게 제국의 신자유주의가 개도국과 제3세계의 어느 곳까지 착취하고 학대하는지를 <어둠의 아이들>은 '잘 사는 제국'에서 온 희고 거대한 비곗덩어리가 남긴 에이즈에 감염된 소녀가 고향의 부모 곁에서 화장당하는 장면을 통해 상징처럼 보여줍니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똑똑히 묻습니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마주했으니 이제 어떻게 할 거냐"라고.

 

영화는 다시 묻습니다. 추악한 혓바닥에 유린당한 아이들의 몸뚱이가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고. 심장과 장기들이 분리된 몸뚱이는 마약을 담는 가방으로 변신해 국경과 도시를 넘나들며 운반책 노릇을 합니다. 안구는 유럽 등지의 연구소로 팔려갑니다. 그 끝자락에서 영화는 난부가 자살하는 충격적인 반전으로 관객의 뒤통수를 내려칩니다.

 

그리고 마치 관자놀이를 향해 무딘 못을 꽂듯 질문을 던집니다. "어설프게 변명하려거나 속죄하지 않고 난부처럼 죽을 용기가 있냐"고.

 

그것은 우리가 5만 원짜리 달콤한 초콜릿에 취해 있을 때나 15만 원짜리 자블라니를 차고 놀 때, 고작 애완견 한 마리 가격인 36만원에 어린 아이의 몸이 해체되는 현실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라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것은 아동 착취와 폭력의 연쇄고리를 언제 끊어 낼 것인지 우리 모두가 응답해야 할 '불편한 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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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투표 때는 다른 후보를 찍을 생각도 | 나라 돌아가는 모습 2010-05-30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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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30일.

지방선거를 3일 앞둔 우리나라의 안타까운 모습 하나 소개하련다.

 

 

<지지하지도 않는 후보를 위해 선거운동을 하기도 한다. 일당 7만 원 때문이다.

서울의 모 구청장 후보자 선거사무원인 곽 모(57.여) 씨의 경우 이웃집 아주머니의 설득으로 유세에 참여했다.

애초에 얼굴도 모르는 후보자를 위해 일하다보니 정작 투표 때는 평소 자신이 지지하는 다른 후보를 찍을 생각도 갖고 있다.

거기에다 종일 선거유세를 다니면서 집안일에 점점 소홀해지고 있다는 가족들의 핀잔도 듣는다.

하지만 7만 원씩 일당을 모아 100만 원 가량을 받으면 자녀 대학 등록금에 보탤 계획이다. >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486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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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선 | 철학자의 서재 2010-05-29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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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불교의 지하 세계 "부처는 '전쟁狂'…살육은 자비"

[철학자의 서재] <전쟁과 선>

기사입력 2010-05-29 오전 9:39:47

 

 

초 나는 <전쟁과 선>(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 지음, 정혁현 옮김, 인간사랑 펴냄)이라는 특이한 제목의 책(엄밀히 말하면 전쟁과 일본 선불교의 관계)을 읽었는데, 충격적이었고 대단히 흥미로웠다. 나 개인에게는 '올해의 책' 세 권 안에 꼽을 만한 책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그 전부터 종교에 관해 가지고 있던 오랜 질문들이 되살아났고, 새삼 지금 이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내가 종교를 가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또 무엇을 의미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거의 100년 전 양계초가 "이성적 근거 없이 종교를 믿는 것은 무조건 종교를 비판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한 말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일본 선불교의 모습이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도대체 할 수 없는 일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종교는 철학적 교리뿐만 아니라 역사적 실현 과정으로도 이해해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이 책은 다시 한 번 상기하게 해주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연인들의 진실은 "사랑한다"는 말과 헤어진 행위를 함께 고려해야 얻어질 수 있을 터이다.

서양인 승려가 쓰고, 개신교 목사가 번역하다

▲ <전쟁과 선>(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 지음, 정혁현 옮김, 인간사랑 펴냄). ⓒ프레시안
이 책의 저자인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는 서양인으로서 일본 선불교인 서토선의 승려이자 현재 일본 대학의 불교학 교수이고, 이 책의 역자는 개신교 목사이자 신학자라는 것부터 흥미 있는 일이다. 역자는 이 번역 작업에 대해 "스님이 할 일을 목사가 가로챈 것"이나 아닐까 저어하며, 한편으로 한국 개신교의 공격적이며 정복주의적인 풍토 속에서 일본 불교, 특히 선불교의 상처를 헤집는 이 책의 내용이 모종의 저열한 의도를 암시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도 있을 것을 걱정하였다.

"하지만 바보가 아니라면 기독교와 폭력의 역사에 관한 자료 층이 불교의 그것보다 훨씬 더 두껍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눈에 빤히 보이는 술수를 쓰지는 않을 것이다"고 자신하고 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 이런 변에 대한 솔직한 심정은 "이런 좋은 책을 번역해주어서 그저 고맙다"는 것이다. 영어책으로 읽지 않게 해준 데 대한 고마움, 그리고 전공자가 아닌 데도 이런 좋은 책을 찾아내는 혜안을 가진 목사님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한국 기독교가 완전히 망가진 것은 아니구나 하는 희망을 가지게 해준 데 대한 감사!

역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실 일본 불교가 과거에 저지른 범죄에 대해 나는 큰 관심이 없다. 그것은 불교가 타종교여서도, 저지른 범죄가 가벼운 것이어서도 아니다. 종교의 궁극적 관심은 자칫 근본주의로 흘러 자기 통제를 상실한 전쟁 기계 그 자체가 되는 일이 기독교사와 불교사를 위시하여 거의 모든 종교의 역사에서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거에, 그리고 오늘날에도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끔찍한 광기가 마치 종교의 고유한 유전자와 같은 것으로서 필연적이며 극복 불가능한 내재적 요인이가를 따지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질문에 대해 부정적으로 답할 수 없다면 종교는 그 자체로 극복되어야 할 대상일 것이다."

출판사 리뷰에 따르면, 이 책은 2006년에 제2판이 발간되던 당시에 이미 독일어프랑스어, 그리고 이탈리아어는 물론 폴란드어판까지 출간되어 유럽에서 열렬한 관심을 받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일본어판까지 출간된 상태이다. 특히 일본어판은 일본 불교계의 "늦어도 너무 늦은" 전쟁 참회 성명을 이끌어내는 도화선이 되었다고 한다. 이 <전쟁과 선>의 한국어판은 최근에 역시 "늦어도 너무 늦은" <친일인명사전>의 발간과 함께 일본 제국주의의 문제가 결코 지나가버린 과거사가 아니라 극복되어야 할 현재임을 일깨우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리라는 기대를 끌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불교의 지하 세계

서문에는 저자 빅토리아가 이 책을 저술하게 된 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우리에게도 매우 낯익은 일처럼 느껴졌다.

"1970년 봄 나는 선불교 지도자 니와 렘포(1905~1993)의 방에 불려갔다. 당시 그는 도쿄에 있는 에이헤이사 별원 사찰의 주지였다. 그는 내가 조동선승이자 조동선종 관계 대학인 가와지마 대학의 불교학과를 졸업한 학생이기 때문에 일본의 반베트남전 운동에서 활동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조언해주었다. 그는 나의 저항 운동이 비폭력적이며 합법적이라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선승들은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네.'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승적을 박탈당하게 될 걸세.'"

우리도 어디서 많이 보고 들은 일화가 아닌가! 저자는 이 에피소드가 자신의 생애 결정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 사건이 촉매가 되어 그는 그 후 25년 동안 선승(禪僧=선불교의 승려)이 사회와 그 구성원들, 국가와 복지, 그리고 정치와 사회적 행동주의와 어떤 관계에 있으며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대답을 구해왔다고 한다.

불교(또는 종교)는 과연 정치에 개입하지 않아야 하는가? 역사적으로 불교(종교)는 정치에 개입하지 않고 고고한 정신 세계 속에서 깨달음을 추구해왔는가? 그러한 연구를 통해 그는 자신이 "앨리스를 이상한 나라에서 모험하게 만든 유명한 토끼 구멍에 빠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하였다. 왜냐하면 그가 본 역사적인 일본 불교의 모습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불교의 지하 세계에서 만난 사상과 인간들은 지상의 그것과 정반대의 것이었다. 지하 세계에서 전쟁과 살육은 부처의 자비의 현시로 묘사되었다. 선불교의 '무아(無我)'는 천황의 의지의 명령에 절대적이며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복종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종교의 목적은 국가를 보위하고 감히 그 국가의 자기 확장의 권리에 맞서는 다른 나라와 인간들을 처벌하는 것이었다."

불교의 '무아'는 나라고 하는 불변하고 영원한 자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너와 나는 모두 연기(緣起)적 존재로서 실체가 없다는 개념이다. 연기적 존재라는 것은 나와 너를 포함한 이 세계 모든 존재자들의 근원적 관계성을 설명하는 말이다. 따라서 불교의 무아는 나, 아니 내가 나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롭게 해주고, 욕망에서 벗어나게 해주며, 세상 만물의 평등과 근원적 일치를 설명해주는 대단히 심오하고 아름다운 말이라고 평소 생각해왔다.

그런데 그 '무아'가 "천황의 의지의 명령에 절대적이며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복종"이 되다니! 저자가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의 토끼구멍'에 빠진 것 같다고 고백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를 탐험하고 다닌 느낌이었다.

예를 들면 이 이상한 나라에는 군인의 차려 자세가 선불교의 명상과 동일한 상태임을 주장하는 선불교 선사가 나온다. 선불교는 군사들의 정신 자세를 가다듬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불교 선사 및 불자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전쟁을 전심으로 돕기 위해 '자비와 충성'의 가치를 높이 들고 전장을 신앙 전파를 위한 경연장으로 생각하라고 독려하였다.

▲ 군인의 차려 자세는 선불교의 명상과 동일한 상태이다. ⓒ인간사랑

전쟁과 불교-전쟁은 불교적 자비의 표현

이 책에는 전쟁과 선불교의 관계에 관련된 또 하나의 재미있는 일화가 나온다. 러일전쟁 당시 톨스토이는 평화주의 입장에서 두 나라 사이의 전쟁을 비판하는 일에 일본의 저명한 불교 지도자들이 자신과 연대하여 협력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스즈키의 선 스승인 샤쿠 소엔(1859~1919)에게 자신과 연대하자고 요청했으나, 아쉽게도 다음과 같은 답장을 받았을 뿐이라고 한다.

"비록 부처님은 살생을 금하였으나, 그는 또한 모든 중생들이 무한한 자비의 수행을 통해 함께 연합할 때까지 평화는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르쳤소이다. 따라서 양립할 수 없는 것들 사이에 조화를 일으키는 수단으로서 살생과 전쟁은 필요한 것이오."

'분별하지 않음(무분별)'과 '자비'를 말하는 선불교 선사의 입에서 나오는 "살생과 전쟁은 필요한 것이다"는 말은 얼마나 이상하고, 얼마나 무시무시한가! 그에 비하면 평화주의를 말하는 톨스토이는 마치 어린아이같이 순진하다는 느낌마저 준다.

1905년 러일전쟁이 끝나갈 무렵 일본의 군사 활동에 대한 제도 불교의 기본적 입장을 담은 원칙들이 제시되었는데, 다음 세 가지 사항이 추가되었다. 1)일본의 전쟁은 정의로울 뿐 아니라 사실상 불교적 자비의 표현이다. 2)일본의 전쟁에서 죽기까지 싸우는 것은 부처와 천황의 은덕에 보답할 수 있는 기회이다. 3)일본의 군대는 언제든 궁극적인 희생을 치를 준비가 된 수만 명의 보살들로 구성된다.

한번 삐꺽 생각을 잘못하면 천리만리 먼 길로 사이가 떨어지는 것인가 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자비를 말하는 불교인들의 입에서 "전쟁은 불교적 자비의 표현이다"는 말이 나올 수 있겠는가? 언제든 천황과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보살들'로 구성된 일본 군대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카미카제와 일본 신사에 모셔져 있는 죽은 젊은이들의 사진들이 오버랩되며 머리가 복잡해져갔다.

이러한 이상한 나라의 승려들이 한 이상한 말들이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가득 차 있다. 예컨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 조동선의 대가이자 학자인 사와키 코도(1880-1965)는 선과 전쟁의 통합을 지지하고, "살생을 금하는 계율이 칼을 휘두르게 하는 것이다. 폭탄을 던지게 하는 것이 바로 그 계율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무슨 모순되는 말일까?

난템보는 선의 정수는 '지키(直)'라는 단어 속에 들어있다고 설명하며, 이는 일본의 정신으로서 "자비로운 살생보다 훌륭한 보살생은 없다"고 하였다. 1905년 샤코 소엔은 불교가 일본의 정신에 공헌한 것은 '자기 희생'이라는 개념이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하였다.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태도야말로 불교가 일본 정신에 공헌한 가장 자명한 것이다." 종교는 인간의 생명을 살리려는 것인가, 죽이려는 것인가?

황도불교의 탄생-석가모니불이 아닌 천황 숭배

1930년대 이후 황도불교(번역자 표현으로는 '황국의 길 불교')는 통치자의 법에 불교가 전면적이고 분명히 예속함을 의미하였다. 사이오 벤쿄(1876~1971)는 "불교에서 삼보(三寶 : 불교의 세 가지 보물. 불·법·승)를 경모하는 것은 천황의 명령을 의문 없이 받드는 것을 의미한다"고 단언하였다. "황도불교에서 원칙적으로 숭배해야 할 형상은 인도에서 태어난 석가모니불이 아니라, 그 계보를 일만 세대에 걸쳐 이어온 천황 폐하"라는 것이다. "진종은 누구든지 국가에 반역한다면 아미타불은 그를 구원 대상에서 제외할 것이다. 진종에서 황국의 국가 정책에 복종할 것을 주장하지 않는 가르침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조동선종 히야시마 토모지로(1886~1953)는 "불교는 그저 전쟁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가치를 따른다. 불교는 전쟁광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선한 전쟁을 열광적으로 지지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선한 전쟁'을 내세우지 않는 전쟁이 인류 역사상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선한 전쟁'이란 문자 그대로 '전쟁'을 의미하는 수식어일 뿐이다. 일본 불교는 나아가 천황을 금륜성왕, 또는 속세의 '여래'라고 보았다. 그러나 금륜성왕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그의 신민들에게 지혜가 결여되었기" 때문에 덕으로만 통치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법과 세금, 그리고 의미심장하게도 무기에 호소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다른 나라에 불의와 불법이 난무할 때 그는 반드시 "폭력이라는 무기를 든다"는 것이다. "불교의 관점에서 볼 때, 전쟁이 사회 진보를 촉진하는 무력으로서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화 시대의 선불교-기업과 선

이제 전쟁은 끝나고 평화의 시대가 왔으니, 불교가 전쟁에 협력했던 일은 지나가버린 과거가 되어버린 걸까? 우리는 선을 활용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보게 된다. 좌선을 통해 나온다고 추정되는 '무한한 능력'이 전장에서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전후 일본에서, 일부 사업가들은 그것을 일본의 파괴된 산업적 기반을 재건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사업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선불교를 상급자에 대한 규율과 복종, 그리고 충성이라는 전통적인 가치들을 복원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간주하였던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여러분은 무아 상태로 일해야 합니다."

사카이 토쿠겐(1912~1996)은 기업이 선불교를 곡해하는 또 하나의 예를 보여준다. 그는 신입 사원 프로그램에 관여한 지도적인 선사이다. "우리에게 할당된 과제를 수행함으로써 전 우주적 생명의 일부가 되며, 우리의 본래적인 진아(眞我)를 실현한다." 토쿠겐에게는 자신에게 할당된 임무를 성취하기 위해 무욕의 상태로 전념하는 것이 깨달음 그 자체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는 신입 사원 훈련 프로그램의 인기 강사였다. 신입 사원들에게 노동해서 얻는 이익으로서 깨달음을 약속할 수 있는 서구 기업이 있을까? 노동에 대한 보상으로 영원한 구원을 약속하는 개신교 노동 윤리는 분명 여기에서 호적수를 만난 것이 아니겠는가?

아, 선불교 지하 세계의 탐험은 너무도 어지러워 내게는 힘에 벅찬 듯하다. 양계초처럼 얼음물을 마시지는 못하더라도 찬 물이라도 한 잔 들이켜야겠다. (양계초는 자신의 서재를 '얼음물 마시고 정신차리는 방(飮氷室)'이라고 불렀다.)

'철학자의 서재'는 <프레시안>과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서평 연재입니다. 매주 주말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철학자들이 심사숙고해 선정한 책을, 철학자가 직접 심혈을 기울여 쓴 서평으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김제란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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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 100년·38] 러일전쟁을 향해 | 역사 속 - 이것이 궁금하다 2010-05-2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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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프레시안 www.pressian.com>

 

중국은 '거대한 사냥감'…한국은 먹을 게 없어!

[망국 100년·38] 러일전쟁을 향해

기사입력 2010-05-28 오후 2:45:33

 

 

1900년 무렵 세계 제1의 강국은 단연 영국이었다. 19세기 유럽 성장의 중심축인 기계 공업 위주 산업화를 18세기 말 앞장서 시작함으로써 획득한 우위가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을 계기로 확고하게 굳어져 19세기를 '대영제국 영광의 세기'로 만들었다.

영국의 생산력에 대한 심각한 경쟁은 1870년대 이후 독일제국에 의해 비로소 제기되었다. 19세기의 산업화는 석탄과 철광의 분포에 따라 벨기에 지역을 거쳐 독일 지역으로 확산되어 갔는데, 1871년 독일제국의 성립으로 산업의 힘이 국가의 힘과 결합할 계기를 맞은 것이었다. 독일은 산업화의 후발국이었지만 후발국의 이점을 활용하는 입장에서 영국의 생산력과 군사력을 빠른 속도로 추격해 갔다.

20세기로 접어들면 영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한 양극화가 뚜렷해지게 되지만, 1890년대까지는 영국에 대한 도전자로서 독일의 위치가 아직 그렇게까지 확연하지 않았다. 영국의 오랜 라이벌 프랑스, 그리고 신흥 강국 러시아가 독일과 나란히 어깨를 겨루고 있었다.

후진국이면서 큰 덩치를 가진 러시아가 1890년대까지 영국에게 몹시 신경이 쓰이는 상대였다. 크리미아전쟁(1853~56) 때 산업화에 형편없이 뒤진 나라이면서도 만만찮은 저력을 보인 러시아였다. 서유럽 국가들이 바다를 통해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는 동안 러시아는 독점적으로 시베리아를 경영하고 이슬람권의 배후로 진출할 길을 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제국주의 경쟁의 가장 큰 표적인 중국에 배후로부터 접근하고 있었다.

중국은 16세기 초 유럽인이 인도양에 진출할 때부터 세계 최대의 보물 창고였다. 중국과의 교역은 유럽 상인들에게 최고의 사업이었다. 아편전쟁(1839~42)은 침략이 아니라 이 사업을 늘리는 데, 즉 개항 그 자체에 목적을 둔 것이었다.

제2차 중영전쟁(1856~60)의 목적은 그보다 적극적인 것이었다. 이 시점에서는 유럽의 산업화가 많이 진행되어 있고, 플랜테이션 등 식민지에서 산업 원료를 확보하는 방법도 발달해 있었다. 이제 중국에서도 사치성 상품의 반출에 그치지 않고 근대 산업의 원료 획득과 상품 판매를 위한 종속적 위치를 요구하게 되었다.

유럽인이 추구하는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는 19세기를 지내는 동안 변화를 겪었지만, 중국의 거대한 경제적 가치는 줄어들지 않았다. 유럽에서 먼 위치 때문에, 그리고 중국의 강력하고 안정된 정치 조직 때문에 그 가치를 바로 활용할 수 없었지만, 유럽의 산업화가 진행되어 나갈수록 중국의 투자 가치는 더욱더 자라나고 있었다.

제2차 중영전쟁 때까지 중국 진출에 앞장선 것은 해상 활동력을 가진 나라들이었다. 포르투갈이 16세기 초 이 해역에 진출한 이래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 해상 세력들이 중국 교역에 앞장서 왔다. 그런데 1858년 러시아가 청나라와 아이훈 조약을 맺으면서 경쟁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당시까지 북대서양에서 중국 해안까지 항해하는 데는 반년이 걸렸다.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고도 3개월이 걸렸다. 시베리아 횡단 육로는 해로보다 유리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러시아가 1891년 착공한 시베리아철도가 만주를 가로지르는 동청철도와 연결되어 1903년 페테르부르크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여객 운송을 시작했을 때 운행 시간이 열흘 안쪽이었다.

러시아는 1913년까지 시베리아철도에 15억 루브르를 투입했다. 당시까지 어느 유럽 국가도 하나의 사업에 이렇게 큰 투자를 한 일이 없었다. 유럽의 내륙국이던 러시아를 동아시아 진출의 선봉으로 만드는 사업이었다. 유럽과 극동 사이에 물자와 병력을 보름 내에 옮길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열강들과 비교할 수 없는 전략적 이점이었다.

중국에 관심을 가진 다른 유럽 열강, 특히 영국은 거대한 전략적 가치를 가진 시베리아철도 부설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1885년 영국의 거문도 점령도 극동 지역에서 러시아 세력의 성장에 대한 영국의 경계심을 보여준 일이다.

시베리아철도 건설이 절반쯤 진행됐을 때 러시아에 유리한 상황이 중국에서 전개되었다. 청일전쟁의 타결에 독일, 프랑스와 함께 개입한 삼국간섭(1895)이었다. 이것을 계기로 러시아는 이듬해 동청철도 부설권을 청나라에게 얻어냈다. 만주를 가로질러 치타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연결하는 동청철도는 러시아 국경 내로 연결되는 본선보다 거리를 크게 단축시켜줄 뿐 아니라 중국 중심부로의 진입로도 마련해 주는 쾌거였다.

1898년 여순을 조차하면서는 하얼빈에서 여순에 이르는 동청철도 지선을 깔아 중국 중심부로 향한 길이 완성되었다. 이 지선은 러일전쟁 후 일본에게 넘어가 남만주철도라는 이름으로 만주철도(滿鐵) 사업의 출발점이 된다.

▲ 러시아는 유럽의 동쪽 끝, 미국은 유럽의 서쪽 끝에 있는 나라였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는 동쪽으로, 미국은 서쪽으로 대륙을 개척해 각자 태평양에 이르렀다. 19세기에 서부 개척을 시작한 미국보다 17세기에 시베리아를 가로지른 러시아가 훨씬 앞선 출발이었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이르러 미국이 '태평양 세력'으로 일어선 반면 러시아는 일본에게 가로막힌다. 미국의 대륙횡단철도가 러시아의 시베리아철도보다 30년 앞섰다는 사실이 이 차이를 가져온 중대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프레시안

영국은 청일전쟁 전까지 열강의 중국에 대한 침략을 억제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다른 열강에 대한 상대적 우위를 지키기 위한 방어적 전략이었다. 영국인 로버트 하트가 1863년부터 청나라 총세무사를 맡아(하트는 1907년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청나라 재정을 관리해 줬고, 청나라와 열강 사이의 분쟁에도 영국이 앞장서 조정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청일전쟁 후로는 일본에게 손길을 돌렸다. 청나라의 자위 능력이 한계에 이른 것으로 보았고, 만만치 않은 상대로 자라난 독일, 지정학적 이점을 가진 러시아가 오랜 숙적 프랑스와 힘을 합쳐 밀고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일본과 손잡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청일전쟁 개전 직전인 1894년 7월 영국이 일본과의 불평등조약을 개정해 준 것이 일본과 새로운 관계의 출발점이었다.

이 단계에서 영국 금융자본의 역할에 주목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이때는 산업자본주의가 금융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시점이었고, 영국의 우위가 산업 분야보다 금융 분야에서 더 확고한 상황이었다. 영국의 금융자본 중에는 몇 세대 사이에 대륙에서 건너온 유대인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서 유대인을 박해하는 러시아에 적대감을 품고 일본을 적극 도왔다고 하는 설명이 나온다.

전체적 흐름을 결정할 만큼 큰 요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부분적 요인으로라도 작용했을 개연성은 있다. 실제로 러일전쟁 때 일본이 로스차일드가로부터 많은 전비를 융자받았기 때문에 일본이 큰 배상금을 얻지 못한 채로 전쟁이 종결되자 "재주는 일본이 넘고 돈은 로스차일드가 벌었다"는 취지의 풍자가 떠돌았다고 한다.

이 시기 러시아 정책의 한 중요한 측면을 대표한 사람이 세르게이 비테(1849~1915)였다. 비테는 1889~91년 철도청장을 지내면서 시베리아철도 건설 계획을 세우고, 1891년부터 1903년까지 교통장관과 재무장관 등의 위치에서 철도 건설과 산업화를 지휘했다. 일본과의 전쟁을 불사하는 호전적 극동 정책에 반대하다가 실각했으나 러일전쟁 전황이 불리하자 강화회담 대표로 다시 기용되었고 수상에 임명되었다. 포츠머스 회담에서 최대한 러시아에 유리한 협상을 이끌었고, 수상으로서 제국의회(Duma) 설치와 입헌정치 시행 등 중요한 개혁의 방향을 세웠다.

경력 자체에 드러나는 것처럼 비테는 러시아 근대화의 지도자였다. 그는 일본과의 대립을 최대한 피하려 했다. 일본을 영국 편으로 몰아붙이지 않으면서 경제적 수단을 통한 만주 진출을 꾀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관파천 이래 고종이 매달리는 것을 니콜라이 2세가 뿌리치지 못한 것은 욕심 때문이었고, 차르의 의중에 영합하는 소위 궁정파가 러시아를 일본과의 전쟁으로 몰고 갔다. 니콜라이 2세는 러일전쟁이 끝난 뒤에야 또 도움을 청하는 고종에게 국내 사정이 힘들어 도와줄 여력이 없다는 거절 편지를 처음으로 보냈다.

일본은 1889년 2월 헌법 발포를 전후해 국민 개병제 실시, 지방 제도 개편 등으로 근대국가를 궤도에 올렸다. 이후 몇 년 동안 경제 불황과 정치 혼란 속에서도 군비 증강을 꾸준히 계속한 결과 청일전쟁으로 도약의 계기를 맞았다. 메이지 헌법에서 군을 천황 직속으로 하여 정부로부터 독립시켜 놓은 점이 후에 군국주의로의 흐름을 막지 못한 구조적 문제로 지적되는데, 헌정 출범 당시에 청나라와의 대결을 준비해야 했던 상황으로는 군부의 독립이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청일전쟁의 결과는 일본에게 대박이었다. 3국간섭으로 요동반도를 게워냈지만 대만을 획득하고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확립했다. 배상금 2억3000만 량은(그중 3000만 량은 요동반도 포기의 보상) 당시 청나라 공식 세입의 3배였고 일본 국가 세입의 4배였다. 산업 발전과 군비 증강을 여러 해 동안 나란히 추진할 재원이 마련된 것이었다.

현실적 이득 못지않게 중요한 소득이 국격 향상이었다. 함포외교 앞에서 맺은 불평등조약의 개정이 메이지 유신 이래 국가적 과제였는데, 이제 열강의 일원으로 인정받으면서 조약 개정의 길이 활짝 열렸다. 이로써 일본은 열강의 침략 대상의 위치를 벗어나 열강의 협력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선 것이다.

1900년 의화단 사건 때는 북경진주하는 연합 8개국의 대열에 2만여 병력으로 당당히 참여했다. 이 대규모 병력 동원으로 일본은 중국 쟁탈전에서 자기네 유리한 입장을 서양 열강들에게 과시했다. 이 때 러시아는 10만 병력을 만주에 투입했는데, 일본은 러시아군과 대비되는 엄정한 군기를 지킴으로써 열강의 신뢰를 얻는 데 힘썼다. 당시의 일본은 신뢰를 잃어 가는 청나라를 대신해 "동아시아의 헌병"으로 열강의 인정을 받고자 했다.

러시아는 영국과 미국의 촉구에 응해 1902년 봄에 만주로부터 철군을 시작했으나 이듬해 초 비테가 실각한 후 철군을 중단하고 오히려 여순의 요새화 등 더 적극적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 견제에 뜻을 같이 하는 영국과 미국이 일본을 지지하는 분위기가 강화되었다.

러일전쟁에서 영일동맹의 중요성은 널리 인식되어 온 것인데, 이삼성은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한길사 펴냄) 2권에서 여기에 미국까지 넣어 "영-미-일 제국주의 카르텔"을 이야기한다. 영국처럼 드러난 입장은 아니라도 미국이 음양으로 일본에 도움을 준 사실을 부각시킨 것은 좋은 관점이라고 생각된다.

미국은 유럽의 변경에서 출발해 대륙을 개척해 나간 끝에 태평양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러시아와 대칭되는 위치에 있던 나라였다. 러시아가 17세기 말에 이미 태평양에 도달한 데 비해 미국의 출발이 크게 늦었지만 19세기 말에는 '태평양 국가'로서의 위상에서 미국이 앞서 있었다. 최초의 아메리카 대륙횡단 철도가 1869년 개통된 것이 결정적 차이를 가져왔다. 19세기가 끝날 무렵 미국은 하와이편입하고 필리핀과 괌을 경영할 만큼 활발한 해군력을 태평양에 펼치고 있었다.

당시의 미국에게 필리핀과 괌은 그 자체로 큰 경제적 가치가 있는 식민지가 아니었다. 미국의 시선도 그 끝은 중국에 꽂혀 있었다. 프랑스가 베트남에, 영국이 인도에, 러시아가 연해주에 중국을 향한 전진 기지를 두고 있던 것처럼 미국도 태평양 건너편에 전진 기지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 전진 기지를 확보하는 데도 현지인의 반발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미국은 중국 진출에 독자 노선을 추구하기보다 자신에게 유리한 파트너를 찾고 있었다. 유능한 파트너를 만난다면 자기네가 주니어 파트너 역할을 맡을 용의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의 열강은 중국이라는 미증유의 거대한 사냥감을 놓고 어떤 접근 방법이 적당할지 모색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제국주의적 태도로 동맹과 연합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3국간섭에 프랑스와 독일이 참여했지만 동맹 수준의 확고한 공조가 아니었다. 서로서로 견제하며 일시적 균형을 이루고 있던 상황이 의화단 사건에 이은 러시아의 만주 진출로 깨졌다. 러시아는 여러 나라의 질시 대상이 되고 몇 나라가 일본을 그 대항마로 선택했다.

고종의 대한제국은 을미사변으로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을 견제했던 방식으로 상황을 계속 풀어나가기 바랐다.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고 개입을 피하려 하는 열강을 끌어들이기 위해 이 나라 저 나라에 이권을 퍼주기 바빴다. 특혜를 가지고 측근들의 충성을 확보하려 한 고종의 행태가 그대로 확대 복사된 정책이었다.

그러나 열강들에게 한국은 중국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의 한낱 주변 요소일 뿐이었다. 반면 일본은 적으로 삼느냐 편으로 삼느냐에 따라 득실이 크게 갈리는 중요한 상대가 되었다. 일본의 미움을 사면서까지 매달릴 만한 큰 이권을 한국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유일하게 일본을 적대할 만큼 적극적 태도를 보인 것이 러시아에서 비테를 실각시킨 베조브라조프 등 궁정파 세력이었다. (☞필자의 블로그 바로 가기)

 


/김기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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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회빈강34] 옥사가 벌어지는 궁궐 | - 소현세자 2010-05-28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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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 - 내가 온 몸으로 운 까닭 | 영화 이야기 2010-05-28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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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 - 내가 온 몸으로 운 까닭
강철군화의 시대, 시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10.05.27 16:40 ㅣ최종 업데이트 10.05.27 16:41 김홍기 (film2907)
  
▲ 영화 <시> 주인공 미자가 시상을 떠올리며 메모하는 장면
ⓒ 파인하우스필름

 

S#1 강철군화의 시대, 시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강철군화>는 고전의 반열에 든 소설 <늑대개>의 작가 잭 런던이 쓴 작품이다. 1908년에 발표된 이 소설에서, 작가는 경제적 부를 독점한 소수가 지배하는 과두제 사회를 그린다. 문제는 그가 상상력을 통해 추출해낸 소수사회의 비전이 오늘날 융기하는 사회문제들의 형상과 동질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20세기 초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갈등을 묘사한 르포문학이자 파시즘을 예언한 작품 <강철군화>. 소수 자본가를 위해 충성하는 비밀경찰과 군대가 노동자들이 '혁명'을 꿈꿀 수 없도록 감시하고 폭력을 행사한다.

 

영화 <시>와 소설<강철군화> 사이엔 직접적 상관관계는 없다. 영화 속 파출부 생활을 하며 생활보호대상자로, 딸의 이혼 후 맡겨진 중학생 손자 동욱과 사는 양미자. 그녀를 둘러싼 사회의 풍경은 <강철군화> 속에 묘사된 그것과 닮았다. 성폭행을 당한 후 자살한 여중생을 둘러싼 중산층과 교육 담당자들이 보이는 은폐 기도는 가진자의 범죄는 잊혀지고, 무산자의 범죄는 형벌 당하는 이중적 모순의 사회적 자화상일 뿐. 영화 <시>는 이런 시대의 외피 속에서, 여린 꽃잎같은 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저항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 영화 <시> 성당에 온 양미자
ⓒ 파인하우스 필름

S#2 꽃이 흐른다, 물 위의 잔영 위로

 

영화에는 물과 꽃의 중첩된 이미자가 자주 등장한다. 양미자는 밝고 화사한 꽃무늬가 찍힌 옷을 즐겨 입는다. 모자와 스톨까지 걸친 그녀의 모습은 한 마디로 한송이 무르익은 꽃의 현현이다. 그녀는 우연히 문화센터에서 시 강의를 들으며 시작에 몰두한다. 강사로 출연한 김용탁(택)은 실제 시인이다. 연기인지, 실제 강의인지 구분이 가지않는 자연스런 느낌을 발산하는 시인의 연기가 돋보였다. 그의 말이다. "시는 아름다움의 세계를 표현합니다. 저는 어린시절 예쁘게 깍은 연필과 백지만 있으면 배가 불렀습니다. 그것은 순수한 가능성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라고. 그렇다. 시는 새롭게 잉태할 수 있는 희망을 벼리는 가능성의 넒은 우주를 담는다.

 

  
▲ 영화 <시> 시상을 찾아 메모하는 그녀, 그녀가 입은 옷에 주목해보라
ⓒ 파인하우스필름
영화 시

그녀는 시인을 통해 사물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시상을 떠올리기 위해 일상을 새롭게 발견하려 노력한다. 내가 지금껏 먹었던 사과를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었는지, 속살을 쪼개고 맛보고, 껍질의 톳톳한 느낌을 이해해본다. 그럼에도 글은 쉽게 실타래 풀리듯 잉태되지 않는다.

 

이때 물 위로 여중생의 사체가 떠오른다. 아이의 이름은 박희진. 아네스란 세레명을 갖고 있다. 사건의 배후에는 손자 동욱이도 포함되어 있다. 학교 담당자들과 가해가의 아버지들은 돈으로 '화해'를 이루려 부단 애를 쓴다. 황미자가 시로 그리려 했던 아름다움의 세계에 침범한 이 담즙 같은 세상. 그녀는 진저리친다.

 

시 낭송 모임 후 회식자리에 들어온 김용택 시인과 황병승 시인(영화에 실제 시인으로 등장한다)은 시의 희망론과 무용론을 늘어놓는다. '시가 죽어간다'고. 시가 죽어간다기 보다, 글의 진정성과 휴머니티를 담아내야 할 그릇인 세상이 온통 균열의 틈새로 가득해서는 아닐까?

 

  
▲ 영화 <시> 사과를 관찰하는 양미자
ⓒ 파인하우스 필름
윤정희

S#3 한 편의 단아한 시를 쓰기 위하여

 

영화 <시>는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당당히 말하련다. 그 이상의 상을 받았어야 했다고. 그러나 한편으론 조심스럽다. 문학적 상상력이 기반한 탄탄한 각본 위에, 덧입혀진 영상은 철저하게 계산된 듯한 배열로 맥이 빠진다. 양미자가 손자를 위해 돈을 구하러 가는 모습, 죽어간 아네스를 생각하며 물가에서 비오는 날, 모자를 날려버리고 빗물에 축축하게 젓은 백지 위로 시를 써내려 가는 모습, 이후 비에 젖은 채 피간병인인 회장과 육체관계를 맺는 그녀.

 

기호학을 들먹이자면, 물가는 죽음과 망각의 공간이다. 자신의 내면속에 끓어오르는 죄책감을 지우기 위해, 단아한 시 한편을 남기고 싶은 그녀. 비가 내린다. 정화의 의미다. 이제 마지막 남은 것은 속건제일 뿐. 비에 젖은 채 자신이 간병하는 '회장과 관계를 맺는다. 마초이즘과 성폭력, 남성들의 거세된 욕망을 상징하는 그와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손자를 포함한 5명의 아이들의 손에 죽어간 아네스를 생각하고, 동일한 값을 치러 죄의 사함을 얻는다.

 

  
▲ 영화<시> 노래방 장면
ⓒ 파인하우스필름
이창동

영화 속 그녀는 알츠하이머 환자다. 치매 초기증상의 그녀는 지금껏 배워온 명사들을 하나씩 망각한다. 이어서 동사를 잊게되면 곧 죽음을 맞는다. 언어체계가 사멸하는 과정이 어찌 인간의 삶과 닮았음을, 그 유사관계를 발견하게 된다.

 

어느 시인은 죽음을 앞두고 모든 언어를 잊어간다고, 그저 갓 태어났을 때, 엄마에게 사용하던 짦은 단어만이 떠올랐고 이 언어로 시를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는 관습의 무게에 억눌린 사회의 사물, 언어의 외피를 뚦는 은빛탄환이다. 그리고 그 탄환을 빚는 힘은 인간의 영혼속에 잠재된, 아름다움을 찾는 욕구다. 이 느낌이 곧 시로 탄생한다. 잊지말자 순수해야 함을.

 

이제 그녀는 시를 쓸 수 있다. 정화된 몸으로, 상처가 더깨더깨 누적되어 혀의 무게를 누르는 시간을 넘어갈 시간이다. 결말은 어떻게 될까? 어차피 영화 속에서도 짙은 암시만을 남긴 열린 결말만 선보인다. 시의 가능성이 하나의 의미로 고착되어 해석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일 거다. 각본상 수상작답게 영화 속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사유해볼 만한 언어다. 이렇게 좋은 각본에 0점을 부여한 영진위는 화 있을진저.

 

동 시대에 이창동 감독과 같이 좋은 분과 함께 호흡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시의 무용론이 판치는 시대, 여전히 유효한 시의 힘을 보여준, 이창동 감독의 <시>, 놀랍고도 놀랍다. 이런 영화가 자꾸 상영관 숫자가 줄다니, 그들의 표현을 빌어 '유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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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가 상태 | 기타 - 잡동사니 2010-05-27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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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상실로 인해 과거를 잊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푸가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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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감독' 이창동과 '정치꾼' 유인촌 | 영화 이야기 2010-05-2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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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감독' 이창동과 '정치꾼' 유인촌
영화 <시>의 칸 각본상 수상 '비하 논란'을 보며 진화를 생각하다
10.05.26 16:07 ㅣ최종 업데이트 10.05.26 16:46 박기훈 (kihun95)

 

이창동
  
영화 <시>로 제63회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이창동(56) 감독과 주연배우 윤정희(66)가 23일 프랑스 칸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취재진에 손을 흔들고 있다.
ⓒ 뉴시스
이창동

잘 알다시피 이창동은 본래 소설가다. 글쟁이 출신답게 그의 작품은 영화라기보다는 한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이번 작품(영화 <시>)도 예외는 아니어서, 진정 영화적 문법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아무래도 마땅찮은 느낌이 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와 소설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의 미덕을 충분히 구분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시>는 대단한 작품이다. 나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동안 자리를 뜰 수 없었다. 감독이 나에게 던진 화두와 끝없이 흐르던 눈물이 설혹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할지라도, 도저히 그 자리를 쉽사리 박차고 일어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의 초기 작품들은 현실의 구조에 종속된 인간의 고통을 다룬 리얼리스트 박광수(이창동은 처음에 박광수의 영화작업을 도와주며 감독수업을 하였다)의 완성도 높은 아류작이었다(박광수의 <그들도 우리처럼>과 이창동의 <박하사탕>을 비교해보라).

 

그러나 이제 그는, 현실에서 고통 받는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리얼리즘의 기반위에서 용서와 구원, 이해와 같은 인간 내면의 성찰적인 화두들을 원숙하게 덧입히고 있다. 

 

확실히 이창동은 진화하고 있다. 그의 영화적 리얼리즘은 <시>에 의해서 거의 완성되었다. <초록물고기>나 <박하사탕> 그리고 <오아시스>도 훌륭했지만, <밀양>이 보여준 용서와 구원에 대한 지극히 인간적인 성찰을 따라가지는 못했다. 그런데 <시>는 밀양보다 더 훌륭하다. <밀양>이 용서하고 싶은 사람의 내면을 그린 작품이라면, <시>는 용서받고 싶어 하는 사람의 고통을 그렸다. (내가 볼 때) 후자가 전자보다 더욱 어렵다.

 

영화 <시>, 그리고 영화감독 이창동의 진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의 한 장면.
ⓒ 파인하우스필름
이창동

잘 알다시피 칸영화제는 <시>에게 각본상을 선물했다. 평소 이창동의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3대 영화제에서 아직까지 최고 작품상을 타지 못했던 속물적 아쉬움을 이 영화가 풀어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각본상이라는 '아쉬운' 결과가 나와서 약간은 속상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제의 상이 예술의 세계를 측정하는 바로미터가 될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1등주의의 피식민자인 나 같은 이들에게, '칸'의 결정은 아무래도 아쉬웠다.

 

그런데 이런 결과에 대해 나 같은 사람들과는 다른 종류의 '아쉬움'을 느끼는 이들이 있는것 같다. 한 언론에 따르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 장관이 "각본상은 작품상이나 연기상에 비해 순위에서 밀리는 것"이라며 "(칸 영화제 심사위원을 맡았던) 이창동 감독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준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문광부는 이를 부인했다. 오히려 유장관이 "<시>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지 못한 것에 대해 여러 차례 아쉬움을 표명하였고 '아니면 윤정희씨가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면 좋았는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엔 아마도 둘 다 사실일 것 같다. - 물론, 나의 이러한 판단이 틀린 것일 수도 있다. 말 한 번 잘못하면 명예훼손에 걸리는 무서운 세상에서, 괜한 확신은 피하고 싶다. - 하지만, 유인촌 장관의 상반된 언사가 모두 사실이라는 추정은, 여러 가지 정황증거로 볼 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영화인'에서 '고급 정치관료'로 진화한 유인촌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 남소연
유인촌

사실상 정부 산하기관인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마스터영화 제작지원사업 심사위원 중 한 명은 세계 최고 권의의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시>에 대해 "시나리오가 각본이 아니라 소설 같은 형식"이라며 0점을 주었다고 한다. 바로 그것이, "특수매직으로 적힌 1번" 혹은 "북한 아니면 누가 우리 잠수함을 쏘겠는가!" 등의 정황증거에 비해, 더 개연성 있는 것이지 않겠는가?  

 

유인촌 장관은 많은 이들이 무시하는 것처럼 예술적 안목이 부족한 사람이 절대 아니다. 그는 대학원까지 다니며 정식으로 연극·영화학을 연구했고, 중앙대학교 예술대 교수, 같은 대학 아트센터 소장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또한 전 시대 최고의 연기파 배우이기도 했다. 일례로 임권택 감독의 <연산일기>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는, 지금도 역대 연산군 역중 단연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다시 말하면, 영화에 대해 이론적·실제적 안목을 (그가)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이점에서, '영화인 유인촌'이 '정치인 유인촌'으로 완전히 진화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영화인(예술가적 개인)으로서는 <시>의 작품성을 높이 평가하되, 장관(정치관료적 개인)으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뜻일 것이다.

 

그가 보기에 <시>는 불순한 정치·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 작품이다. 아무리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는 다른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면, 이는 폄하되어야 하고 진압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그는 지니고 있는 듯하다. 이제 그는 '영화인'에서 어엿한 '고급 정치관료'로서 의식의 진화를 이룩해 낸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메시지 "시는 죽었다"

 

작년 이맘 때쯤 노무현은 우리 곁을 떠났다. 바보 노무현에 대한 인간적인 성찰을, 그의 친구인 이창동이 <시>를 통해 (중의적으로) 보여주었다면 지나친 확장일까? <시>는 용서, 순수함, 성찰 등의 내면적 주제들을 우리에게 던져주는 동시에, 저 세상으로 간 어느 '바보'에 대한 '헌정'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통해, 비로소 '정치인 노무현'은 '인간 노무현'으로 우리곁에 진화하게 되었다.

 

<시>에 나오는 인물들의 상당수는 지극히 현실적인 속물들이다. 그들은 현실적 조건이라는 핑계로 용서, 성찰, 반성과 같은 '순수 이성'을 완전히 망각한다. 현실의 곤궁함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 개인적 죄책감 등이 뒤엉킨 상황에서 시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순수하게 성찰하고자 했던 주인공(양미자, 윤정희 분)의 고통은, 속물인 주변인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영화에서 나오는 "시는 죽었다"라는 어느 술 취한 젊은 시인의 주정은,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죽어버린 시의 세계에서, 진정어린 그 무언가를 쓰고 싶었던 양미자는 괴로워한다. 이런 척박한 세상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혹은 마감할) 여중생(혹은 주인공, 혹은 어느 바보)에게, 그녀는 가슴 시린 '시'를 헌정한다.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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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회빈강33] 궐 밖으로 상자를 내보낸 세자빈 | - 소현세자 2010-05-2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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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까지 요동치게 만든 [조선일보]의 창작비밀 | 감시받아야 할 言論 2010-05-2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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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까지 요동치게 만든 <조선일보>의 창작비밀
천안함 지식인 성명 기사... 당사자 "완전히 날조해 쓴 기사"
10.05.26 14:15 ㅣ최종 업데이트 10.05.26 14:45 문성 (mhb1251)

'인간어뢰' 기사로 한국문단(?)을 평정한 <조선일보>가 내친 김에 중국까지 진출하려다 국제적 망신을 당했습니다.

 

중국의 진보적 지식인 80여 명이 천안함 사건 이후 중국 정부가 북한 정권의 붕괴까지 염두에 둔 과감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성명을 20일 유토피아 사이트에 발표했다는 21일자 <조선일보> 기사(A6)에 대해 실명이 거론된 중국 연구원이 "악의적으로 날조된 기사"라며 항의하는 성명을 22일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중국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의 줘따페이 연구원은 "천안한 사건 이후 천안함이나 북한과 관련한 어떤 글도 발표한 적이 없"고, "지해범이라는 기자를 전혀 알지 못"하며 "천안함 사건 이후에 한국 기자의 취재를 받은 적도 단 한번도 없"는데도, 조선일보 기사에 자신이 일면식도 없는 허칭 교수 등과 함께 천안함 관련 글을 공동으로 발표했다는 내용이 실렸다며 "전혀 존재 자체가 없는 글을 완전히 날조해 쓴 기사다"고 개탄했다는 겁니다. 

줘 연구원은 특히 <조선일보>가 줘 교수 등 중국 진보 지식인들이 "(북한 정권이 붕괴해) 미군이 압록강 연안을 순찰하고 백두산에서 보초를 서면 중국의 많은 학자들은 편안히 잠자리에 들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쓴 글에 대해, "<조선일보>의 기사에서 언급된 내용은 완전히 중국 극우파들이나 주장하는 내용"이고 "내 입장은 완전히 <조선일보>에서 날조된 내용과 상반된다"며 "내 뜻과 완전히 상반된 내용이 내 이름으로 기사에 나갔다"고 격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줘 연구원은 "<조선일보>나 이 기사에 대해 알지도 못했는데, (기사에 언급된) 유토피아(우요우즈샹·중국 좌파들의 사이트)에서 연락이 와 기사를 읽게 됐고, 너무 놀라고 기가 막혔다"면서, "지면과 인터넷에서 이 기사를 바로잡고, 먼저 사과할 것"을 <조선일보>에 요구하는 한편, "한국 독자들이 이 기사가 완전한 날조임을 정확하게 알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하기까지 했다네요.

여기서 잠깐. 대륙까지 요동치게 만든 조선일보의 상상력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26일자 2면에 실린 '바로잡습니다' 기사에 그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달랑 두 문장으로 구성된 전문을 감상해 보시죠.

"지난 21일자 A6면 "중, 과감한 조치로 '북한의 인질'에서 벗어나라" 기사 중 '줘따페이(左大培)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과 허칭(河淸) 저장대 교수 등 80여명이 발표한 글'이란 부분과 관련, 이 글은 학자들이 단체로 발표한 것이 아니라 해당 사이트의 한 회원이 쓴 것으로 확인되었기에 바로잡습니다. 기사에서 거명된 두 분께 사과드립니다."

어떻습니까? "해당 사이트의 한 회원이 쓴 것"을 뻥튀겨 "줘따페이(左大培)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과 허칭(河淸) 저장대 교수 등 80여명이 단체로 발표한 글"로 둔갑시킨 조선일보의 작문실력이? '대한민국 일등신문'이란 타이틀이 괜히 주어진 게 아닙니다. 조선일보 기자로 행세하려면 '팩트' 따윈 과감히 포기하고 '픽션'을 그려낼 수 있는 '강심장'이 있어야 된다는 거, 이제 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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