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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의 한이 서린 '영월부 관아' 사적으로 지정된다 | - 조선시대 2015-09-30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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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의 한이 서린 '영월부 관아' 사적으로 지정된다

노컷뉴스 | CBS노컷뉴스 임기상 선임기자 | 입력 2015.09.25 09:37

 

객사 (사진=문화재청 제공)
객사 (사진=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은 강원도 영월군에 있는 '영월부 관아(寧越府 官衙)'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했다.

영월부 관아는 조선 시대 영월부의 행정관청으로,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1441~1457년)이 비극적인 짧은 생을 마감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현재 이곳에는 사신이나 관리들의 숙소 등으로 사용되었던 객사(客舍)와 누각 건물인 자규루(子規樓)가 남아 있다. 객사는 1396년(태조 4)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1791년(정조 15년)에 고쳐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서익헌(西翼軒), 중앙 정청(正廳), 동익헌(東翼軒)이 일렬로 배치된 구조로, 특히 동익헌에는 ‘관풍헌(觀風軒)’이라는 편액(扁額)이 걸려 있다.

 

1457년(세조 3) 노산군으로 강봉된 단종이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었다가 홍수가 나자 처소를 옮겨 관풍헌을 침전으로 사용하였다고 하며, 단종은 같은 해 10월 사약을 받고 관풍헌에서 승하하였다고 전해진다.

 

자규루 (사진=문화재청 제공)

 

자규루 (사진=문화재청 제공)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인 자규루의 원래 명칭은 ‘매죽루(梅竹樓)’였다.

관풍헌에 머물던 단종이 이곳에 자주 올라 소쩍새의 구슬픈 울음소리에 자신의 처지를 빗댄 시(자규시)를 읊었다고 하여 ‘자규루’라 불리게 되었다.

 

2013년과 2015년에는 영월부 관아에 대한 발굴조사가 시행되어 건물지, 박석시설, 보도시설, 내삼문 터를 비롯하여 객사의 내삼문으로 연결되는 중앙 보도시설, 관풍헌과 자규루로 연결된 보도시설 등을 확인하였다.

 

이처럼 영월부 관아의 객사는 조선 후기에 고쳐 지을 당시의 터와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비운의 왕 단종의 애달픈 삶이 전해지는 역사적 장소라는 의미를 지닌 곳이기도 하다.

[CBS노컷뉴스 임기상 선임기자] kisangli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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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보면 달이다. | 알려드립니다. 2015-09-3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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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특집 이벤트 참여

이번 추석에 보름달 찍긴 했는데

영 ~~ 화질이 엉망이라서 ^^

 

달이 꼭 빛나야만

달이 아니다.

그저 저런 달처럼.....누구나 척보면 달이다,라고 생각된다면 달이다.

 

그런 사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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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기효과(catfish effect) | 생각해 봅시다 2015-09-30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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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기효과(catfish effect)란

 

옛날 노르웨이 어부들이 먼 바다에서 청어를 잡아 운반하면서 청어의 천적인 메기 몇 마리를 수조에 넣으면 청어들이 메기로부터 살아 남으려고 애쓰면서 싱싱한 청어를 운반할 수 있었다는데서 유래한 것으로 기업경영에 접목한 이론이다. 냉장시설이 없던 과거 북해어장의 유럽 어민들이 청어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실제 썼던 방법이다.

‘메기이론’은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역사학자였던 아널드 토인비 박사가 즐겨 사용했고,

국내에서도 1993년 삼성 이건희 회장이 경영혁신을 내세우며 인용하기도 하는 등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적절한 위협과 자극이 필요하다는 신경영의 핵심이론으로 자주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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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눈으로 볼 때, 성경은 오용될 수밖에 없다 | 이 책 꼭 읽자 - 기독교 2015-09-30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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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눈으로 볼 때, 성경은 오용될 수밖에 없다

기사승인 [0호] 2015.09.24  11:24:26

 

http://m.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0258

 

에릭 J. 바저허프의 <가장 잘못 사용된 성경구절> (새물결플러스)

   
▲<가장 잘못 사용된 성경구절> / 에릭 J. 바저허프 지음 / 이옥용 옮김/ 새물결플러스 펴냄 / 204쪽 / 1만 2,000원

 

귀신들도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믿는 것만으로는 그 믿음이 참된 믿음일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한다(약 2:19).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을 자신의 삶 속에 적용하고 사용하는 사실만 가지고는 제대로 된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 사실 성경을 사용하는 것은 사탄도 할 수 있는 일이다(눅 4:10-11). 성경은 이단들도 사용한다. 성경을 사용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성경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다.

 

<가장 잘못 사용된 성경 구절>에서 저자 에릭 J. 바저허프는 우리가 흔히 즐겨 사용하는 성경구절들이 사실은 심각하게 오용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책에서 제일 먼저 다루고 있는 것은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 7:1)이다.

 

흔히 이 구절은 죄를 숨기고 그 죄에 따른 적절한 처벌을 피하는 가장 편리한 도구로 사용된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는 말씀과 더불어 이 말씀은 교회 안에 있는 죄의 문제를 다루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처럼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말씀의 본의가 "위선적으로 사람들을 판단하는 일을 멈추고 자신의 삶에서 죄를 없애라"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비판의 대상은 교회에서 죄를 다루는 일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위선적인 삶을 사는 이가 된다 . 이 말씀의 오용은 한국 사회의 온정주의와 맞물려 성도가 성화를 포기하는 안타까운 현실로 나타난다.

 

이 책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세상적인 복을 받는 것을 지지하는 것처럼 성경을 잘못 사용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렇게 사용되는 대표적인 성구들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이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라는 예레미야 29:11-13,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예수님께서 행하실 것이라는 요한복음 14:13-14,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로마서 8:28, 그리고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빌립보서 4:13이 있다. 이런 구절들은 마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세상적인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해석하고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축복은 무엇보다도 화해, 용서, 하나님과의 평화, 교회 안에서의 교제, 사랑, 성령의 열매, 기도의 응답, 예배의 기쁨과 같은 영적인 축복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이름에 주술적인 매직 파워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즉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기도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할 때, 선이란 이 세상에서 잘되고 만사형통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거룩하게 되고 사랑으로 채워지고 겸손하게 되는 것이며 인내하게 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는 삶을 의미한다.

 

<가장 잘못 사용된 성경 구절>은 성경의 다양한 오용을 설명한다.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주님께서 함께 한다(마 18:20)는 말씀은 공동체가 치리를 할 때 주가 함께 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히 감당할 만한 시험만을 허락하신다(고전 10:13)는 것은 고통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다. 본 뜻은 우리가 죄를 짓고 나서 유혹이 너무 커 차마 죄를 피할 수 없었다고 핑계 댈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이 외에도 여러 구절들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쉽고 재미있게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정말 필요한 책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들은 성경을 읽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우리의 필요와 욕심에 따라 성경을 곡해하여 사용할 때가 많다. 문제는 그렇게 한다고 해서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불레셋과의 전투의 현장에 언약궤를 가지고 갔지만, 그들의 바람과는 정 반대로 아무런 효력을 그들에게 주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왜 우리는 성경을 우리 멋대로 해석하고 오용하게 되는 것일까? 그 이유로 논리적인 글 읽기의 부재를 꼽아 본다. 그 결과, 문맥에서 의미를 발견하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조차 지키지 않은 채 그저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자신의 생각을 불어넣는다. 해석(exegesis: 본문의 뜻을 해설하여 그 뜻을 명확하게 깨닫는 일)을 하지 않고 본문에 대한 해적질(eisegesis: 내 생각을 본문에 주입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가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동기는 탐욕이 우리들의 마음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온전히 순종하기보다 본인이 원하는 것을 성경 속에서 찾고 싶은 탐욕 때문이다. 그러한 일을 다른 사람이 아닌 목회자들이 하고 있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따라서 이 책은 진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려는 신학도들은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 모든 목회자들이 귀 기울여야 할 책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로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기 원하는 모든 성도들이 참고해야 할 책이다.

이런 종류의 책이 국내 저자에게서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의 성도들이 오용하는 성경구절들이 있는가 하면, 한국 사회에서 오용하는 성경구절들이 참 많이 있기 때문이다. 깔끔한 번역에 쉽고도 깊이 있는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이국진 kukz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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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曰, 분노하라 (1) | 집필 중인 책들 2015-09-29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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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 曰, 분노하라 (1)

 

       [논어] 읽기 - 들어가는 말.  

 

     공자가 처세술을 가르쳤을까, 아니면 인생을 살아가는 철학을 가르쳤을까?

      그러한 질문은 공자의 말씀을 처세술의 시각으로 해석하려는 책들이 부쩍

      늘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나를 괴롭혔다그게 분명 아닌데, 하는 마음에.. 

 

      과연 공자의 책인 [논어]는 처세술의 교과서인가? 처세술이 아니라면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그러한 질문은 [논어]를 다시 들게 만들었다. 다시 몇 번을

      읽어보고 난 결론은 역시 논어는 처세술과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인생을

      깊이 있게 살아보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위대한 사상 – ‘사상’이라는 단어를

      거북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생각’이라는 말로 바꿔보자 – 을 전해주는 책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논어를 읽어본 사람은 누구나 느끼는 일이지만, 논어는 마치 잠언과 같이

     하나 혹은 다수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그 종작을 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그것이 문제다. 그래서 읽고 난 다음에도 어느 한가지를 손에 잡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런 문제를 풀기 위하여 나는 공자가 말한 일이관지(一以貫之)의 방법을

      사용해보기로 했다.

 

      일이관지(一以貫之)! 

     '모든 것을 하나의 원리로 꿰뚫어 이야기함.'

 

 

       그가 ‘일이관지’라는 방법으로 자기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음을 [논어]에서 볼

     수 있으니, 나도 한번 공자의 방법을 따라해보자는 것이다

 

      일이관지라는 말은 [논어]에 두번 등장한다.

 

      [어느 날 공자가 증삼(曾參)을 비롯한 제자들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공자는 증삼에게 말했다.

      "삼아, 나의 도는 하나로 꿰어져 있느니라(吾道一以貫之)."

      ". 알고 있습니다."

      공자가 돌아가자 다른 제자들이 증삼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신 건가?"

      "선생님의 道는 충()과 서()일 뿐이네."] ([논어]의 '이인편')

 

     [공자가 제자인 자공(子貢)에게 물었다.

      "너는 내가 많이 배워서 그것을 모두 기억하는 박학다식(博學多識)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가?"

      ".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은가요?"하고 반문하자

      공자는 말했다.

      "그렇지 않아. 나는 한 가지의 생각과 삶의 방식으로 모든 일을 일관해 나가려고

       하고 있어(予一以貫之)."] ([논어] '위령공편')

 

       공자는 그렇게 초지일관, 하나의 생각과 방법으로 인생을 살려 했다.

       나는 그 방법을 이용하여 그의 글을 읽어보려고 한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가지고 [논어]를 일이관지 방법으로 읽어볼 것인가?

 

         만일 지금 이 시대에 공자가 이 땅에 와 있다면 무엇을 말할 것인가?

       그때처럼 충()과 서()을 이야기할 것인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선 그는 그가 말한 바를 처세술로 엮어내어 사람들을 미혹하는 사람들에게

      불같이 화를 낼 것이다.

      '어찌 내 말을 그런 식으로 이해하여, 나를 욕보이고 있느냐?'

       더하여 그는 그렇게 밖에 자기를 이해하는 이 현실에 대하여 역시 화를

      낼 것이다. 그렇게 그는 이 시대에 대하여 분을 낼 것이다. 화를 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논어]에서 수 차례 행동으로 보이고 말로 적시한 ()

       노()에 착안했다분명 그는 당신의 말을 견강부회, 아전인수로 해석하여

       왜곡하는 그들에게 화를 낼 것이다. 아울러 생각 있는 사람들이 그러한

       현실을 그냥 모른 척 지나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런 사람들에게 말할 것이다.

       

      "왜 그런 행위를 보고도 분을 내지 않느냐? 분을 내라"

 

      그런 공자의 마음을, 그의 생각을 분()과 노()로 일이관지해 알아보련다.

      공자의 책, [논어]를 분과 노로 꿰뚫어 읽어 보고, 무언가 손에 잡아보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은 [공자曰, 憤怒하라]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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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다양한 시각, 인문으로 탐구하다 | 마음에 드는 책 2015-09-2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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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과학, 인문으로 탐구하다

박민아,선유정,정원 공저
한국문학사 | 2015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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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다양한 시각, 인문으로 탐구하다

 

사물을 한 개의 눈으로만 보면 어떨까?

바로 앞에 있는 것, 그것 하나는 잘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두 개의 눈으로 보아야 비로소 그것의 실질이 보인다. 그것이 얼마만한 거리에 있으며, 부피는 어느 정도 일 것 같은지도 두 개의 눈으로 보아야만 비로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는 안목, 이 책은 갖추었다. 그래서 단순한 과학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다양한 시각으로 과학은 어떻게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시각의 문제와는 별도로 보는 면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것, 이해가 될 것이다.

하나, 앞에 있는 면만 본다면, 그 사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 면을 볼 수 있어야, 제대로 그 것을 볼 수 있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이치는 어떤 사물뿐만 아니라, 하나의 학문을 이해하는 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이치가 적용되는 이 책, <과학, 인문으로 탐구하다>는 제목 그대로 인문학적 시각으로 과학을 살펴보는 책이다.

 

과학을 알려주마, 제대로

 

이 책은 그래서 다양한 각도에서 그러한 작업을 함으로써 과학이란 학문을 알”(8)려고 시도한 책이다.

 

이 책에서 과학을 제대로 알기 위해 시도한 작업은 다음과 같다.

현재의 과학과 다른 분야 간 융합의 양상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과학이나 철학이나 예술, 그리고 사회 전반으로부터 떨어져나가 오늘 날과 같은 독립성과 자율성을 얻기 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 과학이 오늘 날과 같이 성장하고 발전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본다.(7-8)

 

책의 내용은?

 

그래서 이 책에서는 다양하게 과학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보여주고 있는데

주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과학과 예술의 오랜 동반 관계

과학과 사회, 교감을 통해 진화하다

역사 속의 과학

과학기술, 전쟁에 동원되다

철학이 묻고 과학이 답하다

대중문화와 과학의 만남

 

과학, 인문학과 윈윈하다

 

, 과학은 과학으로만 발전하지 않고, 다른 분야 (또는 학문)과 어울리면서 상호작용을 통하여 윈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과학과 사회, 교감을 통해 진화하다라는 항목에서 그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

서양역사에서 역사가들이 근대 초라고 부르는 15세기에서 17세기까지는 사회 각 분야에서 엄청난 변혁이 일어난 시기였다.

르네상스가 시작되며 예술 분야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났고, 이는 곧 과학 분야의 변화로 전이되어 과학혁명이라고 부르는 사건으로 이어졌다. (100)

 

, 르네상스에서 촉발된 예술분야의 발전은 과학의 발전으로 이어져, 과학혁명을 일으켰다. 그러니 예술과 과학 간에 윈윈의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과학의 분야 중에서 인쇄술과 예술, 그리고 사회와의 교류, 상호작용은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인쇄술이 문화 또는 학문 영역의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또한 인쇄술의 영향은 여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종교에까지 영향을 주었고, 결과적으로 루터의 종교개혁을 일으킨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러니 과학의 발달은 예술, 종교, 더 나아가서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이 책에는

 

이 책은 그렇게 과학과 인문학의 상호관계를 보여주면서, 세계 역사를 발전시킨 과학의 모습을 인문학의 견지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큰 줄기에서는 그러한 발전 모습을 살펴볼 수 있거니와, 작은 줄기로 보자면 각각의 항목마다 들어있는 아기자기한 사연들을 보면서, 인문학적 흥미를 채울 수 있다는 점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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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로 세운 집’ 안으로 걸어들어가기 | 마음에 드는 책 2015-09-29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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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언어로 세운 집

이어령 저
arte(아르테) | 2015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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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로 세운 집안으로 걸어들어가기

 

이 책, <언어로 세운 집>은 이어령 교수가 기호학으로 스캔한 추억의 한국시 32이다.

 

다시 깨어나는 시들

 

그 시들은 이어령에 의해 다시 깨어난.

다시 깨어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시를 읽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러니 요즈음 시를 읽는 기준은 희한하게도, 학교에서 시험대비용으로 가르치는 교과서(?)에서 정해진다.

그 교과서(혹은 참고서)에서 풀이한 시 내용이 정설로 굳혀진다.

 

시 속에서 정답이 있다는 식으로 시어들을 퀴즈 푸는 것처럼 풀어낸다,

 

그래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에서 안정을 추구하려는 세력은 <파초>가 정치시인가, 연시인가 모범답안을 빨리 써달라고 할 것이다.>(237)

 

그래서 그들이 원하는 모범답안을 써야만 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가 그런 것인가?

이런 예를 들어보자.

 

우리에게 익숙한 시인 만해의 <님의 침묵>은 어떤 시인가?

 

만해를 모르는 외국의 문학 독자가 아무 선입견없이 님의 침묵을 읽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틀림없이 아름다운 연시라고 생각할 것이다. (117)

 

그러나 만해가 불교의 승려이며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라는 것을 아는 우리 한국사람들은 <님의 침묵>을 연시로 읽는 것이 아니다.

 

수능 시험에서 요구하는 정답은?

<그 결과로 님은 님이 아니라 조국을 가리킨 것이, 침묵은 이별이 아니라 그 조국을 잃은 식민지 상황을 의미한 것이라는 모범답안을 썼다. 그래서 아 님은 갔습니다로 시작되는 님의 침묵은 기미독립운동의 좌절을 노래한 삼일절 노래가 되어버린다.>(117)

 

그러니까 님을 어느 한정된 대상에 국한시키려 하는 태도는 한국의 전통적인 말 뜻은 물론 만해의 그 정의에서도 어긋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19)

 

그래서 저자는 우리에게 수능시험의 모범답안으로 읽혀지는 시들을 다시 불러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고 있다.

 

시를 읽는데 선입견을 버려라

 

그래서 시를 읽을 때에 이미 익숙한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김동환의 <파초>를 이어령의 시각으로 읽어보자.

 

지금껏 우리는 그 파초망국의 설움을 표시하는 시어로 읽어왔다.

그렇게 읽으면 어떤 일이 생기느냐?

 

<이렇게 시를 구호로 고쳐주면 불투명했던 의미들이 단순명료하게 된다.>(231)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대로, 시를 총체적으로 읽으면 이제 밤이 차다이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앞으로 올 겨울을 예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껏 읽어왔던 것처럼, ‘이 시는 일제의 식민지 상황을 노래한 시다라는 말이 맞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제 겨울이 오는데,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따뜻한 계절이었다는 말이냐?

그런 질문에 대답할 말을 잊게 만든다.

 

따라서, 이렇게 이어령의 시각으로 이 시를 읽어보면, <파초>는 일제 식민지 상황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그런 한 가지 의미로만 읽으려고 할 때 우리는 시의 많은 부분을 제거하거나 눈감아버려야만 된다....> (233)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

 

이런 시도를 통해 저자가 의도하는 바는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발견된다.

 

<시는 정답을 감추어 놓은 퀴즈 문제가 아니다. 차라리 침을 놓듯이 시 전체의 신경망 그리고 상호 유기적인 상관성에서 시적 언어의 혈을 찾는 작업이라고 하는 편이 옳다.> (147)

 

<일단 시가 태어나게 되면 그 언어들은 그것을 낳은 시인의 의도와 관계없이 자기 자체의 이미지로 홀로서기를 한다.> (176)

 

다시 말하면, 시어를 문제집의 객관식 답변 수준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님이 무엇을 가리킨 것인지, 마돈나가 누구인지 시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을 한마디 말로 풀이해달라고 할 것이다. 그것이 산문적 언어로 뚜렷하게 기술될 수 있는 것이라면 왜 그렇게 시인 자신이 애타게 불렀겠는가?> (247)

 

<그러나 시에서 일상의 논리에 길들여진 언어가 해체되는 그 거북스럽고 불안한 떫은 맛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단지 먼 남국의 파초가 밀실의 머리맡으로 다가오는 그 경이로운 시의 축지법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237)

 

선입견 없이 시를 읽으면서, 시인의 그 애타게 불렀을 그 님을 우리도 같이 불러보면서, 새로운 시의 세계로 들어가 보면 어떨까?

시는 언어로 세운 집이니까, 겉에서만 놀지 말고 그 속으로 성큼 걸어들어가 그 집의 참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것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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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어쨌든 어렵다, 이 책 더 어렵다. | 마음에 들지 않는 책 2015-09-2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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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더 나은 선택

펑마이펑 저/권수철 역
타래 | 2015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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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어쨌든 어렵다, 이 책 더 어렵다.

 

이 책의 소개 글에 의하면 이 책은 작가이자 컬럼니스트인 펑마이엉(彭麥峰) 교수가 니체의 저서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견해를 결합하여 철학자 니체가 아닌, 감정을 가진 평범한 인간으로서의니체를 분석한 책이다. 이를 통해 위대한 철학자이자 시인인 니체의 생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는 책이다.

.

책은 총 여덟 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각 장은 변화, 희망, 긍정적인 생각, 사랑, 즐거움, 자유, 우정, 선택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 주제들을 니체의 삶을 배경으로 풀어나간다. 니체의 삶에서 한 꼭지를 보여주고 그것에서 끌어낸 주제들을 설명한다. 그 다음에 거기에서 얻어진 성찰을 통해 독자들이 실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행복한 삶을 위한 제안>이라는 항목을 별도로 첨가해 놓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없애주는 것은?”

 

누군가가 자신의 고통을 알아주었을 때 우리는 그 고통이 생각보다 심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타인의 고통을 없애주는 것. 그것이 바로 동정이라는 인간의 천성이다.” (15)

 

우리의 삶이 더 조화로워지려면?

니체의 이 말에 따르면 타인에 대해 동정심을 갖는 것은 인간의 천성이며, 그 전제조건은 타인의 고통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노력 또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니체를 더 어렵게 만든 구절들

 

니체를 읽는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읽어도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을 감수하고 읽어야 한다. 특히 나 같은 사람에게 니체는 난공불락의 성 같다.

지금껏 니체와 친해지기 위하여 기울인 노력이 얼마였던가? 읽은 책만해도 한 수레(?)는 될 것 같고, 들인 시간만 해도 몇 년은 될 것 같다.

이 것이 내가 니체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본 생각이다.

 

그래서 니체의 책은 가급적 읽으려 노력하고, 니체에 관한 책은 더더욱 빠트리지 않고 챙겨 읽으려고 한다.

 

그래도, 그렇게 노력해도 아직 멀기만 하다. 니체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만든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가령 이런 구절을 읽어보자.

 

<이처럼 내면의 마음과 외부의 현실이 서로 밀접한 상호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이 관계를 잘 파악하여 실천에 옮긴다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가령, 현실 속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될 경우, 즉시 마음가짐을 바꿈으로써 좀 더 즐거워질 수 있다. 행복은 이처럼 손쉽게 얻을 수 있다. 내면의 마음과 외부의 삶을 일치시키기만 하면 행복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14)

 

문제는 어떻게 하면 즉시 마음가짐을 바꿀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말은 쉽지만, 그렇게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철학자들은 바로 그 점을 모르는 것 같다.

어떻게 해야 내면의 마음과 외부의 삶을 일치 시킬 수 있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

 

말이 쉽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말한 것 같은 구절들이 철학을 더 어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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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과연 '신이 말해 준 것'이라 부를 수 있는지? | 마음에 들지 않는 책 2015-09-2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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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신이 말해 준 것

닐 도널드 월쉬 저/황하 역
연금술사 | 2015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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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과연 '신이 말해 준 것'이라 부를 수 있는지?

 

<신과 나눈 이야기>가 무려 9권이나 나왔다는 사실에 우선 놀랐다.

그러고도 다시 이 책이 나왔다니? ! 그렇다면 이 책이 물경 10권째!

신과 나누었다는 이야기가 그렇게 많을 수가? 신이 그리도 할 말이 많을까?

 

이 책을 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왜 이 책을 쓰고 있는가? 여기서 무엇을 이루려 하는가? 이 책이 꼭 필요한가?”(13)

 

그런 질문에 궁극적으로 한 말이 이것이다.

너희는 나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11)

 

신이 말하길, 우리 인간이 신을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책이 9권씩이나 말했으면, 제대로(?) 말했으면 오해를 하지 않았을 것인데, 그러고도 아직도 오해라니?

진짜 그렇게 말하고도 오해를 받고 있다면, 이제는 침묵으로 대응을 해야지, 다시 거기에 대응한다고 책을 통해서 또 말한단 말인가?

 

신과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그런 의구심보다도 먼저 앞서는 것은 저자에게 신이 말했다는 그 말의 본질 말이다.

과연 신이 이야기한다는 그 행위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저자가 신과 이야기를 나눈 것은 이렇게 알려지고 있다.

다섯 번의 이혼과 실직, 교통사고로 인한 목뼈의 부러짐으로 장애인 수당을 받으며 노숙자 생활까지 했던 이 책의 저자 닐은 49세 어느 날 새벽.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만든 신에게 분노에 찬 편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그 때 신이 대답을 해 주었고 그것을 받아쓰기하듯 써 내려간 글들을 추리고 모아 책을 펴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 상황에서 신이 저자에게 말해주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신으로부터 말씀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있다.

기독교의 모세, 이슬람의 마호메드, 또 몰몬교의 요셉 스미스 등등.

 

그러한 사람들은 신으로부터 말을 받았을 때, 반드시 먼저 신의 현현을 경험했다.

물론 다른 모습으로 신으로부터 말을 받은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이 책의 저자처럼 오랫동안 책을 9, 이제 10권 째 펴낼 정도로 받은 경우는 없다.

대개의 경우, 책이 한권이 채 못되는 분량의 말씀을 받고, 그 다음에는 그 말씀에 대한 해석을 하는 시간이 뒤따랐다. 

 

그러니 이 책의 저자가 신과 이야기했다'는 그 행위가 과연 어떤 모습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발언 분석해 보자.

 

<내 이름은 닐이다.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나는 신과 이야기를 나누어 왔다.>(11)

 

저자는 신과 이야기를 나누어 왔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을 더 들어보자.

 

<종교적 계시 같은 한 순간이 아닌, 아주 여러 번이나.>

 

저자는 신의 말씀을 위탁받은 다른 사람의 경우와는 달리 아주 여러번 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계시를 받은 자와는 차별성이 있다.

다른 사람의 경우는 일회성 또는 몇 번의 차례만 그랬는데, 저자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

 

그럼, 이야기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모세나 모하메드의 경우처럼 영적인 존재가 등장했는지, 아닌지?

 

저자의 말을 더 들어보자.

<당신도 해 오고 있다.>

 

독자인 우리도 그렇게 신과 이야기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다시 한번 그 말을 앞뒤를 살펴가면서 읽어보자.

 

<내 이름은 닐이다.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나는 신과 이야기를 나누어 왔다.

종교적 계시 같은 한 순간이 아닌, 아주 여러 번이나.

당신도 해 오고 있다.>

 

우리도 해오고 있다는 신과의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더 읽어보자.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지만, 당신은 그렇게 해 오고 있다.

아마도 당신은 그것을 다른 무엇이라 부를 것이다. 어쩌면 눈부시게 반짝이는 통찰력이라 부를 것이다. 또는 기발한 생각이라 부를 것이다. 놀라운 예감, 잘 맞추는 추측, 천재적인 발상, 우연의 일치, 뜻밖의 행운, 여자의 직감이라 부를 것이다.>(11)

 

그러니 결국 자기가 9권씩이나, 이번 책으로 10권 째 나눈 신과의 이야기는 그런 식으로 나눈 이야기라는 것이 아닌가?

 

독자들이 그렇게 불러도 될만한 행위, , '눈부시게 반짝이는 통찰력' 또는 '기발한 생각', '놀라운 예감', '잘 맞추는 추측', '천재적인 발상', '우연의 일치', '뜻밖의 행운', '여자의 직감'이라 부를 수 있는 행위로, 그는 그런 식으로 10권 째 신과의 이야기라 이름 붙인 글을 써 오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렇게 이야기를 나눈 것, 즉 문득 떠오른 생각들 - 그 것을 무어라 부르든지 -을 기록한 이 책을 과연 '신이 말해준 것'이라 부를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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