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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반 (半, 反, 叛, ban-) 전문가를 지향하며,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자 오늘도 한 걸음 더 내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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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파워문화블로그 13기]9월 미션완료 예비 명단 | 알려드립니다. 2017-09-2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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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 블로그 이야기

안녕하세요, YES블로그입니다.


파워블로그 13기 여러분,  

처음뵙겠습니다. 연휴가 겹치다보니 예비명단을 조금 일찍 공지하게 되었는데, 

당황하지 마시고, 하단에 써 있는 일정을 보시고, 미션완료 쪽지 보내주시면 된답니다. :)

아참, 그리고 모두 즐거운 명절 보내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쌓였던 피로를 연휴동안 푹 푸셨으면 합니다. 


혹여나 링크를 쪽지로 보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명단에 없더라도, 

놀라거나 너무 노여워 마시고 쪽지로 문의주세요!

▼▼▼ 9월 미션 포인트 지급 명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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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보호를 위하여, ID 세번째 부터 두자리가 *처리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찾기 어려우실 땐 Ctr+F로 찾아주세요!


※ 9월 미션을 완료하였는데, 명단에 없으신 분들은 10월 9일 자정까지 월 미션 URL을 첨부하여 쪽지 부탁드립니다. (10월에 작성한 글은 9월 미션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10월 10일 이 후 발생하는 미확인건에 대해서는 처리해드릴 수 없으니, 마감기한을 꼭 지켜주세요!  (마감 기한을 지켜주시지 않으면 다른 파블님들의 포인트 지급건이 늦어져 피해를 입힐 수 있으므로 기한을 지켜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포인트 지급은 10/13까지 지급될 예정입니다.


올해에도 YES24와 함께해주세요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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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녀 | 마음에 드는 책 2017-09-29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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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문학소녀

김용언 저
반비 | 2017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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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녀

 

이 책은?

 

현재 미스터리 전문지 미스테리아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용언의, 문학소녀 전혜린을 변호하는 책이다.

 

먼저 저자에 대하여. 난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남성인줄 알았다,

이름이 남성형인데다가, 미스테리아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는 데에서 그런 남성일 거라는 - 추론을 어느새 하고 있었던 게다.

 

또 그런 추론을 가능케 했던 것이 또 있다.

이 중에는 내 또래 대부분의 남성들이라면 ...”(10)라는 문장에서, 저자가 남성인줄 알았다.

 

그러다가 아리송한 대목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열다섯 살 때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처음 접했다. 별로 친밀한 사이가 아니었던 같은 반 친구 하나가 느닷없이 우리 언니가 무척 좋아하는 책인데 너한테도 어울릴 것 같아라며 그 책을 건넸다.> (12-13)

 

우리 언니라 말하니, 당연히 말하는 사람은 여자일테고, 너한테 더 어울릴 것이라 했으니, 그럼 저자는 여성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저자 후기에도, 이런 말이 등장한다.

<전혜린은 1965년에 숨을 거두었는데 50년이 넘도록 그의 유고집이 읽히는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10대 혹은 20대 여성이 그 책을 통해 문학에 여성의 시선과 목소리에 입문하게 된 일이 무수히 반복되고 있다.> (229)

 

내가 그랬던 것처럼이 결론을 짓게 만들었다. 저자는 여성이다.

 

(, 요즘에는 여성을 가리키는 지시 대명사 그녀대신 남성 지시 대명사인 를 쓴다. 이제 는 남성에 국한하지 않고, 여성 남성 모두를 총괄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위의 인용문에서도 그의 유고집이라 했다.)

 

그래서 맨 처음 남성이라고 추론하는데 근거가 되었던 문장, “이 중에는 내 또래 대부분의 남성들이라면 ...”(10)을 나중에 다시 읽으니, ‘내 또래 남성이란 말이 건너편을 바라보는 말이라는 것으로 읽히게 된다.

 

이 책의 내용은?

 

먼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며, 이 글의 주요 대상이 되는 전혜린을 지칭하기도 하는 말, ‘문학소녀의 의미를 새겨보자.

 

국립국어원 표준 국어 대사전에 등재된 문학소녀의 뜻은 문학을 좋아하고 문학 작품의 창작에 뜻이 있는 소녀. 또는 문학적 분위기를 좋아하는 낭만적인 소녀.(10)

 

그런데 문제는 이 말이 어떤 식으로 들리는가, 즉 받아들여지는가에 있다.

여성의 미성숙함을 뜻하는 용어로 널리 쓰이기 때문이다.’ (10)

 

저자는 저자의 독서 경험을 밝혀 놓는데, 전혜린에게 끌려 들어간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전혜린의 글, 그가 번역한 책들을 읽으며) 나만 아는 무언가를 간직한 것 같은 뿌듯함에 사로잡히면서 약 40년의 시차를 두고 전혜린을 제멋대로 가깝게 여겼다. (14)

 

저자의 눈에 맨 처음에는 전혜린에 대한 열광 혹은 열광의 기억에 대한 추억담이 읽혀오다가, 언젠가부터 추억담이 아니라 빈정거림이 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6)

 

고종석의 예를 들면서, “이들의 선고에 힘입어 이제 전혜린은 특정한 독서의 출발점의 공통 대명사가 아니라, 부잣집 철부지 문학소녀의 대명사로 더 자주 호명되는 것 같다."(16)고 전혜린에 대한 세상의 평가가 달라졌음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전혜린에 대한 평가가 (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황을 소개하고 있다.

 

그녀의 수필이나 일기, 편지가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소녀적이다.’(80)

 

또한 저자 그러한 비평에 약간은 동조하는 편이었는데,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전혜린의 글을 재차 읽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79)

그래서 이 책의 후반부는 전혜린을 변호하는 글로 채워지게 된다.

 

전혜린을 변호하기 위하여 저자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우리 역사에서 소녀라는 말이 언제 탄생했는지부터 추적한다. ‘소년이라는 말은 보이는데, 우리 역사에 소녀는 소년에 대응하는 말로 보이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135)

 

그 뒤에 소녀라는 말이 일반화 된 이후에도, 그녀들은 10대라는 특정 시기를 거치는 주체로서가 아니라 여성-어머니가 되는 직전 단계로 간주되었다. (143)

 

소녀들에게 현모양처가 되기 위한 교양을 요구하되, 그 교양은 세계 명작혹은 고전으로 분류된 목록들과 그에 대한 가장 피상적인 지식 정도에 불과했다. (147)

 

그래서 독서에의 몰두, 열렬한 환상은 오랜 세월동안 여성의 전유물처럼, ‘사랑과 낭만에만 매달리며 현실이 아닌 꿈만을 좇는 물정 모르는 미성숙한여성의 태도인 것처럼 배제되어 왔다. 문학 고전을 읽으며 교양을 쌓는 소녀의 이상적인 모습이 점점 열광적인 도취 상태에 빠지는 철없는 문학소녀로 바뀌는 순간이다. (154)

 

그런 역사의 변천과 더불어, 거기 문학소녀에 전혜린을 비롯한 여류작가들이 포함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저자의 미스테리아편집장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전혜린을 과연 그러한 문학소녀의 범주로 취급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게 한다면, 무언가 잘 못 알거나, 그의 글을 잘 못 읽었던 것은 아닌가?

저자는 전혜린의 글들, 전혜린에 관한 글들을 수사관, 탐정처럼 다시 읽으면서, 그의 진면목을 찾아내려고 시도한다.

 

내가 저자의 이력을, 성별을 확인하려고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는 전혜린에 대한 그런 평가가 여성이기에 받은 편파적인 비판이라는 것이다. 만일 남성이라면 물론 이것도 논리의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굳이 전혜린으로부터 문학소녀라는 잘못된 인식의 탈을 벗길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 역시 문학소녀였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문학소녀. 나도, 당신도 전혜린이었다.”(227)

 

전혜린의 정당한 평가를 위해 들이대는 평가의 메스, 칼날 또한 저자가 여성이기에 당당하게 보이는지도 모른다. 더하여 문학소녀라는 말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떨쳐 내려는, 아니 떨쳐 낸 저자. 그래서 이 책은 그 두 가지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것이다.

 

다시, 전혜린

 

그녀의 수필이나 일기, 편지가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소녀적이다.’라는 부분에 맞춰 비판할 것이 아니라(애초 그 일기의 독자는 나나 당신이 아니었다), 그녀가 쓴 수필과 그녀가 번역한 작품들이 한국문학계에, 혹은 동시대인 1960- 70년대 청춘들의 정신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피는 게 더 맞을 것이다. (80 -81)

 

나는 독일의 풍경을 그토록 손에 잡힐 듯이, 감각적으로 되살려내는 전혜린의 재능에 지금도 감탄한다. (221)

 

언제나 서양의 문학을 경유해서만 자신의 내면적 풍경을 드러낼 수 있었다 하더라도, 그 현격한 거리감을 자신의 언어로 전유하며 타인을 공감시킬 수 있었다는 건, 분명 놀라운 재능이다. (222)

 

사족 - 윤이상과 전혜린, 같은 시대 다른 아픔?

 

이 책을 읽기 전에, 윤이상의 생을 기록한 책 윤이상, 상처받은 용을 읽었다.

공교롭게도 두 인물 사이에 겹쳐지는 경력이 몇 가지 있다.

두 분 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다는 것이고, 또한 독일 유학 경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경력을 비교해보자.

 

윤이상 (1917, 9. 17 1995. 11. 3)

전혜린 (1934. 1. 1 1965. 1. 10)

 

독일 유학

윤이상 1957~ 1959년 독일 서베르린 음악대학 졸업

전혜린 1955- 1959년 독일 뮨헨 대학교 졸업, 독문학

 

윤이상은 졸업 후 독일에 그대로 체류한 반면에 전혜린은 한국으로 귀국한다.

이 또한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윤이상은 독일에 체류하며 활동하는 중에 한국의 중앙정부부요원에 의해 납치되어 파란만장한 고난이 시작되고, 전혜린은 독일에 남지 못하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바람에 그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운명의 엇갈리는 순간이다.

 

전혜린은 항상 독일을 그리워했다.

그녀의 책,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저자의 성장기, 독일 유학 생활, 딸의 육아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 뮌헨과 슈바빙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행간마다 스며들어 있다. 독일에 대한 사랑은 독일에서 유럽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91)

 

반면 윤이상은 한국에 귀국하지 못하게 되어, 오히려 고국을 그리워하는 신세가 된다.

 

윤이상, 상처받은 용과 이 책 문학소녀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대비하게 된 두 인물, 인생이란 참으로 묘하고 묘하다,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된다.

 

다시, 이 책은?

 

전혜린을 다시 알게 된다. 책 몇 권을 읽었기에, 모르던 사람이 아니었지만, 나도 어쩌면 그를 단순히 문학소녀로 치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편견(?)을 고치게 된 것이 이 책을 읽은 가장 큰 보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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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린[田惠麟 ] | 책 저자 출판사 등등 2017-09-28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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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린

열정 그리고 광기

[ ]

 

출생 - 사망1934년 1월 1일 ~ 1965년 1월 10일
출생지

평안남도 순천

 

목차

 

열정 그리고 광기

삶에서 그 무엇을 추구하는 자세, 이를테면 평범과 피상의 것 저 너머의 절대세계를 동경하고 그것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는다는 것. 그 자체는 아무 결실도 업적도 아니다. 우리 뇌에 불에 덴 것과 같은 강렬한 화인()을 남기고 홀연히 세상 저편으로 날아간 전혜린은 그의 생애에 이룬 업적 때문이 아니라 그의 “무섭게 깊은 사랑, 심장이 터질 듯한 환희, 죽고 싶은 환멸” 등을 추구하는 무서우리만큼 비범한 삶의 자세 때문에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 있다.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전혜린의 생을 통해 이룬 몇 권의 번역서, 유고(稿)로 출간된 수필집, 일기문 따위는 문학 이전의 습작 수준이다. “1세기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던 업적으로서는 너무나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이다. 

레닌로자 룩셈부르크를 가리켜 “로자는 혁명의 독수리였으며, 독수리로 남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 말을 빌려 우리는 전혜린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전혜린은 인식에의 갈망으로 불타오르는 독수리였으며, 영원한 독수리로 남을 것이다.”라고. 한 지인에게 “어느 조용한 황혼에 길가의 주막에 쓰러져 있는 집시가 있거든 나라고 알아줘!”라고 속삭였던 전혜린. 점성술과 운명학을 믿고 가끔 점을 치며 “운명의 위대한 저울 위에” 내던져진 제 운명을 불안한 시선을 번득이며 가늠해보던 전혜린은 31세로 요절하며 이 세상에서의 짧은 생을 휘발시킨다.

 

전혜린

전혜린

1965년 1월 9일 토요일. 하늘의 푸름은 마치 수정처럼 맑고 깊었지만 기온은 영하 10도 이하로 급강하한 몹시 추운 날이었다. 서울대학교 문리대 앞의 동숭동 학림다방 오른편 맨 구석의 창가 자리에 밤색 밍크코트를 입은 여성이 오후 들어 몇 시간째 며칠 전에 내린 잔설()을 이고 있는 바깥 풍경을 무심한 시선으로 내다보며 혼자 앉아 있었다. 대학이 방학 중이었기 때문에 다방 안은 한산했다. 그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그때 한 젊은 여성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고, 검은 스카프를 한 채 창가 자리에 앉아 있던 여성이 손을 흔들었다.

“세 시간이나 여기서 기다렸어!”

 

그날 약속 없이 학림다방에 들렀던 서울대 법대 후배인 이덕희()가 전혜린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그들은 다방 한가운데 놓인 난롯가로 자리를 옮겨 앉아 토요일 오후를 담소로 보냈다. 저물 무렵 학림다방을 빠져나와 명동에 있는 은성으로 갔다. 은성은 당시 문화 예술인들이 단골로 드나들던 유명한 대폿집이었다. 은성에는 소설가이자 <연합신문> 문화부장인 명동백작 이봉구()가 앉아 있었다. 명동의 모나리자나 돌체에 들러 친구들과 함께 음악을 듣다가도 “술 좀 마셔 봐야겠어요. 어떤 것인가를 음미해보자는 거지요.”라며, 두부 집에서 막걸리 잔을 앞에 높고 크고 검은 눈동자를 번득거리는 전혜린을 이봉구는 또렷이 기억했다.

 

여러 사람이 합석해서 두어 시간 동안 떠들어댔던 그날의 술자리는 매우 유쾌했다. 전혜린은 무척 고조되어 보였고, 다른 날과 달리 더 자주 웃고 더 큰소리로 많은 말들을 했다. 곧 수필집을 낼 예정이고, 책 제목도 정했다고 했다. 전혜린은 이덕희에게 귓속말로 “제목은 나중에 너한테만 알려줄게.”라고 속삭였다. 그는 국제 펜클럽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며, 그 때문에 건강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글쎄 내 몸이 괴물처럼 건강한 거야.”

짧은 겨울해가 지고, 바깥은 이미 어두워진 뒤 은성에서 나온 전혜린과 이덕희, 동행했던 후배 등은 한잔을 더 하기 위해 신도호텔 살롱으로 자리를 옮겼다. 은성에서 신도호텔 살롱으로 가는 도중에 전혜린은 “세코날 마흔 알을 흰 걸로 구했어!”라고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몹시 달뜬 음성이었다. 신도호텔의 살롱에서 칵테일을 마시는 동안 전혜린은 몇 차례나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에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아직은 젊은 소설가들이었던 김승옥, 이호철 등과 합세한 전혜린의 일행은 천장이 낮은 대폿집으로 자리를 또 옮겼다. 소음과 담배연기가 자욱한 그곳에서 그들은 약 한 시간 동안 술을 마셨다. 전혜린은 술을 꽤나 마셨고 취한 눈치였지만, 담배를 피우면서 다리를 건들거리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이 기분은 유달리 좋아 보였다. 담배를 쥔 손톱 밑은 때가 까맣게 끼어 있고, 누군가는 그 불결한 손톱을 “검은 테가 둘러진 부고()”라고 일컬었다. 10시쯤 되었을 때 전혜린이 홀연히 일어서더니 입구에서 일행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사라졌다. 그것이 전혜린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다음날 전혜린은 죽었다. 당시의 신문은 1단짜리 여섯 줄 기사에서 “희귀한 여류 법철학도요, 독일 문학가”인 전혜린의 죽음을 “수면제 과용으로 인한 변사”라고 발표했다. 뮌헨 유학 시절 이미 한 번의 자살 미수 경험이 있던 전혜린의 죽음이 수면제 과용으로 말미암은 사고사였는지, 과도의 저혈압으로 인한 자연사인지, 자살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혜린의 사후, 구구한 억측이 떠돌았지만 그의 죽음은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전혜린

전혜린

 

전혜린은 평안남도 순천에서 1934년 1월 1일에 전봉덕()의 8남매 중 큰딸로 태어났다. 전봉덕은 29세에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 행정 양과에 합격한 천재였다. 일제 식민지의 악랄한 수탈에 모두들 헐벗고 굶주렸던 그 시절에 혜린은 백러시아계 양복점에서 소공녀가 입을 것 같은 흰 원피스를 입었다. 그의 부친은 서너 살 때부터 한글책과 일어책을 읽을 수 있도록 손수 가르쳤다. 맏딸에 대한 극단적인 편애 때문에 그의 부모는 자주 심하게 말다툼을 하기도 했다. 어린 혜린에게 아버지는 신()이었다. 

 

훗날 전혜린은 “내 한마디는 아버지에겐 지상 명령이었고 나는 또 젊고 아름다웠던, 남들이 천재라 불렀던 아버지를, 나를 무제한하게 사랑하고 나의 모든 것을 무조건 다 옹호한 아버지를 신처럼 숭배했다”라고 회고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전혜린은 조선총독부 고급 관리인 아버지를 따라 서울을 떠나 한반도의 북쪽 끝자락의 신흥 도시인 신의주로 이주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46년 다시 서울로 돌아와 경기여중에 입학하여 학창시절을 보냈다. 전혜린의 천재성은 부친의 영향과 천혜의 환경, 그리고 “절대로 평범해져서는 안 된다.”라는 사춘기 시절부터의 정신 속에서 키워졌다. 

 

범용함을 넘어서서 자기 자신을 초극하기 위해 전혜린이 보여준 처절한 고투()의 정신은 ‘전혜린 신화’의 가장 중요한 원소이다. 언제나 극점()을 추구하는 전혜린의 정신은 범속한 일상이 주는 권태를 못 견뎌했고, 언제나 “미칠 듯한 순간, 세계와 자아가 합일되는 느낌이 드는 찰나, 충만함이 최고조에 이른 순간”을 갈망했던 그의 눈빛은 광기로 번득였다. “물질·인간·육체에 대한 경시와 정신·관념·지식에 대한 광적인 숭배, 그 두 세계의 완전한 분리”는 “영아기부터 싹트고 지금까지 붙어 다니는 병”이었다. 그 때문에 젊은 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때 홍역처럼 전혜린 신화에 몰입하는 것이다. 

 

1952년 전혜린은 피난지 부산에서 서울대 법대에 들어간다. 서울대 법대 진학은 부친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전혜린이 서울대 법대에 들어갈 당시 수학 과목 성적은 0점이었다고 전해진다. 과락이 있는 경우 불합격 처리되는 것이 서울대의 관례였으나 다른 성적이 워낙 출중했던 터라 전혜린은 사정위원회를 거쳐 극적으로 구제되었다. 수학을 0점 맞았는데도 전체에서 2등이었다는 얘기는 이제 전설이 되었다. 

 

전혜린은 대학 교육에 관한 전시 특별조치령에 의해 부산에 세워진 전시연합대학교 임시 가교사()에서 수업을 받았다. 법학에 권태를 느낀 전혜린은 경기여고 시절의 단짝 주혜가 다니던 문리대에서 오든이나 엘리엇같은 시인에 관한 강의를 도강()했다. 법학 과목의 강의 기피와 도강, 그리고 온갖 것에 대한 광적인 탐닉은 법학에 대한 혐오와 철학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혜와 헤어진 지 6년이 지난 뒤의 일기장에 전혜린은 다음과 같이 친구를 향한 그리움을 쏟아내고 있다. 

 

주혜와의 우정, 회색 노트, 영도 가교사에서의 산보, 배, 바다, 부두······ 그리고 서울에서의 같이 보낸 시간······ 산집, 해바라기를 한 송이 저 바구니에 넣어서 나의 동굴같은 방에 갖다 주었던 주혜······ 그리고 주혜가 떠나던 날에 나의 마를 줄을 몰랐던, 한없이 흐르던 눈물. 결국 그때가 영 이별이었던 모양이다. 편지는 아무 소용없다. 아름다운 꽃이나 손수건 같은 힘밖에는 없다. 주혜가 보고 싶다. 서로가 서로에 실망하더라도…… 그래도 꼭 만나고 싶다. Before I shall die······

 

 

마침내 21살 되던 해인 1955년, 전혜린은 독일 유학을 떠났다. 그가 에어 프랑스에서 내렸을 때 뮌헨 하늘은 축축한 습기를 가득 머금은 회색빛이었다. 전혜린은 학교 근처에 방을 얻었다. 강렬한 인식욕과 날카로운 감수성을 가진 전혜린은 뮌헨대에서 그토록 동경하던 문학과 철학의 세계로 깊이 빠져든다. 

 

뮌헨대에는 독일 학생들뿐만 아니라 그리스·터키·이집트 등지에서 온 유학생들도 많았다. 대부분의 학생은 검소했다. 남학생들은 거의 스웨터 바람이고 여자들은 검은 스커트에 검은 양말, 검은 머릿수건, 길게 늘인 생머리가 제복이었다. 훗날 전혜린의 저 유명한 검은색의 옷과 검은색의 스카프는 그 시절 습관의 연장이었다. “온갖 물질의 결핍과 가난과 노동, 식사 부족, 수면 부족에도 그들의 그 하늘을 찌를 듯한 패기, 오만한 젊음, 순수한 정신, 촌음()을 아껴 노력”하는 독일 대학생들을 부러워하며 그들과 경쟁했고, “목적을 가진 생활, 그 일 때문이라면 죽어도 좋다는 각오가 돼 있는 생활”에 대해 전혜린은 만족했다.

 

전혜린은 독일 유학 중 결혼을 하고, 딸을 낳는다. 싸구려 번역과 고국에서 보내주는 생활비는 늘 빠듯했다. 한 번은 생활비가 완전히 바닥이 나서 그는 한 주일 동안 일생 처음으로 완전히 굶었다. 훗날 혜린은 “물을 마시니까, 죽지는 않더라.”라고 했다. 그것은 그녀가 처음으로 체험한 굶주림이었다. 

 

전혜린은 1959년 독일 유학을 끝내고 귀국하여 서울대, 이화여대, 성균관대에서 강의를 맡는 한편 번역 작업을 했다. 헤르만 헤세, 하인리히 뵐, 에리히 케스트너, 루이제 린저 등의 독일 작품들이 전혜린의 번역으로 나라 안에 소개되고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1964년 독일 유학 중 결혼한 남편과 합의이혼한 후 전혜린은 몇 번 열병과도 같은 사랑에 빠졌다. 인습과 사회적 규범을 벗어난 연하 제자와의 사랑도 있었다. 독일 유학에서 막 돌아와 모교인 서울 법대 강단에 선 ‘교수’ 전혜린과 질풍노도와 같은 스무 살의 ‘제자’ 법학도는 독일어 강의가 있는 매주 수요일마다 만났다. 그들은 가장 첨예한 정신과 정신의 맞부딪침에서나 일어나는 스파크를 일으키며 서로에게 다가갔다. 청년은 시를 써서 갖다 바치고, 아직은 새파랗게 젊은 여교수는 편지를 써서 제자이며 연인인 청년에게 건네줬다. 그들은 서로의 타오르는 혼에 경탄했고 서로를 찬미하며 정신의 충일 속에 취해 있었다. 

 

어느 날 청년에게 가문의 모든 꿈을 걸고 있는 시골의 어머니가 찾아왔다. 전혜린을 만난 이 어머니는 무릎을 꿇고 제발 자신의 아들과는 헤어질 것을 호소했다. 청년은 그 모친의 간곡한 만류를 받아들여 전혜린과 결별을 선언했다. 그때 전혜린은 시니컬한 미소를 얼굴에 담고 “네가 날아올 땐 난 네가 독수린줄 알았는데, 날아가는 모습을 보니 참새에 지나지 않았어!”라고 했다. 

 

나는 왜 이렇게 너를 좋아할까? 비길 수 없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너를 좋아해. 너를 단념하는 것보다는 죽음을 택하겠어. 너의 사랑스러운 눈, 귀여운 미소를 몇 시간만 못 보아도 아편 흡입자들이 느낀다는 금단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다. 목소리라도 들어야 가슴에 끓는 뜨거운 것이 가라앉는다. 너의 똑바른 성격, 거침없는 태도, 남자다움, 총명, 활기, 지적 호기심, 사랑스러운 너의 얼굴 나는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죽기 사흘 전 전혜린은 ‘장 아제베도’라고만 알려진 익명의 누군가에게 “내가 원소로 환원하지 않도록 도와줘!······(중략)······ 나도 생명 있는 뜨거운 몸이고 싶어. 가능하면 생명을 지속하고 싶어. 그런데 가끔가끔 그 줄이 끊어지려고 하는 때가 있어. 그럴 때면 나는 미치고 말아.······(중략)······ 나를 살게 해줘”라고 썼다. 그것은 익사 직전의 사람이 구조를 요청하는 외침이고, 절규였다. 일찍이 인생의 악덕을 눈치 채고 지식의 황홀경 속에서만 헤엄치며 “식은 숭늉 같고 법령집 같은 나날”을 탈출하는 꿈을 하루도 쉬지 않고 꾸었던 전혜린은 너무 빨리 이 세상을 떠났다. 세상이 그의 재능과 광기에 가까운 열정을 그 내면에서 남김없이 갉아먹어 버렸던 것일까. 전혜린이 익명에게 썼던 두 통의 편지는 끝내 부쳐지지 않은 채 죽었다. 공교롭게도 1934년 1월 1일 일요일에 태어난 전혜린은 1965년 1월 10일 일요일에 생을 마감한다. 

 

전혜린의 작품 리스트

발표연도제목

1956

프랑수아즈 사강의 [어떤 미소] 번역

1958

에른스트 슈나벨 [안네 프랑크 - 한 소녀의 걸어온 길] 번역

1959

이미륵 [압록강은 흐른다] 번역

1960

에리히 케스트너 [파비안]번역

1961

루이제 린저 [삶의 한 가운데] 번역

1963

H. 게스턴 [에밀리에], W.막시모프 [그래도 인간은 산다] 번역

1964

하인리히 뵐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번역

1965

하인리히 노바크 [태양병] 번역

1966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필집 [미래완료의 시간 속에]-후에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로 제목을 바꾸면서 내용 일부가 바뀜

1968

비장일기모음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1976

수필집 [목마른 계절] -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와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를 한 권으로 추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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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상처입은 용 | 마음에 드는 책 2017-09-27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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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윤이상 상처 입은 용

윤이상,루이제 린저 공저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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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상처입은 용

 

이 책을 읽기 전에, 신문 기사 한 꼭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독일을 공식 방문 중인 김정숙 여사가 (20177) 5(현지시간) 오후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묘소를 찾으면서 고인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

한국 역대 대통령 부인이 윤이상 묘소를 찾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 여사는 경남 통영시의 동백나무 한 그루를 전용기로 옮겨와 윤이상 묘소에 심었다. 윤이상의 살아생전 향수를 늦게나마 달랜다는 의미를 담았다.

윤이상은 동서양의 세계관을 넘나드는 작품을 만든 세계적 작곡가이지만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그의 이름과 작품이 일반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이후 이념 논쟁에 시달려 온 탓이다. 윤이상의 음악은 그가 베를린에서 숨지기 겨우 1년 전에야 윤이상음악제 등을 통해 한국 땅에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꿈에 그리던 고향 땅을 다시 밟지 못한 채 눈을 감은 윤이상은 상처 입은 용으로 일컬어진다.>

 

한국일보 기사의 일부분이다. 게재 일시는 2017.07.06 15:08.

이 기사에서 상처입은 용이란 말이 등장한다. 바로 이 책의 제목에 해당하는, 윤이상을 일컫는 말이다.

 

이 책은?

 

한국이 낳은 최고의 작곡가’, ‘현대 음악의 거장으로 불리는 상처입은 용윤이상(1917917199511)의 전기다.

 

이 책은 2005년 윤이상 서거 10주기를 맞아 출간한 윤이상 상처입은 용을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아 만듦새를 새로이 하여 출간한 책이다.

 

먼저 이 책의 저자는 루이제 린저다. 우리에게는 생의 한가운데로 널리 알려진 독일의 작가다. 그녀가 이 책을 쓰게 된 경위가 이 책, 9쪽에 잘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전기물(傳記物)인데, 그 형식이 독특하다.

일방적인 진술 형태가 아니라, 대담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즉 윤이상과 루이제 린저가 나누는 대화로, 윤이상의 생 전체를 다루고 있다.

 

윤이상의 생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국에서의 유년시절

한국과 일본에서의 청춘기

천직과 자기 발견

유학, 그리고 첫 성공

납치

석방과 새 출발

 

책은 그러한 대담을 중심으로 하여, 루이제 린저의 서문 책을 쓰게된 경위 등 과 윤이상 연보와 작품 목록이 실려 있다.

 

루이제 린저는 윤이상에게 질문을 한다. 서양인의 시각으로 한국에 관한 여러 가지 질문을 하는데, 가령 이런 것도 있다.

 

양반이란 게 뭡니까?”(26)

 

윤이상의 집안에 대한 설명을 듣는 중에 루이제 린저가 묻는 말이다.

질문이 우리에게는 어처구니없는 것이지만, 루이제 린저에게는 특별한 것이다. 지금 젊은 세대들이 오히려 이런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한국 역사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다 할지라도, 외국인의 시각으로 질문하고 답변을 이해하려고 추가 질문하는 내용들이 이어지니, 그보다 좋은 역사책이 없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 다음과 같은 것들이 보인다.

 

일단 우리나라의 굴곡진 역사다. 이승만, 그리고 박정희.

특히 박정희, 그가 자기 권력을 위해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여기 윤이상이란 한 개인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와 그의 가족이 입은 피해, 그리고 독일을 무대로 벌어지는 기막힌 정보부의 악행, 헛발질 등, 그게 우리 역사의 일부분이라는 게 부끄럽다,

 

그리고 윤이상이란 인물, 새삼 경외의 마음으로 그를 조명하게 된다.

어찌보면 역사의 희생자이면서도 굳세게 살아남아, 음악계에 남긴 그 족적들이 새삼 놀랍다.

 

나는 여태까지 그를 그저 동백림 간첩사건의 일게 피해자라고만 여겼지, 음악계에 남긴 그의 발자취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 간첩사건으로 유명해진 음악가 정도로 여겼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음악계에서 유명한 그였기 때문에 동백림 사건이 더 조명을 받은 것이었다. 그러니 그가 동백림 사건에 해당되지 않았더라면 동백림 사건은 역사에서 드러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동백림 간첩사건에서 윤이상이 당한 고초

 

어느날 그는 영문도 모른 채 독일에서 한국으로 납치되어 들어오게 된다.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기 위하여 그가 당한 고초 중 하나를 여기에 옮겨 본다.

 

<그들은 내 손발을 묶어 통나무에 매달았습니다. 땅에서 1미터 반 정도 높이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내 얼굴위에 흠뻑 젖은 천을 올려놓고 그위에 물뿌리개로 물을 뿌립니다. 그러면 천이 입과 코위에 딱 달라붙어 질식할 것 같습니다. 내가 정신을 잃으면 그들은 묶은 천을 풀고 의사를 불러왔습니다. 의사는 나에게 주사를 놓고 내가 숨을 돌리면 또 물고문을 계속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주사를 놓으면서 고문을 했습니다. ....,,, 여섯 번인가 그 이상 주사를 맞았을 때 나는 죽음을 예감했습니다.> (169)

   

루이제 린저, 역시

 

또한 루이제 린저를 한 작가로서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의 모습으로 조명할 수 있게 해준다.

 

<그녀 자신도 1944BBC 방송을 몰래 듣고 전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말한 탓에 군사교란과 반역죄목으로 체포 구금된 적이 있고, 사형선고의 위협 속에 있다가 미군에 의해 해방을 맞이한 경험이 있기에.....>(304)

 

루이제 린저(1911430- 2002317)는 독일의 소설가로, 19442차 대전이 한창일 때, 위와 같은 정권의 쓴 맛을 경험한 것이다. 그러니 윤이상과는 동병상련?

 

다시, 이 책은?

 

루이제 린저가 이 책을 썼는데, 그녀의 기여도는?

책의 말미에 <윤이상의 음악세계>를 공저로 펴낸 홍은미가 글을 하나 써놓았는데, 그 중 이런 말이 있다.

 

<린저의 언어는 독자에게 윤이상이라는 작곡가와 그의 음악을 알아보는 것으로 그치게 하지 않고 인간의 보편적 존엄성과 그들이 빚어내는 예술 가치 전반에 관해 생각하게 만든다. 더하여 음악적 전문성에 있어서도 손색이 없다.>(301)

 

루이제 린저는 이 기록을 남긴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이 보고의 필요성을 납득시킬 수 있었다.

당신과 같은 운명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몇 백명, 몇 천명이나 있다는 건 사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운명을 쓸 필요가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당신의 운명은 하나의 모델이니까요라고....>(181)

 

이 책을 읽다보면, 윤이상이란 존재, 그저 추상적으로 동백림 사건으로 고난당한 음악가로 흐릿하게만 알아 오던 사람의 모습이, 점이 보이고, 선이 보이고 드디어 얼굴 윤곽이 뚜렷해지기 시작하여 드디어 그의 모습 전체가 보이게 된다. 그의 걸음 걸이, 행동 하나하나가 뚜렷하게 보이게 만들어 준다.

 

윤이상, 그리고 그가 살았던 역사, 한국의 정치도 보여주고, 더 나아가 음악도, 루이제 린저도 알게 되는 일석 삼, 사조의, 한권 읽고 열권 읽은 것 같은 기쁨을 얻게 되는 뜻밖의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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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게임' 존 스노우 커플, 5년열애 끝 약혼 | 영화 이야기 2017-09-2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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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llywood]'왕좌의 게임' 존 스노우 커플, 5년열애 끝 약혼

 

입력 2017.09.27 07:00 수정 2017.09.27 07:38

 

 

[OSEN=최나영 기자] 마침내 '왕좌의 게임' 커플의 실제 러브 스토리가 해피엔딩을 맞았다.

HBO TV시리즈 '왕좌의 게임'의 존 스노우 역 키트 해링턴과 이그리트 역 로즈 레슬리가 5년 열애 끝에 약혼식을 올렸다고 뉴욕포스트가 26일(현지시간) 전했다.

 

측근은 "그들은 100% 최근 약혼했다.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지난 주 약혼을 했다고 이야기했다"라면서 "하지만 두 사람은 이를 굳이 크게 알리려 하지 않는다"라고 귀끰했다.

 

결혼에 대해서는 "키트는 자신이 로즈와 결혼할 것이란 사실을 안다. 그 전에 먼저 준비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곧 적절한 타이밍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2012년 HBO세트장에서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극 중에서도 연인으로 등장, 달달하면서도 강렬하게 호흡을 맞췄다. /nyc@osen.co.kr

[사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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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천권 독서법] 서평단 당첨자 발표 | 나의 서재에는 어떤 책이? 2017-09-26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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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권 독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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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재석이가 폭발했다 | 마음에 드는 책 2017-09-2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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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까칠한 재석이가 폭발했다

고정욱 저/이은재 그림
애플북스 | 2017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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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재석이가 폭발했다

 

이 책은?

 

청소년 소설이다. 그러나 그 문제 제기라는 점에서는 성인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특히 아이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 을 키우는 부모들은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아이들의 의식 구조, 아이들의 학교생활, 그리고 일진이라 불리는 조직들의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듯하다. 그런 일진들이 설쳐대는 학교에서 과연 내 아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이 책은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중 하나로, 학교안 폭력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를 써내고 있는 고정욱 작가는 1급 지체 장애인으로,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소설로 학교 현장의 문제점을 잘 묘사하고 있다.

문제점과 그 원인, 그라고 해결방안까지, 저자가 오랫동안 생각하고 고민하던 것들이 다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의 문제점을 직시하도록 해주고 있다.

 

<이런 왕따와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고 생각하나요?

아이들이 어른들의 잘 못된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사회가 힘과 권력으로 서열이 매겨지니까 아이들이 그걸 배우고 그대로 따라 하는 게 아닐까요?>(201)

 

명쾌하게 학교 내 폭력 사태의 원인을 짚어내고 있다.

 

<교실이 어떤 사회인지부터 먼저 고민해 뵈야겠지.

...

요즘 학교는 마치 계급사회 같아요, 부잣집 아이와 가난한 집 아이, 공부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 힘센 아이와 약한 아이.

맞아, 교실은 어느새 우리 어른들 사회와 비슷해졌단다. 그것부터 바꿔야 해, 학생 때는 수직적이고 위계질서에 의한 줄 세우기가 아닌 동등하고 평등한 인간관계를 경험해 봐야 해. 교복을 입은 이유가 뭐겠니? 빈부차나 지나친 개성보다는 동등하고 평등한 관계를 학습하자는 의도가 여기에 있거든.>(160)

 

그럼 해결책은 무엇일까?

 

<일진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 다수의 학생이었다. 일진이 아무리 많다해 도 십여 명 이십여 명 안팎인데, 결국 대다수가 들고 일어나면 꼼짝 없이 무너질 것이 뻔했다

일진은 침묵하는 대중 위에서 군림하는 기생충이에요. >(169)

 

이 것은 비단 학교생활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학교 밖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지난겨울과 올 봄에 걸쳐 그것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

 

<아이들만이라도 서로 차별하거나 군림하지 않은 평등한 사회, 평등한 교실을 만들자는 게 우리 깨어있는 교사들의 꿈이야.>(160)

 

재석을 도와주는 교사인 김태호 선생의 말이다,

지금 학교 현장에도 이런 교사들이 있다고 믿는다. 바라기는 그런 교사의 수가 더 많아져서 학교가 평등을 경험하고 배우는 진정한 배움의 장으로 바뀌기를 고대해 본다.

 

다시, 이 책은?

 

<학교에 가느니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게 해줘야 할 것이 아냐?>(159)

 

그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것을 즐겁게 여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게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이 책, 학교 현장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고, 그 해결방안까지 제시해 주는 소설이다.

특별히, 학부모들은 이 책을 아이들과 같이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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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익스피어]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 - 셰익스피어 투어 (작품) 2017-09-26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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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익스피어]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삶의 斷                                                                               

 

 

[세익스피어]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삶의 斷想                                                                                  

 

 

가장 두려운 악인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 『쾌락』

 

죽음을 향해 미리 달려감은 비본래적 존재에서처럼 죽음의 넘어설 수 없음을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로부터 자유로워 지는 것이다. (…) 그리하여 넘어설 수 없는 최후의 가능성
 
앞에 있는 여러 현실적 가능성을 이해하고 선택하게 된다.”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세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명대사다. 아버지를 살해한 숙부와 그와 결혼한 어머니를 보며 삶의 의미와 의욕을 상실한 채, 존재의 가치마저 회의를 품은 햄릿은 다음과 같은 독백을 읊조린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가혹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참고 사는 것이 장한 일인가? 아니면 이 거대한 고통의 바다에 대항하여 무기를 집어 들고 싸우다가 죽는 것이 옳은 것인가? 이처럼 햄릿은 아버지의 죽음과 그에 대한 복수심을 가지고서도 사후 세계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갈등한다. 자신이 죽음으로써 이 세상의 죄악, 부정, 부패가 제거될 수 있을지 아니면 죽고 난 후에도 그 문제가 그대로 남을지 알 수 없다. 모든 것이 불확실할 뿐이다. 죽음 앞에서 갈등하는 햄릿의 모습은 삶과 죽음의 문제로 갈등하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철학자 니체는 진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영원불변의 절대적인 진리는 없고 진리에 대한 해석만 있을 뿐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영원불변의 절대적 진리가 없지만은 않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언젠가는 죽는다. 영원한 생명체가 있는가? 없다. 따라서 죽음은 불변하는 절대적 진리가 맞다. 철학의 출발이 진리에 대한 탐구로 시작되었듯이 불변의 진리인 죽음도 철학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죽음에 대해서 대체로 무지(無知)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죽음에 대해서 애써 외면한다.

 

문화 인류학자 어네스트 베커가 그의 책 『죽음의 부정』에서 지적했듯이 우리는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객관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이 엄청난 진실을 회피하기 위해 온갖 획책을 다한다.” 하지만 삶과 죽음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개념이 아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삶의 다음 순간이 바로 죽음이다. 따라서 삶은 연기된 죽음에 불과하다. 삶의 끝이 죽음의 시작이다. 시인 '타고르'는 탄생이 삶이듯 죽음도 삶이다. 드는 발도 걸음이고 내딛는 발도 걸음이다고 주장했다. 그만큼 삶과 죽음은 가까이 있으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다.

 

당신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불변하는 진리이자 가장 중요한 철학적 주제인 죽음에 대해서 사람들은 대체로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을 보인다. ‘무시하기숙고하기. 어떤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해봐야 괴롭기만 하니 아예 무시하고 사는 편이 낮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들도 죽음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을 아예 무시하고 현재의 삶에 충실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는 것이다. 반면,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내일 죽을 것처럼 생각해야 오히려 오늘의 삶에 더 충실할 수 있다는 논리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어느 쪽의 판단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가?

 

죽음을 무시하고 사는 편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대표주자는 에피쿠로스. 먼저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가장 두려운 악인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죽음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 모두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는 주제다. 왜냐하면 산 사람에게는 아직 죽음이 오지 않았고, 죽은 사람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로 일어날 시점에 아무 문제도 야기하지 않을 어떤 일(죽음)을 두고 미리 걱정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보았다. 철학자 스피노자도 에피쿠로스의 주장을 거들고 나섰다. 그는 자유로운 인간은 결코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며, 그의 지혜는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성찰이다고 주장했다. 죽음을 생각하기보다는 삶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 더욱 지혜롭다는 말이다.

 

반면, 죽음을 숙고하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독일철학자 하이데거가 대표적 인물이다.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죽음을 향해 미리 달려감은 비본래적 존재에서처럼 죽음의 넘어설 수 없음을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로부터 자유로워 지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죽음의 가능성을 염두에 둘 때 오히려 그로부터 자유로워져서 한층 더 현실에 충실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넘어설 수 없는 최후의 가능성 앞에 있는 여러 현실적 가능성을 이해하고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가 만약 일주일 밖에 살수 없다면 남은 생애 동안 가장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을 선택하게 된다는 논리다. 이처럼 죽음에 대해 숙고한다는 것의 가장 큰 효과는 눈 앞에 일어나고 있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시선을 돌리게 해준다는 점이다. 남아있는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결국 죽음은 현실의 가능성 앞에서 올바른 선택을 도와준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다.

 

죽음을 무시하라는 에피쿠로스와 죽음을 숙고하라는 하이데거의 주장 중에서 어느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얼핏 보면 그들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동일한 주장을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현실의 삶에 충실 하라는 충고다. 에피쿠로스는 현재의 삶에 충실 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죽음을 생각지 말라고 한 반면, 하이데거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라고 한 것이다. 경로의 차이일 뿐 목적지는 동일하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이 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우리는 왜 죽음을 기억해야 할까? 그것은 자신이 죽을 존재라는 걸 각성하는 일이 살아 있는 순간들을 가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죽음은 삶과 맞닿아 있지만 사람들은 죽음이 코 앞에 닥쳐 문을 두드리기 전까지는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무덤덤하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구상에서는 사건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죽는 뉴스가 생생하게 전달된다. 이런 뉴스에도 사람들은 대체로 무덤덤하게 반응한다.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에게도 그런 일이 닥치지 말란 법이 없다. 따라서 죽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공포가 아닌 삶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 또한 가치 있는 삶을 선택하기 위해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 죽음을 가정하면 우리가 죽지 않고 지금-여기에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축복일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영원히 죽지 않고 살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일까?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재앙에 가깝다. 생각해보라. 죽지 않는데 가치 있는 일을 지금 당장 할 필요가 있겠는가? 어차피 죽지 않고 시간도 영원한데 무엇 때문에 서둘겠는가? 천천히 해도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 영원히 산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일 수도 있다. 오히려 죽음이 있음으로 해서 삶을 긍정할 수도 있으며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도 있다. 죽지 않는다면 삶의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죽음도 축복이다.

 

정리하자. 당신이 죽음을 무시하건 죽음을 숙고하건 그것은 당신의 자유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삶을 얼마나 충실하게 사는가이다. 영화배우 제임스 딘은 이런 말을 했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라, 내일 죽을 것처럼 살라.”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에 충실 하라는 말이다. ‘잘 사는 것(well-being)’이 중요하듯이 잘 죽는 것(well-dying)’도 중요하다. 그렇다면 잘 죽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의 삶을 잘 살아야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런 말을 했다. 잘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가져오듯이, 잘 보낸 삶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온다.” 행복하게 죽고 싶은가? 그렇다면 행복한 오늘을 보내야 한다. 삶과 죽음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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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인문교양 총서 '위대한 순간' 세 권: 바로크, 장자, 하이데거 | - 셰익스피어 클래식 2017-09-26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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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순간’은 문학, 역사, 철학 분야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인물이나 사건을 현재적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하는 새 인문교양 총서입니다. ‘위기의 인문학’을 되살리고 한국사회에 비판적 ‘교양’이 설 자리를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문학동네와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이 함께 손잡고 펴냅니다. 이번에 1차분으로 세 권이 첫 선을 보였고, 앞으로도 매년 세 권씩 출간할 계획입니다.

 

 

001. [바로크와 ‘나’의 탄생: 햄릿과 친구들], 윤혜준 지음

 

햄릿과 친구들이 여는 근대적 주체 ‘나’의 계보

 

막이 오르면, 세속적 근대와 기독교적 사유가 빚는 불협화음이 바로크의 서막을 알린다.
변화와 혁신을 알리는 소음이 높아지면, 조명은 존재를 회의하는 햄릿의 의식을 비춘다.
사건의 발단은 신의 궤도를 공전하던 의식이 독백이라는 자전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다.
햄릿의 독백이 의심과 회의, 사유와 성찰을 거쳐 ‘나’라는 새로운 중력을 여는 바로크적 순간,
몽테뉴의 에세이는 거울이 되고, 렘브란트의 가면은 표정을 바꾸고, 파스칼의 갈대는 자라난다.

 

이 책은 근대적 주체 ‘나’가 탄생한 바로크를 무대로, 햄릿과 그 친구들이 펼치는 사유와 예술의 여정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그려 보입니다.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 햄릿은 자신의 친구들인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 바흐의 베드로, 렘브란트, 데카르트, 몽테뉴, 파스칼, 세르반테스, 밀턴, 피프스 등을 소개하고, 이들과 함께 경험한 17세기 서양 지성사와 문예사의 순간들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햄릿과 친구들은 기독교적 사유와 세속적 근대의 요소가 팽팽하게 맞서던 바로크의 시대적 긴장을 고스란히 겪어냅니다. 그러나 어느 한쪽에 안주해 손쉬운 대답을 찾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 대립하는 두 가치관 사이에서 발생하는 충돌에너지를 동력 삼아 의심과 회의로, 사유와 독백으로, 또는 글쓰기와 자화상을 통해 ‘나’라는 새로운 근대적 중력을 열어냅니다.

 

저자 윤혜준 선생님(연세대 영문과)은 대학에서 문학과 사상사를 가르치고 계시지만, [우르비노의 비너스], [비발디풍 어머니] 같은 독특한 소재의 장편소설과 소네트 연작까지 발표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이번 책에서는 극적 긴장감이 살아 있는 밀도 있는 문체와 흥미진진한 서술로 드라마틱한 바로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바로크는 단지 지나간 과거의 이름이 아닙니다. ‘바로크적’ 상황은 역사 속에서 계속 반복되니까요. 지금 이 시대는 인간의 욕망과 기술, 도전 등 ‘르네상스적’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동시에 그 모순과 폐해를 목도하는 바로크적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햄릿과 친구들이 제시하는 바로크의 순간들 속에는 대립과 갈등을 회피하지 않는 진정한 용기가 스며 있습니다. 이 책은 바로크가 지금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되새기자는 권유이자, 사회가 요구하는 끝없는 자기 발전을 추구하느라 ‘나’를 돌볼 틈도 없는 현대인의 피로와 정신적 허기에 건네는 따뜻한 위안입니다.

 

 

평생 '나'를 그린 화가 렘프란트의 1640년 자화상.


002. [장자, 순간 속 영원], 정진배 지음

 

현대성을 선취한 2,500여 년 전 역설의 진리, 장자

 

학문과 종교의 경계를 뛰어넘는 위대한 사상
말해질 수 없는 ‘도’를 말로 드러낸 침묵과 해체의 미학
인생을 향한 깊은 연민의 사유

 

내가 사는 것이 삶이 아니라, 삶이라는 꿈이라면?
나를 둘러싼 것이 세계가 아니라, 나의 생각이라면?
생각하는 주체 ‘나’는 내 기억이 만든 허상일 뿐이라면?

 

장자의 철학은 역설의 진리로 가득합니다. 『장자』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 역설을 잘 해독하지 못하면 장자의 수많은 우화들은 잘못된 의미의 종착점에 이르게 됩니다. 이 책은 우화나 비유를 통해 고차원적 진리를 담아내는 장자의 사상을 깨달음이라는 종착지까지 잘 이끌어가도록 도와주는 안내서입니다.

 

저자 정진배 선생님(연세대 중문과)은 ‘지금 여기’의 생동하는 삶에 지혜가 되는 촌철살인의 명료한 해석으로 장자 이야기의 진면목을 전해줍니다. 이 책은 장자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도록 『장자』 내편 일곱 편 각각의 핵심을 주제별로 간추렸고, 2,500년 전의 사상을 ‘지금 여기’로 끌어오는 데 큰 무리가 없도록 현대인의 눈과 마음에 익숙한 마흔 개의 소주제를 선별해 이야기합니다. 

 

장자 사상의 주제가 집약된 우화는 그 유명한 ‘장주 호접몽’입니다.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는 꿈을 꾸다가 깬 장주는 자신이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주 자신이 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나비에서 장주로, 장주에서 나비로의 자유로운 물화物化는 서구 근대 철학에 뿌리 깊게 자리한 나와 세계, 주관과 객관, 현실과 꿈 등의 이분법적 사유를 해체합니다.

 

인식의 최전선에서 언어와 유희하는 장자 사상의 근원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이 자리합니다. “일생을 악착같이 수고하면서도 그 성공은 기약하지 못하고, 고달프게 고생하면서도 돌아가 쉴 곳을 알지 못한다”는 장자의 애틋한 진단은 그 사유의 온기와 더불어 그가 해체한 시공을 넘어 오늘에 도달합니다.

 

월전 장우성, <춘경>, 1987. "그림 속의 텅 빈 대자연에 무념으로 우리를 내맡기고 있노라면, 시간 또한 나와 더불어

고요히 대자연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정진배)

 

003. [철학의 모비딕: 예술, 존재, 하이데거], 김동규 지음

 

그는 실존에 기반한 지상의 철학을 꿈꾸며 낡고 오래된 철학의 신전에서 걸어나왔다.
그리고 ‘존재’라는 이름의 신성한 향유고래를 찾아 예술의 바다로 뛰어들었다.

 

서양 현대철학에서 위대한 순간은 하이데거이다.
나는 위대한 순간을 한 명의 철학자 이름으로 말한다.
왜냐하면 ‘하이데거’라는 이름은 단지 특정 개인에게 귀속된 호칭만을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이데거는 한 인간의 이름이라기보다는 철학사에 남겨진 일종의 기호이다.
한 철학자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그것은 서양 철학사를 뒤흔든 사유의 대격변,
엄청난 규모의 철학적 사건을 환유로 치환한 기호이다. _김동규

 

2010년에 출간한 [멜랑콜리 미학](문학동네)에서 영화 <글루미 선데이>를 지렛대 삼아 사랑과 예술, 그리고 인간 심연의 정서 멜랑콜리를 흥미롭게 풀어냈던 김동규 선생님(연세대 철학과)이 이번엔 현대철학의 거인 ‘하이데거’ 이야기를 펼쳐보입니다. 

 

하이데거는 서양철학 전체를 담아낼 만큼 웅대한 사유를 펼친 철학자이죠. 그의 삶과 철학은 서양 문명의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각인된 사건이었고, 그의 주저 『존재와 시간』이 출간된 1927년은 근대철학과 현대철학을 가르는 기점이 되었습니다. 메를로퐁티, 사르트르, 리쾨르, 푸코, 데리다, 레비나스 같은 프랑스 철학자들은 이 책을 출발점 삼아 현대적 사유를 펼쳐나갔으며, 마르쿠제와 하버마스의 비판이론, 아렌트의 정치철학, 실존철학과 현상학, 가다머의 해석학, 철학적 인간학, 언어철학, 과학철학, 포스트모더니즘 등 현대의 거의 모든 지적 흐름의 원천에는 하이데거 철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이데거는 서양철학 전체를 회고하며 비판을 수행했습니다.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세계대전, 모든 것이 돈으로 교환 가능한 자본주의 체제, 과학기술문명의 폐해를 단순한 우연의 산물이 아닌 서양철학의 뿌리에서 성장한 열매들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이데거는 지금과 다른 존재이해, 망각된 과거의 존재이해를 다시 불러오지 못한다면 현 시대의 난관은 돌파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존재이해는 다름 아닌 우리의 삶에서 파생된다고 말합니다. 이 지점에서 그는 삶의 세계, 생활세계, 지상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이 책은 서양철학 전체와 맞장을 뜨며, 예술 속에서 진정한 존재의 흔적을 찾아나선 하이데거의 지적 모험을 따라갑니다.  『모비딕』의 작가 허먼 멜빌은 거대한 향유고래 모비딕을 가리켜 “진정한 의미의 얼굴”이 없는 괴물이라고 했습니다. “주름투성이 이마가 넓은 하늘처럼 펼쳐져 있을 뿐”이라고요. 하이데거는 ‘존재’라는 이름의 얼굴 없는 거대한 괴물에 맞서 초인적인 힘으로 사투를 벌인 에이해브 선장을 닮았습니다. 그것은 서양 문명, 그리고 이미 그 문명의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우리 자신도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싸움입니다. 어쩌면 싸움의 승패는 이기고 지는 결과에 달린 것이 아니라, 사투의 과정을 통해 성장판을 얼마만큼 열어내느냐에 달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이데거 철학의 산실 토트나우베르크 산장. 만년에 인적이 드문 산기슭에서

집필에만 몰두했던 하이데거는 [숲길], [들길]이란 제목의 책을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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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솔한 삶에 대한 노력 | - 셰익스피어 클래식 2017-09-26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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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솔한 삶에 대한 노력

박기태 건양대 교수

 

승인 2017.02.10  15:16:40

 

[박기태 건양대 교수] 우리는 거울 속에 비쳐지는 자신의 외형적인 모습을 보면서 가끔씩 카타르시스에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모습이 새삼스럽게 삶의 시간을 느끼도록 만드는 진솔함을 내포하고 있음은 물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직' 이라고 생각했던 지금이 '벌써' 라는 되돌아봄으로 변해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차피 삶이란 눈 내리는 날 분명하게 각인되는 우리의 발자국이 뒤돌아보면 곧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그리고 호수 위를 날아다니는 기러기의 그림자처럼 여지껏 할 일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어느새 삶의 뒤안길을 회상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자신에게는 깊은 아쉬움으로 남을 뿐만 아니라 타인들에게는 부끄러움으로 보여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삶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발자취를 반추해 보면 삶 자체가 오롯이 '진실한가 혹은 진실하지 못한가.' 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잉태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독일의 실존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는 그의 저서 『존재와 시간 : Sein and Zeit』에서 삶을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으로 나누어 매우 조직적이며 포괄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본질적인 삶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바로 진실한 삶이다. 실존적인 자신의 소신과 결단을 바탕으로 사는 삶 자체를 의미하며 타인들의 삶에 편승하지 않는 주체적인 삶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비본질적인 삶이란 어떠한 삶을 의미할까? 우리 주변이나 매스컴을 통해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패거리문화나 패거리정치를 연상하면 더욱더 이해가 될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비본질적인 삶은 자신의 줏대 없이 막연하게 세속적인 사람들의 풍조를 뒤쫓아 사는 진실하지 못한 가짜 삶을 뜻한다. 타인의 행동에 편승함으로써 아무런 자신의 결단과 소신도 없이 그리고 자신의 책임을 타인의 것으로 회피하는 수동적이면서도 피상적으로 사는 삶이다.

 

  영구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는 "세상은 무대요, 인생은 연극이다." 라고 했다. 이 말은 애절할 정도로 우리의 주체적인 삶을 강조하고 있다.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진실된 삶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 대부분은 떳떳함이 상실된 비본질적 삶속에서 무기력과 불안감에 사로잡혀 조연이나 엑스트라로 전락하여 사소한 일에도 두려워하고 초조해하며 활력을 잃게 된다.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진솔함이 흠뻑 배어있는 본질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정직한 마음으로 자신을 일깨우고 항상 떳떳한 행동을 통해서 변화가 일어나는 삶속에서만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기의 삶이 비본질적이며 가짜라고 느껴지면 결코 강해질 수 없고 무기력에 빠지는 상황에 처할 것이다.


따라서 자기 자신에게 진실한 사람만이 강하게 성장할 수 있음을 명심하자. 아울러 진실함과 떳떳함이 없으면 결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진실한 본질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항상 용감하게 노력을 해야 함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1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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