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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기독교의 역사? | 기본 카테고리 2012-08-25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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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

유재덕 저
브니엘 | 2008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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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전, 모래와 먼지를 뒤집어 쓴 중동의 작은 지방 나사렛, 그곳에서 태어난 한 남자가 오늘날까지 죽지않고 찬란하게 살아남아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일부에서는 그 남자가 달변이었다고 말한다. 항간으로는 그 남자의 외모가 대중을 완전히 매료시킬 정도로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믿는 사람들 중에는 그 남자가 물을 포도주로 바꾸고 장님을 눈 뜨게 했으며 미친자로부터 귀신을 쫓아내는 기적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 보기에 그 남자가 성공한 이유는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내주고 일곱 번 씩 일흔 번을 용서해 주는 것. 이게 바로 그 남자의 성공 전략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네 이웃을 내 몸의 반에 반만 사랑했어도' 세상이 이렇게 엉망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특히 타 종교를 증오하고 억압하는데 그들은 탁월한 능력을 보여줘왔다. 그리고 그 분노와 증오를 종교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대대로 전해오는 것을 그들의 존속 전략으로 삼아왔다.





종교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또 선행되야 하는건 교리가 아니라 바로 역사다. 이런건 유치 1, 2부 때부터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우리 나라 교회치고 역사에 기반한 기독교를 가르치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기독교인들이 가장 명심해야 할 것은 종교가 하늘에서 뚝하고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에 뿌리를 내린 역사적 실체다. 이걸 무시하면 종교는 현실과 유리되어 저 하늘 위로 훨훨 날아가 버린다. 인간과 구체적 세계가 사라진 종교? 그런걸 도대체 어디다 써먹는단 말인가!


우리 나라 종교인들 중에는 가톨릭과 기독교를 이른바 성당과 교회로 나눠(언제 한번 이 단어의 유래를 찾아보고 싶다) 마치 독립된 별개의 종교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눈 앞이 캄캄해지고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일부 광신적인 기독교인들은 게거품을 물고 난리를 칠 일이지만 따지고 보면 가톨릭은 기독교의 형님뻘 되는 종교다. 가톨릭이야 말로 나사렛 예수를 계승한 최초의 종교라는 말이다. 

예수가 활동할 당시에는 당연히 가톨릭 따위는 없었다. 예수와 열두 제자들은 모두 유대인이었다. 유대인들은 전부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섬겼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는데 예수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힌 이유가 바로 본디오 빌라도가 이스라엘에 파견된 총독이었기 때문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핍박을 받았던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예수의 언행이 너무나 파격적이었다. 그는 '안식일에 성전을 찾는 것보다 네 이웃과 화해를 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거나 성전 앞에서 비둘기를 파는 상인의 좌판을 걷어 차며 '꺼지라'고 할 정도로 대담했다. 하지만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로 혁명적 인물은 기득권의 눈 밖에 나기 마련이 아닌가? 당시 유대인 대제사장이었단 안나스와 가야바는 점차 넓은 지지를 확보해 가던 예수를 군중 선동, 정치 혼란의 주범으로 고발하여 결국 골고다 언덕에서 처형하고 만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예배를 보던 지하 묘지. 카타콤



예수 사후 와해 위기에 처한 '유대인'들은,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사역을 이어갔다. '사도'로 일컬어 지는 열 두 제자들이(특히 바울은 기독교의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독립 종교로서의 지위를 다지게 했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예수'의 종교라기 보다는 '바울'의 종교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주변국을 여행하며 선교에 힘썼고 당시 사회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수 많은 피지배층들이 사회적 소수자를 옹호하는 기독교의 교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시간이 흐르자 기독교는 점차 로마의 지배층으로까지 침투했다. 세속적인것을 거부하고 경건한 생활에 힘쓰며 어려운 이웃을 돕는 기독교인의 삶은 속세에 찌든 로마의 도시인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었다. 그리고 서기 313년,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마침내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승인한다. 


콘스탄티누스가 그리스도교의 수호자를 자칭한 뒤 벌인 첫 일은 교리의 통합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오랜 핍박 끝에 자유를 맞이하게 되었으나 그 자유를 만끽하기도 전에 심각한 교리 다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교회의 분열을 우려했던 콘스탄티누스는 325년 7월 4일, 3백 명의 감독과(Bisop) 2천 명의 장로들(presbyter) 및 집사들(deacon)을 당시 황궁이 있던 니케아에 소집해 교리 통일을 시도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니케아 공회'다. 


니케아 공회가 채택한 교리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뽑으라면 역시 삼위일체론일 것이다. 삼위일체론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이 하나라는, 기독교 교리의 핵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비록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태어났으나 그 본성은 '신'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오늘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이 같은 교리를 공의회까지 열어 결정할 정도면 초창기 기독교는 예수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놓고 상당히 분분한 의견이 대립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같은 대립은 결국 반 삼위일체론의 대표격이라고 볼 수 있는 아리우스가 추방되면서 일단락 된다. 하지만 삼위일체를 거부하는 종파는 현재까지도 당당히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 나라에선 완전히 사이비 종교로 오해받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이 그 대표 종파다. (여호와의 증인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신도를 거느리고 있으며 대한민국에만 10만명의 성도가 살고 있다)





니케아 공의회가 시사하는 바는,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교리, 즉 이단을 구분해 내고 그들을 잔인하게 심판하는 절대적 교리라는게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의도와 말씀을(성경)을 임의로 해석할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의 합의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리의 채택은 당연히 정치적으로 변질될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교리는 줄곧 교회 권력을 놓고 벌이는 정치적 암투의 희생양이 되어 왔으며 특히 정적을 제거할 구실로는 그만한 방법이 없다고 여겨질 정도로 상당히 퇴색하고 말았다. 


교리 선택이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다수의 추종자들의 합의하여 결정하는 구조를 채택하는 한 교리 해석의 난립과 이를 통한 종교의 분열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실제로도 그리스도교는 수 차례의 교리 논쟁으로 많은 분파를 만들어 냈으며 그 때마다 서로를 이단으로 정죄하는 진흙탕 싸움을 계속해 교회의 분열을 가속화 시켰다. 이 과정에서 동방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이 안에서도 또다시 교리 논쟁이 벌어져 이집트, 에티오피아의 콥트교회와 시리아의 야고보교회를 탄생시켰다. 


과연 무엇이 이단이고 무엇이 진짜 말씀인가를 따지는 일은 강물과 바다물을 앞에 두고 무엇이 진짜 물인가를 가리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오늘날의 교리에 따르면 두 번 따져볼 가치도 없이 터무니 없는 주장이겠지만 그것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기준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천상으로부터 내려지는 하나님의 심판인가? 아니면 교회를 지배하고 그 권력을 향유하는 교회 지도자들의 목소리인가? 내가 '신은 믿을 수 있지만 교회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데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후 그리스도교의 상황을 얘기하면 한 마디로 분열이다. 분열이 심했다는건 그만큼 기독교가 '장사가 됐다'는 말이다. 기독교는 더 이상 개인의 구원, 정의로운 삶 어쩌구 하는 가치를 위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삶을 추구하는건 언제나 힘 없고 무지한 평신도들 뿐이었다. 종교 지도자들에게 종교는 직업이다. 밥벌이라는 뜻이다. 밥 그릇 주위에는 언제나 악취와 오물이 넘쳐나는 법이다.


7세기에는 이슬람이 탄생했다. 마호메트도 하나님을 믿었지만 마호메트의 하나님은 이슬람교도들에게 자신이 직접 창조한 자식들을 무참히 살해하라고 사주했다. 아이러니한건 기독교인들도 동일한 하나님으로부터 동일한 사주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동일한 하나님의 동일한 계시를 받고 서로를 무참히 살해했다. 이런 이중인격적인 하나님의 계시에도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오묘한 섭리가 존재하는 걸까?


사람들이 기독교(가톨릭)의 부패와 멍청함과 부정의에 언제까지 참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영국 왕 헨리 8세는 로마 가톨릭에 반기를 든 최초의 유럽 왕이었다. 그는 영국 성공회를 국교로 인정하고 종교 개혁을 실시했다(16세기). 물론 그에게 정의로운 동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자신의 이혼을 인정하지 않고 파문 시킨 로마 가톨릭이 꼴보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마틴 루터와 칼뱅이 등장한다. 이들은 가톨릭에서 분리된 새로운 교회를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프로테스탄트 교회고, 한국에서는 이를 개신교 또는 '교회'라 지칭하며 가톨릭의 '성당'과 구분한다. 


유대교에서 시작한 '야훼의 종교'는 가톨릭, 콥트교, 그리스 정교, 이슬람교, 영국 성공회, 프로테스탄트 교회 등 수 많은 종교를 파생시켰고 프로테스탄트교는 장로교(칼빈파), 감리교, 침례교, 퀘이커교, 루터교, 제7의 안식일교(삼육 재단) 등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종파를 만들어 냈다. *이들은 똑같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었지만 탄생 당시에는 거의 예외없이 서로에게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댔다. 





이 책은 오랜 기독교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지만, 2천년이란 그렇게 만만한 시간이 아니다. 애초에 한 권의 책으로 담는다는 생각 자체가 넌센스다. 숨가쁜 질주에 내용은 다소 산만하고 일부는 빈약해 보인다. 하지만 기독교의 역사를 한 눈에 훑어 보기에는 이것만큼 좋은 책도 없어 보인다. 시간과 지면이 허락했다면, 저자도 분명 더 나은 책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언젠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처럼 '기독교인 이야기'를 내 손으로 직접 써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분명 흥미진진한 작업이 되겠지만, 죽기 전에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유대교, 가톨릭 보다는 개신교의 분열이 훨씬 심각한 이유는 프로테스탄트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의 근본 정신이 저항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부패한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단호한 태도.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저항 정신이 오히려 프로테스탄티즘의 분열을 가속화 시켰으니, 역시 세상은 아이러니의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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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의 부도덕 교육 강좌 | 기본 카테고리 2012-08-18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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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부도덕 교육강좌

미시마 유키오 저/이수미 역
소담출판사 | 201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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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덕 교육 강좌'는 '주간 명성'이라는 여성 잡지에 기고한 글들을 단행본으로 펴년 에세이 집이다. 67편의 부도덕 교육에 해설, 옮긴이의 말까지 포함해 총 422페이지로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무게는 무겁지 않아. 내용 또한 마찬가지. 출근길 전철에 서서 부담없이 읽기에 아주 좋은 책이라고 볼 수 있지. 문제는 내가 이 책을 소설로 알고 샀다는 거야.


미시마 유키오는 데뷔와 동시에 성공을 거둔 남자다. 거칠게 없었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추천으로 문단에 입문했고 31살 때 이미 '금각사'를 써 버렸으니까. 어릴 땐 몸이 약해 수줍음 많고 허약한 소년, 근육질의 동성 친구에게 미묘한 감정을 품을 정도로 괴상한 아이였지만, 성공을 거두고 보디 빌딩을 시작하더니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고 패기 충만한 이상한 아저씨가 되버렸지. 그러니까 감히 '부도덕'을 교육하시려는 것 아니겠어?



소설가들은 원래 그래야만 하는건지, 원래 그랬기 때문에 소설가가 되는건지 알수는 없지만, 대개 개성있고 자기 주장이 확실한 사람일 수록 이 세상을 삐뚜루 보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 사람들은 대개 도덕적으로 민감하고 시비에 철저하며 본질 추구에 집요한 면을 보인다. 뭐하나 허투루 넘어가는게 없어. 이 삐딱이들이 '엄밀하게 따지면'이라고 말을 시작할 땐, 어지간히 골치아플 준비를 해야 한다. 

부도덕 교육 강좌가 말 그대로 부도덕을 교육하기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도덕이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억제하기 위한 사회적 규범이다. 


그런데 문제는 도덕을 잘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철저히 실천하는 것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있다는 거다. 예컨대 우리는 모두 남의 불행에 기뻐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은연중에 그 불행이 고소하게 느껴지면서 묘한 자신감에 벅차오르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니가 그러면 그렇지'. '그렇게 잘난척 하더니 내가 알아 봤다'. 본성이 펄떡펄떡 살아 날뛸땐 도덕은 속수 무책인 법이지. 하지만 이 더러운 본성을 자기 눈으로 목격할 수 있다면? 문득 거울을 봤더니 그 속엔 무시무시하게 일그러진 짐승의 모습이 있다. 이게 나의 모습이란 말인가? 나는 화들짝 놀라 얼굴을 붉히고 본래의 도덕적인 나로 돌아온다. 


미시마 유키오는 '남의 불행을 기뻐하라'고 가르치고 있지만 독자가 보는 것은 치졸하고 잔인한 나의 '본모습'이다. 인간은 '내 눈의 들보'를 보기 시작했을 때 도덕적으로 변화될 가능성을 갖게 된다. 작자가 보여주는 건 진실한 너의 모습. 네 눈의 들보. 부도덕 교육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론 도덕 교육이라는 여러 독자들의 평은, 그러므로 타당하도다.


하지만 이런 역설, 너무 흔하잖아. 진부해. 질린다고. 도덕 교육같은거, 진지하게 점잖빼고 얘기하면 꼰대처럼 보일까봐 일부러 이런 제스쳐를 취하는거 아니야? 기본적으로 당신의 글에선 남성 우월주의와 힘에의 의지가 느껴져. 남을 깔보는 듯한 시선이 문장 사이사이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내 마음을 질겅질겅 씹어댄다구. 그래서 난 당신이 싫고, 당신의 말투가 싫고, 이 책이 싫어.





하지만 그의 지적엔 절묘한 섬뜩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잔혹함은 소년기의 특징이다. 아무리 감상적으로 보이는 소년에게도 본능적인 잔혹성이 내재되어 있다. 소녀도 마찬가지다. 다정한 심성은 어른의 교활함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p. 19. 선생을 무시하라, 속으로만)


어른이 된다는 것, 건강한 사회의 예의바른 시민으로 성장한다는 것. 그것은 결국 펄떡펄떡 살아 날뛰는 본성을 감옥에 가둬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무의식의 심연으로 유배보내는 것 아니겠는가. 대가의 시선에는 당해낼 수 없는 점이 있는 법이지. 내가 만약 일찍 성공을 거뒀다면, 아마도 미시마 유키오 같은 사람이 됐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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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모든 것, 문명의 모든 것, 세계의 모든것 | 기본 카테고리 2012-08-0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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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예루살렘 전기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저/유달승 역
시공사 | 201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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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 페이지가 넘는 책을 한 페이지의 리뷰로 옮기는건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 책은 예루살렘의 기록 아닌가. 예루살렘에는 종교와 문명, 역사와 인종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그것을 하나씩 풀어 헤쳐 온전히 날것의 예루살렘을 꺼내보는 일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책을 딱 한 번 읽고 그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번역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예루살렘의 역사는 현기증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복잡하다. 수 천년의 역사 동안 그 땅에는 얼마나 많은 예수와 요한이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무하마드와 알리가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성전과 요새와 왕조가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인종과 종교가 있었는지! 어느 순간 독자는 홍수처럼 밀려 오는 지명과 이름의 압도적 물결에 휩쓸려 망망대해를 표류하게 된다. 불과 1분 전에 읽은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페이지를 뒤로 돌리는 건 예삿일이다. 역사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언제나 미궁 속을 헤매는 운명을 겪기 마련이다. 


저자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는 한 권의 책에 예루살렘의 모든 것을 넣을 작정을 한 것 같다. 이 책엔 아브라함에서 부터 네타냐후(2009년 부터 재직 중인 이스라엘 총리)에 이르는 유대인들의 기록이 있으며 이는 거의 4,000년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400년이 아니다. 4,000년 이다. 


앞에서 나는 이 책을 딱 한 번 보고 예루살렘의 모든 것을 알수는 없을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런 말이 될 것 같다. 


이 책을 딱 한 번 읽는 것으로 예루살렘의 모든 것을 알수는 없지. 하지만 이 책 딱 한 권만으로 예루살렘의 모든 것을 알수 있는 것도 사실이네. 





여기 예루살렘이 있다. 그곳에 처음 뿌리를 내린 사람은 아마도 아브라함으로 보인다. 그에겐 이삭이라는 아들이 있었고 이삭은 야곱과 에서라는 아들이 있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야곱은 에서에게 죽 한 그릇을 주고 장자권을 가로챘다. 나중에 야곱은 낯선 자와 씨름을 벌이는데, 그 사람은 나중에 신으로 밝혀지고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는다. 그는 열 두 명의 아들을 낳았고. 그것이 바로 유대의 12지파가 되었다. 


그들의 역사처럼 파라오의 호의를 입은 건지 아니면 노예로 끌려 갔던지 그 사실 여부를 따질 수는 없지만 그들이 이집트에 있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았다면 모세가 그들을 이끌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 수는 없었을 테니까. 이 대탈출의 기적이 바로 모세 5경 중, 출애굽기(이집트=애굽)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그 후 예루살렘엔 다윗과 솔로몬이 있었다. 성전과 요새가 지어졌고 역사상 유래없는 번영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번영은 길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북쪽의 이스라엘과 남쪽의 유다(다윗 왕가)로 갈라선다. 그리고 그들은 각각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의해 멸망하고 만다. 디아스포라의(유대인들이 세계 각지로 뿔뿔히 흩어지게 된 것) 시작이었다.


유대인을 고향으로 돌려 보낸 것은 중동의 새로운 강자 페르시아였다. 페르시아는 바빌로니아를 멸망 시키고 유대인을 해방 시켰다. 해방된 유대인은 또 다시 페르시아를 꺽은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에 점령 당했다. 아시다시피 알렉산더는 이민족의 문화에 관대한 사람이었다. 유대인들은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알렉산더의 명은 길지 않았다. 유럽에선 그리스 문명을 이어 받은 로마가 세계를 정복하고 있었다. 로마는 자기가 정복한 나라의 속국들을 이어 받았고 거기엔 이스라엘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이스라엘의 로마인 총독은, 


폰티우스 필라테(본디오 빌라도)였다.





폰티우스 필라테는 성난 유대 군중들을 향해 강도 바라바와 예수 중 누구를 풀어줄 것이냐고 물어봤다. 유대인들은 바라바를 원했다. 폰티우스 필라테는 "물을 받아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했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책임이 없소". 그러자 군중이 대답했다.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질 것이오".(p. 197)


오늘날까지도 많은 천박한 기독교인들이 이를 근거로 유대인의 박해를 정당화 한다(저자에 따르면 이 마태복음의 구절이 완전히 날조된 것이라 한다. 저자는 폰티우스 필라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완곡, 부드러움 따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피를 보기 전에 손을 씻을 필요를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p.197).)


이후 세계를 지배한 것은 그리스도교였지만, 그게 그리스도교의 우월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변덕쟁이에 야심가였던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중요한 내전을 치르기 전날 밤(312년) '하늘에 빛으로 된 십자가'가 '이 신호와 함께 너는 승리할 것이다!'라는 문구와 함께 겹쳐져 내려오는 것을 보았고 군인들의 방패에 크리스투스의(Christos. 영어로는 Christ) 첫 두 글자인 키로(Chi-ro)를 그렸다. 그는 승리했고 로마를 차지했다. 당시 로마는 곧 세계였으며, 이로인해 그리스도교가 세계의 종교로 거듭나게 된다. 이후 300년 동안 그리스도교는 적수가 없었다. 마호메트의 이슬람교가 등장하기 전까진 말이다. 





이슬람교는 많은 무지한 기독교인들이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하나님, 예수, 성경, 마리아 등의 개념을 공유하는, 기독교와 아주 유사한 종교다. 실제로 이슬람교가 등장한 초창기엔 종교간 충돌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슬람교가 마호메트를 선지자로 규정하자 상황은 달라졌고 수 백년이 흐르는 동안 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악화되었다.


이제 예루살렘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공통 성지가 되었고 역사상 유례없는 핫 플레이스가 되버렸다. 여름에는 작렬하는 태양이, 겨울에는 살을 에는 추위가 존재하는, 전략적, 경제적 가치도 없는 바위 투성이의 쓸모없는 땅이 말이다.


이 각축전에서 먼저 승기를 잡은 건 이슬람이었다. 고도로 발달한 문명과 군사력을 앞세운 이슬람은 유럽의 스페인과 중동의 대다수 지역을 정복했고 예루살렘은 보너스였다. 그런데 이슬람은 많은 기독교인이 생각하는 것만큼 무자비하고(칼이냐 코란이냐) 문란한(할렘 문화) 민족이 아니었다. 그들은 종교적으로 매우 관대했고 이 때문에 예루살렘에는 유대인과 그리스도인과 이슬람 교도들이 사이 좋게까지는 아니었지만 '공존'하는게 가능했다. 문제는 기독교인들이었다. 종교적 광신에 빠진 중세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은 성지를 이교도의 손에서 빼앗고자 피의 축제를 벌였고 이게 바로 4차에 걸친 십자군 전쟁이다.


그러나 이 대혼란 속에서 유대인은 단 한 번도 승기를 잡아본 적이 없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의 주인이 바뀔 때 마다 심한 박해를 받았고(특히 그리스도인들의 박해) 그저 더 관용적인 침략자가 나타나 자신을 구원해 주길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다. 그들이 이 땅을 다시 차지하게 된 건 1948년이 되어서였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에 이르러 유럽의 유대인 유력자들 사이에서 '시온 주의'가 발흥하게 된다. '시온 주의'란 뿔뿔히 흩어진 유대인들, 세계 각지에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핍박을 받는 모든 형제들을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모아 유대인 국가를 세우자는 운동이었다. 유럽의 왕들 중 일부는 '기생충 같은 유대인들을 내 땅에서 없앨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심정으로 또 일부는 '유대교에 대한 막연한 경외감'으로 또 일부는 '불가사의한 예언의 광신'에 휩싸여(예언에 따르면 유대인이 다시 예루살렘이 돌아왔을 때 메시아가 강림한다) 이 운동에 참여했다. 유대인들의 땅으로는 남미의 아르헨티나, 아프리카의 우간다 등이 제시됐다. 그러나 그 무엇도 예루살렘이 가진 거대하고 위대한 상징을 능가할 수는 없었다. 


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유대인의 지지를 얻고 싶었던 영국은 '밸푸어 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는 것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시온 주의자들은 드디어 자기 나라를 세울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올라 영국을 도왔다. 마침내 영국은 예루살렘을 차지했다. 


전쟁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대인들은 영국이 프랑스와 아랍인들에게도 똑같이 팔레스타인을 약속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온 주의는 물거품이 됐고 예루살렘은 영국의 통치하에 그리스도인과 유대인과 이슬람인이 공존하는, 유대인들로서는 예전과 전혀 다를게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유대인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날때 까지도 자기 나라를 세울 수 없었는데, 영국인의 배신에 실망한 일부 유대인들은 히틀러가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하고 있었음에도 영국이 아닌 독일의 승리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유대인들은 결국 무력 항쟁을 통해 영국군을 몰아 내고 마침내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한다. 옛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망한지 2,700년이 지나서였다.


이 후 이스라엘의 역사가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적대적인 *아랍 국가들에 둘러 쌓여 있었다. 이들은 호시탐탐 예루살렘을 점령할 계획을 세웠고 각지에서 폭탄 테러와 유대인 살인이 벌어졌다. 2,700년 만에 되찾은 이스라엘을 다시 한 번 멸망의 위기로 몰아 넣은 것은 이집트의 대통령 '나세르'였다.


단 하나의 아랍 국가를 원했던 민족주의자 나세르는 아랍 국가들 사이에 가시처럼 걸려 있는 이스라엘을 파멸시키고 싶었다. 그는 주변 아랍국을 선동해 전쟁을 일으켰다. 이게 현대 전쟁사의 최고 드라마 6일 전쟁이다. 


아랍 연합군은 50만의 병력, 5,000대의 탱크, 900대의 비행기를 확보했다. 이스라엘은 27만 5,000명, 1,100대의 탱크, 200대의 비행기를 확보했다.(p. 814)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 심지어 이스라엘인 조차도 자국의 승리를 점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과감한 선제 기습 공격으로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1967년 6월 5일 오전 7시 10분, 이집트로 날아간 이스라엘 조종사들이 그들의 공군을 궤멸시켰다. 이스라엘은 불가사의한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것은 마치 2,700년 간 유보해왔던 축복이 한 순간에 내려진 것 같았다. 이제 그 누구도 유대인들의 손에서 예루살렘을 빼앗을 수 없었다.





역사는 언제나 가해자의 잔인함을 고발하지만 동시에 복수심에 불타는 피해자 어떻게 가해자로 변신하는지를 주목하기도 한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겪어온 폭력과 멸시의 고통을 이슬람인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들은 가자 지구를 폭격해 수 많은 민간인을 사살하고 폭탄 테러의 위협으로 부터 유대인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비인간적인 격리를 실행하고 있다. 끔찍한 게토의 추억을 갖고 있는 유대인들이 말이다.





아브라함에서 시작한 예루살렘의 전기가 2000년대 이스라엘의 모습에 이르러 마무리 지어지면, 드디어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세계의 역사를 단숨에 들이킨 듯한 자신감이 충만해 온다. 


이 책은 유대인들에 대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예루살렘에 대한 책이다. 예루살렘에는 수 많은 종교와 민족과 국가가 존재해왔다. 저자는 그 모든 것들을 어느 일방의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한다. 어쩌면 그의 의도가 예루살렘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며 따라서 그것을 두고 피를 흘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의도를 받아 들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종교 때문에 폭탄 테러와 비인간적인 학살이 자행되는 곳이다. 아이러니한건 그 곳에 사는 사람 모두가 정의와 평화를 꿈꾼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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