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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신들은 목마르다

아나톨 프랑스 저/김지혜 역
뿌리와이파리 | 201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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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톨 프랑스의 팬이라면 번역서가 나오는것 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아나톨 프랑스, 서적상의 아들로 태어나 일생을 책과 함께 살았고, 한때는 탐미주의로, 한 때는 깊은 회의주의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수 놓았던 소설가. 노벨상까지 수상한 작가임에도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요. 


이 남자의 작품에는 인간이 가진 본성적 결함을 조롱하는 깊은 회의주의가 뿌리 박혀 있어요. 아마도 이 회의주의가 건강하고 올바른 삶을 사시는 분들의 눈에 거슬렸던건지도 모릅니다. 





후세 사람들 중에는 프랑스 혁명을 실패한 혁명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오늘날 거의 모든 국가가 '공화국'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건 모두 프랑스 대혁명 때문이에요. 공화국이란 쉽게 말해 '왕이 없는 나라'를 뜻합니다. 국민이 그 나라의 주인인거죠. 지금이야 이게 당연한 거지만 1700년대 말까지만해도, 참 내! 택도 없는 얘기였죠.

이 택도 없는 얘기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제일 먼저 일어난 국가가 바로 프랑스입니다. 선구자들은 자유, 인권, 박애를 부르짖었고 바스티유 감옥은 습격당했고 '고기가 없으면 건초(말 사료로 쓰는)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던 풀롱의 머리는 장대 끝에 매달려 거리를 행진했죠. 혁명이 발발한 겁니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자 주변 국가들은 공포에 떨었어요. 자기 나라의 국민들도 자유, 인권, 박애의 가치를 알게 될까봐 겁났던 거지요. 그래서 그들은 군대를 모아 프랑스를 침공합니다. 프랑스는 안 팎으로 열세에 몰렸습니다. 전선은 무너졌고 물가는 치솟았으며 기근이 몰아닥쳤어요. 프랑스 국민은 불안에 떨었고 '자유, 인권, 박애'는 개나 줘버릴 것들로 몰락해 버렸죠. 책방을 장식하던 역사, 정치, 철학 서적들은 가요집과 소설책에 밀려 더 이상 팔리지 않았어요. 베스트셀러는 '속옷 바람의 수녀'였습니다. 


혁명의 불길이 꺼진 프랑스는 재만 남은, 스산한 폐허의 모습을 하고 있었어요. 이 잿더미 속에서 '로베스 피에르'가 태어납니다. 그는 수 많은 연방주의자, 왕정복고를 노리는 음모자들, 기타 정적 등등 공화국의 적이 될 만한 자들을 단두대로 보내 버립니다. 강력한 공포 정치로 수렁에 빠진 공화국을 지키려 한 자. 소설 '신들은 목마르다'는 바로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로베스 피에르



주인공 에바리스트 가믈랭, 그는 어머니에게 줄 빵 한조각을 구하기 위해 하루 종일 빵 가게에 줄을 서야 했던 가난한 화가였습니다. 또한 그는 철저한 공화주의자였고 혁명의 가치를 신앙으로 삼은 사람이었죠. 올바르고 굳세지만 가난한, 한마디로 정의로운 시민의 전형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굳은 신념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 앞에는 언제나 광신의 함정이 기다리는 법입니다. 에바리스트는 중산층 화상의 딸 엘로디를 만나 사랑에 빠져요. 그녀는 힘있는 자에게 부탁해 에바리스트를 혁명재판소의 배심원으로 만들어 줍니다. 광신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거지요.


정의로운 시민 가믈랭과 혁명재판소는 애국이 아니라 분노를 잣대로 심판의 망치를 내렸습니다. 단두대는 다른 의견을 가진 정치인과 옛 귀족들의 모가지를 우걱우걱 씹어 먹으며 배를 불렸습니다. 대중들은 누가 죽든 상관없이 광장에서 벌어지는 공개처형에 열광을 했죠. 


에바리스트는, 심지어 한 망명 귀족을 여자 친구의 옛 애인으로 오해해 단두대로 끌고갑니다. 에바리스트가 혁명재판소 배심원이라는 권력을 이용해 무고한 시민을 죽인겁니다. 파렴치한 질투는 애국이라는 광신에 가려 양심을 찌를 수 없었습니다. 혁명은 빛을 잃었어요. 이제 남은건 독재 뿐입니다.


그러나 이것또한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로베스 피에르는 실각하고 에바리스트는 투옥됐습니다.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로베스 피에르와 그의 추종자들을 각별히 보살폈습니다. 그들은 아주 건강한 상태로 단두대에 올리기 위해서였죠. 


가믈랭이 처형장으로 향하는 날 그는 자신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대중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가믈랭과 그의 동료들이 단두대로 보낸 음모자와 귀족을 모욕했던 바로 그 사람들(p.301)이었죠. 가믈랭은 자신의 나약함을, 적의 피를 아꼈던 혁명재판소의 관대함을 한탄했습니다. 그 때 엘로디의 창문이 열리면서 꽃 한송이가 떨어졌습니다. 그것은 가믈랭의 갈증을 풀어주곤 했던 엘로디의 붉은 입술의 상징(p.302)이자 곧 다가올 피의 축제를 말해주는 붉은 카네이션이었어요. 두 손이 묶인 가믈랭은 그 꽃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대신 천천히 입을 벌리고 있는 짐승같은 단두대의 칼날을 보았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고난 뒤, 과연 우리가 다른 대통령을 뽑았다고 한들 과연 희망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됐습니다. 두려운건 보수주의나 독재, 1%만을 위한 정치 아니라 무지한 대중이 만드는 오해와 욕심 아닐까요? 


대중은 혁명이 더 많은 빵과 술 볼거리를 제공해 줄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혁명은 그런게 아니었어요. 열기는 금방 시들었고 남은건 '속옷을 입은 수녀' 뿐이었습니다. 

이기심과 천박함은 인간이 가진 근본적 결함일까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수 없이 비극을 되풀이 하면서도 예외없이 그 멍청한 과거를 재연하는 걸까요? 아나톨 프랑스는 이런 회의에 빠져 깊고 깊은 문학의 숲으로 도피했습니다. 그는 거기서 인간의 맨얼굴을 폭로하고 대중의 천박함을 풍자했죠. 저는 아나톨 프랑스의 회의주의가 인간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보지는 않아요. 그는 그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그린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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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수수가 홍수처럼 넘실댄다 | 기본 카테고리 2013-01-06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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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홍까오량 가족

모옌 저/박명애 역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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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보다는 '붉은 수수밭'이라는 영화 제목이 더 유명한 모옌의 장편 소설 '홍까오량 가족'입니다. 사실 '붉은 수수밭'을 아는 사람은 많아도 이 영화의 원작이 '홍까오량 가족'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장이모의 탓도 있죠. 지금이야 관(官)에 딱 붙어 올림픽 개막식 같이 돈을 쏟아 부은 대규모 퍼포먼스나 '영웅', '황후화'같이 알맹이는 없고 겉만 화려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지만, 이 사람 87년 데뷔작 '붉은 수수밭'으로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 상을 수상한 세계적 감독입니다. 모옌이 노벨상을 탓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붉은 수수밭'은 영원히 장예모의 작품으로 기억됐겠죠.


장예모가 '붉은 수수밭'을 공개했을 때 세계인들은 '중국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80년대 중국은 억압, 감시, 학살의 상징이자 인류의 적, 공포의 대마왕이었죠. 그런데 장예모의 영화가 나타납니다. 스크린에는 붉은 수수가 홍수처럼 넘실댔고 그 밑에 단단히 뿌리내린 민중의 삶이 있었죠. 흙냄새가 물씬 풍겼고 그건 바로 인간의 냄새이기도 했습니다. 세계인이 중국이라는 땅을, 새롭게 발견한 겁니다.


뭔가를 새롭게 발견하기 위해선 그 안에 고유한 색채가 담겨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농촌을 배경으로, 땅을 주인공으로, 그 위에서 생장하는 식물과, 그것을 먹고 자라는 민중을 그려왔던 모옌의 소설에는 토속적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의 오리지널리티가 있었죠. '붉은 수수밭'이 중국을 새롭게 발견해냈다는 말은 결국 원작의 오리지널리티를 잘 살렸다는 말 이상이 아닌 것입니다.





산동성 까오미현 둥베이향에서 가장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작고 귀여운 발까지 가진 꽃처녀 따오펑리옌은, 고작 검은 노새 한 마리를 받고 단씨 가문에 팔려갑니다. 문제는 단씨가 문둥병 환자였다는 거에요. 거래를 성사시킨건 돈 밖에 모르는 아버지였죠. 단씨와의 첫날밤, 닭발처럼 갈라진 괴물손이 어두컴컴한 베일 뒤에서 튀어나왔습니다. 따오펑리옌은 소리를 지르며 날카로운 가위를 집어 들었죠. 그날 밤 따오펑리옌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웁니다.


따오펑리옌이 시집을 가는 날 그 가마를 들었던 사람 중에 위잔아오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위잔아오는 건장하고 패기넘치는 젊은이였고, 악당이 될 기질이 충분했죠. 그는 따오펑리옌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닭발처럼 갈라진 괴물손의 아내가 된다는걸 납득할 수 없었어요. 이날 둘 사이에는 찌릿한 전기가 흘렀습니다. 모종의 계약이 성립했죠. 둥베이향에는 시집갔던 처녀가 친정으로 돌아가 사흘동안 지내고 오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따오펑리옌이 친정으로 돌아가는 날 위잔아오는 그녀를 납치합니다.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는 붉은 수수의 바다에 누워,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눴어요. 따오펑리옌이 시댁으로 돌아오는날 마을의 연못은 단씨 부자의 피로 새빨갛게 물들었습니다. 


따오펑리옌은 단씨 가문의 양조장을 물려 받았고 후에 위잔아오가 찾아와 일꾼이 됩니다. 그리고 결국 그녀의 안방을 차지하게 되죠. 두 사람 사이에서 난 아이가 또우꽌, 그의 아들이 바로 '나', 이 '나'가 화자가 되어 삼대에 걸친 가족 이야기를 쳘치는것이 바로 소설 '홍까오량 가족'입니다.



붉은 수수밭에서 따오펑리옌 역을 맡은 공리. 이 작품의 그녀의 데뷔작



수수밭 위에서 펼쳐지는 끈적끈적한 남녀상열지사, 이것이 '홍까오량 가족'의 전부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소설의 주 무대는 1930년대. 바야흐로 일제의 침략이 거세던 시기였죠. 칠점매화총 - 탁자 위에 매화 모양으로 일곱개의 동전을 쌓아둔 뒤 탁자에는 흠집하나 없이 동전만을 쏴 맞추는 기술 -, 총쏘기의 달인이자 까오미현의 악당인 위잔아오는 항일 민병대의 사령관이 됩니다.


대악당 위잔아오는 벙어리, 머저리, 멍청이, 겁쟁이 등을 데리고 일본군 트럭부대를 습격, 장군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립니다. 하지만 민병대는 위잔아오와 아들 또우꽌을 남기고 전멸해요. 부대를 먹이기 위해 밥을 싸들고 오던 따오펑리옌조차 일본군의 기관총에 가슴이 뚫려 숨을 거둡니다. 두 부자가 거머쥔 승리에는 상실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고향, 따뜻하고 포근하고 아름다운 나의 집은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불타 버리죠.


민병대의 전멸은 연합 전투를 벌이기로 했으나 배신한 국민당 부대(우익) 때문이었어요. 그들은 뒤늦게 나타나 전리품들을 가로챕니다. 위잔아오는 국민당 부대 사령관을 죽이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어요. 잔아오에게 남은 부하는 아들 또우꽌이 전부였으니까요. 코흘리개에 넝마를 걸친 거지 부대 팔로군(좌익)은 숲 뒤에 숨어 전투를 지켜보다 얼마 남지 않은 전리품이나마 구걸하고자 뻔뻔한 얼굴을 들이밉니다. 


나라를 지키는 방식에도 두 개가 있는 셈이죠. 이념을 내세운 자들은 결코 협력하는 법이 없습니다. 단씨 부자를 죽이고 여자를 가로챈, 파렴치하고 잔인한 위잔아오지만, 진짜 악당은 이념의 혓바닥으로 민중을 괴롭히는 이런 자들이 아닐까요? 위잔아오는 읽을줄도 쓸줄도 모르는 일자무식이었지만 나라를 구하는데 자기 몸을 바치는걸 아까워 하지 않았습니다. 허기진 역사는 이렇듯 뒤를 돌아보지 않는 민중의 시체를 먹고 전진하는 법이죠.


살아남은 사람들은 겹겹이 쌓인 상실을 즈려 밟고 꾸역꾸역 살아 나갑니다. 무엇을 위해서? 거창한 이유는 절대 아니죠. 그들은 땅에서 태어났고 땅에서 살다가 땅으로 돌아간다는 소박한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받아 들입니다. 그 누런 땅 위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채, 소리를 지르고 욕을 내뱉고 웃고 떠들고 개고기를 씹어 먹으면서.





1987년 '붉은 수수밭'을 보고 느꼈을 서양인들의 충격이 이해가 됩니다. 그들이 상상했던 중국인은 누런 옷을 똑같이 맞춰 입고 회색빛 얼굴을 한 채 맥없이 걸어가는 좀비었을 거에요. 그런데 붉은 스크린 위로 또렷한 개성을 지닌 인간들이 뛰쳐나올 듯 꿈틀대고 있었던 거에요. 그들은 중국을 다시 봤죠. 그 안에서 인간을 발견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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