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sjmonster님의 블로그
http://blog.yes24.com/sjmonster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sjmonster
sjmonster님의 블로그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11월 스타지수 : 별2,129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기본 카테고리
나의 리뷰
기본 카테고리
나의 메모
기본 카테고리
태그
기억력테스트 잡스 매킨토시 모바일게임
2013 / 0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월별보기
나의 친구
최근 댓글
2014년 글이니 조금 ..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 
오래전 쓰신 글이라서.. 
쉽게 읽히고 우리가 .. 
리뷰 잘 봤습니다. 
새로운 글
오늘 36 | 전체 69949
2011-10-16 개설

2013-02 의 전체보기
개념없음의 개념없음 | 기본 카테고리 2013-02-24 17:27
http://blog.yes24.com/document/7105871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데리다 & 들뢰즈

박영욱 저
김영사 | 2009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개념의 폭력


개념이 없다라는 말이 욕이 되는 세상이다. 그러나 과연 몇 사람이나 개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봤을까?


머리 속에 사과를 떠올려 보자. 아마도 이런걸 떠올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래는 어떤가? 이것은 사과인가?





그렇다면 이건? 이것도 사과인가?





우리가 사과의 '존재'를 사과라는 '개념'으로 정의하는 순간 사과는 더 이상 실재하는 사과가 아니다. 개념은 빨갛고, 파랗고, 시고, 달고, 반들반들하고, 썩었고, 까끌까끌한 사과를 오로지 사과라는 한 단어로 박제해 버린다. 


단순명쾌한 정리? 히틀러가 가스실을 지어 유대인을 학살했듯이 우리는 개념을 지어 존재의 다양성을 말살한다. 이것은, 


폭력이다. 


개념이 대중문화에 침투했을 때


천편일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까? 절대 없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똑같은 드라마를 보고 똑같은 코미디 프로를 보면서 똑같이 웃는다. 우리나라엔 수 많은 중산층 가정이 있겠지만 드라마에선 고급 가죽 쇼파를 가진 50평 이상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로 그려진다. 영화에 나오는 자폐환자는 모두 서번트 증후군이고 지체 장애를 가진 아버지는 모두 아이엠 샘이다. 아침 드라마는 불륜에 불륜에 불륜을 거듭하고 저녁 드라마는 숨겨놨던 재벌의 아들 딸로 흘러 넘친다. 


현대의 대중문화는 개념을 생산하는 공장이다. 대량생산된 개념들은 자본의 힘을 뒤에 엎고 무차별 폭격을 가한다. 사람들은 천편일률에 치를 떨면서도 열심히 그것을 소비한다. 길들여지는 것이다. 문화 산업의 핵심 전략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의 전략은 똥을 만든 뒤 그것을 맛있는 음식이라고 속여 파는게 아니다. 그들의 전략은, 


우리를 똥개로 만드는 것이다.


개념이 인간관계에 침투했을 때


존재는 결코 '단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곳에서 얼마나 자주 '한 마디'로 정리하길 강요 받는가? 


당신은 1년에 열 번쯤은 우산을 버스에 놓고 내리고 두 번쯤은 휴대폰을 잃어버리는 덤벙이지만 친구의 생일을 매년 잊지 않고 카드를 보내주는 섬세한 사람이다. 그러나 친구들이 생각하는 나는 덤벙이일 뿐이다. '덤벙이'라는 개념은 당신의 다양성을 모조리 흡수해 버린다. 


객체의 개념화는 인지 과정에서 일어나는 필수 과정이다. 우리가 뭔가를 이해하기 위해선 반드시 개념화가 필요하다. 그래야 정리가 되고 뇌에서 그것을 지식으로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과정이 인간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도 똑같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나는 대인 관계에서 오는 우울증이 개념화된 나와 내가 알고있는 나 사이의 괴리로 인해 생기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을 갖는다. 우리가 무심코 던지는 한 마디, 


'너 답지 않게 왜 그래?' 


도대체 나 다운건 뭐란 말인가? 내가 생각하는 나는 좀 더 농밀하고 다양하며 모순적인 존재다. 하지만 타인 앞에서 나라는 존재는 고정되고 예측 가능한 기계다. 타인의 예상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순간 나는 더이상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가질 수 없다. 

'쟤 왜 저래?'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당신이 가진 본연의 존재로서가 아니라 타인, 또는 특정 집단이 정의내린 개념으로서 행동하는 때가 생긴다.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이상 우리는 정신분열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예측 가능한대로 타인이 움직여줄 때, 우리는 그것을 안전한 관계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내 생각은 정반대다. 


'쟤한테 저런 면도 있었네?'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들 때 타인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이해의 핵심은 의외성을 최대한 많이 발견하는 것이다. 의외성이란 결국 개념을 뚫고 나오는 존재의 다양성이다. 그 다양성을 모두 수집하고 채워 넣을 때 타인은 진짜 존재가 된다. 





개념의 폭력을 고발한다


데리다와 들뢰즈는 모두 개념의 폭력을 고발하고 차이의 중요성을 강조한 철학자들이었다. 그들이 자신의 철학을 통해 추구한 목표는 당연 '이성과 합리'로 대변되는 '근대 사회'의 파괴! 이들의 철학을 포스트모던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땅에 이성과 합리가 뿌리 내리기 시작한건 18세기였고 내가 살고있는 지금은 21세기지만, 이성과 합리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 여기저기 신음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뭐 어쩌란 말인가 세상은 여전히 잘 굴러가고 있는데. 


문득 든 생각인데, 용을 잡으러 떠나는 중세 기사의 모험담은 사실 진실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거는 철학자(오해 마시길.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모두 철학자가 될 수 있다)의 메타포가 아니었을까? 붉은 비늘에 불을 내뿜는 날카로운 발톱의 용은 인간 사회의 상징이었던 거지. 다른 생각을 가질 수록 더 철저하게 짓밟아버리는 무시무시한 세상. 그리고 우리 철학자들은 모두 기사. 기사가 용을 죽이고 나서 결혼하는 공주는 사실 그들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세상의 진실'이었던 거야.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2)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2        
이상 문학상 작품집 | 기본 카테고리 2013-02-17 12:51
http://blog.yes24.com/document/7094667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침묵의 미래

김애란 등저
문학사상 | 2013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원래 단편은 돈이 안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팔리는 작가들은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이렇게 충고하기도 하죠. 장편을 쓰세요. 단편은 팔리지 않아요.


단편은 후킹이 있어야 합니다. 독자의 시선을 확 끌어 당기는 어떤 것. 그러다보니 소설가가 좀 장사꾼처럼 보이기도 하고, 마케터처럼 보이기도 하고. 뭐 이런 생각때문에 순수 문학을 추구하는 사람일 수록 단편을 평가절하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전 예전부터 단편이 좋았어요. 러시아 문학하면 대개 도스토옙스키를 꼽지만 전 체홉이 더 좋더라고요. 모파상도 장편 '여자의 일생'보단 단편 '비계덩어리'가 진짜 죽였어요. 보르헤스는 거론할 필요도 없죠!


단편집을 손에 들고 있으면 두근두근 기대와 설렘이 부풀어 오릅니다. 짧은 호흡, 기막힌 아이디어, 알싸한 여운. 과연 다음 장에선 어떤 작가가 또 어떤 문장으로 나를 미치게 해줄까. 뷔페는 막상 먹을게 없고 잡탕은 그냥 잡탕으로 그치고 말지만, 문학은 예외입니다. 섞어놓을수록, 더 찐해져요. 







왜 이상 문학상을 집어 들었나? 그건 현재 소설가라고 불리는, 그러니까 나와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글쟁이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어떤 글을 쓰나 궁금했기 때문이에요. 황석영이나 김훈 같은 선생님들은, 깊고 깊은 심해에 살거나 저 높은 산꼭대기에 머무는 분들 아니겠습니까. 까마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그런 분들이시죠. 


손을 쭉 뻗으면 닿을 수도 있는 거리. 바로 그 앞에 이 이상 문학상 작품집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건방이라는걸 곧 깨달았지만, 어쨌든 이 책을 선택할 당시에는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구매에 일초의 망설임도 없었답니다. 


37회 이상 문학상 작품집에는 대상 수상작 '침묵의 미래'와 자선 대표작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를 포함해 총 10편의 소설이 담겨 있어요. 여기서 이 모든 소설을 일일이 거론할수는 없으니 대상 수상작 '침묵의 미래'와 전반적인 감상을 말하려 합니다. 


'침묵의 미래'는 '언어'의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화자는 '언어'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후두암에 걸린 어느 노인의 언어입니다. 이 노인은 소수민족 출신이에요. 중앙 정부는 사라져가는 '말'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소수언어박물관'을 짓고 그 안에 소수민족들을 잡아다 전시물로 박제해 버립니다. 그들은 뜨문뜨문 찾는 방문객들에게 어색한 미소를 팔며 평생 외롭게 살다 죽습니다. 사멸 직전의 언어를 가진 민족이기에 자기 말을 하는 친구가 하나도 없었던 거에요. 


어느날 주인공은 박물관을 탈출해 고향을 찾습니다. 온갖 우여곡절 끝에 당도한 곳에 고향은 없었어요. 황폐화된 땅덩어리만 덩그러니 남아있었죠. 주인공은 도망칠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다시 박물관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거기서 산더미처럼 쌓인 외로움을 헤아리다 죽음을 맞습니다. 


주최측은 '침묵의 미래'를 대상으로 선정한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생성과 그 사멸의 과정을 인간 자신의 운명처럼 그려내고 있는 <침묵의 미래>는 서사를 극단적으로 절제하면서 내면적인 사유의 공간을 이야기의 무대 위로 끌어올려놓고 있는 작품이다. 여기서 작가는 언어 자체가 스스로 그 존재와 가치를 되묻고 그 운명에 대해 질문하게 함으로써 언어의 사멸이라는 현상이 현대 문명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에게 본질적인 문제가 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p.337)


전 이 소설을 보면서, 이것이 현대 문명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본질적 문제를 드러내는 우화라기 보다는, 이 시대에 죽어가는 '문학'의 운명을 쓸쓸히 그려낸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문학상은 '침묵의 미래'에 나오는 소수언어박물관과 다름아닙니다. 문학상이라도 없다면 과연 '문학'이 우리 사회의 관심을 받는 날이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문학상은 팔리지 않는 단편을 싣고 고독한 소설가들을 응원하면서, 그렇게 사멸해가는 문학의 끝을 간신히 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 밖에 재미있게 본 소설은 '그리네스'라는 자살 유발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별볼일 없는 남자와 그 별볼일 없는 남자와 결혼을 할 수 밖에 없는 더 별볼일 없는 여자의 삶을 포르보 배우가 된 노인의 삶과 뒤섞어 놓은 '배우가 된 노인' 등이 있었습니다. 

그리네스의 경우 사회의 부도덕을 드러내는 방식이 지나치게 뻔한 면도 있지만, 그 적나라한 표현이 오히려 보는 이의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배우가 된 노인'은 자극적인 소재와 다르게 굉장히 아름다운 문체가 돋보였던 소설입니다. 게다가 끊임없이 궁금증을 자아내는 독특한 이야기 전개 탓에 보는 내내 즐거움이 가득했던 작품입니다. 

이 밖에 등에서 소나무가 자라는 염승숙의 '습', 돈에 울고 돈에 웃는 우리의 처참한 자화상을 그려낸 김이설의 '흉몽', 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독자를 몽롱한 안개 속으로 끌어들이는 편혜영의 '밤의 마침'도 대단한 작품이었습니다. 


처음 책을 사들었을 땐, '아 나도 이 정도는 쓸 수 있겠다'하는 패기로 가득했었습니다. 하지만 작품을 모두 읽고, 키보드 앞에 앉아, 아무것도 씌여 있지 않은 망망한 컴퓨터 화면을  봤을 때,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멍청한 생각이었는지 깨닫고 말았답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4        
가치를 몰라주는 사회의 비극 | 기본 카테고리 2013-02-03 13:19
http://blog.yes24.com/document/7074033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인간이 만든 위대한 속임수 식품첨가물

아베 쓰카사 저/안병수 역
국일미디어 | 2006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몇년 전, 유명 과자 회사 연구원이 폭로한 과자의 비밀을 기억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은 본인이 과자 회사의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아이한테는 절대로 과자를 먹이지 않는다고 했죠. 사실 과자가 몸에 나쁘다는 인식은 하루 이틀된게 아닙니다. 어릴때 부터 엄마가 주구장창 얘기해왔잖아요. 그런거 사먹지 말라고. 몰라서 안 먹는건 아니죠. 





그런데 우리 몸에 나쁜게 과연 과자 뿐일까요? 아이스크림은? 거대 비지니스의 은혜를 입어 말끔한 인테리어로 재탄생한 떡볶이 집은요? 소시지는? 단무지는? 심지어 김치는? 밥을 밖에서 먹는 사람이든 집에서 먹는 사람이든 오늘날 식품첨가물과 화학조미료의 마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엄마가 만든 김치와 된장찌개는 괜찮다고요? 김치에 들어간 젓갈은 어떻습니까? 찌개에 들어간 된장은요? 당신이 직접 재배해 먹는게 아니라면 식품첨가물을 피해갈 수 없어요. 깨끗하게 진공포장된 야채조차 맹독성 세척제와 방부제로 처리되는 현실이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나쁜 것들이 승승장구 슈퍼마켓의 매대를 장식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자연산 재료들만 골라 정성껏 손질해 조미료도 안넣고 요리를해 보지만, 싱겁고 감칠맛이 안나고 어딘지 모르게 허전한 맛이 있죠. 여기에 조미료 한 스푼을 넣으면 확 달라집니다. 세상이 사악해져서 음식에까지 장난을 친다구요? 아니요, 문제는 우리에요. 우리의 입맛이 길들여진 겁니다


냉장고에 한 가득 콜라를 채워 넣지 않으면 마음이 안 놓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살색 소시지를 한통을 책상 위에 놓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 사람도 있어요. 소시지나 햄은 거의 100% 사료용 고기로 만듭니다. 폐기 직전의 고기에다 비계와 물을 넣어 양을 불리고 연육제를 넣어 식감을 부드럽게 만들어줘요. 여기에 고기향과 맛을 내는 '화학 첨가물'이 들어갑니다. 중국 사람들이 머리카락으로 계란을 만들고 젓가락으로 죽순을 만든다고 탓할 일이 아니라니까요. 





사악한 음식들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그걸 끊임없이 먹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맛있는걸 어떻게 합니까. 따지고 따지다 보면 요즘 세상에 순수한 음식이란게 어딨어요. 그냥 포기하고 사는거지. 먹을 때 마다 그런 얘기 하는 사람보면 참 밥 맛없어. 왜 저렇게 피곤하게 사나 싶기도 하고. 이거 좀 먹는다고 죽는것도 아닌데. 그렇게 따지지만 결국엔 자기도 먹잖아요. 


문제는 이런 경멸과 안이함 올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침묵 속에 가둬 버린다는 거에요. 아는 사람들이 입을 닫고 있으니 세상은 뭐가 좋고 나쁜지 모르죠. 뭐가 좋고 나쁜지 모르니 사회는 더더욱 뭐가 좋고 나쁜지 모르게 됩니다. 악순환이죠. 노스트라 다무스는 '무지한 자는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아무렴!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사라져갑니다. 진짜 맛이 뭔지 아는 사람들. 좋은 먹거리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 그리고 그걸 알아주는 고객. 어쩌면 비용이 문제일 수도 있겠네요. 진정한 가치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비용이 따르기 마련이니까. 생각해보니 비용보다 우선하는 가치가 없는 세상에서 이런 문제를 제기한다는것 자체가 사소하고 무의미해 보입니다. 진짜 비극은 이거였군요!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3        
1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