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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말을 거는 법 | 기본 카테고리 2013-09-15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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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러프 소장판 1~6권 세트

치 미츠루 글,그림
대원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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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치 미츠루의 대표작이라 하면 '터치(1981)'나 'H2(1992)'를 말해야 옳을 것이다. 다양한 스포츠를 그리긴 했으나 그의 전성기는 역시 야구 만화를 그릴 때였다. 대중이 흥분하기 쉬운 환경에서는 영웅을 그리기도 쉬운 법 아닌가. 아다치 미츠루의 야구 만화들은 일본의 야구 붐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하는 대표작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게 최고의 작품을 묻는다면 역시 '러프(1987)'다. 수영과 다이빙이라는 비인기 종목을 다뤘으며 아다치 미학이 완성되기 이전의 작품이라는 점, 게다가 소장판본으로 여섯 권에 지나지 않는 짧은 분량이지만, 오히려 이러한 점들이 그 제목과(Rough) 닮은 구석이 있고 또 그것과 공명을 이뤄 펄떡펄떡 살아 숨쉬는 생명력을 분출하는 것 같아, 나에겐 'H2'나 '터치' 보다도 더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소중한 작품을 몇일 전 마지막권의 주문을 통해 완전히 소장하게 됐다. 오랫동안 5권까지만 보유해 왔으나 문득 생각이 나 마지막 6권을 채워 넣은 것이다. 책장에 꽂기 전 간만에 만화를 펼쳐보니 그 깔끔하고 담백한 선이 눈에 가득했다. 흩으러졌던 마음까지 저절로 추스려지는 기분이었다.






주인공 니노미야 아미와 야마토 케이스케는 할아버지 대에 철천지 원수가 된 두 집안의 손녀 손자다. 원수가 된 사연은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어릴 때부터 줄곧 원수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자란 탓에 아미는 야마토 케이스케를 '살인자'로 여기며 성장한다. 그 분노는 상당히 커 매년 설날 야마토 케이스케에게 '살인자'라고 쓴 연하장을 보낼 정도. 그런 두 사람이 우연찮게 한 고등학교에서 만난다. 그것도 다이빙부와 수영부. 모른척 하고 살래야 도무지 그럴 수 없는 지척의 관계로서 말이다.


원수를 가까이서 보는 게 언제나 나쁜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럴 수 밖에 없지. 야마토 케이스케와 니노미야 아미는 둘 다 잘 생기고 예쁜, 착하고 뛰어난 학생들이었으니까. 얽히고 설킨 학창 생활 속에서 야마토 케이스케를 덮고 있던 분노의 껍질이 하나씩 하나씩 깨져나간다. 그 속에서 멋쟁이 남자의 진면목이 드러난 것은 당연한 말씀. 상황은 케이스케 쪽도 마찬가지였다. 자기를 살인자로 부르며 미운 짓만 골라하는 여자애지만 그 아름다움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아름다움에 굴복하는 건 남자의 특권이자 의무 아니던가?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엔 독특한 집안 사정 보다도 더 큰 장애물이 있었다. 바로 나카니시 히로키라는 남자의 존재.


나카니시 히로키는 일본 최고의 수영 선수이자 어릴 때 부터 아미의 결혼 상대로 지목되어온 남자다. 케이스케의 할아버지 때문에 니노미야 집안이 힘들었을 때 도움을 줬던 게 나카니시 집안이었고 그런 인연으로 두 집안 사이에는 자연스런 혼담이 오갔다. 특별한 일이 없었다면 아미는 나카니시 히로키라는 물결을 타고 주어진 대로 흘러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녀에겐 이제 야마토 케이스케라는 특별한 일이 생겼다.


나카니시 히로키는 소년이 남자가 되기 위해 넘어야 할 파도였다. 그 파도는 한 쪽 발로는 꿈을 다른 쪽 발로는 사랑을 밟고 서 있다. 나에게 보이는 것은 너무나 거대해 감히 쳐다볼 수 조차 없는 존재를 라이벌로 맞아야 하는 소년의 무참함 뿐이다. 그러나 소년은 꾸역꾸역 전진해 나간다. 히로키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파도에 불과하지만, 소년의 파도는 기어이 대양을 흘러가 철썩 대지를 때리고 마는 묵직한 힘이 있다.


마침내 두 남자는 마지막 경주를 위해 나란히 선다. 가슴을 울리는 출발 소리와 함께 오래된 워크맨에서 니노미야 아미의 고백이 흘러 나온다. 그 음성이 푸른 하늘에 사위어 완전히 사라졌을 때 쯤 두 남자는 결승선에 다다랐을 테지만, 만화는 그 뒷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아다치 미츠루는 과감한 침묵과 함축적 암시로 이야기를 그려낸다. 침묵 속에서 말을 찾고 암시 속에서 의미를 밝혀야 하기에 그의 작품은 천천히 음미해야하며 서서히 스며들지만 그로써 자기도 모르는 새에 흠뻑 젖어 들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침묵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곰곰히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는지 알 것이다. 함축적 암시를 풀어본 사람이라면 그 암시가 얼마나 적합한 표현이었는지 깨달은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때때로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이 그림으로 그려진 하이쿠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고작 17자에 불과한 한 줄의 시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걸어 오던가. 대사가 생략된 컷들엔 사실 대사보다 더 많은 의미가 담겨 있고 관련 없이 툭 던진 것 같은 말엔 수 많은 감정이 담겨 있다. 말해지지 않은 것을 느끼는 것이 아다치 미츠루의 재미라면 느껴야 할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다치 미츠루 미학의 백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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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읽는 현대 철학 입문서 | 기본 카테고리 2013-09-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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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위대한 생각과의 만남

로제 폴 드르와 저/박언주 역
시공사 | 201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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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다루는 출판사치고 '철학 입문서'에 관심을 가져보지 않은 회사는 없을 것이다. 철학 입문은 그야말로 모든 인문 분야의 숙원이요 과제며, 정석이자 로망이다. 


이유가 뭘까? 


맛을 한 번 보고나면 결국 와구와구 게걸스럽게 탐하고 마는 철학 구매자들의 왕성한 소비욕은 비지니스맨이라면 도저히 놓칠 수 없는 기회일 것이다. 철학 입문서는쟁반 위에 잘라 놓은 시식 과일. 일단 한 번 맛만 보라니까. 그러고 나면 내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알 수 있을테니까!


한편 의무의 문제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아무리 발광해도 철학은 팔리지 않아. 니체는 신을 죽였고 대중은 철학을 죽였지. 의미심장한 얘기, 아무리 늘어놔봐도 따분한 말장난처럼 들릴 뿐이야. 그러니 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얼음 위에서 속수무책인 북극곰이 되버린거다. 철학을 출판하는 사람들과 환경 보호 NGO들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상실감을 공유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이유야 뭐가 되면 어때. 비지니스 맨의 마음으로 책을 냈든, 아니면 철학에 대한 절절한 애정에서 출판을 했든, 어쨌든 이런 책들이 명맥을 유지한다는 건 철학을 사랑하는 흔치 않은 소시민으로선 여간 감사한 일이 아니다.







이 책은 '처음 시작하는 철학'의 속편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책을 본 적은 없으나 아마도 고전 철학들을 다뤘을 것으로 짐작한다. 왜냐하면 '위대한 생각과의 만남'이 현대 철학자 스무 명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영광스런 왕관을 받은 스무 명의 철학자들은 현대 철학사에 독보적 위상을 남긴 사람들과 여기에 더하여 작가의 선호도를 반영해 선정됐다. 면면을 보면 앙리 베르그송과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시작으로 후설, 마르틴 하이데거, 비트겐 슈타인을 거쳐 사르트르, 카뮈에 이르렀다 푸코, 들뢰즈, 데리다로 마무리 된다.


이 책이 좋은 점은 '위대한 생각'을 창조해낸 사람을 굳이 철학자로만 규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를 두 번째로 다룰 뿐만 아니라 인도의 정치인 마하트마 간디, 자신을 철학자로 부르길 거부했던 유대인 여성 정치 이론가 한나 아렌트, 역시 철학자임을 거부한 알베르 카뮈, 인류문화학자 레비 스트로스를 이 위대한 명단에 올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여기에 윌러드 밴 오먼 콰인, 메를로퐁티, 알튀세르 같은, 실제로 위대하지만 대중에게는 그닥 위대하지는 않은 철학자들도 이름을 올린다. 위대한 생각엔 하이데거나 사르트르만 있는 게 아니라는 작가의 사자후라고나 할까. 위대한 생각이란 본디 편견과 차별의 바위를 깨부수며 거침없이 흐를 때 진정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 법이다. 매번 그 나물에 그 밥인 현대 철학에 질린 사람이라면 이 반가운 면면에 새로운 흥분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책 내용은 쉽고 가볍다. 한 명당 15페이지 내외를 할당해 내용이 지나치게 심화되는 것을 막고 한 명 한 명 빨리빨리 알아가는 재미를 선사한다. 물론 이 쉽고 빠름이 철학에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세상에는 분명 일정량의 고통을 통해서만 흡수될 수 있는 것들이 있다아무리 세태가 변했고 그것을 원한다 할지라도 철학은 결코 한 입에 꿀떡 삼킬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한 권의 책으로도 말하기 부족한 내용을 15페이지로 줄여야 한다면 거기에는 분명 삭제될 수 없어 아우성치는 사상의 비명들이 존재할 것이다. 


더욱이 이런 책을 쓰다 보면 철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 어디서 어떻게 살았고 누구와 논쟁했고 누구와 사랑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들. 이렇게 5페이지를 빼고 나면 태산과도 같은 그들의 철학을 불과 10페이지에담아야 하는 불가능한 미션만이 남는다.


책 제목이 위대한 '생각'과의 만남이듯이 오롯이 그 생각에만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순수한 사상의 덩어리만을 꾹꾹 눌러 담은 뒤 형틀을 돌려 생각의 정수, 그 마지막 한 방울을 짜내고 짜냈다면, 불가해 보이는 15페이지에도 충분히, 양질의 엣센스가 담기지 않았을까? 읽는 동안 나는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해봤다.


이 책은 원래 '간략하게 보는 현대 철학사'라는 제목으로 출간될 수도 있었다고 한다. 작가가 밝히고 있듯 그 목적은 '우리 시대의 위대한 사상가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정확하면서도 접근 가능한 출발점을 제공해주는 지극히 단순한'(p. 7) 것이다. 이는 입문서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목표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그 목표를 아주 충실히 달성하고 있기 까지 하다. 그야말로 '언'과 '행'이 일치하는 셈. 그러니 나의 불만은 본격적인 현대 철학은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에 가벼운 입문서에는 갈증을 느끼는, 참으로 어설픈 독자의 어정쩡한 불만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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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투자법 - 안티 애플이 만든 영화 '잡스' | 기본 카테고리 2013-09-01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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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거 아시죠?


내 보기에 '잡스'는 당신이 지난 3년간 보아온 영화와 앞으로 3년간 보게 될 영화 중 최악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만약 당신이 애플의 광팬이고 한 때 스티브 잡스를 정신적, 업무적 스승으로 삼았던 사람이라면 '최악'이라는 평가가 너무나 관대하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아마 이들 중 대다수가 영화를 보고 난 뒤 심한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심지어 '잡스'가 구글 인베스트먼트와 삼성 창업투자의 돈으로 만들어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Executive Producer 이건희, 감독 세르게이 브린. 이것이 바로 적의 투자법!








사실도 아니고, 재미도 없어요


스티브 잡스의 생애는 크게 대학시절, 애플의 창업과 성공, 회사에서 쫓겨남, 픽사의 성공과 애플 복귀, i시리즈 성공(iMac, iPod, iPhone)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이라는 초등학생 용 소설 작법 이론을 상기시키지 않아도 이미 삶 자체가 드라마틱한 5단 전개로 되어 있음에도 영화는 어디에 집중을 해야하고 어디서 힘을 빼야 하는지도 모른채 127분간 하염없이 방황한다.


이야기는 그야말로 방황의 화신이었다. 어떻게서든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 여러 에피소드를 끼워 맞추는데 설상가상 그것들은 거짓말로 가득 차 있었다. 역사를 거짓말로 바꿨을 때는 그에 상응하는 재미를 줘야 마땅하지만 눈꼽만큼도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다. 


나관중의 '삼국연의'는 거짓말로 점철된 소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문학으로서의 탈출구를 열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잡스'는? 이 영화는 과연 어디에서 탈출구를 찾으려 했던 걸까!?




정말 여기서 끝내는 건가요?


1999년에 개봉한 영화 '실리콘 밸리의 해적'은 '1984 광고' 촬영 현장에서 시작해 1997년 맥월드 엑스포의 기조 연설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1999년에 개봉한 영화가 고작 2년 전인 1997년까지의 역사를 담기에는 시간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97분이라는 짧은 런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20년이 넘는 애플의 역사를 아주 짜임새 있고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잡스'는 30분이나 더 긴 런닝 타임을 가졌다. 이 시간은 '실리콘 밸리의 해적'이 그릴래야 그릴 수 없었던, 그러니까 1997년 잡스의 복귀 이후 그가 이룩한 아이맥, 아이팟, 그리고 대망의 아이폰 신화, 현대 기술 문명을 완전히 해체한 그 혁신적 기기의 탄생 과정을 다뤘어야 했다. 더 많은 시간을 가졌고 고로 더 많은 이야기를 다뤄야 할 의무가 있는 '잡스'가 어째서 '실리콘 밸리의 해적'보다도 적은 양의 역사를 다룬걸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었던 나는, 하마터면 세계 미디어 시장을 뒤에서 주물럭거린다는 유대인 음모설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뻔 했다!! - 구글의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모스크바 태생의 유대인이다.



잡스의 복귀작 아이맥. 이 때부터 잡스와 조니 아이브의 시대가 열린다.




영화는 재앙이었어요, 재앙이요


조니 아이브스 역을 맡은 배우가 최선을 다해 그의 발음을 따라하려고 한 것, 애쉬튼 커처의 외모가 젊은 시절 잡스와 판박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이 영화에서 좋았던 점은 단 한개도 없다. 특히 그 엔딩은 피를 토할 정도로 최악이었는데,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혹시 '잡스'가 반지의 제왕과 같은 3부작으로 기획된 것은 아닌가 하여 고군분투 열심히 검색해 보았으나 역시, 허탈함만 더할 뿐이었다.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기는 커녕 더 파묻어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은 영화를 만들었으니, 오호 애재라 내일 아침 비가 온다면 그것은 아마도 하늘에서 떨구는 잡스의 눈물일 거에요. 돈 있는 분들은 삼성전자나 구글 주식 사두세요. 영화 실패의 반사 이익으로 엄청난 주가 폭등을 기록할지도 몰라.




몇 가지 사실을 바로 잡고 재밌는 얘기를 곁들여 보아요


애플 컴퓨터 탄생시킨 주역 마이크 마쿨라가 9만달러의 투자금을 제안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그는 회사 지분의 3분의 1을 받는 대신 최고 25만 달러까지 은행 대출 보증을 서주기로 했다. '잡스'는 스티브 잡스의 세일즈맨 기질을 부각시키기 위해 폴 테럴(바이트 숍 주인)과의 에피소드를 비롯 이런 얘기를 추가한 것 같다. 


영화에는 리사 프로젝트에서 물러난 뒤 매킨토시 팀을 꾸리는 과정에서 잡스가 워즈니악에게 합류를 요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워즈는 이때 이미 애플을 관둔 상태였다. 큰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 한 워즈니악이 남은 공부를 마저하기 위해 학교로 돌아갔던 것이다.


광고 역사에 길이 길이 남을 전설의 '1984 광고'는 보수적 이사진들에겐 재앙이었다. 그들은 구매해놨던 슈퍼볼 광고 시간을 다른 회사에 되팔기로 결정했고 '1984 광고'는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이때 애플에 놀러온 워즈니악에게 잡스가 이 광고를 보여주게 된다. 워즈는 광고 비용이 얼마냐고 물어보고 잡스는 80만 달러라고 말한다. 워즈는 그 자리에서 내가 반을 댈테니 니가 나머지 반을 대서 광고를 하자고 제안한다. 이 제안이 실제로 성사되지는 못했는데, 광고를 대행한 '샤이엇 데이'가 광고 시간이 팔리지 않았다고 이사진에게 거짓말을 때문이다. 높은 자리에 있는 멍청이들을 제외하고는 이 광고가 얼마나 위대한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잡스가 리사와 매킨토시 프로젝트에 집착한 이유는 애플2가 여전히 애플의 심장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애플2가 워즈니악의 작품이라고 생각했고 잡스는 그걸 참을 수 없었다. 잡스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애플2를 지울 수 있는 자기 자신의 작품이 필요했던 것이다. 


영화와는 달리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떠날 때 단 한 주만을 남겨 놓고 모든 주식을 헐값에 팔아치운다. 이때 확보한 현금은 훗날 아주 커다란 역사를 만들어내는데, 그가 이 돈으로 스타워즈의 감독 죠지 루카스의 CG팀을 인수한 것이다. 이 CG팀은 기술력은 뛰어났지만 쓸데가 없어 애물단지였고 마침 전 부인에게 지급할 위자료가 필요했던 죠지 루카스가 이를 낼름 팔아버린 것이다. 이 쓸모없는 팀은 몇년 뒤 3D 애니메이션 '벅스 라이프'를 만들고 또 몇 년 뒤에는 '토이 스토리'를 만들어 애니메이션계의 애플이 된다. 이 CG팀의 이름은 PIXAR였다.


잡스의 복귀를 설득하기 위해 길 아멜리오 직접 찾아왔다는 것도 순 거짓말이다. 먼저 연락을 한 건 오히려 스티브 잡스였다. 이때 잡스가 애플 복귀를 거절당하자 그의 절친이자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의 실제 모델인 오라클의 회장 '래리 앨리슨'이 30억 달러를 투입해 애플을 적대적 인수하고 CEO 자리에 잡스를 앉힐 계획을 제안한다. 잡스는 이를 거절했다. '그들이 나에게 돌아와 달라고 부탁'하길 기다렸기 때문이다. 


2년 후 애플은 신형 운영체제 때문에 심각한 문제에 봉착한다. 이 때 잡스는 자신의 회사를(NeXT. 운영체제를 갖고 있었음) 애플에 매각하기 위해 평생의 세일즈 기술을 발휘했고 결국 애플의 선택을 받는다. 이때 인수된 운영체제가 현재 모든 아이맥과 맥북에 깔려 있으며 iOS를 탄생시킨 OS X의 전신이다. 







잡스가 매킨토시 팀을 맡은 후 팀을 꾸리는 과정에서 '프로그래밍 좀 합니까?'라고 물어봤던 사람이 바로 전설적인 엔지니어 앤디 허츠펠트다. 영화에서처럼 그대로 컴퓨터의 코드를 뽑아 데리고 왔던 이 사람은 매킨토시 운영체제의 대부분과 UI 컴포넌트를 개발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페이스들의 원형을 모두 이 사람이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애플에서 소프트웨어 마술사(Software Wizard)라는 직함으로 일했으며 나중에 회사를 옮겨 구글+의 UX를 총괄한다. 





Software Wizard 앤디 허츠펠트. 좌측에서부터 세 번째.



스티브 잡스를 몰아내는 데 앞장선 아서 록이 처음부터 잡스와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다. 잡스는 아서 록을 아버지로 생각할 정도였다. 잡스가 충격을 받은 이유는 마이크 마쿨라를 비롯, 자신이 아버지라고 여긴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잡스는 평생 친부모에게 버림 받았다는 트라우마를 지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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