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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문재인의 운명

문재인 저
가교 | 201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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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스를 보면 기분 좋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체증이 쑥 내려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세상이 어쩜 이리 하루 아침에 싹 바뀔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이제야 비로소 사람 사는 세상이 된 것 같다. 뉴스를 보는 게 기다려지는 게 요즘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철저히 준비된 대통령인지가 느껴진다. 사실 대통령은 정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몇몇 지지자들 조차 등을 돌리게 만든 어눌한 말투만 봐도 그렇다. 화려한 언변으로 정적을 제압하고 감동을 이끌어내고 비전을 확신시켜 주던 노통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의 친구였기에 국민이 거는 기대도 컸을 것이다.


그가 대선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한 계기는 노통의 장례식 때였다. 정치적 타살이라 일컫는 그 사건의 당사자인 MB가 장례식을 찾았을 때였다. 헌화를 위해 단상에 오르는 MB를 향해 백원우 의원이(현 민정 비서관) 격앙된 목소리로 "사죄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심상찮은 분위기였다. 경호원들이 강제로 입을 막아 끌고 나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때 문 대통령이 나타나 MB에게 정중히 사과하는 모습이 국민의 마음에 각인된다. 정치적 과오를 떠나 장례식장을 찾은 분께 예의가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그 상큼할 정도로 깔끔한 대응에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새미래를 꿈꾸게 된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개인적으론 그것이 불행의 씨앗이었다. 애초에 쇼맨십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이다. 자기를 돋보이려 그런 일을 한 게 아니었다. 진심이었고 도리대로 행했을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문통을 갑자기 영웅처럼 떠받들었다. 온갖 환상과 바람, 욕망이 인간 문재인의 목 위에 걸리기 시작했다. 잔인한 인간들은 기어이 그 목줄을 잡고 문재인을 정치의 세계로 끌고나갔다.


이후 그가 겪어야 했던 일들을 떠올리면 내가 다 참담할 지경이다. 그는 어눌한 말투 때문에 멍청하다는 비판을 받았고 노통의 친구라는 이유로 호남의 외면을 받았으며 친노, 친문 패권주의자라는 비난을 들어야했다. 그는 18대 대통령 선거에 야당 후보로 출마하여 48%를 득표해 51.6%를 얻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3.6%의 차이는 진보 계열 후보들이 간신히 승리를 거둘 때의 표차였다. 진보의 패배는 언제나 압도적이었다. 그런 전례를 볼 때 이는 국민의 지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였으며, 조심스럽게 다음 대선의 승리를 점칠만한 근거이기도 했다. 아니 적어도 패배했다고 비난을 받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정적들도 19대 대통령 선거의 결과가 눈에 그려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온갖 억지를 갖다 붙여서라도 그를 끌어내리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이런 게 바로 정치의 세계다. 그와는 한 움큼도 어울리지 않는 권모술수의 세계.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년을 어떤 마음으로 지냈는지 알 수 없다. 이 책은 18대 대통령 선거가 치뤄지기 6개월 전에 출간됐고, 그래서 아직은 참담한 마음이 곪고 터져 짓이겨진 쓸쓸함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아련한 마음으로 노통과의 과거를 회상하며 전의를 다지고 천천히 워밍업을 시작한다. 특히 비서실에서 다양한 업무를 맡아 했던 경험을 읽고 있으면 이 남자가 왜 준비된 대통령인지를, 그 치열했던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를 알게 된다.


18대 대통령 선거 때만하더라도 지지자들은 문재인을 향해 권력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을 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책임감은 충분했지만 아무래도 떠밀려 나온 사람의 마음가짐을 간과할 순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의지는 어느 때보다도 단단해졌다. 얼굴만 봐도 그렇다. 연일 그가 보여주는 행보는 이제 노무현의 친구, 노무현의 비서 실장이 아니라 대통령 문재인으로서의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는 이미 오래전 대통령으로서의 자각을 끝낸 것 같다.


이제는 그의 어눌한 말투마저 무게와 신뢰를 더하는 무기가 됐다. 노통은 탁월한 언변이 오히려 적을 만드는 구실이 되곤 했다. 많은 말도 화려한 말도 필요 없다. 진심을 담아 한 단어 한 단어 천천히. 그렇게 보면 세상 일은 참으로 신기하다. 변하지 않는 세상을 보며 극도의 회의주의에 빠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진심이 통한다는 단순한 진리가 두꺼운 커튼을 비집고 조용히 스며든다. 마침내, 아침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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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몰트를 마셔보셨나요? | 기본 카테고리 2017-05-21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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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무라카미 하루키 저/무라카미 요오코 사진/이윤정 역
문학사상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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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근에야 술의 맛을 알게 됐다. 싱글 몰트 위스키와 꼬냑. 지금까지는 술을 마시면 몸이 아프고 구토가 심해서 도저히 즐길 수 없었다.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는데,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일본 출장 당시 아사히 슈퍼 드라이 생맥주를 마신 게 처음이었던 것 같다. 맛이 달랐다. 술도 맛있을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이후로 몇몇 해외 맥주에 맛을 들이긴 했으나(파울라너, 코젤 다크, 아사히 병맥, 슈퍼복 병맥) 역시 한 병을 채 마시지 못했다. 콜라 잔으로 한 잔을 마시고 나면 여지 없이 맛이 써졌다. 와인이나 샴페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지난 달 싱글 몰트와 꼬냑을 만났다.


외국에서 일하는 친구가 한국에 들어오며 사온 술이었다. 싱글 몰트는 글렌피딕. 꼬냑은 헤네시 V.S.O.P와 Camus X.O. 도저히 술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향과 목넘김이 죽였다. 이런 게 바로 술이구나!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술의 얘기를 들을 수 있게 됐다. 많이 마셔도 취하질 않았다.


술도 못 마시는 게 무슨 맛을 논하냐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뭘 모르고 하는 얘기다. 술을 못 마시기 때문에 맛이 없는 술은 도저히 입에 댈 수 없다. 그런 사람이 마시고 싶어하는 술이라면 그 맛이 어떻겠는가? 술고래들이야 이 술이든 저 술이든 아쉬운대로 마시고 취하면 그만이지만 우리 같은 약골들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맛과 향, 분위기에 훨씬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술 맛을 알게 된 뒤로 나는 언제 또 그런 기회가 올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그 맛을 아는 사람들끼리 주거니 받거니 전하는 따뜻한 마음을 꿈꾸며. 하지만 그런 날은 흔치가 안다. 행복이란 지옥에 가끔 비추는 햇볕 같은 거니까.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그러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 여행>같은 책으로 대리 만족을 할 수 밖에.


이 책은 맥주광이자 위스키 매니아인(그는 등단 전 위스키 바를 운영한 적이 있다. 그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조깅을 하는 이유는 끊임없이 술을 마시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루키가 스카치 위스키의 성지 아일레이 섬과 그들에게 위스키 제조법을 전수해준 과거의 전설 아일랜드(아이슬란드가 아니다. 켄 브루언과 U2의 나라 아일랜드다)를 여행하며 기록한 에세이다. 그는 이 두 곳의 위스키 주조장을 돌아다니며 신나게 먹고 마신다. 기가 막힌 문장도 감성을 자극하는 스토리도, 한 마디로 별 내용이 없는 여행기지만 손에서 책을 뗄 수 없었다. 100페이지가 간식히 넘어가는 책. 한 시간 반이 쏜살같이 사라져 버렸다.


싱글 몰트의 맛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아일랜드 관광청이 발행하는 여행 가이드 보다 못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쓴 맛은 하나도 없는, 그 부드럽고 따뜻한 위스키의 촉감이 목줄기를 타고 흐르는 게 느껴질 것이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미친듯이 술이 땡긴다.


술을 못 마시는 사람들에게 양주를 권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양주는 숙취가 없다고. 정말 비싼 양주를 마시면 술 맛을 알게 될 거라고. 그 말대로 양주를 먹어본 뒤 전부 거짓말이었음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본인이 마신 양주가 어떤 종류였는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마 발렌타인이나 조니 워커 같은 블렌디드 위스키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믿고 딱 세 잔만 싱글 몰트 위스키를 마셔보라. 가격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싱글 몰트, 이 네 글자만이 관건이다.


싱글 몰트 위스키는 오직 맥아로만 만든 순수한 위스키다. 대부분은 그 맛 없는 블렌디드 위스키를 만들기 위한 원재료로 팔려 나가지만 일부는 독자 브랜드를 갖고 나름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위스키라고 하면 싱글 몰트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그 맛있는 싱글 몰트에 왜 다른 걸 섞어 마시는지 이해를 못한다고 한다. 내 말이 딱 그 말이다.


다행히 최근엔 싱글 몰트 위스키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블렌디드는 지고 싱글 몰트가 떠오른다. 부드럽고 약한 술이 대세로 자리 잡는 게 전 세계적인 트렌드일까? 물론 싱글 몰트 위스키의 도수는 결코 낮지 않다. 하지만 경험상 블렌디드보다 싱글 몰트가 훨씬 마시기 쉽다.


싱글 몰트를 맛있게 즐기는 법은 그냥 마시는 것이다(아일랜드 사람들은 약간의 맹물을 타서 마신다). 절대로 온 더 락은 안 된다. 취향이야 제각각이지만 위스키의 성지에 여행을 가서 온 더 락을 해달라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술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야만인 취급을 당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싱글 몰트 위스키 입문자를 위한 좋은 포스트가 있어 추천한다. 양주가 비싸다는 편견은 갖지 않는 게 좋다. 아까도 말했듯이 중요한 건 가격이 아니다. 싱글 몰트. 오직 이것만이 중요한 요소다.


http://hending.tistory.com/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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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없이도 재미있는 소설 | 기본 카테고리 2017-05-1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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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라마와의 랑데부

아서 C. 클라크 저/박상준 역
아작 | 2017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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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C. 클라크의 고전 SF 소설 <라마와의 랑데뷰>는 두 가지 상반된 속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매우 묘한 책이다. 첫번째 속성은 아주 흥미로운 설정이다. 꿈에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이야기. 어느날 태양계에 소행성 하나가 접근한다. <아마게돈>이나 <딥 임팩트>를 연상케 하지만 그렇게 흔한 얘기가 아니다. 소행성은 지름이 수십 킬로미터가 넘는 매끈한 원통. 어느모로 보나 인공물로 여겨지는 이 우주선에 인간은 라마라는 이름을 붙인다.


라마의 등장은 인간에게 일련의 호기심과 다수의 걱정을 안겨준다. 라마의 정체는 무엇일까? 왜 태양계로 왔을까?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당연하다. 오랜 우주 개발 끝에 인간의 기술도 지표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수성에까지 정착지를 건설할 정도로 발전해 있었지만 라마는 그 모든 기술을 간단히 비웃을 만큼 대단한 문명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추진 장치도 없이 빙글빙글 자전을 하며 태양계를 향해 날아오는 초거대 원통. 그 정도 기술을 가진 존재라면 수천년 동안 쌓아온 인간의 문명을 미개하다고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인간이 개미를 밟은 걸 일일이 신경쓰지 않듯 그들도 태양계를 사뿐히 즈려 밟은 뒤 여행을 계속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불안을 극복하는 법은 두 가지다. 고개를 돌려 피하거나 오히려 정면으로 응시해 그 정체를 밝혀내는 것. 전자는 잠깐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엔 더 큰 불안과 공포를 낳는다. 작은 포유류에 불과하지만 끊임없는 호기심과 개척 정신으로 태양계를 지배한 인간은 라마와의 랑데뷰를 선택한다. 매끈한 원통인줄만 알았던 라마의 표면엔 우주선의 출입구처럼 보이는 에어락이 있었고, 탐사대는 주저않고 그 문을 힘껏 열어젖힌다. 바로 그 순간 잠들어 있던 라마가 눈을 뜬다.


이제 당신의 머리 속은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상상하느라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할 것이다. 라마는 우주선이었지만 그 크기는 소행성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였고 하나의 세계엔 온갖 것들이 존재하는 법. 생각해보면 지구도 일종의 우주선에 다름아니다. 느끼진 못하겠지만 무려 시속 1300km가 넘는 속도로 빙글빙글 돌며 우주를 떠다니고 있다. 라마도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면 쉽게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지구는 지표 위에 라마는 지표 아래에 문명을 세웠다는 것 뿐이다.


얘기가 길어졌지만 이제 이 소설을 묘하게 만드는 두번째 속성에 대해 얘기하겠다. 들으면 거의 백퍼센트 당신의 기대를 꺽게되겠지만. 어쨌든 이 모든 흥미진진함에도 불구하고 <라마와의 랑데뷰>는 좀처럼 긴장이 생기지 않는다. 미지의 존재와의 조우라면 으레 <프로메테우스>나 <에이리언> 같은 영화를 떠올렸기 때문일까? 이 소설은 라마의 정체를 밝혀나가는 데서 오는 스릴러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저 흥미로운 도감으로 가득한 백과사전 같다. 정부에 제출하는 라마 탐사 보고서. 캐릭터들은 투명할 정도로 평면적이다. 큰 고뇌도 갈등도 없이 주어진 임무를 기계처럼 완벽히 소화해낸다. 아서 C. 클라크가 소설가이기 앞서 뼈속까지 과학자였다는 사실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긴장감이 없다고 재미까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솔직히 나는 백과사전을 좋아한다). 드라마틱한 전개는 없지만 라마의 세계를 면밀히 들여다보는 것 만으로도 상상력이 폭발한다. 사건 사고도 없고, 끝내 그들이 왜 왔는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도 알려주지 않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상상력은 더 자극을 받는다. <라마와의 랑데뷰>는 침묵을 통해 더 많은 얘기를 전해주는 책이다.


라마는 원통을 둘러싼 거대한 유기물의 바다에서 원자재를 취해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낸다. 거기서 태어난 다양한 바이옷(생체 로봇)들은 라마를 쓸고 닦고, 쓸모가 다한 물건들을 분해해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기도 한다. 라마 탐사선 엔데버 호의 선장은 조사의 막자비에 이르러 처음에 가졌던 본인의 신념을 깨고 라마의 껍질을 뜯어내 그 속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라마는 바닥에서부터 그대로 솟아 올라온 듯한 매끈한 직육면체 구조물로 가득하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안에서 거대한 유리 신전을, 그 유리 속에 든 라마인의 물건들을 발견한다. 물건들은 접히지도, 축소되지도 않은 채 자기 모습 그대로 유리 안에 보관되어 있었다. 아마도 라마는 필요할 때마다 그 원형을 참고로 바다에서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리라.


나는 이 유리 신전을 보는 순간 이데아가 떠올랐다. 사물의 본질, 혹은 원형을 간직한 이데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라마인들은 그 이데아를 먼 우주로 쏘아 보냈다. 그것은 일종의 탈출 계획이었을 수도 있다. 자기들의 모성이 수명을 다해 붕괴되는 순간 선택한 궁여지책. 모든 개체를 살릴 수는 없으니 원형들만 담아 우주로 보내면 적당한 장소 적당한 시간을 만나 문명을 복제하겠다는 꿈을 담은 것이다. 물론 라마를 일종의 선교사로 볼 수도 있다. 뛰어난 문명을 이룩한 외계의 존재가 자신의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우주선을 쏘아보낸다. 조선이 일본에 파견한 통신사가 우주적 관점에서 이뤄지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역시 라마가 일종의 씨앗이 아니었나 싶다. 나아가 우리 지구도 어떤 신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 때 참고하기 위한 데이터베이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 지구인들은 이데아와는 한참이나 거리가 먼 허접한 존재니까 프로토타입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선 지구도 인간도 결국은 생체 정보를 저장해 놓은 살아있는 USB에 불과할 것이다.


SF를 읽는다는 건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파워 핸들을 얻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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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 허스트베트와 폴 오스터 | 기본 카테고리 2017-05-0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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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당신을 믿고 추락하던 밤

시리 허스트베트 저/김선형 역
뮤진트리 | 2017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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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두 가지 면에서 당신의 흥미를 끌 것이다. 첫째는 저자인 시리 허스트베트가 폴 오스터의 아내라는 것. 둘째는 이 책의 제목이 <당신을 믿고 추락하던 밤>이라는 것.


이 두가지에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냥 이런 책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 주길 바란다. 하지만 둘 중에 하나라도 관심이 있다면 몇 일을 투자하여 이 책을 독파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둘 모두에 관심이 있다면 당신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나는 제목에 반했다. 원제는 <Blindfold>지만(눈가리개) 어떤 천재 번역가가 <당신을 믿고 추락하던 밤>이라는 제목을 붙여놨다. 제목이 이렇다면 우선 잡고 봐야 한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 된통 당한 적은 있지만 이건 순수 문학이니까, 황망한 말장난은 아닐 것이다. 예상대로 첫 작품을 읽는 순간 놀라버렸다. 폴 오스터를 연상케하는 환상과 미스테리, 스릴러의 절묘한 배합. 나는 그제서야 이 책의 맨 앞 장에 써 있던 글귀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폴 오스터를 위하여'. 시리 허스트베트가 그의 부인이라는 사실도 그때서야 생각났다.


독서는 더더욱 탄력을 받았다. 그 소설엔 명백히 폴 오스터를 연상케하는 신비의 남자 모닝이 나온다. 여자 주인공 아이리스는 분명 시리 허스트베트 자신이리라. 남자는 여자에게 정체 불명의 물건, 이를테면 쓰다 버린 솜뭉치, 거울, 장갑 등을 주며 그 물건에 대해 묘사해 올 것을, 하지만 글이 아닌 육성을 이용해 녹음해 올 것을 요청한다. 물건은 죽은 소녀의 것이었지만 그 소녀가 누구인지, 어떻게 죽었는지, 모닝과는 어떤 관계였는지는 결코 알려주지 않는다. 규칙은 단 하나. '이것은 망자의 물건입니다'로 녹음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해오면 돈을 주겠다는 게 모닝이 말해주는 전부였다.


아이리스는 이상하다 못해 제정신이 아닌 이 프로젝트에 어쩐지 마음이 끌렸다. 모닝의 요구는 황당했지만 분명 합당한 면이 있었다. 그 이상한 요구들은 사물이 거울, 솜, 장갑 같은 추상성, 또는 백혈병으로 죽은 14세 소녀의 소지품 따위의 구체성에 오염되기 전, 그러니까 인간이 사물에 뭔가를 부여한 의미가 아닌 사물이 직접 말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발굴해 내기 위한 작업이었다. 저마다 다른 사연과 이야기를 가진 사물은 인간이 붙인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향기도 맛도 나지 않는 무기물로 전락하고 만다. 마찬가지로 너무 구체적인 사실 또한 수 많은 이야기를 하나로 축소시키는 범죄를 저지른다. 그 거울이 백혈병으로 죽은 14세 소녀 메리의 것이라는 말을 해주는 순간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우리의 귀는 그 구체성이 구축한 특정한 이미지에 막혀 완전히 다른 얘기를 전하는 거울의 이야기를 듣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게 폴 오스터가 시리 허스트베트에게 글쓰기를 가르쳐주는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그것은 폴 오스터가 나에게 가르쳐주는 글쓰기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말랑말랑하게 전개되지 않는다. 아이리스는 모닝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죽은 소녀의 정체를 파헤치려 한다. 마침내 그녀는 소녀가 모닝의 아파트에서 살해당한 여자라는 걸 알게 된다.


이제 작업은 끝났다. 여자는 더 이상 사물이 말하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그녀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건 살해당한 여자와 그녀의 몸에 칼을 찔러 넣는 모닝의 모습 뿐이었다. 수 만, 수 십만의 가능성으로 들끓던 의미의 용광로는 아이리스의 추측에 의해 잔인하게 박제된다. 거기선 이제 단 하나의 이야기 말고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


나는 이 소설이 글쓰기 방법에 대한 것이면서 동시에 글쓰기 자체에 대한 알레고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야기 속에서 인물은 행동하고 사건은 가지를 뻗는다. 작가는 수 많은 가지를 하나로 모아 결론에 이르고 독자는 바보같은 모범생처럼 고개를 숙인 채 그 길을 걷지만 거기엔 분명 다른 결말도 존재했을 것이다. 하나를 선택한다는 말은 다른 많은 것들을 버린다는 말과 같다. 버려진 이야기를 모으는 일, 이야기를 버리지 않고 구석구석 쌓아두는 일. 폴 오스터의 세계가 그토록 모호한 이야기와 환상으로 채워져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이 소설이 어떻게 끝날지 알고 싶어 미친듯이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소설은 문득 56p에서 끝나버린다. 아무 것도 밝혀지지 않은 채. 모든 게 모호한 상태로. <당신을 믿고 추락하던 밤>은 4개의 단편을 모아 놓은 단편집이었던 것이다. 견딜 수 없던 호기심은 허무로 또 분노로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는 어떤 불가능한 작업에 대한 열의로 변해갔다. 그것은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욕망이었다. 어쩌면 나는 아이리스의 바보 같은 행동을 되풀이 하려는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 머리 속은 온통 그 생각으로 가득했다. 나는 내가 이 소설을 다시 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이 소설 속으로 뛰어 들어가 모호한 것들을 찢어버리고, 끝맺지 않은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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