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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

노승대 저
불광출판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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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종교엔 이야기가 많다. 역사가 깊다는 건 사람과 호흡한 시간이 길다는 거고, 자연스레 인간의 다양한 욕망을 교리로 포섭할 필요가 많았다는 거다. 하지만 옛날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복잡한 교리를 전달하기엔 그림과 이야기만 한 게 없었을 것이다. 보수적 성향으론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로마 가톨릭도 2,000년이 넘는 시간을 구르며 성인, 천사, 구마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덧붙여 갔다. 하물며 만신이 기본인 불교는 오죽했겠는가. 이 책은 한국의 사찰이 담고 있는 이야기의 보고를 열어젖힌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관용이란 참 고마운 개념이다. 순혈주의의 독재 아래선 꽃피지 못할 것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뻗어나가며 이야기를 만들기 때문이다. 아마 염라대왕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지옥의 왕으로 알고 있는 이 자는 사실 '야마'라고 불리는 힌두교의 신이다. 중국의 도교는 이 신을 사후 세계의 시왕(十王) 중 하나로 포섭했고 도교 이후 민간의 큰 지지를 받은 불교가 이를 공유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남의 것이라고 배척하고 잘라냈다면 염라대왕과 아홉 판관들이 다스리는 지옥의 이야기는 영원히 암흑 속에 묻혔을 것이다.


불교의 관용은 다른 종교의 신에만 머무는 게 아니다. 꽃, 새, 거북이, 게, 용, 수달 등 현실과 상상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을 아우른다. 그래서 불교의 벽화와 사찰은 흥미롭다. 처마 밑에 금돼지 한 마리가 숨어있는가 하면 수달이 서까래를 오르고 야차와 도깨비가 동서남북을 노려보기도 한다. 마치 숨바꼭질하듯 은은히 가려져 있지만 그 존재의 이유와 유래는 흥미롭고 유구하다.


혹자는 이런 게 종교냐고 물을 수도 있다. 체계는 뒤죽박죽 모순 투성이에 복을 바라는 사람들의 염원을 이것저것 기워 붙인 누더기.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면 우주를 관통하는 절대적 진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신은 고작 인간의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 존재하는가? 그래서 종교는 딱딱하고 엄격할 수 밖에 없다. 무엇이 옮고 그른지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것이 절대적 진리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 말에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그러나 종교는 결국 인간이 만든 문화에 불과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는 세상에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자신은 없지만, 종교가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종교는 신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것이다. 인위적 체계에 불가한 문화에 정통의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애꿎은 신이 동원될 뿐. 동일한 신의 이름으로 저마다 다른 진리를 펼치는 인간의 세계를 보면 신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다면 차라리 모두를 정답으로 만드는 게 이 세상에 더 이롭다. 종교의 첫 번째 의무는 인간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사찰이 품고 있는 복잡한 이야기들은 우리의 욕망이 얼마나 다양했는지를 보여준다. 인간에게 삶은 그 자체가 숙제였던 게 분명하다. 삶을 극복하는 그 날까지 행복은 최대로, 고통은 최저로 채우고 싶은 욕망. 종교의 교리는 고매한 진리를 논하고, 이 모든 욕망이 부질없음을 탓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희망을 받아들인다. 그 어떤 높은 생각도 인간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음을 아는 것이다.


이 책은 사찰을 중심으로 한국인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한다. 서로 다른 사찰의 모습에서 유래를 끌어내고 그 의미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시대의 바람과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왜 사찰에 게가 등장할까? 저 창틀에 숨은 다람쥐는 무슨 의미일까? 처마를 들고 있는 저 짐승은 누구인가? 작은 돌 하나도 의미없이 놓인 것이 없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저절로 귀가 모인다. 몰랐던 게 이렇게 많았나 싶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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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확률의 문제 | 기본 카테고리 2020-02-16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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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당신과 다른 나

임현 저
현대문학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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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다른 나>는 이야기와 현실이 오묘하게 뒤섞인 세계를 허구라는 틀(소설)로 엮어낸다. 액자 안에 액자 안에 액자가 들어간 듯한 느낌인데, 액자와 그림의 경계는 너무나 모호해 이것이 액자를 그린 그림인 건지 그림을 그려 액자 안에 담은 건지 도저히 구분을 할 수 없다.


이 소설은 두 개의 이야기가 뱀처럼 똬리를 튼다. 홀 수장은 아내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로 남편의 심한 건망증을 고백조로 풀어낸다. 아내가 묘사하는 남편의 증상은 심한 치매를 연상케 한다. 남편은 한 번도 기른 적 없는 개가 없어졌다며 소란을 피운다. 보다 못한 아내가 개를 한 마리 사와 집에 두지만 남편은  강아지냐며 아내를 몰아세운다. 참다못한 아내가 남편의 행동을 거론하며 그가 앓는 건망증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뒤이은 남편의 반박은 아내를 기절시킬 정도로 충격적이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건 남편이 자기가 아니라 아내다. 남편은 소설책 한 권을 던지며 아내에게 소리친다. 당신이 믿는 건 전부 이 소설의 이야기라고. 건망증을 앓는 남편은 어디에도 없고 당신이 하는 모든 말은 전부 허구에 불과하다고. 남편은 땅에 떨어진 약들을 주우며 아내에게 먹을 것을 종용한다. 아내는 이 모든 상황에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짝수 장은 소설가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로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신과 똑 닮은 사진을 '남편을 찾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린 여자를 추적해 나가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소설가는 여자를 만나는 순간 그녀에게서 '이상'을 느끼고 도망치려 하지만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자기밖에 없다고 자각한다. 그는 듣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소설로 옮긴다.


<당신과 다른 나>는 두 개의 이야기가 평행선을 이루다 어느 순간 교차해 나무뿌리처럼 얽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짝수 장의 여자가 홀수 장의 아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홀수 장의 아내가 심한 망상을 앓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망상에 시달리는 건 오히려 남편이 아닐까? 짝수 장에 등장하는 소설가가 사실은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은 채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홀수 장의 남편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셔터 아일랜드>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짝수 장에서 보인 여자의 행동이 남편의 망상을 치료하기 위한 롤 플레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입자의 위치를 오로지 확률로만 기술할 수 있는 양자 역학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확률이 100%인 단 하나의 진실을 찾고자 하지만 그건 그저 습관일 뿐이다. 현실은 완전히 뒤얽힌 이야기 그 자체, 그러니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 말해질 수 있는 모든 이야기의 총합일지도 모른다. 진실은 애초에 그렇게 깔끔하고 명확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이 불편한 사람은 진실이라는 단어를 '현실'이나 '세계'로 대체해도 좋다. 그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위안이 된다면. 그렇게 해서 당신의 세계가 여전히 단 하나의 진실 위에 세워진 굳건한 성이라고 믿을 수 있다면.


이 소설은 최근에 읽은 그 어떤 소설보다도 복잡하고 어지럽다. 읽고 나면 '이게 뭐야?'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깊숙이 파고들면 두통이 몰려오고, 어느 순간 그 행동이 갖는 의미를 자문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 단 하나의 진실을 찾는 건 무의미하고 가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미로는 출구가 여러 곳이다. 어느 곳으로 나갈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나는 이야기를 단순한 허구가 아닌 '또 다른 진실'의 위상으로 승격시킨 포스트 모더니즘 소설가들을 사랑한다. 위대한 보르헤스, 이탈로 칼비노, 그리고 폴 오스터. 그들의 향수를 느끼게 해 준다면 그 어떤 이야기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이 소설은 골칫덩이에 불과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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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편한 SF | 기본 카테고리 2020-02-09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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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목소리를 드릴게요

정세랑 저
아작 | 202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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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의 소설은 무자극 저당도의 사탕 같은 맛이다. 세계를 리셋 하고 싶고, 달리는 기차를 세워 반대로 끌고 가려 하는데, 총 든 테러리스트의 모습은 없다. 조곤조곤, 말랑하게 세계는 변혁을 꿈꾼다.


미래에서 날아온 거대 지렁이들이 지구인과 문명을 모조리 파괴하여 분변토로 뒤덮인 비옥한 땅으로 만드는 이야기는 얼핏 보면 끔찍하다. 수십 미터에 이르는 지렁이다. 생각만 해도 역겨운데 사람과 건물까지 먹어치운다. 크툴루 신화에 기반한 괴기 소설에나 나올법한 이 동물은, 그러나 정세랑의 손을 거치며 파스텔톤의 카툰 렌더링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다. 첫 맛은 심심하지만, 먹어도 질리지 않고, 또 찾게 되는 집밥의 맛이다.


그래서 그녀의 소설들은 소화가 잘 된다. 이 단편선은 SF 장르를 표방하지만 하드코어 SF와는 한참이나 거리가 멀다. 차라리 사고 실험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 같다. 이런 세계 라면 어떨까?라는 기발한 생각이 그대로 이야기로 풀어져 나온다. 정통 SF 애호가라면 이런 소설들에 SF라는 푯말을 다는 게 대단히 불쾌할 순 있겠지만, '장르' 소설에 반응하는 독자들을 잡기 위한 애교쯤으로 봐주자. 너무 센 것만 씹으면 이가 아픈 법이니, 가끔은 부드럽고 따뜻한 죽으로 이를 달래자.


정세랑이 다작을 할 수 있는 것도 다 이런 이유 같다. 문장에 큰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고민의 깊이가 얕다는 게 아니라 일단 전진을 하고 보는 것이다. 한번 가보지 뭐,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걷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 느낌, 아, 이 정돈 나도 쓰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써 본 사람은 안다.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백지를 만났을 때 단단하게 굳어버리는 어깨와 두 손의 마비를.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듯 문장들이 나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정세랑은 요가의 고수 같다. 유연하고, 부드럽고, 기묘하다. 겨드랑이 사이로 얼굴을 내밀어 나를 올려다보는 기분이다.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고 싶을 때, 지금까지 나는 하루키의 소설을 골라왔다. 이러니 저리니 말이 많아도 그 남자는 확실한 스트레이트가 있으니까. 이제는 그 목록에 정세랑이라는 이름을 하나 더 추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랜만에 영혼을 공유할 작가를 만나 기쁘다. 부디 오래오래, 많이 많이 써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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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찾는 도시의 역사 | 기본 카테고리 2020-02-0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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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갈등 도시

김시덕 저
열린책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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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도시>의 저자 김시덕은 문헌학자로 꽤 이름을 알린 모양이다. 그전까지는 몰랐는데 읽고 나니 여기저기서 그의 이름이 눈에 띈다. 문헌학자가 무슨 일을 하는가 보니, 글을 읽는 직업이었다. 특이한 건 '책'이 아니라 '글'이라는 것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무너지기 직전의 건물 머릿돌에서 가게 간판, 버려진 비석까지. 단 한 글자, 단 하나의 초성만 쓰여있어도 이 문헌학자에겐 소중한 해석의 재료가 된다.


쓰인 글에서 쓴 사람의 내력, 쓰일 당시의 상황, 쓴 이유까지 알아낸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마치 셜록 홈즈라도 된 느낌. 글에선 60-70대의 노 교수가 떠오르는데 실제론 75년생에 불과한 젊은 사람이라는 게 신기하다. 옛것을 가까이하면 말과 행동도 같이 늙나 보다.


<갈등 도시>는 저자가 서울과 주변의 위성 도시들을 걸으며 기록한 답사기다. 그는 부천, 인천, 안양을 비롯하여 일산, 고양, 파주 그리고 의정부, 남양주, 분당까지 서울에 인접한 도시들을 한데 묶어 '대서울'로 지칭한다. 이 '대서울'이란 말엔 듣는 사람에 따라 거북함이 있을 것이다. 이 말속에선 각 도시가 가진 고유성이 사라지고 그저 서울이 되고 싶은, 혹은 서울의 아류 도시들만 남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의 기준은 명확하다. 인간 사회는 물질이라는 토대 위에 지어졌기에 경제적 연관성으로 묶인 거대 권역을 통째로 읽지 않으면 서울과 그 주변 도시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확실히 분당과 일산은 서울의 거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도시고 인천은 서울을 바다로 연결해주는 공업 도시임을 부정하기 쉽지 않다. 이 밖에 다른 도시들도 버스나 지하철의 차고지, 하수 처리 시설 등 서울 내에 있긴 힘든 비선호 시설들을 품으며 이 거대 도시를 유지하는 일익을 담당한다. 저자의 생각을 찬찬히 더듬다 보면 그 논리나 근거에 대해 상담 부분 수긍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서울을 유지하기 위한 인위적 정책의 결과라고 생각하면, 주변 도시들의 희생이 눈에 띄면서 반발감이 들끓는다. 불필요한 걸 억지로 떠넘겨 놓고 관계를 운운하며 하나로 묶다니. 이 논리라면 대외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한국, 그러니까 중국과 미국과 사실상 하나처럼 움직이는 대한민국도 대중국 혹은 대 미국의 일부로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닐까? 대한민국은 중국에 양질의 공산품을 제공하는 공업 성(province)이자 미국의 극동아시아 방어 요충지인 군사 주로(state)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좀 더 밀고 나가다 보면 일제 시절 침략에 당위를 제공하던 대동아공영권까지 떠오른다.


저자는 양반 및 왕가, 즉 지배층의 문화를 중심으로 보존되는 역사에 격렬한 거부감을 느낀다. 궁궐이나 왕릉만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이냐? 양반들이 살던 99칸 기와집은 중요하고 서민의 기와집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냐? 대한민국의 힘은 조선을 망국으로 이끈 지배층의 사상과 문화를 극복하면서 탄생한 것인데, 이제 와서 다시 그것을 보존하고 숭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아니냐? 나도 이 생각엔 상당히 공감한다. 하지만 이런 철학을 가진 사람이 서울을 중심으로 한 대서울 서사를 만들어내는 건 어딘지 모르게 위화감이 느껴진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서울을 중심으로 한 위성 도시들의 연계는 인위적 선택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대서울 이라는 것은 단지 그 현상을 쉽게 파악하려는 생각의 틀에 불과한 걸까?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틀이 서울의 확장을 긍정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저해하는 도구로 사용될 여지는 없을까?


<갈등 도시>는 엄밀한 사회 과학서가 아니다. 지은이가 직접 발로 걸어 다닌 길들을 기록한 탐사기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실 저자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곳이 나의 유년시절과 겹치고 책에서 많은 부분을 할애한 강남, 인천, 일산, 분당, 파주, 의정부, 남양주 지역이 나와 무관하지 않은 탓에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다. 살던 동네의 옛 지명과 탄생 과정을 확인하는 미시 역사는 그야말로 우리 같은 사람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역사임에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럼에도 어딘지 모르게 뒤통수가 댕기는 이유는 뭘까? 흥미와 의심 사이를 시종일관 오락가락한 책. 김시덕의 <갈등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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