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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열두 발자국 | 인문 2018-12-31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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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숲을 이해하기 위한 탐험의 첫걸음 - 열두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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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질과 대면하기 위한 탐험의 첫걸음 - 열두 발자국 | 인문 2018-12-31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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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열두 발자국

정재승 저
어크로스 | 2018년 07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인간'이라는 숲을 이해하기 위한 탐험의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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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교수는 요즘 가장 바쁜 과학자 중 한명 일 것이다. 2017알뜰신잡이라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와 대중과 친근해진 과학자이지만, 이미 10년 전에 인기를 끌었던 정재승의 과학콘서트의 저자이며 현재는 카이스트 교수로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다. 바쁜 와중에도 매년 10월 마지막 주 토요일 저녁 전국 수십 개 도시에서 과학자들이 동시에 강연을 하는 ‘10월의 하늘이라는 프로젝트 진행뿐만 아니라 뇌과학과 예술’, ‘백인천 프로젝트추진 및 미래세대 행복위원회조직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기업이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해온 뇌과학 강연 중 가장 흥미로운 강연 12편을 묶어 열두 발자국이라는 책을 만들었다. 정재승 교수가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바쁘게 살고 있는 이유를 책 말미의 인터뷰 특강을 통해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쾌락주의자인 것 같다. 시간을 재미있고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로만 채우려고 한다. 생산적이지 않은 순간을 못 견디는 편이다. 병역특례를 받고 훈련소에서 한 달 동안 훈련을 받는데 돌아버리겠더라. 여럿이 앉아서 아무 일도 안 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 순간을 못 견디겠더라. 존재가 아무런 의미를 발생시키지 못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것 같다.” - p.380

 

이 책의 제목인 열두 발자국인간이라는 경이로운 미지의 숲을 탐구하면서 과학자들이 내디딘 열두 발자국을 줄인 것으로 소설가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의 숲으로 여섯 발자국]에서 떠올렸다고 한다. 그럼 지금부터 정재승 교수와 함께 1.4킬로그램의 작은 우주인 ”를 향해서 조심스럽게 열두 발자국을 내딛어 보자.


 


1. 더 나은 삶을 향한 탐험 : 뇌과학에서 삶의 성찰을 얻다

첫 번째 발자국 선택하는 동안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아이들과 함께 나무조각 끼우기 놀이를 같이 한 적이 있었다. 다양하게 생긴 나무조각을 나무판에 맞추는 놀이였는데 나는 나무조각의 모양별로 어떻게 맞출지 나름 곰곰히 생각해서 계획을 세운 후 시도를 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아무 고민 없이 바로 나무조각 맞추기에 돌입했다. 결과는 바로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아이들이 더 빠르게 맞추기에 성공. 그 이유를 책에서 마시멜로 탑 쌓기 실험을 통해 알려주고 있는데 미국 경영대학원 학생들이나 변호사들이 쌓은 탑의 높이가 유치원생들이 쌓은 탑의 높이보다 현저히 낮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그 이유는 한정된 시간동안 미국 경영대학원 학생이나 변호사들은 다양한 가설과 나름의 원리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계획을 짜서 실행을 하는데, 유치원생들은 무엇보다 계획을 세우지 않고 일단 재료를 갖고 탑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처음 해보는 일은 계획할 수 없습니다. 혁신은 계획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혁신은 다양한 시도를 하고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계획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끊임없이 바뀌는 상황에 맞춰 게획을 수정하면서 실행해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습니다. 특히 처음 해보는 일에서는 계획보다 실행력이 더 중요합니다.” - p.25

 

두 번째 발자국 결정장애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과 식당이나 술자리를 가게 되면 메뉴를 고를 때 내가 결정하기보다는 함께 온 친구나 직장 동료가 결정해 주는 메뉴의 음식을 먹곤 한다. 처음에는 배려로 결정을 미뤘는데... 이제는 식당이나 술자리에서 메뉴 결정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이걸 책에서 햄릿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서 햄릿의 삼촌이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데려가자 자살할 것인지, 그를 죽일 것인지를 놓고 며칠 밤을 고민하고 번민하다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외쳤다는 유명한 대사 때문에 햄릿 증후군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이렇게 의사결정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정재승 교수는 아래와 같이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원칙을 권하고 있다.

 

이건 제가 평소 의사결정을 할 때 자주 사용하는 원칙이라 여러분에게도 권해드리는데요, 바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입니다. 오늘 죽는다고 생각하면 그 어떤 상황도 그보다 비극적이진 않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뭘 한다고 대단히 큰 이득을 보는 것도 없고, 반대로 뭘 안 한다고 해서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없다는 걸 알고 나면, 부담이 적어져서 빨리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돼요. 망설이는 데 힘과 에너지를 쓰지 않게 되지요. ‘메멘토 모리는 의사결정의 무게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 p.93

 

다섯 번째 발자국 우리 뇌도 새로고침을 할 수 있을까

 

올해도 어느새 다가고 마지막 날이다.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하여 어김없이 새해 결심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올 초 세운 새해 결심 세 가지 중 한 가지만 간신히 이루었고, 나머지는 이루지를 못했다.(1년 단기 결심이었는데도 다 이루지를 못했다.) ‘새해 결심은 왜 그토록 지켜지지 못하는가에 대해 연구한 과학자들이 있다고 한다. 그들의 논문에 따르면 약 77퍼센트의 사람들이 새해 결심을 일주일 정도 지켰고 대부분 포기를 했고 약19퍼센트의 사람만이 새해 결심을 나름대로 지키면서 2년 정도의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도대체 새해 결심은 왜 지키지를 못할까? 그 이유는 뇌가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일상을 습관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습관이라는 안락함 속에서 평화롭고 예측 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에 습관의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버겁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재승 교수는 새로고침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절박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고침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뭔지 아세요? 새해 결심은 이루는 방법이 뭔지 아세요? 내 삶에서 새해가 더 이상 없어지는 겁니다. 여러분에게 단 1년의 삶만 주어진다면, 1년의 삶은 완전히 새로고침된 삶일 겁니다. 주변에서 새로고침에 성공한 사람들을 보세요.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죽다 살아난 사람이 그토록 많이 마시던 술을 끊고, 담배를 끊고, 등산을 하는 거에요. 죽을 만큼 절박하지 않으면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 절박함을 만들어내는 것이 새로고침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첫 단계입니다.” - p.145

 



2. 아직 오지 않은 세상을 상상하는 일 : 뇌과학에서 미래의 기회를 발견한다

여덟 번째 발자국 인공지능시대, 인간지성의 미래는?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밥에 의해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두가 제시된 이후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 우리 일상에 빠르게 다가오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2016년 딥마인드의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국을 보면서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공포와 위협의 기술로 다가 온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우리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인가? 우리는 인공지능 시대를 어떻게 준비하고 대비해야 하는가? 그에 대하여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전략은 크게 두 가지이다. 우리는 인공지능 시대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기 보다는 인공지능과의 공생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는 인공지능을 제대로 이해해서 필요한 곳에 잘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이 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공지능이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더 잘하는 게 무엇인지를 파악해서 인간의 존재 가치를 높이자는 것입니다. 지피지기하자는 것입니다.” - p238 ~ 239

 

아홉 번째 발자국 4차 산업혁명 시대, 미래의 기회는 어디에 있는가?

 

지금은 집에 차 1대는 기본으로 있는 세상이지만 어릴 적에는 반에서 차가 있는 친구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 중에서도 차에 있는 전화기, 카폰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차가 있는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시간이 늦어 친구 아버지께서 집까지 차로 데려다 준 적이 있었는데, 차 안에 있는 네모나고 큼지막한 전화기로 전화를 하시는 것을 보고 같이 갔던 친구와 나는 전화선 없는 무선 전화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더욱이 카폰으로 통화하시던 친구 아버지가 멋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지금은 초등학생까지 어디서든지 전화뿐만 아니라 인터넷도 가능한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닌다.(스마트폰이 나온 지 불과 10년 밖에 안 되었다.) 과연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인 요즘 스마트폰 이후 어떤 스마트기기가 세상을 지배할 것인지? 지금까지 나온 모든 스마트기기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처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기능이 핵심이었는데,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아톰 세계(실제 시공간을 점유하는 현실 세상)와 비트세계(사이버 혹은 가상공간)의 일치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아톰세계의 상황을 전부 비트화할 수 있는 사물인터넷과 함께 빅데이터, 가상현실/증강현실, 인공지능 등이 현실적으로 상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했다고 한다. 그러나 디지털 문명의 세계인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행복을 위해서는 아날로그의 반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디지털은 뇌만 자극하지만, 아날로그는 몸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LP 레코드를 들려주는 음악카페들이 성행하고, 작은 동네서점이 인기를 끌고 있다. 거기에 만년필을 사용하는 학생들, 수제맥주를 만들어 마시는 젊은이들도 많이 늘고 있는 추세다.

 

이제 우리는 워라벨만큼이나 몸(바디)과 뇌(브레인)의 균형, 바브벨을 중시해야 합니다. 디지털 문명이 우리를 뇌와 손가락만 발달한 E.T.로 만들지 않도록, 아날로그 경험을 통해 몸의 자극과 반응에 균형을 잡아줘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아날로그의 반격이 반갑습니다.” - P.278

 

열한 번째 발자국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세상에 도전하는가

 

나는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평범한 40대 가장이다. 남들이 볼 때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면서 무슨 걱정이 있냐고 하겠지만 나름 직장 내에서 여러 고충이 있다. 그래서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스타트업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처럼은 안 되겠지만 창업을 해서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부양할 가족이 있고 안정적인 직장이 주는 안도감 때문에 막상 정글 같은 세계를 향해 모든 걸 잃을 굳은 각오를 하고 꿈을 위해 떠날 용기가 부족하다. 그럼 스타업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과감하게 처음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퍼스트 펭귄처럼 앞뒤 안 가리고 도전정신으로 뛰어들까? 우리가 안정적인 미래를 버리고 가감하게 위험을 선택해서 성공한 것으로 알고 있는 빌 게이츠도 실제로는 학교를 중퇴하지 않고 장기휴학을 했으며, 학교와 부모에게 미리 허락을 받았고, 휴학도 회사를 창업하고 1년 뒤에 했듯이 우리가 생각하는 거와 다르게 위험 감수성이 그다지 높지 않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럼 시대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중략) 시대에 순응하지 않는 자들은 과감하되 무모하지 않으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되 실패하지 않기 위한 준비에 철저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시대에 순응하지 않는 자들의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라 탐험이겠지요. 그중에서도 성취를 이룬 자들은 사려 깊게 준비한 탐험가들일 겁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탐험의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p.349


열두 번째 발자국 뇌라는 우주를 탐험하며, 칼 세이건을 추억하다

 

[코스모스]로 유명한 칼 세이건은 대중과 적극적으로 소통을 한 뛰어난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정재승 교수 역시 대중과의 소통이 과학자로서 자신의 경력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학문적 이력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로서 여러 사람들과 과학에 대해 대화하려는 이유는 과학의 대중화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

 

과학은 무척 어렵지만, 수식의 숲을 지나고 어려운 개념의 바다를 넘어 결국 도달하게 되는 우주와 자연, 생명과 의식의 경이로움은 어려운 과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인류 모두가 맛보아야 할 경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p.356

 

열두 발자국은 정재승 교수가 프롤로그에서 “1.4킬로그램의 작은 우주인 라는 관점에서 보편적인 인간을 다루고 있지만, 그 이야기는 여러분의 내밀한 삶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기를 바라고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우리를 발견하는 경험을 공유하기를 바란다고 했듯이 인간의 본질과 대면하기 위해서 이제 겨우 뗀 열두 발자국이지만 이 책을 통해 기꺼이 과학자들과 함께 탐험에 합류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앞으로 정재승 교수의 다음 발자국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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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커버 스토리] 박준 시인, 그냥 가지 말고 잘 가 | 채널예스 2018-12-3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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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한낮, 머플러를 두른 박준 시인을 본 적이 있다. 외투도 입지 않는 계절에 어찌 머플러를 했냐고 물으니, 생활인에서 시인 모드로 전환하는 일종의 장치라고 했다. 오래전 그는 직장에서 퇴근하는 동시에 모자를 쓰곤 했다. 1주일에 3일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한다. 학교에서 강연 요청이 오면 먼 지방이라도 꼭 가려고 애쓴다. 주기적으로 휴대폰을 꺼놓고 지내는 박준. 때문에 사과할 일이 종종 생기지만 시를 쓰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2012년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이후, 딱 6년 만에 두 번째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가 나왔다. 두 시집 모두 12월에 출간, 똑같이 16글자 제목이다. 여름보다 겨울에 시가 더 잘 쓰인다는 박준 시인은 말했다. “장마를 함께 볼 수 있겠다는 말은 정말 강렬한 고백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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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완성되면 그것이 빚일까, 빛일까


시집 제목을 보고는 ‘아, 박준 시집이네’라고 생각했어요.

 

(웃음) 어제 시집을 받았어요. 시간이 있었는데도 잘 안 봐지더라고요. 뭐가 들었는지 모르는 상자를 받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뜬금없는 폭탄일지,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온 선물일지 몰라서 몇 권을 받아 놓고는 근처에도 안 갔어요.

 

계약한 지 한참 후에 나온 시집이죠?

 

첫 시집이 나오기 전에 계약했으니까, 2012년일 거예요.

 

6년간 쓴 시라고 볼 수 있겠네요.

 

가장 오래전에 쓴 시가 첫 시집이 나오기 한 달 전에 쓴 시니까요. 이번 시집도 퇴고를 오래 했어요. 시행을 조금씩 바꿔도 보고요. 돌이 계속 나오는 밭을 가는 느낌이랄까. ‘이러다 언제 끝나지? 아예 밭이 사라지는 거 아니야?’ 싶었어요.

 

시를 읽기 전 시인의 말을 보았어요. “어떤 빚은 빛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이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두 문장(행)의 글자 수가 같아서 그런지 제겐 시로 읽혔어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주절주절 길게 쓴 버전이 있고, 이것보다 더 짧은 버전도 있었는데요. 너무 멋을 부리면 안 될 것 같았고, 그렇다고 성의가 없어도 안 될 것 같아서요. 인쇄 전까지 다시 쓰고 다시 썼어요.

 

평범한 문장 같지만 계속 남더라고요. “빚과 빛.”

 

특정한 시기에 나를 괴롭히는 어떤 문제가 있잖아요. 그 문제가 미래에도 여전히 나를 괴롭힐 수도 있지만, 그 시기를 잘 통과하면 어느 순간 빛이 되는 것 같아요. 쉽게 이야기하면, 살아가다 누군가에게 마음의 빚을 지게 될 때가 있고, 언젠가 그 빚에 보답하기도 하는데요. 그렇다면 빚을 진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단순하게 시라는 것도 뭔가 어두운 것에서 출발할 텐데 시로 완성되면 그것이 빚일까, 빛일까를 생각해보면, 둘 다인 것 같아요.

 

‘박준 시인의 시집이 이제 두 번째야?’라고 놀라는 독자들이 있더라고요.

 

더 일찍 낼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시간을 더 갖고 싶었어요. 첫 시집도 1년을 묵히고 나왔었어요.

 

왜죠?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발문을 허수경 선배가 써주셨는데요. 수경 선배가 말했어요. “내가 네 시에 개입할 여지를 줘도 되냐?” 제가 “당연하다”고 말했더니 “그러면 1년을 더 고치고 쓰라”고 하셨어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이해가 잘 안 갔거든요. 크게 반발하지 않았지만 수긍 하면서도 잘 몰랐어요. 왜 중국 영화를 보면 도를 닦는 스승이 제자에게 계속 물만 떠오라고 하잖아요. 끝이 날 것 같으면 1년 더 하라고 하고요. 아마 시간을 보내며 내공을 쌓으라는 말이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제가 문학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뜨거웠던 것 같아요. 과도한 기대, 열망 같은 걸 보신 게 아닐까요.

 

이번 시집은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발문을 썼어요.

 

좋아하는 작가에게 내 글에 대한 글을 받고 싶었어요. 첫 시집도 그렇고 이번 시집에서도 제 욕심을 이뤘어요. 운이 좋은 것 같아요. 만약 1년 후에나 글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어도 기다리려고 했어요. 제가 1년 동안 뭘 할지도 궁금했고요.

 

“조촐하게 시작된 박준의 시 쓰기가 많은 독자를 얻어나가는 과정을 얼마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본 이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거기에 속한다.”(95쪽) 발문의 첫문장입니다. 두 번째 시집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를 느꼈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엄격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첫 시집이 책으로써 잘됐잖아요. 너무 잘돼서 생기는 불안 이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첫 책보다 안 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은 아니었어요. 두 번째 시집이 문학으로 더 잘돼야 한다, 그런 마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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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에 읽는 시

 

4부로 나뉜 시들은 계절을 입고 있어요. 1부는 봄, 2부는 여름, 3부는 가을, 4부는 겨울. 「가을의 말」을 읽고 「겨울의 말」을 읽으니 한 계절이 지난 느낌이 들었어요.

 

시의 순서를 어떻게 배치할지 고민이 많았는데요. 계절의 자연스러운 힘을 빌리고 싶었어요. 우리가 가장 흔하게 하는 인사가 “날씨가 추워졌어요” “내일 비 온대요” 같은 말이잖아요. 굉장히 상투성 짙은 이야기지만 저는 그 말이 좋아요. 상투성 안에 다정함을 발견한다고 할까요? 어쩌면 날씨가 바뀌는 게 세상에서 가장 큰일이 아닐까 싶어요. 한 사람의 삶 속에 기쁨의 사건, 슬픔의 사건은 극히 드물잖아요. 대개는 아무 일 없이 평범하게 지나가는데 그때의 평범은 마치 날씨 같아요. 굉장히 작은 일이지만 그 작은 일이 모여서 삶을 이루니까요. 당연한 일이지만 낯설게 받아들이는 데서 시가 시작할 테고요.

 

이번 시집에도 박준 시인이 좋아하는 단어가 등장해요. 곁, 볕, 선잠 같은.

 

어떤 생각을 표현할 때, 이 생각이 가장 덜 훼손되고 나오는 말을 쓰고 싶은 제 마음 때문일 거예요. 그 관념이 최소한 덜 상한 거니까 한 편의 시에서 보면 성공일 수 있는데요. 너무 익숙한 방식의 언어만 사용하는 게 아닐까 고민도 돼요. 다음 시집이 언제 나올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런 방식을 되풀이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 봤자 멀리는 못 갈 것 같기도 하고요.

 

뭐? 바로 간다고? 밥 안
먹고? 그럼 이거라도
가져가. 받아. 나중에
네가 갚으면 되지. 괜히
잃어버리지 말고 지금
주머니에 넣어. 그럼 가.
멀리 안 나간다. 가. 그냥
가지 말고 잘 가.

― 「사월의 잠」 부분

 

「사월의 잠」은 어디에서 탄생한 시일까 궁금했어요.

 

2016년에 「416 단원고 약전」을 쓰는 중에 꿈을 꿨어요. 저는 너무 강력한 일은 시로 쓸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나는 못 써’가 아니라 쓰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과 써야 한다는 마음이 충돌한 상태였어요. 어렵게 썼지만 ‘잘 갔으면 좋겠다’는 말에서 출발한 시예요.

 

첫 시집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시는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였어요. 시집에 사인할 때 적어준 시구이기도 하고요. 이번 시집에는 어떤 시구를 적어주실까요?

 

「숲」이라는 시의 마지막 문장 “여전히 그 숲에는 아무도 없으므로 아무도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와 「가을의 말」에 “넘어짐과 일어섬 그마저도 지나서 한 이틀 후에 오는 반가운 것들”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겨울을 좋아하나요? 아무래도 여름보다는 겨울에 시를 많이 쓸 것 같아요.

 

좋아해요. 아직 아이 같은 면이 있는지, 폭설이 내려서 온 세상이 눈으로 뒤덮이면 좋겠다는 천진난만한 바람이 있어요. 여름엔 시를 잘 못 써요. 예전에 박인환 시인이 김수영 시인에게 “빨리 겨울이 오면 좋겠어. 코트 입고 싶어서”라고 말한 일화가 있는데요. 저도 겨울이 좋아요. 사람을 좀 소극적으로, 내향적으로 만드는 그런 계절인 것 같아요.


머플러를 매일 해도 어색하지 않은 계절이잖아요. 겨울엔 시인 모드로 더 길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나요?

 

그런 마음도 있고 그렇지 않은 마음도 있어요. 사실 시인의 시간을 가장 방해하는 건 화예요.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편은 아니지만, 화가 나는 경우가 많죠. 불길처럼 화가 일면 마음 한구석에 있던 시가 타버려요. 어떤 화는 3일이 지나야 풀리고 또 어떤 화는 5일도 걸리고. 시인 모드를 가장 방해하는 건 화인 것 같아요.

 

시가 잘 써지는 순간이 있다면요.

 

스스로를 좋아하는 시간에 시를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스스로를 싫어하는 순간에는 시를 못 써요. 비단 시뿐이 아닐 거예요. 내가 싫은 순간에는 무엇도 하기 어렵지 않나요?

 

말수가 적을 것 같은 인상인데, 말재주가 좋아서 볼 때마다 놀라요.

 

실은 낯선 사람을 만나는 걸 두려워해요. 소박한 강연도 있지만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 말해야 할 때도 있는데요.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떨지 않는 방법이 하나 있어요. 강연장에 들어가기 전에 우울한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말이 느려지고 정신을 차리게 돼요. 사람이 떨리면 말이 빨라지잖아요. 그걸 방지하기 위해 우울한 생각을 하는데, 좋은 방법은 아니죠.

 

생활인으로 요즘 자주하는 생각은 무엇인가요?

 

제 삶의 위기이기도 한데요. 층간 소음이에요. 신경 안 써야지 하는데도 그렇게 잘 안 되고 있어요. 윗집에 보내려고 편지를 정말 여러 버전으로 많이 썼는데요. 내가 가진 모든 시적인 능력을 동원해서 감동적인 편지를 써서 소음을 막아보고 싶었는데 실패했어요. 한 달 전에 편지와 동화책을 보냈는데 답장이 왔지만 소음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아이들이 뛰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제겐 너무 힘든 일이죠.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내요.

 

여전히 독주를 즐기나요?

 

칭찬할 일이 생기면 독주를 마셔요. 뭘 쓰고 나서 마실 때가 많은데, 어쩌면 독주를 마시기 위해 내가 글을 쓰나 싶기도 해요. 저는 사진을 찍으면 꼭 충무로에 가서 인화해요. 충무로가 저렴한 것도, 인화를 특별히 잘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고양시에서 충무로까지 가서 인화를 하고 도가니탕을 먹어요. 내가 도가니탕을 먹으려고 충무로에 가나 싶은데요. 뭔가 내 삶 안에서 동일한 일을 하면서 일상이 너무 멀리 굴러가지 않게 칸을 채워놓는 것 같아요.

 

예전에 한 선배가 “네 시는 공부한 티를 안 내서 좋아”라고 했다고요. 저는 엄청난 칭찬이라고 생각하는데 당사자는 달리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선배한테 제가 농담으로 이랬어요. “공부를 안 해서 그런 건데요.”(웃음) 제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어떤 하나에 특별히 경도되는 경우가 잘 없어요. 좋은 책을 읽으면 ‘아,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 책을 덮으면 다른 책이 또 좋아요. 대척하는 어떤 사유나 사조에 꽂혀서 ‘아, 이거야’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흔치 않아요. 하나에 크게 고취되지 않으니까 자유로운 게 아닐까요? 이상한 염세가 있는 걸지도 몰라요. 다만 개인적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아요. 우리 몸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고, 입출력이 비슷해야 균형을 잡을 수 있잖아요. 입력되는 게 많은데 출력하는 매체가 없으면 답답한 것처럼, 자꾸 출력만 하면 한계가 찾아올 수밖에 없죠.

 

“시를 쓰는 일이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렇다면 박준 시인이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어떤 분야에서든 자신의 정체성과 사고방식이 정해진 상태에서 확 변하는 사람을 볼 때 대단하게 느껴요. 완전히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사람, 익숙한 것에서 잘 벗어나는 사람을 보면, 그들은 같은 시간을 살아도 한 번의 삶을 더 사는 게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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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지 못하면 시를 잘 쓸 수 없어요

 

시집은 6년 만에 11만 부, 산문집은 6개월 만에 15만 부가 팔렸어요. 어떻게 체감하나요?

 

독자들이 시를 어렵다고 느끼는 건 실제로 시가 산문보다 어렵기 때문이에요. 단순하게 난이도로 따질 수는 없지만, 시는 어떤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으니까요. 시가 갖고 있는 미학이 독자들의 진입 장벽을 높게 만든 거라고 생각해요. 시보다 산문을 읽는 독자의 범위가 넓으니까요. 어떤 책이 더 팔리고 안 팔렸느냐는 개의치 않아요. 다만 아쉬운 건 예전엔 소설을 읽든 산문을 읽든 그냥 독자였는데, 지금은 시 독자, 산문 독자로 구획을 만드는 것 같아서요. 그 경계를 허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시적인 요소가 들어간 산문을 산문집에 넣었던 거예요. 형식적 경계가 아닌 관습적 경계를 허물고 싶었어요.

 

요즘 제가 꽂힌 단어가 있어요. 최은영 소설가의  『몫』 을 읽고 나서 계속 ‘몫’이라는 단어가 맴돌아요. 박준 시인이 생각하는 ‘박준 시인의 몫’을 묻고 싶어요.

 

일단 작게 이야기하면, 제가 잘 살지 못하면 시를 잘 쓸 수 없어요. 여기서 잘 산다는 건 부유(富裕)하다는 뜻이 아니라, 사는 일을 잘하는 것이에요. 잘 살고 있을 때 시를 쓸 수 있으니까요. 똑바로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시와 문학을 생각하면 시다운 시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산문을 쓸 때는 강박이 없지만, 시는 정말 잘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요. 또 하나는 시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회가 되면 공공 도서관이든 학교든 가서 이런 시가 있다고 말하는 것도 저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더 많은 사람이 시를 읽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창한 마음은 아니지만요. 시가 필요할 때, 독자가 손을 뻗었을 때 시다운 상태로 시가 놓여있길 바라요.

 

산문집을 내고 인터뷰했을 때 “목소리가 작은 사람들이 읽어주면 좋겠다”고 했어요. 이번 시집은 특별히 어떤 독자에게 가 닿으면 좋을까요?

 

간혹 중고등학생을 만날 때 “내 돈으로 처음 산 책”이라는 말을 듣는데요. 이것도 욕심이겠지만 교과 과정에서 읽은 시가 아닌 시집을 처음 읽어보는 사람이 제 책을 읽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시집을 선물 받는 사람은 이미 갖고 있는 책을 선물 받아도 “나 이 책 있어”라고 말하지 않아요. 상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예요. 친구에게 선물한다고 사인을 해달라고 하는 독자를 만날 때 참 고마워요.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는 그냥 선물 같은 시집이면 좋겠어요. 기프트콘처럼 선물할 수 있는 책. 저로서는 정말 강력한 고백이라고 생각하고 쓴 시라서요. 어떤 뭉근한 선물이면 좋겠어요.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박준 저 | 문학과지성사
함께 장마를 보기까지 우리 앞에 남은 시간을 담담한 기다림으로 채워가는 시인의 서정성과 섬세한 언어는 읽는 이로 하여금 묵묵히 차오르는 희망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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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펭귄뉴스 | 문학 2018-12-3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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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평소 관심 있어 하던 사물들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다가온다. 재기발랄함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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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뉴스 | 남기고 싶은 문장들... 2018-12-3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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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뉴스 - 김중혁

 

 

 

 ○ 사진은 사람 뿐 아니라 시간을 붙들기도 한다. 아니, 시간을 붙들 수는 없다. 시간을 붙들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시간은 계속 앞으로 가고, 우리는 사진을 보면서 멈춘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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