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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로맨스 | 기본 카테고리 2010-09-30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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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포 선라이즈

리차드 링클레이터
오스트리아, 스위스, 미국 | 2016년 04월

영화     구매하기

내가 기대한 만큼의 '재미' 는 없었다. 하긴 이 영화는 영화 평론에서 꽤나 많이 인용되는 것을 보는데 이런 영화치고 단순히 재미만을 추구하는 영화는 거의 없고, 내가 단순한 기승전결의 스토리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계속 쏟아지는 기존의 멜로나 로맨틱 코메디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사실 이제는 기존의 멜로나 로맨틱 코메디는 대락의 스토리 라인만 봐도 별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식상한 느낌을 준다. 그나마 최근에 봤던 것 중에는 ‘달콤 살벌한 연인’ 정도가 재미도 있으면서 나름의 생각할 거리를 준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이 영화가 언제 나온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아마 90년대 초반으로 알고 있는데, 요즘 나오는 멜로 영화들이 이 영화에 비해 오히려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제시(에단 호크)는 셀린느(줄리 델피)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본심을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는데, 그것이 셀린느를 만나기 전에 실연을 당한 상처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는 잘 알 수 없다. 반면 셀린느는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편이고, 여성은 독립적인 존재여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의존할 수 도 있고, 그를 위로해줄 수도 있는 진실한 사랑을 꿈꾸는 매력있는 여성이다. 이 영화는 비주얼 적인 요소나 스토리상의 기승전결 구조 대신 두 남녀간의 대사로 사랑, 남녀관계에 대해 묘사한다. 그들은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 놓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마음을 숨긴 채 모호한 말을 하기도 한다. 또한 그들은 남녀관계에서 생기는 각종 가식들에 대하여 이야기 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들은 서로에게 완전히 진실된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나누는 대사에서 남녀관계에 대하여 느끼면서, 또 그들의 관계 그 자체에서 남녀관계나 사랑에 대해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영화는 그들이 마지막에 나눈 약속이 6개월 후에 실현되었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다(속편인 before sunset은 두 사람이 그보다 훨씬 후에 만나는 설정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 약속이 실현될 것 같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들이 지리적으로 떨어진 거리가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것보다는 그 사람을 계속 만났을 때, 첫만남의 아름다웠던 추억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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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가 있는 눈요기는 언제나 즐겁다 | 기본 카테고리 2010-09-2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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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셉션

크리스토퍼 놀란
미국, 영국 | 2020년 01월

영화     구매하기

꿈을 훔친다. 꿈속에 들어가 꿈을 훼방하고 꿈을 설계하는 자! 그 꿈은 다시 꿈이고 꿈 속의 꿈이 된다. 이쯤 되면 꿈과 현실은 무의미해진다. 꿈에서 깨어나니 이 역시 꿈이라고 하던 장자의 호접몽이 생각난다.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를 꿈의 향연! 이런 생각을 21세기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SF 영화가 바로 ‘인셉션’이다. 그만큼 비주얼의 위력은 정말 대단하다. 욕조씬과 카페씬, 무중력상태에서의 액션씬 등은 가히 최상이다. 굳이 3D영화가 아니더라도 그 이상의 효과를 보고 느낄 수 있는 영화다. 몇 년 전 ‘매트릭스’와도 비슷한 이 영화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철학과 영화를 만드는 역량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것 같다. 다만 이렇게 어려운 영화를 일반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의문이지만. 코브(디카프리오)는 사이토(와타나베 켄)로부터 대기업 총수가 될 피셔(머피)의 생각으로 들어가 그의 생각을 훔쳐달라고 제의받는다. 그러면 자신의 아내를 죽인 누명을 벗겨주겠다고 하면서. 그 이후 벌어지는 영화의 스토리방식과 구성은 정말 치밀하고 어렵다. 주제가 어려워서도 그렀겠지만 감독의 복합적 구성력도 한몫 하지 않나 싶다. 철학과 국문학을 전공한 나도 어려운 것을 참 좋아하지만 일반관객이 이 어려운 영화를 돈을 줘 가면서 보려고 할지 의문이다. 다만 SF물로서 영화의 비주얼이 굉장히 뛰어나 그것만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어쨌든 치밀한 구성에 이야기를 풀어가는 복잡한 방식이 한순간도 영화화면에서 떠나게 하지 않는다. 이쯤에서 놀란이라는 감독을 아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더 즐길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메멘토’부터 봤지만 ‘인썸니아’, ‘베트멘 비긴즈’, 전작 ‘다크 나이트’에서처럼 그의 영화는 한 마디로 지적이고 이성적이고 철학적이다. 특히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또는 기억에 대해 지나치다 할 정도로 사색적이고 철학적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어려운 주제를 영화적으로 재미있게 풀어낸다는 데 있다. 2시간 여 동안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을 정도로 영화가 재미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놀란이 이 영화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인지 그 메시지는 정확히 몰라도 그저 그가 선사해주는 비주얼의 화면과 치밀한 영화적 구성, 그리고 주제의 깊이만으로도 충분한 영화가 바로 ‘인셉션’이다. 다만 놀란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또한 영화의 구성면, 내러티브를 엮는 기술 등이 뛰어 나지만 인간의 정서, 감정, 마음 등을 표현해내는 데는 약간 서툴다는 느낌이 든다. 주제를 받쳐주는 사람의 정서나 감흥이 조금 부족하다. 이것만 보완된다면 세계 최고의 감독 반열에 올라 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지리멸렬한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누구나 꿈을 꾼다. 그런데 그 꿈에서 깨어나도 깨어난 현실이 현실인지 꿈인지, 아니면 내가 꾸는 꿈인지 남이 꾸는 꿈인지 알 수 없다면 어떨까? 어떤 느낌일까? 정말 꿈을 디자인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미래 최고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꿈의 디자인에는 한 가지 법칙이 있다. 바로 기억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상상력의 소산이어야 한다는 말인데, 그래서 영화는 ‘상상하라’고 외친다. 상상력만이 꿈을 디자인할 수 있다고 한다. 좋지 못한 기억에 의존해 꿈을 디자인한다면, 즉 꿈을 함부로 왜곡한다면 현실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왜 꿈을 꾸는지, 왜 꿈을 꾸려고 하는지 반문해 봐야 한다. 꿈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내 꿈을 위해 남의 꿈을 훔치거나 왜곡할 수 있는가라고. 프로이트에 의하면 꿈속의 세계는 무의식이 지배하는 세계라고 한다. 현실에서의 욕망이나 억눌린 감정이 꿈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프로이트의 무의식이라는 이론이나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바로 무의식은 의식이 아닌가, 의식인가... 하는 질문이다. 無라는 글자는 의식을 부정하는 것인가, 의식을 인정하는 것인가의 문제다. 위에서도 말했듯 이 영화는 장자의 호접몽이나 노장철학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장자의 사상은 한 마디로 제물외생(祭物外生)사상이고 노자의 사상은 무위자연이다. 무위자연은 인위적으로 억지로 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이고 제물외생은 너와 나, 이것과 저것, 생과 사의 구별도 뛰어 넘어야 한다는 말이다. 영화를 보면 노장사상, 특히 장자의 사상이 많이 배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꾸는 꿈인지 네가 꾸는 꿈인지, 꿈인지 현실인지, 생인지 사(죽음)인지조차도 구분이 모호하고 헷갈린다. 한 마디로 구분이 모호하고 헷갈리는 꿈의 향연, 무의식의 향연이다. 그렇다고, 아무리 현실이 힘들다고 해도 우리는 무의식의 세계, 꿈의 세계에 살 수 없다. 진짜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데 그 진짜 세상이 이제 무의미해진다. 지나치게 꿈을 꾸기 때문이다. 꿈을 의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엔딩 장면이 보여준다. 마지막에 코브가 아이들을 만날 때 그는 팽이를 돌린다. 꿈 속에서는 팽이가 계속 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현실에서는 팽이가 돌다가 쓰러지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코브가 팽이를 돌리자 팽이가 도는 장면을 잠시 보여주다가 갑자기 끝나버린다. 팽이가 영원히 계속 도는 것인지(즉 이것 조차도 꿈인지), 쓰러지는지(즉 현실인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관객에게 결말을 맡기는 것이다. 바로 꿈을 지나치게 꾸지 말라는 말인가. 꿈을 왜곡하지 말라는 메시지라면 이것은 노자의 사상이다. 즉 무위, 억지로 무엇을 하지 말라는 뜻! 무위는 무불위다.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억지로 하려고 하지 말하는 뜻이다. 꿈을 꾸되 억지로 인위적으로 꿈을 꾸지 말라는 뜻이다. ‘현실에 만족하라’는 것이라기보다 억지로 꿈을 꾸려 하지 말라! 꿈을 왜곡하지 말라! 이것이 놀란 감독이 영화 ‘인셉션’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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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만 멋지고 구식 이야기에 구식 스타일. | 기본 카테고리 2010-09-2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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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솔트

필립 노이스
미국 | 201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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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나 졸리가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영화팬들에겐 봐야하는 영화다. 우리나라에 졸리만한 여배우가 한 명쯤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전지현도 괜찮지만 윤소이가 그런 역할을 할 줄 알았다. 중국으로 치면 장쯔이같은 배우, 그러니까 연기는 기본으로 잘 하고 여러 장르의 영화를 다 소화해낼 수 있지만 특히 액션에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여배우가 우리나라에도 한 명쯤은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이런 역할을 윤소이가 해낼 줄 알았는데 현재까지 그런 기미가 별로 안 보이니 조금 아쉽기는 하다. 어쨌든 졸리의 액션 연기는 이 영화의 단연 으뜸이다. 그런데 이런 액션 영화의 가장 맹점은 어느 한 배우의 액션은 뛰어난데 그 액션연기가 다인 경우다. 볼거리는 액션밖에 없는 액션영화... 영화관을 나오는 순간 허무하거나 다 잊어버리는 영화가 많은데 이 영화 <솔트>가 그런 경우인지는 얼른 답을 못하겠다. 일단 시나리오가 좋고 영화의 구성력, 즉 감독의 연출력도 굉장히 좋은 편이다. 다만 영화의 소재나 내용이 냉전시대에나 통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 문제면 문제다. 수십 년 전에 쓰인 원전이 있는지 봤으나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감독은 왜 새로운 유목시대라고 하는 지금 이중 스파이라는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을까.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자 여러 학자들은 민족이나 국가가 사라지는 새로운 유목시대가 되었다고 천명했다. 그런데 인터넷 시대가 된 지 십 여년이 지났지만 민족이나 국가가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민족주의가 팽배해지고 있다(최근의 러시아 스킨해드사건, 일본과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민족주의나 국수주의가 오히려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봐야 하겠지만 과연 민족이나 국가가 사라지는 시대가 올까? 나는 그런 시대는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필립 노이스 감독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그건 알 수 없지만 이 영화는 냉전시대에 딱 어울리는 영화이든지 아니면 여전히 이 시대는 냉전과 다름없는 위험한 시대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일 지도 모른다. 미국의 요원인줄 알았다가 러시아 첩자로 나오고, 그 이후 결국 미국을 위해서 일하는(이 대목이 조금 명확히 안 나옴. 단순히 솔트가 여러 이유로 심리적 변화를 일으켜 러시아를 배신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미국의 진정한 요원이었는지 애매하다) 이중스파이 솔트가 펼치는 영웅같은 이야기가 이 영화다. 미국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었느니 미국대통령을 죽이는 러시아 첩자로 졸리를 연기시켰을 리는 없겠지만 이중스파이라는 한물 간 소재는 아무리 시나리오가 좋고 연출력이 뛰어나고 졸리의 액션연기가 훌륭해도 이 영화의 단점으로 작용한다. 즉 시종일관 영화는 긴장감을 부여하지만 이 한물 간 소재는 세계평화를 지키는 것이 결국 미국인이라는 뻔한 미국영웅 영화로 비추는데 한 몫 한다. 솔트가 정말 러시아인인지 미국인인지 애매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런 영화는 삼류 영화가 아니라면 미국의 보완이나 안전 시스템은 정말 형편이 없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한 명의 스파이가 미국대통령이 대피하는 지하벙커로 손쉽게 오는 것이며, 미국대통령을 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최고 요원이 러시아 스파이였다는 것! 이 말 안 되는 것을 감독은 어떻게 설명할까? 다만 냉전시대 종식 후 세계 유일 강대국인 미국의 패권 정치는 정말 종말을 맞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관객이 알아서 구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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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만 잊는다면 그럭저럭 | 기본 카테고리 2010-09-21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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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무적자

송해성
한국 | 201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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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학창시절 &lsquo;영웅본색&rsquo;이라는 영화는 대한민국을 완전 뒤집어 놓았다. 지금 20대는 잘 알지도 못하는 주윤발, 장국영 등의 홍콩 대스타들이 이 영화를 시작으로 스타반열에 올랐다. 오래 전이라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내용이나 영화 스타일이 완전 영웅심에 휩쓸릴 어린 학생들에게 먹혔기 때문에 &lsquo;영웅본색&rsquo;은 정말 그 인기가 대단했다. 긴 바바리 코트에 쌍건총을 자유자재로 쏘는 주윤발은 영웅 중에 영웅이었다. 자기가 아무데나 쏘는 총알은 희한하게 적들을 관통하고 적들은 아무리 쏴아도 적의 총알은 주윤발을 비켜갔다. 여자보다 예쁜 장국영은 향수나 모성애를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로 인기를 몰았던 것 같다. 그런데 난 반골기질이 있어서 그런지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무슨 영웅타령인지...말도 안 되는 총질에다가 무엇보다 영웅을 부르짖는 스타일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기는 당시 홍콩은 중국반환을 앞두고 세기말적인 분위기가 있었고 한국에서는 오랜 독재 끝에 민주주의가 도래하였다. 이른바 3김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서로가 민주주의의 영웅이라며 영웅을 자처했다. 이 시기에 맞춰 한국사회에서도 영웅타령이 봇물을 이뤘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보면 우스꽝스러울 내용의 영화를 그 당시는 이 영화에 엄청나게 열광했다. 그런데 왜 2010년에 &lsquo;영웅본색&rsquo;을 리메이크하는가? 이 물음에 감독은 정확하고 확실하게 대답해야 한다. 영화는 시대를 반영한다. 때론 시대를 앞서가기도 하지만 문화로서 영화는 그 시대를 읽어내야 한다. 아무리 오락영화라도 말이다. 지금 이 시대 &lsquo;영구와 맹구&rsquo;같은, &lsquo;엄마따라 삼천리&rsquo; 같은 영화가 나온다면 얼마나 우스울까. 세기말도 아니고 무슨 이유로 영웅본색을 리메이크했는지 알 수가 없다. 단지 존경의 의미로 &lsquo;오마주&rsquo;란 말인가? 그렇다 해도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을 텐데... 골목 액션과 그들의 의리와 배신, 음모... 이런 상투적인 장면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영화는 북한이라는 소재로 현실감을 찾으려 했으나 결국 그 어떤 영화적 논리성도 리얼리티도 확보하지 못한 채 &lsquo;그래도 그때가 참 좋았지...&rsquo; 푸념하게 만드는 영화로 전락하고 말았다. 영웅본색을 흉내 내면서도 송해성 감독 특유의 밑바닥 인간의 삶을 다루는 솜씨는 잃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차라리 &lsquo;파아란&rsquo; 같은 작품을 한 번 더 내놓지..하는 아쉬움이 너무 큰 작품이다. 특히 부대에서의 마지막 총격전은 이 영화가 얼마나 흉내내기에만 몰두했는지, 그래서 얼마나 허무한 난장판으로 끝을 맺고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한 마디로 어떤 리얼리티도 밀도감도 흥미도 메시지도 확보하지 못한 채 형제애와 싸나이 의리가 그저 우스꽝스럽게 보일 뿐인 영화이다. 폼 잡고 나오면 멋있어 보이는 소영웅주의가 판치는 시대가 아님을 감독은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돈이 몇 백 드는 것도 아니고 그저 좋아서 흉내내기엔 영화 제작비가 너무 비싸지 않은가! &lsquo;역도산&rsquo;, &lsquo;우리들의 행복한 시간&rsquo;부터 실망했지만 나는 송해성 감독을 한 번 더 믿고 싶다. &lsquo;파아란&rsquo;을 만들 때의 소심으로 돌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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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약한 프레데터 그리고 좌절스런 이야기 | 기본 카테고리 2010-09-1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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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프레데터스

님로드 앤탈
미국 | 201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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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시대 왜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는지 모르겠다. 80년대 에이리언류 영화를 보는 듯하다. 공포나 약탈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 영화는 엄청난 의식의 전환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 의미와 영화 내용을 다루는 방식도 바뀌었다. 90년대 초까지 공포를 인식하는 방식은 바깥이었다. 즉 인간의 공포는 항상 바깥에서 시작되었다. 외부에서 인간의 공포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서로 도우고 뭉쳐야 했다. 외계인과 싸워 이겨야 하기 때문에. 가정의 밖에서, 지구의 밖에서 인간의 공포가 시작된 것이다. 인간에게 밖은 항상 공포와 불안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90년 중반부터 그 공포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공포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내부에 있다는 것이다. 얼토당토않은 외계인을 내세워 그 외계인과 싸우는 방식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지나치게 발전한 근대 자본주의의 모습에서 인간 자체가 이제 공포가 된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하였기 때문이다. 지구 밖에서 외계인이 지구를 쳐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지구 내부에 인간의, 지구의 적이 있는 것이고, 심지어 가장 보호막이 되어야 할 가정마저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사랑하는 내 가족이, 내가 공포가 된 것이다. 학교 괴담을 소재로 하는 영화라든지 이웃집 사람(&lsquo;고사&rsquo; 등), 같은 마을 사람이 살인마라고 하는 영화(&lsquo;추격자&rsquo;같은 영화), 또는 &lsquo;불신지옥&rsquo;같은 가정 내에서의 공포를 다루는 영화가 그것이다. 이제 공포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 &lsquo;프레데터스&rsquo;는 영화역사의 시계바늘을 뒤로 돌려놓았다. 80년대식 공포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전형적인 에이리언류 영화처럼 외계인이 인간의 공포가 되고 우리 인간은 서로 힘을 뭉치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끝까지 처절히 싸우는 것밖에 없다. 피터지게 싸워 이기는 방법외엔 없는 것이다. 이것이 이 영화의 전부다. 굳이 의미를 찾자면 갑자기 이상한 행성에 들어오게 된 것이 인간인 인간을 죽이고 서로 싸우는 사람들이 이 행성에 모였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서로 죽이고 죽이는 인간에 대한 경고라고 할까... 이런 메시지를 억지로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것 역시 중세적이다. 한 마디로 이런 영화는 만들어지지 말아야 한다. 하기는 &lsquo;익스펜더블&rsquo;같은 시대 덜떨어진 영화도 있으니 &lsquo;프레데터스&rsquo;는 &lsquo;익스펜더블&rsquo;보다는 낫다. 둘다 별주기가 힘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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