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달밤텔러님의 블로그
http://blog.yes24.com/soogi1224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달밤텔러
40대 육아맘. 하지만 책을 사랑하는 20대 감성녀. 삶의 지침에서 벗어나는 힐링 도서 이야기.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12월 스타지수 : 별4,072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독서습관(2020년)
서평단 선정(2020년)
서평단 모집(2020년)
book 구매
일상 리뷰
나의 독서습관(2021년)
서평단 모집(2021년)
서평단 선정(2021년)
월별 독서통계
북클러버 후기
서평단책도착
우수 리뷰
나의 리뷰
마이 리뷰(2020년)
서평단 책리뷰(2020년)
한줄평 리뷰(2020년)
마이 북리뷰(2021년)
서평단 책리뷰(2021년)
한줄평 리뷰(2021년)
나의 메모
기본 카테고리
태그
#작은책방모임#피터캣북카페#작은책방모임후기#피터캣북카페모임후기 #서평단책도착#이문수신부#유퀴즈온더블럭#웨일북#누구도벼랑에서지않도록 #월별통계#11월독서통계 #책나눔이벤트#달빛망아지님책나눔이벤트#달빛망아지님책나눔이벤트책도착 #김영하북클럽#11월김영하북클럽#김영하북클럽라방#11월김영하북클럽라방#11월김영하북클럽라방후기 #일상#나혼자책방투어#속초#문우당서림 #서평단책도착#현대지성#잭하트#퓰리처글쓰기수업 #작은책방모임#당인리책발전소#작은책방모임후기#당인리책발전소모임후기 #선물#남편선물#빈센트반고흐달력#2022년계획#스타벅스다이어리 #서평단책도착#에쿠니가오리책#소담출판사미션책도착#언젠가기억에서사라진다해도
2021 / 0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월별보기
나의 친구
나의 친구들
최근 댓글
바쁘신 가운데 모임 계속 참석해주시고.. 
달밤텔러님~ 당첨 축하드립니다.^_^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가수 중 한 명이.. 
달밤텔러님~ 꾸준한 독서로 타의 모범.. 
저희 둘째 딸이 좋아하는 영화 '각설.. 
새로운 글
오늘 81 | 전체 50743
2007-01-19 개설

2021-04 의 전체보기
[모비딕, 삶과 운명을 탐사하는 두 개의 항해로] 철학적 시각으로 [모비딕]을 바라보다! | 마이 북리뷰(2021년) 2021-04-30 23:56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4288823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금.토.일 리뷰 이벤트 참여

[도서]모비딕, 삶과 운명을 탐사하는 두 개의 항해로

오찬영 저
북드라망 | 2020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삶과 운명이라는 철학적 시선으로 소설 [모비딕]을 새롭게 바라본다.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모비딕, 삶과 운명을 탐사하는 두 개의 항해로

 오찬영 지음 | [북드라망]

2020년 8월 23일

 



"삶과 운명이라는 철학적 시선으로 소설 [모비딕]을 새롭게 바라본다."

 


 


 

1. 들어가며

 

흰고래인 '모비딕'을 쫓아 고독한 항해를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 기필코 그 고래를 정복하겠다는 한 선장과 조용히 관망하는 자세로 모든 것을 관찰하고 사색하는 한 명의 선원이 있었다. 이들은 우리가 『모비딕』에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주요 등장인물인 선장 '에이해브'와 선원 '이슈메일'이다. 우리가 이제까지 알고 있던  『모비딕』은  고래와 포경업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시선을 달리하면 이 『모비딕』은 고래잡이에 나선 사람들의 꿈과 희망, 그들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 선장과 선원인 두 항해사의 삶과 운명에 대해 주목하고 그들의 항해를 통해 우주와 인간에 대한 철학적 사고를 시도한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오찬영 작가가 쓴  모비딕, 삶과 운명을 탐사하는 두 개의 항해로는 미국의 고전 소설인  『모비딕』을 통해 삶과 운명에 대한 두 항해사의 철학적 태도를 비교하여 소설 『모비딕』을 다른 시선으로 살펴보며 다시 읽기를 시도하였다. 절대자, 신을 상징하는 흰고래 '모비딕'에게 도전하는 타나토스적 광기와 복수의 화신 에이해브 선장과 포경선 위의 아웃사이더이자 방랑하는 철학자이자 [모비딕]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인 일개 선원 이슈메일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비교하였다.이 책  모비딕, 삶과 운명을 탐사하는 두 개의 항해로를 통해  그들의 삶과 운명에 대한 다른 항해로를 살펴보고, 일상생활 속에서 '철학' 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또한 『모비딕』을 철학적으로 새롭게 조명하고 해석하는 기회를 가지고자 한다

 


 

2. 책 속으로

미국의 고전 소설인 『모비딕』은 '피쿼드 호'라는 포경선이 흰고래를 쫓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인 모비딕, 삶과 운명을 탐사하는 두 개의 항해로는 무슨 의미일까 궁금증이 일었다. '흰 고래를 찾으러 가는 항해로가 두 개였던가? 이에 대해 저자 오찬영은 그가 생각하는 항해로에 대한 해석을 제시해준다

'항해로란 단순히 바다 위에서 목표물을 쫓는 길 그 이상의 어떤 철학적 선분이라고 생각했어요. 흰고래는 진리와 삶에 대한 거대한 질문을 품고 있는 하나의 기호로 볼 수 있거든요. 그리고 그 속에서 두 캐릭터가 고래를 대하는 각기 다른 방식의 태도를 비춰 봤을 때, ‘두 개의 항해로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모비딕』 속의 두 캐릭터는 유명한 에이해브 선장과 유일한 생존자이면서 이 모든 이야기를 관조적이고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서술하고 있는  이슈메일 선원이다.

 

 타나토스적 광기의 화신 에이해브 선장

VS

방랑적 철학자이자 아웃사이더 이슈메일 선원

 

에이해브 선장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사에 족적을 남길 만큼 강렬한 인상을 가졌고, 집념과 열정으로 가득차 있는 인물이다. 또한 타나토스적 광기와 신념을 품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극단적이면서 타협할 줄 모르며 그런 광기와 극단적 성격으로 인해 결국은 『모비딕』의 결말을 파멸로 이끌어 가는 인물이기도 하다

"에이해브 선장은 위엄 있고, 신앙심은 없지만 신 같은 사람이야. 파도보다 더 깊은 경이에도 익숙해져 있지.                                                                                         <모비딕>p. 122

 

그는 신을 믿지 않지만 신과 같은 절대자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를 두고 '신과 같은 인간' '신을 닯고자 하는 인간' 이라고 부르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신과 같은 조존재가 되고자 거대하고 미지의 절대적인 존재로 표상되는 흰고래 '모비딕'을 잡아서 정복하고 결국은 그 존재를 파괴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 파괴를 통해 에이해브 선장은 자신이 신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오직 에이해브만이 스스로의 항로를 따라 고래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그 추격 과정 속에서 에이해브의 광기는 순정한 에로스, 삶과 운명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품은 에로스적 광기를 뿜어낸다. 

철학과 진리를 좇아 그 극한까지 파고드는 인간의 위대한 힘, 그저 인간에 머물려고 하지 않는 에이해브의 시도가 장엄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p.51)

 

또한 에이해브의 마초기질을 중시하여 『모비딕』을 완전히 마초이즘의 관점에서 쓰인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에이해브는 남성적인 특징이 두드러지며 그는 마초이즘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장면은 채리티 아줌마가 선원들에게 출항 전 배에 필요한 물건을 챙겨 주는 장면이다. 

이처럼 『모비딕』은 마초의 살아있는 존재인 '에이해브 선장'을 통해 특히 아주 에로틱하게 흥분한 남근적 관점의 서술을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이슈메일이라는 캐릭터가 있다. 사실 『모비딕』에서 이슈메일의 비중은 크지 않다. 선장인 에이해브와 비교하여 비중이 컸던 인물을 꼽으라면 피쿼드 호의 일등 항해사이자, 그 유명한 커피 브랜드 이름의 원조인 스타벅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왜 저자는 이슈메일을 에이해브와 대조되는 캐릭터이자, 중심 인물로 설정한 것일까? 저자에 의해 이슈메일은 『모비딕』에서 새롭게 조명을 받고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는 바다의 방랑자이며, 포경선 피커드 호에 승선하여 모든 상황과 현실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조용히 관망하고 사색하는 아웃사이더이다어쩌면 작가가 설정한 '삶과 운명을 탐사하는 그 과정을 충실히 잘 수행할 수 있는 캐릭터일지도 모른다. 이슈메일은 고래뿐만 아니라 세상을 탐구하는 자이다.

"내가 아무리 고래를 해부해 보아도 피상적인 것밖에는 알 수 없다는 나는 고래를 모른다. 앞으로도 영원히 모를 것이다. 고래의 꼬리초자 모르는데 어떻게 머리를 알 수 있겠는가. 

[모비딕] 460쪽(p.578)

 

 이슈메일은 고래를 잡겠다는 의지로 고래를 바라보지 않고 세상에 대해 탐구하는 시선으로 자신의 손을 벗어나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는 놓친 고래를 바라본다. 고래를 잡고, 정복하고, 파괴하겠다는 이슈메일의 생각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슈메일의 눈에 비친 고래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 사물은 우주로 통하는 하나의 접속체이다. 이런 연결성을 통해 우리는 세상과 연결되고 더 나아가 우주에 접속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래라는 거대하고 신비로운 동물을 통해 광활하고 끝없는 우주와 계속해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그는 고래를 해부해보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본연의 운동성을 잃지 않은 바다의 고래처럼 로고스적 탈주선을 끊임없이 그려 나가는 것, 이것이 우주적 접속의 방법이다. 이슈메일의 눈에는 온 사방천지가 우주로 통하는 로그인 창으로 느껴졌던 것이 분명하다. 그 연결성을 찬찬히 관찰하고 삶과 인간에 대한 여러 잡다한 썰을 풀어놓는 그의 언변은 참으로 기가 막힌다. (p.113)

 

이슈메일은 에이해브 선장처럼 완벽함을 꿈꾸지 않는다. 에이해브 선장은 자신이 흰고래 모비딕을 잡으면 자기의 미션이 완료되고 곧 자신은 신과 같이 절대적이고 완벽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에게 세상은 싸워서 정복해야 하는 대상이다. 그에 반해 이슈메일은 미완의 고래, 미완의 지식, 미완의 진리탐구를 위한 완전함에 대한 갈망이 없다. 그는 그저 포경선 위의 모든 인연, 사물, 사건들에 대해 눈과 귀를 열어두기만 한다. 마치 이 모든 것이 우주와 연속되는 접속창인 것처럼 말이다. 이슈메일이 놓친 고래는 팔딱팔딱 쏘다니며 저 넓은 바다를 유유히 유명하면서 포경선 위의 모든 인연, 사물, 사건들과 자유롭게 연결되고 있다. 이슈메일에게는 흰고래 모비딕은 정복해야 할 대상, 파괴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야 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미완의 선분은 그래서 이슈메일에게는 계속적인 운동성으로 꿈틀거리며 결코 특정한 검은 점에 멈추지 않는다. (p. 114)

이슈메일의 의심은 이렇게 신의 공백을 생각하게 하고, 그의 직관력은 모든 인류가 예외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거대한 인연장을 볼 수 있게 한다. (p.119)

 

 

 [모비딕]을 이해하기 위한 두 가지 키워드: 기독교 and 민주주의

저자는 『모비딕』을 이해하기 위해 두 가지 키워드를 제시한다. 하나는 기독교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다. 이 두 개의 키워드는 허먼 멜빌의 미국 사회를 비롯하여 오늘날의 미국을 읽어낼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

저자는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모비딕』속에 담긴 내용을 통해 성경이 부여한 정복의 자연관을 미국의 가치관을 알 수 있다

성경 속의 인물을 모티브로 하여 등장인물을 구성한 점, 『모비딕』의 제 1장부터 끝장까지 성경적 함의를 담고 있는 점, 성경의 종말론에 대한 시각 등 어쩌면 모비딕은 성서의 내용을 가장 충실히 반영하고 그것을 19세기 미국의 시대상황과 잘 접목하여 구성한 는 ‘성서 브리콜라주’를 보는 듯한 느낌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성경을 계속 읽어온 모태 신자이다. 구약과 신약 경전 순서를 나열하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성경을 애독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모비딕』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허먼 멜빌도 분명 성경을 엄청나게 애독한 사람이었을 거예요. ‘다독’이 아니라 ‘애독’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렇게 성경이라는 텍스트에 흠뻑 젖지 않았다면 할 수 없었을 캐릭터의 교차, 기독교적 상징의 융합 등 상상할 수 없는 만남들을 전부 해내고 있거든요. 거기에 감초처럼 더해지는 성경 말씀들도 굉장합니다. 『모비딕』을 읽으며 성경을 비종교적인 텍스트로 읽는 시선을 하나 확보한 것 같아요. 교회에 다녔을 때는 상상할 수도, 시도할 수도 없는 관점이었거든요."                                                                             -작가 인터뷰 내용 중에서-

 

한편 민주주의라는 키워드는 멜빌의 시대에 끓어 넘치기 직전의 인종차별, 노예 문제와 연결 지을 수 있다. 170여 년 전의 미국 사회에서 이 소설이 미국인들에게 얼마나 껄끄럽게 다가왔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허먼 멜빌은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19세기 미국은 민주주의라는 기치가 본격적으로 들어올리기 시작한 시대이다. 이를 시작으로 민주주의 전도사로서의 미국의 역할은 20세기 제 1차 세계대전 참전의 강력한 명분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니체가 '인간은 동일하지 않다'라고 말하며 민주주의를 비판한 것처럼, 민주주의 속에서도 소수 엘리트들이 기득권을 차지하고 군림하기 시작했다. 허먼 멜빌은 이러한 민주주의의 부드러운 독재를 비판하여  『모비딕』을 통해  잔혹한 민주주의의 현실에 대해 말하였다. 독재 정치나 봉건제 하에서처럼 고문이나 개죽음을 당하는 가시적인 고통은 당하지 않지만 존재로서, 인간으로서 품격을 자신도 모르게 잃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가 가진 모순인 것이다. 이런 모순에 에이해브 선장이 고래를 광기에 가득 차서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비판하고 대항하고 있는 것이다. 

 

강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때면 인간은 모든 천박한 생각을 경멸하지만, 그런 순간은 금세 덧없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신이 만든 제품인 인간의 본질적 상태는 바로 천박함이고, 그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고 에이해브는 생각했다. 

-  『모비딕』274쪽(p.331)-

 


 

3. 나가며

 

에이해브의 “No!”의 경직성을 넘기 위해서는 그 반대편의 “Yes!”가 아니라, “그리고”(and)로 나아가는 이슈메일의 새로운 길이 필요하다

 

저자는 모비딕다시쓰기를 통해 이슈메일의 철학적 가능성에 주목한다. 그런 통찰을 가진 사람은 망망대해의 포경 보트 위에 있다 해도 안락한 자기 집의 난롯가에 있는 것보다 더한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고 말이다.

여러분이 철학자라면, 포경 보트에 앉아 있어도(....)난롯가에 (편안하게)앉아 있을 때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공포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모비딕] 292(p.352)

그러니 우리는 이제부턴 우리의 앎과 인생의 항해로를 설정해서 나아가야 할 때이다.

나를 뛰어넘는 한 번의 도약으로 비상할 것인가? 혹은 끝없는 허무 속으로 침잠할 것인가? 이 두 갈림길 사이에 서 당신을 도와줄 것은 철학이다.(23-24쪽)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6)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6        
[오늘 읽은 책] 의미있는 삶을 위하여 | 나의 독서습관(2021년) 2021-04-29 23:53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4282417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독서 습관 캠페인 : 오늘 읽은 책 참여

1. 읽은 책: 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

 

2. 읽은 내용: 원칙 5. (피해의식보다) 주인의식

 

"모든 사람이 자기가 결정하지 않은 그런 일을 겪게 된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어떻게 행동할지 결정하는 것뿐이지." 

 

"세상의 짐을 올바른 곳에 실어봐야 한다. 당신의 어깨 말이다."
-조던 피터슨-

 

책임이란 나 자신을 내 삶의 시작점. 근원, 원천, 근본이 되는 지점에 가져다놓는 것을 말한다. 근본이 되는 '의식적인 내 선택' 없이는 아무 창조물도 아무 결과도 생기지 않는다.

내 삶이므로 내 모든 행동, 의도, 변화, 그리고 일어나는 모든 감정돠 생각의 책임은 온전히 내게 있다. 의미 있고 진정한 삶을 직접 펼치고 싶으면 우선 내가 그 시작점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절대 의무가 아니라 자유로운 선택이다. 

 

책임은 자기 자신을 충분히 존중하고 내가 진정 원하는 외적, 내적 결과물을 직접 만들어내는 것을 허용하는 의식이다. 

삶을 다르게 살고 싶다면, 더 충만하고 행복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더 진심어린 삶을 살고 싶다면 그것이 내게만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내가 내게 그런 삶을 살게끔 허락해준다면 책임을 진 것이다.  책임을 다른 말로 주인의식, 주체성, 주도성이라는 바꾸어 쓸 수 있다. 

 

3. 읽은 후 생각:

결국 자신의 삶은 자신이 만들고, 그 삶에 대한 책임도 자기 자신이 져야 한다는 말이다.

인생의 모든 것이 자기가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지고, 그에 따라 의미 있는 삶도 결정이 된다.  자신의 삶을 주체성 있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주체성을 가지고 이끌어 나간다면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에 한층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

알렉스 룽구 저
수오서재 | 2021년 04월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2)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5        
[벚꽃나무 아래] 병약한 천재 작가의 기이한 상상력이 민들어 낸 이야기들 | 서평단 책리뷰(2021년) 2021-04-29 19:09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4280717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벚꽃나무 아래

가지이 모토지로 저/이현욱,하진수,한진아 공역
위북(webook) | 2021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병약한 천재 작가의 기이하고 상상력이 만들어 낸 독특한 정신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벚꽃나무 아래>

가지이 모토지로 저/ 이현욱, 하진수, 한진아 공역

위북(webook)/ 2021년 4월 16일

 

"병약한 천재 작가의 기이하고 상상력이 만들어 낸  독특한 정신세계를 들여다보자."


 


1. 들어가며

 

우리가 사는 인생은 변덕스런 날씨와 같을 지도 모른다. 어느 날은 햇빛 쨍쨍하고 화창한 맑은 날이지만, 또 어떤 날은 구름이 잔뜩 끼고 온통 회색빛의 흐린 날이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날은  하늘이 온통 까매서 아무 것도 안 보이고 비가 억수같이 오는 비가 오는 날이기도 하다. 이렇게 인생은 맑은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있고 하루종일 비가 오는 우울한 날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만약 인생이 맑은 날은 하루도 없고 온통 흐리고 비가 오는 날만 있다면 어떨까? 온통 절망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어떨까? 핑크색 꽃망울을 터트리며 흐드러지게 핀 벚꽃나무를 보며 따뜻한 봄이 왔음을 마냥 기뻐할 수만 있을까.

 

여기 그렇게 인생을 고통과 절망 속에 살다 간 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평생을 병마에 시달리며 죽음의 순간까지도 병상에서 글을 쓰다가 삶을 마감한 한 남자가 있다. 그렇게 힘겹게 병마와 싸웠지만 끝내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작가의 불운했던 삶과 핑크색 표지의 벚꽃이 흩날리는 이쁜 표지의 책은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그 책 속에 담긴 이야기들과 이 핑크빛의 화사함은 너무나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일부러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일까? 정말 벚꽃나무 아래에는 시체가 있을까? 이런 궁금증을 자아내는 책이었다. 평생을 병마와 싸우다 간 작가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떨지, 그 세상 속에서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행동했는지도 궁금했다. 간접적으로나마 이 책 속에 담긴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저자의 마음을 느끼고도 싶어 이 책의 책장을 펼쳐본다. 

 


 

2. 책 속으로

 

"벚꽃나무 아래는 시체가 묻혀 있어!"

-[벚꽃나무 아래] 중에서-

 

3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일본의 천재 작가 가지이 모토지로의 단편선 '벚꽃나무 아래'에 나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문장이 내 머릿 속에서 계속 맴돌면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너무나 강렬하고 인상적인 문장이기도 했지만, 이 문장이 품고 있는 의미를 생각하자, 섬뜩하기도 했다. 왜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 왜 아름다운 벚꽃나무 아래에  시체가 묻혀있다고 말하면서 그 아름다움조차 공포로 만들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의 작가인 가지이 모토지로는 오랜 시간동안 병마와 싸우며 시달려 왔다. 20살에 폐결핵을 진단받고 7년 간의 투병생활 중에서도 그는 창작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작품은 그래서 주로 병상에서 구상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은 불안하고 우울하고 피곤하다. 그렇다고 우울함에 젖어, 절망에 빠져서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회복될거라는 막연한 희망에 젖어 꿈과 미래를 얘기하지도 않는다. 그는 자신의 병든 삶을 조용히 견디고 그 안에서 깨달음을 얻고 위안을  찾는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은 병든 삶의 모습이지만, 어둡고 절망적이지 않고 맑고 깨끗한 숨결이 깃들어 있다.

 

사물을 바라보는 모습도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감각적이고 기이하기도 하다. 이 책 속 [겨울 파리], [애무]에서 그의 기이하고 독특한 상상력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은 그와 마찬가지로 삶이 고단하고 아프고 지친 나약한 사람들이다. 어쩌면 그들이 곧 작가 가지이 모토지로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속에서 고단한 사람, 아픈 사람, 지친 사람들이 작은 행복으로 위안을 얻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불치병에 걸려도, 삶이 따분해도, 사는 게 우울하기 그지 없어도, 하루하루가 절망적이라 해도 그런 삶 속에서도 작은 행복이 존재하고, 그 행복으로 그들은 그 하루하루를 견딜 수 있다. 비록 작품이 주는 전체적인 분위기 자체는 침울하고 어둡긴 하지만, 그런 소소한 행복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다. 작가는 그런 우울하고 절망적인 삶 속에서도 현실의 삶과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 속에는 12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 12편의 단편 속에는 작가 가지이 모코지로의 삶과 그의 생각과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그 12편 중에서 인상깊었고 작가의 마음이 잘 드러난 작품 몇 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태평스러운 환자>

이야기 속 주인공 또한 작가처럼 폐병에 걸린 환자이다. 이야기 속 주인공인 요시다는 폐가 나빠서 날이 조금 추웠다 싶으면 바로 그다음 날부터 열이 오르고 기침이 심하게 난다. 병세는 밤에 심해지는데 고통 때문에 밤에 잠을 잘 잘수가 없을 지경이다. 그는 '잠이라도 기분좋게 잘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바라지만 하루하루 반복되는 낮과 밤 동안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낮을 꼬박 새어야 했다. 그런 요시다의 모습이 꼭 작가가 처한 현실같아서 이 이야기가 작가 본인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 이야기 속에 담긴 병마와 힘겹게 싸우고 있는 작가의 모습과 그 아픔, 고통이 느껴져서 마음이 저려왔다. 

희귀병, 불치병에 걸리더라도, 살릴 수 있는 치료약이 없더라도 우리는 기적을 바라고 특효ㅕ약을 찾고, 민간요법까지도 찾게 되는 법이다. '누가 이걸 먹었는데 다 나았다더라, 그러니 너도 이걸 먹어보렴' 이라고 말하며 약이 아닌 민간요법상의 특효약을 권하기도 한다. 그런 마음이 이 이야기 속에도 잘 나타나 있다.  

 

잡화점 딸이 먹었다던 송사리처럼 누군가가 자신에게 권하는 폐병약이라는 걸 접하면서, 세상이 이 질병과 싸우는 전쟁의 어두면 이면을 알 수 있었다. (p.30)

요시다는 어머니로부터 인간의 뇌수 구이를 먹어보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고서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p.30)

몸이 안 좋아 마을로 돌아오고 얼마 안 되었을 때는 누군가 목매어 죽은 밧줄을 "그냥 속는 셈치고" 먹어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 권유를 한 사람은 야마토에서 칠기 세공을 하는 남자였는데, 어떻게 그 밧줄을 손에 넣었는지를 요시다에게 들려주었다. (p.32)

그렇게 대단한 게 있다는 듯 말한 약은 초벌구이한 질주전자에 생쥐를 넣고 다린 것으로, 그것을 아주 조금씩 나눠 마시다 보면 한 마리를 채 다 먹기도 전에 낫는다는 것이었다. (p.34)

 

이야기 속에서 요시다는 인간이 폐병을 대하는 방식과 절망에 대해 말한다. 몸이 아픈 병자들은 어떻게든 자신이 나아지고 있다는 암시를 원한다고 말이다. 어쩌면 병자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약을 먹어서라도 나아서 계속해서 살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용없는 줄 알면서도 이런 헛된 기대와 희망에라도 기대는 것이 아닐까.

병이 자신의 목숨을 빼앗고 삶의 행군에서 자신을 제외시킬 때까지는 힘들어도 그 병약한 삶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병이란 결코 학교의 행군처럼 견딜 수 없는 약한 사람을 행군에서 제외시켜주지 않는다. 마지막 죽음의 골로 갈 때까지는 어떤 호걸이든 겁쟁이든 모두 같은 줄에 서서 마지못해 질질 끌려가는 것이다. (p.41)

 

<바다>

 

바다는 어떤 공간인가? 나에게 바다는 재충전의 공간이며 지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안식처이다. 바다를 보면 꽉 막힌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다. 모든 근심, 걱정,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버리는 것 같다. 특히 얼마 전에 보았던 일몰의 풍경이 잊혀지지 않는다.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어느 새 바다 속으로 풍덩 빠지는 것 같다.

바다의 고요함은 산에서 온다. 마을 뒷산으로 넘어간 해가 그 그림자를 점점 바다로 넓혀간다. 마을도 해변도 지금은 휴식 중이다. 그 색은 점점 더 멀리 바다를 물들여 간다. 먼바다로 나가는 어선들이 그 그림자 속에서 양지 속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오렌지색이 섞인 약한 햇빛이 배를, 그리고 어부를 잽싸게 물들인다. 보고 있는 나 자신도 호 하고 물든다. (p.75)

 

작가가 생각하고 바라보는 바다는 어떤 바다일까? 이에 대해 작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다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바다는 그런 바다가 아이냐. 이미 결핵에 걸려버린 듯한 풍경도 아니고 잘난 체하는 시인 같은 바다도 아니야. 지금이 아마도 근래에 내가 가장 진지해진 순간이 아닐까? 잘 들어봐. 

그것은 실로 밝고 쾌활하고 생기가 넘치는 바다다. 아직 피로나 근심과 걱정에 더럽혀진 적 없는 순수하게 밝은 바다다. 유람객이나 병자의 눈에 닳고 닳아 너무 달아져 버린 포트와인 같은 바다가 아니다. 시큼하고 떫고 거품이 생긴 와인같이 아주 깊고 야만적인 바다다. (p.77)

 

 

<어느 벼랑 위에서 느낀 감정>

벼랑 위에 서서 벼랑 아래의 창문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그들의 삶과 내 삶이 다른 것에 대해 우울함을 느낄까?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들여다봐서 스릴있고 설레일까? 이 이야기 속에 두 남자가 등장한다. 그들은 커피숍에서 앉아서 벼랑  위에 서서 아래의 창문을 바라보면 어떨지에 대해 서로 이야기한다.

그 벼랑 위에 혼자 서서 열려 있는 창문을 하나하나 보다 보면, 나는 항상 그때 그일이 떠올라요. 나 혼자만 이 세상에 뿌리내릴 곳을 잃어버리고 부초처럼 떠다니는구나. 그리고 언제나 그 벼랑 위에 서서 남의 집 창문만 바라봐야 하는구나. 이것이 바로 내 운명이다. (p.84)

그런 생각이 들어어요. 그런데 그것보다도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창문을 바라보는 행위에 원래 사람들을 그런 생각에 빠지게 하는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닌지. 누구든 문득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건 아닌지, 뭐 이런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 생각, 해본 적 없나요?" (p.85) 

내가 창문을 보는 취미에는 사람들에게는 말하기 힘든 욕망이 있어요. 그건 일반적으로 말하면 다른 사람의 비밀을 몰래 엿본다는 건데, 그게 굉장히 매력적이잖아요,

그런데 나에게는 한 발 더 나가서 사람들의 베드신의 보고 싶다는, 결국은 그런 걸로 귀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특이한 집착이 있어요. (p.88)

 

벼랑 위에 서서 아래 창문을 바라보면 난 이렇게 남의 집 창문이나 보며 그들의 삶을 부러워하는구나.이게 나의 비참한 운명인가 보다 생각되기도 할 것이다. 또는 창문을 통해 본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비밀을 엿보는 것이고 그것은 상당히 은밀하고 사적인 비밀이 될 수도 있다. 만약 그 창문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베드신을 목격한다면, 관음증 환자처럼 그런 성적인 쾌락을 느끼면서 특이한 집착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병약한 작가는 그렇게 벼랑 위의 집에서 아래 창문을 통해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삶을 엿보았으리라. 그 창문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그는 무엇을 느꼈을까. 그들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부러워한 나머지, 자신의 병약하고 비참한 삶에 대해 절망감을 느꼈을까. 아니면 베드신과 같은 타인의 은밀한 비밀을 알게 되어서 창문을 바라보는 행동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그들은 알까. 이렇게 벼랑 위에서 아래 창문을 통해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감정을 말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아마도 그들은 모를 것이라 말한다.

'그들은 모른다. 병원 창문 안 사람들은 벼랑 아래 창문을. 벼랑 아래 창문 안 사람들은 병원 창문을. 그리고 벼랑 위에 이런 감정이 있다는 것도...' (p.110)

 

 

<겨울 파리>

겨울 파리를 본 적이 있는가? 겨울 파리는 비실비실 걷는 파리. 손가락을 가까이 가져가도 도망가지 않는 파리. 날지 못하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으면 역시 날아가는 파리이다. 마치 똥파리를  연상하게 할만큼 색은 선명하지 않은 검푸른 빛을 띠고 몸통과 팔다리는 위축되어 있다.  이런 파리의 비실비실한 모습이 작가의 병든 모습을 닮아서일까. 작가는 그 겨울 파리를 내치지 못하고 겨울 파리와의 동거를 시작한다. 

방 한쪽 구석에는 엷게 먼지가 쌓인 빈 약병이 몇 개 놓여 있었다. 이 얼마나 권태로운 일인가. 이 얼마나 구태의연한 일인가. 나의 병적인 우울함이 아마도 다른 방에는 살지 않을 겨울 파리조차 살게 하는 게 아닐까? 도대체 언제가 되면 이런 일이 끝나는 걸까? (p. 124~125)

 

작가는 휑한 골짜기 근처 여관방에 누워 있다. 천장의 파리들도 죽은 듯이 가만히 붙어 있다. 움직이지 못하고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작가의 모습이 천장의 파리와 닯아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죽은 듯이 누워 있는 겨울 파리들도 햇빛 속에서는 다시금 활기를 되찾고 부지런히 교미하기 위해 날아다닌다. 그런 파리의 모습에서 작가는 삶에 대한 희망과 작은 행복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지만 여전히 그의 삶은 괴롭고 절망적이긴 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삶을 저주하면서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바깥 공기 속으로는 절대 나가려고 하지 않고 왜인지 병자인 내 흉내를 내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무슨 ‘살고자 하는 의지’란 말인가! 그들은 햇빛 속에서 교미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아마도 말라서 죽기 직전인 그들이! (p.116)

 

이 얼마나 괴롭고도 절망적인 풍경인가. 나는 나의 운명 그대로인 길 안을 걷고 있다. 이것은 내 마음 그래도의 모습이고,. 여기서 나는 햇빛 속에서 느끼는 어떤 기만도 느끼지 않는다.(p.132)

 

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형벌 같은 어둠, 살을 에는 듯항 혹한, 그 속에서 내 피로는 즐거운 긴장감과 새로운 전율을 느낄 수 있다. 

걸어라, 걸어라. 지쳐 쓰러질 때까지 걸어라."

걷다가 죽어버려라. (p.132)

 

그래서 그는 마을을 벗어나 이웃마을에 우연히 머무르게 된다. 사흘 후에 돌아와보니 겨울 파리가 모두 죽어 있었다. 죽은 파리를 보며 그는 다시금 우울함과 울적함을 느낀다. 마치 그 파리의 죽음이 자신의 삶에서 희망이 사라져 버린 것처럼... 자신의 삶이 이제 절망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죽음이 슬퍼서가 아니라 나에게도 뭔가 나를 살리기도 하고 언젠가 나를 죽이기도 할 변덕스러운 조건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녀석의 넓은 등을 본 것 같았다. 그것은 새롭고 나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공상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공상으로 점점 더 울적함을 더해가는 나의 생활을 느꼈다. (138)

 

<레몬>

이 작품에서 작가의 기이하고 독특한 상상력이 빛을 발하게 된다. 마치 수류탄 모양처럼 생긴 레몬의 모습에서 폭탄을 연상하게 된다.

또한 레몬을 손에 쥔 순간부터 자신의 마음을 짖누르던 불길한 덩어리가 누그러 진 것 같다. 그런 집요한 우울함이 과일 하나로 풀린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지만 그 사실에 기분이 좋다. 

나는 마루젠의 책장에 황금색으로 빛나는 무시무시한 폭탄을 설치하고 나온 괴기한 악당이고, 이제 10분 뒤에 저 마루젠에서 미술 코너를 중심으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p. 151)

급기야는 래몬이라는 폭탄을 자신이 좋아하는 마루젠의 미술 코너에 설치해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사악하지만 재미있고 섬뜩한 상상도 하게 된다. 

 

이런 기이하고 섬뜩한 상상은 [벚꽃나무 아래]에서 더욱더 빛을 발한다. 벚꽃나무 아래에 시체가 묻혀 있다는 엉뚱하고 말도 안되고 공포심을 자극하는 상상으로 말이다.

 

 

<벚꽃 나무 아래>

"벚꽃나무 아래는 시체가 묻혀 있어!"

이건 믿어도 돼. 왜냐하면 벚꽃이 저렇게 멋들어지게 핀다는 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잖아. 나는 저 아름다움을 믿을 수가 없어서 요 이삼 일 불안했어. 그런데 지금 겨우 그 이유를 알았어. 벚꽃나무 아래는 시체가 묻혀 있어. 이건 믿어도 돼. (p.197)

 

원래 어떤 나무의 꽃이든 한창때엔 주위에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흩뿌리기 마련이야. 마치 팽팽 돌던 팽이가 완전히 정지해서 고요해지듯이, 아름다운 음악 연주가 으레 어떤 환각을 동반하듯이 작열하는 생식이 불러일으키는 환각의 후광 같은 거야.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지 않고는 못 배기는 신비하고 생생한 아름다움이지. (p.198)

 

저 흐드러지게 핀 아름다운 벚꽃을 보고 작가는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그냥 아름다운 꽃들을 보며 봄이 왔음을 느끼고 즐기면 될텐데 자신의 침울한 삶 속에 이런 소소한재미와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도 아름다운 것이라 인식하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는 것이다. 

 

저 흐드러지게 만발한 벚꽃나무 아래 한두 구의 시체가 묻혀 있다고 너도 한번 상상해봐. 그러면 무엇이 그렇게 나를 불안하게 했는지 수긍할 테니까. (p.198)

 

마치 벚꽃나무의 뿌리는 탐스러운 낙지처럼 뿌리를 휘감아, 말미잘의 촉수가 다른 동물의 수액을 빨아먹듯이 그렇게 쪽쪽 인간의 시체를 빨아들인다. 무엇이 저렇게 아름다운 꽃잎을 만드는 것일까? 털뿌리가 빨아올리는 수정 같은 액은 조용히 줄지어 관다발 속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나는 이제야 겨우 벚꽃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게 되었어. 어제, 그제 나를 불안하게 했던 신비에서 자유롭게 된 거야.

나는 그 광경을 봤을 때 무언가에 가슴이 찔리는 듯햇어. 묘지를 파내고 시체를 즐기는 미치광이처럼 잔인한 기쁨을 맛보았지. (p.200)

 

이 골짜기에서 나를 즐겁게 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희파람새와 박새로 하얀 햇빛을 새파랗게 물들이는 나무의 새싹도 단지 그것만으로는 몽롱한 이미지에 불과하지. 나에게는 슬프고도 잔인한 사건이 필요해. 그런 균형이 있어야 비로소 내 이미지가 명확해지거든. 내 마음은 악귀처럼 우울하게 메말라 있어. 내 마음속 우울함이 완성될 때만 내 마음은 온화해지지. (p.200)

 

너무나 괴롭고 우울한 삶이기에 뭔가 슬프고도 잔인한 사건이 필요하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 가슴이 먹먹해온다. 그래서 작가는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아아, 벚꽃나무 아래는 시체가 묻혀 있어!

도대체 어디서 떠오른 공상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시체가, 지금은 마치 벚꽃나무와 하나가 되어 아무리 머리를 흔들어도 떨어져 나가질 않아. 

이제야 나는 벚꽃나무 아래서 술잔치를 벌이는 마을 사람들과 같은 권리로 꽃구경을 하면서 술을 마실 수 있을 것 같아. (p. 201)

 


 

3. 나오며

 

7년 간의 창작 기간 동안 작가 가지이 모토지로는 어떠한 마음으로 글을 썼을까? 내가 읽은 책들 중에 이렇게 죽음의 순간에서도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멈추지 않고 죽는 그 순간까지 글을 쓴 작가들이 있다, 그들은 왜 그렇게 죽음의 순간까지 고통을 감내해가면서 글을 써야만 했을까? 그들에게 글쓰기는 어떠한 의미일까?

 

작가 가지이 모토지로에게 글쓰기는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소통의 창구, 휴식을 위한 공간, 안식처였을 지 모른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절망을 노래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음의 순간을 앞두고 삶에 대한 통찰력이 깊어졋고, 주변 사물에 대한 관찰력이 높아졌다. 어떻게 보면 그렇기 때문에 도저히 정상적인 생각과 사고방식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기이하지만 기발한 상상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끝으로 글쓰기를 통해서라도 작가 가지이 모토지로의 삶이 조금은 즐겁고 의미있었기를 바래본다. 

 


가지이 모토지로 (Motojiro Kajii,かじい もとじろう,梶井 基次郞)

1901년 2월 17일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났다. 기타노(北野)중학교를 거쳐 1919년에 제3고등학교(第三高等?校) 이과에 진학하지만 점차 문학과 음악에 흥미가 있었다. 1920년 9월에는 폐첨카타르(폐결핵) 진단을 받고 잠시 학교를 휴학했다가 11월에 다시 복학하였다. 문학에 대한 관심은 날로 깊어져 1922년부터 습작을 시작하는 한편, 방탕한 생활로 5년 만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24년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하고, 나카타니 다카오(仲谷孝雄) 등과 동인지 [아오조라(靑空)]를 창간했다. 같은 해에 객혈(喀血)과 이복 여동생의 죽음을 겪으며 심적으로 예민하고 불안정해졌다.

1925년 1월, [아오조라] 창간호에 「레몬」을 발표하고, 병이 깊어가는 와중에도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1926년 말부터 요양을 위해 이즈(伊豆)의 유가시마(湯ヶ島)온천에 머물며 1년여를 보냈다. 이를 계기로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를 비롯한 당시의 문인들과 교류하였다. 1928년 27세에 도쿄로 상경했으나 병세가 악화되어 오사카로 돌아갔다. 병상에서도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1931년 5월 작품집 『레몬』이 간행되었으나 이듬해인 1932년 3 월 24일, 서른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추천사

히라타 지사부로

“구김살 없이 스스로 삶을 바라보지만 그것이야말로 정밀하고 투명한 삶의 현실이며, 종국에는 작품의 기조가 되는 권태나 퇴폐는 씻겨 나간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역설적 효과야말로 그의 문학 세계의 숨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아베 아키라

“무릇 유례가 없다. 모방하려고 해도 범인(凡人)은 할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이과계 청년의 자질이 엿보이며 그것은 가장 순수한 의미에서 언어의 건강일지도 모른다.”

요도노 류조

“퇴폐를 맑고 깨끗하게 그려내고, 쇠약을 건강하게 그려내고, 초조함을 태연자약하게 그려내어 참으로 활달하고 중후하다.”

스즈키 사다미

“스스로의 작품을 빌려 꾸밈없이 어디까지나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표현 욕구에 충실함으로써 비로소 현대의 불행한 영혼의 실상에 청량한 표현을 줄 수 있었던 작가이다. 그는 거대한 사회의 영위에서 보면 전혀 보잘것없는,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도 거의 의미가 없는, 미묘한 기분의 변화나 의식의 현상을 언어로 정착하는 데 고심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4)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8        
[오늘 읽은 책] 의미있는 삶을 위하여 | 나의 독서습관(2021년) 2021-04-28 23:55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4277740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독서 습관 캠페인 : 오늘 읽은 책 참여

1. 읽은 책: 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

 

2. 읽은 내용: 원칙4. ('올바른 길'보다) 호기심

 

인생의 의미란 '내가 어제까지 몰랐던 것을 오늘 배웠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다양한 것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우면 배울수록 많은 현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많은 것을 알수록 사람들을 도와줄 힘이 생기며 삶의 안정감까지 얻을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안정은 유효성뿐이다. 언제나 의도하는 결과물을 실현하는 능력 말이다. 이것은 매 순간 막닥뜨리는 목적, 목표, 장애물, 문제, 도전에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러한 유효성을 개발하려면 열린 마음과 호기심에 기반한 다양한 경험치가 필요하다. 

진정한 호기심으로 여러 가지 탐험을 하면 지식, 지혜, 능력, 기술력을 얻고 의식도 올라간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진짜 자산이다.

호기심은 잘 사는 사람을 위한 사치가 아니라 잘 살기 위한 비결 중 하나이다.

 

안정된 삶을 살고 싶다면 그 시작은 안정이 아니라 언제나 호기심괴 탐험이어야 한다.

 

대단한 인물들이 이미 다양한 지식, 지혜, 방법론으로 우리 삶에 많은 안정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론을 단지 힌트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직접 경험으로 적용해봐야 한다.  머리로 어떤 이론을 외웠다고 혹은 믿는다고 그것을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이 책의 내용도 절대 믿지 마세요, 이 책은 단지 여러분이 원하는 영역에서 주도적으로 탐험할 수 있도록 청사진만 제공할 뿐이다. 저도 다른 어떤 사람도 그 삶이 어떤지는 알려줄 수가 없다. 

 

작은 참험들을 결국 큰 목표로 이어질 것이다. '올바른 그 한 길'을 절망적으로 쫓기보다 세상을 충분히 탐험할 자유를 누리기만  삶의 의미가 단계마다 자동으로 향상되고, 경험이 많을수록 능력과 그 능력을 적용할 힘이 생긴다. 우리가 더 이상 호기심을 매장하지 않는 한 말이다.

 

 3. 읽은 후 생각:

의미있는 올바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직접적인 경험이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호기심이야말로 이런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에겐 호기심이 얼마나 있을까? 주변 환경에 대해 항상 '왜 그럴까." 라고 얼마나 자주 생각하고 있는가? 

하지만 우리는 호기심을 매장하고 있는 현실에 놓여있는 것 같다.

항상 우리는 정답을 강요받고, 정답만이 옳다고 교육받으며 자란다.

그런 교육에서 호기심은 매장당할 수 밖에 없다. 

열린 시각과 마음으로 사물에 대해 궁금함을 느끼면서 직접 탐험해보고 경험해봄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시켜서 호기심을 향상시키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

알렉스 룽구 저
수오서재 | 2021년 04월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5        
[스크랩] [서평단 발표]『포기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하여』 | 서평단 선정(2021년) 2021-04-28 18:13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4275845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리뷰어클럽

감사하게도 서평단 선정되었습니다.

여러 이웃님들과 함께 읽게 되어서 더욱더 기쁩니다~^^

열심히 읽고 리뷰 남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포기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하여

김현지 저
다산북스 | 2021년 04월

 

 

서평단 여러분!
리뷰를 써 주신 뒤 ‘리뷰 썼어요!’ 에 꼭 글을 남겨주세요!
 
ID(abc순)
 
so..i1224
bo..ee0930
dn..fmxlsh
eu..0
eu..e00medi
he..o2000
he..th21c
hr..70
kd..557
mo..bh
pe..h2508
pj..2
ps..e
pu..le8520
ra..76
ri..r21
ru..109
us..na0606
wn..srla415
yu..ko1977

 

 

서평단 여러분께

* 리뷰를 쓰신 뒤 함께 쓰는 블로그 ‘리뷰 썼어요!’ 게시판에 글을 남겨주세요.  

리뷰에 아래 문구를 꼭 넣어주세요.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4)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7        
1 2 3 4 5 6 7 8 9 10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