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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독본-09 | 인생독본 독서습관(2022년) 2022-01-12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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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2일>

 

신의 세계에 대한 타인의 관계를 대신 결정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그 권리를 타인에게 넘겨주고 그들의 말을 맹신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양쪽 다 죄를 범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어린아이와 같다. 처음에는 할머니의 말을 반박할 수 없는 진리처럼 되풀이한다. 그다음에는 교사들의 말을, 성장한 뒤에는 유명 인사들의 말을 반박할 수 없는 진리처럼 되출이한다.

우리는 그들의 말을 줄줄 외우려고 얼마나 애쓰고 있는가! 그러나 우리가 스승들이 서 있던 경지에 그들이 했던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면, 우리의 환멸은 너무도 강해서 그것을 모두 잊길 바라게 된다.

-에머슨-

 

우리는 성현들이 남긴 것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이성으로 무엇을 취하고 버릴 지 선택해야 한다.

-탈무드-

 

 

 인간의 세계와 신에 대한 관계를 각자 스스로 설정해야 한다.

 

 

우리가 배워서 알고 있는 지식에 대해 이 말씀을 읽으며 생각해본다.

과연 정말 진실인가? 진실로 포장된 거짓이나 위선일 수 있을까?

그 진실 여부를 나의 이성으로 판단하고 취사선택해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교육이란, 무릇 지식을 줄줄 외우는 것이 아닌, 이성과 사고력에 의해 배워야 하는 것인데..'

아직도 우리는 주입식 교육을 하고...그 지식만을 맹신하고 있다..

그래서 진정한 배움이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경쟁만 남은 배움 없는 학교에 있을 수 없다"며 지난 4월 다니던 진주여자고등학교 2학년을 자퇴했던 김다운(17) 양은 10일 저녁 진주시내 차없는거리에서 "여러분의 학교엔 진정 배움이 있습니까"라는 손팻말을 들고 1인시위를 벌였다.

(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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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은 없다. 인간의 존엄성만 있을 뿐이다! | 마이 북리뷰(2022년) 2022-01-12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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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저
사계절 | 2018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인간 실격은 없다. 인간의 존엄성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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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없다. 인간의 존엄성만 있을 뿐이다.

김원영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고

 


 

 

인간 실격 이란 없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너는 인간으로 살 자격이 없어. 그러니깐 너는 인간으로 실격이야."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격이 있고 없음을 도대체 누가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인가?

태어난 것이, 태어나지 않은 것보다 손해일 수 있을까? 평생을 장애를 안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아무 것도 없고, 아무런 희망도 미래도 없이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까?  '잘못된 삶'이란 소송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가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을 거란 생각으로 산부인과 의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인데, 만약 당신이라면 어떠한 판결을 내리겠는가?

지금까지 제기한 질문과 문제 제기는 어쩌면 당신에게는 전혀 상관도 없고 나에게 일어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질문은 한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인간의 존엄성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 그들에게는 삶과 직결되고, 인간으로서의 본질과 밀접히 관련된 문제일지도 모른다. 

'정상' 과 '비정상'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눈 세상 속에서 그들은 소외되고, 위축되고, 세상의 음지 속에 존재해왔다. 그들이 장애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은 능력과 재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죄인처럼 살아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 그들에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는 존엄하고 아름다우며, 사랑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이다" 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이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 우리 사회에서 '잘못된 삶' '실격당한 인생'이라고 낙인 찍힌 이들의 삶을 변론하면서 '인간 실격'은 없다 라고 말한다.

 

변호사이자 작가인 김원영은 골형성부전증으로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으며, 열다섯 살까지 병원과 집에서만 생활했다. 그러나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검정고시로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의 중학부와 일반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였다. 그는 로스쿨에 진학하여 자신과 같은 장애인이나 소주자들이 세상에 목소리를 내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는 자유와 연대 활동들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출생 자체를 부정하거나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특질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해 고통 속에서 살지 않도록, 그들이 자신있게 그들 자신을 표현하고 그들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있다. 따라서 이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은 모든 존재가 존엄하고 매력적일 수 있다는 증거를 수집해서 그들이 존엄하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한 편의 변론서인 셈이다. 

 

저자는 소수자들의 삶의 형태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자기 스스로의 삶을 '잘못된 삶' 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는 너무나 불리한 사회 속에서 그들은 살고 있다. 극도로 빈곤한 가정 형편, 폭력과 욕설을 남발하는 부모, 장애나 질병으로 '추하다' '핵토'라는 평가를 받고 놀림받고 배척당하는 삶 속에서 자기 스스로 '내 삶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기란 어렵다.

또한 정치인들의 장애인복지시설에 찾아가서 하는 일종의 공연과도 같은 봉사활동의 모습은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장애가 있는 남자 청소년은 벌거벚은 채 욕실 바닥에 누워 있고 정치인은 그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봉사하는 장면이 뉴스에 나왔을 때, 그 뉴스를 보며 과연 그 남자 청소년 개인 프라이버시는 존중받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를 의식한 정치인의 가식적인 표정과 행동만 있을 뿐 그 속에 그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잘 기획된 퍼포먼스'(p.38) 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취급되엇다. 나는 그저 '전시'되었다. 그들의 모임에서 나는 일종의 가판이었다. 그들이 모임을 유지하면서 가꿔온 화초 같은 존재였다. 

나는 위안이요, 뿌듯함이요, 그들의 삶을 정화시켜주는 화초였을 것이다.

-p.40

 

장애인복지시설에서 목욕을 도와주는 정치인의 얼굴은 드러나지만, 장애인의 얼굴은 드러나지 않는다. 얼굴이 없다면 반응할 수 없다. 얼굴이 없는 존재, 익명화된 존재, 기호화된 존재는 오믈렛과 다를 바 없다.

-p.69

 

저자는 이렇게 소수자들의 삶 속에서 만나는 이런 연극적인 순간들, 즉 차별과 배제, 수치와 모욕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노련하게 연기하고, 우아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두 개의 역할을 배분해서 퍼포먼스를 펼치는 것이다. 우리는 더 큰 진실을 위해 거짓을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오로지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을 빛내기 위해 큰 거짓을 연기하는, 의전을 행사하고 퍼포먼스를 하는 정치인들의 '품격주의적 태도'에 비할 정도는 아니다. 

저자는 이런 거짓된 연극에 대해 비판하고 집어치우라고 말하지 않고 이런 연기는 표면적으로 거짓이더라도 실재와 유리되지 않고 그 속에서 사람과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그 상호작용 속에서 서로를 대우할 때 비로소 그 속에는 존엄이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이 가장 극명하게 빛나는 순간은 서로가 서로의 연기를 이해하고, 상호작용하면서 서로를 존엄한 존재로 대우하는 때이다. 품격이 상대방을 적절하게 접대하는 연기에 의해 구성된다면, 존엄은 상대를 환대하고 그 환대를 다시 환대하는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다. 우리가 본래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게 서로를 대우한다기보다는 그렇게 서로를 대우할 때 비로소 존엄이 '구성된다' 고 말할 수 있다.

-p.71

 

저자는 자신이 어린 시절 경험에 대해 말한다. 무더운 여름 모두가 계곡으로 달려갔을 때 "나 피부 관리해야 돼" 라고 말하며 그의 친구가 저자의 곁에 남았다. 저자는 그 친구가 그를 존중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친구의 거짓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그 친구를 계곡으로 편히 보내주었다. 그 친구는 혼자 남게 된 그를 배려하여 그에게 만화책을 주었다. 저자는 이 경험을 예로 들면서 서로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상호작용이 있다면, 그들도 존엄한 인간으로 존중받고 일어설 수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소수자들은 부모, 형제자매, 친구, 연인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그들의 존엄성을 부여받지만 이 세상은 그들에게 쉽지 않다. 저자는 자신이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관으로서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사례를 제시한다. 그들은 법과 제도 앞에서 차별당하고 그들의 고유한 서사를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법이 자유권, 평등권, 인간의 존엄성,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을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그들의 복잡하고 고유한 개인적 서사는 없다. 저자는 법은 인간 존엄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인 개개인의 고유한 서사는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그들은 아직도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차별당하고 있는 법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헌법은 개인이 고유한 저자성을 갖기 때문에 존엄하고, 그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자유권, 평등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이 필요하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정작 그 권리 보호의 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존엄의 핵심인 저자성을 침탈당해야 하는 셈이다

-p.189

 

인간의 존엄성을 깨달았지만, 자신의 장애를 인식하고 자신의 일부로서 그 장애를 수용하는 것은 좀 다른 문제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없애야 할 요소가 아니라 삶의 한 부분으로 진지하게 숙고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잘못된 삶' 소송은 "나를 태어나게 했으니 그 손해를 배상하시오." 라고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의 주장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임신 10주~14주 사이에 산모의 혈액을 채취하여 다운증후군 여부를 검사를 하고, 검사 결과에 따라 다운증후군으로 의심되는 경우에는 추가로 양수검사를 진행한다. 그런데 이 소송의 경우는 그 유전자 검사에서 이상없다고 나왔거나, 산부인과 의사의 잘못된 진단으로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런 경우 출산 후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아이의 부모는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 의사의 실수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까. 또한 그 아이 당사자는 자신이 태어난 것이 태어나지 않은 것보다 손해라고 생각해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까.

그런데,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내가 그 부모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본다.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고, 나 또한 그 아이를 낳았을까, 낳지 않았을까 

 

"그래도 만약 우리 아이를 낳기 전으로 돌아가 장애가 이렇게 심하다는 걸 알게 된다면, 낳겠다고는 말 못하겠어요."

-p.295

 

장애를 가진 한 사람이 '잘못' 이나 '실격' 이라는 사회적 낙인에 맞서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수용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자신의 신체를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을 존중하며, 자기의 삶을 '잘못된 삶'이 아니라고 변론하는 것은 결코 쉽고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론적으로는 간단하고 이상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비난과 차별 앞에서 '나는 추하고 무가치하고 열등한 존재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수천 번, 수만 번 하게 될지도 모른다.  

2001년 미국에서 한 청각장애인 레즈비언 커플이 5대째 청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남성에게 정자를 기증받아 청각장애를 가진 아들 고뱅을 낳았다. 아이에게 고의로 장애를 물려준 것이고 이 선택은 엄청난 윤리적 논쟁을 가져왔다. 그들은 청각장애인으로 수화언어를 사용하며 형성해온 자신들의 문화, 삶의 양식을 온전한 정체성으로 받아들였고, 그것을 아이와 공유하고 싶어 했다. 그들은 자신들은 청각 장애를 물려준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하나의 정체성, 하나의 세계를 전하고자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례를 보면서 먼저, 난 아이에게 내 장애를 내 정체성이라고 하여 물려줄 수 있을까? 내가 장애가 있다면, 그 장애는 아이에게 손해일까? 

고뱅 부모처럼 자신들의 장애를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장애를 온전하게 수용한 것이다. 이미 장애는 그들에게 손해가 아닌 그들을 표현하고 나타내는 정체성이 되었으니깐.

 

우리가 가진 장애와 질병이 잘못된 것이 아니며, 우리 인격의 고유한 일부이자 우리 사회를 풍요롭게 만드는 다양성의 한 축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걸까?

반대로 우리 부모들은 우리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우리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는 없는 걸까?

-p.297

 

비록 당신이 장애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자기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지 못하더라도 당신은 자신을 충분히 돌보고 아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은 존엄하고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드라마 하우스 에피소드에서 저신장장애인 딸이 자신의 모습에 대해 "나는 내 모습이 좋아요." 라고 한 말 속에서는 그녀 자신 스스로를 사랑받을 자격으로 만들고 싶은 그녀의 소망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애쓰는 모습이야말로 나 자신에게, 나의 부모에게, 이 사회에세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음을 보이는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p.308

 

그들은 괴물이 아니다. 그들은 괴물이 될 필요가 없다. 더이상 자신의 동굴을 만들고 밑으로 땅을 파지 않아도 된다. 이제 우리는 나를 존중하는 상대방을 보고 그를 더 존중하게 되고 나를 존중하는 법률을 보고 그러한 법의 지배를 기꺼이 감내하고자 한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존엄하고, 아름다우며, 사랑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인 것이다.

누구도 우리를 실격시키지 못한다.

-p.313

 

 

이제는 혼자서 절망적으로 동굴을 파 내려갈 필요가 없고 이젠 다른 동굴들과 만나야 할 때이다. 이제는 소수자운동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 덕분에 그들은 서로 만나게 되었고, 적극적인 장애인인권운동을 인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오줌권, 이동권을 주장하면서 권리를 주장했던 그들 덕분에 주변에는 장애인 화장실과 장애인용 엘리베이터 등 그들이 생활하면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그들을 위한 편의 시설도 많이 있다. 

이제 그들은 우리가 보호하고 안쓰러움을 느끼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사람도 각자 다양하듯, 그들은 그 다름 속에서 이해되고, 함께 살아가는 파트너, 동반자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아무도 그들을 실격당한 자로 규정할 수 없다. 인간 실격은 없다.

인간의 존엄성만 있을 뿐이다.

 

태어날 때부터 나의 존재가 ‘잘못’이나 ‘손해’는 아닌지 되물어야 하는 입장에 나는 한 번이라도 서본 일이 있던가. 그렇다고 내가 장애를 경멸하거나 무시한 것도 아닌데 이게 문제가 되는 걸까? 가끔은 장애를 이겨내고 뛰어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을 존경하기까지 했는데 말이다. 저자는 그러한 나의 시각이야말로 ‘관조’이며 그 대상을 내 삶으로 절대 들이지 않겠다는 태도라고 말한다. 정신이 확 든다. 내가 일상의 작은 불편조차 억울해하면서도 장애에 대해서는 ‘(알아서) 이겨내야 할 것’ 혹은 ‘숭고한 어떤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동안, 삶의 전부를 끝없는 불편과 차별 속에 두어야 하는 이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 중 누구의 삶도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말을 하기에 지금 우리의 태도와 실천은 충분한가? 이 책은 누구에게나 태어남을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는 믿음을 품고 있다. 나는 그의 변론을 지지한다.
김소영 (방송인, 당인리책발전소 대표)

 


                                 <저자 김원영>                             사진 출처: 채널 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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