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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했던 2000년도의 한국영화들... | My story 2010-06-13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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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깊어간다.

나무들이 더욱 깊은 초록빛을 내는 계절이다.

어느날, 달력을 보고,

아니 달력에 적힌 올해 연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2010년...

선명하게 인쇄된 숫자가 무슨 괴물같았다...

 

희망찬 새 천년 2000년이 시작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도시도 변하고 사람도 변했다.

그리고, 나도 변했다.

 

2000년에 나는 지축이 흔들리는 것같은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다. 결코 내게는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일어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나는,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것만 같은 누군가를 잃었다. 4월이었고, 그 후로부터 10년째, 4월만 되면 몸살 마음살을 앓는다.

 

큰일을 겪고 나는 이전까지와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픔을 이겨내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인지 모른다.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도움받을 수도 없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달리 마음 둘 곳이 없었던 나는, 끊임없이 극장을 순례했다.

개봉되는 모든 영화를 보았고, 어떤 영화는 두 번을 보았고, 공강 시간에도 영화를 보러 갔고, 어떤 날은 강의를 빼먹고도 영화를 보았다. 그 한 해 동안 정말 무수히 많은 영화를 보았다.

 

그 해, 2000년도에 보았던 영화들은,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내 마음에 아로새겨졌다. 생각해보면, 그 해의 영화들, 특히 한국영화들은 관록의 성장을 한 것 같다. 새 천년 이전과 이후의 한국영화는 확연히 구분이 된다. 물론, 세기말에도 훌륭한 영화들이 많이 개봉되었지만, 내 마음에 큰 울림을 준 영화들도 많았지만, 이렇게 한 해 동안 여러 편의 영화가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준 경우는 흔치 않았다.

 

2000년도에 개봉했고, 2000년도에 내가 보았고, 2000년도에 감동받았던 영화들, 10년이 지난 지금도 다시 보게 만드는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 논리정연한 리뷰도 아니고 비평도 아닌, 그냥 내가 사랑했던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2000년도의 영화들, 내가 사랑했던 여섯 편의 영화의 이름은...

청춘, 공동경비구역JSA,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동감, 시월애, 미인...

 
 
 
 
청춘...
나는 이 영화를 정말 사랑했다.
파릇파릇한 청춘들이, 시퍼렇게 날이 선 젊음의 한 시절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를, 정말 사랑했다.
김래원, 김정현, 배두나, 윤지혜... 이런 배우들의 연기도 정말 사랑했다. 진희경과 고두심도 사랑하는 배우들이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서정주의 시를 주문처럼 외우곤 했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그 해, 상처입은 나를 나 스스로 위로하고 다독이는 주문이었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영화 OST에 삽입된 곡, 돈 맥클린의 Vincent... starry starry night을 사랑했다. 한번 들을 때마다 스무번도 넘게 반복해서 듣곤 하였다. 그리고, 이런 영화를 만들어준 곽지균 감독을 존경했다.
그런데...... 얼마전, 곽지균 감독의 부고를 듣고, 10년 만에 다시, 지축이 기우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경력과 능력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의 외로움과 좌절이 너무나 슬펐다.
그래서, 10년만에, <청춘>을 다시 보았다.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영화였다......
 
 
 
 
박찬욱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일약 '스타'의 반열에 올라섰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개봉 전부터 유명세를 치르던 영화를, 그 시절 각별히 지내던 선배들과 함께 종로에서 보았다.
지금은 '시네마 정동'이 된 '스타식스 정동'에서였다. 우리는 종종 연속 세 편을 상영하는 심야상영도 그곳에서 즐기곤 하였더랬다. 선배 세 명과 후배인 나... 넷이서 유독 잘 어울리던 시기였다. 우리 넷은 그 해 여름, 강원도의 살둔산장으로 여행도 갔었다. 현실적이지 않은 풍광을 지닌 곳이었다. 살둔산장의 주인장은, 한밤이면 강가로 나가 옷을 모두 벗고 누군가에게 기원을 하는 모양새로 목욕을 하곤 하였다. 어쩌면 한낮에도 그는 그랬을지 모른다. 어쩌면 나의 기억이 왜곡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건, 그곳은 시간을 잊은 듯한 곳이었으니. 세상을 잊은 듯한 곳이었으니... 그렇게 어울리던 우리 넷은, 영화도 함께 보러 갔다. 영화가 끝난 후 모두 자리에서 일어설 줄 몰랐다. 김광석의 <부치지 못한 편지>는 가슴을 파고들었다. 김광석을 좋아하던 우리 모두는, 묵직한 슬픔으로 의자에 파묻히듯 앉아있었다. 그리고 나서... 길 건너, 골목길 끝에 있던 Agio에 가서 생맥주와 파스타를 먹었다. 맥주가 무척 예쁜 잔에 담겨나왔던 기억이 난다. 파스타 면발을 돌돌거리며 먹다 말고, 우리 중 누군가가 김광석의 노래를 다시금 흥얼거렸다. 우리는 우물우물 거리면서 그를 따라 김광석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김광석과 함께 하던, 그 저녁... 우리는 밥을 먹고 나와서도 오래오래 헤어지지 못한 채 종로거리를 걸었다. 밤이 깊도록...
 
 
 
단성사로 이 영화를 보러가던 날, 나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뭔가 어색하고 조금 불쾌했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 해에 나는, 슬픔을 풀 길 없던 나는, 이유없이 화가났고, 이유없이 불쾌했다. 그냥 그런 날들을 '견디고' 있었기 때문에, 그날도 그저 그런 날들 중 하나였을지 모른다. 그런데 <동감>을 보면서, 그리고 보고 나와서, 아... 마음이 저릿저릿하면서 슬프면서 아프면서도 행복하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나는 'Ditto'라고 대답해줘야지...
젊고 푸르렀던 유지태와 김하늘... 비린내가 날 것처럼 생물같았던 그들의 눈빛과 말투와 연기... 나는 참 좋았다.
 
 
 
 

이 영화를 보러가겠다는 내 말을 듣고 한 선배가 그랬다.
"요즘은 여자들이 야한 영화를 참 잘 보더라. 아주 당당하게 말이지." 야한 영화? 당당하게? 글쎄, 내가 이 영화를 왜 보러가려고 할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빴다. 
어쨌건, 나는, 그 선배의 표현대로라면 '당당하게' 영화를 보러갔다. '여자'와 함께. 코아아트홀로...
대낮에 보았던 까닭에, 영화를 보고 나왔더니 세상은 마구 환하였다. 머리속에, 귓가에, 가슴 저 밑에까지, 나를 가득 채운 것은, 음악이었다. 영화가 야했는지 어땠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고, 여주인공의 얼굴도, 남주인공의 얼굴도 희미할 뿐, 오로지 나에게 선명한 것은, 음악이었다.
특히, 이자람의 중얼거리는 음성이 깔린 노래, Belle...
개인적으로, 중얼거리는 듯한 노래를 좋아한다.
매우 단순한 피아노 반주, 중얼중얼 읊조리는 듯한 노래...
이자람은,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라는 불후의 명곡의 바로 그 예솔이었다는...
요즘도 나는 종종 이 노래를 플레이한다.

 

<Belle>

 

또 다시 사랑할 순 없는건가요
난 그저 지금이면 될 것 같은데
조금만 다가서도 꺼지는 사랑
그대가 너무나 아파요

 

묻지마요 내가 어디 서있는지를
지금은 갈 수 없는 시간 같은데
나 없는 그곳에서 날기다리는
그대가 너무나 아파요

 

내가 쫓던 사랑은 무엇일까요
더이상 갈 수 없는 꿈만 같은데
또다시 누군가 나를 미는 소리
그댄 지워지지 않아요

 

붙잡고 싶은걸 더 깊이 잠기고 싶은걸
그리움에 숨이 막혀
날 좀 잡아줘

 

나를 담아준 그대의 두눈에
아직도 나는 아름다운가요
그대여 이제는 마음 놓아요
다시 사랑인걸 알아요

 
 
 
 
생각해보면 조금 유치하기도 한 영화였다. <동감>과 비슷하게, 시공간을 뛰어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런데, 영화의 배경이 가슴을 만져주더라. 풍광이 아름답더라. 서해의 낙조가 눈부시더라... 전지현의 울음소리는 어색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예뻤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영화 속에 나오는 이정재를 좋아한다. 영화 속에 나오던 일 마레... 이정재가 이 영화를 끝낸 후 파스타 전문점인 '일 마레' 대학로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는 소문을 듣고 몇 번이나 그 곳을 찾아갔더랬다. 마주치면 얼어붙어서 단 한 마디도 건네지 못할 것이 뻔했지만, 참으로 순진하게도 그런 우연한 마주침을 기대하면서, 여러 번 발걸음했더랬다. 역시나, 한번도 마주친 적은 없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함께 보았던, 강원도 살둔산장으로 함께 여행을 떠났던 우리들 중 한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했더랬다. 일산에 살던 그는, 자유로를 달리는 버스를 타고 통학을 했는데, 그 자유로에서 사고가 나는 바람에 그는 일산에 있는 병원에 입원을 했더랬다. 목이며 어디며, 충격을 받았던 그는 목소리도 갑자기 작아져서, 병원 위치를 묻는 내게 부정확한 발음으로 답해주었다. '능곡병원'이라 말하는 것을 나는 '민국병원'이라 알아들었던 것이다. 나머지 우리 셋은, 그를 문병하기 위하여 길을 나섰다. 그가 일러준 버스를 타고 돌고 도는데, 아무리 해도 민국병원이라는 곳은 나타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민국병원을 찾아보았지만, 여전히 그곳은 유령병원이었다. 다시 통화할 때 그가 제대로 웃지도 못하면서 '능곡병원'이라고 이름을 정정해주었다. 우리는 프링글스니 과일주스니 하는 따위의 군것질 거리를 사들고 그의 병실을 찾았다. 그는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우리가 병실에 들어서자 한심하게 찌그러져 있던 그의 얼굴은 환한 해바라기가 되었다. 우리는 의기투합하여 그를 병실에서 빼내었다. 명목은 간단한 '외출' 이었지만, 일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버스를 타고 나와서 종로로 갔다. 그리고 넷이 함께 영화를 보았다. 코아아트홀에서 상영하던 영화였다. 바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이 영화의 파장은 상당이 강했고, 또 길었다. 우리는 대한민국 영화계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건배했다. 류승완과 류승범이 대스타가 되리라는 기대로 인해 너무 설레서 다시 건배했다. 멋진 영화였다. 꽃보다 아름다운 영화였다. 그리고, 우리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류씨 형제는 나날이 그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으니, 정말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 shwimbook
 
 
 
2000년도에 내가 주로 갔던 극장은 종로의 단성사, 씨네코아, 그리고 코아아트홀이었다. 지금은 추억의 이름들이 된 곳, 없어진 극장들.
나는 남아있으나, 내 가까이 있던 무엇인가가 누군가가 사라지고 난 후, 그 흔적을 더듬는 일은 상처가 되었다. 종로에 있던 극장들이 없어지자 한동안은 종로 근처를 가는 일 또한 내게 상처가 되었다...
 
하지만, 2000년도에 보았던 그 영화들은, 그 한국영화들은, 아직도 내게 삶의 희망과 위안이 되어준다. 상처를 덮어주는 힘이 된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고, 여전히 나는 영화를 보기 위하여 극장을 찾는다. 여전히, 개봉하는 모든 한국영화를 빠트리고 보지 않기 위하여 노력한다. 그리고, 엔딩크레딧의 마지막 한 글자까지 보고 나온다. 내게 희망과 위안과 힘이 되어주는 영화를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다.
나의 작은 노력이, 한국영화계에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다...
 
 
 
 
 
 

++ 포스트에 사용된 영화 포스터의 출처는 movie.daum.net임.
++ 포스트에 사용된 일러스트레이터의 출처는 shwimbook임.
   무단도용 및 복제, 사용이 금지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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